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화
신아름의 본가는 활기가 넘쳤다.
성필과 신아름이 어머니 대신 식사를 준비할 때부터, 저녁을 먹을 때, 저녁을 먹고서 수다를 떨 때.
매 순간 웃음이 함께했다.
“나는 이게 제일 재밌더라.”
어머니가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핸드폰을 만졌다. 아이튜브 영상이 하나 떴다.
섬네일엔 신아름의 얼굴이 떡하니 박혀 있고, 그 밑에 ‘이 녀석’이란 자막이 큼지막하게 나와 있었다.
제목은.
[소녀연맹 군기 반장]
“우리 딸 어디서 기죽고 다니진 않네.”
“누가 키웠는데 어디서 기가 죽고 다녀.”
신아름이 배시시 웃으면서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성필도 저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신아름이 특유의 기세로 멤버들을 제압하는 장면을 모은 것이었다.
회사 소파에 발을 올리는 조아라에게 달려들어 다리를 내리게 하거나, 과자 한 조각 먹어보겠다고 발악하는 리카를 붙잡아 멈춰 세우고 말이다.
‘언니 라인도 못 벗어나지.’
리더 아닌 신아름의 리더십 발휘는 같은 나이대의 동생 라인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언니인 백설하와 장하양마저 규율에서 이탈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규율 이탈이라기엔 귀여운 것들뿐이었지만.
‘아름이가 리더 체질이긴 해.’
어머니에게 애교 부리는 신아름을 귀엽게 바라보고 있던 성필은, 갑작스레 심장이 검게 물드는 듯했다.
‘리더가 어울리는 애인데…….’
밤에 소녀연맹 숙소에서 신아름의 병증이 도졌던 적이 있었다.
멤버들 전부 놀라서 성필을 불렀고, 성필은 전생과는 다른 신아름의 반응을 보았었다.
전생보다 심해졌다고, 성필은 판단했었다. 그리고 성필은 그것이 신아름을 소녀연맹으로 데려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랑 맞추는 거 자체가 힘들겠지.’
전생의 신아름은 그런 성격이었다. 아니, 성격은 바뀌질 않으니 지금도 그럴 것이다.
타인을 자신에게 맞추게 할지언정, 자신이 맞추는 건 못하는 아이다.
리더의 자리에 선다면 그녀의 성격은 약으로 작용한다. 본인뿐만 아니라 모든 멤버들에게 긍정적일 것이다.
‘책임감 있고, 남 챙기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솔선수범하고…….’
하지만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왕의 재능이란 건, 왕이 되지 못하면 반역자의 싹일 뿐이라고. 신아름은 그 싹을 어떻게든 누르느라 마음고생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때 신아름과 성필의 눈이 맞았다.
성필이 지긋이 쳐다보는 것을 무슨 사인이라고 여겼는지, 신아름은 바로 고쳐 앉았다.
성필도 그것을 보고 오늘 온 용건을 기억해냈다.
‘티켓 드려야지.’
성필은 신아름에 대한 걱정을 지우고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기로 했다.
드디어 이 순간이 왔다.
정말 길었다.
‘아름이를 연습생으로 데려가겠단 허락을 받고 나서부터 계속 이 순간을 꿈꿨어.’
반듯이 성장한 신아름이, 본인이 속한 그룹의 표를 어머니에게 건네드리는 순간.
그건 곧 성공의 증명과 같았다.
콘서트를 열 수 있단 건, 반드시 흑자 전환이 가능한 그룹이 되었단 뜻이나 다름없다.
‘아니, 전부 차치하고서 훨씬 깊은 뜻이 있지.’
어머니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게 된다. 딸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사는지. 딸이 얼마나 노력하여 그곳에 다다랐는지.
몇 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단 사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직장인으로 따지자면, 이건 월급을 꽤 모아 부모님에게 선물을 주는 것과 비슷했다.
‘자식이 사회인으로서 나름 자리를 잡았다는 증명. 그리고 그에 대한 감사.’
이제까지 나를 키워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부모가 키워준 수십 년 세월을, 이 순간에 압축하여 감사를 전한다.
