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가로 엔터 A&R팀 이재호는 일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의 상사인 손혜빈은 전화 중이라, 간단한 목례로 돌아왔음을 알렸다.
“그래 그래 알겠어.”
손혜빈은 손을 흔들며 이재호를 반겼다. 그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손혜빈의 전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알겠어 성필아. 그래, 뚝. 어, 안 울었다고? 알겠어 임마.”
전화를 끊은 손혜빈은 피곤한 티를 내면서도 얼굴엔 정겨운 미소를 띠었다.
“박 이사님이십니까?”
“네.”
“울었단 게…….”
“아아, 성필이가 매일 하는 거요. 하양이가 연기를 너무 잘하니, 너무 예쁘니, 한국 연극계의 인재를 뺏어왔다느니, 그런 거요.”
“아아…….”
이재호는 대강 성필이 어떤 말투였을지 짐작 갔다. 성필의 아이돌 사랑은 가로 엔터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
“그래서, 재호 씨.”
손혜빈이 부르자 이재호는 허리를 곧추세웠다.
“옙, 팀장님!”
“어떻게 됐어요?”
이재호가 A&R팀에 들어와 처음 배웠던 건, 미래에 섭외할 일이 있을 모든 업체의 연락처를 핸드폰에 저장하는 것이었다.
즉, 그가 가장 중요하며 가장 먼저 배워야 한다고 들었던 업무는 바로 ‘섭외’이다.
그는 요즘 섭외 일을 하고 있었다.
“제가 계속 찾아봤는데, 역시 A급 세션맨들은 다들 스케줄이 차 있었습니다.”
“제대로 다 찾아봤어요?”
“네. 전화로도 연락하고, 직접 찾아뵙기도 했습니다.”
“으음…….”
손혜빈이 곤란하단 듯 자신의 무릎을 매만졌다. 그녀가 생각할 때마다 나오는 버릇이란 것을, 이재호는 알고 있었다.
“지금 제 허벅지 보고 계시는 거예요?”
“아뇨 아뇨 아뇨 아뇨 아뇨!”
“넝담. 뭘 그렇게 질색팔색해요?”
“……하하.”
크흠.
이재호는 목청을 가다듬고 보고를 이었다.
“아무래도, 소녀연맹분들 콘서트가 12월 말이나 1월 초로 잡히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때가 공연 업계 최대 성수기니까…… 웬만한 세션은 다 이미 스케줄이 잡혔지 싶습니다.”
이재호의 업무는 콘서트를 뒷받침할 밴드 세션을 섭외하는 것이었다.
아이돌 콘서트에서는 쌩 음원만 틀어주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으면 반드시 밴드를 동원한다.
밴드가 있으면 현장감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상, 아이돌들은 콘서트에선 모든 곡을 밴드 버전으로 편곡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큰일이네요. 첫 공연이니까 실력 있는 분들을 쓰고 싶었는데.”
“그러게요.”
“큰일이라구요.”
“네?”
“큰일!”
손혜빈이 책상을 쾅 쳤다.
이재호가 움찔 떨며, 혼나는 강아지처럼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혼나기 싫어 혼나기 싫어 칭찬받고 싶어…….’
이재호는 상사의 칭찬을 갈구하는 상태였다. 그렇게 사회 생활을 시작했고, 그렇게 교육받았다.
그리고 이미 방법은 준비되어 있다.
요 며칠, 이름난 세션맨에게 연락을 돌리는 동시에 독자적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그, 그래서 제가 따로 또 알아봤습니다.”
“오오, 믿고 있었어요!”
“‘믿고 맡길 수 있다’는 분들이 다 나가셨으니까…….”
이는 가로 엔터가 늦게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가로 엔터도 소녀연맹의 콘서트가 벌어질 시기가 공연계의 성수란 사실을 인지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공연장을 정하는 것이었다.
올림픽홀과 핸드볼 경기장, 두 곳을 저울질하다가 결국 한계선까지 와서 겨우 결정했었다.
공연 시일을 확정하지 않고 이름난 세션맨을 섭외하는 건 불가능하니, 가로 엔터는 공연장을 늦게 정한 만큼 늦게 움직여야 했다.
“저는 뉴페이스 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저, 재호 씨. 뉴페이스란 게 세션으로 한 번도 안 올라 본 사람이란 뜻은 아니죠?”
“최, 최소한의 검증은 당연히 했습니다! 소녀연맹의 곡에 맞춰 가이드 세션 파일을 받는 중이라……. 나, 나중에 제가 직접 찾아뵙고 사운드를 들어보는 작업까지 할 생각…….”
