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360화 (360/760)

360화

가로 엔터의 남자 연습생, 김사무엘은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참이었다.

“콘서트 푯값이 10만……?”

“어, 보통 그러지 않나?”

김사무엘이 어버버하는 것과 달리, 옆에 앉은 다른 연습생은 태연하게 물을 마실 뿐이었다.

‘10만 원이라고?’

최저 시급으로 십수 시간 일해야 하는 금액이다. 그런 금액으로 산 표는, 약 2시간의 유흥만을 제공한다.

아이돌을 목표로 하고 있는 김사무엘이라지만, 너무나 수지타산이 안 맞는 거래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고작해야 콘서트 푯값이 3만 원이면 비싼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큰일이네…….”

“뭐가?”

김사무엘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연습에 집중했다.

밤 10시. 김사무엘은 회사에서 나와 보육원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도 심란한 마음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10만 원은…… 너무 비싸…….’

얼마 전, 김마리아가 넌지시 소녀연맹이 콘서트를 연단 소식을 알려왔었다.

콘서트에 가고 싶단 뜻일 것이다. 하지만 김마리아는 오빠의 사정이 어떤지 뻔히 아는 터라, 정말 오빠가 표를 구해오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혹시나 일어날 기적을 기대하며, 어린아이와 같은 무구함으로 던져본 말에 불과했다.

김사무엘은 ‘그래 3만 원 정도라면……’이라는 생각으로 푯값을 알아봤는데, 세상에나. 푯값은 10만 원 이상일 거라고 한다.

“오빠.”

보육원으로 돌아오자마자 김마리아가 반겨주었다. 김사무엘은 피곤한 눈을 억지로 뜨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을 폭 안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가 말했다.

“마리아, 그러고 보니, 요즘 옷을 통 못 샀네.”

“옷? 아, 괜찮아. 교복 있잖아.”

“이번 주말에 사러 가자.”

갑자기 등장한 선물에 김마리아는 기뻐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김사무엘의 마음은 여전히 어두울 뿐이었다.

동생이 좋아하는 걸 사주지 못해서, 그에 대한 속죄로 표보다 훨씬 싼 옷이나 사주려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돈이 있으면…….’

동생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사줄 수 있을 텐데.

그날 김사무엘은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대신, 그의 머리엔 홍규헌과 만났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돈을 모아?’

연습생이 되라는 홍규헌의 제안에, 김사무엘은 그런 이유를 들며 거부했었다.

동생은 평범하게 살게 해주고 싶다면서.

그에 홍규헌이 말했다.

‘그럼, 그 돈 내가 준다고 하면 연습생으로 오나?’

김사무엘은 두 눈이 튀어나오고 숨도 잘 안 쉬어지고 가슴이 너무 힘차게 뛰어서 실신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홍규헌이 말했었다.

‘공짜는 아니야. 네가 데뷔조로 뽑힌다는 가정하에, 만약 아이돌이 돼서 실패하면, 그때까지 네가 들인 노력을 시간으로 계산해서 보상할게.’

이건 성필이 장하양에게 했던 제안과 완전히 같은 것이었다. 김사무엘이 알 도리는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효과는 말도 안 되게 좋았다.

김사무엘은 성필의 제안을 들었던 장하양처럼 울…… 지는 않았다.

대신 눈동자에 황금빛과 천장 높이 쌓인 돈이 틀어박히고, 무의식적으로 ‘네’라고 답했었다.

‘2, 3년 동안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 연습하고 성과를 내라고? 데뷔조로 뽑혀? 아니, 그런 걸 배우는데 내가 돈을 내는 게 아니라 회사가 내준다고?’

노래와 춤, 연기를 아이돌이 못 됐을 때 어디다 쓸지는 모르겠지만. 김사무엘은 그 제안이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데뷔조로 뽑히고 아이돌 데뷔해서 좋은 성적을 못 거두면 돈까지 준다잖은가.

‘이건 해야 한다.’

김사무엘의 마음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앞에 앉은 홍규헌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다시 다짐했다.

‘설령 나한테 좀 이상한 걸…… 시키더라도, 해야 해.’

마리아, 기다려. 오빠가 돈 많이 벌어갈게. 넌 걱정하지 말고 네 행복을 찾으렴.

김사무엘이 회상을 끝내자, 심란했던 마음도 진정되어 잠이 들 수 있었다.

