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368화 (368/760)

368화

관객들이 볼 수 있는 무대보다 한층 낮은 위치에 있는 백스테이지. 그곳에서도 무대를 볼 수 있다. 무대의 빛이 커튼이나 틈을 뚫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VCR 상영으로 어두워졌던 스테이지가 천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아라 씨 올라갑니다.”

감독이 무전기에 대고 FOH에 전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보아, 콘서트를 총괄하는 중인 조진만이 OK 사인을 보낸 듯했다.

조아라가 철제 계단에 발을 올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환복을 마친 멤버들이 저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시선은 한곳으로 모여 있었다.

조아라에게로.

“파이팅.”

조아라가 주먹을 들어 보이고 무대를 향해 올라갔다.

백스테이지로 들어왔을 때처럼 철제 계단이 떨린다. 이제는 안다. 계단이 고정 안 된 게 아니라, 자신의 다리가 떨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조아라가 계단을 모두 오르자 스테이지로 이어지는 통로가 보였다. 그곳에서 들어오는 빛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조명이 완전히 켜지기 전까지 나가야만 한다.

조아라가 느리면서도 빠른 걸음을 옮겼다.

리카가 호들갑 떨면서 신아름의 어깨를 찰싹찰싹 때렸다.

“아라쨩 엄청 자신감 넘쳐 보여!”

“그런가.”

“세상에서 제일 세쿠시(섹시)한 건 자신감이란 게 정말이네!”

리카는 스테이지로 나아가는 조아라를 향해 ‘아라쨩 세쿠시!’라며 환호를 보냈다.

정작 조아라는 그걸 들을 정신이 없었다.

‘조아라 이 미친년아…….’

그녀가 보일 무대는 소녀연맹 미니 1집 Girl’s Craving의 수록곡, 조아라 개인곡인 ‘댄스 위드 미’였다.

댄스 퍼포먼스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지만, 조아라는 댄스 퍼포먼스를 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댄스 위드 미’로 보여주는 건 조아라의 보컬뿐이었다.

‘잘하는 춤 추면 되지 왜 괜히 오기 부려서 보컬 퍼포먼스를 하겠다고…….’

최선은 다하지만, 관객의 반응은 좋지 않을 터였다. 사람들이 소녀연맹의 곡을 듣는 이유는 조아라의 보컬 따위 때문이 아니니까.

조아라가 무대에 올라 폼 잡고 보컬 기교를 뽐내봤자, 이미 백설하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얼마나 큰 울림을 줄까.

조아라는 마이크를 부서질 듯이 쥐었다.

‘최선을…….’

조명이 밝아지고, 조아라는 보았다.

지금까지 계속 보아왔던 광경이지만, 전혀 다르게 보이는 광경.

자신을 쳐다보는 3,000명의 시선.

그냥 시선이 아니다.

소녀연맹을,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여 이곳까지 귀한 발걸음해준, 정말로 사랑하는 팬들의 시선이다.

‘최선…….’

조아라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빨랫대에 걸린 탈색한 셔츠처럼 하늘하늘 나부낀다.

* * *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언제부터였을까.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조아라는 그게 꽤 옛날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소녀연맹으로 데뷔하기 전일지도 몰랐다. 그건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면 멋지니까’라거나 ‘아이돌이면 노래를 잘 불러야지’ 같은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

‘노래를 못 부르면 주목받지 못해.’

그런 위기감 때문이었다.

조아라는 연습생이 되고 아이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었다.

그중에서도 ‘시에이스’라는 보이그룹을 좋아한다. 그리고 또 그중에서도 메인 댄서인 규영을 롤모델로 삼고자 했었다.

일단 메인 댄서니까, 자신과 겹쳐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어느 곡에서건 비중이 적었다.

‘항상 중앙을 차지하는 건 메인 보컬이네.’

아이돌에게 춤이 중요하다 뭐다 해도, 결국 가장 중요한 지표는 음원 차트나 앨범 판매량이다.

음악과 관련되어 있다.

조아라는 ‘나도 나중에 규영 선배처럼 되는 건 아닐까’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데뷔하고는 달랐다.

