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356화 (356/760)

356화

“저어…….”

성필의 제안을 받은 백설하는 겸양하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안 오셔두요. 아마 오셔도 좋은 말 못 들으실 테구…….”

백설하는 헤실헤실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말 안에 담긴 의미는 웃음과 거리가 멀었다.

아이돌 활동 자체가 부모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그려내고 있었으니까.

멤버들은 새삼스레 자신들의 리더가 어떤 처지에 처해 있는지 공감됐다.

‘발판이 없는 기분일 거야…….’

리카가 우울하게 시선을 늘어뜨렸다. 내린 시선으로 땅바닥을 딛고 선 자신의 발이 보였다.

사람은 딛고 설 게 필요하다.

가족이 그런 역할을 한다.

사회에서 아무리 출세하건, 친구들로부터 추켜세워지건, 가족의 인정이 없으면 좀처럼 공허를 채우기 어려울 것이다.

‘쌤은 우리랑 다르게, 딛고 선 땅 없이 계속 나아갔던 거…….’

갑자기 리카의 시야에 장하양이 잡혔다.

그 시선을 읽은 장하양이 리카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왜 그래?”

“이, 이에(아뇨).”

새삼스레 장하양은 정말 강한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리카가 백설하와 장하양의 고생을 떠올리는 동안, 백설하는 성필에게 구구절절 같이 부모님을 뵈러 안 가도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조, 좋은 분위기는 아닐 거예요. 네. 저 혼자서 가도 되니까요. 가족과의 일이니까요.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가족과의 일이니 자신이 해결하겠다. 이것이 백설하의 주장이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백설하는 어머니의 싸늘한 시선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건 뭐랄까, 백설하가 쌓아온 노력이 깡그리 부정받는 느낌이었다.

‘그 짓거리를 또 하겠다고?’

그리 말했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백설하는 쪼그라든다.

세상 누구보다 백설하의 꿈을 응원해주었던 어머니는, 이젠 세상 누구보다 백설하의 꿈을 반대한다.

딸이 가장 처참하게 망가지고 추락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리고 그것을 본 어머니 또한 처참하게 가슴이 찢겼기에.

그런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성공했는걸…….’

아직 정산금을 받지 못해서 성공이니 뭐니 할 만한 단계가 아니긴 하다.

하지만 백설하는 어머니의 걱정을 수십 단계는 넘어서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의 어머니는 여전했었다.

‘다시 찾아가도 똑같을 거야.’

예전과 똑같은 태도의 어머니를, 성필과 마주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성필이 어머니에게 심한 말을 듣길 바라지 않았다. 괜히 기분만 상하길 바라지 않았다.

부모와 성필의 만남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응?’

어, 그래, 긍정적으로.

어머니와 성필의 만남이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뤄지길 바랐다.

“그러니까…….”

백설하가 말을 멈추었다.

성필의 입꼬리가 장난기를 잔뜩 머금으며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님?”

“아니, 그냥 말해본 건데.”

“……네?”

성필은 백설하의 사정을 안다.

그녀가 울면서 본가를 뛰쳐나온 것마저 직접 보았는데 모를 리가 없다.

“설하가 ‘이사님 저 무서워요 같이 가주시면 안 돼요?’라고 하기 부끄러울 수도 있으니까.”

“제가요?”

“혹시나 그럴 수도 있으니까 물어본 거야. 그런데 너무 필사적으로 사양하니까 좀…….”

성필이 다시 옅은 웃음을 뱉었다.

그는 별다른 고민 없이 가볍게 한 제안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백설하는 너무나 진지하고 미안하단 듯 거절하니, 웃길 수밖에 없었다.

“설하는 되게 성실…….”

“이건 오기로라도 같이 뵈러 가야겠네요.”

“어?”

“네, 가요.”

백설하가 성필의 손목을 꽉 쥐었다.

