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335화 (335/760)

335화

조진만은 타협의 여지도 없단 듯 단호한 어투를 구사했다.

멤버들은 무어라 하려던 것도 그만두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대신 성필에게 도움을 구하려 시선을 돌렸다.

“맞아, 힘들지.”

아니 - 팅글 - 아라베스크로 이어지는 오프닝 메들리는 멤버들에게 엄청난 체력 소모를 강요할 것이다.

전부 타이틀급에다가, 적당히 추는 게 허용되지 않는 난이도의 퍼포먼스니까.

“그런데 이게 보통이야.”

“이게요?”

조아라는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세트리스트를 다시 보았다.

“아이돌 콘서트의 역사도 30년에 가깝습니다.”

조진만이 설명을 시작했다.

“노하우가 쌓일 대로 쌓인 시점이죠. 일반적으로 아이돌 콘서트는 시작부에 히트곡을 2개에서 3개를 연달아 배치해서 분위기를 끌어올립니다. 처음부터 불타오르게 만드는 거죠.”

“설하는 아이돌 콘서트 본 적 있지? 어땠었어?”

“그게, 제가 정말 어렸을 때 본 거라서 기억이 잘 안 나요…….”

“또 아이돌 콘서트 본 적 있는 사람?”

손 드는 멤버는 없었다.

그에 성필이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멤버 중 콘서트를 본 이가 없어서 받은 충격이 아니었다.

“리카랑 아름이 너희…… 포유 콘서트 본 적 있잖아……?”

“앗!”

“아.”

티켓 보내준 우효민, 방구석에서 통곡.

“근데 걔네한테 히트곡이랄 게 있었나? 콘서트 오프닝은 딱히 기억 안 나는데요.”

이음 엔터 대표 김명운, 통한의 오열.

성필은 김명운 대신 눈물을 삼켜주면서 다른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장하양이 쭈뼛쭈뼛 팔을 올렸다.

다들 놀라서 그녀를 보았다.

“언니 아이돌 콘서트 가봤어요? 우리 회사 들어오기 전엔 아이돌에 관심도 없었다면서요.”

“아니, 박 이사님 집에서 블루레이로 봤었어.”

장하양이 성필의 집에 갔단 소리에 조진만이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성필이 즉시 변명했다.

“제가 옛날에 미국에 갔었거든요. 그때 기념품으로 하양이한테 뮤지컬이나 연극 블루레이를 사다 줬어요. 근데 숙소에 블루레이 재생기가 없어서, 한 번 우리 집에 온 적이 있었어요.”

“……사장님도 알고 계신지.”

“네? 당연히 사장님한테 허락 맡았죠.”

조진만은 혼란스러웠다.

그는 올해 초 자신이 연출한 발라드 가수의 콘서트장에서 성필과 홍규헌이 같이 있는 장면을 목격했었다.

영락없이 둘이 사귄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그걸 허락해줬다고?’

역시 사장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감이 어마어마한 모양이다.

장하양 혼자 성필의 집에 들르는 걸 허락하다니.

‘아니면 박 이사님의 프로 의식을 믿고 계시거나.’

아무튼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가로 엔터 사람 중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는 걸로 보아…….

“하, 하양이가 이사님 댁에 갔었다고요?”

이유이가 어버버 말했다.

모두가 아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성필과 장하양의 변명 시간이 끝나고,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왔다.

“하양아, 그때 봤던 콘서트 느낌은 어땠어?”

“제가 WTP 선배님들 곡을 잘 모르긴 한데, 처음엔 놀랐어요. 전부 히트곡들이라 저도 아는 거여서요.”

“어떤 생각 들었어?”

“히트곡을 초반에 다 쏟으면 나중엔 어떤 곡을 보여줄까…….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같은 거요.”

“그렇지. 잘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데 조진만 사장님의 말씀대로, 정석은 초반에 히트곡을 연달아 배치하는 거야.”

그것도 쉬는 시간 없이.

“그럼 후반부는 어떡해요? 사람들이 알 만한 곡을 초반에 다 내보내면, 후반부가 상대적으로 텅 비는 거 아녜요?”

조아라가 콘서트 초심자다운 반응을 보였다.

“아라야, 콘서트에 오는 사람들이 누굴까 생각해봐. 100,000원 돈을 주고 보러 오는 사람들이 누구일지.”