주말, 남매는 함께 외출했다.

“오빠 여기 가자.”

특이하게도, 김마리아는 가고픈 가게를 이미 골라놨었다.

상당히 번화가에 있던 터라 김사무엘은 미리 주의를 주었다.

“마리아, 가격은…….”

“딱 2만 원만 살게!”

“……3만 원 정도 써도 돼.”

둘은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어바이비 서울 지점이었다.

“어서 오세요 어바이비입니다.”

들어오자마자, 넓은 1층 여기저기에 포진한 점원들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김사무엘과 김마리아는 익숙지 않은 환대에 움찔했다. 그러던 것도 잠시, 김마리아는 전투적인 눈빛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김사무엘은 천천히 동생의 뒤만 따랐다.

그런데 동생의 낌새가 이상했다. 그녀는 옷 생김새를 보기보다 가격표만을 확인한 것이다.

“마리아, 천천히 봐도 돼.”

“으응.”

김마리아는 대강대강 대답하고, 가게에 들어온 지 10분 만에 옷을 골랐다.

‘20% 할인’이란 딱지가 붙은 20,900원짜리 와플 니트였다.

“안 입어봐도 돼?”

“어? 아, 입어볼게!”

김마리아가 놀라운 속도로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사이즈는 살짝 컸지만, 김마리아가 성장기란 점을 감안하면 괜찮을 것이었다.

“이걸로 할래.”

“더 안 봐도 돼?”

김사무엘은 신중하지 못한 소비 같아서, 몇 번이나 김마리아에게 옷을 더 둘러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면서 ‘이게 마음에 들어’란 말만 반복했다.

결국 김사무엘은 와플 니트를 들고 계산대로 갔다.

“오빠 고마워.”

뒤에서 동생의 감사가 들려오자 김사무엘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올라갔다.

지갑에서 2만 원을 꺼내고 계산대에 올라간 와플 니트를 바라보길 약 20초.

직원이 움직이지 않는다.

김사무엘은 자기가 뭔가 잘못했나 싶어서 시선을 올렸더니, 여직원이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산이요.”

“아, 네, 네.”

여직원은 ‘계산이요’란 말이 무슨 ‘사랑해요’란 말이라도 되는 듯, 얼굴을 붉히면서 바쁘게 손을 놀렸다.

그러면서 흘끔흘끔 김사무엘을 쳐다보았다.

김사무엘은 시선만 살짝 내렸다.

“영수증 버려드릴까요?”

“아뇨. 넣어주세요.”

“네, 네. 어, 저…….”

직원이 뭔가 말하려던 순간, 김마리아가 까치발을 세우며 계산대로 다가왔다.

“저기요, 그거, 응모요…….”

“네? 아, 아아, 응모요.”

직원은 작은 종이와 볼펜을 내밀었다.

“저쪽으로 가셔서 작성해주세요.”

아쉬운 듯 바라보는 직원의 시선을 뒤로하고, 김사무엘과 김마리아는 계산대 구석으로 향했다.

김마리아는 펜을 세우고 종이를 조금씩 채워나갔다. 그녀의 손이 벌벌 떨렸다.

“마리아, 그게 뭐야? 마일리지 적립 그런 거야?”

동생이 참으로 지혜롭게 자랐구나 생각하던 차, 김마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2만 원 이상 사면 소녀연맹 콘서트 응모할 수 있어. 이벤트 해.”

“……어?”

“응모해서 당첨되면 표 받을 수 있어…….”

김사무엘은 현재 자신의 기분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동생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도 몰랐다.

김마리아는 펜을 바들바들 떨면서 종이에 한 글자씩 채워나갔다. 팔만대장경을 판각했던 승들처럼, 글자 하나하나에 정성과 마음을 새겼다.

툭, 뒤에서 무언가 딱딱한 걸 놓는 소리가 났다. 김사무엘이 보니, 직원이 계산대 위에 투명한 응모함을 두었다.

그 응모함 안에는 벌써 수많은 응모권이 쌓여 있었다.

김마리아의 응모권은 저 수십 수백 장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오, 오빠 이러면 되는 거지?”

김사무엘은 종이를 받아 쭉 읽어 내려갔다.

잘못 쓴 부분은 없었다.

김사무엘이 종이 너머, 애절한 얼굴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김사무엘은 자신의 기분이 어떤지 표현할 수 있었다.