“가서 얼굴 보여드려요. 제 프로듀서의 얼굴, 콘서트 앞두고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어, 어?”

“저희 어머니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아이돌이 되게 만든 사람!”

백설하가 소리치자 성필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러나 백설하는 곧 다정한 미소를 품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아이돌로 만들어주신 분. 꼭 뵙게 해드리고 싶어요.”

“…….”

성필은 백설하가 쥔 자신의 손목을 보았다. 어찌나 강하게 쥐었는지, 성필의 손이 창백하게 변하여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저 성필을 놀리기 위해 꽉 쥔 게 아니었다.

백설하는 성필과 함께 부모를 본단 것만 떠올려도, 힘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긴장해버리는 것이다.

성필이 픽 웃으면서 백설하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지금 가자는 거야?”

“언제든지 돼요.”

“그럼 좀 나중에 가자.”

그렇게 성필은 백설하의 본가로 가서, 그녀의 부모를 보게 되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조아라는 옆에 있는 신아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야 신아름. 아저씨가 쌤이랑 같이 부모님한테 표 준다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뭐가?”

“아니, 너는?”

“난 나중에 가기로 했…….”

“아저씨 뭔데!”

백설하가 리더로서의 특별 취급을 받는 게 아니란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조아라가 뛰쳐나왔다.

“프로듀서면 멤버들 공평하게 대해야죠. 누구는 알아서 부모님한테 표 주라고 하고, 누구는 같이 가서 줘요? 나 들어올 적에 아저씨랑 한의사님이 내 엄마 아빠 대신 나 맡아 키우는 거라면서요.”

그런데 콘서트라는 이벤트를 앞두고 얼굴 한 번 안 내밀어서야 되겠는가?

조아라의 의견은 타당했다.

하지만 성필은 탐탁지 않아 하는 듯했다.

“어…… 아라 네 부모님을……?”

성필은 정말, 정말 탐탁지 않아 하는 듯했다. 그의 반응을 본 조아라가 충격에 빠졌다.

“……뭔데. 난 안 돼요?”

“어, 아니, 되지. 전에 해외 촬영 갈 때도 뵀었잖아. 당연히 되지.”

“근데 반응이 왜 그랬어요?”

“내가 뭐?”

성필이 시침을 뗐다. 그러면서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을 숨기려 평정을 가장했다.

‘아라랑 같이 가서 표를 주려면 집까지 들어가야 할 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 성필은 불현듯 전생이 떠올라 표정 관리가 안 됐었다.

전생에서, 어느 날 조아라가 부모님이 성필을 보고 싶어 한다고 했었다.

물론 성필은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따졌고, 너무 빠른 게 아닌가 했지만, 결국엔 가게 됐었다.

그리고 가보니, 어떤 자리인지 단박에 눈에 들어왔다.

‘어떤 도둑놈의 새끼가 자기 딸이랑 사귀는지 보고 싶으셨던 거지…….’

둘은 꽤 긴 시간을 만났다. 심지어 조아라가 본가에 갈 때마다 성필의 이야기를 즐겁게도 했다는 모양이었다.

궁금하겠지.

당연히 궁금하겠지.

성필이라도 궁금했을 것이다.

‘그날은 진짜…….’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가시방석이란 단어가 어째서 만들어졌는지 알게 됐으며, 그 단어의 창시자에게 무한한 존경을 펼치고 싶은 기분이었으니까.

“아타시(저)도요!”

리카가 손을 번쩍 들었다.

“프로듀서로서 제 집에도 방문……!”

“일본은 너무 멀다.”

“히도이(너무해)…….”

성필이 단박에 거절했지만 리카는 반발할 생각조차 못 했다.

‘일본은 너무 멀다’란 이유는 충분하다 못해 넘쳐흐르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성필은 바쁜 사람이고, 리카도 그걸 알았다.

“그래도 뭐.”

성필이 짐짓 거만 떨면서 말했다.

“리카가 꼭 부탁한다면 어쩔 수 없…….”