당신 덕에 여기에 올 수 있었다고.
“어, 엄마.”
신아름이 답지 않게 몸을 꼬며 머뭇거렸다.
“응, 딸.”
어머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애로운 미소로 딸을 대했다. 신아름은 우물쭈물 어머니의 기색을 살피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얘가 부끄러워하네.’
어쩔 수 없다.
성필은 신아름보다 먼저 영광을 취하기로 했다. ‘어머니, 그때 아름이를 맡겨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를 믿고, 아름이를 믿어주신 데 대한 답입니다. 아름이가 이렇게나 컸습니다. 꼭 오셔서 따님의 무대를 보아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해야지.
‘좋아, 간다!’
성필은 가슴이 부푸는 게 보일 정도로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어머니를 향해 말했.
“팀장님이 저번이 있잖아!”
신아름이 성필을 등으로 밀어냈다.
어머니를 마주 보고 말할 작정이었는데, 신아름 때문에 시야가 막혔다.
‘아, 자기가 하겠단 뜻이구나.’
당연히 그러고 싶을 것이다.
가족에게 자신의 아이돌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창피해서 표 건네는 것을 망설이지만, 결국엔 스스로 말을 꺼내고 싶으리라.
성필은 이해했다.
“정말 팀장님이 그러셨니?”
“……네? 뭐가요?”
성필은 신아름이 한 일의 저의에 대해 생각하다가 대화를 놓쳤었다.
“어, 정말 그랬다니까! 쌤한테 ‘설하야 나는 눈이 좋아. 죽을 때까지 눈을 보면 네가 생각날 거 같아’라고 했어! 이거 누가 봐도 꼬시는 거…….”
“그 말을 왜 해애애애애!”
성필이 황급히 사태를 주워 담으려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팀장님은 결혼적령기시니까요.”
한구인이 말하길, 결혼적령기는 정해진 길을 걸으라는 사회의 폭압적인 시선을 대변하는 단어라고 한다.
절대 한구인 본인이 아직 결혼하지 못한 것으로 주변의 눈총을 받아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거, 괜찮니?”
“뭐가?”
“같은 회사 아이돌이랑 사귀는 거.”
“으음, 연애 금지 끝나면 상관없지 않나? 팀장님도 그거 알고 쌤한테…….”
“당연히 안 괜찮지!”
성필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라면서 신아름의 발언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에 신아름도 반박했다.
“안 될 이유 없지 않나? 누구랑 사귀는지까지 제한하는 건 아니잖아요. 계약에도 없는 내용이고요. 무슨 회사가 부모님도 아니고. 아니, 부모라도 자식이 사귀는 거까지 뭐라고 하진 않죠.”
성필이 고개를 주억였다.
‘과연,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힘들군.’
민주 국가에서 그런 것까지 막을 순 없지.
가로 엔터는 계약서에 ‘연애 금지’만 걸었었지, ‘회사 직원이랑 연애 금지’까지 걸진 않았었다.
그래서 성필은 근본적인 부분을 파고들었다.
“내가 설하를 꼬셨단 거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 나이 차이가 얼만데.”
“우와, 엄마 팀장님 얼굴 봐요.”
“응?”
어머니는 이유도 모르고 성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성필은 어머니의 시선을 똑바로 받자 살짝 당황했는데, 미래의 신아름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팀장님 얼굴에 뭐가 있어?”
“거짓말하는 뻔뻔스런 얼굴. 팀장님이 뭐라고 했는 줄 알아요? 결혼해야 하면 쌤이랑 하고 싶댔어요.”
“어째서어…….”
성필은 머리를 쥐어뜯는 시늉을 했다.
이제 뭐라고 할 생각도 안 들었다.
분명 리카한테만 한 이야기였고, 그날 일은 다 잊자고 약속했었는데.
“내, 내가 한 말이 무슨 공공재야? 난 그냥 목소리만 내도 SNS에 글 쓰는 거랑 똑같은 거야? 나 이제 말 안 할래…….”
“힘내세요 팀장님.”
