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세이코가 노래 한 곡을 완창한다더라.
이 소식은 순식간에 웨벡스 곳곳에 퍼졌다.
세이코가 정말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지만, 3년 만에 처음 노래를 부른다고 하지 않는가.
한때 웨벡스의 간판스타였던 세이코의 상태는 웨벡스 각층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에이, 나도 안 된단 거야?”
가수 관리 본부의 본부장마저 세이코가 있는 녹음실 출입이 불허됐다.
그의 뒤에 포진하고 있는 부장급들도 당연히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안 됩니다.”
곧 본부장으로의 승진이 결정된 사람, 미사토의 강경한 태도에 다들 입맛만 다시는 수밖에 없었다.
녹음실 안쪽에선 히무라가 그 광경을 속 쓰리게 지켜볼 따름이었다.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세이코가 콘서트를 연다고 선언하더라도 몇 분 만에 전 석 매진될 것이다.
또한 싱글 앨범만 내도 십만 장은 손쉽게 팔 수 있을지도 모른다.
‘톱스타를 걸어 다니는 기업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세이코 씨는 정말 그 말대로군.’
당장 1인 기획사를 세워도, 그 기획사의 매출은 웬만한 회사들을 아득히 앞지를 것이다.
세이코는 그런 가수다.
“실례합니다.”
그때 성필이 녹음실 앞을 막고 있는 사람의 벽을 가로질러 나타났다.
미사토는 그가 오자마자 굳었던 표정을 풀고 반갑게 맞았다. 하지만 곧 다시 굳어져야만 했다.
성필이 줄줄이 끌고 온 소녀연맹 멤버들 때문이었다.
“박 이사님, 혹시 멤버분들도?”
“안 될까요?”
미사토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본부장마저 녹음실에 들어오지 못하는 건 세이코의 요구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들어오도록 허락한 건 미사토, 히무라, 성필이 전부였다.
‘파쿠 이사가 온다고? 왜?’
세이코는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애처롭게도 떨었더랬다.
하지만 미사토가 ‘명성 높은 세이코쨩의 실력을 직접 보고 싶으시대. 부디 부탁한단 말까지 하셨어’라고 하자.
‘그러면 허락해줄까……?’
그리하여 겨우 성필의 출입이 허가된 마당이다. 부담감을 받고 싶지 않아서 인원도 최대한 통제한 마당이건만, 소녀연맹이 있는 걸 바랄 리 없다.
“왜 안 들어와?”
미사토가 문밖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세이코가 그녀의 뒤에 나타났다.
문 앞에 모인 이들은 세이코의 모습을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세이코는 그런 이들의 인사를 마찬가지로 반갑게 받곤, 차가워진 눈길로 성필을 훑었다.
“파쿠 이사, 왔네요. 그런데 뒤에 달린 걔들은 뭔가요?”
‘뒤에 달린 걔들’은 세이코의 단어 선택을 듣곤 황당하단 듯 입을 벌렸다.
다른 웨벡스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이코가 웨벡스의 간판스타였다고 한들, 협력사의 아티스트에게 이런 불손을 저지르는 건 가만히 보아 넘길 순 없었다.
그래서 모든 시선이 본부장에게 모였다.
“……나?”
본부장은 매우 높은 인물이다. 하지만 감히 세이코에게 뭐라고 할 순 없었다.
웨벡스에서 가장 상품성 높은 이들 가운데 하나가 세이코 아닌가.
그런 그녀가 3년 만에 드디어 노래할 결심을 했는데, 혹여라도 본부장이 몇 마디 했다고 심기가 틀어지면 낭패다.
본부장은 사장 앞에서 머리를 박고 물구나무를 서야 하리라.
“우리 애들, 이 아니라. 소녀연맹도 세이코 씨의 노래를 꼭 듣고 싶다고 하셔서요.”
“안 돼요.”
세이코가 즉시 불허했다. 그러나 성필은 물러나지 않았다.
세이코에게 부탁했단 게 아니었다. 그는 세이코의 성격을 진즉 파악하여, 도발하기로 했다.
“그렇겠네요.”
“뭐가요?”
“경연 상대에게 본인의 실력을 감추고 싶은 게 당연하죠. 특히나 ‘재활’이 끝나지 않았다면 더요.”
좌중이 경악으로 술렁거렸다.