소녀연맹은 퍼포먼스형 그룹이란 방향성을 가졌고, 메인 댄서인 조아라의 비중이 꽤 컸다.

‘다행이다.’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는 마음은 점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안도했다.

노래도 중요하지만 춤도 중요해.

아니, 쌤이 말했잖아. 춤은 노래 이상이라고.

어설픈 노래 실력을 어중간하게 갈고닦을 바에야 특기인 춤에 집중하는 게…….

‘이사님이 우셨슴미다.’

가끔 걸려 오는 진저의 전화.

시답잖은 담소 속에서 진저가 그리 말했다.

‘제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려주셨슴미다.’

진저는 친구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처럼 부끄러운 기색이 만연했다.

하지만 자랑은 자랑인지라, 목소리에는 깊은 자부심이 배 있었다.

‘계속 노래를 연습하길 잘했슴미다. 제 노래를 듣고 울어주는 사람이 있단 건, 굉장히 기분 좋았슴미다. 무, 물론 제가 그렇게 뛰어난 실력을 가진 건 아님미다! 기대하시면 안 됨미다!’

진저는 몰랐지만, 그때 조아라는 폰에서 귀를 떼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그야말로 복잡미묘해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겉으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조아라는 평정을 유지하려 눈을 감았지만, 찡그린 눈매가 그녀의 감정을 대변해주었다.

‘결국엔 노래구나. 사람을 울리기까지 할 수 있는 건…….’

아이돌은 댄스 가수다.

보컬 댄서라고 불리지 않는 건 근본적으로 노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작 깨달았지만 마침내 인정하게 된 사실이다. 그로부터 조아라는 보컬 연습에 더 공을 들였지만, 다른 멤버들과 비교하면 창피하기까지 한 성과였다.

그래서 조아라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마침 좋은 롤모델이 있었다.

‘하양 언니.’

보컬적인 기교를 끌어올리기보다 개성을 극대화하길 택한 장하양이다.

그녀 특유의 낮고 무거우며 끈적한 목소리는 팬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문득 백설하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보컬리스트의 정점은 두 종류야.’

기교로 노래 위에 군림하거나.

‘개성으로 노래와 함께 나아가거나.’

조아라는 후자를 택했다.

* * *

성필은 팔짱을 끼고 조아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아라는 본인이 직접 보컬을 어레인지한 ‘댄스 위드 미’ 시연을 마친 후였다.

조아라는 죄라도 지은 듯 시선을 사선으로 내리뜨렸다. 그리고 변명하듯 말했다.

“뭐, 마음에 안 들면 어쩔 수 없고요. 아저씨가 프로듀서니까.”

조아라는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방금 시연에서 조아라는 실수를 꽤 여러 번 저질렀었으니까.

‘근데 어쩔 수 없잖아…….’

프로듀서인 성필 앞에서 시연하는 상황이 오니 100배는 더 긴장됐다.

진저가 떠올라서 더욱 그러했다.

‘케이어스가 라이벌이니 뭐니 해놓고서…….’

성필을 울렸다는 보컬의 소유자인 진저와 비교될 거라 생각하니, 조아라는 부끄러워서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조아라는 성필의 답을 기다리며, 의미 없이 앞머리만 손가락으로 쓸어댔다.

앞머리 정리가 아니라 앞머리 흩뜨리기로 불러야 할 만큼 정신 사나운 손짓이었다.

“아라야.”

조아라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녀는 천천히 성필을 바라보았다. 성필이 무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하고 싶으면 해.”

“……그렇게 말하지 말고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그렇게 말해줘요.”

“네가 더 낫다고 판단하면, 해.”

조아라는 그게 질책인지 격려인지 헷갈렸다. 비꼬는 건가? 아니면 정말 하라는 뜻인가?

조아라가 점점 더 움츠러들었다.

겨울철 바람을 맞고 옷을 더 여미는 듯 스스로를 보호하는 몸짓이다. 조아라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녀답지 않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고 놀랄 것이었다.

조아라는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의 호통을 들은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아, 아니, 그냥…….”

드물게도 조아라가 말까지 더듬었다.

