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소녀연맹이 일본의 경연 프로그램은 ‘뉴아사’에 나가게 됐다.
이 소식은 한국에 발 빠르게 퍼져나갔다.
한국 사람들은 ‘뉴아사’가 어떤 프로그램인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경연이란 단어에서 한국의 흔한 경연 프로그램 플롯을 떠올렸다.
[누가 상대인데?]
관심은 곧장 소녀연맹의 상대에게로 옮겨갔다.
한일전이면 종목이 무엇이든 뜨겁게 타오르는 게 한국이란 나라가 아닌가.
그건 아이돌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이돌이라서 더 타올랐다.
[일본이면 쌉발라야 되는 게 기본이지 ㅋㅋ]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대강 이러하였다.
소녀연맹이 이기는 게 당연하다고.
[일본 경연 나가서 지면 ㄹㅇ 한국 땅은 밟음 안 되지 ㅋㅋㅋㅋㅋㅋㅋ]
국가적인 혐오 감정, 문화 멸시, 반일 정서.
리카가 보았다면 당장 ‘인종차별이야!’를 외칠 만한 것들이 모여 커뮤니티 여론을 주도해갔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가 극단성이란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거 어떡하냐……?]
이에 우려를 내비치는 건 소녀연맹의 팬덤인 ‘인민’들이었다.
케이팝 아이돌이 일본 경연에 출연한다는 초유의 사태에 온갖 곳에서 주목했다. 그리고 그 주목은 절대 달가운 형태가 아니었다.
[지면 어떡하지?]
[뭐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님?]
인민들은 소녀연맹을 좋아한다.
소녀연맹의 실력적인 부분이든, 멤버간의 케미적인 부분이든, 멤버 자체의 매력이든, 어쨌거나 소녀연맹을 사랑한다.
그런 소녀연맹이 경연에서 지리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승부란 것에 100%는 없지 않은가?
[또 아이튜브에 관련 영상 올라왔다…… 구독자 수 9만임.]
[기사로도 계속 뜨는데 이거 가로 엔터가 안 막나?]
[소련이들 SNS에 이기라고 협박하는 거 같은 댓글도 자꾸 달림.]
소녀연맹이 한국에서 이렇게나 관심을 받았던 적이 없었다.
국민적인 관심, 이라고 하면 과장이지만.
범(汎)인터넷 커뮤니티적인 관심이란 말은 들어맞을 것이다.
인민이들의 양대 서식지인 소녀연맹 마이너 갤러리와 트잇터는 고심에 빠졌다.
그러던 도중.
[소련이들 상대 정보도 찾아볼까?]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다.
인민이들은 소녀연맹이 이기리라고 믿지만, 만약 졌을 때의 보험도 필요하다.
그래서 나온 방법은 경연 상대를 띄우는 것이다. 마침 좋은 타깃도 있었다.
[후나비키 세이코, 그녀는 누구인가?]
일본의 국민적 인지도를 가졌‘었’던 가수.
인민이들은 세이코의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는 전쟁으로 돌입했다.
당연히 소녀연맹의 상대에 대한 정보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긴 했다. 관심이 부족했을 뿐이지.
하지만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후나비키 세이코 ‘롯폰기의 아방튀르’ 커버 - 케이어스 에리카.]
[소녀연맹 ‘아니’ 커버 - 케이어스 에리카]
케이어스의 에리카가 커버곡으로 세이코의 데뷔곡과 소녀연맹의 데뷔곡을 불러서 아이튜브에 올렸다.
커버곡이나 커버댄스는 케이어스가 종종 하는 것이었으나, 타이밍이 너무나도 절묘했다.
당연히 에리카가 의도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세이코 선배님의 노래를 듣고 자랐습니다. 이번에 저와 같은 케이팝 아이돌인 소녀연맹이 세이코 선배님과 같은 무대에 선다고 들었습니다. 존경의 뜻으로 세이코 선배님과 소녀연맹의 곡을 커버했습니다.]
