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화
쇼죠렌메(소녀연맹)!
소죠렌메!
쇼죠렌메!
다키스트의 리더였던 서유선은 귓가에 이명으로 새겨질 듯 집요한 연호를 들었다.
무대 위에서 석상처럼 굳은 채 엔딩 포즈를 취하는 소녀연맹을 향해, 200명에 이르는 관객들이 쉴 새 없이 찬사를 바치고 있다.
하지만 서유선은 이 열광의 도가니 속에 끼지 못했다.
‘완성품.’
서유선은 마침내 그 단어의 뜻을 이해했다.
윤상열이 다키스트를 향해 가끔 입에 담았던 ‘완성품’의 뜻이, 드디어 피부에 와 닿듯이 이해됐다.
‘이거구나.’
KS 엔터는 다키스트에게서 이러한 빛을 보았을 것이다.
소녀연맹은 한없이 완성품에 가까웠다.
조금만 더 두드리고 담금질하면 최고의 기량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아.”
서유선이 인상을 찌푸리며 울먹였다.
‘저 애들이…….’
얼마나 괴로운 시간을 지나왔을까. 저 수준에 이르기까지 어떤 고통을 감내했을까.
그리고 또 앞으로 얼마나 더 고통받게 될까.
서유선은 미래의 소녀연맹에게 눈물로써 위로를 전했다.
‘미안해.’
해외에선 한국의 아이돌 시스템을 아동 착취나 학대라며 비판한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그들이 견뎌내기도 힘든 비인간적인 생활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을 들은 한국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어떻게 학대인데? 연습생들이 자진해서 하는 거 아니야?’
그 말대로다.
연습생은 가로등의 빛에 돌진하여 재로 화하는 부나방과 같다.
아래에 쌓인 부나방의 사체 더미엔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오로지 빛만을 탐하여 나아간다. 아래를 보기엔 너무 어리고 희망찬 나이이기에.
다키스트가 그들을 끌어당기는 그 빛 중 하나였다.
‘미안.’
한국에서 가수가 되겠단 아이들은 대부분 아이돌을 지망한다. 그게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이니까.
그 쉬운 길조차 0.01% 이하의 확률을 뚫어야 한다. 그것마저도 수년 동안의 노력과 시간을 쏟는단 전제가 필요하다.
만약 서유선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는 아이돌 따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너희들은 더 불행해질 거야.’
저 정도 수준의 무대를 구성하고, 그에 걸맞은 실력을 멤버들에게 요구한 프로듀서라면.
고작 여기서 만족할 리가 없다.
프로듀서뿐 아니라, 소녀연맹을 떠받치는 팬들도 그러할 것이다.
‘끊임없이 한계를 넘을 걸 요구받을 거야.’
서유선은 소녀연맹이 아이돌의 끝자락에 들어설 때, 부디 자신처럼은 되지 않기를 바랐다.
적어도 아이돌 생활을 좋은 추억으로 남길 수 있길 바랐다.
서유선은 몇 칸 앞에 앉은 정호환의 뒷모습을 보았다.
‘너희들의 프로듀서가 좋은 사람이길 빈다.’
적어도 이미 혼신을 불사르는 멤버들에게 장작을 넣는 사람만은 아니길.
“거기, 죄송하지만 앉아주세요.”
방청석을 관리하던 스태프가 일어나 있는 서유선에게 경고했다.
아직 카메라가 돌아가는 중이다.
소녀연맹을 향한 찬사도 끝나지 않았고 말이다. 이만큼 좋은 장면이 나왔는데, 한 명이 자리를 이탈하는 모습 같은 건 담아선 안 됐다.
“곧 휴식이니…….”
“미사토가 보고 싶어.”
“네?”
“미사토.”
낡은 배는 오랜만의 산책을 마치고 다시 항구를 찾아갔다.
너무 험한 바다를 건너와, 다신 바다를 보고 싶지도 않은 배였다.
* * *
세이코는 소녀연맹의 무대를 보고 나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을 느껴버렸다.
그녀의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것은 ‘굉장하다’ 같은 게 아니었다.
‘즐겁다’였다.