“어떤 분들한테요?”
“어, 어, 거절당한 세션분들한테 따로 사람을 소개받거나. 아니면 록밴드들요…….”
손혜빈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난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손혜빈이 바란 섭외는, 이재호가 세션맨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떻게든 일을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설마 아예 새사람을 구하는 방향으로 가다니.’
이번 일을 온전히 이재호에게 일임한 건, 그의 A&R로서의 능력을 성장시켜주기 위함이었다.
홍보팀 강지혜에게도 ‘협찬받아와’라는 백지 문제를 주었듯이, 이재호에게는 ‘섭외해’라는 백지 문제를 준 것이다.
‘그래도 뭐, 나름 괜찮네.’
이재호의 수고를 생각하면 나무라는 게 힘들었다. 새 세션을 구한다는 게 말이 쉽지,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으면서 동시에 발품까지 팔았을 것이다.
그냥 전화만 돌린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퇴근하고 나서도 홍대 같은 데 들락거렸겠지.’
월급도 더 안 나오는데 참으로 열심이다.
손혜빈은 만족스레 웃었다.
“그래, 잘하고 있어요 재호 씨.”
손혜빈이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자.
“헤, 헤헤헤.”
이재호가 나사 풀린 사람처럼 웃었다.
짧은 미팅이 끝나고, 이재호는 섭외 작업을 위해 다시 사무실을 나섰다.
그가 소리 없이 복도를 뛰어다니면서 불끈 쥔 주먹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다가 다른 직원을 마주쳤다.
신인개발팀 신준성과 홍보팀의 강지혜였다.
“…….”
“…….”
“…….”
두 사람은 이재호의 기행을 못 본 척, 가볍게 목례하고 유유히 길을 떠났다.
이재호는 붉어진 얼굴로 벽을 짚고 나지막이 욕설을 뱉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홱 들고 자신의 뺨을 쳤다.
‘열심히 하자 재호야!’
밴드 섭외는 콘서트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 손혜빈은 그 중요한 부분에, 이재호 자신을 믿고 맡겨준 것이다.
‘믿음에 보답해야 해.’
그리고, 밴드 사운드는 소녀연맹의 백설하가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었다.
콘서트 세트리스트 중 하나엔 백설하의 기타 솔로가 포함되어 있다. 그걸 받쳐주는 게 밴드 세션이니, 백설하 또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설하 씨에게 최고의 콘서트를 만들어주기 위해…….’
백 오피스, 뒷배경의 사람인 이재호는 최선을 다한다.
* * *
백설하는 적적하게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장하양이 프랑스로 떠난 터라, 이 방은 이틀간 백설하 혼자만의 차지가 되었다.
장하양과 함께 지내면서 별다른 불편을 느끼진 못했지만, 방을 혼자 쓸 수 있단 사실에 조금은 들떴던 걸 부정할 순 없었다.
‘혼자만의 방.’
오로지 자신만의 방, 대체 몇 년 만이지?
3년은 넘은 듯했다.
지금까지 백설하는 엄밀히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항상 멤버들과 함께였다.
‘나 혼자.’
장하양이 떠나간 뒤, 백설하는 결심했다.
이 귀중한 기회를 마음껏 써보자고 말이다.
그리고 프랑스로 떠나기 바로 전날.
“…….”
백설하는 장하양이 없는 고독을 느끼면서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혼자 즐길 수 있을 만한 건 다 즐겼지만, 생각보다 흥이 나지 않았었다.
‘하양이 보고 싶어…….’
백설하는 장하양이 자주 앉는 책상을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저곳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을 것이다.
백설하가 ‘하양아 그거 알아?’라고 물으면, 장하양은 책갈피를 끼우고 백설하를 바라보겠지.
그리고 애정이 듬뿍 담긴 미소를 지으면서 백설하에게로 몸을 돌릴 것이다. 사랑하는 언니의 말을 들어주려 모든 신경을 집중할 것이다.
그런 장하양이 그리웠다.
‘하양아…….’
백설하가 독립한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모처럼, 장하양의 침대를 손으로 쓸었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깨닫고, 그녀는 침대 시트로 코를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향수?”
장하양은 침대에 향수를 뿌리는 듯했다.
처음 안 사실이다.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는, 아주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는 맡을 수 없을 수준이었다. 침대를 은은하게 떠도는 향기였다.
‘의외네. 하양이가 이런 걸 신경 썼구나.’
