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304화 (304/760)

304화

“흡.”

옥상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같이 탄 웨벡스의 직원은 떠는 성필 따윈 안중에도 없이 불안한 눈빛만을 띠고 있을 따름이었다.

문이 열리고, 직원이 먼저 뛰쳐나갔다.

성필은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최상층,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이거구나.’

성필이 ‘뉴아사’에 출연하지 않아 후회했던 미래를 본 이유는 이것이었다.

하지만 그 미래를 본 건 ‘뉴아사’에 출연하라는 신호 따위가 아니었다.

‘오직 이 순간을 위해서.’

단지 이 순간.

세이코가 뛰어내리던 순간, 밤까지 웨벡스에 남아 있을 것.

그 이유 때문에 성필은 미래를 보았다.

그리 확신했다.

‘이 순간, 세이코 씨를 구하기 위해서.’

성필이 보는 후회할 미래는, 그 미래를 피할 최적의 순간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성필은 미래를 보고도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었다.

미래를 보지 않았을 때보단 낫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찝찝했던 결과를 숱하게 겪어왔다.

그랬기에 성필은 이 능력을 지니고도 마음 편히 살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선택이 반드시 옳은 결말로 이어지진 않으니까.

만약 이 능력이 생긴 이유가 있다면, 그건 불행한 미래를 피하는 게 아니라 더 열심히 살아가란 뜻일 터다.

더 열심히 해서 최대한 후회를 피하라고.

원치 않은 결과라도 후련함을 지니고 후회라도 하지 말라고.

‘내가 봤던 미래와 행해왔던 모든 행동은 이 순간 나를 여기 있게 하기 위해.’

그러나 성필은 이 시점에서, 드물게도 자신이 올바른 미래에 도달했다고 확신했다.

그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옳게 된 결말로 향하는 분기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성필이 택해야 할 건.

‘살인을 막는 거다.’

세이코는 살해당한다.

인터넷이란 바다를 떠도는 수많은 칼날에 마음이 찢어발겨져 살아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성필은 이런 종류의 살인 사건을 많이 겪었다.

[◯◯ 엔터 ◯◯◯ 본인상(本人喪)]

엔터계에서 발을 넓히다 보면 이런 종류의 문자를 종종 받는다.

성필은 그러한 장례식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장례식장으로 들어가면 회사 사람들, 엔터계의 사람들, 상주와 가족, 그리고 멤버란 이름의 또 다른 가족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죽음을 택한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살인자를 탓할 수도 없다.

탓하기엔, 살인자는 부정형의 불명확한 악의였으니까.

바다가 도시를 휩쓸었다고 바다를 원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 바다는 인간의 의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해결할 수 없는 분노를 가슴 속에 키우게 만든다.

“세이코 씨, 이상한 생각하지 마세요.”

옥상 문을 열자마자 히무라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어온다.

그리고, 아까 봤던 미래대로 세이코가 난간에 걸쳐 서 있었다.

히무라는 조금씩 발을 움직여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리, 이리로 오세…….”

“뭐 하는 거야아―!”

성필이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외쳤다.

“잡아! 넋 놓지 말고 잡으라고―!”

사방의 이목이 성필에게 몰리는 것과 다르게, 히무라는 그 외침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세이코를 향해 달렸다.

그게 최선이란 것을 직관적으로 깨달았기에.

세이코가 당황하는 것도 잠시, 그녀는 너무나도 쉽게 난간에서 손을 놓았다.

히무라는 세이코의 머리카락을 쥐었다가 놓쳤을 뿐이었다.

이어서 익숙한,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았던 파괴음이 성필의 귓가를 울렸다.

“아…….”

히무라는 망연자실하게 손을 떨면서 뒤로 돌아보았다.

외침의 주인공인 성필을 보고.

“무슨, 짓을.”

“아아아아……!”

미사토가 오열했다.

* * *

엘리베이터 안.

성필은 호흡을 다잡았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같이 타고 있던 직원보다 빨리 뛰쳐나가 옥상에 올랐다.

