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302화 (302/760)

302화

신아름은 방금까지 춤을 추었고, 지금도 춤을 추고 있단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깨끗한 목소리였다.

신아름은 손가락을 튕기며 다음 차례에 무대의 중앙을 양보해주었다.

방금까지 신아름의 뒤에서 군무를 소화하던 리카는, 신아름과 달리 안정된 자세로 고음을 내지를 수 있었다.

약 6초 정도 이어진 고음 뒤, 리카 또한 신아름처럼 옆으로 물러섰다.

그 광경을 신아름은 황홀이 바라보았다.

‘해냈어. 내가 여기까지 끌고 왔어. 내 역할은 여기까지, 잘 해냈어.’

주역은 따로 있다.

백설하가 중앙으로 나왔다.

‘더 퀸’의 주인공이.

* * *

메타 인지 능력이라고 하던가.

본인의 상태가 어떠한지, 본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능력이다.

인지 능력을 인지하는 능력이라 하여 초인지 능력이라고도 부른다.

거창하지만, 사실 별건 아니다.

수험생이 ‘나 3등급 맞겠지?’라고 예측하는 것도 메타 인지 능력이다.

가끔 자신감이 과한 나머지 메타 인지 능력을 상실하여 수능 기적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튼, 그 능력으로 백설하는 자신의 상태를 판단할 수 있었다.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백설하는 메타 인지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할 수 있다는 기대와 할 수 없다는 불안한 예측이 섞여 그녀의 마음속에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내 몸은…….’

호흡이 격하긴 했으나 조절이 불가능할 정도로 흐트러지지 않았다.

3옥타브 ‘도’ 정도의 음계야 지금 당장이라도 어택(소리를 음정에 맞추어 내뱉는 것)할 수 있다.

단, 지금 당장 자세를 잡는다면 말이다.

백설하는 현재도 ‘더 킹’의 안무를 격렬히 소화하는 중이다.

‘내 몸은, 연습 때랑 똑같아.’

연습 때와 같은 호흡.

연습 때와 같은 피로.

연습 때와 같은 긴장.

그리고 연습 때처럼 확신이 없다.

이래선 안 된다.

백설하는 무대에 들어서기 전 신아름에게 사인을 주었었다. 수정된 퍼포먼스가 아니라, 원래 정했던 ‘더 킹’의 퍼포먼스를 하기로.

‘3연속 고음의 중간에 아름이가 끼어들지 않고, 내가 3번 연속 연달아 부르기로 했어.’

신아름도 그 사인을 이해했었다.

그러니 3연속 고음에선 백설하를 대신하여 중앙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에 백설하는 절망했다.

그녀가 음 이탈을 하거나, 억지로 흉성을 끌어올려 노래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게 될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격한 안무를 소화하던 백설하의 정신을 퍼뜩 깨운 건, 무대의 중앙에서 들리는 청아한 목소리였다.

츠타에테루데쇼(전해지고 있지)―?

신아름이 정확한 음계로, 거세진 호흡으로도 단단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더 킹’의 하이라이트 고음을 내질렀다.

그녀의 한계를 뛰어넘은 색색이 퍼지는 소리의 빛깔에, 백설하마저 넋을 놓았다.

신아름은 실전 무대에서 성장했다. 이미 연습에서 완벽을 기해놓고서…….

‘나도 해야 해.’

아직 시간은 있다.

남은 10초의 시간 동안 어떻게든 호흡을 정상화해야 한다.

안무 동작을 축소하거나 걸음을 적게 내디뎌서…….

‘그러면 안 되잖아…….’

동선이 흐트러지고 군무의 일체감이 깨질 것이다. 백설하 한 명의 퍼포먼스를 완성하고자 그룹의 조화를 깨뜨릴 수는 없다.

‘더 킹’의 5연속 고음의 두 번째, 리카의 차례가 다가왔다.

멤버들은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당기는 높은 점프로, 체스판의 말들이 교차하듯 동선을 바꾸었다.

‘흐억……!’

안 그래도 피로감이 한계까지 쌓였는데, 전력 도약으로 또 체력을 소모했다.

다키스트는 이딴 안무를 1절부터 마지막 하이라이트까지 해놓고서도 고음을 내지를 여력이 남아 있던 건가?

‘대체 동선 이동을 전부 회전이랑 점프로 만든 인간이 누구야? 어떤 안무가야? 어떤 프로듀서야?!’

