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화
“오오, 바다.”
조아라가 기대감에 차서 신아름과 어깨를 부딪쳤다.
“야, 바다 가자.”
“왜?”
“나 수영복 입어 본 적 없거든. 이번에 입어 보면 되겠네.”
“우리 아라, 그 나이까지 수영복 입어 본 적이 없어요? 근데 네가 입는 끈팬티가 수영복 10배 상위호환이니까 너무 박탈감 느끼지 마.”
“야, 내가 누누이 말하는데 입어 보고 말하라니까? 그 압박감이 없는 자유가…….”
“크흠.”
민경섭이 헛기침했다.
“얘들아, 여성성 어필은 그만해줘.”
“어필한 적 없어요!”
“여자들 앞에서 근육 자랑하는 남자 같아.”
“뭔…….”
“설하는 가는 거 확정이지?”
멀뚱멀뚱 있던 백설하가 움찔했다.
“저, 저요?”
“어. 형이 그러던데? 옛날에 가겠다고 답했다면서.”
“제가……? 아, 혹시…….”
“크흠.”
민경섭이 또다시 헛기침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온 그의 목소리는 성필과 닮아 있었다.
“‘설하야, 나는 눈이 좋아.’”
“어?!”
“‘죽을 때까지 널 보면 눈이 생각날……’.”
“그만! 기억났어요! 그만 하세요! 아, 그때! 네, 가야죠!”
“오케이, 한 명 확정.”
백설하가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멤버들을 보았다. 멤버들이 뚱하게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언니…….”
장하양이 이마를 짚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건 회사 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어요.”
“회, 회사 건전성?”
“언니가 박 이사님한테 그렇게 말해달라고 하셨을 리 없으니, 그 말을 할 분위기가 조성됐겠죠?”
“어어…….”
“‘죽을 때까지 널 보면 눈이 생각날……’이라고 말할 분위기는, 적어도 제가 상상할 수가 없네요. 그건 반쯤 데이트예요.”
“어?!”
“리카, 판결 내려줘.”
“회사 권력 사적 점유얏! 박 이사님이 쌤한테 접근 못 하도록 해야 해요!”
“아니면 그 반대거나.”
백설하, 성필에게로의 접근 통제!
“……헤헤.”
백설하는 그냥 멀거니 웃었다.
슬슬 동생들에게 놀림당하는 게 익숙해지기도 했고, 여기서 진지하게 대꾸하거나 반응해봤자 더 놀림받는단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러 시련을 거쳐 성장한 백설하는 무언가가 다르다.
“근데 조아라 너 수영복 입어 본 적 없으면 수영도 못 하는 거 아냐? 바다 가서 뭐 하게?”
“여기 수영할 줄 아는 사람 있어? 없을 거 같은데.”
수영은 따로 배우지 않으면 못 하는 게 당연하다. 한국인 중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대략적으로 인구의 1/5이라고 한다.
과연,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듯 리카와 신아름이 손을 들었다.
“아타시(나)는 학교에서 배웠어!”
“학교에서 수영도 가르쳐줘? 리카 너 부잣집이야? 좋은 학교 다녔나 보네.”
“보통 아닌가?”
“신아름 너는 의외네.”
“옛날에 팀장님이 수영장 데려가서 줘서 배웠어. 인생 모르는 거라면서 꼭 배우라더라.”
“어, 어? 어어? 으, 어?”
“하양 언니 왜 고장 났어요.”
“아니…….”
놀라서 그런다.
“그럼 아름이 너 이사님…….”
“아, 그거요? 당연히 같이 갔으니까 내가 수영복 입은 거 팀장님도 봤죠. 중학생 때긴 한데.”
“이사님 수영복 입은 거 본 거야?”
“질문 핀트가 이상하지 않아요? 봤죠, 뭐.”
“어, 어떤 거 입으셨어?”
“그냥…… 평범? 딱 평범하던데요.”
“이사님한테 수영 배운 거야?”
대답하려던 신아름은, 멤버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무슨 생각하는지 딱 알겠다.
“미리 말하는데, 팀장님이 손잡아주고 개헤엄치고 안 그랬어요. 강사한테 배우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럼 이사님은 뭐 하셨어?”
“그냥 선베드에 앉아서 계속 저 봤는데요.”
“이사님은 수영 못 하셔?”