“어머님 감사합…….”
“팀장님처럼 번듯한 사람이면 설하도 꼭 좋아할 거예요.”
성필은 광기 어린 웃음을 뱉으며 계단에서 춤추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건 리카가 너희 다섯 명 중에 찍으래서 어쩔 수 없이 고른 거야.”
“어쩔 수 없이요? 그럼 어쩔 수 있이 고르면요?”
“뭔 이상한 소리야.”
애초에 몇 명 가운데서 고르란 건, 사실상 제대로 된 답도 들을 수 없는 질문 아닌가.
지구가 멸망하면 누구누구랑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 급의 질문이다.
“그냥…… 나이 차이가 제일 적어서 설하 고른 거야…….”
“아, 그렇구나.”
신아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양 언니도 그렇게 말했거든요.”
물론, ‘그렇게 말했다’ 수준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장하양은 논리적 추론과 감정적 직관을 모두 동원하여, 성필의 발언이 어째서 의미가 없는지 증명하려고 했었다.
“그럼 팀장님은 설하한테는 관심 없으신 건가요?”
“어머님까지 대체 왜 그러세요!”
“팀장님 결혼하시면 청첩장 주실 거죠?”
어머니가 기대된단 듯 말하자, 성필은 허탈하게 웃었다.
“가장 앞에 자리 마련해둘게요.”
이상한 대화가 끝나고, 성필은 신아름에게 눈치를 주었다. 언제 콘서트 표를 주겠냐는 뜻이었다.
“맞다, 팀장님이 또…….”
하지만 신아름은 다시 성필의 흑역사를 들춰내기만 했다.
‘언제 줄 생각이지?’
그렇게 시간은 9시를 훌쩍 넘어갔다.
성필이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성필이 초조하게 손목시계를 보자 신아름이 물었다.
“팀장님 오늘 자고 갈래요?”
“어?”
“상관없지 않아요?”
“아니, 옷도 뭣도 안 가져왔는데.”
“편의점 가서 사요.”
“넌 진짜 돈 관리하면 안 되겠다. 그렇게 몇천 원 몇만 원씩 쓰다 보면 거지꼴…….”
“그런 거 아껴서 부자 안 되거든요? 엄마, 팀장님 자고 가도 돼?”
“응, 당연하지.”
신아름은 무슨 ‘오늘 친구 자고 가도 돼?’라고 묻는 말투였다. 어머니의 답도 비슷한 뉘앙스를 풍겼다.
성필은 자신이 얼마나 신뢰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 옷 사러 가요. 가는 김에 저 과자도 사주고요.”
“얘 아름아…….”
“아 엄마, 팀장님이 사주는 거 정산받으면 다 갚을 거야! 괜찮아 괜찮아!”
신아름도 리카에게 전염된 것 같다.
아니, 멤버 전원이 처음부터 성필을 지갑으로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성필과 신아름은 집을 나섰다. 그러자마자 성필이 다그치듯이 물었다.
“왜 자꾸 미뤄? 이러다가 내일 돼도 못 주겠다.”
“…….”
“아름아?”
성필은 비난할 생각은 아니었다. 평소처럼 놀리듯이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신아름의 표정이 안 좋았다.
성필은 자기가 혹시 너무 강하게 말했나, 아니면 다시 신아름의 병증이 도진 건가, 약이 남아 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급히 말했다.
“아름아 왜 그래?”
“……그.”
“응, 말해.”
“저, 표 엄마한테 주는 거. 엄마가 공연 보러 오잖아요.”
“그러시겠지.”
“나중에 주면 안 돼요?”
“나중에…… 그래.”
성필이 흔쾌히 답하자 신아름이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저희가 더 성공해서요.”
“더 성공해서라니?”
“그러니까, 케이어스 이기고, 최고의 아이돌이 돼서요.”
그제야 신아름이 망설였던 이유가 희미하게 잡혔다.
신아름은 걸음을 조금씩 조금씩 늦추었다. 그러곤 이내 걷는지 마는지도 모를 속도가 되었다.