백설하는 몰랐지만, 윤상열의 짓이었다.

백설하가 KS 엔터의 불특정 다수를 원망하는 사이, 리카도 본인에게 주어진 파트를 무사히 완성했다.

남은 시간, 3초.

‘할 수밖에 없어.’

아니.

‘한다!’

백설하는 중앙으로 향했다.

땅에 뿌리 뻗은 거목처럼 발을 바닥에 깊이 박았다. 그리고 하체의 견고한 지지를 바탕으로 공명을 극대화…….

할 수 없다.

백설하는 중앙에 도달하는 데도 춤을 추어야 했다. 몸을 화려하게 회전시키면서 중앙에 선 채 다리와 팔을 확 뻗었다.

공명을 위한 지지대를 마련할 시간 따위 없었다.

자세(姿勢).

호흡(呼吸).

발음(發音).

발성(發聲).

공명(共鳴).

이 모든 것을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해결해야만 한다.

심지어 방금까지 격한 춤을 소화한, 고통과 피로가 극에 달한 신체 상태에서.

그럼에도 한다.

3연속 고음 첫 번째.

백설하는 태양과 같은 빛깔의 소리를 쏘았다.

청명하게 울려 퍼지는 미성의 공명은 무대를 넘어 관객석의 끝까지 닿았다.

약 6초간 이어진 보컬이 잘 되었는가, 백설하는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눈이 따가운 격자 조명의 사이사이로 관객들의 감동한 표정이 보였으니까.

백설하는 저들의 등을 내달리는 전율을 손에 닿을 듯이 알 수 있었다.

‘다음.’

백설하는 다시금 몸을 회전하며 멤버들과 동선을 교차했다.

멈춰 섰을 때는 시야가 핑글핑글 돌았다.

어지러운 시야를 오로지 고유감각에 의지하여 확정시켰다.

이곳이 중앙인지 아닌지, 그녀의 감각은 온전히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쌓아온 경험은 백설하가 딛고 선 곳이 중앙이란 것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믿었다.

‘두 번째.’

백설하의 흉곽과 옆구리가 팽창했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습관처럼 해왔던 흉복식 호흡은, 눈앞의 풍경이 뒤집히는 극한 상황에서도 발휘되었다.

온전한 호흡은 목구멍을 지나 성대를 울리고, 성도(聲道)를 건너 공명을 획득하여 마침내 목소리로 화한다.

흉부를 지나, 비강을 건너, 마침내 머리까지.

이내 전신을…….

‘안 돼.’

전신공명이 안 된다.

백설하는 즉시 공명점을 얼굴의 정중선상, 코와 머리에 집중했다.

보체 미스타(Voce Mista).

중성(中聲)을 끌어올려 두성(頭聲)으로 만들어 뿜어냈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녀의 평소 실력보다는 못한 하이라이트를.

‘이제 마지막…….’

마지막은 그나마 낫다.

계속 있던 자리에 서 있으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모든 것을 내던지듯이 하늘을 향해 노래하면 된다.

호소력을 극대화해서…….

‘허윽…….’

성대원음(聲帶原音)을 목 깊은 곳에서 만들어 낸 순간, 백설하는 몇 년 만에 피치 브레이크를 겪었다.

음역대가 두성구(頭聲區)로 올라가지 않는다. 목의 근육이 성대를 압박하여, 그녀의 성대가 벌어지는 것을 막았다.

더는 공기를 폐 밖으로 뱉었다간 위험하다는 신호였다.

‘안 되, 는데…….’

백설하의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이 무대는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어선 안 된다. 완벽해야만 한다. 져서는 안 된다. 패배하고 돌아갈 수는 없다.

‘박 이사님…….’

백설하는 오기를 부려서 팀의 무대를 망쳐버렸다. 이대로 그녀는, 가슴에서부터 올라온 탁한 소리로 ‘더 킹’ 최후의 후렴구를 망쳐버릴 것이다.

3초, 아니.

호흡을 가다듬을 2초, 아니다.

1초만 더 있더라도.

‘죄송합…….’

그 순간, 백설하는 자신의 등줄기를 훑는 손길을 느꼈다.

‘누구지’란 의문을 떠올리기도 전, 그녀의 시야가 격하게 회전했다.

