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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326화 (326/760)

326화

리카는 손나 바카나(그런 바보 같은) 정도로 이 거대한 경악의 격류를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손나 바카나 우소(그런 바보 같은 거짓말)?!”

후나비키 세이코.

가후(歌后)란 별명이 붙을 만큼 뛰어난 실력의 가수이자, 일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까지 말해지는 가수.

비록 3년의 공백기가 있었으나 경연 프로그램 ‘뉴아사’로 화려하게 컴백…….

‘……화려한은 빼고.’

3년의 공백을 깨고 드디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불세출의 가수!

아직도 식지 않은 팬들의 기대를 받으며 앨범 작업과 재활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세이코에게……!

“손나 바카나 우소 아리에나이(그런 바보 같은 거짓말 있을 수 없어)!”

그런 세이코에게, 성필이 대시 당했다.

리카는 입을 뻐끔거리고 손발을 어지럽게 저으면서 백설하에게 조언을 구했다.

‘연애 박사인 쌤의 의견이 필요해!’

소녀연맹 내에서 누가 가장 연애와 남녀관계에 해박한가? 그 답은 백설하였다.

슬픈 점은, 그게 전부 아이튜브로 배운 이론적 지식에 불과하단 것이다.

“쌔, 쌤, 쌤, 방금, 저거, 그거, 이거!”

연애 박사 백설하가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입을 막았다. 그녀 또한 방금 벌어진 사태를 해석하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마치 처음으로 외계에서의 교신을 받아낸 천문학자와 같은 얼굴이다.

천문학자와 다른 점은, 천문학자는 천문학을 잘 알지만 연애 박사 백설하는 연애를 잘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이건 알겠어!’

어린애를 데려다 놓아도 안다.

방금 세이코는 명백하게 성필을 유혹했다!

“가, 가실 거예요……?”

백설하와 리카마저 깨달은 것을 성필이라고 깨닫지 못할 리 없다.

방금 성필은 너무나 간단하게 세이코의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들였었다.

“가야지 그럼. 모처럼 권해주셨잖아.”

“국제결혼은 훨씬 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해요!”

리카가 평소보다 목청이 몇 배는 뛰었다.

포스(Forth) 피치 브레이크, 돌파.

두성구(頭聲區) 고음역 3옥타브 후반으로 리카가 소리쳤다.

“그렇게 간단히 정할 게 아니라구요오오!”

“리카 나 귀 떨어지겠어.”

“아, 고멘나사이(죄송합니다)…….”

“박 이사님, 그게, 저기, 그게에…….”

아까부터 떨림을 주체 못 하는 백설하가 천천히 성필에게 다가갔다. 그의 앞에 선 백설하는 꾸역꾸역 미소를 띠었다.

“아시는, 거죠? 세이코 선배가, 방금, 초대한 건 그거…….”

“알아.”

백설하가 침을 꼴깍 삼켰다.

“왜, 왜 안 거절하셨어요?”

“왜 안 거절했냐니?”

“세이코 선배는……!”

백설하는 이 순간, 자신에게 예절이 참으로 깊게도 배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심장이 분노로 발길질을 하는 와중에도 세이코를 상대로 선배란 호칭이 붙다니.

“그만하자, 얘들아.”

성필이 리카와 백설하를 만류했다.

백설하는 눈 속에 원망을 띄운 채 성필에게서 눈을 돌렸다.

‘납득 못 해.’

세이코가 어떤 인간인가?

다른 모든 상황과 관계를 배제하고 오로지 소녀연맹의 관점에서만 보면, 세이코는 달갑지 않은 인간이다.

성필을, 소녀연맹의 프로듀서를, 가로 엔터의 이사를 위험에 처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세이코가 성필에게 살려달라고 울며불며 매달린 건 아니지만, 사실 그것과 딱히 차이는 없었다.

꺼지라며 욕했어도 성필은 세이코를 구했을 테니까.

‘어떻게 박 이사님이…….’

백설하의 머릿속엔 병원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성필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그때 느꼈던 절망과 슬픔이 어느 정도였는지, 떠올리기만 해도 팔다리가 저릿거린다.

백설하는 성필이 있던 병실의 바로 옆, 성필을 그 꼴로 만들었던 세이코를 상상하며 증오의 불길을 태웠었다.

‘알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세이코 씨한테 잘못 같은 건 없잖아.’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성과 감정을 별개다. 그리고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감정을 따르도록 설계되어 있다.

백설하 또한 그러했다.