“할 줄 알아요. 마지막엔 저랑 수영으로 승부도 했고…….”
인정사정없이 승부에 임한 결과, 성필이 압도적으로 승리했었다.
그러곤 어찌나 신아름을 놀렸던지, 아직도 그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수영 막 배운 사람 이긴 게 그렇게 즐거웠던 건가.
‘그땐 팀장님이 뭐 잘 못 먹었나 싶었는데. 이제 떠올리면 그게 팀장님 원래 성격이었구나.’
석세스 엔터 시절이라, 회사에서는 장난기를 숨기고 있던 것이었다.
“나도 바다가 좋아.”
장하양이 대뜸 선언했다.
리카는 지원군을 얻어서 좋아했고, 조아라도 그러했다.
“그럼 이미 3표 나왔으니까 소녀연맹은 바다로…….”
갑자기 조아라가 큭큭 웃었다.
왜 그러냔 뜻으로 다들 바라보니, 조아라가 웃음을 누르면서 겨우 말했다.
“아니, 바다랑 수영복 하니까 옛날 생각나서요. 아저씨가 했던 말요.”
“뭐라고 하셨는데?”
“수영복 입고 케이어스 ‘카오스’ 추면 10만 원 준다고…….”
“회사 권력 사적 점유야아아아아!”
리카가 극렬히 반응했다.
“아라쨩! 그런 요구를 받으면 당장 한 이사님한테 달려가서 징계 건의서 달라고 해야지! 그냥 넘기면 계속 당할 수밖에 없어! 혁명은 나부터 시작하는 거야!”
“너 거짓말하는 거지? 팀장님이 진짜 그랬어? 말이 돼?”
신아름은 아예 충격을 받아서 목소리까지 떨었다. 그에 장하양이 신아름을 달랬다.
“진심이 아니셨겠지.”
“아, 어, 그렇겠죠?”
“그래. 아라가 또 이상한 말 해서 대응하신 걸 거야. 그렇지 아라야?”
“다들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
“심각해.”
민경섭이 끼어들었다. 그의 얼굴은 이제껏 봤던 표정 중 가장 진지했다.
“오빠?”
“박성필, 너를 평생 형으로 받들기로 했건만……! 장난이라도 담당 아이돌한테 그런 말을……!”
“아니, 그거 내가 먼저…….”
“박성필 너는 내 마음을 배신했다……!”
민경섭이 연습실을 뛰쳐나갔다.
아마 성필에게 가는 것이리라.
침묵만이 남은 공간에서, 백설하가 물었다.
“아라야, 하려던 말 뭐였어?”
“……내가 먼저, 아저씨한테 정장 입고 춤춰주면 돈 주겠다고 했어요.”
“아아, 그렇구나.”
잠시 후, 조아라는 백설하에게 응징당하여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쓰러진 조아라의 위로 백설하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라야, 그런 말은 농담이라도 하면 안 돼.”
“네, 네헤에…….”
“박 이사님도 아무렇지 않게 느꼈지만, 내심 불쾌하셨을 거야. 알겠지?”
“알게써효오…….”
그때 연습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성필이 들어왔다. 그는 민경섭에게 시달렸는지 얼굴에 피곤이 가득했다.
“아라 너 자꾸 내 유언비어 지어낼래?!”
“유, 유언비어는 아니잖아요. 실제로 아저씨가 했던 말이고…….”
조아라가 비척비척 일어났다.
“자꾸 이러면 네가 나한테 했던 내용 전부 다 회사에 까발릴 수 있어!”
“내가 뭘 어쨌…….”
성필이 서류 한 장을 조아라에게 주었다.
[징계 건의서]
[건명(件名): 성희롱]
[건의일시: 20XX.0X.XX]
[징계안건 및 요구양정: 경고]
[징계 대상자
소속: 소녀연맹
직명: 멤버
성명: 조아라]
[경위: 20XX.0X.XX. 물을 마시고 있던 박성필 이사(이하 박 이사)에게 조아라가 다가와 등줄기를……(생략).]
“이게 뭐예요?!”
“방금 한 이사님한테 제출한 거야. 너 자꾸 내가 봐주니까 어? 내가 막 어? 좋아하는 줄 알지 어? 전혀 아니거든!”
“…….”
조아라가 백설하를 흘끗했다. 백설하가 무언으로 열렬하게 사과를 요구했다.