그것을 본 성필은 더는 못 들어 주겠다는 것처럼 그녀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그런 판단조차 안 나오면 안 하는 게 맞겠다.”

조아라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혼란스럽고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스스로가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무대에 오르게? 그래, 하지 마.”

“…….”

성필의 말은 핵심을 꿰뚫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어떻게 무대에 오르겠는가. 그런 무대를 보여주는 건 팬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다른 데면 몰라도 콘서트인데.

“…….”

조아라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자 그제야 성필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아라야, 무대에 오르려면 뭐가 필요할까?”

“연습, 해야죠…….”

그래, 연습해야지.

이딴 실력을 가지고 아저씨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내가 좀 바꿔봤어요’라면서 노래 부르다니.

머리가 어떻게 됐었나.

조아라는 10분 전의 자기 자신을 때려죽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성필은 그냥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조아라는 그게 나무라는 듯이 느껴졌다. 창피함이 극에 달한 그녀는 누가 보아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뺨을 붉힌 채였다.

“실력이…….”

성필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나긋하게 변했다. 조아라가 슬쩍 내렸던 눈동자를 다시 위로 들었다.

“실력이 필요하단 거야?”

“……네.”

“무대에 오르는 순간에 실력만 있으면 돼? 그러면 무대에 오를 수 있어? 아니야.”

성필이 조아라의 어깨를 짚었다.

조아라가 확신했다. 성필은 비꼬는 게 아니라, 격려해주고 있다.

여전히 무표정에 가깝고 말투는 무미건조했지만, 이건 격려였다.

“무대에 오르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실력이 아니야. 그건…….”

* * *

조아라가 무대의 끝을 밟았다.

태양 같은 조명이 오직 조아라만을 가리켰다.

‘무대에 오르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최후의 최후에 반드시 가져야 할 건.’

용기다.

조아라는 용기를 뿌리로 삼아 땅을 디디고 노래 불렀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이었다.

용기란 두려움을 아는 것이다.

두려움을 가지고 무대에 오르는 건 프로로서 부적절하지 않을까.

‘나는 왜 무서워하지?’

실력이 부족하니까.

백설하에 비하면, 아니.

신아름에 비하면, 아니.

리카, 아니, 장하양과 비교해도 조아라 자신의 보컬 실력은 뒤떨어진다.

모자란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기세 좋게도 착실하게 배워왔던 기교를 전부 내던져버리고 무대에 섰다.

‘바꾼 창법이 더 나아. 개성 없는 유리 같은 목소리보다, 내 본래의 목소리가 더 나아.’

그런 오만한 믿음을 가지고 섰다.

확신은 아니다.

하지만 믿음은 확신으로 변할 것이다.

용기는 뿌리가 되어 애매한 믿음을 견고한 확신으로 변모시킨다.

그리고 이제는 그 확신을 점검받을 때였다.

물론, 여전히 두려웠다.

다시금 성필의 조언이 조아라의 머리를 울렸다.

‘무대에 서기 위해 필요한 건…….’

용기.

‘그리고 아라야, 네 노래 되게 좋았어. 어? 뭐가 좋았냐고 물으면…… 아니 거짓말 아니야! 어디 보자, 어, 그래. 그게 느껴져.’

청춘.

* * *

‘댄스 위드 미’의 퍼포먼스가 나오자마자 환성이 일어났다. 그 환성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아라의 댄스 퍼포먼스다!’

누가 뭐래도 조아라는 소녀연맹 내에서 가장 탁월한 댄스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아이돌이 되지 않았다면 댄스 플레이어로서 세계에 이름을 날렸을지도 모른다.

학생 신분일 때도 국내 대회 여럿에 참여해서 씬의 주목을 이끌어냈던 인재니까.

‘어떤 안무일까.’

진저는 케이어스 멤버들에게 조아라에 대한 주접을 실컷 떤 이후였다. 그리고 주접떤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아라 씨는 반드시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실 거니까! 다들 눈 뜨고 똑바로 봐!’