정신을 차리니, 백설하가 보고 있는 건 관객석이 아니라 무대의 뒤쪽이었다.

등으로는 자그마한 체구의 온기가, 뒤로 깍지 낀 손으로는 의지가 느껴졌다.

신아름이 백설하와 등을 맞대고 당겨서 위치를 바꾼 것이다.

‘아름이, 구나.’

이건 사인이다.

상황은 알겠으니 양보하라는 사인.

백설하는 신아름과 등을 맞댄 상태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고마워, 아름아.’

그리고 미안해요, 다들.

* * *

백설하의 이상을 깨달은 건 신아름만이 아니었다. 연속 고음의 두 번째로 들어섰을 때, 평소와는 다른 미묘한 차이를 멤버 전원이 눈치챘다.

하지만 멤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리더의 변화에 동요했으나, 그 동요를 밖으로 표출할 수는 없었다.

‘쌤!’

리카도.

‘쌤…….’

조아라도.

‘언니.’

장하양도.

주어진 퍼포먼스를 구사하며 백설하가 무사히 무대를 마치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쌤.’

신아름만을 제외하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멤버들의 포지션을 가로지르면서 백설하의 뒤로 향했다.

그리고 백설하의 등줄기를 위에서 아래로 쓰다듬은 즉시, 그녀와 등을 맞댔다.

변화는 순간이었다.

신아름은 백설하와 등을 맞대고 깍지를 낀 직후 땅에 발을 박고 몸을 회전시켰다. 회전문이 돌아가듯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모두가 미리 준비한 안무라고 생각 정도로 정교했다.

“큽…….”

시야가 무대 뒤에서 관객석으로 향하는 것과 동시에 발목에 알싸한 통증이 밀려왔다.

신아름은 착지하고 발목을 삔 후, 지독한 통증을 참고서 계속 춤을 추는 중이었다.

백설하와 등을 맞대고 회전하느라 통증이 더 심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더없이 자신만만했다.

“흐읍.”

1. 다리를 지지대 삼아 흔들림이 없도록 한다.

2. 엉덩이를 바짝 조이며 당긴다.

3. 흉곽을 팽창시키고 횡격막을 내린다.

4. 입을 벌려 공명강을 크게 만든다.

5. 혀를 아래로 내린다.

6. 어깨를 내린다.

7. 허리와 엉덩이에 신경을 집중한다.

8. 가슴과 허리에 힘을 뺀다.

9. 공명점이 가슴, 입, 코, 머리를 잇는 정중선상에 있다고 상상한다.

10. 가슴을 움직이지 않는다.

11. 어깨를 젖히고 턱을 당긴다.

12. 발음을 날카롭게.

‘언제 이딴 걸 다 하고 있어!’

신아름은 백설하처럼 노래할 수 없다.

백설하는 언젠가 신아름의 호흡법과 발성법, 자세를 대대적으로 고치겠다고 말했었다.

그때가 되면 춤을 추면서도 고음역의 노래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을 거라고.

백설하 자신은 할 수 없는 퍼포먼스까지 가능하리라고.

왜냐하면, 신아름은 천재니까.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그렇기에, 원시적인 기교에 의존한다.

신아름은 방금 하이라이트를 소화할 때보다 훨씬 더 악화된 상황에서 노래했다.

어쭙잖은 기교는 전부 버리고.

마치 노래를 배운 적 없는 사람처럼, 흉부에서 만들어진 공명을 강제로 머리까지 끌고 와서 소리를 내질렀다.

지나치게 압박당해 목이 쓰려오고 머리에 피가 몰린다.

그렇지만.

“히카리오 츠키누케에(빛을 꿰뚫어가)―!”

다키스트의 상징과 같은 최후의 하이라이트 가사를, 흉성으로 단단해진 소리로 내지른다.

당연히 3옥타브까진 올라가지도 못했다.

소리는 그나마 2옥타브 중반에서 머물렀다. 여기서 끝낸다면 거대한 실패임이 틀림없다.

‘나 혼자서는 못해.’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둘이서는 할 수 있어.’

* * *

백설하는 등을 통해 전해지는 신아름의 공명을 느끼곤 짙은 낭패감을 느꼈다.

그녀의 대타로 타이밍 좋게 나서준 신아름마저 하이라이트를 구사해내지 못했다.

이대로 무대는 실패…….

‘어?’

