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뉴아사’ 경연은 현장에서 결과를 낸다.
전대 우승자 네 명과 전문 심사위원 네 명의 점수를 합산하여 40%.
실시간 인터넷 방송 투표로 30%. 이는 텔레비전 방송 전의 실시간 무편집본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나머지 30%는 약 200명의 방청객 투표다.
방청객 중 한 명, 다키스트의 리더 서유선은 불편한 자세를 다잡았다.
‘예능 촬영이 긴 건 알았지만, 오랜만에 있으려니 너무 힘드네.’
여자친구인 미사토가 꼭 보러 와줬으면 좋겠다고 하여 오긴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와서인지 왠지 모르게 피곤하고 힘도 없으며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소녀연맹 무대는 언제야.’
만약 다키스트의 ‘더 킹’이 경연곡으로 등장하지 않았다면, 서유선은 미사토의 부탁이더라도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꼴에 아이돌이었다고, 고향에서 온 애들이 내 노래 한다기에 보고 싶어졌네.’
그런데 왜일까.
자꾸만 손에 식은땀이 잡히는 건.
서유선은 애꿎은 자신의 손만 주물럭거리면서 이유 모를 불안감을 억눌렀다.
그때 서유선의 세 칸 앞, 아까까지 비워져 있던 자리로 어느 남자가 향하는 게 보였다.
‘어?’
서유선은 황급히 모자를 푹 눌러썼다. 혹여라도 그와 눈이 맞을까 벌벌 떨면서.
“괜찮으세요?”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했으면 옆에 앉은 생판 모르는 사람이 말까지 걸어왔다.
하지만 서유선은 답할 여유조차 없었다.
‘정호환 이사, 님……?’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을까. 그런 건 생각해 볼 틈도 없었다.
서유선의 머리를 채우는 건 과거의 트라우마였다.
지쳐서 쓰러진 서유선을 향해 눈빛 가득 실망을 담아 바라보는 정호환.
그가 말했다.
‘왜 못하는 거냐?’
서유선이 관자놀이를 꾹 누르자 다른 얼굴이 나타났다.
KS 엔터의 수석 프로듀서였던 윤상열이었다. 그는 서유선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리곤 했었다.
‘할 수 있지?’
그건 ‘해라’는 뜻이었다.
멤버들이 얼마나 고통을 호소하고 못 하겠다 해도, 윤상열은 능글능글 웃으면서 ‘하라’고만 했었다.
‘너흰 할 수 있어.’
다키스트는 믿음을 강요당했다.
‘너흰 내가 본 최초의 완성품(品)이야.’
물건 취급당하면서도 다키스트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돌이란 원래 프로듀서의 분신이며, 그들의 사상을 따라 창조되는 것이기에.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건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서유선은 그토록 부끄러웠던 것이다.
‘저희가 아티스트로서 보여드리고 싶은 모습은…….’
방송에서 본인을 아티스트라고 소개할 때마다, 부끄러워서 당장이라도 혀를 깨물고 싶었었다.
쿵.
서유선은 트라우마에서 깨운 건 귀를 뒤흔드는 소음이었다.
파이프 오르간의 모든 건반이 한 번에 눌린 듯한 웅장하고도 격렬한 소음.
서유선이 무대로 눈을 돌리자.
[민나(모두)!]
갑옷과 같은 제복을 입은 다섯 명의 소녀들이 하늘 높이 검지를 쳐들고 있었다.
[쇼죠렌메가 키타(소녀연맹이 왔다)!]
그 순간, 서유선의 귓가로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환청이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환청.
다키스트가 키타―!
그 직후 이어지던 세상을 뒤흔드는 환성의 도가니.
서유선은 그 모습을 무대 위에서만 보아왔다. 하지만 이제 무대 아래의 객석에서 보게 됐다.
* * *
‘뉴아사’는 매주 2시간 30분이란 플롯 안에 모든 경연과 인터뷰를 때려 넣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청자들은 무대 전까지는 출연자들이 어떤 곡을 소화하는지도 모른다. 알려주는 건 곡이 아닌 원곡자뿐이다.