“한가한 한 이사님이랑 같이 가야겠네요!”

“한 이사님은 안 한가해.”

“박 이사님은 한국에 있으세요!”

“네가 바라면 갈…….”

“괜찮아요!”

성필은 한구인과 리카가 그녀의 부모님에게 콘서트 표를 주는 광경을 상상했다.

“…….”

마음속으로부터 시커먼 질투가 솟아오른다.

프로듀서로서, 그 역사적인 임무를 타인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리카 혼자 주는 거면 몰라도, 리카랑 다른 사람이 같이 따라가서 주는 건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다.

“리카, 한 이사님은 바쁘…….”

“뭐, 박 이사님이 정말 정말 저랑 같이 가고 싶으시다면 어쩔 수 없는데요?”

“나랑 가자.”

“좀 솔직해지세요! 본심을 숨기는 건 어른이 할 짓이 아니에요!”

멤버들은 모두 흐릿하게든 선명하게든 이 순간을 꿈꾸고 있었다.

처음으로 아이돌 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 그녀들은 따스하게 자신을 감싸주던 집으로부터 나오게 됐다.

그녀들은 다짐했었다.

반드시 성공해서, 모두가 알아줄 아이돌이 되어서 돌아오겠다고.

가족의 걱정하는 표정, 말리는 손짓, 못 믿는 눈빛, 안쓰럽게 여기는 태도. 그 모든 것을 뒤집고 웃음꽃을 피우게 해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럴 순간이 왔다.

‘이게 제 3년의 결과예요.’

그리 말하며 당당하게 티켓을 내밀 순간이, 왔다.

다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연하고도 훈훈한 표정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나둘씩 시선이 어느 쪽으로 향했다.

장하양이었다.

“아하하.”

장하양은 자신이 불청객이라도 된 것처럼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저는 언니랑 멤버들 부모님이 오시는 걸로 족해요.”

장하양에게는 멤버들이 가족이니까.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자신이 이룬 성과의 증명으로 모자람이 없다.

“언니, 저는 괜찮으니까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너희들도.”

장하양은 여느 때와 같이 조곤조곤한 투로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저는 괜찮아요.

* * *

가족에게 티켓을 주어 콘서트에 초대한다는 건, 결국은 자신의 여정을 인정받고픈 마음의 발로이다.

그러니까 장하양은 괜찮다.

자신의 노력을 증명하고 보여주고픈 사람들은 모두 콘서트에 오니까.

괜찮다.

“회사 직원분들도 거의 우리 콘서트 오신대.”

연습 휴식 시간, 백설하가 말했다.

가로 엔터의 직원들 또한 티켓을 한두 장씩 받았다고 한다.

“재호 오빠가 엄청 좋아했어요!”

리카는 A&R팀의 이재호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티켓을 받자 매우 기뻐하여 거의 탭댄스라도 출 기세였다고 한다.

“우리 콘서트 보는 게 그렇게 좋으신가……?”

“부모님이 ‘정확하게 무슨 일 하냐’고 물으실 때마다 대답이 궁했대요!”

“아…….”

이재호의 부모님은 아들의 취직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아들이 매일 퀭해서 돌아오니 어지간히 걱정되는 게 아니었었다.

그래서 거기서 뭘 시키길래 그러냐고 자주 물었다.

하지만 이재호는 어버버할 뿐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다.

음악 차트 확인하고, 칼럼 읽고, 트렌드 점검하고, 섭외하고, 아이돌 분석하고, 곡 받고……. 말해주어도 외부인이 쉽게 알 수 없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콘서트 티켓이 있으면?

‘나 이런 일 해. 한번 보러 와.’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낫다.

이재호는 부모님에게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보여줄 수 있게 되어 기뻐한 것이었다.

더 이상 이상한 잡일만 시키는 회사에 다닌단 오해를 벗을 수 있게 됐다.

