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화
오전 연습 휴식 시간.
조아라는 헐렁한 상의의 목깃으로 부채질하며 땀이 흥건한 몸을 식혔다.
화장실까지 가는 길, 조아라는 복도를 돌아다니는 많은 이들과 인사했다.
‘사람이 늘긴 했네.’
처음 가로 엔터에 들어왔을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그땐 무슨 스타트업 기업 같았다면, 이젠 꽤 구색을 갖춘 회사 느낌이 났다.
조아라는 갑자기 멈춰 서서 2층 난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몇몇 직원이 휴식을 취하거나 비즈니스적인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아니지.
‘우리가, 소녀연맹이 이 사람들을 전부 책임지고 있는 건가.’
가로 엔터는 소녀연맹이란 이름 하나로 돌아가고 있다. 즉, 소녀연맹이 이 건물 안의 20명을 먹여 살린단 뜻이었다.
소녀연맹이 무너지면.
조아라가 무너지면.
‘내가 무너지면.’
가로 엔터는 끝난다.
조아라의 어깨 위로 20명이란 사람의 무게가 올라왔다. 그녀는 자신의 몸짓과 노래에 수십 명의 인생이 달렸단 게 믿기 어려웠다.
조아라는 사색을 멈추고 화장실로 들어왔다. 세수하고 세면대에 손을 짚어 거울을 보았다.
“……으음.”
조아라가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며칠 전에 리카가 떠들었던 게 기억났다.
‘아라쨩 초(超)미소년이야!’
미소년…….
‘내가 그렇게 남상(男相)인가?’
그야 얼굴의 각과 선이 뚜렷한 데다가, 옛날에 친구들로부터 ‘잘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긴 했지만.
‘남자처럼 생겼다니…….’
아무리 ‘미소년’이란 호칭이 붙는다지만, 조아라는 그게 달갑지 않았다. ‘미소녀’란 호칭이 붙어도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조아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남자니 여자니, 크니 작니, 강렬하니 유려하니, 그런 이분법적인 틀에 갇히길 바라지 않았다.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사고방식은 너무 폭력적이니까.
어느 한쪽에 속하면,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그편이 지닌 특징을 조아라 또한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 나는 조아라처럼 생긴…… 아니.’
자기 자신한테 자기 자신처럼 생겼단 건 이상하다.
‘나는 조아라야.’
조아라가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치명적인 미소를 지었다.
“뭐, 예쁘고? 초미소년이기도 하고? 아이돌 중에서도 그럭저럭 생…….”
조아라가 흠칫하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옆, 화장실 입구에 선 사람을 보았다.
홍보팀 강지혜였다. 그녀는 화장품 파우치를 가지런히 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이었다.
“자뻑한 거 아니에요.”
조아라가 변명했다.
한구인에게 배운 자신감 배양법을 들켰단 게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한구인도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난 독일인도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니고, 한구인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자신감을 북돋는다는 모양이다.
“걍, 잠깐, 뷔라이브에서 인민이들이 주접떨 때를 대비해서 연습…….”
강지혜는 조아라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대신, 조아라의 브랜드 이미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라가 미소년 이미지를 원하는구나!’
당장 비주얼팀에 보고해서 참고해달라고 해야겠다! 강지혜는 조아라의 변명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사라졌다.
“…….”
왠지 모르게, 조아라는 오늘 하루가 피곤할 듯한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은 약 30분 후에 실현되었는데, 진저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조아라 너 연습 땐 핸드폰 무음으로 하랬잖아.”
진동이 울리자마자 신아름이 핀잔을 주었다. ‘네가 뭔데’라고 조아라가 반박하려고 하자마자, 신아름이 백설하의 뒤로 가서 숨었다.
“쌤이 그랬잖아.”
반박 불가.
조아라는 백설하에게 양해를 구한 후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진저]
이름을 보자마자, 화장실 가는 길에 느꼈던 압박감이 한층 더 강해졌다.
어깨가 무겁다.
“쌤! 아라쨩 남친한테서 전화 왔나 봐요!”
조아라가 곤란한 기색으로 전화 받기를 미루고 있자 리카가 곧바로 장난쳤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장하양이 장난을 받았다.
“시에이스 규영 선배님이셔?”
“흐하하…….”
조아라가 지겹단 듯 웃으면서 장하양을 보았다. 장하양은 농담을 주워 담지 않고 주먹을 불끈 쥐여 보였다.
“찐사랑 파이팅!”
“규영 선배 여친 있어요.”
멤버들이 눈을 크게 떴다.
조아라가 자신의 입을 막았다.
“아, 이거 말하지 말랬는…….”