“최고가 됐을 때 보여주고 싶어요.”
성필은 멈춰 섰다. 그러자 신아름도 기다렸다는 듯, 거북이보다 느릿한 걸음을 그만두었다.
그녀가 뒤로 돌아보았다.
가로등이 없는 길이라, 그녀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성필의 얼굴도 마찬가지이리라.
‘아무렇지 않을 리 없지, 그래, 그렇지.’
케이어스의 정규 1집 성적은 멤버들에게 저마다의 의미로 충격을 주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동기로 삼았고, 누군가는 발판으로 삼았고, 누군가는 목표로, 그렇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충격을 대했다.
그런데 신아름은 그것을 걱정거리로만 받아들인 듯하다.
‘아름이가 첫 번째 아티스트 리허설에서 소리 질렀던 건…….’
조아라를 일으켜 세우고, 지친 멤버들의 정신을 깨우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때의 피가 맺힌 듯한 외침은 신아름의 진심이었다. 그녀는 초조하고 불안해서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초조하고 불안해서 어쩔 수가 없는데, 쉬는 사람이 보이니까.’
일분일초, 0.1초라도 깎아서 연습하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그래서 무대 위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조아라를 보고 소리 질렀다. 어떤 계산도 없이, 그저 분노만을 담아 외쳤었다.
그 후에 한 말은 뒷수습에 불과했었다.
“나중에 엄마한테 줄래요…….”
신아름의 어깨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떨어져 내렸다. 자신의 우울함을 상징하듯이.
그녀는 현재를 볼 여유가 없다.
그녀는 미래만을 본다. 그녀의 롤모델은 미래의 자기 자신이다.
미래의 자신, 최고의 아이돌.
그래서 현재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볼품없게 보인다. 이런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보여주고 싶을 리 없다.
“아.”
성필이 신아름의 어깨에 손을 얹자 그녀가 작은 신음을 내었다. 성필은 그녀의 어깨 너머를 보았다.
어둠 속에서 김민주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작년의 무대가 떠올랐다.
신아름과 김민주가 거울처럼 서로의 안무를 복사하던 무대가.
신아름은 김민주에게 다다랐으나, 그건 흉내에 불과했다. 흉내로는 김민주를 넘어서지 못한다.
‘아름이는 계속 민주 씨의 그림자를 보고 있는 거겠지.’
신아름은 롤모델, 미래의 자기 자신을 본다. 하지만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를 케이어스가, 김민주가 가로막고 있기에.
그래서 신아름은 목표를 볼 때 케이어스를 볼 수밖에 없다.
“아름아, 최고가 됐을 때란 건 언제야?”
신아름의 눈동자에서 어둠 대신 생기가 차올랐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은 아니었다.
“케이어스를 이겼을 때요.”
“케이어스한테 이기고 싶어?”
“네? 네.”
“케이어스를 못 이기고 있는 네가 초라해서, 어머니한테 보여드릴 수 없는 거야?”
“…….”
“그렇게나 이기고 싶어?”
신아름은 계속되는 질문에 짜증이 나는지 가시 돋친 말투로 답했다.
“당연하죠!”
“그럼 갑자기 케이어스가 다 죽으면?”
“……뭐, 뭐어, 네? 뭐요?”
“케이어스가 다 죽으면? 모종의 이유로 갑자기 해체되거나 사라지면? 그럼 아름이는 아이돌 그만둘 거야? 케이어스를 넘어서면 최고의 아이돌이 된다는 건, 케이어스가 없으면 바로 최고의 아이돌이 된단 뜻이니까. 이기는 게 네 목표라면 말야.”
신아름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간단히 반박할 수 있는 답이 있는데 가슴 속에 막혀서 나오지 않았다. 무언가에 걸려 있다.
무언가, 투쟁심과 열등감이란 채가 대답을 막고 있다.
하지만 대답은 계속해서 채에 걸러져서, 마침내 목을 뚫고 입으로 튀어나왔다.
“이기는 게…… 내 목표는…… 꿈은…… 아니에요…….”
케이어스가 없어진대도 신아름은 계속해서 달려 나갈 것이다.
