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363화 (363/760)

363화

그림, 음악, 춤, 조각, 건축, 노래.

세상에는 많은 예술의 분야가 있으며, 그 예술을 표현하기 위한 포맷이 있다.

가장 최근에 창안된 예술적 포맷은 무엇일까?

뮤직비디오다.

음악, 노래, 춤, 영상을 조합한 새로운 포맷은 흔히 말하는 MTV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그 찬란한 시작을 함께한 위대한 아티스트가 있었다.

마이클 잭슨.

1983년의 ‘Beat it’은 대중음악사에서 커다란 상징성을 지니는 곡이었다.

히트한 건 당연하고, ‘Beat it‘은 세계 최초로 하나의 곡을 위해 창조된 전용 안무란 개념을 만들어냈다.

음악과 노래, 춤이 하나로 묶여 사고되기 시작했다.

춤과 노래를 동시에 숙련한 예술가, 댄스 가수의 탄생이었다.

그러한 현상을 바라보며, 미국의 한 남자가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에 말야.”

그 남자는 사뭇 진지한 투로 맞은편의 친구에게 말했다.

“밴드가 있어. 다 잘생기고,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고, 팬서비스 정신도 투철하지. 잘생긴 애들이 무대에서 춤추면서 노래 부르고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살갑게 대하는 거야. 뮤직비디오도 기막히게 뽑고. 어때?”

친구는 아연하게 답했다.

“그런 게 어딨어? 애초에 그런 게 존재할 수는 있고?”

남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내가 바라던 답이야.”

미국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모리스 스타.

그는 그의 생각대로 잘생긴 애들을 몇 명 모아 춤과 노래를 연습시켰다.

잘생긴 애들은 처음 그에게 불려올 때 이렇게 물었다.

“우리 뭐, 스쿠터 하나 살 정도로는 돈 벌 수 있을까요?”

스쿠터 하나 정도, 이왕이면 오토바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10대의 젊은이들.

그런 그들은 아메리카 뮤직 어워드에서 수상하고 월드 투어를 밥 먹듯이 돌며 빌보드 차트를 제집 드나들 듯이 다녔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마다 수만 명이 그들을 보기 위해 몰렸다.

세상은 그들을 아이돌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서구 사회의 아이돌 열풍은 20년을 가지 못했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다시 과거와 같은 성세를 이루진 못했다.

장르를 발전시킬 스타가 부재했다.

소수의 성공한 아이돌 밴드들이 아이돌이란 포맷의 생명선을 연장할 뿐이었다.

그런 시기, 아시아에서 한 남자가 생각했다.

정호환이 친구인 남홍범에게 말했다.

“보이밴드, 걸그룹들 있잖아.”

정호환이 사뭇 진지한 투로 말했다.

“그걸 좀 어떻게 바꿔서 내놓을 수 없나?”

“일본에 가서 또 뭐 보고 왔냐? 친일파 새끼.”

“아니…….”

정호환은 스스로 이 이야기를 입 밖에 내면서도 확신이 없었다.

“춤을 더 어렵고 화려하게 하고, 노래도 막 고음 엄청 들어가고, 요정 같은 애들이 최신 딴쓰도 추고 그러는 거지.”

“최신 댄스?”

“힙합 말야.”

“그걸 어떻게 해. 뭔 너는 미래의 마이클 잭슨을 알아보는 눈이라도 있어? 그게 가능한 애들로만 몇 명을 모은다고?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연습시켜야지.”

“연습으로 되겠냐?”

“그니까 되게 어릴 때부터 시켜야지.”

“에휴, 말을 말자.”

말없이 국밥을 퍼먹던 남홍범이 큭큭 웃었다. 그는 장난스레 말했다.

“흰색 원피스 입히고 힙합이라도 추게 하게? 그리고 노래는 고음 발라드로?”

정호환이 손가락을 튕겼다.

“기가 막히네.”

“……???”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세계가 ’중국과 일본 사이의 어디’로만 인식하던 나라에서, 아이돌이란 불꽃이 살아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불꽃은 살아나는 것을 넘어 세계를 뒤엎을 기세로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아.”

