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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312화 (312/760)

312화

진소유는 일본의 한 호텔에 묵고 있었다.

그녀가 일본으로 온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웠다. 바로, 그녀가 앰배서더가 될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이다.

‘너 빼고 다들 브랜드 앰배서더가 됐어. 언제까지 선택을 미룰 수는 없어.’

KS 엔터의 매니지먼트 이사인 남홍범은 답답하단 듯 말하면서 진소유에게 여행을 권유했다.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르면 결정이 빠를 거다. 마침 곧 세계 각지에서 패션위크가 열리니, 그곳에 가서 여러 브랜드를 둘러보는 게 좋겠지.’

진소유는 지겹게도 자신이 앰배서더가 될 브랜드 선택을 미뤄왔다.

KS 엔터의 비주얼 팀이 심사숙고하여 브랜드를 추천해주어도, 진소유는 미루기만 했다.

브랜드 앰배서더란 지위는 그녀가 해왔던 일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차이란 진소유 본인에게 브랜드의 이미지가 씌워진단 것이다.

‘다른 무언가로부터 내 정체성이 결정된단 거야.’

그 정체성은 진소유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꾸준히 굳어질 것이다.

진소유는 본인이 모르는 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단 데 불쾌감을 느꼈다.

감정적이라기보다, 생리적인 불쾌감이었다.

그러니 최소한 자신이 선택해야만 했다.

‘도쿄 패션위크? 왜 하필 일본이지? 4대 패션위크인 파리나 밀라노, 런던과 뉴욕도 있는…….’

샤워실 밖에서 울리는 핸드폰 착신음에, 남홍범의 질문을 떠올리던 진소유의 상념이 멈추었다.

정신을 차리니 거울에 비친 자신이 보였다.

물을 맞아 반짝이는 몸과 얼굴.

아름답다.

그렇지만, 연락이 왔으니 그만둬야겠지.

아직 30분밖에 못 즐겼는데.

‘누구지.’

샤워 가운을 걸치고 폰을 집어 들었다.

아까 핸드폰에선 착신음이 들렸다. 그녀가 전화나 톡, 문자의 착신음을 무음으로 해두지 않은 사람은 손에 꼽는다.

폰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반드시 연락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정호환 이사님, 남홍범 이사님, 사쿠라바 에리카, 윤희연 이사님, 그리고…….’

진소유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하양이.’

샤워를 30분밖에 하지 못한 불쾌감이 순식간에 씻겨 나갔다.

진소유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걸었다.

* * *

진소유의 입꼬리가 축 내려가 있었다.

성필이 기억하기로, 진소유는 정호환과 함께 올 때부터 계속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내가 하양이랑 같이 있어서 그런가?’

하기사, 친구인 장하양을 보겠다고 연락했는데 회사 사람이 동행했으니 기분이 안 좋을 만도 하다.

하지만 어쩌는가.

‘하양이가 나만 내버려 두고 가긴 싫다고 하니.’

더블 데이트니 뭐니 장난은 쳤지만, 성필은 진심으로 둘씩 짝지어 만날 생각은 없었다.

성필과 정호환, 이 둘이 젊은이들과 함께 있어 어떤 역할을 하겠는가.

괜히 분위기만 어색하게 만들겠지.

“정 이사님 안녕하세요.”

“예, 잘 지내셨습니까.”

성필과 정호환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화기애애한 악수를 나누었다.

그 즉시 정호환이 성필의 다리를 보며 물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셨습니까?”

“아, 그게, 차에 부딪혀서요.”

“타국까지 와서……. 이럴 줄 알았으면 제가 모시러 가는 거였는데요.”

“아뇨, 저 잘 움직여요. 딱히 아프지도 않고요.”

그러고서 성필은 현란한 목발 컨트롤을 선보였다. 정말 현란해서, 정호환은 서커스라도 보듯이 감탄을 터뜨려야만 했다.

이어서 성필은 진소유에게 인사했다. 그녀가 자신을 알아볼 것이란 은근한 기대를 담아서.

“안녕하세요 소유 씨.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이요?”

박성필, 충격!

‘팬미팅 때 날 봤던 것도 잊어버렸어?!’