실시간 무편집본이 인터넷에 방영될 때, 즉 본 촬영이 실시되고 난 후에는 경연곡이 알려지지만.
극적 재미를 위해 일부러 찾아보지 않고 시청하는 이들이 더 많은 편이다.
“이거 무슨 노래야?”
그래서일까, 인터넷에서 실시간 방송을 보고 있는 케이어스 멤버들도 소녀연맹이 어떤 곡을 하는지 짐작지 못했다.
심지어 무대가 시작됐는데도 말이다.
“모르겠슴미다. 다키스트 선배님들 거라고 듣긴 했는데.”
흑청색으로 물든 무대를 배경으로, 소녀연맹은 신성함까지 감도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케이어스의 머리 위엔 여전히 물음표가 떠 있었다. 그게 사라진 건 곡이 20초를 넘어가고 박자가 빨라졌을 때였다.
[사소한 규칙들에 얽매이지 마.]
김민주가 움찔했다.
“어, 이거 들어봤는데…….”
[네 장막과 현실이 부딪칠 때]
[움츠러드는 가면을 벗어버려.]
“이 가사…….”
[모두가 잠에 드는 밤에]
[어린애처럼 리듬만을 따르는 거야.]
감이 잡히려던 순간, 다시금 곡이 거세게 변주하며 원곡의 자취를 지워버렸다.
소녀연맹이 십수 명의 댄서들과 함께 한 발 한 발 거칠게 행진했다. 그녀들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조명이 어지럽게 비산했다.
“이거 분명…….”
그때였다.
곡의 하이라이트가 원곡보다 훨씬 낮은 음계로 나타났다.
성가(聖歌)처럼 낮고도 신성한 음성으로 읊조려지지만, 그 가사는 모를 수가 없었다.
[The Queen The One]
반복되는 그 가사.
그에 케이어스 멤버들도 이 곡의 정체를 알아냈다.
“이거 ‘더 킹’이잖아!”
김민주는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낸 아이처럼 흥분하여 에리카의 어깨를 팍팍 때렸다.
에리카가 공수도 정권 자세를 취하자 그만두긴 했지만, 그녀의 흥분은 쉬이 잦아들지 못했다.
방송에서 보이는 관객석도 소녀연맹이 편곡한 게 ‘더 킹’이란 사실을 깨닫자 술렁이는 게 보였다.
“야, 걸려도 이게 걸리네.”
다키스트의 ‘더 킹’은 케이어스 데뷔조를 선정하는 월말 평가의 최종 평가곡이었다.
전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분위기가 떠올라 피부가 저릿거린다.
“리카 쟤도 참.”
마지막 평가 때 멤버 구성은 이러했다.
케이어스 멤버 전원과 리카를 합친 5인조. 그것으로 리카가 탈락하고 남은 네 명이 케이어스의 데뷔조가 되었었다.
그런데 현재 리카는 바다 건너 외국에 가서, 본인이 데뷔조에서 떨어지게 됐던 곡을 소화하는 것이다.
“근데 원곡대로는 안 하는구나.”
후렴구 ‘The king The one’은 최고음이 3옥타브 ‘도’다. 그것을 소녀연맹은 1옥타브 대에서 부르고 있었다.
‘댄스 퍼포먼스를 위해 보컬을 희생한 건가?’
하긴, 원곡은 아예 소화가 불가능할 테니.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했겠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실망스러움은 감추기 힘들었다.
김민주의 기준으로 실망스러운 1절 하이라이트가 지나고, 또다시 곡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찢어지는 듯한 전자음과 함께 조명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하양이다.”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진소유가 말했다.
하이라이트 군무에서 어째선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장하양이 네 명의 댄서와 함께 중앙을 차지했다.
그리고 지진이라도 일으킬 듯 발을 굴렀다.
“크럼프(KRUMP)네.”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게 목적인 듯한 댄스 장르다.