억장이 무너진다.

‘10만 원은 큰돈이지.’

그 돈은 미래의 김마리아를 위해 쓰일 것이다.

등록금의 일부가 될 수도 있고.

대학 친구들과 놀 때 쓸 수도 있고.

자취할 때의 자금이나 생활비가 될 것이다.

미래에 김마리아가 평범하고 더욱 행복하게 살기 위한 돈이다.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현재의 김마리아가 이토록 간절하게 바라는 게 있는데. 그깟 10만 원, 김사무엘이 더 열심히 해서 벌면 되는 건데.

“응, 다 됐어.”

오빠가 확인해주자 김마리아의 표정이 밝게 개었다. 김마리아는 신중한 태도로 응모함에 응모권을 넣고, 두 손바닥을 겹쳐 기도했다.

자신을 버린 부모에게 배운 유일한 것.

그건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었다.

김마리아는 자신을 버린 인간에게 배운 방법으로 행복을 염원했다.

그 곁에서, 김사무엘은 조용히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 * *

[안 고독한 소련방]

[‘장한하양’님이 ‘김사무엘’ ‘김마리아’ 님을 초대했습니다.]

[김사무엘: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김마리아: 안녕하세요!]

[아름아름다움: 환영합니다]

[김사무엘: 채현이 소개로 오게 됐습니다. 저는 소녀연맹 팬은 아니고요. 제 동생이 팬입니다.]

[장한하양: 그걸 왜 말함?]

[김마리아: 언니들 잘 부탁드려요!]

[아름아름다움: 저 28살 남자입니다.]

[장한하양: 사무엘 자꾸 갠톡하지 마 저 오빠 이상한 사람 아님]

[김사무엘: 내가 언제]

[아름아름다움: ㅎㅎ;]

[김마리아: 그럼 아름아름다움님 빼고 다 언니들이신 거죠?]

[백수현: 오우 퍽~~~~~]

[김마리아: ?????]

[김마리아: 포유2에 나오신 수현이랑 이름이 같으시네요 ㅋㅋㅋㅋㅋ]

[백수현: 예]

[케첩아님: 쟤 진짜 걔예요 ㅋㅋㅋㅋㅋㅋ]

[김마리아: ?????????????????????????]

[백수현: 오우 퍽~~~~~~]

[백수현: 사무엘 미안하다 욕 안 쓸게 톡 그만 보내라]

[장한하양: 그럼 본제로 들어갈게요. 안 고독한 소련방 이번 주제는]

[(소녀연맹 콘서트 홍보 포스터)]

[장한하양: 결국엔 이기는 티켓팅입니다!]

* * *

티켓팅 시간이 다가온다.

가로 엔터의 중역들은 회의실에 모여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약 한 시간이 남았다.

“박 이사, 다리 그만 떨어.”

홍규헌의 제지에도 성필은 몇 초간 다리를 더 떨다가, 못 참겠단 듯 벌떡 일어났다. 그는 회의실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정신 사나워 죽겠네.”

핸드폰으로 ASMR 영상을 보고 있던 손혜빈이 짜증스레 말했다. 모래를 주물럭거리는 영상이 손혜빈의 망막에 비추어 의미 없이 흘러갔다.

“매진될까?”

성필이 참고 또 참고 있던 질문을 꺼냈다.

갑자기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손혜빈이 핸드폰을 테이블에 팍 내려놓고 성필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성필은 지레짐작 겁먹고 온몸을 움츠렸다.

“그냥 물은 거잖아 물은 거!”

“……후우.”

손혜빈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 의미 없는 ASMR 영상 시청에 몰두했다.

그때 민경섭이 분위기를 풀려고 일부러 경쾌하게 말했다.

“형이 그러면 뭐가 돼요. 팬들만 부르고 싶다면서 초대권도 안 뿌렸으면서.”

공연기획사나 주최사는 미리 공연 수요를 조사하고, 좌석을 다 못 채울 것 같을 때 초대권을 뿌린다.

초대권을 남발하여 손해를 보는 게, 좌석이 덜 차는 것보다는 낫다는 계산이었다.

어떻게든 좌석을 채워서 성공한 공연으로 보여야만 하니까.

하지만 소녀연맹의 서울 콘서트는 그러지 않았다. 어바이비와의 협력을 고려하여, 그쪽에만 이벤트를 위한 약간의 초대권을 배부했을 뿐이다.