애초에 진소유의 머리에는 ‘박성필 이사’란 카테고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어쩌면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아, 네. 오랜만이네요.”

앗, 설마 드디어 눈치챈 건가?

“저희 데뷔할 때 대기실에 찾아오셨던…… 그날 이후로 처음이죠? 정말 오랜만이긴 하네요.”

박성필, 충격으로 실신 직전!

‘소유 씨 저희가 얼마나 긴 유대를 쌓았는데요!’

1. 데뷔할 때 대기실에서(1년 8개월 전).

2. 진저가 케이어스 멤버들에게 받아온 감사 편지(1년 4개월 전).

3. 그리고 팬미팅에서(성필의 생각으로 극히 최근).

이토록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관계를 다져왔는데, 어찌 이리도 야박한 기억력을 지니고 있을까?

“박 이사님, 가시죠. 제가 일본에 올 때마다 들르던 좋은 식당이 있습니다.”

“네, 네…….”

“혹시 어디 편찮으실까요? 제가 괜히 만나자고 한 건 아닌지.”

“아니요, 괜찮아요, 완전 건강해서…….”

“……?”

정호환이 안내한 곳으로 가니 으리으리한 백화점이 일행을 반겨주었다.

성필은 정호환이 정말 엄청난 곳으로 가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정호환이 백화점의 반대편으로 걸음을 꺾었다.

그는 웬 골목으로 들어가더니, 맞은편의 백화점과는 대비되는 아담한 거리를 찾았다.

“이곳입니다.”

자칫하면 보지 못하고 지나칠 만큼 평범한 건물이었다.

물론 한국에선 보기 힘든 목조 건물이 시부야 중심이 있는 건 특별하긴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밖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던 넓고 높은 천장이 반겨주었다.

“와.”

“운치가 있지 않습니까. 건물 여기저기를 가로지르는 목재 기둥들이 엮인 게, 꼭 절에라도 들어온 거 같습니다.”

“그러게요. 저 혼자 이 거리로 왔으면 가게인 줄도 몰랐을 거예요.”

왠지 정호환은 한국 밖으로 잘 나가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90년대부터 활약했던 작곡가이니, 음악적 영감이나 기술을 얻으려 외국을 많이 돌아다녔을 게 분명하다.

‘지금의 KS 엔터가 되기 전엔, A&R팀이 해외 작곡가들 곡 얻으려고 직접 찾아갔다고도 하니까.’

정호환 이사도 그런 일을 했던 것이겠지.

네 사람은 아담한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골랐다.

“바, 박 이사님 이거 한 잔에 만 원이래요…….”

장하양은 메뉴판을 본 순간부터 극심한 생존 위협이라도 받는 듯 움츠러들었다.

이곳의 메뉴는 술을 병으로 시키려면 최저가가 10만 원 이상에, 한 잔을 시키는 것도 만 원을 넘어가는 게 당연했다.

안주는 말할 필요도 없이 비쌌다.

“하양 씨, 걱정 말고 시키셔도 됩니다.”

“아, 혹시 정 이사님이…….”

“하양 씨 건 박 이사님이 계산하실 거니까요.”

냉혹한 더치페이!

“그래, 먹고 싶은 건 아무거나 시켜.”

“그럼, 저는, 이사님이랑 같은 걸로요. 안주도 이사님이 정해주세요.”

“나 이런 거 잘 못 하는…….”

“저는 하양이랑 같은 거요.”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진소유가 드디어 본인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 의견이란 게 장하양을 따르겠단 것이긴 했지만.

그렇게 안주와 술이 결정되고, 네 사람은 본격적으로 회포를 풀기 시작했다.

“‘뉴아사’ 무대 직접 보았습니다. 대단하더군요.”

“정말이요?”

“예. 사실 일본에 온 건 ‘뉴아사’를 직접 보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마지막에 ‘더 킹’을 재현한 부분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더군요.”

성필은 정호환의 찬사에 광대가 하늘 위로 날아갈 것처럼 올라갔다.

무려 ‘더 킹’의 원작자에게 좋은 무대였단 인증을 받았다.

“하양이 좋았죠.”

심지어 케이어스 멤버인 진소유에게도 인정받았다.