갑자기 시야가 회전했다.

8초는 되어야 할 신아름의 후렴이 고작 2초 만에 끝난 다음이었다.

어지럽게 돌아가야 할 풍경은, 백설하가 관객석을 눈에 담자마자 고정됐다. 신아름이 그녀와 등을 맞대고 백설하를 지지하고 있다.

‘아.’

거기서 백설하는 깨달았다.

무의식적으로 호흡했다.

신아름이 벌어준 약 3초의 시간 동안, 백설하는 차고 넘칠 기력을 회복했다.

‘할 수 있어.’

어떤 상황인지 이성적으로 파악되진 않지만, 백설하는 직감했다.

할 수 있다고.

아니, 한다.

“히카리오 츠키누케에(빛을 꿰뚫어가)―!”

태양을 삼킨 소리의 빛은 옅은 조명을 뚫고 세상을 울렸다.

원래 정해졌던 8초를 넘어, 장장 12초에 이르는 3옥타브의 고음이 무대를 흔들었다.

가사처럼, 백설하의 목소리는 어지러운 빛을 꿰뚫고 사람들의 심장을 강타했다.

* * *

백설하가 어지러운 정신으로 입을 닫자마자, 신아름은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정신 차리란 듯 등을 한 번 훑더니 원래 포지션으로 돌아갔다.

백설하 또한 멍하니 있지 않았다.

잘 정련된 습관은 정신의 혼란을 뛰어넘는다. 백설하와 신아름은 어느새 포지션에 합류하여 원래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안무를 펼쳤다.

백설하는 무대 앞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며, 옆을 따라온 백댄서가 건네준 왕관을 들었다. 그것을 머리에 쓴 후, 그녀는 허리에 손을 얹고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것으로 끝.

다키스트가 본인들의 왕림(王臨)을 선언했던 것처럼, 소녀연맹 또한 왕관을 쓴 채 무대의 끝을 알렸다.

이어진 건.

───!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격한 환호성.

마치 정상급 오페라 가수가 공연을 마친 것처럼 박수와 환성이 난무했다.

그리고 앵콜을 요청하는 듯 연호되는 ‘쇼죠렌메(소녀연맹)’란 이름도 있었다.

제작진의 촬영팀마저 본인들의 본분을 잊고 넋을 놓은 채 무대만을 응시했다.

조명팀도 원래 예정되어 있던 대로 암전시키지 않고, 붉은 조명을 계속해서 쏘아 보냈다.

누구도 그들을 나무랄 순 없을 것이다.

이런 무대를 보고, 누가 맨정신이겠는가.

“하아, 하아.”

신아름은 한쪽 무릎을 꿇은 포즈를 취한 채, 이제까지 마음대로 마시지 못했던 공기를 마음껏 들이켰다.

그러면서도 눈은 백설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가슴이 하나도 안 움직이잖아.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아.’

어떻게 저런 인간이 있을까.

호흡을 컨트롤하는 수준이 요가 수행자급이다.

멤버들은 호흡을 가누지 못해 안달인데도, 백설하만은 고고하게 여왕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아름아, 넌 네가 하고 싶은 게 없나 보네.’

옛날에 들었던 손혜빈의 말이 머리를 울린다. 떠올리면 항상 짜증만 유발했던 것이었는데, 이젠 달랐다.

‘나는 설하 쌤처럼 노래를 잘 부르지도 않아. 아라처럼 춤도 잘 추지 않고. 리카처럼 작곡을 하지도, 하양 언니처럼 강한 개성을 표현할 수도 없어. 난 나만의 게 없으니까.’

그렇다고 슬프진 않아.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아. 나는…….’

소녀연맹의.

리드 보컬이자.

리드 댄서이자.

‘아름이야.’

나의 임무는 팀의 허리로서 완벽한 서포트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

메인 포지션을 위한 징검다리를 만드는 것.

그거면 된다.

‘내 재능은 창조가 아니야. 창작 같은 건 할 수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완벽한 복제와 이상화뿐.

‘나를 발판으로 써줘.’

신아름은 고고히 중앙에 선 백설하를 보며 기분 좋은 나른함을 느꼈다.

‘나를 발판으로, 이 풍경을 만든 거야.’

신아름은 내리쬐는 조명을 올려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태양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또한 귓가를 울리는 관객들의 환호성은 어떤가. 거의 수십 초가 지났음에도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랬겠구나.’