세이코를 상대로 재활이란 단어를 쓴 건 차라리 비난에 가까웠다.
이전에 성필이 했던 ‘3년 공백의 진짜배기 가수가 아닌 사람’이란 발언과 동등할 수준이다.
“바, 박 이사님.”
미사토가 사색이 되어 성필을 말리려던 찰나.
“재활이요?!”
세이코는 목부터 귀까지 전부 붉게 물들이고 특유의 고음을 내질렀다.
“저는 재활 따위 필요 없어요! 설령 경연 하루 동안 물 한 모금 안 마셔도, 말라버린 목만으로 그쪽 애들은 전부 쓰러뜨릴 수 있어요!”
그녀는 하! 허! 란 헛웃음을 연신 뱉으면서, 그녀의 개성 중 하나인 기세등등하고 의기양양하며 오만하기까지 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얼마든지 보여드리죠.”
세이코가 허리에 손을 얹고 당당히 선언했다. 그에 미사토는 깜짝 놀랐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세이코에게 ‘도발’이란 선택지를 고르고 대화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세이코에게 도발이란 게 얼마나 잘 먹혀드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거기, 사회단체 이름을 가진 아이도루. 들어와서 찍소리 하나 내기만 해봐요. 당장 쫓아낼 테니까.”
세이코는 홱 몸을 돌려 녹음실 안으로 발걸음했다. 미사토는 재빠르게 그녀에게 붙어서 물었다.
“세이코쨩 정말 괜찮아?”
대답 대신 새파랗게 질린 얼굴만이 미사토를 반겨주었다.
“역시…….”
“미, 미사토오…… 어떡해 나……?”
“지금이라도 안 된다고 해.”
“안 돼. 그럼 겁쟁이라고 생각할 거 아니야…….”
세이코는 현재 간절히 신께 기도하는 중이었다. 제발 소녀연맹 멤버들에게 급박한 일이 벌어져서 녹음실 밖으로 나가라고.
그녀는 3년 만에 처음으로 노래 한 곡을 완전히 부를 예정이었다. 3년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날이니 긴장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최대한 부담감을 줄이고 싶었다.
성필의 참관도 용기를 내어 겨우 받아들였는데, 경연 상대자인 소녀연맹도 있다고?
‘그, 그래. 미사토 말이 맞아. 지금이라도 마음이 바뀌었다고 내보내자.’
자신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톱스타니까!
“선배님, 오늘 참관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설적인 디바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 영광입니다. 부족한 실력으로나마 배움의 자세를 갖추고 듣도록 하겠습니다.”
백설하의 공손함이 잔뜩 배인 인사에, 세이코는 다시금 기세등등하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래요. 배울 수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백설하를 깔보듯 곁눈질하며 답해주고 즉시 고개를 돌린 세이코는, 역시나 또 사색이 됐다.
나가달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또 이상한 소리를 해버렸다.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어졌다.
“사람이 어떻게 저러지.”
신아름은 녹음 부스로 들어가는 세이코를 보며 말했다.
“진짜 톱스타긴 한가 봐요. 자신감이 몸에서 철철 흐르네.”
“……응.”
백설하는 떨떠름하게 답해주었다. 그녀는 아이돌이지만 가수로서, 세이코가 어떤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까부터 세이코는 쉬지 않고 물을 마셨다.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가수니까, 노래를 부르기 전에 수분을 보충한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백설하는 그게 무의미한 일이란 것을 안다.
‘물을 마시고 수분이 성대까지 전달되는 데 2시간에서 3시간이 걸려.’
즉, 가수가 공연 도중 물을 마셔봤자 목 상태가 나아지지는 않는다.
물은 식도로 넘어가는 것이지 성대를 적시거나 폐로 들어가진 않으니까.
‘세이코 선배님도 그걸 아실 거야.’
가수가 공연 도중 물을 마시는 건 마음의 안정을 위한 것이다.
‘목이 촉촉해졌다’고 느끼기 위한, 플라시보 효과를 기대하고 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세이코는 과하다 싶을 만큼 물을 마셨다. 부스로 들어가서도 손에서 생수병을 놓지 않는다. 백설하가 본 것만 해도 벌써 세 병째였다.
“박 이사님, 죄송합니다.”
성필과 히무라는 소녀연맹 멤버들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착석하자마자 히무라가 닳디 닳은 사과를 전했다.