“다른 사람 뒤에서 이렇게 말하는 거 실례야. 그만하자.”

성필은 여느 때처럼 참으로 자애롭게도 말했다. 그것을 듣자, 백설하는 성필과 보냈던 나날들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렸다.

처음 그와 학원에서 만나 문으로 머리를 찧었을 때부터, 음방 1위를 했던 때까지.

인생의 보물임이 틀림없는 추억들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그리고, 성필이 세이코와 함께 떨어진다.

거기서 끝날 수도 있었다.

성필이란 인간과의 인연은, 바로 거기 그 장소 그 시각에서 전부 끝날 수도 있었다.

만난 지 고작 한 달밖에 안 된 여자 때문에…….

‘못 넘겨.’

순간 백설하는 자기혐오를 느꼈다.

방금 떠올린 생각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기 그지없는 것이란 사실을 즉시 깨달았기 때문이다.

‘절대로.’

성필이 소녀연맹에게 쏟는 애정을 절대로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다.

백설하는 그 애정이 기쁘고 감사했다. 그래서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극히 이기적이지만, 성필이 소녀연맹 말고 다른 것에 관심을 쏟길 바라지 않는다.

특히 그 관심이 사랑이라면 더욱.

‘아니야, 어찌어찌 이해할 수 있어. 이사님이 행복하길 바라. 그런데…….’

세상 다른 여자 전부 다 된다.

아니, 남자라도 된다.

하지만 세이코에게만은 안 된다.

세이코에게만은 성필을 넘길 수 없다.

성필에게 목숨까지 받았으면서 그의 마음까지 갈망하다니? 이 얼마나 욕심 많은 인간이란 말인가? 염치도 없는…….

“그럼, 가서 어떡하실 거예요?”

어느새 백설하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내면에 이는 폭풍과는 정반대로, 그녀는 여느 때의 사려 깊고 부드러운 인상 그대로였다.

“세이코 선배님이…… 정말 그러면요?”

성필은 입을 일자로 꾹 닫곤 갑자기 하하 웃었다.

“글쎄?”

* * *

성필은 타츠야의 초대를 받아 그녀의 클럽에 들렀다. 그가 요청했던 대로, 마하라는 조용한 장소를 준비해두었다.

넓고, 쾌적하고, 성필과 타츠야뿐인 룸이었다.

“엄청 쓸쓸하네요, 여기.”

“당신이 조용한 게 좋다면서.”

“아니…….”

성필은 자신의 뒤, 밖이 보이는 매직미러로 눈을 돌렸다.

밖의 사람들은 다들 신나게 노는 중인데, 성필은 타츠야와 마주 보고 조용히 술잔만 나누는 중이었다.

“왠지 소외당하는 기분이에요.”

“좋은 거 준비해두고도 좋은 말은 못 듣네.”

“아, 술은 맛있어요. 마하라 씨랑 얘기 나누는 것도 즐겁고요. 이 술 비싼 거죠?”

“여기서 시키면 50만 엔 정도였던가.”

성필이 병을 조심스레 테이블 위에 두었다.

애초에 이 술은 마시는 술이 아니라 본인의 재력을 보여주기 위해 시키는 술이었다.

그리고 이 술은 목적을 이루었다.

성필의 눈에 타츠야가 굉장한 재력가로 보이게 됐으니까.

“선물이 있는데.”

타츠야는 과일로 입가심을 한 뒤 밖의 사람을 불렀다. 그러자 클럽 직원들이 행거를 밀며 들어왔다.

행거에는 보기에도 윤기와 고급스러움이 흐르는 정장과 가벼운 코트가 걸려 있었다.

“마하라 씨……?”

“스타의 기분을 느껴본 적 있어?”

“없, 죠……. 제가 연예인도 아니고.”

“내가 당신한테 줄 선물은 스타의 기분이야. 저 옷을 입고.”

타츠야가 매직미러 바깥, 클럽의 플로어를 가리켰다.

플로어의 중앙, 은색으로 높게 솟은 무대 위.

전에 장하양과 함께 봤던, 사람들이 자신의 패션을 자랑하는 장소였다.

“저기 나가.”

“제가요?!”

“정말 둘도 없는 기회야. 세상에 옷차림 한 번 진심으로 칭찬받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수두룩해. 정말 패셔너블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칼처럼 들이박히는 경험 말야.”

나이가 들어 자금에 여유가 생기고, 그때 부랴부랴 체면을 세운다면서 명품을 사 입어 느낄 수 있는 기분이 아니다.