“규영 선배님이랑 얼마나 친하길래 그런 거까지 알아?! 자주 연락하는 거지?! 매일 연락하는 거지 그렇지?! 그거 어장관리야!”
백설하가 심각한 표정으로 조아라의 어깨를 흔들었다.
“여친 있으면서 여자랑 친구란 이유로 자주 연락하는 인간들 꼭 피하랬어!”
“어디서요?”
그야, 아이튜브에서.
그때 요란하게 울리던 진동이 멈췄다.
“끊겼잖아요. 나가서 전화하고 올게요.”
“규영 선배가 연습보다 소중해?!”
조아라도 정확한 이유는 몰랐으나, 백설하의 외침에는 질투와 조바심이 배어 있는 듯했다.
“진저예요.”
“아.”
조아라는 연습실 밖으로 나와 진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저가 전화를 받았다.
[아라 씨 안녕하심미까!]
“어, 바로 못 받아서 미안. 연습 중이어서.”
[아…… 그럼 지금 바쁘신 검미까?]
“아냐, 딱히.”
[죄송함미다.]
진저도 아이돌이기에, 연습이 끊긴단 게 얼마나 맥 빠지는 일인지 알았다.
잠깐 쉬는 것만으로도 쌓아왔던 호흡이 뒤틀리니까.
[그, 박 이사님한테 먼저 전화할 걸 그랬슴미다.]
“…….”
[아라 씨?]
……네가 뭔데 아무렇지 않게 아저씨한테 전화한다고 해?
“아니, 뭔 아저씨는 직장인 아니야? 아저씨도 일 있어. 차라리 나한테 하는 게 낫지.”
[그러고 보니 그렇슴미다.]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면 나한테 편하게 전화해.”
[펴, 편하게. 알겠슴미다!]
진저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밝아졌다. 하지만 곧 그녀는 특유의 오버하는 말투로 바뀌었다.
[아라 씨 컴백한단 게 사실임미까!]
“뭐? 누가 그래?”
[저희 회사 직원분들이 그러셨슴미다!]
“……?”
[언제 컴백하심미까! 저한테까지 알려질 정도면 이미 소문이 파다한 거 아니겠슴미까! 공식 정보는 언제 나옴미까!]
가로 엔터도 모르는 소녀연맹 컴백 정보를 KS 엔터가 가지고 있다?
“무슨 소리야. 우리가 뭔 컴백을 해.”
앨범 작업 자체가 안 이뤄지고 있는데 말이다.
[아, 찌라시였슴미까……. 괜히 기대했슴미다…….]
그 후로는 별거 아닌 담소를 나누다가 전화가 끊겼다.
진저의 입장에서는 매우 뜻깊고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조아라에겐 위장 안에 조약돌을 하나씩 쌓아가는 시간이었다.
조아라는 진저에게 연락받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감정이 살짝 옅었다.
‘우리가 컴백해?’
대체 무슨 소린지.
연예계는 소문으로 이뤄진 밭이라더니, 참으로 그러했다.
조아라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연습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2층으로 올라오는 성필을 발견했다.
조아라는 사무실로 향하는 성필에게 달려가 그의 등을 어깨로 들이박았다.
“악!”
성필이 깜짝 놀라며 돌아보자, 악마처럼 웃고 있는 조아라가 보였다.
“‘악’? 그렇게 놀랐어요?”
“뭐야, 초(超)미소년 아라잖아.”
“돌아버리겠네 진짜.”
역시 홍보팀이다.
강지혜는 정보를 접하자마자 가로 엔터 전체에 조아라의 자뻑을 홍보해버렸다.
세상에 둘도 없을 인재다.
“아저씨.”
“나 바빠. 놔. 구속하지 마.”
“잡지도 않았고 구속도 안 했어요. 근데 우리 컴백해요?”
“뭐?”
“아니, 방금 진저한테 전화 왔는데 우리 컴백하냐고 묻던데요? KS 엔터 직원들이 말해줬다면서요.”
“……???”
성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팬 매니지먼트팀과 홍보팀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당장 조사하라고 했다.
그런데 조사할 필요도 없었다.
팬 매니지먼트팀원인 김승욱이 특유의 헤실거리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어제 새벽부터 트잇터에서 퍼지기 시작했거든요. 오늘 보고하려고 했는데…….”
“새벽까지 트잇터 하셨어요?”
“예? 예. SNS는 다 해요.”
팬 매니지먼트팀은 민경섭이 관리하는 부서 중 하나다.