“그러면 아저씨 가족들도 오나?”

조아라가 그리 말하자 백설하의 눈에 흥미가 떠올랐다.

“그러게. 아름아, 박 이사님도 초대권 받으셨지?”

신아름은 관심 없단 듯 운동화의 끈을 묶는 데만 집중했다.

“음, 뭐, 그렇겠죠.”

“뵌 적 있어?”

백설하는 성필의 가족은 어떻게 생겼을지, 어떤 성격일지 궁금했다.

하지만 신아름은 대답 대신 끈을 강하게 매고 벌떡 일어났다.

“물 가지러 갈 건데 더 필요한 거 있어요?”

“어? 아, 아니.”

신아름이 연습실을 나섰다.

동생에게 무시당해서 풀이 죽은 백설하를 조아라가 위로했다.

“쟤 콘서트 전까지는 걍 365일 제정신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럴…… 아니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장하양이 깜짝 놀랄 속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로켓이 쏘아 올려지는 듯해서 백설하가 화들짝 몸을 떨었다.

“하양아……?”

“잠시 나갔다 올게요.”

장하양이 빠르게 연습실을 나갔다.

멍하니 그녀가 나간 문을 바라보는 백설하에게, 조아라가 말했다.

“하양 언니도 콘서트 전까지…….”

“언니한테는 그런 말버릇 쓰면 안 돼.”

* * *

성필이 장하양을 응접실로 들이고 차를 타 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간결하고도 놀라운 것이다.

“내 부모님?”

“네. 표 드리러 가시나요?”

장하양은 성필에게 콘서트의 의미에 대해 귀가 닳도록 들어왔다.

뮤지션이 오를 수 있는 최종 단계이며, 모든 이들이 목표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콘서트는 아이돌뿐 아니라 프로듀서에게도 뜻깊은 이벤트일 것이다.

소녀연맹 멤버들이 부모님에게 티켓을 주는 것처럼, 성필도 그 의식을 치를 게 틀림없다.

“어, 가지.”

“박 이사님, 실례가 안 된다면요…….”

장하양은 말을 흐렸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당당한 태도가 몸에 밴 그녀답지 않았다.

성필은 그녀가 무엇을 부탁할지 알 수 있었다.

“저도 같이 뵐 수 있을까요?”

“…….”

성필이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장하양은 가만히 침묵에 휩싸여 있지 않았다.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여달라는 듯, 무의식적으로 상체를 앞으로 천천히 기울였다.

“꼭 직접 뵙고 인사 드리고 싶어요.”

멤버들은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들, 가족에게 콘서트 초대권을 주기로 했다.

장하양은 그럴 수가 없다.

가장 고마운 사람은 이미 콘서트 초대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성필은 장하양의 은인이다.

그렇다면 성필을 낳고 길러준 부모 또한 은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장하양은 그리 생각한다. 성필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장하양 자신에게도 소중한 사람이리라고.

“옛날부터 쭉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장하양은 점점 더 성필의 얼굴을 마주하기 힘들어졌다.

성필의 표정은 무어라 딱 짚을 수 없는 여러 감정을 담고 있었다.

기쁨이나 당혹, 두려움과 씁쓸함.

감정은 여러 개지만, 대답은 하나여야 한다.

그리고 장하양은 그 답을 알 듯했다.

“아하하.”

침묵이 길어지자 장하양이 평소처럼 웃었다.

“제가 너무 깊이 들어갔을까요?”

장하양은 부모의 산소로 찾아가는 심정을 모른다.

물론 성필은 장하양을 가족처럼 여겨주고, 가족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었다.

가족끼리이니 장하양은 성필의 부모님을 뵈는 것도 가능할 줄 알았는데, 아닌 듯하다.

‘그렇지…….’

성필은 장하양 자신을 가족으로 대해주고 있다. 그건 장하양 본인이 가장 잘 안다.

하지만 피가 이어진 진짜 가족이라고 할 수는 없다.