“죄송해요……. 그, 나는 걍, 아저씨가 좀, 편해서, 장난친 건데…….”
“농담!”
성필이 서류를 구겨서 던졌다.
“얘들아 방금 아라 표정 봤어? 내가 서류 내미니까 막 세상 잃은 거처럼 멍해졌잖아. 아하하핰! 우리 아라, 많이 무서웠어요?”
잠시 후.
“끄헤에엑…….”
“아저씨 미안해요.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네.”
“그으, 그래애……. 이걸로 끝인 거다……?”
성필은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경섭이한테 말만 잘해줘.”
“경섭 오빠가 많이 화냈어요?”
“어? 아니, 설득은 됐어. 네가 나한테 했었던 말 그대로 해주니까 바로 이해하던데?”
“…….”
사건이 정리되자, 줄곧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리카가 치고 들어왔다.
“박 이사님, 저희 바다로 가야 해요! 소녀연맹은 바다로 합의했어요!”
“그래?”
“네! 아타시(저)의 첫 바다 데뷔에요!”
“산으로 갈 건데?”
“손나(그런)! 어, 어째선가요!”
“어째서냐니.”
그야.
“사장님이 바라시니까.”
“독재자!”
* * *
소녀연맹에게 확실히 변화가 찾아왔다.
멤버 전원이 스케줄로 가는 게 아니라, 일부 멤버만이 뽑혀서 스케줄을 수행하는 일이 들어왔다.
이번 라디오 출연도 그러했다.
출연자는 조아라와 장하양이었다.
“하양 언니, 저기 봐요.”
“응?”
라디오가 시작하기 직전.
유리 너머 부스 바깥에서 호들갑을 떠는 성필이 보였다. 그는 자꾸만 파이팅을 외치면서 둘을 격려했다.
성필 옆의 안이상 매니저는 그런 성필이 부끄러운지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한국 첫 스케줄이라고, 우리보다 더 들뜬 거 같아.”
“그러게. 일본보다 더 즐거워 보이셔.”
“아저씨 저러는 거 보면 좀 귀엽지 않아요? 개 같아.”
“뭐?”
“강아지 같아요.”
장하양이 미간을 좁히자 조아라가 사과의 뜻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요즘 들어 성필은 텐션이 매우 높다.
장하양의 생각으로, 아마 콘서트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콘서트를 해낸 사람은 베테랑 뮤지션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하셨지.’
그러니 프로듀서인 성필에게도 콘서트는 커다란 이벤트임이 틀림없다. 어쩌면 아이돌 본인인 소녀연맹보다 더.
‘이사님이 밝아지신 건 기뻐.’
그런데 성필에겐 또 다른 변화가 있었다.
아니, 성필이 아니라 성필과 멤버들의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성필이 멤버들을 대하는 게 더 친근해졌단 것이다. 아마 병원에서 한 달 있었던 게 원인인 듯했다.
‘우리가 박 이사님의 소중함을 알았던 것처럼, 박 이사님도 그러신 걸 거야.’
가졌던 걸 잃으면 상실감이 더 큰 법이다.
성필은 멤버들과 보냈던 하루하루의 가치를 알고,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위해 더 친근한 태도를 만든 것이다.
멤버들도 그게 기꺼웠다.
그런데…….
‘아라랑 이사님은 좀…….’
너무 빨리, 너무 가까워졌다고 해야 할까.
둘이 얘기하고 함께 있는 걸 보면 무슨 몇 년 지기 친구 같다.
조아라가 옛날에 그랬었다.
성필은 같은 반 친한 친구라고.
조아라는 정말 그리 여기는 듯했다.
‘뭔가, 우리보다 길 하나가 더 뚫린 거처럼…….’
어째서일까.
장하양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자, 오늘도 청취해주시는 청취자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라디오가 시작됐다.
점심 즈음에 하는 ‘보이는 라디오’ 계열로, 실시간으로 조아라와 장하양의 모습이 인터넷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라디오인데도 가끔 카메라를 향해 시선 처리를 해야 했다.
“네, 패션쇼장은 뭐랄까. 진짜 환상의 세계 같은 느낌이었어요. 다들 동경하고 우러러보는 곳에 선 기분이요.”
라디오 DJ가 주목하는 건 장하양이었다.