진저 응원봉을 마구마구 흔들면서 무대에 집중했다. 조아라의 형체가 작게 보였지만, 스크린 따위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실물을 눈에 담고 싶었다.

조아라의 솔로 댄스 퍼포먼스를 본단 생각에 잔뜩 기대를 품던 중, 진저의 손이 조금씩 느려졌다.

흔들리던 응원봉이 의무적인 까딱임만을 보였다. 관객석 전부가 그러했다.

‘춤…… 안 추시네?’

조아라는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불렀다.

케이어스 멤버들이 해명을 요구하듯이 진저를 바라본다. 그녀는 녹이 슨 것 같이 뻐걱거리는 턱을 겨우 움직여 변명했다.

“아라 씨는 노래도 잘 부름미다! 다들 귀 파고 들으십시오!”

당연히 그런 말이 먹힐 리가 없었다.

케이어스가 노래를 연습해 온 세월이 얼마인가. 첫 소절만 듣고도 보컬리스트의 능력을 가늠할 정도였다.

‘춤 잘 춘대서 기대했더니만.’

김민주는 피의 실드를 펼치는 진저와 간단히 몇 마디 주고받은 후 무대를 감상했다.

감상이라기보다는 학교 쉬는 시간에 잠시 인터넷 서핑을 즐기는 정도의 집중력이었다.

그때 진저의 가슴을 후벼 팔 진소유의 발언이 튀어나왔다.

“무슨 자신감으로 나왔지? 진짜 무슨 자신감이야?”

진저는 대꾸할 거리가 없어서 애절하게 조아라만을 바라보았다.

관객석 전체가 조용했던 터라, 진소유도 더는 진저에게 무어라 하지 않았다.

김민주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조아라 쟤 무대가 이 콘서트 옥에 티네.’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혼동하는 사람이.

‘네 솔로 무대면 당연히 춤추는 걸 기대하겠지. 팬들이 띄워줘서 현실 파악이 안 되나.’

조아라는 ‘나는 노래도 꽤 해요’란 걸 보여주고 싶었겠지만, 이곳에 ‘꽤 하는 노래’를 들으러 온 사람은 없다.

이전 무대들과 비교해서 과하게 침묵에 잠긴 관객석이 그것을 증명한다.

‘당연하지만…….’

비교될 수밖에 없다.

비교 대상은 소녀연맹 멤버들이었다.

당장 장하양의 ‘에피타프’를 전에 들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됐다.

조아라의 보컬 퍼포먼스에는 눈을 사로잡는 연출도, 댄서들의 화려한 군무도, 그 무엇도 없다.

홀로 나와 처량하게 목소리만을 뱉는 조아라만이 있을 뿐.

‘원곡이랑도 다르네.’

‘댄스 위드 미’ 음원은 듣기에 편하고 보컬적으로도 하자랄 게 없었다.

언제 들어도 대강 귀를 즐겁게 해 주는 노랫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무대에서 나오는 조아라의 보컬은 불안정했다.

‘목이 안 좋나?’

밴드 세션 탓도 있겠지만, 조아라의 보컬은 원곡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편곡 버전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기대했던 원곡이 공연에서 나오지 않을 때 환호하는 건, 즉흥연주가 일상적인 재즈 공연밖에 없지 않을까.

관객들은 ‘그럭저럭이네’하는 얼굴로, 조카의 재롱을 봐준단 마음가짐으로 조아라의 무대를 감상하는 듯했다.

그리고 관객석은 서서히 침묵에 빠져들었다. 이전보다 더 깊은 침묵 속으로.

사람이 물에 잠겨 고막이 점점 더 먹먹해지는 것과 비슷했다.

침묵의 층위가 쌓여간다.

김민주 또한 켜켜이 쌓여가는 침묵의 파도 아래에서 흔들리길 반복했다. 조아라의 목소리가 울릴 때마다 알 수 없는 먹먹함이 그녀를 유유히 흔들리게 했다.

‘흔들거리는…… 응?’

김민주는 이상 현상을 깨달았다.

관객석이 너무 조용했다. 사람들은 머리 위로 들어 올렸던 응원봉을 가슴께나 다리 옆에 붙이고, 편한 자세로 조아라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조아라의 노래에 집중하고 있다.