젊으면서 패션에 관심을 두며, 또한 관심받을 수 있을 곳에 발을 디뎌야만 누릴 수 있는 느낌.

“수백, 수천만 원을 주고도 하기 힘든 경험이야. 그리고, 아주 죽여주는 기분이지. 젊은 애들이 괜히 명품 사서 걸치고 다니는 거 아니거든. 사람들 관심이 진짜 마약 같아. 그런 의미에서 나도 연예인들이 부러워.”

“제가 어떻게…….”

직원이 성필의 발아래로 명품 구두를 가져다 두었다.

“진짜 패션을 입어 봐. 당신의 자아를 입어. 전에 기업 임원이 되고 싶댔지?”

“저는 지금도 임원인데요.”

“……임원이면 임원처럼 보여야지.”

다른 직원이 시계 케이스를 가져와 공손히 열었다. 안에는 빛나는 롤렉스 시계가 들어 있었다.

“사람들의 선망을 입는 거야. 언젠가 당신이 누리게 될 선망을, 이 자리에서 패션으로 미리 체험해봐.”

“아니, 어휴…….”

성필은 황송하기 그지없단 듯 자꾸만 사양했다. 마치 자신은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단 듯 겸양 쩍은 티를 계속 냈다.

“제가 어떻게, 어휴, 저는 못 해요…….”

* * *

[마루노우치(일본 금융업 중심지)에서 퇴근하는 길인가요! 쫙 빠진 양복의 엘리트님이 등장하셨습니다!]

은빛 무대 위로 올라간 성필이 멋을 한껏 담아 코트를 털었다. 그리고 자랑하듯 루이까또즈 서류 가방을 늘여 잡았다.

[아아, 시계! 진짜 롤렉스입니다! 자랑하듯이 롤렉스를 보고 있어요! 이사님, 많이 바빠 보이는데 비서는 어디 갔나요?]

무대 아래의 여자들이 환호하면서 팔을 높이 뻗어 올렸다.

그에 성필은 아예 가방을 위로 던지더니, 흥에 못 이겨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환호성이 더 강해졌다.

그걸 플로어 구석에서 바라보며 타츠야가 헛웃음을 흘렸다.

“막상 하면 좋아할 거면서.”

새삼 옛날에 깨달은 진리가 다가온다.

세상에 관심받는 게 싫은 사람은 없단 것을.

잠시 후, 성필은 오늘의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되어 싸구려 금속 트로피를 들고 타츠야에게로 돌아왔다.

“하아, 마하라, 하아, 하아, 마하라 씨 저…….”

“얼마나 신나게 놀았으면 아직도 숨을 헐떡여. 좀 쉬어.”

둘은 벽에 기대어 잠깐 쉬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 베스트 드레서로 뽑혔네. 내가 직접 코디한 명품들을 두르면 당연하겠지만.”

“그런데 제 사이즈는 어떻게 아셨어요?”

“눈으로 보면 대강…… 아니, 거의 정확하게 알지. 특히 여름이라 얇은 옷 입고 다니면.”

“와, 진짜, 와아…….”

“신나지?”

“네!”

성필은 프로듀서로서 무대 아래나 무대 뒤에만 존재하는 인간이었다. 이렇게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적은 처음이다.

‘애들이 무대에 서면 이런 기분일까?’

타츠야의 말마따나, 마약이 아닐 수 없다.

“술 무제한으로 내줄 테니까 나가서 놀아. 베스트 드레서까지 됐으면 거의 오늘의 주인공급이거든. 취한 채 테킬라 병째로 들고 어슬렁 다가가서 작업 걸어도 다 먹힐걸?”

“제가 아니라 옷이 인기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럼 어때서. 그걸 입은 게 당신인데.”

“제 나이에 무슨.”

“음.”

타츠야는 성필의 앞에 서더니 그의 앞머리를 살짝 정돈해주었다.

“원래 당신 나이면 여기에 들어오지도 못하겠지만, 그럭저럭 세월이 피해 가고 있는데? 꽤 괜찮아. 아니다, 더 확실하게 내가 화장까지 해줄까?”

“괜찮아요. 이제 됐어요.”

충분히 즐겼다.

“당신이 그렇다면야.”

둘은 다시 원래 있던 룸으로 돌아왔다.

성필은 자신의 몸을 휘감은 옷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착용감 같은 건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 옷의 가치를 알게 됐다.