관심이 모였다.
충분하고 넘칠 정도의 관심이.
인민이들은 에리카가 만들어준 쓰나미에 타고 올라, 세이코의 대단함을 각종 커뮤니티에 전파했다.
전략이 계획대로 실행되고 있다.
하지만 인민이들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이런 가수랑 싸운다고……?]
오리콘차트 밀리언셀러 다 회차 달성.
구구절절 언급할 것도 없이, 이 한 문장으로도 세이코의 업적을 설명하긴 충분했다.
밀리언셀러 다 회차란 건, 100만 장 이상 판 앨범이 여러 장이란 뜻이다. 그냥 운으로 달성할 수 없는 업적인 것은 분명했다.
[후나비키 세이코는 평균 시청률이 40―50%인 홍백가합전에 7회 연속으로 출장한, 솔로 아티스트로서는 입지전적인 기록을 보유…….]
반응이 오자 인민이들의 대동단결은 더욱 빛을 발했다. 하지만 동시에, 인민이들의 걱정은 커져 갔다.
[근데, 까는 아닌데, 이거 이길 수 있는 거 맞음……?]
여전히 소녀연맹을 향한 기대의 시선은 줄어들지 않았다. 단지 세이코란 적이 강하단 게 알려져, 예전보단 나은 상황이 됐을 뿐.
그런데 정말 나은 상황인가 묻자면, 알 수 없었다.
[애초에 경연에 나가면 안 됐던 거 아니야?]
세이코라는 전설적인 가수가 나오는 회차에 출연하는 건 자살이나 다름없었다.
인민이들은 불안하게 ‘뉴아사’ 방영일을 기다렸다.
* * *
“살다 살다 일본 방송국을 다 오네.”
“헤헤, 캇코이데쇼(멋지지)?”
“한국이랑 비슷한데?”
“손나(그런)!”
확실히 조아라의 말대로 일본 방송국은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단 타국의 방송국이라 주변으로 눈길이 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소녀연맹 멤버들은 홀을 어지러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아저씨, 여기 엄청 유명한 사람도 있겠죠? 우리가 못 알아보는 거고?”
“그렇겠지. 방송국이니까.”
“아타시(내)가 설명해줄…….”
“됐어.”
“아라쨩 히도이(너무해)!”
리카는 차가운 조아라를 대신해 성필을 붙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설명하려 했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 중 리카가 아는 유명인이 없었다.
“……이상하네요.”
“리카는 일본 안 온 지 꽤 지났잖아. 요즘 방송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은 모르는 거 아니야?”
“그, 그냥 직원분들이 더 많으니까 그런 거겠죠!”
“리카는 이제 그냥 한국인이니까.”
“아타시(저)는 일본인이에요!”
세계시민은 어디 간 것일까.
리카는 카멜레온처럼 본인이 원할 때마다 국적을 변경하는 재주를 가졌다.
“마아(뭐어), 피는 안 섞였어도 문화적으론 한국인의 피가 있긴 하죠!”
“오, 웬일로 인정해?”
“친구의 문화를 인정하고 배우려는 자세는 중요하니까요! 이사님도…….”
“얘들아 여기서 출입증 받으면 돼.”
“난 대체 뭘까. 왜 사람들이 나를 찬밥처럼 대우하는 걸까.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었나?”
성필은 고뇌에 빠지려는 리카의 어깨를 쓸어주었다.
“리카, 문화교류는 나중에 생각하고 오늘은 경연에 집중하자. 잘할 수 있지?”
그러자 리카는 언제 고뇌에 빠졌냐는 듯 생기를 되찾았다.
“맡겨두세요! 저흰 오늘……!”
후나비키 세이코, 전설을 이겨야 한다.
리카는 세이코가 어떤 사람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을 켜면 자주 보던 얼굴이었으니까.
그래서 자신이 세이코와 겨룬다는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늘…….”
“야 리카, 저 사람 누구야? 잘생겼는데?”