“그래도, 믿음이 있으니까 그런 거죠?”

민경섭의 물음은 모두의 시선을 성필에게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성필은 진중한 얼굴로 테이블을 꽉 붙잡았다.

“……형?”

“모르겠어! 그걸 알면 내가 신이지!”

“…….”

“어, 어쩌지? 막 공연장이 한 1/3쯤 비어서 애들이 그걸 보면! 아아, 멘탈 다 깨질 거야! 어쩌지?”

“형 멘탈이나 추슬러요.”

중소 기획사의 아이돌이 수천 석 규모의 공연장을 매진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앨범 판매량과는 또 다른 싸움이다. 앨범 정도는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으로 주문할 수 있지만, 콘서트는 시간과 거금을 들여야만 한다.

즉, 팬덤의 충성도가 보장되어야 한단 뜻이다.

소녀연맹은 한국에서 그만한 충성도를 확보했는가?

‘앨범을 산 100명 중의 한 명이 콘서트를 올 만한 충성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니, 그건 너무 타이트한 추측이다.

앨범을 10만 장 팔더라도 고작 1천 명 동원할 수 있단 뜻이니까.

모르겠다.

하나도 모르겠다.

“그, 그래도 말야. 3,000석은…… 매진시킬 수 있지 않을까? 며칠 걸리더라도…….”

텔레비전에 나오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가수라도, 수천 석 규모 공연장을 매진시키는 것은 어렵다.

아이돌에게 없는 이점까지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대중들은 일반 가수의 공연이라면 굳이 팬이 아니라도 ‘가볼까?’하는 생각으로 티켓을 사곤 한다.

하지만 아이돌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오직 팬덤에만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해외 팬이 많더라도, 정규 앨범 총판이 지금까지 거의 20만 장 찍을 기세잖아! 그만큼 팔았으면 3,000석이야…….”

“에이 씨 더는 못 듣겠다.”

손혜빈이 물리력으로 성필을 진정시켰다.

성필은 차라리 그게 고마웠다. 가만히 있다간 정말 정신이 나갈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티켓팅 시간은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다가왔다.

* * *

“나 참, 어처구니가 없네.”

놀라운 사실, 1팀장은 친구의 쇼핑몰 창업에 함께하지 않았다.

그는 십수 년의 매니저 생활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KS 엔터에 남기로 했다. 그리고 또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했다.

“헤헤, 부탁드림미다.”

1팀장이 만난 역대 최악의 적, 진저가 애교 부리면서 말했다.

그 뒤엔 다른 케이어스 멤버들도 있었다. 에리카가 말하길, 진저만 보내기 양심에 찔렸다던가.

그렇다기엔 김민주와 진소유는 뚱한 얼굴이긴 했다.

“웃어.”

에리카가 말하자 김민주와 진소유는 뚱한 표정을 천천히 없앴다. 에리카의 명령대로 웃지는 않았는데, 자존심을 지키는 듯했다.

“하아, 뭐, 그래. 해줄게.”

“감사함미다!”

진저가 춤이라도 출 기세로 좋아했다.

그녀들의 부탁은 이러했다. 매니저팀이 소녀연맹 콘서트 티켓팅을 도와달라고.

1팀장의 지시에 따라 한가한 매니저들이 공연 예매 사이트에 접속했다. 또한 핸드폰도 옆에 두고 중복 예매를 준비했다.

“근데 너희가 해도 어떻게든 될걸? 뭐, 좋은 자리야 못 구하겠지만.”

1팀장은 무미건조한 얼굴로 예매 사이트에 접속했다.

“걸그룹 콘서트는 매진이 드물어. 대형 기획사도 아니고, 첫 콘서트면 더 그렇고.”

“중앙 C열로 부탁드림미다!”

“그건 좀 힘든데.”

아이돌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곳을 노리는 이들만 수십에서 수백 명일 것이었다.

“좋은 자리는 모르겠어도, 표는 무조건 얻어줄게.”

1팀장은 공연 예매 시간 사이트에 접속하여 정확한 시간을 쟀다.

20분 정도 남았다.

새로고침을 몇 번 하니, 아직 사이트가 쌩쌩하게 작동했다. 접속한 사람이 그다지 없단 나름의 증명이었다.

