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KS 엔터의 퍼포먼스팀이 사방을 둘러싼 가운데 김민주는 춤을 추었다.
평가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김민주가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동작이나 고난도의 테크닉을 펼칠 때마다 퍼포먼스팀이 열띤 환호를 보냈으니까.
오히려 이건 공연에 가까웠다.
“민주 멋지다!”
김민주는 리듬에 맞춰 춤을 추던 중, 자신을 멋지다고 말한 직원 쪽으로 돌아서며 과격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마치 칭찬에 대한 보답이란 듯이.
“민주야 나 죽어!”
공연, 혹은 장기자랑.
케이어스의 공식 채널에 올라갈 순수 댄스 퍼포먼스 영상 촬영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적인 자리엔 전혀 맞지 않은 축제 분위기가 공간을 지배했다.
평생 춤으로 밥을 벌어 먹고산 퍼포먼스팀이 보기에도 김민주의 춤은 환호를 바치기 충분했다.
그것을 지켜보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카메라 옆의 의자에 앉아 김민주의 춤을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
정호환이었다.
“…….”
정호환은 김민주를 보다 말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도 눈꺼풀을 뚫고 붉은빛이 파고들었다.
그는 김민주가 선 곳이 무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불판 위에 서서 열기를 피해 날뛰는 것처럼 보였다.
‘또…….’
정호환이 거칠게 눈을 비비고 다시 눈을 떴다. 그러자 바로 앞에 김민주가 서 있었다. 어느새 음악이 끝난 것이다.
그녀는 환희에 가득 찬 얼굴로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이사님 저 어땠어요?”
눈앞의 김민주에게 다른 사람이 겹쳐 보였다. 당시에는 김민주보다 어린 나이에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했던 아이돌.
‘저 이제 잘 춰요?’
그리 물어보던 소년은, 환희가 가득한 김민주와는 달리 절박함이 잔뜩 묻어났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정호환은…….
“……그래, 잘하더구나. 역시 KS 엔터 창사 이래 최고의 천재답다. 한국 육상계에 미안한 짓을 했어.”
“미래의 금메달을 빼앗아 가서요?”
“육상계에 미안하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하자.”
“여기서 더? 그럼 저 잠도 안 자야 하는데요. 부족한 점 있으면 말이라도 해줘요. 고치게.”
“민주야, 항상 말했지만 부족함을 느끼는 거 자체가…….”
정호환은 말을 하다 말고 멍해졌다. 또다시 김민주에게 소년의 모습이 겹쳤다.
늙으니 병이라도 온 건가.
“아니다. 지금도 민주 넌 잘하고 있지. 오늘은 고생했다. 이만 쉬어라.”
“이사님 뭐 잘못 먹었어요?”
뒤에서 보고 있던 퍼포먼스팀이 기겁했다. 감히 정호환을 상대로 저런 말투라니?
“평소랑 너무 다르잖아요.”
정호환은 이 손녀와 같은 아이를 향해 웃음만 보일 뿐,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퍼포먼스팀은 거기서 또 경악했다. 정호환이 자주 케이어스를 음악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말하긴 한다면, 정말 손녀 대하듯이 하지 않은가.
“잘하는 걸 잘한다고 하지, 또 뭐라고 하겠니.”
“그럼 됐고요. 뭐, 신아름이랑 비교해선 어때요?”
정호환은 또 웃었다.
옛날에 ‘신아름을 프로듀싱해보고 싶다’고 흘리듯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걸 기억하고 물어오는 것임이 틀림없다.
“민주 너랑 걔를 비교할 수 있을 리 없잖니.”
김민주가 훨씬 뛰어나다.
그 대답에 김민주는 만족했다. 한국의 어느 사람보다 안목이 뛰어난, KS 엔터 이사 정호환에게 받은 칭찬이니 만족하지 않을 수 없다.
정호환은 연습실을 나와 복도를 터덜터덜 걸었다.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려 계속 걷던 중, A&R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사님, 가로 엔터로부터 이런 요청이…….]
요청의 내용을 듣고 정호환은 살짝 놀라선 답을 흐렸다.
“그건 내가 더 알아보고 답할게요. 기다리세요.”
[알겠습니다 이사님.]
정호환은 통화를 끝낸 뒤 곧장 성필에게 문자를 보냈다. 5초도 지나지 않아서 그가 통화를 걸어왔다.