“……아.”

소녀연맹의 팬이다.

그것도 상당히 코어한 팬.

“대중들이 아는 건 너희 타이틀곡 정도겠지. 그것도 한두 개가 전부일 거야. 근데, 콘서트에 오는 사람이면 최소 앨범 한 번씩은 다 돌려봤어. 아니, 보통 아이돌 팬덤이면 앨범 수록곡도 다 꿰고 있지.”

“그렇겠네요.”

“너희가 서는 건 행사 무대나 음악 시상식, 음방 무대가 아니야. 콘서트엔 너희를 잘 아는 사람, 너희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와.”

그러니, 초반부에 히트곡을 쏟아도 문제가 없다. 어차피 팬들은 소녀연맹의 수록곡을 전부 꿰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곡들이 있을 테니까.

“아타시(저)도 질문요!”

“그래, 리카.”

“콘서트의 분위기는 이렇게 돼야 하는 거 아닌가요?”

리카의 손이 사선 위로 직선을 그리면서 올라갔다. 정비례 그래프를 그린 그녀의 손이 정점을 찍었다.

“마지막에 확 달아오르게요! 그런데 저희 수록곡들이 전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리카의 손은 방금 그렸던 깔끔한 정비례 그래프 대신, 출렁이는 몇 줄기의 곡선을 그렸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리카, 너희가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면 힘들겠지?”

“당연하죠!”

“관객들은?”

“에?”

“관객들은 안 힘들까?”

“……힘든가요?”

“힘들지!”

성필이 열렬하게 팬의 심정을 어필했다.

“계속 응원봉 흔들고 함성 지르고 곡에 맞춰서 방방 뛰는데 당연히 힘들지! 게다가 콘서트장 들어오기 전까진 계속 서 있잖아. 그것만 해도 힘든데, 2시간 동안 콘서트장에서 서 있는 것도 중노동이야.”

“아, 그래서 초반부에 힘을 쏟는 거네요!”

“맞아. 가장 힘이 있을 때 가장 신나게 즐길 수 있게 하는 거야.”

콘서트장에 들어오자마자 애매한 리듬의 곡이나 발라드가 나온다면, 팬들은 잘 맞춰주겠지만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다.

팬들은 신나게 응원하고 놀려고 왔으니, 초반에 폭풍처럼 몰아쳐야 한다.

“초반부엔 신나게 놀고, 후반부로 갈수록 여운을 짙게 느끼도록 곡을 배치하는 거지.”

“……그래도.”

백설하는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초반부의 타이틀곡 메들리는, 비록 해보지는 않았지만 불가능에 가깝단 예감이 든다.

‘이거 하나만 연습하고 무대에서 펼치는 것도 엄청 힘들었어.’

데뷔, ‘아니’를 연습하던 때 다들 얼마나 고생했던가.

일본 데뷔를 앞두고 ‘팅글’을 맞췄던 건 어떻고? 비록 ‘아니’보다 난이도는 낮았지만, 일본에 맞춘 느낌을 살리는 데 애를 먹었다.

그리고 소녀연맹 곡의 최종 보스, ‘아라베스크’의 연습 기간엔 숱한 갈등마저 벌어졌었다.

‘이걸 휴식 시간 없이 연달아 춘다고?’

그냥 연습으로 해결되는 일일까?

일본 데뷔 쇼케이스 때는 메들리 중간마다 꽤 긴 휴식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타이틀급의 곡을 연달아 하면서도 여유로울 수 있었는데…….

“이걸 저희가 할 수 있…….”

“할 수 있어.”

성필이 확언했다.

그의 자신감이 너무나 뚜렷해서, 백설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전부 하지도 못했다.

“그럼 이 회의 끝나자마자 해볼까?”

멤버들이 우려 섞인 시선을 주고받았다.

성필이 이렇게나 기대에 가득 차 있는데, 혹여라도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면 어쩌나 걱정됐기 때문이다.

‘쌤 말이 맞는 거 같은데.’

체력과 지구력엔 자신 있는 신아름 또한 우려를 표했다.

성필이 시킨다면 뭐든 하겠다고 결심한 신아름이다. 물론 연습 시간이 충분히 주어질 때, 이 세트리스트에 따라 퍼포먼스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도 그럴까?

