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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313화 (313/760)

313화

그 뒤로 진소유는 자리의 분위기에 잘 융화되었다. 이전처럼 다른 이들의 말을 끊거나 장하양에게만 집중하지도 않았다.

“아아, 팬미팅에 오셨…… 어? 그분 아니세요? 진저가 최애라고 하시던 분.”

“맞아요! 그거 저예요!”

“아아, 저 갈 테니까 진저 불러서 재밌게 노세요.”

“소유 씨도 최애예요!”

게다가 어째선지, 진소유는 성필에게 매우 친절하게 변하였다.

자꾸만 눈웃음을 보이고 별것 아닌 말에도 박수까지 치면서 웃는 등, 과분하다고 느낄 만한 리액션이 아낌없이 주어졌다.

성필은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

‘독방에 앉아서 소유 사진만 보고서도 10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버틸 수 있는데.’

진소유랑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같이 대화하고, 같이 술과 안주를 먹고, 심지어 자신에게 친근하게 대해주기까지 한다?

‘나,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점점 올라가는 성필의 기분과 달리, 장하양의 기분은 절벽에 급속도로 처박힌 자동차 같았다.

대화에 참여해도 어색하게 웃거나 몇 마디 보태는 게 전부일 뿐.

장하양은 진소유와 성필의 사이를 불안하게 관찰했다.

‘갑자기 언니가 왜 이러시지?’

장하양에게 일침을 얻어맞은 뒤로 각성하여 친화력을 발휘하는 건가?

그렇다기엔 낌새가 이상했다.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아닌가.

그때 진소유가 장하양을 흘끗하면서 이유 모를 미소를 지었다.

‘도발하는 건가?’

옛날에 백설하가 그랬었다.

에리카가 성필을 KS 엔터로 빼돌리려는 줄 착각한 적이 있었다고.

물론 그건 착각이었다.

하지만 진소유, 이 속을 알지 못할 인간이라면 그럴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정호환 이사님이 일본으로 온 것도 이상해. 어쩌면 노린 게 아닐까? 박 이사님이 가로 엔터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순간을…….’

그래,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러니 성필이 맥을 못 추는 케이어스 멤버까지 데려왔(장하양이 같이 보자고 했었음)겠지.

‘설마, 그럴 리가. 어떻게 이런 비열한…….’

장하양의 망상이 점점 부풀어져만 갈 때.

“하양아 어디 불편해? 술 너무 많이 마셨나?”

성필이 애정이 담긴 말투로 걱정해주자 장하양의 상념이 전부 떨어져 나갔다.

“아니요. 그냥 걱정돼서요. 언니는 내일 스케줄 없으세요?”

“딱히 없어. 패션위크까지는.”

“패션위크요?”

진소유는 자신이 일본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패션위크 기간,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의 패션쇼를 직접 보고 앰배서더가 될 곳을 선정한단 목적이었다.

성필이 감탄했다.

“와, 대단하시네요. 무슨 마트에서 물건 고르듯이 말씀하시는 게요.”

“케이어스니까요.”

당당하게 케이어스임을 선언하는 진소유를 보며 정호환은 짙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제가 다 고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앰배서더 제의를 받은 브랜드 중에서 골라야 하니까요.”

“어디 어디 받으셨어요?”

진소유는 명품 브랜드의 이름을 줄줄이 댔다. 그리고 그 말미엔 ‘후쿠요 히다카’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 하양이 이번 ‘후쿠요 히다카’ F/W 시즌 런웨이에 나갈 수도 있는데.”

“하양이가요?”

“네.”

성필은 장하양을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 자식의 성적을 자랑하는 부모처럼, 마하라 타츠야와 만났던 일을 설명했다.

“그랑드 쿠튀리에르가 뭐지요?”

정호환이 당연한 의문을 드러냈다.

“그렇죠? 모르시겠죠? 아니, 제가 아는 패션 쪽 분이 그랑드 쿠튀리에르라는 단어를 당연히 알 거란 듯이 말하는 거예요. 근데 정 이사님도 모르시는 걸 보면 제가 평범한 거였네요. ‘후쿠요 히다카’에선 수석 디자이너랑 동의어로 쓴대요. 총괄 디자이너인 히다카 후쿠요 님 바로 아래요.”

“KS 엔터의 수석 프로듀서 같은 거군요.”