“어디 어디?”
조아라가 리카와 어깨동무를 하고, 약간 느끼하게 생겼지만 미남인 남자를 가리켰다.
참고로 그 남자는 바로 옆에 있었다.
“슈이치 씨잖아?!”
“아, 맞다.”
“아라 씨 제 존재를 잊으신 겁니까……?”
“슈이치 오빤 왜 놀라는데요. 리카 놀린 거잖아요.”
“아타시(나)를 놀려?!”
조아라가 놀린 덕에 리카의 긴장도 모습을 감추었다. 조아라도 경연을 앞두고 많이 긴장했을 텐데, 동료를 신경 쓰는 모습이 대견했다.
“아, 정말 일찍 오셨네요.”
‘뉴아사’의 작가가 성필과 소녀연맹을 맞았다. 그는 방송국과 스튜디오의 지리를 설명해주곤, 필요한 게 있으면 찾으란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많이 바쁘신가 보네.”
오늘이 촬영일이니 당연하다.
“얘들아.”
성필은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멤버들을 가운데로 불러 모았다.
“내가 너희를 촬영 한참 전에 데려온 건 분위기에 익숙해지길 바라서야. 대기실에서 연습하는 것도 좋은데, 방송국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분위기를 익혀. 무대에도 나가보고. 거기 서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 긍정적인 쪽으로.”
스포츠의 프로 선수들은 경기에 임하기 전 몇 시간이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승리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자신감을 기른다.
상상만으로도 엔돌핀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경기장에서의 퍼포먼스를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체 능력을 저하시키는 심리적 긴장을 풀 수 있다.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갑작스레 성필이 사과했다.
“경연이 어떤 건지 나도 잘 알아. 웬만해선 너희들을 출연시키고 싶진 않았어.”
그럼에도 해야만 할 이유가 있었다.
물론 ‘미래를 보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성필이 말할 수 있는 건 비즈니스적인 이득이 있다, 그 정도뿐이었다.
하지만 그딴 게 멤버들의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줄 리는 없다.
‘경연 후의 보상을 말해봤자, 지금의 긴장을 풀 수는 없어.’
구체적이지 않고 손에 들어오는 보상도 아니니까. 그녀들은 허공을 쥐는 듯한 보상의 무게를 느낄 수 없으니, 동기부여가 될 리 만무하다.
‘애들이 투지를 불태우는 이유는 하나야.’
불안감.
이 무대에서 패배하면 어떻게 될지 알고 있기에 생기는 걱정, 불안, 공포뿐이다.
‘이겨야 한다’가 아니라 ‘지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그녀들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미안해.”
“팀장님.”
신아름이 헛웃음을 뱉었다.
“뭘 죄인처럼 그래요?”
“하지만…….”
“우리 데뷔 때 생각해봐요.”
소녀연맹의 데뷔.
그때 성필은 ‘성공할 수 있을 거야’라며 멤버들의 자신감을 북돋웠었다.
“그때도 성공 아니면 실패밖에 없었어요. 지금이랑 다른 거 없잖아요.”
다른 게 있다면, 성필이 실패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단 것이었다.
데뷔나 컴백 때는 이러지 않았다.
“세상만사 다 싸움이에요. 아이돌이 앨범을 내는 것도 결국엔 정해진 파이 나눠 먹겠다고 싸우는 거고요. 팀장님, 하나만 믿을 수 있으면 뭐 믿을래요? 우리가 뭘 할 거라고 믿어요?”
성공과 실패.
둘 중 하나를 믿으라면.
“성공, 할 거라고 믿지. 너희들은…….”
“팀장님이 프로듀싱한 그룹이잖아요. 이번 무대도 팀장님이 프로듀싱했고요.”
성필은 12살이나 어린 아이에게 위로받았다. 어른으로서는 보여주면 안 되는 모습이었던 터라, 성필은 절로 부끄러워졌다.
“보니까 아저씨가 제일 겁먹었어. 아까부터 다리 떨리는 거 애처롭더라.”