세이코는 경쟁 상대의 무대를 즐겼다.
‘이게, 이런 무대를…….’
세이코는 미사토의 남자친구인 서유선을 싫어한다. 그가 나타난 뒤로, 미사토가 세이코와 어울리는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미사토는 줄기차게도 두 사람의 사이를 좋게 만들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서유선도 세이코를 싫어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둘 사이에서도 서로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긴 했다.
서유선은 세이코를 가수로서, 세이코는 서유선을 아티스트로서 인정했다.
그런 세이코가.
‘서유선, 그 인간을 보는 것 같…….’
소녀연맹에게서 서유선의 아우라를 느꼈다.
‘굉장하다’는 감정뿐이면 아직 괜찮다. 그건 모르는 세계를 향한 동경과 같은 거니까.
동물원에서 신기한 동물을 보고 감탄하는 일과 비슷하다.
‘저 애들한테, 저 어린애들한테.’
하지만 즐거움이란 감정은 무대 위를 살아가는 퍼포머로서 가장 아껴둬야 하는 물건이다.
즐거움은 자신의 퍼포먼스를 위한 것이지, 타인의 퍼포먼스를 위한 게 아니다.
‘내가, 이 내가…….’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세이코는 생각하고 말았다. 즐거웠노라고.
그 시점에서 세이코는 완전히 패배했다.
[우승자는 소녀연맹입니다!]
결과 발표를 듣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패배하고 만 것이다.
[아아, 정말 간발의 차였습니다! 고작 3점 차이입니다!]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다.
세이코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세상은 흑백이었다.
그나마 그녀가 살아왔던 이유는 세상에 아름다움이 남았을 것이라고 기대했어서이다.
‘그런데 이제, 없네.’
무채색의 세상에 그녀가 기대하는 건 없을 게 분명하다.
* * *
“어우, 저 죄송한데, 욱, 잠시 흡연 좀.”
성필이 바닥에서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많이 취한 듯, 그라면 멤버들 앞에서 절대 입에 담지 않았을 단어까지 내뱉었다.
멤버들도 그가 ‘흡연’이란 단어를 꺼내자 그의 상태를 짐작했다.
“같이 가겠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은 슈이치가 성필을 부축하며 함께 연습실을 나갔다.
그렇다.
성필과 슈이치, 소녀연맹, 그리고 무대를 도왔던 디렉터들은 웨벡스의 연습실에서 술판을 벌였다.
평소라면 절대 용인되지 않았을 테지만, 히무라가 특별히 허가를 내주었었다.
‘한국 소주를 파는 가게가 흔치 않으니, 그냥 연습실에서 드셔도 됩니다. 어차피 스케줄상 빈 곳이니 괜찮습니다.’
성필은 슈이치에게 기대며 옥상으로 나왔다. 품에서 담배를 찾아 입에 물었지만, 어디선가 라이터를 잃어버린 듯했다.
“여기 있습니다.”
슈이치가 깔끔하게 관리된 재떨이 옆에 있던 라이터를 집어 그에게 주었다.
성필은 꼬인 발음으로 감사를 전한 뒤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박 이사님.”
“느에?”
“리카 씨랑 금연하기로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괜찮으신 겁니까?”
멤버들도 별말이 없었긴 했다.
성필은 크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리카가 오늘은 풀어준대요.”
“그렇습니까.”
“근데…….”
성필은 텁텁한 연기를 뱉었다.
“기분이 전혀 좋지 않네요. 계속 니코틴 패치를 붙이고 있어서 그런가. 그냥 끊어야겠어요.”
“금연이란 게 며칠도 하기 힘든 건데, 대단하십니다.”
심지어 금연의 이유가 담당 아이돌의 권유 때문이라니.
슈이치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도 대학 때 서클 선배에게 권유받아 1년간 피우다가, 부모님의 강권으로 끊었었습니다. 그래서 금연이 힘든 일이란 걸 압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어쩔 수 있나요. 양로원에 같이 들어갈 친구가 끊으라는데.”
“아, 실버타운 메이트…….”
“그거 아세요? 여자 수명이 평균적으로 더 많대요. 리카가 내가 일찍 죽는 꼴 못 본다고 담배는 절대 입에도 대지 말랬는데…….”