아직도 성필의 뇌리엔 무대 위에서 받은 열광적인 환호와, 사람들의 불타는 시선이 남아 있었다.

오늘 잠자리에 들기도 힘들 정도의 흥분감이다.

“그거 가져.”

“……네?”

“선물이야.”

“아, 아니, 이렇게 비싼 걸…….”

“얼마인 줄 알고?”

“…….”

“별로 안 비싸. 적당한 프레타포르테(Pret―a―porter)거든 어차피. 내가 따로 산 거도 아니고, 남는 거 가져왔으니까 미안해하지도 마. 아니, 그냥 고맙다고만 말해. 선물은 사양할수록 실례인 거 알지?”

성필은 어찌해야 하나 갈피를 못 잡고 입만 뻐끔거렸다. 그리고 한 번 시선을 내려 옷을 본 뒤, 순순히 그녀의 선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성필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면서 왼손을 장식하고 있던 롤렉스를 벗었…….

“그것도 가져.”

“네?! 아니, 저라도 이게 얼마인지는 알아요!”

“그건 내 거긴 한데, 선물이야. 나 시계 많거든. 하나 정도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어.”

“이거 1,300만 원짜리잖아요!”

“원? 아, 130만 엔.”

“지, 진짜 이런 건 못 받아요!”

“별거 아니라니까.”

이 정도면 타츠야가 성필에게 무언가 마음이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선물이라지만, 성필이 어떻게 보답할 수 없을 수준의 선물이다.

“이게 어떻게 별거 아니……!”

“이거 봐.”

타츠야가 자신의 왼쪽 손목을 보였다.

시계가 있었다.

“파텍 필립, 가격 900만 엔. 지금은 가격이 뛰어서 1,000만 엔이 훨씬 넘어. 나 이런 거 매일 바꿔 차고 다녀. 지금 당신이 찬 건?”

“……롤렉스.”

“얼마라고 했지 아까?”

“1,300만 원…….”

“그렇지. 나한텐 그냥 모래사장 자갈이야.”

그렇게 빛나던 롤렉스가 갑자기 고철 덩어리가 된 듯한 기분이다.

“뭐, 그래도 정 마음이 찜찜하면…… 보답이라도 해줘.”

“보답요? 설마, 아, 안 돼요……!”

“지레짐작 겁먹는 게 귀엽네. 한국으로 돌아가면 하시모토한테 잘해줘.”

“……하시모토 총괄 매니저님이요?”

“그래.”

타츠야가 손을 내밀었다. 성필은 얼떨결에 그녀와 악수했다.

“어바이비와의 인연을 소중히 해. 그리고 ‘후쿠요 히다카’도. 보통 그러지? 연예인은 걸어 다니는 기업이라고. 기업끼리 좋은 사이를 유지해보자.”

보답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저 ‘잘 지내달라’는 말뿐.

지금 타츠야가 원하는 건 그게 다였다.

그리고 이 부탁은, 그녀가 소녀연맹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지금보다 더 나은 관계가 될 거라고 확신하고 계셔.’

성필은 타츠야와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네. 언젠가, 제가 받은 선물보다 더 값진 걸 드릴게요. 후회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내가 준 것보다? 기대되네.”

오늘 타츠야는 성필에게 스타의 기분과 명품들을 선물로 주었다.

그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던 건, 장하양에게 주었던 도쿄 패션위크의 패션쇼 자리였다.

그건 미래에 어떤 형태로든 돌아올 것이다.

“패션계란 건 때때로 지긋지긋하지만, 들어오는 사람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환상을 선물해줄 수도 있어. 오늘 당신이 느꼈던 것처럼. 그 기분을, 가치를 기억해줘.”

* * *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이틀이 남았다.

소녀연맹은 휴가 기간임에도 웨벡스로 나와 군무를 연습했다.

소녀연맹이 일본에 있는 3개월 동안 콘서트 기획은 꽤 진행되었다.

그에 따라 세트리스트도 어느 정도 갖춰져, 멤버들은 그것을 연습할 수 있었다.

“박 이사님이?”

“그렇다니까요! 하양 언니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연습 도중, 리카는 그저께 있던 대사건을 멤버들에게 전달했다.

조아라와 신아름이 놀라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장하양은 의외로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하는 듯했다.

“이해가 돼.”

“박 이사님이 세이코 선배님한테 홀라당 털리는 거요?! 아타시(저)는 인정 못 해요!”