처음 보는 사람은 절로 압도당하는 강렬하고 역동적인 동작이 장기이며, 어쭙잖게 따라 하다간 이상하게 보이기 십상이다.
‘잘하네.’
장하양은 말 그대로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가슴을 거칠게 튕기고, 공격이라도 하듯 팔을 크게 휘두르며, 격렬한 분노를 담아 발을 굴렀다.
그에 따라 백댄서들은 점점 거리를 벌리는 게, 마치 폭군의 횡포를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그냥 잘하네 싶은 수준…….’
장하양이 옷깃을 붙잡고 쫙 잡아당겼다.
상의를 세로로 붙잡고 있던 단추들이 터져나가며, 그녀의 복근과 붕대를 감은 가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뭐야?!”
장하양은 폭군 같은 기세를 지워버리고 다리를 꼰 채 앉았다.
허공에서.
백댄서들이 그녀의 주위로 몰려들어 찬양하는 춤을 바쳤다.
“뭐야 이 인간. 힘이 얼마나 센…… 소유 너 피?!”
진소유의 코에서 코피가 흘렀다.
“티, 티슈 어딨.”
“괜찮아, 됐어.”
진소유는 손등으로 거칠게 피를 닦아냈다. 피 따위 신경도 안 쓴단 기색으로, 그녀의 눈동자는 화면에만 박혀 있었다.
“아니, 피 흐르…….”
“조용해. 내가 보고 있잖아.”
“…….”
장하양의 댄스 브레이크 퍼포먼스는 이제까지의 실망을 전부 덮어버릴 만큼 놀라웠다.
아이돌이나 춤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더라도 거대한 아우라와 존재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아, 이런 느낌.”
에리카가 고개를 주억였다.
“뭐가?”
“퍼포먼스로 메꾸려는 거잖아.”
다키스트의 원곡을, 그 아우라를 재현할 수 없으니 원곡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형시켰다.
또한 원곡과의 간극을 메우고 임팩트를 주기 위해 과격한 퍼포먼스를 집어넣었다.
“편곡도 멋지긴 한데.”
소녀연맹은 인정한 것이다.
“당연하지만, 다키스트 선배님들보단 못하네.”
그녀들은 다키스트를 재현할 역량이 없노라고,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또 당연히, 우리보다도 못하고. 우리는 했…….”
“데뷔조 평가 땐 한 달 넘게 줬으니까 한 거 아님미까. 그거마저도 실전에서 민주 언니가 공중제비 돌다가 발목 삐었슴미다. 소녀연맹분들은 준비 기간…….”
에리카가 극진공수도 정권 자세를 취하자 진저가 황급히 입을 닫았다.
‘나도 태극권 제대로 배워둘걸…….’
* * *
정지음과 정호환은 관객석에 나란히 앉아 소녀연맹의 무대를 감상했다.
정호환의 등장은 뜻밖이었다.
계속 자리가 비워져 있기에 ‘급한 일이 생겨서 방청에 못 온 사람이구나’ 싶었는데, 설마 정호환의 자리였을 줄이야.
“편곡이 잘됐군요. 멋집니다.”
정호환의 등장은 뜻밖이었고, 또한 정지음으로선 반드시 피하고픈 일이었다.
그는 현재 창피함이 극에 달해 있었다.
‘더 킹’, 케이팝의 고전에 오른 곡의 작곡가에게 본인의 편곡 버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멋진가요…….”
“예. 처음 ‘더 킹’을 편곡한다기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원본의 열화판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이건 제 기대 이상입니다. 최선이군요.”
최선이지만, 최고가 될 수는 없다.
정호환의 말에는 그런 뜻이 숨겨져 있었다. 정지음도 그에게 역력히 동의하는 바이다.
“아, 이 부분은.”
무대는 2절 후반부에 진입했다.
조아라의 댄스 브레이크 독무(獨舞). 그녀는 백색의 조명 아래 홀로 서서 춤을 춘다.