국뽕연맹이란 별명을 얻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게 장하양이니, 그녀에게 집중하는 건 당연했다.
사실상 조아라는 구색 맞추기로 끼워온 데 불과했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저희도 웨이트 트레이닝 하거든요. 어, 그 표정! 다들 DJ님처럼 그래요! 안 믿는다고요!”
오늘의 진짜 주인공은 조아라였다.
그녀는 일본 예능에 숱하게 출연한 경험 때문인지, 가수가 득음을 하듯 말문이 트여 있었다.
“근데 이해는 하거든요? 우리 같은 몸 가지고 웨이트 한다고 하면 안 믿죠. 다 안 믿는데, 진짜 하거든요.”
“웨이트라. 그런데 근육이 생기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좀, 아이돌 몸을 유지하려면요.”
“춤도 근육이 필요해요. 제가 초등학생부터 춤 계속 배워서 봐왔는데, 근력 없이 춤만 추면 관절 다 닳아요.”
“그럼 막 무게도 이렇게 들고?”
“아뇨. 진짜 생존 근육만 유지하죠. 덤벨 3, 4kg짜리 설렁설렁 들고요.”
DJ는 조아라에게서 대중이 듣고 싶어 할 만한 주제가 나오자 신경을 집중했다.
아이돌의 운동, 꽤 재밌는 주제였다.
“근육이 커져서 핏이 안 맞으면 안 되니까요.”
“원래 댄스를 하셨다고요.”
“네. 스트릿 댄스요.”
“그럼 왜 아이돌로 넘어오셨어요? 역시 또래가 선망하는 대상이라서인가요?”
“하아, 이게 또 얘기가 긴데. 저희 회사에 이사님이 두 분 계시거든요? 그 두 분이 내가 안 들어오면 진짜 죽겠다고, 너 없이는 절대 그룹 못 만든다고 울며불며 사정해서요.”
“푸하핰! 진짜요? 울며불며 사정해서요?”
DJ가 부스 바깥을 보았다.
성필이 어금니를 갈면서 조아라를 향해 삿대질하고 있었다.
“잠깐 저쪽 좀 비춰주세요.”
카메라가 성필을 가리키자, 성필은 언제 화냈냐는 듯 평온을 가장했다.
“저분이세요?”
“네, 박성필 이사님이요.”
그것을 듣는 순간, 성필은 왠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가슴으로 쾌감이 찌르르 치고 지나간다.
어째서?
‘아라가 나를…… 박성필 이사님이라고 불렀어?’
그래, 그것 때문이다.
“박 이사님, 그리고 이거 듣고 계실 한구인 이사님. 항상 나한테 감사해요. 내가 사람 목숨 둘 구한 겁니다?”
조아라가 윙크했다.
그 당돌한 태도에 DJ가 대만족했다.
실시간 채팅창에도 웃음이 흘러넘쳤다.
“다시 원래 얘기로 들어오면. 웨이트 제대로 못 하는 게 제 나름 스트레스거든요? 제가 원래 이거보다 좀 근육이 있었어요. 이렇게 안 말랐었거든요.”
“지금도 건강하게 보이는데요?”
“지금보다 더 건강했어요. 저희가 PT를 받는데요. 트레이너님이 무게 올리면 기겁하면서 ‘어어 그러시면 안 돼요!’ 하면서 말려요. 제가 한 번만 하겠다 해도 절대 안 된다고 하시거든요.”
“그건 또 특이하네요.”
“네. 그래서, 트레이너님이 가시면 바벨에 무게 막 10kg씩 더 끼우고.”
“더 끼우고요?”
“네. 바로 벤치 프레스! 그럼 가슴에 바로 느낌 오면서 으아아아! 자극 죽인다! 어우, 진짜 죽여요.”
DJ는 배를 부여잡고 책상에 이마를 박았다.
조아라의 이야기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그녀의 말투와 어조 자체에 사람을 웃기는 힘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양 씨는요?”
“저는 아라처럼은 안 해요.”
“아, 역시 모델로도 뽑히셨으니 웨이트는 좀 지양하는 쪽으로?”
“아뇨. 무게 풀로 쳐요.”
“풀? 할 수 있는 만큼?”
“네.”
“내가 하양 언니가 진짜 부러워요.”
조아라는 장하양의 어깨와 팔을 슬슬 쓸었다. 장하양이 부끄러워해도 계속 그랬다.