술기운 때문인지 성필은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담배의 해악을 열렬히 주장하던 리카를 떠올리면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박 이사님. 이건 실례되는 질문일지도 모릅니다만.”
“말씀하세요. 오늘의 저에겐 어떤 실례도 허용돼요. 아마 다 잊어먹을 거니까요.”
“멤버분들이 가끔 이사님께 과한 장난을 치지 않습니까. 괜찮으십니까?”
“아, 그거요.”
성필도 한 번씩 고민하는 것들이었다.
리카는 당연하고 조아라도 12살이나 어른인 성필에게 장난이라지만 손찌검을 하지 않은가.
주변에서 지켜보기엔 영 꺼림칙한 모양새다.
“뭐, 편하게 대해주면 좋죠. 애들이 제 권위를 존중해주기도 하고. 아시겠지만, 리더십이란 게 경직된 관계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계산하고 하시는 일입니까?”
성필은 또 웃었다.
“계산이겠어요? 계산적으로 어린애들 장난 받아주는 사람이 어딨다고요.”
그냥, 성필도 그녀들과 가까이 지내는 게 즐거운 거뿐이다.
“그렇군요.”
성필은 헛구역질을 하며 절반이나 남은 담배를 그냥 재떨이에 비벼 껐다.
니코틴 패치 효과가 아주 확실하다.
“이번 무대는 대단했습니다.”
“우리 애들…… 이 아니라. 소녀연맹 애들이 대단하긴 하죠.”
“후반부를 ‘더 킹’ 원곡으로 돌린 결정도 그랬습니다. 경연에선, 아무래도 사람들이 난이도에 더 민감히 반응하니까요.”
‘더 킹’은 아이돌 퍼포먼스의 문외한이 보더라도 묘기에 가까웠다.
춤과 보컬 양쪽 면에서 그러했었다.
신아름, 리카, 백설하로 이어지는 연속 고음은 소녀연맹의 연습을 숱하게 지켜봐 왔던 슈이치조차 전율할 정도였었다.
그것을 처음 본 관객들은 어떠했을지, 굳이 그들에게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프로듀서로서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 건 없어요.”
신아름이 요청하고 멤버들이 지지했기에 받아들인 것뿐이다.
“히무라 실장님이 무대 끝나고 그러시더라고요. 무리한 퍼포먼스였다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무리한 퍼포먼스이기에, 멤버들에게 강요했다면 반발을 샀을 것이다.
하지만 성필은 강요할 필요가 없었다.
누구보다 멤버들이 멋진 무대를 만들고 싶어했으니까.
고난도의 무대가 자발성에 근거한다면, 그것은 착취가 아니라 노력이란 이름으로 변한다.
“대견하죠, 애들은. 사명감이 있는 거 같아요. 아티스트로서의 사명감이요.”
연습생 때부터 그 사명감을 만드는 게 성필의 목적이었다. 멤버들이 아티스트란 자각을 가지길 바랐다.
데뷔하고 1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자면, 성필의 목적은 이미 달성되고도 남았다.
“들어갈까요?”
“예.”
다시 들어간 연습실엔 이유이가 사라져 있었다. 정지음에게 사정을 들어보니, 너무 피곤해서 먼저 들어갔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날에 자리 피하기나 하고 말야. 오빠가 유이한테 뭐라고 좀 해!”
“너나 정신 차려.”
백민정은 이미 절반 정도 맛이 갔다. 그녀의 옆에 앉은 정지음의 표정이 안 좋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지금도 진작 넘친 정지음의 잔에 소주를 붓고 있지 않은가.
“팀장님 팀장님.”
붕대 감은 발목을 쭉 빼고 있는 신아름이 은근한 투로 성필을 불렀다. 그리고 성필이 다가오자, 당연하단 듯이 다리를 내밀었다.
“또 아파요. 주물러줘요.”
“와카리마시타(알겠습니다)!”
성필은 군말 하나 없이 신아름의 요구를 접수했다.
“야 신아름. 아저씨 너무 부려 먹는 거 아니야?”