소녀연맹의 오프닝 메들리를 보던 정호환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심었던 씨앗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거목으로 자라난 광경이다.

고작 첫 번째 곡이다.

아니, 고작 첫 번째 곡이기에 관객들은 이토록 열띤 환호를 바칠 수 있는 것이리라.

수천 명의 팬이 무대 위의 소녀연맹을 향해 광적인 찬사를 보낸다. 그녀들의 손짓 한 번, 걸음 한 번마다 좌중이 휩쓸린다.

영상에 익숙한 사람들은 실물이 보이는 아우라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아…….”

관객석을 휩쓰는 열광적인 흥분 상태에 어울리지 않게, 정호환은 자리에 앉아 무의식적인 감탄사만 뱉었다.

그 감탄은 소녀연맹을 향한 것이기도 하면서, 이런 풍경을 만들어낸 한국에 대한 감탄이기도 했다.

20년 전엔 상상도 못 했던 풍경이다.

‘드디어.’

한국은 강박증이 걸린 나라다.

강박적으로 선진국을 따라하려 했다.

그건 문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로부터 어설프게 미국의 팝을 따라 해왔고, 필사적으로 미국의 팝을 따라잡으려 했던 흉내쟁이들의 나라.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그랬던 한국의 음악은 기술적으로 팝에 필적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어설픈 토양에서 영양분을 충분하게 먹고 자라지도 못한 이들이 이런 성과를 냈다.

프로듀서 박성필, 작곡가 정지음.

그리고 그 뒤를 받쳐준 수많은 백오피스의 조력자들.

정호환은 그들을 향해 박수를 쳐주었다.

이렇게나 훌륭하게 자라주어서 고맙다고.

* * *

‘아니’의 전주를 듣자마자 이선주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처음 ‘아니’를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SNS에서 우연히 찾았던 한 장의 사진. 그 사진은 장하양이 연습실에서 앉아 쉬고 있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 사진만으로 이선주는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장하양을, 소녀연맹을 응원하기로 결심했었다.

소녀연맹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그렇듯 아주 사소했었다.

‘예쁘니까.’

그렇게 예쁜 언니들이 ‘아니’를 들고나왔다.

중소기획사이니만큼 곡과 안무 퀄리티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스스로가 ‘인민’인 게 자랑스러워질 정도로, 이선주는 소녀연맹을 사랑했다.

‘내가 미쳤지…….’

이선주가 울면서 응원봉을 흔들었다.

‘연습생 때부터 좋아한 언니들 놔두고 케이어스한테 한눈 팔고…….’

눈물 때문에 무대가 잘 보이지 않았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선주는 그녀들이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소녀연맹은 항상 그래왔다.

이선주가 기쁘든 슬프든 화나든 행복하든, 그 어느 때곤 항상 같은 곳에서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이선주가 한눈 팔았다가 다시 보아도 익숙한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따스하게 말해준다.

‘다시 왔구나? 잘 왔어.’

‘아니’의 하이라이트 파트가 펼쳐졌다.

멤버들이 번갈아 중앙을 차지하고 자신만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것이다.

리카가 중앙에 서서 원곡과 다른 퍼포먼스를 보였다. 그녀는 씨익 웃더니, 팬들에게 달려들 듯 팔을 펼치고 ‘쪽’하며 키스를 날렸다.

이선주는 심장이 부서질 듯했다.

리카가 예쁘고 귀엽고 너무 사랑스럽기도 했고, 그녀가 데뷔 초창기 때 뷔라이브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타시(저)의 팬이 된 걸 자랑스럽게 해줄게요!’

리카는 다시 묻는 듯했다.

‘여러분 덕에 여기 섰어요. 고마워요! 자 그럼, 자랑스럽나요?’

이선주는 눈물을 거칠게 닦고 환호를 보냄으로써 답했다.

‘자랑스러워요. 제가 당신의 팬인 게, 너무 자랑스러워요.’

싱글 1집 초동판매량 1만 장.

미니 1집 앨범 초동판매량 2만 장.