“그래, 그러자. 회의 끝나고 바로 하는 거야.”

성필은 일단 멤버들의 걱정을 불식시키고,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갔다.

중압감 때문인지, 멤버들은 회의 내내 자신감이 없었다.

* * *

“하아, 하아.”

백설하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다른 멤버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엔딩 포즈를 취한 채로 공기만을 갈구하며 가슴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중이다.

동시에 얼굴 전체에 땀을 로션처럼 펴 바르고, 상의의 목깃에는 땀이 흥건히 배어 있다.

그런데…….

“이, 이게, 왜 되지……?”

성필의 말마따나, 정말로 됐다.

아니 - 팅글 - 아라베스크가 휴식 시간 없이 연속으로 가능했다.

당연하지만, 힘들었다.

정신이 혼미하고 손발이 벌벌 떨린다. 그럼에도 이 고난도의 과업을 이뤘단 흥분감에 고통 따위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수고했어 얘들아.”

성필이 엔딩 포즈를 푼 멤버들의 어깨에 하나씩 수건을 얹어주었다.

“아무리 잘 단련한 아이돌이라도 격렬한 댄스곡을 3개 연달아 하면 힘들어. 맨정신으로 서 있는 것도 힘들지. 그걸 역으로 말하면, 3곡까지는 괜찮단 거야.”

케이팝 아이돌의 역사 30년.

콘서트 기획자들도 일반적인 아이돌의 한계점을 차고 넘치도록 파악한 지 오래였다.

그들이 집약한 노하우의 첫 번째는, 콘서트의 시작엔 히트곡 2-3개를 연속으로 진행한단 것이다.

관객들의 호응을 가장 잘 이끌어내며, 아이돌 본인들도 소화할 수 있는 한계 범위가 댄스곡 3개였다.

“다른 그룹들도 보통 이렇게 해. 너희들도 할 수 있단 거지.”

“아니, 이건, 이게…….”

장하양은 믿지 못하겠단 듯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안에선 소녀연맹 타이틀곡을 쉼 없이 추던 자신의 모습이 잔상처럼 이어졌다.

다들 장하양처럼 놀라 있었다.

단 한 번도 퍼포먼스를 휴식 없이 연속으로 해본 적이 없었기에, 본인들의 한계를 몰랐었다.

“얘들아, 너희는 옛날이랑 달라.”

성필이 자부심을 한껏 담아 말했다.

넋이 나가 있던 멤버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아니’ 하나만 데뷔 전에 3개월 동안 연습했어. ‘팅글’도 비슷한 기간을, ‘아라베스크’도 그랑 비슷한 기간을. 너희는 각각의 곡에만 100일을 투자한 사람들이야.”

게다가 방송 무대는 몇 개를 섰는가?

행사 무대는 또 몇 개를 섰는가?

멤버들이 한 곡에 투자한 노력의 시간은 수백 일을 넘으며, 흘린 땀방울은 수만 개를 넘는다.

“이건 너희 곡이야.”

소녀연맹의 곡이다.

그렇기에 전 세계에서 소녀연맹이 가장 잘 부르고, 잘 추고, 잘 소화할 수 있다.

“너희 곡이니까, 당연히 할 수 있지.”

성필이 가장 앞에 선 백설하를 시작으로 멤버들의 어깨를 한 번씩 두드려주었다.

“데뷔 때의, 컴백 때의, 1년 차의 소녀연맹이 아니야. 퍼포먼스 하나에도 기력이 전부 빠져나갔던 옛날의 너희들이 아니야.”

어깨를 두드림으로써 격려를 마친 성필은, 모두를 한눈에 담고 뿌듯한 미소를 보였다.

“이게 지금의 너희야.”

장하양은 감동에 복받쳐 입을 틀어막았다.

데뷔 때 ‘아니’를 연습하면서 겪었던 순간들이 뇌리를 빠르게 지나갔기 때문이다.

한 곡을 추고도 손발이 덜덜 떨려서 몇 분이나 일어나지 못했었다.

억지로 기력을 얻기 위해 물에 소금과 설탕을 타서 마셨다.

고통을 호소하며 요동치는 다리로 수십, 수백, 수천 번 ‘아니’를 추고 노래를 불렀었다.