응원에 진심이었던 진저마저 그런 관객석의 분위기를 읽고 응원봉을 슬며시 떨어뜨린 참이었다.

‘흔들거려.’

조아라의 노래는 흔들렸다.

태풍 속을 나아가는 나비 같았다.

하지만 쓸려가지 않았다.

불안정하고 울렁이지만, 동시에 곧다.

노래의 거칢은 방금 꺾은 나뭇가지와 비슷하다.

나뭇가지는 나중에 세련되게 깎아서 도구로 써야 한다.

그러나 방금 꺾은 나뭇가지는 자연의 모양을 간직하고 있었다. 손으로 쓸면 까슬까슬하여 기분이 좋다.

꺾은 가지를 제 쓰임새로 옮겨 가지 않고, 언제까지나 자연의 형태 그대로 만지고픈 기분이다.

‘거칠고 어설프고 정제되지 않은…….’

그렇기에 이목을 끈다.

괜한 기교가 끼지 않은 목소리는 방금 갈아낸 송곳처럼 똑바로 귀를 찔러 들어온다.

태풍에 들어온 나비가 비틀비틀 날아 결국은 목적지에 도달한다. 크게 보아 직선으로 날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비는 귀에 닿자마자 다시 바람에 날려 사라진다. 깔끔하리만치 귀에 이물질을 남기지 않는 소리다.

‘귀가 뜨이는 느낌은 없는데…….’

김민주는 어느새 상체를 앞으로 쭉 빼고 있었다. 조아라의 아슬아슬한 비행에 이목을 모은다.

조아라의 노래는 거칠고 청량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너무나 아슬아슬하게 똑바로 날아와, 저러다가 꺾여 추락하진 않을지 걱정된다.

마침내 그 소리가 귓가에 안착했을 때, 김민주는 자기도 모르게 안도감을 느낀다.

그리고 다음으로 날아오는 노랫말에 집중한다.

* * *

성필은 관객석에서 조아라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세련된 기교를 버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개성을 부딪치는 노래.’

아직 정제되지 않아 불안한 소리.

노래로서 깊이와 고민이 부족하다.

‘보컬리스트로서의 기량을 좋게 평가할 수는 없지.’

하지만 성필은 따스하게 미소 지었다.

조아라의 노래는 아슬아슬하고 거칠며 때론 비틀거리면서도 올곧게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귀에 닿는 순간, 지금까지 날아왔던 길이 아깝지도 않은지 미련 없이 자취를 감춘다.

날것의 열망을 가지고 쏘아지는 노래는 깔끔하리만치 귀에서 증발한다.

그 모습은 젊음과 닮았다.

뜨거운 시작과 차가운 끝.

‘이게 아라의 목소리야.’

노래가 끝났다.

스테이지에선 젊음을 향한 응원과 공감이 박수가 되어 휘몰아쳤다.

사람들은 조아라의 노래에서 자신을 보았다.

불확실함을 향해 도전하는 자신의 삶.

흐릿한 안개를 허우적거리며 헤쳐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는 맥없는 보컬이라고.

변변한 테크닉조차 없다고.

방금 잠에서 깨어 부르는 것 같다고.

그렇게 조아라가 들려준 노래를 깎아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들은 이들은 하나 같이 느꼈다.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조아라의 노래는 끝없이 청춘이었다.

* * *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조아라는 절망적인 얼굴이었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어두워서, 그녀를 반겨주는 신아름이 걱정할 지경이었다.

“너 왜 그래?”

“……‘너 왜 그래’?”

“뭐 또 뭐. 또 뭔 지랄을 하려고.”

“밖에 사람들…….”

조아라가 꼭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윽고 그녀가 참고 있던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조용하잖아…….”

얼마나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으면 환호 하나 없이 박수만 쳤겠는가.

조아라는 무대를 마치는 순간 도망치듯이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더 있었다간 부끄러워서 미칠 것 같았기에.

“아, 그거.”

신아름이 픽 웃으면서 조아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다. 하지만 조아라가 빠르게 손을 쳐내서 그럴 수 없었다.