‘어쩌다가 내가 다른 회사 그룹 티켓팅을 하고 있냐.’

1팀장은 자조했지만, 내키지 않는 건 아니었다. 기다리는 동안 그는 케이어스 멤버들과 가벼운 담소를 떨었다.

다들 긴장은 없었다.

* * *

소녀연맹 멤버들이 연습실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핸드폰만 바라보았다.

10분 후에 티켓팅이 시작된다.

“그러니까아…….”

리카가 다시 티켓팅 순서를 외웠다.

“시간이랑 좌석을 찍는 거죠?”

“응. 여긴 결제가 나중이니까, 일단 자리를 먼저 찍는 거에 집중해.”

소녀연맹은 케이어스 멤버들에게 보낼 도전장, 티켓을 얻으려고 준비 중이었다. 참고로 리카는 정호환에게 보내기로 결심했다.

“뭐, 많이 올까요?”

조아라가 심드렁히 말했다.

많이 오든 안 오든 상관없단 태도였지만, 내심 그렇게까지 태평한 건 아니었다. 불안을 숨기고 있을 뿐이었다.

“아라쨩 정신 차려! 어제 라이브에서 인민이들이 다 콘서트 온댔단 말야! 우리 표 못 얻을지도 몰라!”

“와, 몇천 명이 온다고 했다고? 뭐 1분 만에 매진되겠네.”

“그러니까 정신 차려야 해!”

“너 속은 거야.”

“손나(그런)!”

상식적으로 리카의 라이브 방송에 찾아온 인간들이 전부 콘서트에 올 리 없지 않은가.

아마 그중에서 수십 명, 많이 쳐줘 봐야 이삼백 명 정도가 오겠지.

“인민이들은 아타시(나)를 속이지 않아!”

그때 리카의 뇌리로 뷔라이브를 하면서 겪은 온갖 거짓말이 떠올랐다.

뒤에 귀신 있는 거 아니에요?

창문 밖에서 누가 지켜보는데?

방금 뜬 설하 열애설 기사 봤어요?

“아, 안 속, 인민이들은, 나 안 속…….”

“고장 났네.”

조아라는 턱을 괴고 여전히 심드렁한 눈빛으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3분 남았네.”

신아름이 그리 말하자 드디어 긴장감다운 긴장감이 찾아왔다.

처음부터 티켓을 얻을 생각으로 활활 불타던 리카를 제외하고, 다들 핸드폰에 신경을 집중했다.

1분 만에 매진된다는, 그런 신화적인 상황을 기대하진 않았다. 만약 매진되더라도 몇 시간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그럼 그다지 긴장하거나 공들일 필요는 없다.

“김민주 걔 자리는…….”

신아름은 제일 구석 자리를 골랐다.

콘서트에 오더라도 멤버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한 곳이었다.

신아름은 킥킥 웃다가, 살짝 더 좋은 자리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쯤이면 수월하게 티켓팅 할 거고, 김민주도 그럭저럭 만족하겠지.’

……아니.

조금 더 무대에 가까운 데로 고를까?

신아름의 손가락이 살짝 더 움직였다.

‘여기로 하자.’

관객석의 정중앙이라 할 만한 장소였다.

적당히 가깝기도 하고 적당히 멀기도 한 좌석이다.

“1분.”

장하양이 결연하게 말했다.

그녀는 바닥에 핸드폰을 두고 요가의 차일드 포즈를 취한 채였다.

어찌나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는지 이마가 액정에 맞닿을 듯했다.

“이, 이십 초.”

백설하가 긴장하여 말을 더듬었다.

신아름이 픽 웃으면서 말했다.

“쌤 좀 진정해요.”

“으, 응?”

“어디든 얻을 순 있을 거라니까요. 그냥 여기저기 눌러보다가 안 되면 구석이라도 얻으면 되고요.”

“그, 그럴까?”

“네. 봐요, 이렇게.”

신아름이 좌석을 톡 눌렀다.

“이러면…… 어?”

신아름은 당황하다가 재빨리 다른 좌석을 눌렀다.

핸드폰 액정을 두드리는 소리가 연습실을 가득 메웠다. 다들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약 1분이 지나서, 다들 황망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너희들도…… 이래?”

백설하가 핸드폰을 보였다.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 * *

“말도 안 돼.”

1팀장이 읊조렸다.

8명의 사람들이, 케이어스까지 포함하여 12명이나 티켓팅에 도전했다.