다키스트는.

‘정점이란 건 이런 기분이구나.’

뭐, 생각보다 좋진 않네.

신아름은 시선을 내려 관객석을 보았다. 그리고 그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관객석의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자신을 쳐다보는, 눈에서 은하수를 흘리는 성필을 향해.

‘정점을 향한 찬사는 내가 아니라, 팀장님에게.’

나의 프로듀서에게 바쳐라.

그게 내 행복이 될 테니까.

* * *

“아름 씨에게 상당히 무리가 가는 퍼포먼스였군요.”

성필의 옆에서 무대를 구경하던 히무라가 한마디 했다. 그는 평정을 가장했지만, 속으로부터는 깊은 감동이 끓어올랐다.

작년 HPT 뮤직 어워드를 직관했을 당시와 같은 감동이었다.

‘아니, 그 이상이다.’

현시대의 아이돌이 과거의 정점이었던 다키스트를 재현해냈다. 심지어 그들이 일본 콘서트에서 했던 퍼포먼스를 그대로.

다키스트 이래로 일본 활동에 그들처럼 공을 들였던 케이팝 아이돌은 없었다.

‘이건 계승식이었다. 그렇게 보일 거야.’

소녀연맹이 다키스트의 자리를 이어받겠다.

그 선포나 다름없었다.

일본의 케이팝 아이돌팬들에게 이 무대는 얼마나 감동적으로 다가오겠는가.

“눈에 띄진 않지만, 리드 포지션인 아름 씨에게 상당한 희생을 요구했었습니다.”

“……네, 그렇죠.”

“아, 비판하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신아름을 보고 비판을 입에 담겠는가. 저토록 행복한 표정의 아이돌을 보고 말이다.

신아름에게 희생을 강요한 게 아니다.

그녀가 할 수 있으니까 했을 따름이다.

“대단하군요, 박 이사님. 아직 뭐라고 하긴 힘들지만, 완승(完勝)을 자신할 수 있습니다. 들리십니까?”

장내를 울리는 거대한 열광의 파도가.

“‘뉴아사’에서 이런 반응이 나온 건 몇 년 만입니다. 아까 세이코 씨의 무대조차 이러진 않았습니다. 분명…….”

히무라의 목소리는 성필에게 잘 닿지 않았다.

성필은 여전히 눈가에 은하수를 매달고 있었다. 은은하게 흐르는 별빛은 이내 그의 턱선을 따라 떨어졌다.

‘아름아.’

너는 불꽃이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네가 좋았다.

하지만 불꽃은 언젠가 꺼져버리는 것.

너도 그와 같았다.

너를 장작으로 무대에 세울 때마다, 너는 점점 크게 타오르고 또한 빠르게 식어갔다.

미안하다.

너는 무대에 올라선 안 돼.

네가 행복하기 위해선 아이돌 따위, 연예인 따위는 돼선 안 됐어.

하지만 그럼에도 네가 무대에 서는 걸 보고 싶다.

더욱 큰 빛을, 열기를, 광채를 바란다.

빛나다오.

못나고 이기적인 가족이라 미안하다.

하지만, 네 행복이 내 행복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 말이 사실이라면.

부디 타올라다오.

나는 너를 태워 행복해질 거다.

네가 끝내 하얗게 스러지더라도.

나는 할 수밖에 없다.

“미안해…….”

“박 이사님?”

성필은 전생의 신아름에게, 현재의 신아름에게 사과를 전했다.

전생에선 수도 없이 전했지만, 현재엔 한 번도 전하지 않았던 사과를.

성필은 전생의 신아름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보아왔다. 그런데도 혼자만의 이기심으로 그녀를 다시 아이돌로 만들었다.

심지어 자신이 프로듀싱하는 그룹으로.

“미안해, 아름아…….”

히무라는 눈물을 흘리는 성필을 곁에 두고, 조용히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우는 이유를 짐작조차 불가능했기에.

“미안, 정말…….”

성필은 무대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응시하며 눈물을 아끼지 않았다.

이미 새롭지도 않은 감정이지만, 죄책감보다 환희가 강하였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불꽃을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단 사실이 기쁘지 않을 리 없다.

이 불꽃을, 성필은 절대 허망하게 꺼지게 둘 수 없다.

꺼지게 두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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