패밀리지만, 비즈니스 패밀리다.

피가 아니라 돈으로 이어진 가족. 물론 때로는 돈이 피보다 더 단단하고 질길 수 있다. 애초에 장하양이 연습생이 되란 제안을 받아들인 게, 성필의 믿음과 돈 때문이었으니까.

‘내가 과했던 거야.’

성필에게 피로 이어진 가족과 같은 따스함까지 기대했던 건 과한…….

“그럴까?”

장하양이 어느 순간 바닥으로 내렸던 시선을 홱 들었다.

그리고 놀랐다.

성필은 쓰게 미소 짓고 있었으며, 그 얼굴에선 두려움이 보였기에.

“아니, 그래 줄래?”

성필이 거절이 당연한 제안을 꺼내는 듯 언뜻 절박한 기색을 담아 말했다.

이런 성필의 모습은 처음이었고, 또 너무 처연했던 터라, 장하양은 무심코 위로하는 투로 다급히 말했다.

“네, 갈게요. 꼭 갈게요.”

“고마워.”

뭐가 고맙다는 걸까.

‘고마운 건 나인데.’

그리고 성필은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 * *

백수현은 화장실 칸 안에 들어와 커버 위에 앉았다. 깍지를 끼고 시선을 내린 뒤 머리를 문에 쿵 박았다.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좁은 화장실 안만 아니었으면 명상처럼 보이기도 했으리라.

‘아니 난 진짜 괜찮았다니까요?’

프로젝트 포유 시즌2에 같이 출연한 무소속 연습생, 민규의 위로가 머리를 웅웅 울린다.

‘형 잘했어요. 키가 커서 그런가 설설 움직여도 막 대단해 보이고 그래요.’

민규의 위로하는 웃음소리가 귀에 선하다.

‘다른 인간들 말 신경 쓰지 마요. 진짜 좋았…….’

쾅.

백수현이 문에 머리를 세게 박았다.

이어서, 자신이 민규에게 답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 그래…….’

“‘그래’는 시발…….”

백수현이 눈을 질끈 감자 눈물이 새어 나왔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운 적이 있었던가? 없었던 듯하다. 그럼 이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 첫 눈물이 너무나 쓰고 괴로웠다.

백수현은 프로젝트 포유에서 탈락하여 합숙소에서 퇴소한다. 그래서 핸드폰을 받은 터라, 학생 때의 습관대로 핸드폰을 꺼냈다.

[안 고독한 소련방]

김채현, 이선주, 그리고 유용태가 속한 단톡방에는 소녀연맹의 콘서트 소식이 가득했다.

그에 더해 백수현을 응원하는 톡도 많았다.

[김채현: 나 진짜 일가친척 카페손님 학교친구 스터디카페 다 돌아다니면서 너 뽑아달라고 함;;]

백수현이 핸드폰을 든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나 탈락했어…….’

그런데, 슬프기만 하지 분하진 않았다.

백수현이 헛웃음을 뱉었다.

‘알아, 내가 개떡 같은 거. 이상한 밈으로 이상한 인기나 모아서 이상하게 높이 진출한 거.’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이곳에 출연하는 이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춤과 노래를 연습해왔다.

‘그런데 난 적당히 살아오고. 고작 춤을 SNS에 몇 번 올리고. 팔로워 좀 생기고. 좋아요 좀 많이 받았다고 들떠선.’

백수현이 자괴감 섞인 웃음을 뱉었다.

‘나 완전 병신 아니야?’

이런 주제에 무슨 아이돌이 되겠다고…….

백수현은 눈물을 닦고 화장실을 나왔다.

합숙소를 나오는 길, 발걸음은 무거웠다. 보이지 않는 진흙이 신발 밑창 곳곳에 달라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

어깨에 멘 가방도, 짐을 좀 버린 터라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가벼울 텐데.

“아.”