무대 전체가 아니라 장하양만 좋다고 했지만, 어차피 칭찬인 터라 성필에겐 그게 그거처럼 들렸다.

“맞죠? 하양이 퍼포먼스도 정말 좋았어요.”

성필은 진소유 쪽을 보며 말했는데, 적잖이 당황했다.

보통 대화를 하면 말하는 사람을 쳐다보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진소유는 장하양만을 눈에 담고 있었다.

성필은 하던 말을 이어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왕 입을 뗐으니 이야기는 마치기로 했다.

“무대 보곤 조금 아쉬운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 퍼포먼스를 소녀연맹 오리지널 곡에서 선보이…….”

“하양이는 몸 관리 어떻게 해? 회사에서 시킨 거야? 아니면 하다 보니까?”

성필의 말이 끊겼다.

거기서 장하양은 심기가 불편한 듯 눈꺼풀을 살짝 내렸다.

하지만 진소유는 그런 그녀의 기색은 신경도 안 쓴다는 듯, 혹은 눈치채지도 못한 것처럼 장하양만을 바라보았다.

“……저는, 운동하면서 개인적으로 목표를 만들었어요. 회사에서 요구한 게 아니에요. 그렇죠 이사님?”

“어, 응.”

장하양이 아직도 당황하는 성필에게로 대화의 머리를 옮겼다.

“가로 엔터가 소녀연맹에게 요구하는 건 기본적으로 아이돌적인 몸이에요. 핏이 사는 몸이요. 그렇다고 과하게 마르면 안 되겠지만, 솔직히 하양이 보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그렇더군요.”

정호환이 능숙하게 성필의 말을 받았다.

“하양 씨의 근선명도를 보면…… 아, 이런 이야기는 불쾌하실까요?”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하양 씨의 근선명도로 추측하건대 자칫하면 몸이…….”

정호환은 팔뚝 굵기라거나 허벅지 크기와 같은 단어들을 뭉뚱그려 ‘몸’이라고 표현했다.

“조금 강인하게 보일 테니까요. 신체를 노출하는 의상을 입을 때 밸런스가 맞지 않을 겁니다.”

쉽게 말해, 장하양의 몸 자체가 시선을 빼앗아버릴 것이다.

주목의 비중으로 따진다면, 몸이 의상과 퍼포먼스로 가야 할 이목을 전부 가져간단 뜻이다.

“그렇네요. 아이돌한테는 옷도 중요한 파트인데, 정작 그 옷이 어울리지 않게 되면요. 옷이 어울리려면 일단 마른 게 최고니까요.”

“그런데 이사님은 이런 몸 아니, 신체가 좋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장하양이 언뜻 초조하게 물었다.

“나?”

“네. 전에 건강미 있는 게 좋다고 하셨잖아요.”

“그랬…… 나?”

틀린 말은 아니다.

개인적인 성필의 선호는 마른 것보다 적당히 단련된 몸이니…….

‘내 머리에서 나가 조아라!’

그래, 단련된 몸이니까.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도, 언젠가 성필이 장하양 앞에서 이런 말을 했던 모양이다.

“그렇긴 한데, 내 개인적인 선호보다는 프로듀싱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하니까.”

“이사님 개인의 선호랑 아이돌에게 바라는 게 다른가요?”

“다르지 그럼. 아이돌의 미(美)는 수많은 개인의 선호 속 교집합이니까.”

“나는 좋다고 생각해.”

진소유가 말했다.

“자신을 사랑해서 만든 몸이잖아. 타인의 기준에 휘둘릴 필요는 없어. 무엇보다, 나는 지금의 하양이가 좋아. 물론 미래의 하양이도 좋을 거고.”

“타인의 기준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니…….”

당돌한 발언에 정호환이 허허 웃었다.

아이돌이야말로 타인의 기준이 끝도 없이 모여 탄생한 것이 아니던가.

프로듀서인 정호환으로선 진소유의 생각이 마냥 달갑진 않을 것이다.

“좋은 말씀이네요.”

진소유의 인정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장하양은, 성필이 말하자마자 미어캣처럼 고개가 돌아갔다.

“저도 지금의 하양이가 좋아요. 건강해 보이고, 건강하잖아요.”