언뜻 보면 무술과도 같은, 패도적인 기세와 절도로 채워져 있는 춤이었다.
“안무를 원곡대로 했군요.”
정호환은 새삼스레 감탄한 눈길로 조아라를 훑었다. 그녀는 다키스트 멤버의 독무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내뻗고 팔을 휘두를 때마다 절로 시선이 간다. 마치 달이 중력으로 은은히 바다를 끌어당기는 듯했다.
“저 멤버라면 맡겨도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실 만합니다. 어울리는군요.”
“정 이사님.”
정지음은 녹이 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더 킹’을 편곡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어떤?”
“대단한 곡이라는 거요. 이런 곡을 6년 전에 썼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해요. 시대를 뛰어넘은…… 고전이라 불리기 아깝지 않네요.”
정호환은 웃음을 삼켰다.
웃음을 드러내지 않은 건, 그 또한 부끄러움이 있어서였다.
“지음 씨처럼 창창한 작곡가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 구름을 밟는 거 같습니다.”
“어떻게 바꿔도 원곡의 열화판이 될 거다, 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편곡한 ‘더 퀸’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메이크를 아무래 잘해봤자 원본의 아우라는 넘을 수 없죠. 열화판이란 말씀이 맞습니다.”
정호환이 칭찬해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더 킹’은 넘을 수 없다.
정호환은 무어라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닫았다. 현재의 정지음에겐 어떤 말도 위로가 되리라 생각되진 않았다.
정지음은 벽을 맛본 것이다.
거장이 이뤄낸 작품을 보며 숱한 고민과 좌절을 겪고, 자신이 이에 도달할 수 없으리라 지레짐작한다.
“벽을 느꼈어요.”
“지음 씨.”
정지음이 자기혐오의 단계로 넘어가기 전, 정호환은 그의 말을 자르려 했다.
하지만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귀를 울리는 익숙한 사운드 때문에.
“이건…….”
정지음의 얼굴에 희열이 일어났다.
“못 넘겠으니, 그냥 가져다 쓰기로 했습니다. 제가 아니라 박 이사님이 생각한 거지만요.”
2절이 끝나자 사운드가 극적으로 변환됐다.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뒷받침하는 장엄하고 신성한 분위기가 사라졌다.
대신 전류를 형상화한 날카로운 일렉트릭 사운드, 현대 음악 기술의 최전선에 선 음향 기교들이 자리를 대신했다.
“설마.”
‘더 퀸’이 끝나고 원곡인 ‘더 킹’이 등장하자 장내에 환호가 몰아쳤다.
성필이 그랬던가. 일본에 다키스트의 ‘더 킹’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그 말대로였다.
관객 중 다키스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갑자기 뒤바뀐 사운드에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환호했다.
“원곡을…….”
올라가는 BPM.
무대의 외곽으로 물러나는 백댄서들.
오롯이 중앙을 비추는 조명.
그 아래에 소녀연맹만이 서 있다.
다키스트의 하이라이트 포지션대로.
“재현하려는 겁니까?”
* * *
쾅.
문이 닫히는 것만 같았다.
신아름의 시야를 세 사람이 만든 벽이 막았다. 좌측의 조아라, 우측의 리카, 중앙의 백설하.
‘남은 시간은 2초.’
2초 안에 도약해야 한다.
신아름은 중앙의 백설하를 보았다. 그녀는 이미 팔로 발판을 만든 채였다.
‘이리 와.’
그리 말하는 듯, 백설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즉시 신아름이 뛰었다.
백설하의 팔을 밟고, 허벅지를 긴장시킨 채, 땅을 밟는 것처럼 힘차게 발을 뻗었다.
벽이 사라졌다.
‘아.’
신아름의 시야가 급격하게 뒤바뀐다.
하늘을 나는 감각.
수 미터 위에서, 신아름은 무대의 가장 앞에 나간 것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다.
자신을 쳐다보는 200명의 시선.
그리고 검은 카메라의 렌즈.