이기는 것 자체가 목표가, 꿈이 아니니까.
처음부터 아니었다.
왜냐하면, 신아름이 아이돌이 되기로 한 이유는.
“최고의 아이돌…….”
“지금도 그래?”
신아름은 아까 성필의 질문에 했던 대답을 그대로 쓸 수밖에 없었다.
의미는 전혀 다른, 같은 대답이었다.
“당연하죠…….”
“케이어스를 이기는 게 최고의 아이돌의 기준은 아니지.”
성필은 신아름의 어깨를 감싸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름아. 라이벌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좋은 동기지만, 궁극적인 동기는 될 수 없어. 라이벌이 없어지면 동기도 없어지는 거니까. 뭔가를 오래 이어가기 어렵지.”
운동선수들의 에세이나 자서전을 보면 ‘누구를 이기기 위해 연습했다’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들은 항상 말한다.
‘나를 이기려고 연습한다’고 말이다.
“어느 분야의 탑에 오르려면, 결국엔 자기 자신을 목표로 삼아야 하나 봐.”
옛날의 신아름은 그러했었다.
그녀의 롤모델은 미래의 자기 자신이었기에, 목표란 자신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제 어때? 아직도 네가 초라해서 어머니에게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지 않으면, 어쩔 수 없고.”
“……그렇게 말하면 제가 뭐가 돼요.”
신아름은 오른쪽 어깨를 감싼 성필의 손을 꼭 붙잡았다.
“정상에 선 걸 엄마한테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만, 계단을 오르는 걸 보여주는 것도 보람 있겠네요.”
신아름이 웃었다.
성필은 그 웃음에서 미래의 신아름을 느꼈다. 미래의 신아름, 전생의 신아름을.
한국에선 거의 멸종하다시피 한 퍼포먼스형 솔로 아티스트로서, 순간이나마 정점에 올랐던 신아름이 보였다.
“돌아가자마자 엄마한테 줄게요.”
현재의 신아름은 미래의 자신에게로 달려간다. 하지만 그녀만이 달려가는 건 아니었다.
미래의 신아름도 현재의 신아름을 찾고 있다.
둘은 언젠가 만나서, 최고란 이름을 얻을 것이다.
* * *
신아름의 어머니가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겨우 진정하곤,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소녀연맹의 콘서트 티켓이 있었다.
“엄마, 올 거지?”
신아름이 마주 잡은 양손을 허벅지 사이에 끼우며, 못내 몸이 달아서 물었다.
어머니는 신아름에게 미소 짓곤, 성필을 향해 앉은 채로 허리를 숙였다. 거의 절하는 듯하여, 성필은 마주 절하는 모양새로 그녀를 만류했다.
성필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그저 절함으로써 감사를 표했다.
“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런 날이 올 거라고…….”
곧이어 신아름의 어머니는 성필의 앞임에도 하염없이 울었다.
딸이 쏟아낸 몇 년이 손에 들려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우는 것을 보자 신아름도 울었다.
세 사람은 서로를 안고 기쁨을 나누었다.
성필은 강한 모습을 보이려 입술을 꾹 물었으나, 곧 홍수에 둑이 터져 나오듯이 울음과 눈물을 동시에 쏟았다.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순간이었다.
* * *
“더 아이돌 이시카와 리카 등장!”
리카가 양손을 하늘로 번쩍 들었다. 그리고 검지를 편 뒤, 양쪽 관자놀이에 팍 가져다 댔다.
태양권을 연상시키는 우스운 포즈에 리카의 가족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리카는 그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 뒤로 곁눈질했다. 성필은 창피함을 느끼면서 쭈뼛쭈뼛 리카의 뒤로 갔다.
그리고 리카와 같은 포즈를 무표정으로 지었다.
“더 이그제큐티브 오피서 박성필 등장.”
“…….”
“…….”
“…….”
“내가 하지 말자고 했잖아! 했잖아!”
성필이 친구 대하듯 리카의 어깨를 찰싹찰싹 때렸다. 리카는 여전히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입가에선 참지 못한 웃음을 픽픽 흘렸다.