“숙소에 샤워실이 하나잖아요. 보통은 돌아가면서 씻는데, 진짜 바쁠 때가 있어요. 그죠 언니?”
“응. 왠지 모르게 시간이 부족할 때가 있지.”
“그럼 두셋이 들어가서 씻어야 해요. 언제지? 나랑 하양 언니랑 같이 샤워장 들어갔는데, 나 진짜 감동해서 울 뻔했어요.”
“울어요?”
“네. 와, 사람 몸의 근육이 저렇게 세세하게 나뉠 수도 있…….”
장하양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서 조아라의 어깨를 애교스럽게 손바닥으로 팍팍 쳤다.
조아라는 굴하지 않고 계속 멘트를 뽑았다.
“아니 진짜 감동한다니까요? 저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까 싶어서요. 대단해요, 정말로. 존경해요.”
“와…… 하양 씨는 정말 운동을 열심히 하시나 보네요.”
“맞아요. 언니는 그래요. 고통을 참는단 게 어려운데, 그걸 해내고 이렇게까지 됐단 게 진짜 존경스럽죠.”
장하양은 이제 조아라를 말리길 그만뒀다.
부끄러워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스스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할 땐 느끼지 못했던 창피함이다.
조아라의 과장된 어투로 그걸 듣고, 그게 라디오로 송출되니 창피한 거겠지.
그리고 조아라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준단 게, 참 고맙기도 하고 동생에게 자랑스러운 언니라서 행복하기도 하다.
“항상 우리끼리 피트니스 선수 같다고 해요. 근데 진짜 피트니스 선수 하면 안 되는 몸.”
“왜요?”
“근육 크기가 좀처럼 안 늘어나요. 노력을 그만큼 하는데도 딱 이 정도예요. 진짜 선수는 될 수 없는 체질이죠.”
“대신 아이돌로서는 축복받는 체질이네요?”
“네. 그냥 내 생각으론 여성 호르몬? 같은 게 너무 많이 나온다거나 그러는 거 같은데. 잘은 모르고요. 대신 근밀도가 진짜 미쳤어요. 어깨 누르면 진짜 무른 나무 같아요.”
“하, 하지 마…….”
“언니 자랑스러워해요! 언니가 노력해서 만든 건데 언니가 자랑스러워 안 하면 누가 해줘요!”
“…….”
장하양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과는 반대로, 채팅창의 시청자와 청취자들은 열렬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어우, 오늘 너무 좋았어요.”
라디오가 끝나고, DJ는 두 사람과 차례로 악수하면서 연신 ‘좋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최근 이렇게 매끄럽게 진행한 적이 없었다면서 말이다.
돌아가는 길엔 성필 또한 DJ와 다를 바 없이 들떠 있었다.
“아라 언제 이렇게 말빨이 늘었어?”
“그랬어요? 많이 말한 거 같긴 한데.”
“신내림 받았나 했어.”
“하아, 또 이렇게 새로운 재능을 찾나?”
“적당히 해라.”
“칭찬해주는 시간이 너무 짧은 거 아니에요?”
조아라가 장난스레 성필의 어깨를 밀었다. 성필도 똑같이 했다.
그러곤 웃었다.
“아, 하양이도 좋았어.”
둘의 뒤에서 가만히 따라가던 장하양은 어색하게 웃었다. 성필이 괜히 자신을 챙겨주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양이 바이셉스 포즈 할 때 채팅창 불나는 거 봤어?”
“아…… 그랬나요?”
반응이 좋았다니 다행이긴 한데, 장하양은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라디오인데 말이 아니라 신체로 주목받다니. 주제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잘했어.”
“……네.”
두 사람은 스케줄을 마치고 회사 연습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멤버들과 잠깐 담소를 나눈 후, 콘서트 세트리스트에 따른 연습을 시작했다.
쉬는 시간, 장하양은 쉬고 있는 조아라의 곁에 앉았다.
“아라야, 말하는 거 따로 연습한 적 있어?”
“아뇨.”
“아하하, 정말 재능이구나.”
“음, 아저씨 앞에선 폼 잡았긴 한데. 재능은 아니죠. 언니 덕분이지.”
“나?”
“언니랑…… 멤버들 덕이요.”
조아라는 진심인 듯, 과시하는 기색 없이 말했다.