그들은 팬 마케팅, 팬 커뮤니케이션 등을 담당하며, 팬과 아티스트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그 팀원인 김승욱은 무려 11살부터 아이돌 덕질을 했던 포트폴리오를 수십 권이나 제출함으로써, 당당히 가로 엔터의 직원이 되었다.
덕질도 기똥차게 하면 스펙이 된단 것을 증명하는 산증인이었다.
“제가 정리한 게 있는데 어디 보자.”
김승욱의 반응 정리본을 읽은 성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건 그냥 퍼졌다는 수준이 아니잖아?’
아예 열광의 도가니다.
‘공백기가 10개월을 넘었으니까 이렇구나…….’
성필은 앨범 준비 기간이 특히 긴 그룹, 케이어스의 팬이다.
그렇기에 간간이 던져지는 떡밥의 가치를 안다.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겨울철의 핸드크림, 여름의 도서관 안 에어컨이나 마찬가지다.
소녀연맹 팬덤인 인민이들은 기나긴 공백기에 지쳐 있다가, 마침내 떨어진 떡밥을 물고 열광하는 것이다.
‘중간에 일본 데뷔가 있어서 나름 덕질할 요소를 늘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일본 데뷔나 컴백은, 한국이나 글로벌 팬에게는 부가적인 이벤트에 불과했다.
그들은 일본에서의 데뷔보다 본진인 한국에서의 컴백을 훨씬 더 크게 바라고 있다.
‘물론 일본 데뷔 자체가 보너스 느낌이 있긴 했지만…….’
이건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된다.
성필은 즉시 임원 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보고받은 홍규헌은 추가 설명을 요청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콘서트 계획 최대한 빨리 발표하자. 피드백은 빠를수록 좋잖아.”
토 다는 임원들은 없었다.
“이거 가만히 두면 우리가 컴백을 긍정하는 줄 알 거야. 그리고 또…….”
태블릿을 보는 홍규헌의 표정은 심각했다.
그 안에는 김승욱이 정리한 인민이들의 광적인 반응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콘서트 끝나면 앨범 작업도 최대한 빠르게 시작해야겠어.”
더 늦췄다간 가로 엔터 앞에 시위대가 올지도 모른다.
* * *
유용태. 28살. 남자. 이제 사회초년생 아님.
그는 본인의 취미였던 덕질에 시들해졌다. 가끔 소녀연맹 멤버들의 뷔라이브를 보거나, 아이튜브에서 영상 클립만을 찾아볼 뿐이었다.
그것마저도 요즘엔 그다지 하지 않았다.
‘하아, 지친다.’
소녀연맹의 공백기가 길어져서 그런 건 아니었다. 슬슬 사회인으로서 자리를 잡아갈 때라, 하루하루가 피곤하기 그지없었다.
퇴근하고 집 컴퓨터 앞에 앉은 그는 의자를 뒤로 쭉 당기고 나른히 앉았다.
그의 눈에 거금을 주고 구매한 와이드 모니터가 보였다.
그가 픽 웃었다.
‘소녀연맹 뮤비랑 무대 영상 제대로 보겠다고 이런 걸 샀었지.’
유용태는 뭔가 하려고 마우스에 손을 가져갔지만, 나른하게 퍼지는 피로감 때문에 금방 힘이 빠졌다.
퇴근하고 본인에게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이라 봐야 고작 2, 3시간에 불과하다.
‘이제 사랑이 다 식었나 보다.’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건 본인의 기력과 마음을 바친단 뜻이다.
아이돌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여기며, 그들을 진실하게 응원하는 것이다.
유용태에게는 그럴 기력이 없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힘도 없는데, 타인을 사랑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그냥 침대에 누워서 쉴까.’
고독하고 피로한 현대인의 자화상이 이곳에 있었다. 그때 유용태의 핸드폰이 울렸다.
[김채현]
과거 소녀연맹 덕질로 인연을 쌓은 고등학생이다. 전화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연락은 지속적으로 하고 있었다.
‘안 고독한 소련방’이라는 단톡방이 있는데, 그곳엔 유용태와 김채현,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인 이선주와 백수현이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 소녀연맹 멤버들의 사진을 올리면서 한껏 주접을 떨곤 한다.
요즘엔 프로젝트 포유 시즌2에 출연한 백수현을 응원하는 내용이 훨씬 많긴 하지만.
유용태는 전화를 받았다.
“웬일…….”
[오빠 새로 올라온 떡밥 봤어요?!]
“어? 아니.”
[아니 이 인간 진짜 매일 톡도 확인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채현아……. 너는 나보다 9살이나 어려서 모르겠지만, 사회생활이란 게 힘들어서 덕질할 짬 내는 것도 힘들…….”
[틀.]