그러곤 갑자기 바닥에 드러누워 데굴데굴 굴러다니면서 웃었다.
“좋아(요시)!”
리카는 벌떡 일어나 성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성필은 한숨을 쉬면서 봉투를 넘겼다.
리카가 성큼성큼 가족들에게 다가가 봉투를 내밀었다.
“제 4년이에요!”
아버지, 이시카와 켄타로가 진중한 표정으로 봉투를 받았다. 봉투의 각을 잡고, 그것이 중요한 상대의 명함이라도 되는 듯 바라본 후 내용물을 꺼냈다.
번쩍이는 콘서트 표가 나오자, 켄타로가 픽 쓰러졌다.
“여보?!”
이시카와 에미가 켄타로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하하, 하하하.”
켄타로는 숨을 헙 들이키더니, 방금의 힘없는 웃음은 거짓이었단 듯 호탕하게 웃었다.
“역시 이시카와다!”
“저요?”
“당신 말고!”
“나요?”
“유우토 너 말고!”
켄타로는 리카의 어깨를 팍팍 두드렸다.
“갑자기 한국으로 간다고 했을 땐 머리에 기생충이 든 건 아닌가 의심했었다!”
“너무해(히도이)!”
“그런데, 결국은 해내는구나. 그래, 뭔갈 해내는 인간들은 다 유별난 구석이 있지. 다들 한 번씩 배거본드의 삶을 살아.”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리카는 배거본드는 아니었다. 한국에 잘 정착해서 살았으니까 말이다.
“그래, 뭐, 그렇구나, 그래, 그래…….”
켄타로의 목소리에 물기가 깃들자, 리카도 ‘히잉……’하면서 울려고 했다.
“우리 딸, 자랑스럽다.”
“켄타로…….”
“너 지금 아빠 이름 그대로 부른 거냐?!”
“이시카와 켄타로오…….”
“성 붙인다고 안 달라져 임마!”
부녀는 서로를 껴안고 감동을 만끽했다. 이윽고 에미도, 유우토도 합세하여 서로를 안았다.
그때 리카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 범벅이었다. 그 상태로 환히 웃으면서 손을 뻗었다.
“박 이사님도 오세요!”
성필은 애매하게 웃을 뿐 가지 않았다.
저 사이에 끼이는 건 선을 넘는…….
“이리 오십시오!”
켄타로가 성필을 끌고 어깨를 꽉 안았다. 성필은 억지로 이시카와가(家)의 사이에 끼어 포옹해야만 했다.
다섯 사람은 마치 알 같이 오랫동안 달라붙어 있었다.
“내가 말했지! 말했었어! 나 꼭 아이돌이 돼서 돌아올 거라고 했었잖아!”
“누나 한류 배우 될 거라고…….”
“유우쨩 눈치 좀 챙겨!”
“그래 유우토! 애가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
“얘가 사춘기라서 그런가 봐요.”
“…….”
* * *
조아라는 춤을 추면서 본가의 현관 복도를 가로질렀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활짝 열린 거실 문으로 딸의 기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아라는 거실 문을 넘어, 거실을 넘어, 부모님이 앉은 식탁까지 춤을 추어 도달했다.
성필은 그 뒤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계속 따라왔다.
‘내가 다 부끄럽네.’
조아라는 개의치 않고, 부모의 앞에 이르러서까지 춤을 추었다.
남들 보기 창피한 광경이지만, 또한 조아라의 춤은 매우 멋졌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낸 후, 트레이닝복 바지 허리에 꽂아두었던 봉투를 확 꺼냈다.
“엄마 아빠, 내가 그랬잖아요.”
조아라가 거만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내가 하기 싫은 걸로 성공하기 싫다고요.”
조아라는 그 말을 하자마자 등에 전율이 돋았다. 방금 그 말은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였는데, 꼭 직접 입 밖으로 꺼내 보고 싶었었다.
“아라야 너 그 가사…….”
“아저씨 조용.”
성필이 조용했다.