정규 1집 앨범 사전 예약 판매량 12만 장.

뮤직비디오 ‘아니’ 조회 수 7,000만 돌파.

HPT 뮤직 어워드 ‘롱 포’ 본상 수상.

그리고 데뷔 2년 차.

‘당신의 팬이라서 행복해요…….’

올림픽홀 3일 연속 공연.

총관객 수 약 1만 명.

* * *

‘아니’가 끝나자마자 곡은 ‘팅글’로 바뀌었다. 잠깐의 휴식도 없이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우어, 우와, 우와아, 우워…….”

유용태는 계속 그런 감탄사만 뱉고 있었다.

거금을 주고 구매한 응원봉을 흔들 생각도 못 했다. 가끔 ‘응원법 따라 해야 하는데’란 사실이 떠오르곤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무시했다.

지금은 온전히 감상만 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러지 않으면 실례일 듯했다.

“우와…….”

‘팅글’ 퍼포먼스는 소녀연맹이 보여주었던 색깔과 많이 달랐다.

유용태는 일본판 ‘팅글’ 뮤직비디오와 퍼포먼스 연상까지 보았었고, 은근히 그걸 마음에 안 들어 하기도 했었다.

‘너무 소녀연맹 색이랑 다른데. 일본 데뷔라서 이런 스타일로 간 건가?’

소녀연맹에게 관능미라니?

아예 사랑 자체가 주제였던 ‘롱 포’보다는 덜 노골적이지만, ‘팅글’은 왠지 대놓고 유혹하는 느낌이 들어서 별로였다.

분명 가사는 시작의 설렘과 용기를 표현하고 있건만, 달라붙는 원피스 드레스를 입고 유혹하는 듯한 안무를 추고 있으니 부조리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내가 알던 소녀연맹이 아니야…… 라는 생각으로 ‘팅글’을 재생목록에도 넣지 않았던 그지만.

“우워, 으어, 어어…….”

‘팅글’을 직접 보니 그런 생각이 전부 달아났다.

고백하건대, 유용태는 ‘팅글’을 보자마자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일었다.

회사 동료에게 아이돌을 꽤 본격적으로 덕질한단 사실이 알려지고, 어느 순간 팀원들도 알게 됐다.

그때 유용태는 이렇게 말했었다.

‘순수하게 응원하는 거예요! 어린 애들이 열심이잖아요!’

그런데 ‘팅글’을 처음 보고 든 생각은, 아니, 그 감정은 부끄럽지만 남자로서의 만족감이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설렘을 지니고 함께 가자고 말하며 유려한 몸짓을 펼치는 게, 유용태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두 번째로 감탄한 건, 논리적인 이유를 댈 수 없었다.

유용태는 소녀연맹의 퍼포먼스에 그저 감탄했다.

새로운 시작을 향해 수줍게 뻗은 손끝에, 도발적으로 다가오는 듯하다가 물러나는 아슬아슬함에, 순수한 동시에 악마 같은 이중적인 유혹에.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미묘함으로, 유용태는 매혹당했다.

그리고 유용태는 옛날의 자신이 어째서 ‘팅글’을 마음에 안 들어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필요했어.’

소녀연맹은 이 복잡함을 표현할 기량이, 정확하게는 시간이 부족했었다.

인간으로서의 경험이 필요했었다.

그녀들에게 ‘팅글’은 빨랐다. 표현해야만 하는 감정과 굴곡이 많은 곡이다. 그녀들이 가진 것 이상을 바라는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고작 몇 개월 만에…….’

소녀연맹은 소녀와 여자를 섞어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그 선을 타는 아찔함이 유용태의 심장을 울리고 있었다.

소녀연맹의 ‘팅글’은 넘칠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합리적인 계산 하에 펼쳐지는 퍼포먼스가 담지 못할, 폭발적인 아름다움의 격류가 넘쳐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그녀들의 노래와 춤, 퍼포먼스는 도발적이고 과하며 정해진 틀을 벗어나 있었다.

그렇다고 눈살이 찌푸려지지는 않는다.

그게 당연하다.