“뭐? 부려 먹어? 무대 완성의 1등 공신한테 부려 먹는다고? 이건 정당한 대가지.”
무대를 지켜보던 성필도 놀랐었지만, 가장 놀란 이들은 멤버들이었다.
신아름과 백설하의 파트 체인지를 무대에서 처음 접했던 멤버들은 비명 지르고 싶었던 것을 겨우 참았단 모양이다.
“공신? 정해진 걸 바꾼 걸 공신이라고 할…….”
“아라야, 덕분에 관객분들도 좋아해 주셨잖아.”
장하양이 조아라의 팔을 슬슬 쓸어주자, 그녀도 불평을 집어넣었다.
사실 딱히 불만이 있지도 않았다.
백설하와 신아름으로 인해 퍼포먼스는 완성되었으니까. 아니, 완성 이상이었다.
장장 12초에 달했던 백설하의 고음은, 지켜보던 사람들의 손에 절로 땀을 쥐게 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고난도의 묘기에 감탄이 따랐음은 당연했다.
“미안 아라야…….”
파트 체인지의 주역인 백설하가 축 쳐져선 조아라에게 사과했다.
“쌤이 뭐가 미안해요. 쌤은 잘했어요.”
“나는 못 했고?”
“몰라. 신아름 넌 술이나 마셔.”
백설하는 헤헤 웃다가 곧 한숨을 푹 내뱉었다.
“진짜 나 그때 어떻게 되는가 싶었어. 아름이가 안 받아줬으면 그대로 무대 망쳤을 거야 진짜루…….”
“결과가 좋았으니 됐죠! 그래도 다음부터는 우리들한테 꼭 말해주세요!”
“응, 미안 리카. 다들 미안해.”
백설하는 성필의 눈치를 살폈다.
그에 성필은 허허 웃었다.
“이게 아이돌 프로듀싱하는 묘미지. 진짜 예측 못 한 사태가 나올 때마다 짜릿해. 중독될 거 같아.”
“그, 그러세요……?”
“하지만 인터넷 기사로 열애설이 나오는 사태 따윈 겪고 싶지 않아. 다들 연애 금지 풀리고 연애하게 되면 꼭 말해. 특히 설하.”
“네? 아, 네에…….”
백설하는 본인이 요주의 인물이란 게 슬픈지 생치즈를 뜯어 먹었다.
그것을 아까부터 유심히 지켜보던 정지음이 물었다.
“설하 너 치즈 진짜 좋아하네. 벌써 한 팩 다 먹었잖아.”
“쌤 숙소에서도 먹을 거 없으면 치즈 먹어요.”
답한 건 신아름이었다.
“치즈가 맛있나?”
“아, 저는 우유 빼곤 유제품 다 좋아해요. 어릴 때 노래 잘하려고 먹었거든요.”
그에 자리한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다.
유제품과 노래가 상관이 있나?
백설하는 이목이 모이자 교사라도 된 것처럼 또박또박 설명했다.
“유제품은 점막 분비물의 점도와 양을 증가시켜줘요.”
“점막 분비물……?”
“침이요.”
“아, 침이구나.”
“다른 게 있어요?”
아무튼, 그래서 입 안과 목이 쉽게 건조해지지 않는단 듯하다.
“효과가 있어?”
“네. 제가 다른 사람보다 침이 많은 거 같긴 해요.”
“어릴 때부터 관리한 효과구나.”
“곤란할 때도 있긴 한데…….”
“맞아. 쌤 엎드려 자면 베개에 홍수 나잖아.”
백설하가 뺨을 붉히며 손을 막 휘저었다. 신아름의 입을 막으려는 시도 같았는데, 허공에 손질을 해봐야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아니 뭔, 나는 그거 처음 보고 쌤이…….”
“하지 마 하지 마아……!”
“네네, 알겠어요.”
성필이 신아름의 정수리를 톡 쳤다.
“언니 놀리면 안 되지.”
“헤헤, 아 맞다. 리카 나 그거 또 듣고 싶은데. 해주면 안 돼?”
“그, 그거? 또?”
“응. 부탁이야앙.”
우승의 1등 공신 신아름의 애교에 리카가 떨떠름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온 건 ‘더 킹’의 랩 파트였다.