수석 프로듀서란 단어에 성필의 머릿속엔 한 인물이 떠올랐다.

윤상열이었다.

그는 KS 엔터 수석 프로듀서란 경력을 등에 지고 석세스 엔터에서의 영향력을 늘려갔다.

그리고 종국엔, 대표인 김태훈은 성필보다 윤상열을 택했었다.

“박 이사님?”

“……아, 죄송합니다. 그으, 그래서 하양이가 아마 거기 나갈 거 같아요. 대단하죠?”

“이, 이사님…….”

“하양아 자랑스러워 해도 돼!”

장하양은 팔불출 같은 성필의 모습이 기쁜 동시에 부끄러웠다.

칭찬은 남들 앞이 아니라 둘만 있을 때 받는 편이 훨씬 좋은 듯하다. 아니, 성필이 남들 앞에서 자랑하는 것도 좋긴 한데…….

“이게 인연이 돼서 하양이가 ‘후쿠요 히다카’ 앰배서더가 됐으면 좋겠어요. 사실 소녀연맹 멤버들이 각자 앰배서더가 되는 게 제 꿈 아닌 꿈이랄까요. 그렇거든요.”

“꼭 될 수 있을 겁니다. 소녀연맹의 이미지는 유니크하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게 조금 가망은 있는 게요, 어바이비 쪽에서 하양이를 좋게 봐주시는 분이 있거든요. 또 마하라 씨가 하양이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걸 보니까 점점 기대돼요.”

본인의 관심사를 설명하는 성필은 어린애처럼 들떠 있었다.

진소유는 그런 성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장하양의 창창한 미래를 이야기하는 성필은 정말이지 기뻐 보였다.

어른에게선 쉬이 찾을 수 없는 설렘이란 감정이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듯했다.

‘이런 사람이구나.’

진소유는 다시 장하양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장하양도 진소유를 보고 있었다.

불안한 듯 자신을 응시하는 눈동자를 향해, 진소유는 미소만 씩 날려주었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술자리가 끝난 뒤, 정호환과 성필은 마지막으로 악수했다.

그리고 이어서 각 프로듀서는 상대의 아이돌과도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성필은 진소유와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살짝 목이 탔다. 이미 모니터나 폰 화면으로 질리도록 봤는데, 실물은 정말 말도 안 되게 아름답다.

‘마하라 씨가 하양이를 보고 그랬었지.’

기괴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진소유에게도 그 말이 들어맞을지도 모른다.

“저, 소유 씨. 오늘 하양이랑만 보고 싶었을 텐데 괜히 제가 나온 건…….”

진소유가 경쾌하게 손을 내밀었다.

“이젠 안 잊을게요. 박성필 이사님.”

성필은 감동한 듯 진소유와 악수했다.

그렇게 네 사람은 두 무리로 나누어 헤어졌다.

진소유와 정호환은 떠나가는 성필과 장하양을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이사님. 저 앰배서더 되고 싶은 브랜드 생겼어요.”

“어떤?”

진소유는 잠시 걸음을 느리게 하곤, 도시의 빛이 지워버린 별의 고향으로 시선을 올렸다.

“‘후쿠요 히다카’요.”

* * *

성필과 장하양은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함께 5층으로 오르는 길엔 둘 다 말이 없었다.

술을 마셔서 두 사람 다 평소보다 숨이 찼기 때문이다.

겨우 입이 열린 건 5층에 와서였다.

“하양아, 오늘 고생 많았어.”

“왜 고생이라고 하세요?”

“어?”

장하양이 삐친 듯 고개를 돌렸다.

“이사님도 아시는 거죠? 술집에서 저 소외시키고 소유 언니랑만 대화한 게 잘못됐단 거요.”

“소, 소외라니…….”

“제가 저 붙잡아서 소유 언니랑 미니 팬미팅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제 말은 하나도 안 들으시고…….”

“아, 아니…….”

장하양이 서운함을 느낄 만도 하다.

그런데 성필도 변명 아닌 변명이 있었다.

진소유가 눈이 뒤집힐 만큼 친근하고도 친밀하게 대해주는데 텐션이 안 올라가고 배기겠는가.

상상해보라. 최애 아이돌 멤버와 합석했는데 그가 십년지기 친구처럼 대해주는 것을.