백수현은 합숙소 운동장에서 멈췄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여름의 한복판, 싱그러운 풀이 자라났던 곳은 백수현의 마음처럼 갈색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풍경 전체가 빛깔을 잃어간다.

‘집에도 못 가.’

백수현은 어머니와 대판 싸우고 집을 나온 것이다.

반드시 데뷔하겠다는 열의와 소망만을 지니고, 거의 가출이나 다름없는 짓을 감행했었다.

누나도 했는데 자기는 못 할 게 뭐냐고.

‘나 진짜 대책 없는 새끼네.’

집에 돌아갈 방법도 모르겠다.

이곳 주소가 어딘지도 정확히 모르는 마당이니 말이다.

다른 연습생들이라면 부모님이 태우러 와주겠지만, 백수현은 부모님께 연락하지도 않았었다.

단지 탈락이 결정됐을 때 감정이 복받친 나머지 누나한테 전화했을 뿐.

‘걷자.’

백수현은 지도 어플을 켜고 서울까지 걸어가기로 작정했다.

참으로 19살다운 패기였다. 그리고 실제로 가능하기도 할 것이다.

백수현은 걸었다.

다시 눈물이 나왔다. 시야가 흐릿해졌지만, 화장실에서처럼 우울해지지는 않았다.

백수현에게는 우상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꺾이게 두지 않을, 백수현이 따라잡아야 할 빛이 있다.

‘누나는 이런 순간을 수없이 마주하고 넘어왔을 거야.’

백수현보다 훨씬 일찍.

백수현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형태로.

‘그래, 쉬울 거라고 생각한 적 없어.’

누나가 9년의 세월을 들여 겨우 이룬 꿈이다.

자신이 조금 노력해봤자 곧바로 이룰 수 있을 리는 없다.

‘이상한 이미지로 인기를 얻긴 했지만, 인기긴 인기니까. 그럭저럭인 회사 들어가서 연습하자. 실력을 쌓고 데뷔조에 들자. 거기서부터 시작…….’

“수현아!”

운동장 끝에 있는 합숙소이자 촬영 스튜디오의 입구. 그곳에서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백수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누나, 백설하가 달려오고 있었다.

“누…….”

달려온 백설하가 백수현을 확 끌어안았다.

초등학생이 되고 난 후엔 처음 느껴보는 누나의 품이었다.

“수현아, 고생했어.”

“…….”

백수현이 누나를 안고 그녀의 어깨에 눈을 묻었다. 눈물만 조용히 흘리려고 했는데.

“누나아…… 나, 나아…….”

울음까지 새어 나와버렸다.

“잘했어 수현아. 열심히 했어.”

백설하는 동생을 언제까지고 다정히 보듬어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눈물과 울음을 쏟았을까.

부끄러워진 백수현은 누나의 어깨에서 눈을 뗐다. 그녀의 검은색 블라우스의 어깨는, 눈물을 머금은 부분이 얼룩처럼 훨씬 검어져 있었다.

그걸 보니 백수현은 자신이 얼마나 질질 짰는지 알 수 있어 더욱 창피해졌다.

“수현아.”

“어, 바, 박 이사님?”

성필이 보이자 백수현이 엄청나게 당황했다. 그가 있단 사실을 지금까지 눈치도 못 챘었다.

백수현이 얼떨결에 성필과 악수했다.

“힘들었지?”

“괜찮, 괜찮, 감사합니다…….”

백수현이 입술을 물면서 시선을 살짝 내렸다.

자신이 처절하게 오열하는 꼴을 보였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 누나가 부탁해서 오신 거네요.”

아마 성필은 백설하의 부탁을 받고 백수현을 데리러 이곳까지 왔으리라.

백수현이 감사를 표하려 쭈뼛쭈뼛 허리를 숙이려던 순간, 백설하가 그의 손을 꼭 쥐었다.

“수현아, 가자.”

……설마, 가로 엔터?

“집에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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