오늘 아침에 사무실로 갔을 때도 이와 비슷한 어조로 사과했었다.
“이렇게 따로 걸음까지 하시고,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에요. 일이 이렇게 흘렀는데 뭐 어쩌겠어요.”
히무라는 세이코의 ‘뉴아사’ 출연을 막기 위해 필사적이었었다.
세이코의 컴백을 환영하는 무리들에 맞서서, 소녀연맹과 세이코의 경연은 제 살 파먹기밖에 되지 않는단 연설을 펼쳤었다.
씨알도 먹히지 않았었다.
‘소녀연맹의 이미지가 한국에서 어찌 되건, 세이코만 컴백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니까.’
안 그래도 웨벡스 내에서 소녀연맹의 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그녀들을 들임으로써 히무라가 담당 그룹인 에스타스를 버린 모양새가 됐으니 말이다.
웨벡스의 상층부는 소녀연맹을 걱정하긴커녕 세이코의 귀환을 열렬하게 환영하고 있었다.
‘이건 내 실수야.’
사장 아들이라는 권위와 실장이란 자리에 취해 너무 독불장군처럼 일을 처리했다.
히무라는 성공하리란 확신이 있었다. 그 성공을 발판 삼아 에스타스도 성공의 빛 속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지만,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다.
명백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이었다.
히무라는 이번 사태로 교훈을 얻었지만, 그 교훈은 소녀연맹을 팔아버리고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이미 끝난 일이잖아요.”
죄책감 가득한 히무라에게 성필이 심심한 위로를 전했다.
이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인 성필이 이토록 담담할 리 없다. 그의 마음속은 넘치기 직전인 물 주전자 같을 것이다.
“이미 닥친 일에 계속 뭐라고 하는 것도 좀 그러니까. 실장님도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히무라는 순수하게 성필에게 감탄했다. 그의 감정조절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경쟁자의 실력이 걱정돼서 여기까지 오셨으면서.’
어찌 이토록 평온할까.
히무라의 죄책감이 더 깊어졌다.
“……예, 감사합니다 이사님.”
둘의 짧은 대화가 끝나고 녹음실은 정적을 되찾았다.
미사토는 손을 마주 잡고 걱정 가득한 눈으로 부스 안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선 세이코가 노래 부를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콘덴서 마이크를 마주한 세이코는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했다.
“세이코 씨, 시작하겠습니다.”
[……네.]
무거운 대답.
그와 동시에 녹음실의 모든 신경이 부스 안으로 향했다.
부스 안의 세이코, 가후(歌后)에게.
곡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백설하의 눈이 크게 뜨였다.
‘Emotions?’
시대를 휩쓴 디바,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다.
그녀의 후대 가수들이 벽이자 목표로 인식하는 유명하디유명한 곡.
백설하마저 부를 수 없는 노래다. 정확하게는, 완전히 부를 수 없는 파트가 있다.
[You've got me feeling emotions]
첫 소절이 나오자 다들 무의식적으로 감탄을 표했다.
인간의 목소리가 최고의 악기인 이유는 인간의 감정을 가장 잘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소절만으로도 세이코는 모두의 심장을 크게 두드렸다.
‘대단하다.’
세이코가 ‘뉴아사’에 나온다. 그 소식을 듣곤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세이코는 3년 동안 일절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고 했으니까.
아무리 올림픽 메달리스트였던 사람이라도 3년간 트레이닝과 신체 관리를 하지 않으면 녹슬기 마련이다.
‘정말 3년 동안 노래 안 부른 거 맞아?’
그리 의심될 만큼 대단하다.
머라이어 캐리의 Emotions는 매우 기교적인 곡이다. 처음 나왔을 땐 너무 기교만 강조한 곡이라며 평단의 혹평까지 받았었다.
머라이어 캐리 이외엔 누구도 부를 수 없다, 란 말까지 나온 곡이니까.
‘머라이어 캐리 이외엔 누구도 부를 수 없는…….’
그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녀의 기교를 재현하더라도, 그녀의 댐핑은 재현할 수 없으니까.
댐핑. 가수로서 노래에 담는 힘을 뜻한다. 단순히 음량이나 공명이 아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노래의 힘이, 가수에겐 존재한다. 그리고 머라이어 캐리의 기교는 카피가 가능하더라도, 댐핑은 카피가 불가능하다.