“나 혼자 자리에 앉힌다고 말이 잘 나오겠어요? 내가 그룹에 있으니까 그런 얘기들이 나오는 거죠. 우리들 일상이나 있었던 일들이요.”
조아라가 라디오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은 능력이나 재능의 탓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조아라가 소녀연맹이라서 이야기할 수 있던 것이다.
“솔직히 하양 언니 같은 사람이 어딨어요? 존재 자체가 썰 제조기잖아요.”
“썰 제조기……?”
“나중에 은퇴하면 일상 웹툰이나 그려볼까? 그림 연습해서. 리얼 100화도 연재할 수 있겠어요. 맞네, 그럼 되겠네. 은퇴하고도 밥줄 걱정 없겠다.”
그러니, 멘트를 별로 따내지 못한 데 상심할 필요 없다.
장하양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니까.
조아라는 그리 말하고 있는 듯했다.
장하양은 어느새 어른스레 성장한 조아라를 보곤 멍해졌다. 그리고 쿡 웃었다.
“나한테 개런티 떼주는 거지?”
“아뇨. 꼬우면 언니도 그려요.”
“너무하네. 하아, 근데 오늘 아쉽다.”
“왜요?”
“라디오라서. 내 장기를 쓸 기회가 없었잖아.”
“보이는 라디오니까 그건 통용 안 되죠. 변명하지 마요.”
“얘 말하는 거 봐.”
둘 사이에서 은은한 웃음이 피어났다.
한편, 성필은 홀로 호들갑을 떠는 중이었다.
‘하양이가 실시간 검색어 1위잖아!’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
장하양 근육.
성필은 이 기쁜 소식을 가로 엔터 간부 단톡방에 올렸다.
그런데 예상외로 반응이 시큰둥했다.
성필은 충격받았다.
‘다들 왜 이러지?’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돈 주시는 분♥: 박 이사네 일본에 있을 때 자주 봐서 별로 감흥 없어.]
“……그렇구나.”
성필과 소녀연맹이 일본에 있을 때.
소녀연맹은 한국에서 또한 착실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 * *
가로 엔터, 충격 소식.
야유회 참가 인원 고작 6명!
소녀연맹까지 더하면 11명!
‘주말 참가가 에바긴 하지.’
선진 사내 문화를 추구하는 홍규헌마저도, 평일에 야유회 일정을 할당하진 못했다.
그래서 야유회에 참여하는 건 애사심이 투철한 이들밖에 없었다.
회사 그 자체 홍규헌.
최고경영책임자 한구인.
프로듀서 손혜빈.
매니지먼트 팀장 민경섭.
가족 같은 대우를 받는 작곡가 정지음.
‘그리고 나…….’
그나마 따라올 거라 생각했던 홍보팀 양상헌마저 눈치를 보더니 스리슬쩍 불참을 표명했었다.
90년대생의 파도는 30대 양상헌도 삼켜버렸다.
‘1박 2일, 황금 같은 휴일 이틀을 꼬박 날리는 거니까. 근데 콘서트 준비로 바쁜 기간이고, 평일을 비우는 건 힘든 결정이긴 하지.’
홍규헌도 내년엔 어떻게든 평일에 일정을 잡아보겠다고 했다.
내년 야유회는 다들 좋다고 따라올 것이다. 애초에 평일이니 강제로 참가해야 할 테지만.
‘어떻게든 약속을 지켜주시는 사장님도 대단하긴 해. 그냥 캔슬해도 됐을 텐데.’
어쨌거나, 내일은 야유회다.
성필은 기분 좋게 차에서 내렸다.
흥겹게 자신의 집으로 가면서 내일을 기대하고 있던 도중.
“팀장님?”
성필의 집 건물 입구에 쪼그려있던 그림자가 일어났다. 그러곤 거침없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가로등 불빛에 드러난 그 모습은.
“소민아……?”
석세스 엔터, 걸그룹 글로브의 멤버 양소민이었다.
“아아, 진짜 다행이다. 팀장님 집 안 옮겼구나.”
그녀는 성필을 보자마자 얼굴이 밝아지더니, 특유의 부드럽고 헤실거리는 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웃음 안에는 불안과 죄책감이 엿보였다.
“티, 팀장님 저, 오늘, 하루만 묵을 수 있어요? 갈 데가, 잘 곳이,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