그녀들이 표현하는 것 자체가 넘쳐흐름, 초과, 젊음이었으니까.

미숙하게만 순수했던 때를 넘어서, 그녀들은 젊음을 온몸에서 뿜어내고 있었다.

“와…….”

유용태는 홀린 듯, 아니.

홀려서 백설하(25세)를 바라보았다.

백설하는 ‘아니’에 이은 ‘팅글’ 퍼포먼스 때문에 이마와 목에 땀이 맺혀 있었다.

청춘의 노력을 형상화한 듯한 모습이다. 결승점만을 바라보고 뼈를 깎는 노력을 감내하는 운동선수처럼.

유용태는 춤에 표현력이란, 측정할 수 있단 뉘앙스의 단어를 갖다 붙이는 게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제 알겠어.’

소녀연맹의 표현력은 성장했음이 명백했다.

“오빠 아까부터 왜 이상한 신음 내요?”

“감탄인데?”

이선주는 잠깐 이상하단 듯 바라보았지만, 이내 수긍하곤 무대에 집중했다.

엔딩 포즈를 취한 채 가쁘게 숨을 고르는 소녀연맹. 그녀들 중에서 유용태는 신아름에게 집중했다.

‘아름아.’

지하철 광고판에서 보았을 때는 정말 어린애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저토록 훌쩍 컸다.

유용태는 수천 명의 환호 속에서, 최애인 신아름을 향한 응원을 섞어 보냈다.

나이가 쌓여 어른이 되는 것처럼, 신아름은 지난 2년 동안 실력 또한 쌓아왔던 것이다.

“어?”

팬으로서 신아름을 응원한 세월을 반추하고 있던 유용태가 흠칫했다.

그의 귀로 익숙한 멜로디가 들어와 박혔다.

심장을 강타하는 베이스와 찢어질 듯한 전자음. 그에 유용태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또, 또 해?”

관객들이 함성을 무대로 내리꽂듯이 던졌다.

그들은 좋아하는 동시에 유용태처럼 걱정하기도 했다.

퍼포먼스 난이도가 상당하다는 ‘아니’에서 곧바로 표현력이 극대화된 ‘팅글’을 소화하고, 즉시 또 무대에 돌입하다니?

“선주야 이거 맞아? 세 곡이나 연달아 하면 뭐 탈진하고 그런 거 아니야? 할 수 있…….”

그때 유용태의 손에 들린 응원봉이 심장박동과 같은 붉은 빛을 규칙적으로 뿜어냈다.

* * *

신아름의 망막에 붉은빛이 규칙적으로 박혀 들어왔다.

‘고작 두 곡 했을 뿐인데.’

신아름은 필사적으로 호흡을 참았다.

손끝 하나 움직이기 힘들 만큼이나 힘들다.

몸을 가누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그 눈동자엔 자그마한 피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눈은 3,000명의 열망을 받아 점멸을 거듭하는 변광성이었다. 수천 명의 열정이 그녀의 눈에서 고통과 피로를 지우고 거대한 별빛만을 박아 넣었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힘들지?’

봄볕을 맞아 찾아오는 나른한, 기분 좋은 피로감.

신아름은 그것을 각성제라고 생각했다.

혈관 곳곳으로 행복한 고통이 질주한다.

‘체력을 아껴야 하는데.’

관객석 통로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십 명의 댄서들이 일제히 일어나는 게 보인다.

그들이 든 붉은 깃발이 바람 한 점 없는 실내에서도 아름답게 나부낀다.

‘……아낀다고?’

수천 개의 응원봉, 횃불이 발하는 불빛이 더욱더 강해진다.

마치 불꽃이 말을 거는 듯하다.

우웅, 우웅, 우웅, 아름답기 그지없는 빛의 파동.

신아름의 심장이 그 빛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아니.’

신아름이 쪼그려 앉은 자세에서 발을 앞으로 뻗어 땅을 찍었다.

그것을 신호로 받아들인 멤버들이 퍼뜩 엔딩 포즈를 풀고 다음 무대를 준비한다.

다들 신아름과 상태가 비슷했다.