‘어떻게 이런 고음역대에서 소리가 저렇게 단단하게……. 고유 음역대를 소화하는 성악가같이…….’
백설하는 무심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노래는 1절 후렴구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것도 가능해? 할 수 있어?’
Emotions의 하이라이트.
그것이 스피커를 타고 녹음실로 전해졌다. 사방의 유리를 깨뜨릴 것만 같은 고음이.
백설하는 넋이 나갔다.
‘플라지올레트.’
플래절렛.
슈퍼 헤드 보이스.
휘슬 레지스터.
휘슬 사운드.
초두성(超頭聲).
여러 이름을 가진 기교다.
한국에선 ‘돌고래 창법’이라고도 불린다.
‘했어.’
본인을 아이돌이자 가수라고 자부하던 그녀는, 솔직히 세이코에게 경쟁의식을 느꼈었다.
경연에서 승부를 볼 상대니까 더더욱.
깔끔한 플라지올레트는 백설하의 전의를 꺾어버렸다.
만약 완벽했다면, 꺾였을 것이다.
‘가성(假聲)을 쓰는구나. 진성(眞聲)이 아니야.’
플라지올레트는 그저 연습만 열심히 한다고 습득할 수 있는 기교가 아니다.
타고난 성대의 탄력과 발성기관 조절 능력이 필요하다. 즉, 신이 내린 재능이 없고서야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백설하는 비슷하게 따라 할 수는 있지만, 결코 완전한 플라지올레트엔 도달할 수 없다.
세이코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일본 톱의 가수란 분이…….’
백설하 자신과 동급이다.
타인과 비교하여 만족감을 느끼는 일은 천박하다고 생각했던 백설하이지만, 무심코 몸을 꼴 만큼이나 기뻤다.
“오, 돌고래 소리.”
백설하의 옆에 앉은 조아라는 그저 신기하단 듯이 세이코의 노래를 평했다.
“쌤도 이거 옛날에 하지 않았어요?”
“어, 응, 대충…….”
Emotions의 하이라이트, 플라지올레트가 나오는 부분의 음계는 무려.
‘5옥타브 도.’
평범한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세이코!”
노래가 끝나고 세이코가 부스에서 나왔다. 미사토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힘껏 안았다.
미사토는 세이코가 장하단 듯이 계속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세이코! 불렀구나, 부를 수 있구나!”
미사토는 울고 있었다.
노래를 잃었던 가수가, 딸이나 마찬가지인 세이코가 드디어 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백설하는 자신이 일본의 톱가수와 비슷한 실력자란 데 진한 만족감을 느끼며, 세이코의 부활을 축복하기 위해 박수를 쳤…….
“흐윽.”
세이코가 울었다.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울먹였다.
“세이코?”
“주, 중간에 팔세토(가성)로 바꿨어……. 나, 나 목이 망가졌나 봐……. 옛날처럼 못 부르겠어…….”
백설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동안 게을러서 버, 벌 받았나 봐아…….”
이곳에 가수가 있다.
우는 가수가 있다.
‘원래는 진성으로 부를 수 있었다고?’
5옥타브를 진성으로 부르지 못했다면서 우는 가수가, 이곳에 있다.
“히무라, 나 어떡해애……? 네, 네 말이 맞나 봐. 나 그냥 은퇴해야 할지도…….”
백설하와 비슷하게, 성필은 세이코가 제정신인가 싶었다.
기교면에서 최상급인 곡을 거의 실수 없이 완성해 놓고서 ‘은퇴해야 할지도’라고?
그런데 더 가관은 이후에 펼쳐졌다.
“어쩔 수 없잖습니까.”
히무라가 담백하면서도 쓸쓸히 답했다.
“세이코 씨는 트레이닝을 몇 년씩이나 쉬었습니다. 아쉽지만, 못하는 게 당연하겠죠.”
“그, 그래 세이코. 이 정도면 잘한 거야. 앞으로 조금씩 연습하면 되지.”
히무라와 미사토는 정말로 세이코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그녀를 달랬다. 그것을 보자 성필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어쩔 수 없는 거…….”
“아니 미사토 부장님, 히무라 실장님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기어코 참지 못한 성필이 끼어들었다.
“잘했다고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왜 아쉬워하는 겁니까?”
세이코가 자괴감을 느끼는 건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런데 히무라와 미사토마저 그런 세이코에게 어울려주는 건 참고 보기 힘들었다.