“차단함 수고.”
[아니 아니 잠만 기다려봐요!]
“애초에 너 어떻게 전화하고 있냐? 지금 야자 시간 아니야?”
[지금 야자가 문제예요?!]
정말 김채현이 1년 뒤에 수능을 치는 학생이 맞긴 한 걸까? 그녀의 장래 희망은 무엇일까?
유용태는 그녀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소련이들이……!]
김채현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소련이들이 콘서트를 연대요!]
그 말을 듣자마자, 싸늘하게 말라붙어 있던 유용태의 심장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심장은 피를 머금고 싱그러운 붉은 빛으로 변했다. 생명을 품은 정수는 유용태의 눈빛과 머리칼에 생기와 힘을 부여했다.
사그라지고, 말라 떨어지고, 녹슬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
사랑이 다시금 피어올랐다.
[갈 거죠?]
유용태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가야지. 당연히.”
통화를 끝낸 유용태는 소녀연맹의 무대 영상을 쭉 정주행했다.
전설적인 ‘아니’ 데뷔 무대부터 ‘롱 포’, ‘아라베스크’와 ‘보라색 튤립’에 이어 일본 컴백의 신호탄이었던 ‘더 퀸’까지 쭉 보았다.
‘봐도 봐도 안 질려.’
영상만으로도 이만한 아우라가 느껴지는데,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안 갈 수 없지.’
유용태는 식은 게 아니었다.
끓을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 * *
조진만은 가로 엔터에 들어온 순간부터 만면에 꽃이 피어 있었다.
성필은 그가 어째서 기분이 좋은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반응이 대단하더군요.”
“인민이들이 콘서트를 기다리긴 했었나 봐요.”
가로 엔터는 콘서트 계획 발표가 혹여나 달아오른 인민이들에게 찬물을 붓는 게 아닌가 걱정했었다.
‘우리 애들 컴백한대!’라면서 온갖 호들갑에 행복한 상상을 하는 인민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컴백이 아니라 콘서트인데요?’라고 하는 건, 확실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기대한다는 반응이 많은 걸 보니까 저희도 좋네요.”
우려했던 반응은 없었다.
‘콘서트? 오히려 좋아’라면서 커뮤니티와 SNS는 다시금 달아올랐다.
물론 모두가 흥분했던 건 아니었다. 해외의 인민이들은 새로운 소식이 컴백이 아니라 콘서트란 사실에 적잖이 실망했었다.
‘보통 첫 번째 콘서트면 서울에서 한 번 하고 땡 치니까.’
그 반응은 다시 뒤집혔다.
소녀연맹의 콘서트가 해외 투어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케이팝 커뮤니티들도 소녀연맹의 콘서트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해외 쪽 반응이 거세더군요.”
“그럴 수밖에요.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먼바다를 건너서 찾아오는 거잖아요.”
보통은 3년 차를 넘어서 천천히 해외 팬덤을 쌓은 후 바다를 건너기 마련이다.
그런데 고작 2년 차 아이돌, 거기에다 중소 기획사 소속이 해외 투어를 돈다니 해외 인민이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당겨 받은 느낌이리라.
“그렇군요.”
조진만은 손깍지를 끼고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성필이 생각하기로, 그는 좌석이 얼마나 팔릴지 걱정하는 듯했다.
SNS나 커뮤니티의 분위기가 좋다 한들, 직접 표를 사주는 팬들의 수까지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상품을 만들었는데 몇 개나 팔릴 것인가. 조진만은 모든 판매자가 항상 겪는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아, 이걸 전해드리러 왔는데.”
조진만은 갑작스레 상념에서 깨어나, 가방 안에 곱게 보관해둔 편지 봉투를 꺼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봉투를 공손히 내밀었다. 성필도 그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공손히 받았다.
“초대권입니다.”
최초로 인쇄된, 소녀연맹의 콘서트에 입장할 수 있는 권리다.
“감사합니다. 저, 여기서…….”
“당연히 꺼내 보셔도 됩니다. 수량이 맞는지도 확인해야 하고요.”
성필은 떨리는 손으로 봉투의 입구를 열고, 초대권을 한 장 꺼내어 보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황홀감이 성필을 덮쳤다.
이 작은 종이는 몇 년 동안, 아니. 전생을 합하여 수십 년간 간직해왔던 성필의 꿈이 구체화된 모습이었다.
“표, 콘서트, 표…….”
아이돌은 꿈이 모인 존재다.
수많은 인간이 품은 보편적인 미의 기준을 한데 모아 창조된, 자연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환상이다.
따라서 사람들을 매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콘서트란 아이돌이 꿈인 채로 존재할 수 있는 꿈의 세계다.