“뭔 언니처럼 굴어.”

“날카로워서 베이겠다 야. 조용한 건 다 신기해서 그런 거지.”

“신기해? 내가? 동물원 우리 안에 동물처럼?!”

“아니, 네 그런 보컬은 처음 들어 보니까.”

신아름도 처음 조아라가 어레인지한 ‘댄스 위드 미’를 들었을 때 놀랐었다.

조아라는 그룹의 곡에 잘 섞여들도록 투명한 보컬을 익혔었다. 깔끔하지만 별다른 특징이 보이지 않는, 개성을 죽이는 대신 어디에든 낄 수 있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게 조아라 본래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신기한 거야. 그래서 놀란 거고. 생각보다 훨씬 좋았으니까.”

“……진짜?”

“응. 뭣하면 콘서트 끝나고 트잇터에 공연 후기 검색해보든가.”

신아름이 조아라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이번엔 조아라도 거부하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보며, 리카가 백설하에게 말했다.

“오늘 아름이가 리더 같지 않아요? 무대 마칠 때마다 아름이가 막 위로해주는 거 기분 좋아요!”

“으, 응. 그러게.”

신아름은 오늘따라 멤버들을 유독 챙겼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따스한 조언이나 격려도 마음껏 해주었다.

백설하마저도 신아름의 격려에 위로받았으니 말 다 했다.

“아름이가 리더면 어땠을까 궁금해요!”

“……리카.”

“하이(네)?”

“자꾸 왜 그래? 내가 아름이한테 자격지심이라도 느낄까 봐?”

“에에, 아타시(저)는 그런 마음 전혀 없었어요! 나뭇잎이 흔들리지 않는데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면 흔들리는 건 나뭇잎이 아니라 쌤의 마음이에요!”

백설하가 요놈하고 겁을 주자 리카가 꺄르륵 웃으면서 도망갔다.

‘아름이는 무대 뒤에서도 노력하는 거야.’

콘서트에서는 혼자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다. 신아름은 멤버들과 소통하고 멘탈을 안정시켜주는 것도 콘서트의 일부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무대에만 집중하던 백설하로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아름이도 힘들 거야.’

그래, 이번엔 자신이 신아름을 격려해주자.

백설하가 다짐하며 신아름에게 다가갔….

“그럼 갔다 온다.”

신아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스테이지로 나갔다.

조아라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휴게실로 가려 몸을 돌렸을 때, 애매한 자세로 멈춰 있는 백설하를 발견했다.

“쌤 뭐 해요?”

“어? 아니…… 그, 아라야 무대 고생 많았지?”

“네, 뭐. 그럭저럭요. 저 휴게실 가 있을게요.”

“으응…….”

살짝 침울해진 백설하에게로 리카가 다가왔다.

“쌤은 존재만으로도 저희들한테 힘을 줘요! 모든 사람이 박 이사님처럼 말로 격려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쌤처럼 묵직하게 뿌리 박은 거목 같은 사람도 있는 거예요!”

“……응.”

그러고 보니, 신아름은 유독 말솜씨가 좋다.

‘박 이사님이랑 오래 지내서 그런 걸까?’

어쩌면, 신아름은 나중에 남자를 한 트럭 정도 말로만 홀리고 다닐지도 모르겠다.

* * *

“넌 어떻게 십 분마다 우냐?”

손혜빈이 희한한 꼴 다 보겠단 듯 웃었다.

성필은 눈가에 살짝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좋으니까. 애들 무대는 다 좋아.”

“아라 무대는 그렇게까진…….”

“당장 그 말 취소해!”

물론 조아라의 무대는 압도적이란 느낌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존재했다.

리카의 창조성이나 장하양의 의지처럼, 조아라에겐 용기가 돋보였다.

아이돌에겐 익숙하지 않은 침묵의 관객석을 바라보면서도, 조아라는 주눅 들지 않고 노래를 끝마쳤다.

또한 결과도 좋았다.

다들 조아라의 노래가 끝나곤 그녀의 바뀐 창법이나 어레인지한 ‘댄스 위드 미’에 대한 대화를 즐겁게 주고받았으니까.