2,000만 명의 시선이다.
렌즈는 검다. 검어서 삼켜질 것만 같다.
신아름은 전신을 끈적하게 끌어당기는 어둠에 저항하며 정신을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그 순간, 그녀의 시야로 은빛의 왕관이 떠올랐다. 조아라가 던져준 왕관을, 신아름은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하여 잡아냈다.
그리고 낙하.
턱. 구둣발이 땅을 밟자마자 충격이 전해졌다.
발목을 부수려는 기세로 때리는 충격은 정강이로, 무릎으로, 허벅지로, 골반으로, 마침내 가슴과 목에 닿았다.
“커흡…….”
다음 퍼포먼스까지 남은 시간, 1초.
신아름은 번개가 몰아치는 듯한 충격을 무시하고 꿇었던 무릎을 폈다.
1초도 안 되는 그 시간이 영겁만 같았다.
숨을 들이켠다.
동시에.
‘폐가, 내장이, 목이.’
신체의 모든 기관이 갑작스러운 충격에 긴장해 있다.
수십 번의 연습에도 완벽했던 퍼포먼스가, 하필 실전에서 한 발자국 삐끗했다.
‘발목이…….’
갑작스러운 고통에 신체는 평상시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찰나에 불과한 신경 반응이지만, 수십 수백 번의 연습을 무위로 만들기엔 충분한 실수였다.
구부렸다 편 자세로 인해 폐는 아직도 수축된 상태다.
착지에 동반되는 충격 때문에 목의 외부 근육은 성대를 조였다.
횡격막은 폐의 공기를 전부 뽑아낼 생각인지 한계까지 위로 올라와 있다.
‘이런 악조건에서…….’
노래할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다키스트의 리더, 서유선은 했어.’
그러니 자신도 할 것이다.
‘고작 발목 한 번 삐끗한 정도로 못하게 될 리 없어. 목이 상한 것도 아니니까.’
아이돌이란 악기 대신 춤을 택한 밴드다.
춤을 추면서 노래할 수 있는 것이 아이돌의 첫 번째 조건이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게 힘들다고 징징대는 밴드 보컬은 없기에, 춤추면서 노래하는 게 힘들다고 하는 아이돌도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흐읍.”
신아름은 숨을 들이마셨다.
헉헉대는 상태이면서도 입을 열지 않고, 오직 코로만 숨을 쉬었다.
‘입으로 숨을 쉬면 성대 건조가 일어나.’
백설하의 가르침이 차례로 떠오른다.
‘힘들겠지만 코로만 공기를 들이마셔. 코로 호흡하면 후두가 낮아져서 노래하기에 적합한 공명강의 길이가 만들어져.’
신아름은 코로만 공기를 빨아들이며, 폐가 80% 찼을 때 숨을 멈추었다.
‘숨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성대는 공기를 잡아두려고 해. 성대가 긴장하는 거야. 노래하기엔 최악의 상태지. 물론 춤추면서 노래하다 보면 호흡이 거칠어지지. 그건 당연한 거야. 그 당연한 생리적 현상을 통제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야.’
숨을 급하게, 공기를 많이 빨아들일수록 숨이 나가는 속도도 빠르다.
숨을 내뱉는 속도가 빠르면 노래 또한 불안정한 호흡에 휘말려 소리가 갈라진다.
‘그러니까 80%. 80%만 마셔.’
3분에 이은 춤, 거기에다가 격한 도약까지 마친 상태.
신아름의 근육은 산소를 갈구한다. 당장이라도 입을 열어 허겁지겁 공기를 마시고 싶다.
그 본능을 억제하며 신아름은 적당량의 호흡만을 마쳤다.
‘여기까지가 1단계.’
백설하의 가르침은 이어진다.
‘노래는 호흡이 반, 그리고 나머지는…….’
발성(發聲).
신아름의 폐에서 숨이 빠져나가면서 성대가 울린다.
목구멍에 목소리가 남아 있는 듯한 감각, 신아름은 성대원음(聲帶原音)을 느꼈다.