자기 자신만의 향기를 가진 인간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옷을 입듯이 향수를 뿌린다.
성필처럼 말이다.
‘박 이사님이 그러셨던가. 잘 때 자기가 좋아하는 향기에 둘러싸여 있으면 행복하다고.’
편한 옷과 좋아하는 향기에 감겨 자는 건 정신 건강에도 좋다고 했었다.
장하양도 향기로 본인의 아이덴티티와 멘탈 건강을 챙기는 듯했다.
‘그런데…….’
이 향기는 여자가 뿌릴 만한 건 아닌 듯했다. 건조하고 싸하며, 부드럽기보다는 날카롭기까지 한, 그런 향이다.
‘어디서 맡아본 거 같은…….’
백설하의 머릿속에 어렴풋하게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려 했다.
그 순간, 백설하는 포식자에게 응시당하는 초식동물처럼 머리가 쭈뼛 섰다. 위기감에 문 쪽을 홱 돌아보니, 신아름이 질색이란 듯 바라보고 있었다.
백설하가 반사적으로 변명했다.
“아, 아니, 아니야…….”
백설하의 모습이 어떻길래 신아름의 표정이 저랬느냐. 백설하는 장하양의 침대에 코를 아예 박고 있었다.
“이건, 이거는…….”
신아름이 대답도 듣지 않고 사라졌다. 그녀는 개성이 너무나 강한 멤버들과 함께 지내면서 지혜를 하나 터득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그냥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아니, 아닌데…….”
백설하는 걱정됐다. 내일 또 멤버들에게 어떤 놀림을 당할지 말이다.
그녀가 안절부절못하는 동안, 핸드폰이 윙윙 울렸다. 백설하는 좌절했던 것도 잊고 재빨리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영상통화였다.
백설하는 자기 앞머리를 손으로 몇 번 쓸고는, 통화를 받았다.
[설하야 안녕.]
“네, 박 이사님 안녕하세요.”
성필은 해외에 있음에도 매일 멤버들에게 안부 전화를 걸곤 했다.
새삼스럽진 않았다.
그는 조아라와 미국에 있을 때도 자주 멤버들에게 전화를 걸었었으니까.
오히려 외국에서도 신경 써주는 게 기분이 좋았다.
“거기는 해가 떴네요?”
[그렇지. 여기서 퀴즈.]
“가, 갑자기요?”
[한국과 프랑스의 시차는?]
“…….”
[프랑스 팬들한테 사과해!]
“죄송합니다…….”
성필은 조카의 재롱이라도 본 것처럼 해맑게 웃었다. 백설하도 워낙 이런 상황이 익숙하여 순박한 미소를 띠었다.
“프랑스는 어떠세요? 하양이랑 많이 노셨어요?”
백설하가 은근슬쩍 자신의 머리칼을 손으로 쓸었다. 그녀의 머리칼엔 헤어핀이 달려 있었다. 옛날, 성필이 프랑스에서 선물로 사준 헤어핀이.
그가 알아볼까?
[아니, 이제 식물원에 가려고.]
“식물원요?”
[유이 씨가 추천해주셨어.]
“다 같이 가면 재밌겠네요.”
[한 이사님은 루브르 박물관 가신대.]
“같이 안 가구요?”
[뭔가…… 본인만의 신념이 뚜렷하시더라. 그래서 갈라져서 가기로 했어.]
“으음, 그렇구나.”
백설하는 헤어핀이 잘 보이도록, 핀을 찬 쪽으로 얼굴의 각도를 슬쩍 돌렸다.
핀의 금속성 표면이 형광등 빛을 반사해 반짝였다.
“저어, 저도 관광할 시간 있죠?”
[응, 있지. 많지는 않지만.]
“어디 가요?”
[뭔데. 내가 가이드해주는 게 전제야?]
“아, 아뇨……. 저도 알아볼게요…….”
[저‘도’ 알아볼게요? 진짜 안 알아봤구나? 설하 너, 이사님을 가이드로 써먹으면 되겠어 안 되겠어?]
“죄송합니다…….”
[하아, 리카는 나를 지갑으로 생각하고. 아라는 나를 장난감으로 생각하고. 리더는 나를 가이드로 생각하는구나.]
“어, 으…….”
백설하는 어쩔 줄 모르고 시선을 피했다.
성필의 불만엔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실제로 그가 관광 안내를 해줄 거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었으니까.
어릴 적부터 아이돌 연습생으로 살았고, 아이돌로 활동했었고, 또다시 가로 엔터에서 연습생과 아이돌 생활을 이어가는 백설하.