조아라도 위로에 가세했다.
“난 뭐 아저씨 다친 줄 알았어요.”
“맞아. 박 이사님 하체 힘이 부족하신가 하고 걱정했었어.”
“하양 언니, 하체 힘은 뭔데요. 단어 선택이 뭐 그래요.”
“아하하.”
장하양마저 누구도 웃기지 못하는 농담으로 성필을 위로하려 했다.
리카는 이미 성필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격려의 말을 쏟아내는 중이고 말이다.
“그러니까 팀장님, 지금까지 그랬던 거처럼 우리 믿어요. 우리 소녀연맹이라니까요. 케이어스가 우리 대신 경연에 나왔어도 이렇게 걱정했을 거예요?”
성필은 신아름의 위로를 듣고 긴장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단순한 말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쥐락펴락할 수 있단 건 얼마나 큰 재능일까.
아니,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신아름이기에 성필의 가슴에 닿은 것이었다.
“응, 그렇지. 고마워 아름아.”
“케이어스가 나왔으면 걱정 안 했을 거라구요?”
“응?”
“리카, 팀장님 팔 잡아.”
“박 이사님 히도이(너무해)!”
“어, 리, 리카?”
“조아라, 팀장님이 잘못한 거 맞지?”
“맞지.”
“맞대요. 맞아요.”
맞았다.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아저씨 맞으면서 웃고 있어 진짜 변탠가 봐!”
조아라한테 듣는 말은 기분 나쁘니까 등짝을 때려줬다.
“아저씨 나만 싫어해…….”
다들 웃고 있다.
백설하도 웃었다.
어색하게.
* * *
방송 시작 고작 한 시간 전.
성필은 마지막으로 세이코의 대기실을 찾았다. 문 앞에서 노크하기 직전, 성필은 몇 번이고 숨을 골랐다.
‘결국 나오시게 됐구나.’
솔직히 말하자면, 성필은 아직도 소녀연맹이 이길 수 있을지 긴가민가하다.
승부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걱정의 정도로 따지자면, 성필은 세이코가 훨씬 걱정됐다.
미래의 풍경에서 느꼈던 불쾌한 감각이 그의 심장을 더욱 강하게 조였다.
이 경연에서 이기는 게 소녀연맹이라면, 세이코는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박성필입니다.”
성필은 결국엔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쪽이 약간 소란스러워졌다.
“네, 바, 박 이사님?”
“네. 잠깐 세이코 씨랑 미사토 부장님이랑 대화하고 싶어서요. 바쁘시면 나중에…….”
“아니요 아니요! 손님이 계셔서요. 잠시만.”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성필이 마주한 건 모자를 푹 눌러 쓴 남자였다. 그는 성필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기실을 유령처럼 빠져나갔다.
“파쿠 이사, 무슨 일이에요.”
한 사람만을 위한 대기실이라기엔 과하게 넓었다. 그 넓은 곳을 세이코와 미사토가 빈약하게나마 채우고 있었다.
“방금 그분이 손님인가요? 괜히 방해한 건 아닌지.”
“괜찮아요. 미사토의 잘나신 케이팝 아이돌 남자친구니까요.”
“세이코쨩!”
미사토가 드물게도 얼굴을 붉히면서 세이코를 나무랐다. 그런 말을 왜 하냐고 따지는 듯했다.
세이코는 조소를 날리면서 다시 먹던 것으로 시선을 돌렸다.
속에 무리가 가지 않는 간편식, 죽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원수처럼 바라보다가, 눈을 질끈 감고 한 숟가락 퍼먹었다.
“대화라니, 저희끼리 무슨 대화거리가 있나요.”
“세이코 씨.”
성필은 그녀의 앞에 마주 앉았다.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세이코 씨는 훌륭한 가수입니다.”