그리고 마침내 음방 무대에 서서 노력의 결심을 쏟아냈었다. 그러고도 완벽하지 않으며, 심장이 미친 듯이 뜀박질 쳤었는데…….

“됐구나, 나, 할 수 있네…….”

멤버들은 우는 장하양을 보고 눈물샘이 터졌다. 그녀들은 둥지에 모인 새들처럼 똘똘 뭉쳐 장하양을 안아주었다.

“나, 정말로 아이돌이 됐어…….”

* * *

본격적으로 콘서트 계획이 시작되고, 멤버들은 진지하게 콘서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연출을 하고 싶지?

어떤 무대를 만들고 싶지?

어떤 의상을 입고 싶지?

팬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지?

그 해답은…….

“박 이사님 집에 가야 해요!”

연습 쉬는 시간, 리카가 열변을 토했다.

장하양이 성필의 집엔 아이돌 콘서트 블루레이와 DVD가 산처럼 쌓여 있단 이야기를 들려준 직후였다.

“박 이사님이 피땀 흘려서 번 돈으로 모은 콘서트들을 봐야 해요! 레퍼런스가 있어야 아이디어가 나오니까요!”

“아저씨 집 좁잖아. 우리가 다 가면 앉을 자리도 없겠다.”

멤버들은 성필의 집에 간 적이 있다.

‘아니’를 녹음할 때, 그가 몸살이 걸렸었다. 녹음이 끝나고 병문안으로 그의 집에 들렀었다.

“애초에 왜 팀장님 집 가야 하는데. 우리 숙소에도 플레이스테이션 있잖아. 그냥 콘서트 블루레이만 빌리면 되는 거 아니야?”

쯔쯔.

리카가 검지를 저었다.

“박 이사님 집엔 수백만 원짜리 테레비가 있어! 한쪽 벽을 절반이나 덮는 테레비! 근데 우리 숙소에 있는 건 10년도 더 될 법한 기종이잖아! 경험이 다르다구 경험이!”

확실히, 성필의 집에 있는 TV로 아이돌 콘서트를 시청하면 꽤 분위기 있을 것이다.

심지어 사방을 전부 커버하는 서라운드 시스템까지 있으니, 숙소에 있는 것과는 경험의 질 자체가 다를 것이다.

“음…….”

“하양 언니도 동의하는 건가요!”

“음?”

장하양은 그저 리카가 다른 속셈이 있다고 느껴져서 고민했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그냥 성필의 집에 놀러 가고 싶어 하는 걸로밖에 안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쌤!”

“응?”

“쌤이 박 이사님한테 말해주세요! 리더로서 그룹의 의지를 전하는 거예요!”

“……내가?”

“근데 진짜 보고 싶긴 하다. 그런 TV로 콘서트 보면 좋을 거 같긴 한데.”

“아라쨩도 좋대요! 빨리 빨리!”

“이럴 때만 리더지 너희들…….”

어차피 성필에겐 다른 용무도 있던 터라, 백설하는 그를 찾아갔다.

성필은 사무실에 있었다.

백설하는 새로 들어온 직원들과 눈이 맞을 때마다 고개를 꾸벅꾸벅 숙였다.

“박 이사님.”

“어, 설하야.”

성필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곧바로 백설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저기…….”

백설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저히 여기서 할 만한 말은 아니었다.

“밖에 나가서 얘기할까?”

“그으, 그래 주실래요?”

성필은 백설하와 함께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근처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백설하는 속전속결로 말을 쏘아댔다.

“저희가 콘서트 연출 아이디어 때문에 고민하고 있거든요. 역시 레퍼런스가 많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건 맞지. 내 집에 있는 콘서트 블루레이랑 DVD 빌려줄까?”

“아…… 애들끼리 얘기한 건데요. 이왕이면, 박 이사님 댁에서 큰 걸로 보는 쪽이 낫지 않을까 해서요…….”

소녀연맹이 성필의 집에 방문해도 괜찮은가.

그 대답은.

“곤란하지.”

“아…….”

“이제 회사에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집에 다 같이 모이는 건 좀 힘들지 않을까.”

그렇겠지.

담당 아이돌들이 프로듀서의 집에 단체로 방문하는 게 어찌 보일지, 백설하도 잘 알았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더라도, 성필의 선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꼭 내 집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장하양이 블루레이를 보기 위해 성필의 집에 올 수 있던 건, 그게 아니고선 볼 방법이 없어서였다.