“세, 세이코쨩…… 제발 내려와아…….”

미사토가 세이코에게로 기어가며 애원했다.

‘여기가 내가 도착할 수 있는 최대한도의 지점이다.’

성필은 사람의 벽을 헤치며 미사토, 히무라와 함께 상층부로 올랐다.

세이코는 성필을 보자마자 안색이 희미하게 밝아지더니 손을 흔들었다.

“파쿠 이사다. 축하해요, 멋진 무대…….”

“세이코 씨 무대가 더 멋졌어요. 홀로 무대를 채우는 아우라에 감탄했습니다.”

세이코는 흠칫하곤 쓴웃음을 머금었다.

“아아, 이 말을 무대 전에 들었으면 정말 기뻤을 텐데.”

“진심입니다.”

“그런데, 지고 나서 들으니까 비꼬는 걸로 밖에 안 들리네요. 싸구려 위로 같아요.”

“세이코 씨가 사라지면 슬퍼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뿐 아니라, 수백만 수천만 명이 슬퍼해요.”

“아, 그래요.”

미사토는 바들바들 떨면서 성필을 보았다.

그녀는 성필이 하는 설득이 옳은지 아는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는 거죠?”

“그래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사람이 나를 안 좋아해주는 걸요.”

세이코가 픽 웃었다.

“나는 내가 미워요.”

“예?”

“세상이 전부 내게 등을 돌려도,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나는 그럴 수가 없네요. 이런 나를 좋아할 수가 없어요. 가후라면서 나를 띄웠던 것도, 나를 사랑해보려는 노력이었는데.”

잘 안 됐네요.

“나는 나에게 사랑받을 구석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나는 자살(自殺)해요.”

스스로를 죽이겠다.

세상을 살아갈 가치가 없는 나를, 내 손으로 죽이겠다.

“시작하는 건 내 마음이 아니었으니까, 끝내는 건 내 마음으로 하고 싶어요. 안녕, 나야. 다신 보지 말자.”

가후 세이코, 은퇴합니다.

이번엔, 히무라는 세이코의 말에 집중하느라 그녀를 잡으러 달려가지도 못했다.

성필도 그러했다.

두 남자가 허망하게 뻗은 손은 세이코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기괴하게 울리는 파쇄음만을 느슨히 붙잡았다.

* * *

“파쿠 이사다. 축하해요, 멋진 무대…….”

“미사토 부장님, 뭐라도, 세이코 씨에게 하실 말씀이 없으신가요? 오래 봐왔으니까.”

성필이 눈빛으로 미사토에게 애원했다.

가련하게 떨기만 하던 그녀는 성필의 말을 듣곤 조금이나마 정신을 붙잡았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세이코를 설득하려 했다.

“세, 세이코, 왜, 왜 그러는 거야아……?”

“힘들어서.”

“내가, 내가 못 한 게 있으면 말해줘. 유선이 때문이야? 헤어질게. 그리고 계속 세이코쨩이랑만 있을게.”

“아니야, 미사토는 행복해져. 나도 그걸 바라. 지금까지 귀찮게 해서 미안했어.”

“조금도 귀찮다곤 생각 안 했어.”

“그냥, 나 혼자 힘들어서 그래.”

“아니야, 넌 이겨낼 수 있어. 지금까지 그래왔잖아! 넌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어! 그런 애야, 내가 장담해!”

세이코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이겨내야 해?”

“어?”

“왜 계속 괴로워야 해? 그러고도 살아야 해?”

“사, 사는 건, 그냥 살아야, 당연한…….”

“사는 이유가 ‘그냥’으로 되는 거야? 그럼, 그렇게 간단한 이유라면, 죽는 이유는 그보다 더 진지하면 되는 거지?”

“아니야, 아니야 세이코, 내 말은…….”

“나 힘들어. ‘그냥’보다는 낫지?”

그러니까 은퇴할게.

* * *

히무라가 고성을 내질렀다.

“세이코 씨 치료받으면 됩니다! 그럼 행복해질 수 있어요! 세이코 씨는 아픈 겁니다! 병이에요!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죠!”