그런데 한 명도.

단 한 명도.

“‘이선좌’밖에 안 떴어……?”

반겨주는 건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라는 글자뿐이었다.

빈 좌석을 표현하는 푸른색 원, 흔히 청포도라고 불리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전부 사라졌다.

이제 보이는 건 매진됐음을 알리는 거무튀튀한 색뿐이었다.

“다, 다 실패했어? 전부 다?”

매니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1팀장은 뻣뻣한 목을 돌려 케이어스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진저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하, 할 수 있다고 했잖슴미까…….”

“…….”

1팀장은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팀원들은 진저를 울상 짓게 한 팀장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1팀장이 침을 꼴깍 삼키고 말했다.

“박을까?”

그가 천천히 이마를 바닥으로 가져갔다.

* * *

“어떤 분이.”

한구인이 추궁하는 어투로 말했다.

“안전빵으로 ‘올림픽홀’을 골라야 한다고 했던 것 같군요. 제가 ‘올림픽 핸드볼 경기장’으로 해야 한다고 그렇게나 말했는데도…….”

멍하니 있던 손혜빈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박을 채비를 마쳤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죄, 수요 예측 실패란 죄를 짊어진 성필을 쳐다보았다.

성필은 안개가 낀 듯 혼탁한 눈동자로 태블릿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생기 있는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를 콩 때렸다.

“헤헷!”

“어물쩡 넘어갈려고?”

성필이 손혜빈의 옆에서 머리를 박았다.

둘의 사죄를 본 한구인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조금만 더 용기를 냈다면 훨씬 이익을 얻었을 텐데. 그런 후회 때문에 온전히 이 상황을 즐길 수 없었다.

홍규헌이 한구인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자자, 다들 왜 그래. 좋은 일이잖아? 손 이사랑 박 이사, 머리 들어.”

뭐어, 처음부터 5,000석 규모인 핸드볼 경기장을 골랐으면 더 좋았겠지만.

“일단 축하부터 하자.”

홍규헌은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비싼 술을 꺼냈다. 축하주, 혹은 삶을 비관하여 먹고 죽으려고 준비한 술이었다.

다행히 축하주로 쓸 수 있었다.

“그럼 건배할…….”

그때 성필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성필은 모두에게 양해를 구한 후 전화를 받았다.

조진만이었다.

“조 사장님, 축하…….”

[당장 추가 공연을 잡아야 합니다! 익일 공연으로! 빨리 결정을 내려주세요! 공연장 측에 연락해야 합니다!]

“추가 공연이요?”

[예! 이, 이 정도로 빠르게 매진됐으면 추가 공연도 가능합니다! 서울 공연을 위해 만들었던 스테이지들을 다시 사용하면, 마진율이 훨씬 올라갑니다!]

즉, 공연이란 한 번 준비했을 때 추가로 하면 할수록 이익이란 뜻이다.

[다음 날 공연도 빠르게……!]

성필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의 머리는, 멤버들이 양일에 걸친 공연을 소화할 수 있는가를 계산했다.

그리고 계산이 끝났다.

“사장님, 조 사장님이…….”

“나도 들었어. 가능해?”

“가능합니다.”

“잡아.”

조진만의 노력으로, 소녀연맹은 둘째 날도 올림픽홀에서 추가 공연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다음 날의 티켓팅에서.

[또, 또 추가 공연을 잡아도 될 거 같습니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자리가 팔려나갔다.

가로 엔터는 셋째 날의 공연마저 승낙했다.

다행이라고 할까, 셋째 날 공연은 1시간이라는 꽤 긴 텀을 두고 매진됐다.

그 소식을 들은 가로 엔터의 중역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필을 보았다.

성필이 천천히 일어나 손혜빈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혜빈이 그 손을 잡았다.

“누나.”

“응, 성필아.”

“박아야겠지?”

“당연하지.”

안전빵이란 이름으로 올림픽홀을 고른 죄로, 두 명의 이사가 바닥에 정수리를 박았다.

홍규헌은 그 비현실적인 광경과 비현실적인 상황을 만끽하면서, 행복하게 중얼거렸다.

“잠실체육관(1만 석 규모) 잡았어도 됐겠다…….”

아무래도 소녀연맹은, 이제까지의 상식을 전부 뒤엎을 정도로 성공한 듯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