“흥, 지금 알아도 늦었어요. 안타깝게 됐네요. 오늘 파쿠 이사네 아이돌이 상대할 게 훌륭한 가수라서요. 그리고 오늘부터 더 훌륭한 가수가 될 예정이에요.”
“네, 맞습니다.”
성필이 선선히 인정해주자 세이코는 만족하여 입꼬리를 올렸다. 올라간 입꼬리를 감추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잘 되진 않았다.
그녀는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죽을 먹었다.
“굳이 경연으로 본인을 증명할 필요도 없을 만한 가수요.”
“……무슨 뜻인가요?”
“세이코 씨, 묻고 싶네요. 만약 패배하신다면, 그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이실 건가요?”
세이코의 눈동자에는 분노의 불길이.
미사토의 눈동자에는 염려가 비쳤다.
“내가…… 패배……?”
“저는 소녀연맹이 반드시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설령 톱급의 스포츠 선수라도, 경기에 나갈 때마다 승리를 확신하진 않습니다. 당연히 패배를 염두에 두고 있어요.”
“더 염두에 두는 편이 좋아요.”
“다시 묻겠습니다. 세이코 씨는 그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이실 건가요.”
더 직접적으로.
“감당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에 세이코가 숟가락을 내팽개치고 거칠게 몸을 일으켰다.
“파쿠 이사, 저도 예전부터 말했지만. 파쿠 이사는 너무 오만해…….”
욱.
세이코가 헛구역질했다.
사례라도 들렸나 했는데, 상태가 이상했다.
세이코는 바닥을 바라본 채 입을 벌리곤, 닫을 생각을 못 했다. 자꾸 윽, 욱, 그런 소리를 내면서 기어코 침까지 줄줄 흘렸다.
“세, 세이코 씨……?”
그리고, 세이코가 갑자기 토했다.
방금 먹은 죽 몇 숟갈과 투명한 위액이 함께 바닥을 더럽혔다. 그 광경에 성필은 생리적인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다.
충격받았다.
‘어떻게.’
사람이 토를 했는데, 나오는 게 투명한 위액인가? 같이 딸려온 음식물이라곤 방금 먹었을 게 분명한 죽 몇 숟갈이 전부였다.
이 정도면 며칠을 굶었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섭식…….”
미사토가 성필의 손목을 잡아 말을 멈추었다.
그녀는 익숙하단 태도로 티슈와 물티슈로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성필은 끝내지 못한 말을 되새겼다.
‘섭식장애도…… 있어?’
섭식장애는 심리적 장애의 일종으로, 음식물을 섭취하는 데 문제를 겪는 병이다.
방금 세이코는 전조도 없이 토했다. 몸이 음식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정신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건 그녀의 정신이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파쿠 이사…….”
세이코는 입가를 닦으면서 성필을 향해 눈길을 세웠다. 올라간 눈썹이 높이 든 칼과 같았다.
“오늘 무대를 보면, 다시는 그딴 오만한 말은 못 하게 될 거예요. 패배를 감당할 수 있느냐고?”
후나비키 세이코에게 패배란 있을 수 없다.
실패 따위, 평생 생각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 몸으로…… 무대에 서겠단 겁니까……?”
“아하, 이거? 별거 아니에요. 오늘 이기면 입맛도 다시 돌 테니까. 그래, 소녀연맹을 이기고 호텔 레스토랑이라도 가야겠네요. 그래, 이기기만 하면.”
이기기만 하면.
이길 거야.
이겨야 해.
“나가요.”
매몰찬 축객령이 뒤따랐다.
“대화는 무대가 끝난 다음이에요.”
“세이코 씨.”
“나가라고 했…….”
“지더라도 그게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는 건 아닙니다. 승패는 순간이에요. 센터 시험(일본의 수능) 점수가 인간의 가치를 영원히 증명하는 게 아닌 거처럼요.”
흥, 세이코가 코웃음 쳤다.
“패배자가 할 법한 발상이네요. 그딴 말은 파쿠 이사네 아이돌한테나 해주세요.”
세이코가, 내가 이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