그녀는 홀로 무언가를 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니저가 무언가를 해주는 데 익숙했다.
“그, 죄송…….”
[물론 내가 다 생각해놨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와! 유이 씨한테 파리 관광 오면 꼭 가야 하는 곳 리스트 받아놨으니까!]
“……이사님, 혹시 제가 곤란해하는 게 재밌으신가요?”
[아, 미안. 기분 나빴…….]
“저는, 저는, 정말로 이사님이 언짢으신 줄 알고…….”
백설하가 우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화면 안의 성필이 잔뜩 당황했다. 그의 눈길은 사방팔방을 오갔다.
그는 바로 앞에 백설하가 있기라도 한 듯 손을 뻗었다. 물론 곧 화면이란 걸 깨닫고 그만두었지만.
“저는 진짜로오…….”
[미안 설하야. 내가 잘못했…….]
“재밌네요.”
[……어?]
백설하가 순진무구하게 웃었다.
“이사님이 자꾸 왜 그러시는 지 알겠어요. 곤란해하는 모습 보는 거 재밌네요.”
[현 시간부로 소녀연맹 리더 백설하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네?!”
[누가 더 사람 곤란하게 잘 만드는지 전쟁이다.]
성필은 짤막하게 웃고는 다정히 말했다.
[설하야, 내일 늦게 일어나면 안 된다. 핸드폰 무음으로 하지 말고. 매니저님 전화는 꼭 받고.]
“네. 안 늦어요.”
[그래, 우리 리더. 뭐든 잘하는 우리 설하.]
“가, 갑자기 왜 그러세요오…….”
백설하가 부끄러운 듯 입술을 꾹 물었다.
[그냥 통화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칭찬부터 나온 거야.]
“……박 이사님,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그거 그만 읽으세요.”
성필은 뭐만 하면 칭찬부터 한다.
“그런데, 이제 통화 끝내야 하나요?”
[응. 하양이랑 식물원 가야 해서. 내일 보자, 설하야.]
성필이 통화를 끝낼 기미를 보였다.
백설하는 살짝 실망했다. 간단하게라도 좋으니, 성필이 그가 준 선물인 헤어핀을 알아봐 주길 바랐다.
프랑스에서 받은 선물 아닌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액세서리인데, 성필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설하야. 그리고 그렇게 자랑 안 해도 다 보여.]
“네? 뭐가…… 요?”
[헤어핀.]
성필이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백설하가 헤어핀을 착용한 위치였다.
[잘 어울리네. 평소엔 연습하느라 안 끼고 다녔던 거지?]
그래서 괜히 통화에서나마 보여주려 한 것이다. 혹여나, 성필이 선물해준 헤어핀을 하고 다니지 않는 걸 그가 못마땅하게 생각할까 봐.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에요’란 표현을 하고팠다.
[고맙네, 이렇게 직접 한 모습도 보여주고.]
그런데 성필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백설하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었다.
[그럼 진짜 끊을게. 옆에서 하양이가 ‘언제 끝나냐’는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
[안 노려봤어요.]
[그래, 그럼 끊을게. 설하야 바이.]
통화가 끝났다.
백설하는 핸드폰을 내려두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벽에 세워져 있던 일렉 기타를 잡았다.
다급히 앰프와 기타를 연결하고 현재의 감정을 표현했다.
현란한 기타 솔로가 방을 거칠게 울렸다. 동시에 백설하의 손가락이 지판을 어지럽게 울리고 현을 튕기었다.
“쌤 캇코이(멋져)!”
어느새 지켜보고 있던 리카가 박수를 쳐주었다.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와 백설하의 옆에 턱 앉았다.
“콘서트 기타 솔로 연습인가요! 멋져요!”
“어? 어, 으, 응. 콘서트 연습이었어.”
“그걸로 갈 건가요! 왠지 가슴이 찌르르 울렸어요!”
“아…… 이걸론 안 할 거 같아.”
“에에에.”
방금은 즉흥 연주였으니까.
리카는 아쉽다면서, 백설하의 기타 실력을 띄워주곤 씻기 위해 방을 나섰다.
백설하는 자신의 기타를 무릎 위에 두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타 솔로.’
백설하는 소녀연맹의 타이틀곡 중 하나인 ‘롱 포’ 무대에서 기타 솔로를 펼친다.
콘서트의 ‘롱 포’ 퍼포먼스는 매우 특이하다. 1절까지는 멤버들이 밴드로서 직접 악기들을 연주하다가, 2절부터는 댄스 퍼포먼스를 보인다.