“박 이사님?”
조진만이 당황하여 가방 안에서 티슈를 꺼냈다. 내민 티슈를 보고, 성필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성필은 눈물을 닦지 않았다.
흐려진 시야로 티켓을 바라보았다.
이 광경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었다. 감동으로 안개가 낀 시야, 그 너머로 비치는 꿈으로의 입장권을.
“하하…….”
성필은 전생에선 오직 꿈이었던 것을 손에 쥐었다.
* * *
성필은 배식권을 나눠주듯이 초대권을 멤버들에게 배분했다.
“다들 숫자 맞게 나왔나 다시 확인해 봐.”
성필은 멤버들이 받은 초대권의 수를 다시금 눈으로 확인했다. 그러던 도중, 꿍한 표정의 백설하가 보였다.
“설하는 아직도 화 안 풀렸어?”
“……화 안 났어요.”
옛날에 백설하가 성필에게 초대권을 요청한 적이 있다.
가족들에게 줄 거라면서 말이다.
그때 성필은 ‘초대권을 대놓고 달라는 건 실례되는 행동이다’라고 했었다. 그런데 며칠 후, 성필이 멤버들에게 ‘다들 초대권 몇 개 필요해?’라고 물어보았다.
백설하는 당황하면서 이렇게 물었었다.
‘그, 그냥, 주시는, 요청하면 주시는, 건가요?’
‘너희들 공연인데 당연하지.’
‘그런데 저한테는 왜……?’
‘왜냐고?’
성필은 어벙한 백설하의 얼굴을 만끽하면서 크게 웃었었다.
그날, 백설하는 ‘진짜 한 명 죽어봐요?!’라면서 흥분하다 못해 광분했었다.
무려 며칠이나 걸린 장난이었다.
그때까지 백설하는 ‘내가 박 이사님이랑 회사에 너무 실례되는 행동을 한 게 아닐까……’라면서 계속 끙끙 앓기까지 했었다.
성필이 백설하를 온갖 방법으로 달래며 부둥부둥 해줘서 어떻게든 넘어갔다만, 아직도 쌓인 게 있는 듯했다.
“설하야, 다섯 장 맞지?”
“……네.”
백설하가 다시 초대권을 수를 셌다.
첫째 동생 백수현, 둘째 동생, 셋째 동생, 아빠, 그리고 엄마.
다섯 장.
갑자기 백설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엄마한테 이걸…….’
아이돌 연습생이 되겠다면서 집을 뛰쳐나갔던 과거는 아직 수습되지 못했다.
심지어 사태가 더 악화된 것 같기도 했다.
강수원과의 갈등을 겪고 자기주장이 강해졌던 백설하. 그녀는 본인의 이름에 맞는 계절인 겨울의 마력에 휩쓸렸던 것인지, 그때 갑자기 깡이 솟아나 본가를 찾아갔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하고픈 말을 전부 쏟아낸 뒤 도망치듯 뛰쳐나왔었다.
“……흐아아.”
백설하가 초대권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창피한 신음을 내뱉었다.
엄마 앞에서 강렬하게 의지를 표명했을 때는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했었다.
자신은 새롭게 태어났으며, 앞으로는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 의지를 벼려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시금 엄마를 볼 생각을 하니 창피함에 얼굴이 절로 달아오른다.
“설하야.”
성필의 부름에 백설하가 얼굴을 가린 초대권을 천천히 내렸다.
성필이 미소 짓고 있었다.
“언제 드리러 갈 거야?”
“네? 어, 음, 아직…….”
“같이 가자.”
“……네? 가, 같이요?”
“생각해 보니까, 설하 부모님은 뵌 적이 없잖아. 이 기회에 내 얼굴도장도 찍어놓지 뭐.”
그 대화를 듣고, 리카는 손에 들린 초대권을 보았다.
리카는 콘서트 전에 잠시 휴가를 얻어 부모님께 초대권을 직접 전달할 예정이었다.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야!’
초대권 전달에 프로듀서가 직접 동행해준다니, 엄청난 특권 아닌가?
리카가 장하양의 옆구리를 슬슬 간지럽혀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장하양이 미소를 지으면서 리카를 보았다.
“이건 리더만 우대해주는 거 아닌가요! 차별이에요!”
“아하하, 그런가?”
“상견례……!”
“상견례 아니야.”
“에?”
“인정해.”
“이, 인정?”
“상견례 아니라고 인정하라고.”
“소, 소데스네(그렇네요).”
장하양의 말투가 너무 고압적이라, 리카는 치려던 장난을 강제로 그만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