“그게, 미안.”

장하양은 성필의 사과를 받고도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곧 선명한 미소를 보이더니 성필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제가 미니 팬미팅 열어드렸으니까, 보답해주셔야죠.”

“뭐 받고 싶어?”

“생각해볼게요.”

진소유와의 미니 팬미팅으로 거래를 마친 장하양은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말한 후, 술 취한 사람 특유의 걸음으로 뒤로 돌았다.

고작 몇 걸음으로 소녀연맹 숙소 문 앞에 도착한 장하양은 문뜩 멈추어 뒤를 보았다.

아직도 성필은 장하양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사님.”

“응.”

“오늘 그 이야기요. 최고의 아이돌이 되고 싶은 이유요.”

“아, 그거?”

장하양이 ‘성욕’이라고 답했던 것이다.

다시 떠올리자 성필은 또 웃음이 나왔다.

“그거 농담이었어요.”

“농담 아니면 어때?”

“네?”

“모처럼 아이돌이 됐잖아. 네 주변에 죄다 잘생긴 남자 아이돌들이야. 뭐, 젊음을 즐기는 것도 좋지. 이것도 아이돌이란 직업의 매력이잖아.”

눈만 돌리면 선남선녀.

실제로 남자 연습생들과 이야기해보면 이런 이유로 아이돌이 됐단 이들이 꽤 보인다.

물론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런 의도도 깔려 있음을 부정하진 않는다.

“하양이 너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지. 아니, 오히려 권장할게. 인생 한 번이야! 마음껏 즐겨! 물론 연애 금지 끝나고.”

장하양은 어이가 없는 듯 입을 벌리더니, 이내 쿡쿡 웃었다.

“네, 인생 한 번이니까요. 즐길게요.”

“…….”

“왜 그러세요.”

“아니야.”

“제가 ‘즐긴다’고 하니까 이상한 생각 들어서 그러세요?”

“에이 내가 그럴 거라고 생각해?”

“네.”

“욜로!”

성필은 부끄러운 듯 급히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장하양은 느슨히 풀어진 얼굴로 닫힌 문을 응시하곤, 다시 숙소로 들어가려 했…….

“난리 났다 난리 났어.”

계단 아래에서 조아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하양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아, 아라야?”

“어휴, 담당 프로듀서랑 둘이서 술 마시고 다니고. 언니 진짜 다른 사람한테 들키려면 어쩌려고요?”

“왜 숨어서 엿듣고 그래…….”

“운동하다 오는 거예요. 보니까 나 올라오는 소리도 못 들을 만큼 정신없는 거 같은데.”

운동했단 말대로, 조아라의 검은색 나시의 가슴과 등 부분이 땀에 물들어 있었다.

“언니 조심해요.”

“부, 불순한 의도나 관계인 것도 아니고…….”

“알아요.”

조아라는 장하양을 지나쳐 문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아저씨는 뭐, 그런 거잖아요. 같은 반에 친한 남자애? 시험 기간엔 공부도 같이하고, 노래방이나 카페도 같이 가고. 근데.”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다른 사람 눈엔 불순하게 보인다고요.”

“…….”

조아라는 어깨 스트레칭을 하며 현관으로 들어섰다.

그런 조아라의 어깨를 장하양이 팍 밀었다.

“어, 언니?”

조아라가 놀라서 돌아보자 장하양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 애가, 자꾸 이사님한테 못된 장난치고 그래?”

“못된 장난요? 내가 뭐요?”

“‘내가 뭐요’라고? 아라 넌 진짜 안 되겠다. 리카!”

“하잇(넵)!”

안방에 있던 리카가 후다닥 달려 나왔다.

“아라가 박 이사님한테 선 넘은 행동한 거 하나만 말해봐.”

“3일 전 연습실에서 이사님을 뒤에서 껴안고 바닥에 눕혔어요!”

“야 그건 그래플링 기술 건 거거든?! 하양 언니랑 너도 당해봤었잖아!”

“그 뒤로 기쁜 듯이 이사님한테 안겼어요!”

“아저씨가 반격한 거잖아아!”

“아라야.”

장하양이 조아라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올렸다.

“‘같은 반 남자애’한테 너무 그러지 마. 남자들은 단순해서 가벼운 접촉에도 호르몬이 막 분비된다, 고 혜빈 언니가 그러셨잖아. 오해하면 어떡해?”