소녀연맹의 숙소에는 떡하니 블루레이 재생기가 있으니, 이젠 장하양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순 없다.

“미안해.”

“아, 아니에요. 이사님이 미안해하실 게 뭐 있다구요.”

“또 변명하자면 내 집은 좁아서 되게 복작거릴 거야. 진득이 감상하지도 못할걸?”

“그렇네요. 네, 알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무는 그걸로 끝이야?”

끝이 아닌 듯 백설하가 망설임을 보였다.

그녀는 아까보다 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희 콘서트 있잖아요. 표를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설하 이 녀석, 아직 공연장도 안 정해졌는데 벌써 표 달란 거야?”

“아 죄, 죄송…….”

“아냐. 표 줄 수 있지. 몇 개 필요해?”

“네 장, 아니, 다섯 장이요.”

“수현이랑 동생 둘, 부모님 거지?”

“……네.”

“음, 그럼 대략 500,000원이네? 나중에 설하 정산금에서 빼면 되지?”

“네?!”

“농담이야.”

“…….”

백설하는 작게 웃었다.

성필은 백설하와 대화할 때마다 그녀를 골탕 먹이곤 한다. 조금 당황스러운 말을 해서 백설하의 반응을 끌어내고 좋아한다.

짓궂지만, 백설하는 그런 성필의 친근한 태도가 좋았다.

“조 사장님한테 말씀드려서 따로 5장 초대권으로 빼놓을게. 근데, 이렇게 따로 표 달라고 하는 거 별로 좋은 일은 아니야.”

콘서트 기획자는 콘서트가 다가오면 한 가지 싸움을 하게 된다.

바로 사방에서 찾아오는 ‘초대권 좀 주면 안 돼?’란 제안을 물리치는 것이다.

기획자이니 초대권 자리를 만들 순 있다. 하지만 그게 남발해도 된단 뜻은 아니다. 초대권 좌석을 늘이는 건 수익 감소로 연결되니 말이다.

물론 매진을 확신할 수 없으니, 조진만과 가로 엔터는 일정 비율 좌석을 초대권으로 채울 생각이다.

다른 기업에 협찬을 대가로 초대권을 주어, 그 기업이 콘서트 표로 이벤트를 연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래도 주인공인 소녀연맹 리더 백설하 님의 부탁이니 어쩔 수 없지.”

“감사합니다.”

“용무는 이걸로 진짜 끝?”

“아…… 그건, 아닌데…….”

실은, 일본에서 돌아왔을 때부터 회사 사람들에게 묻고픈 게 있었다.

그녀는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혹시, 수현이가 저희 회사 오디션 봤나요? 아니면 이미 여기 있다거나…….”

백설하는 계속 그게 마음에 걸렸었다.

명절에 본가로 갔을 때, 백수현은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러니 가로 엔터로 왔을 가능성도 있었다.

적어도 오디션을 한 번쯤 봤을 법하다.

‘연습생 얘기는 하지 말래서 회사 분들한테도 못 물어봤지만…….’

그래도 동생에 관련된 것이니, 물어보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뭐야, 수현이 소식 몰라?”

성필이 진심으로 의외란 듯 목소리를 높였다.

“네, 네? 수현이가…… 왜요……?”

“진작 아는 줄 알았는데. 아, 어쩐지 요즘 네가 자꾸 나만 보면 안절부절못했던 게 그거 때문이었구나. 수현이 어떻게 됐는지 물어보려고.”

“……네.”

“그 정도는 얼마든지 물어봐도 되는데. 그런데 몰랐었구나. 와, 설하 커뮤니티나 SNS 안 본다는 거 진짜였네. 좀 신기하다.”

백설하의 당혹이 점점 짙어졌다.

성필은 백수현의 소식을 당연히 알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수현이 지금 엄청 유명해.”

“……네? 수, 수현이가 유명하다구요?”

“응. 잠깐 들어올래?”

성필은 백설하를 사무실의 자리로 이끌었다. 그녀에게 의자를 내어주고, 성필은 아이튜브에 접속했다.

모니터에 뜬 아이튜브 화면에서, 성필이 익숙한 이름을 검색했다.

“수현이 ‘프로젝트 포유 시즌2’ 나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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