멤버 전원이 밴드 악기를 다룰 수 있단 건 엄청난 강점이다. 아예 밴드 아이돌이 아니고서야, 그 어떤 그룹도 쉽사리 따라 할 수 없는 묘기다.
‘내 솔로는 2절이 끝난 후의 브릿지.’
모두의 심장을 강타할 화려한 솔로를 보여줄 것이다. 그런데…….
백설하는 원래 하기로 되어 있던 솔로를 연주했다. 그리고 도중, 지판을 짚던 손이 느려지고 줄을 튕기는 게 어려워졌다.
백설하의 숨이 가팔라졌다.
눈을 질끈 감고 호흡을 멈췄다. 그리고 어떻게든 원본 연주를 따라가려 했지만, 도중에 온몸에서 힘이 풀렸다.
“하아, 하아, 하아…….”
백설하의 일렉 기타 스승인 유선영이 직접 만들어준 솔로 연주였다.
‘여기서 더?’
백설하는 계속해서 연주의 난이도를 높이도록 요구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멋진 기타 솔로잉은,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교를 뽐내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 유선영은 백설하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덧붙였다.
‘바꾸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춤과 노래 연습도 바쁠 텐데, 기타에 쏟을 시간은 더 적을 것이다.
그런 배려가 담긴 말이었다.
고작 수십 초의 퍼포먼스를 위해, 백설하는 춤과 보컬에 비견되는 시간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런 유선영의 배려에 백설하는 오히려 오기가 생겼었다.
‘할 거야.’
백설하는 팬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여러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말 감탄하여 입을 쩍 벌릴 정도의 능력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여러분들은 이렇게나 멋진 아이돌을 좋아하고 있는 거라고.
백설하는 땀을 닦고 다시 연주에 열을 올렸다.
* * *
백설하는 한 손에는 캐리어를, 반대쪽 어깨에는 기타 케이스를 메고 현관에 섰다.
장하양을 제외한 멤버들이 그녀를 마중 나왔다.
“쌤, 잘 다녀와요.”
조아라의 포옹을 시작으로, 백설하는 멤버들을 한 번씩 안아주었다.
포옹을 마치고, 백설하는 기대감이 잔뜩 밴 얼굴로 말했다.
“응, 다녀올게.”
백설하는 아침의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문을 나섰다.
이제 그녀에게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프랑스, 새로운 땅, 촬영, 무엇보다 여행.
백설하는 기대감 때문에 가벼워진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가자, 프랑스로.’
백설하는 숙소를 나섰다.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에선 어느 정도 평정을 유지했으나, 땅을 밟곤 그럴 수 없었다.
백설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흥겨운 걸음을 밟았다.
‘여행이다.’
갑자기 멈춰선 백설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여, 여행이 아니라 일이지.’
일을 위해 프랑스에 간다.
들뜨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프로로서…….
“…….”
백설하는 다시금 경쾌한 스텝을 밟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여행이다! 프랑스에 간다!’
물론 프랑스에 가는 것도 기쁘지만, 오랜 시간 보지 못했던 이유이, 한구인, 그리고 성필을 보는 것도 기뻤다.
백설하가 자기도 모르게 풀어진 웃음을 보였다.
‘빨리 뵙고 싶다.’
백설하의 이야기가, 지금 시작되려 했다.
여름이었다.
* * *
“다녀왔어어…….”
백설하가 지친 얼굴로 숙소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장하양이 현관으로 마중 나왔다. 그녀는 백설하의 손에서 캐리어를 받았다.
“아, 고마워 하양아.”
“아녜요. 많이 힘드셨죠?”
“기타는 아타시(저) 주세요!”
동생들이 현관에서부터 반겨주자, 피곤함이 배경인 백설하의 얼굴에 자그마한 행복이 점점이 피어났다.
“프랑스는 어땠나요!”
“으아, 힘들었어어……. 특히 기타는 정말 괜히 가져간 거 같아…….”
“놀러는 어디 갔나요!”
“리카, 언니 힘드시다잖아. 언니, 일단 들어오셔서 옷부터 갈아입으세요. 욕조 쓰실래요?”
“아, 아니, 내가 할…….”
“준비할게요.”
“얘기는 다음에 들을게요! 밥은 먹었나요!”
백설하의 미소에 따스함이 배었다.
‘돌아왔네, 집으로.’
백설하의 이야기가, 지금 끝났다.
어느 순간,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