미사토가 당혹스러워하며 답했다.
“예, 옛날에 비하면…….”
“세상에 Emotions를 이렇게나 부를 수 있는 가수가 몇 명이나 있겠어요? 단언하는데 손가락 발가락으로 꼽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노래를 듣고도 ‘아쉽지만’? ‘이 정도면 잘했어’?”
“파쿠 이사가 뭘 알아요!”
울기만 하던 세이코가 버럭 화냈다.
예전에 성필이 그녀에게 적개심을 드러냈을 때 그녀는 울었었다. 적의를 받는 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녀는 화가 났다. 성필이 자신의 감정을 공감해주지 못하는 것 때문에.
세이코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해도 다들 ‘그렇구나’ 해줬는데, 이번에도 성필만이 그녀에게 맞춰주지 않은 것이다.
“노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방금 저 진짜 엉망진창이었다구요! 모자란 식견으로 그딴 말이나 할 거면…….”
“세이코 씨는 지금도 정점이에요.”
세이코의 말문이 턱 막혔다.
말문이 막힌 건 백설하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백설하는 세이코의 기량에 자신을 대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럼 나도 정점…… 인가?’
백설하는 성필의 칭찬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것으로 느꼈다.
“지금도 일본 최고일 거라고요. 그런데, 도대체 왜…….”
성필이 허탈하게 말했다.
“왜 그렇게 자기를 못 몰아붙여서 안달입니까? 뭐가 세이코 씨를 그렇게 만드는 겁니까?”
이미 최고이면서도 더 높은 곳을 바라는 오만함. 그녀는 정말 신이라도 되고 싶은 것일까?
“박 이사님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히무라는 아까 자신의 평가를 철회했다. 성필의 감정조절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실제로 성필은 현재 감정조절이 잘되지 않았다. 세이코를 보고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름이가.’
전생의 신아름이 딱 저러했었다.
버틸 수 없는 짐을 지고 계속해서 정상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성필은 응원만 해버렸다.
그래선 안 됐다.
응원이 아니라 ‘못할 수 있어’나 ‘위험해, 그만둬’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런데 성필은 그러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었다.
‘아름이가 결국엔 정상을 넘어선 정상까지 갈 거라고 기대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 기대가 신아름을 무너뜨렸던 것이다.
“일단 진정을…….”
“세이코쨩은 이거보다 더 잘할 수 있어요!”
미사토가 급발진했다.
히무라는 당장 머리를 벽에 박고픈 심정이었다. 미사토 같이 이성적인 사람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딸 같은 세이코가 엮여서?
히무라의 예상과 달리 미사토는 여전히 이성적이었다.
‘이거 작전이구나!’
성필이 세이코를 칭찬함으로써, 그녀가 그토록 바라는 인정을 준다. 이것이 성필의 작전이고, 미사토는 그것을 알았다.
성필의 흥분이 그 작전이라고 여겼기에, 미사토는 장작을 더 넣었다.
“솔직히 방금 노래? 전성기의 세이코쨩보다 한참 모자랐어요!”
엄마 같은 미사토의 힐난에 세이코가 경악했다.
“한참 모자라? 귀가 뚫려 있으십니까? 세이코 씨는 당장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 가서 모차르트 오페라 전곡을 불러도 될 만한 실력자예요!”
적이라고 여겼던 성필의 찬사에 세이코가 다시 한번 경악했다.
아무도 몰랐지만, 백설하의 귀가 은은하게 달아올랐다.
“박 이사님이 뭘 알아요! 저는 세이코가 아주 어릴 때부터 봐왔어요. 그래서 안다구요! 세이코는 고작 이 정도가 아니란 걸요! 매니저로서, 이 정도로 낮은 기량에서 만족할 순 없어요!”
세이코가 울먹거렸다.
“진짜 억지로 까 내리는 거 좀 그만하세요. 3년 만에 처음 부르는 노래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했는데, 여기서 또 뭐 어쩌란 겁니까? 칭찬을 넘어 찬양받아도 모자랄 판국에 어떻게 ‘다음엔 더 잘하자’란 말을 꺼냅니까?”
세이코의 울음이 그치고 대신 뺨이 붉어졌다.
그러고도 성필과 미사토는 한참을 싸웠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히무라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고.
“…….”
소녀연맹의 눈빛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백설하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