성필은 장하양이 처음 가로 엔터로 들어왔을 때를 기억한다.

픽하면 기절하거나 쓰러지고, 당이 떨어지거나 빈혈이 와서 30분 동안 숨만 골라도 호흡이 진정되지 않던 그녀의 모습을.

“물론 지금보다 더…… 피트니스 선수처럼 변하면 안 되겠지만요. 하양아, 딱 현재 상태가 좋은 거 같아. 유지할 수 있…….”

“있어요. 평생 이 모습으로 있을게요.”

“아, 그래?”

자기관리 의지가 매우 뚜렷하다.

“그럼 좋…….”

“그런데 힘들지 않아?”

다시 진소유가 성필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그에 성필은 또다시 얼떨떨해졌고, 정호환 또한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

진소유는 어느새 장하양 쪽으로 상체를 과하게 기울인 포즈로 앉아 있었다.

장하양은 뒤로 살짝 몸을 물리면서 답했다.

“안 힘들어요. 제 꿈을 위해서니까요.”

“꿈?”

“최고의 아이돌이요.”

정호환이 감탄을 터뜨렸다.

그는 감히 자신의 앞에서 ‘최고의 아이돌’을 입에 담을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케이어스의 진소유마저 대면하고 있는데 말이다.

“최고의 아이돌이 왜 되고 싶어?”

“……네?”

“이유를 묻는 거야.”

“꿈, 이니까요.”

“왜 그게 꿈이야?”

진소유를 제외한 이들은 그녀가 시비라도 거는 거라고 생각했다.

집요한 질문은 시비와 다르지 않으니까.

하지만 장하양은 침착하게 답했다.

“아이돌이 됐으니까요. 어느 분야에 들어서서 최고를 목표로 삼는 게 이상하진 않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이돌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행복을 주잖아요. 그런 직업의 톱이라면 꼭 되고 싶어요.”

장하양은 성필을 흘끗 보며 미소 지었다.

성필도 마주 웃어줌으로써 훈훈한 분위기가.

“하양이는 아이돌에 소명 의식이라도 있어?”

훈훈한 분위기가, 되려 했다.

하지만 진소유는 이 문답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언니가 말씀하시는 의도를 모르겠네요.”

“자기가 가진 직업의 사회적 필요성과 정당성을 설명하면서 자부심을 가지는 건 이해가 돼. 다들 그러니까. 그런데 내가 하양이한테 듣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야. 다시 물어볼게.”

최고의 아이돌이 되면 그걸로 끝이야?

“난 하양이가 그 꿈으로 성취하고픈 걸 묻는 거야.”

“꿈으로 성취하고픈 거라뇨.”

갑자기 장하양의 말투가 지나치게 날카로워졌다.

마치 역린을 만져진 용처럼 불꽃을 뿜어내는 듯하여, 이야기를 듣던 성필과 정호환이 놀랄 정도였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려는 일의 동기를 집요하다시피 감추잖아. 정치인은 개인의 야망 대신 정의를 이야기하고, 의사는 돈 대신 생명의 고귀함을 이야기해. 아이돌도 마찬가지 아닐까. 결국 돈이나 명성인 거지. 돈이 없으면 누가 일하겠어. 특히 아이돌을 말야. 힘들잖아.”

정말 최고의 아이돌이라는, 명예의 집합체와도 같은 그 이름만을 바라는 건가?

인간은 절대 그럴 수 없다.

“하양아, 솔직한 답을 듣고 싶어. 돈 벌고 싶지? 돈 벌면 뭐 해? 아마 집 사고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사람 만나서……. 결국 그거잖아.”

모든 일은 그 욕구들을 채우기 위함이다.

돈이란 이름의 자유를 손에 넣기 위해서.

“인간은 침팬지랑 다를 게 없어. 권력욕, 식욕, 성욕. 나는 하양이의 바닥을.”

그때 진소유의 입이 닫혔다.

본인이 무례하단 사실을 자각한 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 이런 단어를 쓰리라곤 생각도 한 적이 없어서, 그래서 놀란 것이었다.

“……하양이를, 알고 싶어.”

“거기까지 말씀드릴 이유는 없네요.”

“응?”