“뭔……!”

조아라가 미치고 팔짝 뛰기 직전이 되자, 장하양은 아하하 웃으면서 그녀를 지나쳤다.

“이제 내 기분 알겠어? ‘댜른 샤람 뉴네는 불슌하게 보여요오’라고 그랬나?”

“…….”

장하양이 사라지자, 리카는 넋이 빠진 조아라의 곁에 쪼그려 앉았다.

“아라쨩, 불순한 행동은 아타시(나)한테 해주면 안 될까? 슬슬 차임 300회 달성 직전인데, 이쯤이면 넘어올 때도 됐지 않아?”

“꺼져.”

“손나(그런)!”

조아라는 푹 한숨을 쉬곤 나시를 벗어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

“오늘 하양 언니 안 좋은 일 있었나 본데.”

“에에, 그래? 취해서 기분 좋은 거처럼 보이던데?”

“아니야. 뭐 있었어.”

“예를 들면?”

“글쎄. 뭐 비밀이라도 들켰다거나. 리카 네가 침대 밑에 숨겨두던 ‘맨즈 헬스’ 들켰던 때처럼.”

“그건 근육 트레이닝 참고 자료라고 말했잖아아아아앗!”

* * *

세계 4대 패션위크라 하면 뉴욕, 런던, 파리, 밀라노를 꼽는다.

관광 수입만 쳐도 조 단위에 이르는 세계 패션계 최대의 축제다.

만약 그중 하나를 빼고 다른 도시를 집어넣으라면 반드시 도쿄가 들어갈 것이다.

도쿄 패션위크.

약 일주일, 세계의 브랜드들이 모여 수백 번의 패션쇼가 펼쳐진다.

“그야말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때입니다.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히무라는 흥분을 숨기기 위해 담담한 말투를 꾸며냈다. 하지만 쉬이 되지는 않았다.

“특히 유명 브랜드의 패션쇼는 더욱 그렇습니다. 기자만 수십 수백이고, 패션쇼장을 밖에서 구경만 하는 인파는 천 단위를 넘을 겁니다. 그리고 그 패션쇼에서 벌어지는 일은 순식간에 세계의 뉴스를 잡아먹고 열렬한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성필은 음악이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은 현대에 이르러 필수품의 영역이 되어, 사람들은 웬만해선 음악과 떨어질 수 없다.

그리고 의상, 패션이란 전통적인 필수의 영역이었다.

옷은 인간임을 증명하는 수단이기도 하였으니, 문화로서도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세계의 이목이 모인다는 건 확실히 과장이 아니겠네요.”

“그렇습니다. 만약 ‘후쿠요 히다카’의 패션위크 런웨이에 설 수만 있다면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는 것도 꿈이 아닙니다.”

히무라는 ‘후쿠요 히다카’ 측으로부터 장하양의 런웨이 정식 출연 제의를 받은 후로 줄곧 흥분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하양이가 서기로 한 건 본격적인 패션쇼가 아니라 오프닝 행사잖아요.”

모델이 아닌, 유명인들이 ‘후쿠요 히다카’의 옷을 입고 캣워크를 걷는다.

그저 오프닝 ‘행사’이다.

누구도 그곳에 오르는 이들에게 전문적인 워킹이나 아우라를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치가 있습니다. 일단 런웨이에 올라서 사람들에게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칠 가치가 있죠.”

그냥 유명하다고 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후쿠요 히다카’가 기대하는 이미지와 아우라, 룩과 엣지(Edge)를 가진 이들만이 설 수 있다.

즉, 태생부터의 아우라가 명품인 이들이 걷는 곳이 오프닝 행사인 것이다.

“박 이사님, 하양 씨가 ‘후쿠요 히다카’의 앰배서더가 되면 좋겠다고 하셨죠. 하지만 런웨이에 서면 순식간에 여러 명품 브랜드로부터 앰배서더 제안이 올 겁니다.”

“그러면 더할 나위 없겠네요.”

성필은 패션 잡지를 읽거나 옷 구경을 좋아하긴 해도, 패션계 자체를 알진 못한다.