‘역시 개성 없이 그냥 잘 부르는 것보다, 아라의 개성이 드러나는 쪽이 훨씬 좋구나.’

조아라가 연습하는 것을 보며 멤버들이 ‘아라쨩 아파?!’라거나, ‘아라야 감기 걸렸어?’라거나, ‘조아라 너 담배 피우냐?’라고 하긴 했지만.

결국엔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정제된 스타일을 확보해냈다.

‘전생 생각도 나고…….’

현재의 조아라가 전생보다 노래를 훨씬 더 잘 부르긴 하지만. 그녀의 노래를 듣다 보면 함께 노래방에 갔을 때가 떠오르기도 한다.

“알겠어, 취소할게. 당연히 아라 노래 좋지.”

손혜빈이 장난스레 웃으면서 넘기려던 때, 무대가 다시 밝아지며 익숙한 사운드가 퍼졌다.

성필과 손혜빈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했다.

“에이 씨이…….”

손혜빈이 부끄러운 듯 모자를 깊이 눌러 썼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동요가 퍼진다.

“이거 무슨 곡이야?”

“처음 듣는데.”

“소녀연맹 거 맞아?”

“커버 무대인가.”

그때 손혜빈 근처에서 어떤 남자가 말했다.

“이거 손혜빈 ‘크라운’이잖아. 몰라?”

“……아아! 크라운이구나!”

관객들의 반응이 확연하게 갈렸다.

20대 중반 이상은 오랜만에 손혜빈을 곡을 들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 이하는 어리둥절하여 주변의 분위기만 살폈다.

“손혜빈 그 사람 아니야? 옛날에 예능에 자주 나왔던 사람.”

“어, 맞아. 댄스 가수로 활동했었잖아.”

“그랬댔지.”

“소녀연맹 아이튜브에도 몇 번 나왔는데 몰라?”

“난 예능에서만 봤어. 음, 유명했어?”

“유명했지 당연히! 엄청 유명했어! 막 일본에도 가고 그랬어!”

“난 전문 예능인인 줄 알았는데.”

모자를 거의 코까지 닿을 정도로 깊이 눌러 쓴 손혜빈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래, 나 예능인이니까……. 제발 아무도 떠올리지 말아줘…….”

손혜빈의 ‘크라운’.

그녀가 초기 활동곡이며, 그녀의 흑역사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그것을 신아름이 커버한다.

[제가 커버 무대를 준비했어요! 손혜빈 선배님의 ‘크라운’입니다! 전혀 예상 못 하셨죠? 정말 특별히 준비했어요. 이 곡을…….]

신아름이 공손이 관객석을 가리켰다. 자연스레 그곳으로 이목이 쏠렸다.

[손혜빈 선배님…… 아니다. 손혜빈 이사님께 바칩니다!]

손혜빈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름아 내가 미안했다 그래…….”

* * *

콘서트 기획 기간.

“아름이는 Girl’s Craving에 개인곡을 안 넣어서 레퍼토리가 하나 부족하네. 설하는 ‘롱 포’ 기타 솔로로 하나 퉁 친다 쳐도. 아름이는 어떡할래?”

손혜빈이 물었다.

신아름은 왠지 모르게 뚱하니 손혜빈을 응시했다. 그때 성필이 신나서 손을 들었다.

“마이클 잭슨 댄저러스…….”

“정했어요.”

신아름이 씨익 웃으면서 손혜빈에게로 상체를 기울였다.

“‘크라운’으로 할래요.”

“응? 뭐? 뭘 해?”

손혜빈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 나오자 한껏 당황했다. 그럼에도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너무나 당황해서 표정을 바꿀 여유도 없는 것이었다.

“손 이사님 곡이요. 크라운.”

손혜빈이 곤란해하면 곤란해할수록 신아름의 미소는 더욱더 짙어졌다.

옛날에 손혜빈이 ‘너는 표현하고 싶은 게 없구나’라며, 성필의 앞에서 신아름을 꼽주었던 적이 있다.

그것을 신아름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걸로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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