“언니께 알려드릴 이유는 없다고 했어요.”

진소유는 적잖이 놀랐다.

장하양을 향한 요구가 거절당한 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하양이, 화났네?’

진소유는 단번에 그 사실을 간파했다. 오히려 이렇게 늦게 깨달은 게 이상했다.

왜 화났을까, 진소유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양아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했던가? 아, 분위기도 무르익지 않았는데 너무 내밀한 걸 물었나? 미안, 술 마실까?”

“언니, 주변을 둘러보세요.”

“주변?”

진소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뭐가 있어?”

“있어요.”

“어떤 거?”

“박 이사님이랑 정 이사님이요.”

그제야 장하양밖에 존재하지 않던 진소유의 시야에 두 남자가 잡혔다.

“……아, 그렇구나.”

“정호환 이사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저는 몰라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언니 아까부터 굉장히 무례하세요. 박 이사님 말을 끊고, 쳐다보지도 않고, 마치 없는 사람이란 듯…….”

“죄송합니다.”

진소유가 성필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그에 성필은 오늘 굉장히 많이 겪은 감정인, 당황을 또다시 느껴야 했다.

세상 살다 케이어스 멤버에게 사과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사과를 마친 후, 진소유는 ‘이제 됐어?’란 듯이 장하양을 응시했다.

장하양은 낮은 한숨을 쉬었다.

‘정말.’

이렇게나 정이 안 가는 사람이 또 있을까.

사과를 면피의 도구로 사용하는 인간은 많이 보았지만, 진소유만큼 철면피처럼 쓰는 사람은 처음 본다.

그녀의 사과에는 마음이 없다.

‘아니, 마음을 담아 사과할 이유가 없는 거야.’

옛날에 진소유는 모든 사람의 호의를 살 필요는 없다고 말했었다.

‘언니한테 박 이사님은 호의를 살 필요가 없는 사람 쪽인 거겠지.’

진소유는 옛날과 비교해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알려줄 거야?”

“아니요.”

“왜? 나 하양이 알고 싶단 말야.”

장하양은 질렸단 듯 진소유를 응시하곤 던지듯이 말했다.

“성욕(性慾)이요. 답이 됐어요?”

“…….”

남은 세 사람이 황당하단 듯 침묵했다.

그 침묵이 끊어진 건 정호환의 헛웃음 때문이었다. 그는 기어코 입을 가리면서 계속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숨겨야 했다.

그러자 성필도 웃었다.

‘하양이 농담이 성공하는 날도 오네.’

장족의 발전이다.

아마 장하양은 진소유가 언급했던 성욕, 식욕, 권력욕 중 적당한 하나를 택한 것일 터다.

‘최고의 아이돌이 되려는 이유가 성욕 때문이라니.’

번식 기회를 획득하려 우두머리가 되기 위한 권력투쟁에 뛰어드는 수컷 침팬지도 아니고.

서로 어울리지 않는 아이돌과 성욕이란 단어가 웃음 포인트였다.

하지만 진소유는 웃지 않았다. 입꼬리를 애매하게 꼬기만 할 뿐.

“……농담이지?”

장하양 자신의 농담으로 분위기가 좋아졌다.

그녀는 다시 테이블의 공기를 아까처럼 차갑고도 무겁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미소를 지으면서, 이제껏 진소유에게 보여주지 않던 친밀함을 드러냈다.

“당연히 농담이죠. 최고의 아이돌이 되려는 이유는 아직 저도 구체적으론 모르겠어요. 하면서 답을 찾아야겠죠.”

정호환은 그에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였다.

“젊은 나이엔 으레 최고를 노리는 법이지만, 그 이유를 물으면 궁한 법이죠. 당연합니다. 아직 한창 자아를 찾아야 할 시기니까요. 그럼 하양 씨를 위해 건배라도 할까요. 의미 있는 삶과 목표를 제때 찾을 수 있기를.”

진소유의 무례한 태도를 깔끔이 씻으려는 건배가 이어졌다.

하지만 진소유는 여전히 아까와 같은 얼굴이었다.

‘하양이 얘.’

아까와 같은, 장하양이 ‘성욕’이라고 답했을 때의 황당해하는 얼굴.

‘농담이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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