“물론, 세이코 씨가 박 이사님한테 접근한 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일이야. 생각이 없는 것도 정도가 있지. 지금까지 우리한테 무슨 일을 했으며 박 이사님한텐 얼마나 고통을 줬는데. 박 이사님은 이제 겨우 목발을 푸셨어. 그런 모습을 보고도 감히…….”

“하, 하양 언니 말투가 너무 무서워요…….”

“……아무튼.”

장하양이 생긋 웃었다.

“어차피 박 이사님은 받아들이지 않으실 거야. 상식적으로 그렇잖아. 일본인이시고.”

“인종차별이야!”

“1년에 몇 번 만나지도 못하실 테고. 애초에 박 이사님이 세이코 씨한테 호감을 느낄 만한 일이 있었어?”

없었다.

멤버들은 장하양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애 박사 쌤보다 훨씬 낫네요.”

조아라가 놀리듯이 말했다.

“왜 다 나보고 연애 박사라는 거야……?”

딱히 연애에 관해서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백설하는 동생들에게 놀림당하는 자신의 처지가 조금은 서글퍼졌다.

“내가 봤을 때.”

조아라는 비밀이야기라도 하듯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멤버들도 관심을 가지고 그녀에게 모여들었다.

“아저씨 취향이 세이코 쪽은 아니에요.”

“조아라 네가 팀장님 취향을 어떻게 알아?”

“딱 보면 알지.”

“그래서, 뭔데?”

“약간 키는 160 중반이고? 세이코처럼 안 마르고 운동 꽤 오래 했고? 성격은 너무 발랄하진 않고 살짝 통통 튀는 느낌? 그리고 단발.”

“……아 씨 조아라 너잖아! 개소리하는 거 괜히 집중해서 들었네!”

조아라가 배를 잡고 웃었다.

“아니, 근데 리얼로 아저씨는 세이코 같은 사람 안 좋아한다니까?”

“그니까 근거가 뭐냐고.”

“아저씨 아이돌틱한 몸매에 흥미 없어.”

멤버들이 의문을 표했다.

아이돌틱한 몸매가 뭐지?“

“있잖아, 우리. 텔레비전 나오려고 빼빼 마르게 유지하는 거. 세이코도 딱 그렇잖아. 아니, 우리보다 더 말랐나.”

“왜 그렇게 생각해……?”

“쌤, 아저씨 눈에서 막 이상한 기운 느낀 적 있어요? 우리 짐에서 운동할 때도 남자들 눈 같은 거 느껴지고 그러잖아요. 딱 감이 오는데, 아저씨한테선 그런 거 느낀 적이 없어요.”

“…….”

“그쵸? 맞죠?”

조아라가 대단한 발견이라도 했다는 양 손가락을 튕겼다.

“이제 연애 박사 타이틀 내 거다. 인정?”

“아라쨩은 사람을 너무 믿네. 그러다가 나중에 큰코다치는 거야!”

“맞아. 조아라 네가 뭔데 팀장님 시선을 느끼고 그러냐? 눈에서 레이저라도 나와?”

“나도 아라 말은 틀린 거 같아.”

“연애 박사 타이틀은 아라가 가져도 되는데, 그건 아닌 거 같아…….”

“……뭐야? 왜 다 반박해요?”

조아라는 어이가 없었다.

다들 리카의 개소리를 들을 땐 그렇구나 넘기면서, 왜 조아라 자신에겐 전방위적인 반박을 펼친단 말인가.

“……아아, 그런가.”

“아라쨩, 중2병 말투 내가 가르쳐주긴 했는데 슬슬 그만둬주면 안 돼? 슬슬 아타시(내)가 버티기 힘들어지는데…….”

“나는 리카랑 달리 정상인이니까, 다들 나에 대한 기대치가 큰 거군. 이해했다.”

“내가 정상이 아니란 뜻?!”

어쨌거나.

“처음에 하양 언니가 했던 말이 맞아요. 아저씨가 세이코한테 뭔 마음이 있어서? 그냥 저녁만 먹고 오겠지.”

“얘들아 안녕.”

연습실로 성필이 들어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둘렀다.

평소대로 스마트 워치가 있어야 할 왼쪽 손목에는 한눈에 보아도 고가인 롤렉스 시계가 차져 있었다.

구두는 어제 손질한 것처럼 번쩍거린다.

조아라가 그렇게 입어달라고 해도 안 입어주던, 고급스럽기 그지없는 풀 정장 세트다.

“저녁 이상으로 갈 생각밖에 없잖아?!”

조아라, 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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