“이 몸이 왔다. 너흴 이끌고 이곳에 왔다. 난 자격이 있어 왕중왕은 바로 나. 경배하라.”
“소녀연맹!”
“그래, I’m the Queen!”
“으하하하하핰!”
신아름은 왕중왕 리카의 등장에 세상이 떠나갈 것처럼 웃었다. 심지어 조아라도 그러했다.
리카가 울상이 되어 성필에게 물었다.
“이사니임…… 아타시(저) 정말 이상한가요……?”
“아냐, 리카 멋져. 최고야.”
“들었지 다들! 아타시(나)는 멋지다구!”
“왕중왕 리카 최고!”
“이사님 용서 못 해!”
리카가 성필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런데.”
장하양이 조금 미안한 기색으로 슈이치를 보았다.
“슈이치 씨는 술 안 드셔도 괜찮으세요?”
“예. 여러분을 숙소까지 모셔다드리는 게 매니저의 일이니까요.”
“그래도 좋은 날인데.”
“사실 제가 술을 잘 못 마시는 이유도 있습니다. 소주라면 한두 잔이 최대겠군요. 즐기지도 않고요.”
“어, 하양이 지금 술 안 마시는 사람은 분위기만 헤치니까 빨리 사라지라고 압박 주는 거야?”
성필의 장난에 장하양이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아니요 저는 정말 슈이치 씨가 안쓰러워서 그랬어요! 절대 가라고 압박한 거 아니에요!”
“알아.”
“……아하하.”
“재밌었지?”
“하?”
“어?”
“재밌겠어요?”
“아, 미안…… 이라고 할까 봐? 또 손 펼치면서 ‘농담!’이라고 할 거지?”
“하?”
“미, 미안…….”
“농담!”
장하양의 농담 패턴이 하나 더해졌다.
그녀는 아하하 웃고는 살짝 불안한 시선으로 조아라에게 말했다.
“오늘은 농담 통제 없어?”
“좋은 날이니까요. 마음껏 해요.”
“이사님, 제가 권주사 해볼까요? ‘성공 기원 발전 기원’을 줄여서…….”
“언니 진짜 죽을래요?!”
장하양, 농담 통제 강화!
“여깄는 사람 다 성인인데 뭐 어때서?!”
장하양, 저항!
다 같이 술을 마시는 게 오랜만이라 그런지, 다들 이 자리를 즐기는 게 느껴졌다.
평소보다 텐션이 훨씬 높다.
‘꼭 팬미팅 끝난 뒤에 했었던 술자리 같네.’
성필은 은은하게 미소 지으며 술을 마셨다.
‘그러고 보니, 다들 잘 지내려나.’
가로 엔터의 모두는 성필과 소녀연맹이 없는 나날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그리워하고 있겠지?
적어도 성필은 빨리 가로 엔터의 동료들을 만나고 싶었다.
최근 웨벡스에서의 나날이 워낙 살얼음판 같던 터라 피로감이 쌓인 이유도 있었다.
‘돌아가면 일단 아름이랑 같이 아름이 어머니 찾아뵙자.’
딸이 외국에 진출하여 성공했단 소식을 기쁘게 받아들이겠지.
가로 엔터 야유회도 기대된다. 몇 명이나 참석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설령 홍규헌과 이사진만 가기로 하더라도, 성필은 즐겁게 행사를 즐길 자신이…….
“아까부터.”
백민정이 날카로운 눈으로 연습실 창밖을 응시했다.
“좀 이상한데.”
“뭐가?”
“아니, 자꾸 빠르게 달려가는 사람이 보이길래.”
성필은 뒤를 보았다.
그러자 연습실의 유리벽 너머가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
“어, 진짜네.”
또 한 사람이 거의 전력 질주에 가까운 속도로 지나갔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열애설이라도 났나? 그래서 다 수습하려고 뛰어다니는 거 아니야?”
“아님 사고라도 났거나.”
“야 조아라, 좋은 날에 부정 타게 뭔 소리야.”
“걍 예상해본 거지. 뭘 또 진지하게 받아치고…….”