장하양을 소개해주었던 모델 에이전시 사장, 성윤수에게 주워들은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러고 보니 윤수 형이 그랬었지. 만약 소속사 모델을 한 명이라도 유명 브랜드 패션쇼에 세울 수 있으면 떼돈을 벌 거라고…….’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됐다, 란 말은 패션계에도 통용된다.

패션쇼 런웨이 한 번이, 잡지 출연 한 번이 모델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장하양은 그런 자리에 오른 건가.

새삼스레 장하양이 대견해진다. 또한 이런 기회를 준 하시모토 매니저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제안은 받아들이는 편이 좋습니다. 아니, 받아들여야 합니다.”

히무라의 열망 어린 시선에 성필이 무어라 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알겠다고 답했다.

애초에 성필이 물어온 건이니까.

“감사합니다.”

히무라는 성필이 의아해할 만큼이나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실장님은 패션에 대해 잘 아시나 보네요. 솔직히 저는 도쿄 패션위크래도 감이 안 잡히거든요.”

“패션‘위크’, 그 일주일의 행사로 간접, 직접 관광 수입만 조 단위라면 감이 잡히십니까?”

“어…… 네, 대충은요.”

“전혀 모르시는군요.”

히무라는 이해한단 눈치였다.

“어떤 사람이든 자기 관심사가 아니고서야 대단함을 모르는 법이죠. 제가 뉴스에 세기적인 대발견이라면서 수만 년 전의 주먹도끼를 보여줘도 감흥이 없는 것처럼요.”

“왠지 부끄럽네요. 우리 애들이 관련된 일인데 파급력을 짐작도 못 한다는 게요.”

“아닙니다. 저야 웨벡스에서 모델 에이전시 일도 하고 있으니 알고 있는 것뿐입니다.”

“모델 에이전시라…….”

그러고 보면 한국 기획사들도 예전부터 모델 에이전시를 자회사로 설립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왔다.

어쩌면 가로 엔터도 성장한 후엔 모델을 관리하거나 할까?

‘그때를 위해 공부 좀 해둘까. 이사란 사람이 회사의 사업 영역도 모르면 안 되니까.’

그 정도가 되면, 가로 엔터도 사업적인 전문 지식 확보를 위해 사외이사(社外理事)를 들이거나 새 사내이사(社內理事)를 고용할지도 모르겠다.

KS 엔터처럼 이사 직함을 가진 사람만 열 명 언저리가 될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먼 미래의 일이고, 아직은 꿈 같은 일이다.

“그리고, 이 건은 박 이사님께 여쭈어보아야 할 거 같습니다만.”

히무라는 아까완 달리 차분하면서도 조금은 껄끄럽단 듯 말했다.

“예능 방송 섭외가 들어왔습니다. 몰래카메라 종류입니다.”

“몰래카메라요? 제가 그런 쪽은 안 받겠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일부러 사람을 곤경에 처하게 만드는 플롯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성필 개인적으로는 멤버들에게 장난치는 것을 매우 좋아하지만, 대부분 끝이 좋지 않았었다.

‘일본에 안 온다는 몰래카메라 했을 땐 애들한테 구타당했었지.’

그것보다 더 안 좋은 기억은, 소녀연맹이 데뷔하기 전 만우절이었다.

성필이 가로 엔터를 떠나겠다고 한 거짓말에 리카는 울먹이면서 ‘따라가겠다’고 했었다.

심지어 핸드폰으로 가로 엔터 사람들이 다 듣고 있는 와중에 말했었다.

‘얼마나 놀랐던지.’

그때 수습하지 못했으면 성필은 요주의 인물로, 리카는 가로 엔터의 반동분자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그건 압니다만, 이 플롯은 조금 소프트해서 괜찮을 거 같다고 고려됩니다.”

“소프트요…….”

시청률만 받쳐준다는 가정하에, 우동에 와사비를 넣는 정도면 성필도 봐줄 요량이 있었다.

아마 히무라가 추천하는 프로그램이니, 소녀연맹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건 확실하다.

성필은 기획서를 찬찬히 읽었다.

“……정말 이렇게 해요?”

“네.”

성필의 눈이 빛났다.

“재밌겠다…….”

[갑자기 쳐들어온 인터폴(국제경찰)!

멤버들을 찾아온 이유는 박성필 이사의 범죄?! 차트 조작! 앨범 사재기! 엔터 관계자 향응(饗應)! 내부자 거래!

과연 멤버들의 반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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