조아라가 거만하게 봉투를 팔랑거렸다.
“뭐, 이렇게 됐네요? 어떡해요, 엄마 아빠가 하라는 공부 안 했더니 이렇게 됐네.”
아버지가 봉투를 받아 열었다.
콘서트 표 두 장이 나왔다.
“돈 벌기 싫은 사람이나 공부하는 거라고요. 네? 알겠죠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의지가 강한 사람인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네? 네? 알겠죠? 네?”
조아라는 춤만 춘다고 받았던 푸대접을 이참에 전부 청산하려는 듯, 은근히 비꼬는 기색까지 담아서 말했다.
“시간 나면 보러 오…….”
“어흑…….”
어머니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울었다. 그냥 우는 것도 아니라, 아예 오열했다.
조아라는 당황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표를 봉투 안에 넣고, 진정하는 듯 숨을 가지런히 골랐다.
“아라…….”
그러고도 아버지의 목소리가 흐트러졌다.
그는 코를 훌쩍이고, 크흠 크흠 목을 다듬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떠보고, 말했다.
“아라야.”
여전히 막힌 목소리로.
“그래, 힘들었겠구나. 그, 대견하다, 네가. 너무. 그래, 대견해…….”
조아라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그녀는 바닥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주먹을 꼭 쥐었다.
그리고 한계에 이르러, 손등으로 눈가를 닦으면서 울었다. 어머니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게 울진 않았다.
아버지는 어색하게 손을 움직여 몇 년 만에 딸과 포옹했다.
“너를 못 믿어줘서 미안하다, 아라야. 미안해. 자랑스럽다. 고맙다.”
아버지는 포옹처럼 어색하게 말했다.
조아라가 목놓아 울었다.
* * *
“처음 뵙겠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장하양이 성필의 부모님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했다. 두 개의 산소는 조용히 장하양을 맞아주었다.
장하양은 주섬주섬 봉투를 산소 앞에 두었다. 바람에 날려갈 듯하여 무언가 둘 것을 찾아야만 했다.
“이거.”
성필은 소주가 든 종이컵을 주었다.
장하양이 그것으로 봉투를 눌렀다.
“저어…….”
장하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준비해온 말이 산더미였지만, 막상 성필의 부모님과 대면하니 기억나는 게 없었다.
그래서 새로 생각해내야 했다.
이윽고 그녀가 미소 지었다.
“박 이사님은 제 은인이세요. 저를 정말 가족처럼 여겨주세요. 그래서 옛날에 ‘여보’라고 불러봤는데,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구요.”
“여보가 아니니까 그렇지. 그리고 그 말 다시 꺼내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고 했을 텐데?”
“네. 그래서 그냥 박 이사님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엄마 아빠, 오해하지 마. 사귀는 거 아니야. 그, 전에도 말했는데 우리 회사 아이돌…….”
“이거 보이시죠.”
장하양은 산소 앞에 놓인 봉투를 검지로 쓸었다.
“제, 아니, 소녀연맹의 콘서트 티켓이에요. 박 이사님 덕분에 콘서트도 열게 됐어요.”
“내가 뭘 했다고. 너희들이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온 거지.”
“항상 이러세요. 공을 우리한테 못 돌려 안달이시거든요. 조금은 자랑하셔도 될 텐데.”
“가족한테 자랑해서 뭘 해.”
“아하하.”
장하양은 어색한 것처럼 자신의 허벅지를 손바닥을 쓸었다.
“진짜 가족 앞에서 가족이란 말을 들으니까…… 뭔가 그런 느낌이네요. 잘은 모르겠지만요. 혹시 실례는 아니죠?”
당연하지만 답은 없었다.
장하양은 이야기를 이었다.
“저는 가족이란 걸 잘 모르지만요, 이렇게 생각해요. 좋은 일이 있을 때 ‘그 사람도 이걸 했으면, 먹었으면, 봤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거요. 그런 의미에서라면, 저는 박 이사님의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장하양이 성필을 보았다.
성필이 입꼬리를 올렸다.
“나도 마찬가지야.”