성대원음은 성도(聲道, Vocal Track)인 공명강을 지나 증폭된다. 그로써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변한다.
신아름은 성도인 인두(咽頭), 구강(口腔), 비강(鼻腔)을 지나기 전, 목소리의 근원만을 느낀다.
마침내 신아름이 입을 열었다.
‘아름아, 네가 그 상태에서 하이라이트 보컬을 하면 반드시 피치 브레이크가 올 거야.’
피치 브레이크.
노래 부르는 사람이 본인이 소화할 수 있는 음역대를 벗어나면 마주하는 벽이다.
이것에 당면하면 목소리가 갈라지고, 가성(假聲)으로 바뀌거나, 지나치게 목에 힘을 주어 소리가 막힌 것처럼 들린다.
노래방에서 흔히 보이는, 억지로 목을 쥐어 짜내 고음 발라드를 부르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흉성구에서 중성구로, 중성구에서 두성구로, 그리고 두성구에서 또 위로.
음역이 올라갈 때마다 가수들은 벽을 마주한다.
‘네가 노래를 배우지 않았을 때처럼, 훈련되지 않은 가수들처럼. 후두가 올라가고, 성대 주변 근육이 긴장하고, 가성으로 바뀌거나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 짜내게 돼.’
신아름.
1옥타브 ‘라’.
‘그런데 그게 당연해. 3분 동안 춤추면서 노래하고 2m 이상 도약한 뒤에 착지한 즉시 노래하려면,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해.’
1. 흉성구(胸聲區)에서 중성구(中聲區).
퍼스트(1st) 피치 브레이크.
돌파.
다음, 2옥타브 ‘레’.
‘네가 재능이 없는 게 아니야. 못하는 게 당연한 거야. 부조리하기까지 해. 그런 퍼포먼스야.’
2. 중성구(中聲區)에서 두성구(頭聲區).
세컨드(2nd) 피치 브레이크.
돌파.
다음, 2옥타브 ‘라’.
‘모자란 호흡. 충격으로 찌그러진 폐. 수축한 흉곽. 긴장한 어깨랑 목. 가수는 반드시 피해야 하는 신체적 상태가 전부 겹쳐져 있어. 이 상태로 노래를 부르란 사람이 이상한 거야. 불합리한 요구지. ……그런데.’
3. 두성구(頭聲區) 중음역(中音域).
서드(3rd) 피치 브레이크.
돌파.
다음, 3옥타브.
‘우리는 아이돌이니까, 불합리한 퍼포먼스를 해야만 하는 거야. 춤추면서 동시에 노래 부른다는, 어렵지만 매력적인 일을. 우리는 거기에 매료되어서 아이돌이 된 거잖아. 그러니까.
4. 두성구(頭聲區) 고음역(高音域).
‘하면 좋겠다가 아니야.’
3옥타브 ‘도’.
‘한다, 야.’
한계를 벗어난 퍼포먼스에 몸이 신음한다.
근육은 산소를 가져가려고 호흡을 닦달한다.
이 이상 숨을 뱉지 말라고 폐가 진동한다.
성대는 공기의 유출을 막기 위해 수축한다.
이 모든 악조건에서.
신아름은 왕관을 쓰고.
빛을 노래했다.
츠타에테루데쇼(전해지고 있지)─?
신아름은 알지 못했지만, 그녀의 신체는 불가능한 퍼포먼스를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그녀가 배우지도 않은 기교, 보체 미스타(Voce Mista)를.
벽을 넘을 수 없던 신아름의 성대는 두 개의 공명대(共鳴帶)를 합쳐, 중성(中聲)을 끌어와서 두성으로 올려보냈다.
위(僞, 거짓) 전신공명(全身共鳴).
한없이 스승인 백설하의 모방에 가까운.
거짓된 전신공명의 흉내일 뿐이지만.
또한 너무나도 완벽한 모방이라.
신아름의 목소리는 찬란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