명백히 리허설보다 힘들어서, 당황하고,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쏟아낸 뒤의 황홀한 공허를 느끼고 있었다.

안 된다.

아직은.

‘아직 그래선 안 돼.’

만족감을 느낄 단계가 아니잖아.

힘들다.

하지만 다음 무대를 위해 체력을 아낀다는, 그런 적당적당한 계산에 빠져 있을 수는 없다.

‘한계까지 쥐어 짜낸다.’

더 나아갈 수 있어?

신아름은 굳이 묻지 않았다.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기에.

* * *

심장이 맥동하는 듯한 박자로 응원봉이 빛을 뿜어낸다.

그에 맞춰 밴드 세션의 베이스와 드럼이 쿵.

쿵.

쿵.

쿵.

곧이어 관객들도 발을 구름으로써 쿵.

쿵.

쿵.

쿵.

쿵.

관객석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십 명의 백댄서들이 붉은 깃발을 꼬나 쥐고 무대를 향해 질주했다.

수십 명이 동시에 일렬로 돌입하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군사 행동과 같은 신속함이다.

댄서들이 무대라는 고지를 점령하고 승리를 예언하듯 깃발을 흔들었다.

암전된 무대 위에서 붉은 조명이 섬광처럼 떨어졌다. 포그머신이 짙은 수증기를 뿜어서 소녀연맹의 형체를 감추었다.

붉은 안개는 조명을 받아 피처럼 붉었다.

“할 수 있냐고요?”

이선주가 흥분을 가득 담아 입을 열었다.

동시에 손에 들린 응원봉을 유용태에게 보였다. 그것이 뿜어내는 빛이 증거라도 되는 듯 자랑스럽게.

“소련이들이 할 수 있다는데요?”

응원봉의 박동이 점점 더 빨라진다.

베이스와 드럼의 박자도 빨라진다.

관객들의 발구름이, 흥분이, 기대가, 모든 게 휘몰아치면서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댄서들이 깃발을 바닥에 쿵 찍었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이 소녀연맹을 숨기고 있던 안개를 전부 밀어냈다.

그 안에서 소녀연맹이 몸을 일으켰다.

수십 개의 깃발 앞에 투쟁을 약속한 소녀들이 있었다.

재킷을 벗은 그녀들은 민소매 블라우스, 몸의 라인을 전부 드러내는 검은 슬랙스 차림이었다.

그것은 아이돌로서의 전투복이었다.

귀찮은 것들은 전부 떼어내고 오로지 몸을 움직이기 위한 복장.

중앙에 선 백설하가 워커로 바닥을 쾅 밟았다. 그에 화답하여 댄서들이 좌우로 쭉 갈라졌다.

“저, 정말 한다…….”

속절없이 반복되던 곡의 전주가 드디어 더 앞으로 나아간다.

“진짜 한다고…….”

유용태는 벌써부터 심장이 빠르게 뛰어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젠 ‘할 수 있나’라는 물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러했고, 다들 그 사실을 알았다.

그들의 미칠 듯이 빠른 발구름이 그것을 증명했다.

베이스, 드럼, 발구름, 그리고 심장.

격정적인 박자가 팬들의 피를 끓게 했다.

그 끝을 고하듯 소녀연맹 멤버들이 동시에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팬들도 응원봉을 앞으로 뻗었다.

응원봉의 빛이 피보다 더 붉은색으로 점멸을 거듭했다.

공연장 전체가.

[아라베스크]

불꽃에 잠겼다.

불타는 도시의 거리를 보여주던 스크린이 꺼졌다. 몇 초 후 다시 켜진 스크린을 본 관객들이 깜짝 놀랐다.

스크린에 떠오른 건 소녀연맹 멤버들의 확대샷이 아니었다.

관객석이다.

수천 개의 횃불이 솟아오른 관객석을 배경으로 소녀연맹이 서 있다. 군중을 거느리고 최전선에 선 혁명가처럼.

[간다]

백설하가 읊조리자 소녀연맹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들만이 아닌, 뒤에 선 수천 명의 인민들과 함께.

연맹은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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