“정신적인 치료?”

“예. 거기서 내려오기만 하면, 지금 이 상황을 만들었단 게 부끄러울 정도로 행복해질 겁니다.”

“참, 쉽다.”

세이코가 난간에서 한쪽 손을 놓았다.

“사람 성격 탓만 하면 되고.”

그렇지, 내 성격 탓이지.

내 잘못이지.

알겠어.

나도 동의해.

맞아, 전부 나 때문이야.

“다들 그랬었지. 왜 일부러 쓰레기장으로 들어가냐고. SNS 따위 안 보면 되는 거 아니냐고. 내가 잘못한 거라고…….”

근데.

“난 잘못한 거지, 나쁜 짓을 한 게 아니잖아. 왜 아무도 나쁜 말 한 사람들을 탓하진 않아? 왜 벌주지 않는 거야?”

“그건…….”

“막을 수 없어서? 끝이 없어서? 그래도 탓해야 하는 건 잘못한 사람이 아니라 나쁜 짓 한 사람이잖아. 애초에 난…… 잘 모르겠어. 내가 왜 이렇게 욕을 먹어야 하는지. 연예인은 돈을 많이 버니까 욕을 먹어도 된단 건 너무하잖아.”

세이코가 나머지 손도 놓았다.

“너무 불합리하고, 이유도 모르겠어서, 그만할래.”

* * *

성필은 세이코가 이 상황까지 몰린 이유를 알아내려고, 수많은 미래 속에서 부단히도 말을 걸었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주는 사람은 자신뿐이잖아. 그런데 난 그럴 수가 없어. 미사토? 아냐, 미사토도 자기 삶이 있는걸. 난 이런 나까지 온전히 사랑해달라고 어리광 부리고 싶지 않아.”

자식이 부모에게 받는 건 목숨이다.

유아기에 주어지는 무제한적인 사랑을 받곤 확신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은 사랑받을 가치가, 살아갈 가치가 있단 사실을.

하지만 세이코는 부모에게서 목숨을 전해 받지 못했다. 고아였으니까.

그럼 세이코가 바라는 건 온전한 형태의 사랑인가?

“내가 죽어서, 나를 욕했던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죄책감을 평생 달고 살았으면 좋겠어. 깨어날 때, 잘 때, 언제나 나를 죽였단 죄책감을 가지길 바라. 만 명 중 한 명이라도, 복수하고 싶어.”

복수심은 인간의 오래된 감정이다.

그것을 죽음으로써 이루려는 것도 여러 역사와 문학의 단골 레퍼토리다.

세이코도 그러할 따름이다.

그럼 세이코가 바라는 건 복수인가?

“나는 가수가 돼선 안 됐나 봐. 그냥 소소하게 노래하며 살아갔어야 했어. 노래는 즐거우니까, 하기만 해도 행복하니까. 유명해져선 안 됐는데. 시선에, 관심에, 동경에, 기대에, 비난에 마주하고 부딪치고 깨지고. 그런 건 내 삶이 아니었던 거 같아.”

연예인의 자아는 한계까지 닳아버린다.

사람들의 관심은 때론 총알과 같아서 자아의 갑옷을 허물어버린다.

세이코는 폭풍우가 치는 절벽에 홀로 서서, 발가벗겨진 몸으로 비바람을 맞아왔다.

너덜거리던 자아는 마침내 찢겨졌다.

그럼 세이코가 바라는 건 은둔인가?

모든 게 해답이면서, 또 해답이 아니었다.

적어도 성필은, 미사토는, 히무라는, 옥상에 올라온 사람들은 세이코를 설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성필은 방법을 바꾸었다.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세이코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리고 모든 말을 무시하고 그녀를 붙잡으려 했다.

옷 앞섬을 붙잡았다고 느낀 순간, 그녀가 떨어져 내렸다.

“무슨 짓이야 당신……!”

미사토가 비명을 지르면서 난간에 매달렸다. 그리고 최악의 결과를 보았다.