성필이 벌떡 일어났다.
“이사님?”
성필이 반응해줄 때까지 그의 어깨를 토닥일 예정이던 리카가 불안한 시선을 보냈다.
“나 나갔다 올게.”
“무슨 일인지 궁금하시면 제가…….”
“아니요 슈이치 씨. 제가 직접 봐야겠어요.”
성필의 가슴에 납덩이가 놓였다.
조아라가 ‘사고’라고 말한 순간부터 생긴 것이었다. 지독하게도 불쾌한 공포가 그의 심장을 땅끝까지 끌고 가려는 듯했다.
자기도 모르게, 성필은 빠른 걸음으로 연습실을 나갔다. 그리고 이미 그를 스쳐 지나간 직원을 따라갔다.
‘무슨 일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대화로 시간을 허비하고픈 마음은 없었으므로.
도착지는 옥상이었다.
옥상에, 십수 명은 될 법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모두 한쪽으로 향해 있었다.
“세, 세이코쨩…… 제발 내려와아…….”
옥상의 외곽, 테두리에는 혹시라도 있을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바닥보다 2m 높은 상층부가 있었다.
그곳에 세이코가 올라가 있다. 그녀는 상층부 외곽에 쳐진 난간에 몸을 걸친 채였다.
“거, 거기, 위험해, 위험하다니까…….”
미사토는 애처롭게도 다리를 떨면서도 거의 기어가듯이 세이코에게 다가갔다.
세이코를 말리려는 인물은 한 명 더 있었다.
“세이코 씨, 이상한 생각하지 마세요.”
히무라는 한 발자국씩 발을 질질 끌면서 세이코에게 다가가려 했다.
외곽 상층에 올라가 있는 건 둘뿐.
나머지 웨벡스의 인원들은 상층부 아래에서 전화를 돌리거나 사태를 초조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이리, 이리로 오세요. 말씀하시는 건 뭐든 듣겠습니다.”
히무라와 세이코의 거리가 약 2m로 좁혀졌다.
“더 다가오지 마.”
세이코는 본인이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는 듯 산뜻하게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둬.”
“어떻게…….”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몰래 온 건데 둘은 어떻게 알고 왔어?”
“일단 진정하고…….”
“미사토.”
세이코가 본인을 부르자 미사토는 어깨를 크게 떨었다.
“으, 응, 세이코쨩…….”
“고마워, 내 엄마가 되어줘서. 많이 귀찮았지?”
“하나도 안 귀찮았어어…….”
“그리고 히무라.”
히무라는 그녀에게로 다가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그런 그를 향해, 세이코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지은 적 없던 빛나는 미소였다.
“네 말이 맞았어. 나, 은퇴했어야 했나 봐.”
“아닙, 니다. 증명했잖습니까. 세이코 씨는 다시 노래를 부를 수…….”
“‘뉴아사’, 인터넷으로 생방송 됐었지? 텔레비전으로 본방송이 나가면 다들 보겠다. 2,000만 명. 어쩌면 3,000만 명.”
세이코는 상황에 걸맞지 않은 활기찬 말투였다. 그녀의 눈물과 대비되는 밝은 목소리.
“사람들이 얼마나 욕할지 모르겠어.”
“취소, 취소시킵니다. 제가 취소시키겠습니다. 방송국 인간들을 다 설득해서라도, 텔레비전에는 절대로…….”
“이미 SNS에서 봤어. 반응이 어떨까 싶어서.”
인터넷 생방송은 결과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텔레비전 본방송에서 결과가 밝혀진다.
그런데도.
“뭔가, 그렇더라.”
“그딴 인간들 말은…….”
“히무라 넌 틀린 적이 거의 없었지. 네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아, 파쿠 이사다!”
세이코는 성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축하해요! 멋진 무대였어요!”
세이코가 난간 바깥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히무라가 전력으로 뛰었다.
“가후 세이코, 은퇴합니다.”
사람이 사라지는 건 순간이었다.
히무라는 허공만을 붙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덩어리가 부서지는 기괴한 소리만이 옥상으로 불어 올라왔다.
그녀의 마지막은 모습이 아니라 소리로써 모두에게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