성필은 깊이 숨을 들이켰다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손을 올렸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 너무 걱정하지는 마. 나 잘 지내고 있어. 지금까지는…… 내가 빈말만 하는 거 아닌가 했지? 거짓말 아니거든. 진짜야, 진짜.”
1시간 정도 지나서, 성필은 상을 정리하고 산을 내려왔다.
둘은 차에 타고 서울로 향했다.
“같이 와줘서 고마워.”
성필이 감사를 표했다.
“추운데 밖에 너무 오래 있었지?”
핸들을 잡은 성필의 손에 뜨거운 땀이 배었다.
“오래 있었나요? 시간을 안 봐서요.”
장하양이 싱긋 웃었다.
성필도 마주 웃어주었다.
‘같이 와준다고 한 건 고맙지만.’
성필은 장하양과 함께 있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원래 성필은 부모님을 뵈면 몇 시간이고 혼자 떠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장하양을 배려해서 약 한 시간 정도로 짧게 끝내고 내려왔다.
그 한 시간도 길었던 거 아닐까 싶다.
‘지겨웠겠지.’
심지어 얼굴도 못 보고, 목소리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의 산소에서 한 시간 넘게 떠들어야 했다면, 더욱 그랬을 것이었다.
성필은 장하양에게 미안함을 지니고, 무언가 말하려 했다.
정말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입 밖으로 내기 전까지는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아마, ‘와줘서 고맙고 앞으로는 안 와도 돼’와 비슷한 이야기로 진행될 말의 서두였을 것이다.
“다음에 오는 건 설날이에요?”
장하양이 먼저 말했다.
성필은 누군가 갑자기 등을 팍 치기라도 한 듯이 화들짝 어깨를 떨었다.
“어?”
“설날이랑 추석에 오시는 거죠?”
“어, 그치.”
“그럼 그때 오겠네요.”
“아니, 하양아…….”
“왜 그러세요?”
장하양이 순진무구한 미소를 띠었다. 그걸 보니, 성필은 뭐라 말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성필의 부모님을 뵙고 싶다고 했던 건 장하양이었다.
답이 돌아오지 않는 산소에서 시간을 오래 보낸다고 성필이 미안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도 성필은 장하양에게 불합리한 일을 강요하는 것마냥 초조하고 불안했었다.
‘왜 그랬는지 몰랐는데…….’
이제 알겠다.
성필은 상처받는 게 두려웠다.
장하양이 따라와 준 게 엄청 기쁘다.
하지만 평생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번 한 번으로 그치는 게 나을 것이었다.
누군가와 오는 게 익숙해졌다가, 그 누군가가 사라진다면 가슴에 구멍이 뚫린 기분일 터였다. 그래서 미리 ‘이게 마지막이다’라고 말하려 했는데…….
“하양아.”
장하양을 보니 그럴 생각이 사라졌다.
“나 원래 여기 오면 있잖아.”
“네.”
장하양이 사람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맞장구쳐주었다.
“말을 되게 오래 하거든. 몇 시간이나. 그런데 그거 대부분 겨우, 억지로 쥐어 짜낸 말들이야. 지난 몇 개월을 돌아보는, 일기 같은 말들. 그걸 엄마 아빠한테 하는 거야.”
“음.”
“그런데 이번엔 아니었어. 말이 자꾸 나오더라고. 신기하네. 여기 오면 사실, 기분이 썩 좋은 건 아니거든.”
“아하하, 제 덕분이…….”
성필을 보고 웃던 장하양은, 미소를 지우고 다시 앞으로 눈을 돌렸다.
성필이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응, 네 덕분이야. 고마워 하양아.”
성필은 눈물을 목 안으로 삼키고, 말했다.
아까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못한 말을.
“나요, 있잖아요, 엄마, 아빠, 꿈, 이뤘어요. 콘서트, 하게 됐어요. 네, 그래요…….”
장하양이 티슈로 성필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원래라면 스스로, 혼자 해야 했을 일이었다. 그걸 해줄 사람이 옆에 있단 게, 성필은 기뻐서 또 눈물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