10층 아래 바닥에서 무너진 세이코의 모습을. 그것을 보고, 미사토는 실신했다.

* * *

무수하게 겹치고 망가지며 기워진 미래.

수많은 경우의 수를 본 성필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세이코의 앞에 섰다.

그녀로부터 1.7m 떨어진 거리.

‘여기까지가 최선.’

성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거리다.

세이코는 성필이 선 바닥을 불안하게 바라보면서도 난간을 꼭 쥐고 있었다.

미사토는 그런 성필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면서 더는 세이코를 자극하지 말란 신호를 보냈다.

히무라도 성필을 불안히 응시했다.

“파쿠 이사, 축하해요. 멋진 무대였어요.”

“감사합니다.”

성필은 어지러운 시야를 바로 잡으면서 전신의 근육에 힘을 주었다.

실린더에 장전된 총알처럼, 공기만 때리면 달려 나갈 상태를 유지했다.

“마지막으로 본 무대가 파쿠 이사네 아이돌이라서 다행이었어요. 적어도, 제가 왜 졌는지 납득했어요.”

“저는 아직도 ‘우리 애들’이 이긴 게 긴가민가해요. 정말 간발의 차였으니까요.”

“그러니까, 그쪽 애 낳은 적 없다니까요.”

세이코가 킥킥 웃었다.

곧 세상을 떠날 사람 치곤 상쾌하기 그지없는 웃음이었다. 아니, 곧 떠나기에 저토록 후련한 것일까.

마치 입정(入定)을 앞둔 승려나 신의 부름을 들은 수도사 같았다.

어쩌면 그녀의 원래 성격은 기세등등, 의기양양, 오만방자와는 거리가 멀지도 모르겠다.

저토록 소녀와 같이 웃는 것을 보니 말이다.

“세이코 씨, 그거 같으시네요.”

“뭐요?”

“사무라이. 패배를 죽음으로 갚겠단 겁니까?”

세이코의 표정이 슬픔으로 물들었다.

여느 때와 같이, 자신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성필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여태까지 보여왔던 분노나 오열로써 나타나지 않았다.

세이코는 그저 슬프기만 했다.

성필은 물론 미사토마저도 세이코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을 떠나는 이 순간까지, 그녀를 이해하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무라이…… 낭만이 있네요. 사무라이 세이코, 할복. 이유는 아이도루에게 패배해서. 저를 욕하던 사람들도 만족할까요?”

“세이코 씨, 욕을 입에 담는 사람들은 보통 제정신이 아닙니다.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제정신이 아닌 인간들의 말을 듣고 귀한 목숨을 버리는 건 너무 아쉽지 않습니까.”

“저는 아쉬운 게 없어요.”

이미 미련은 없다. 미련이 있더라도 삶의 고통이 전부 덮어버렸다.

“제가 15년 정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이상, 아쉬움 같은 건 하나도 없어요.”

“돌아가면 뭘 하시게요.”

“가수는 안 될 거예요.”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네, 좋아해요. 평생 노래만 부르고 싶어요. 그런데 이런 세상에선 아니에요.”

“좋아하신다니 마지막으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왕 마지막을 결심하셨으니, 후회가 남지 않도록 노래라도 한 번 해주세요.”

미사토와 히무라가 성필을 정신병자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아니, 그들뿐 아니라 성필의 뒤에 선 모두가 성필을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생각했다.

“후후.”

그런데 세이코는 오히려 기꺼운 듯했다.

“좋아요, 거기서 더 다가오지만 않는다면요.”

“안 다가가겠습니다.”

“약속이에요. 그럼, 들으세요.”

가후의 마지막 노래를.

그건 가사가 없는 노래였다. 그녀는 콧노래만을 흥얼거렸다.

아무런 기교나 규칙도 없이 오로지 감정만을 담아 내뱉는 노래.

그러나 그 음색은 너무나 아름답고 애절하여 사람들의 귀를 부드럽게 사로잡기 충분했다.

세이코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노래의 목적을 증명해냈다. 노래는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도구이며, 그에 가사 따위는 필요 없었다.

세이코의 콧노래는 사람들의 심장을 붙잡아 억지로 뛰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어땠어요?”

최후의 노래를 끝낸 세이코가 배시시 웃었다.

진짜 끝이구나. 그 사실을 이해한 미사토는 바닥에 이마를 박고 오열했다.

히무라는 세이코를 향해 뻗고 있던 팔을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였다.

가후의 노래는 인간의 죽음마저 납득시켰다.

죽음을 목전에 둔 인간을 구해야 한다는, 인간성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마저 무너뜨리는 힘이 있었다.

“좋네요.”

“고마워요, 파쿠 이사. 그럼 가후 세이코, 은퇴합니다.”

세이코가 난간을 잡은 손의 힘을 풀었다.

그때 성필이 말했다.

“약속을 깨겠습니다.”

그리고 달렸다.

“당신은 죽어선 안 돼.”

난간으로부터 대각선으로 기울어지는 세이코를 향해 성필이 몸을 던졌다.

“인류의 손해야.”

성필은 평생 문화(文化)를 갈망해왔다.

세계를 가로지르는 가장 거대한 힘.

칼로도, 총으로도, 폭탄으로도, 폭력으로 제거할 수 없는 인간 정신의 가장 숭고한 표현을.

성필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 생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 수 없기에 대체재로 문화를 택했다.

그리고 이 순간, 성필은 문화 그 자체인 인간을 품에 안았다.

“어?”

성필의 품에 안긴 세이코는 바닥에서 끌어당기는 지구의 힘을 잊었다.

10층 높이의 바람과 중력이 어지럽게 뒤섞었던 감각이 되돌아왔다.

성필의 품 안은 마치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아서, 세상의 모든 풍파를 막아주었다.

그게 죽음이더라도.

“◯◯◯!”

성필은 추락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 때문에 몸을 돌린 건 아니었다.

떨어졌을 때 세이코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등을 땅으로 향했을 뿐이었다.

거기서 성필이 본 광경은, 다섯 명의 소녀들이 난간에 매달려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너희들, 따라 왔었구나.’

소녀연맹 멤버들은 어느새 성필이 있던 곳으로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난간은 넘을 수가 없어서 애처로이 손만 뻗을 뿐이었다.

절망 가득한 다섯 명의 얼굴이 점점 멀어졌다.

‘뒤를 봤어야 했는데.’

앞만 보지 말고, 멈춰 서서 뒤를 봤어야 했다.

성필이 떨어지던 순간 이렇게나 가까이 올 수 있었다면, 멤버들의 도움을 받아 아예 추락 자체를 막는 게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뭐, 이제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역시 내 능력은 불완전하구나.’

분명 최선의 선택지에 도달했다고 여겼는데, 실패한 순간 또 다른 최선이 보이다니.

가리개를 쓴 경주마처럼 앞만 볼 게 아니라, 자신의 뒤에 누가 있는지도 보았으면 좋았을걸.

성필이 수많은 미래 속에서 고독을 곱씹으며 외로움에 떨 때, 정작 멤버들은 계속 그의 뒤에 있던 것이다.

‘다음이 있으면 좋…….’

* * *

“아.”

10층 아래에서 들리는 기괴한 소리에, 장하양은 혼절하여 바닥에 몸을 뉘었다.

백설하는 몸의 힘이 전부 풀린 듯 털썩 무릎을 꿇었다.

신아름은 초점이 없는 눈동자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아라는 엎드려선 토했다.

리카는, 리카만은 계속해서 난간 아래를 응시했다.

끝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최후의 한순간까지 성필의 모습을 눈에 담겠다는 듯.

“이런, 말도 안 되는…….”

히무라가 비틀거리면서 뒷걸음질 쳤다.

이윽고 밤공기를 가르며 경찰차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웨벡스로 다가왔다.

신고 시간을 생각하면 빠른, 결과를 생각하면 너무나 느린 도착이었다.

* * *

소녀연맹 멤버들은 리프트 발판 위에 섰다.

그녀들이 자리를 잡자 온갖 스태프들이 달라붙어 상태를 점검했다.

인이어는 작동하는지, 의상에 문제는 없는지, 메이크업은 번지지 않았는지, 리프트는 정상적으로 기동하는지.

“OK입니다.”

모든 담당 스태프들이 OK 사인을 주었다.

1분 뒤, 이 리프트는 지상으로 올라가서 소녀연맹을 무대 위에 세울 것이다.

360도로 배치된 1만 이상의 관객석이 둘러싸고 있는 무대 위로, 다섯 명의 소녀를 올린다.

“……나.”

줄곧 무표정이던 장하양이 한 방울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못, 하겠, 어.”

대답하는 사람도, 위로하는 사람도 없었다.

각자의 정신을 챙기는 것만 해도 힘들었다.

그나마 백설하가 한발 늦게 움직여 장하양의 어깨를 쓸어주었다.

“하양…….”

뒷말은 나오지 않았다.

백설하의 목이 막혔다. 게다가 장하양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나, 저기 오르면, 반드시 실수해. 못 하겠어, 정말로, 못 하겠…….”

“언니.”

리카가 인이어를 기계적으로 점검하면서, 차갑게 장하양을 불렀다.

“못 하는 게 어딨나요. 해야 해요.”

“하지만 박 이사님이…… 미안, 나는 맨정신으로 못 있겠…….”

“20초 남았어요.”

“미안, 다들, 나 여기 못…….”

리프트 발판 위를 벗어나려던 장하양이 다시 발판 위로 끌려왔다. 리카가 그녀의 목깃을 잡고 억지로 끌어당긴 것이다.

“놔, 놔아 리카아…….”

“포지션 잡으세요.”

“못한다, 니까. 나가자마자 토할지도 몰라. 쓰러질 거야. 지금 올라가면…….”

리카가 장하양의 뺨을 때렸다.

그 광경을 본 멤버들의 눈동자에 드디어 초점과 생기가 돌아왔다.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나도 경악스런 사태였다.

리카가 눈에 꽃처럼 흩날리는 불꽃을 담아 장하양의 멱살을 잡았다.

“여기 부도칸이에요. 수십만 명의 아티스트가 여기 끝자락이라도 밟고 싶어서 생을 불태워요. 우린 그런 곳에 섰어요.”

리카가 장하양과 이마를 맞추었다.

장하양은 리카의 눈동자를 마주하기 힘들었다. 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점점 더 정신이 또렷하게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하기 싫어도 정신을 차려서 무대에 서게 될 것만 같았다.

“갑자기 빠진다고요? 세상 어느 한 명도 이해해주지 않아요. 우리가 어떻든 관객이나 팬들의 관심사 밖이에요. 알고 싶지도 않아 해요. 사람들이 바라는 건 아이돌인 우리지, 인간인 우리가 아니에요.”

리카가 장하양의 멱살을 놓았다.

“우린 아이돌이 됐어요.”

그리고 계속 아이돌일 것이다.

리프트가 상승을 시작했다.

장하양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억지로 본인의 자리에 섰다.

“박 이사님이 돌아올 때도 아이돌로 있을 거예요.”

천천히 올라가는 리프트의 끝에서 빛이 들어온다. 드디어 리프트가 무대와 만난 것이다.

앞으로 무대 위까지 고작 1.8m.

“아타시(저).”

리카가 갑옷과 같은 의상을 여미었다.

“아이돌이 됩니다.”

이어서 그녀들이 마주한 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빛.

사람의 망막을 태울 듯한 열기, 천둥과 비견되는 환성.

전후좌우를 가득 채운 인간의 파도.

인류 역사상 극히 소수의 인간만이 누려본 수만 명의 시선.

그 속에서, 리카가 검지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쇼죠렌메가 키타(소녀연맹이 왔다)―!]

아이돌은 화려하게 타오른다.

* * *

첫 번째로 돌아온 감각은, 손가락.

손가락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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