“박 이사님. 다키스트의 ‘더 킹’을 편곡하시겠다고요?”
[그렇게 됐습니다 정 이사님.]
“경연에서…….”
정호환이 허허 웃었다.
“그렇군요. 편곡할 수밖에 없겠네요.”
원본을 그대로 재현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 * *
연습실. 성필과 멤버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다키스트의 ‘더 킹’을 들었다.
곡이 끝나곤 다 같이 감상을 나누었다.
“이게 6년 전 노래라고?”
“신기하지?”
성필은 조아라가 놀라는 반응을 즐겼다. 그녀의 말마따나, ‘더 킹’은 6년 전에 나왔단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었다.
“이게 KS 엔터의 대단한 점이지. 국내 최고의 A&R팀을 보유한 만큼 작곡이나 사운드에 엄청나게 공을 들이거든. 세월이 지나도 낡았단 느낌이 거의 안 들어. 이건 국내외적으로 수백 명이 넘는 작곡가와 긴밀한 협업 체계를 구축한…….”
“아저씨 오타쿠 같으니까 그만해요.”
시무룩.
“뭐, 이것도 그 정호환 이사란 분이 만들었어요?”
“응. 대단하지?”
“아저씨 걍 KS 엔터 가요.”
“조아라 너 부정 타게 뭐 그런 말을 해!”
신아름의 일갈에도 조아라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이가 없단 듯이 응수했다.
“야, 아저씨가 진짜 갈 거면 내가 이런 농담 하겠냐? 안 갈 거 아니까 하는 거지. 아저씨 그쵸?”
“…….”
“아저씨?”
“…….”
“리카, 아저씨 잡아.”
“하잇(넵)!”
“안 가 안 가! 절대 안 가! 내가 어떻게 너희 버리고 KS 엔터로 가겠어?”
“‘어떻게 너희 버리고 KS 엔터로 가게써어’.”
조아라가 성필의 말을 따라 하면서 그를 놀렸다.
“진짜 내가 봤을 때 진저가 아저씨 다리에 매달려서 ‘이사님 와주시면 안 됨미까? 제 평생 소원임미다’ 이러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갈 듯.”
“와, 아라야 너 진저 성대모사 되게 잘한다.”
“봐봐 또. 나 말고 진저한테 관심 가지잖아.”
“내가 듣고 싶은 말 있는데 진저 성대모사로 해주면 안 돼?”
“뭐래 미친 아저씨 변태인가 봐!”
조아라는 성필이 유독물질이라도 되는 것처럼 저 멀리 도망갔다. 성필은 그녀를 쫓아 보낸 뒤 살짝 씁쓸한 투로 말했다.
“그래, 나를 믿으니까 내가 KS 엔터에 간다는 농담도 하는 거겠지. 믿어줘서 고맙다. 근데 진짜로 걱정하는 사람은 없지?”
“저흰 이사님 믿어요.”
“설하야…….”
백설하는 리더다운 신뢰감 깊은 미소를 지으면서, 옆에 엎드려 있는 리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강아지를 대하는 듯한 손길이었다.
“케이어스에 진저가 있으면 저희한테는 리카가 있잖아요.”
“그게 뭔 논리야.”
“리카, 잘할 수 있지?”
“하이(네)! 진저 님이 이사님한테 매달리면 아타시(제)가 반대쪽 다리에 매달릴게요!”
“봤죠? 그러니까 다들 걱정 안 해요.”
라고 한 백설하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은 장하양을 발견했다.
“하양아?”
“……이사님, 만약에요. 저랑 진저 씨가 양쪽 다리에 매달려서 각자 회사로 오라고 하면, 누구 선택하실 거예요?”
“뭘 그런 걸 물어봐 당연히 가로 엔터에 남지?!”
성필이 허탈하게 웃었다.
아마 또 장하양은 손바닥을 활짝 펼치며 ‘농담’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분위기가 싸해지겠지.
“…….”
그런데 장하양은 침묵만 지키면서 성필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래서 성필이 대신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농담!”
“가로 엔터에 남는단 게 농담이라구요?!”
“아, 아니야!”
결국 성필은 ‘케이어스 전원이 매달리고 정호환이 수석 프로듀서 자리를 약속하며 계약금으로 10억을 주어도 안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이 지독한 농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꼭 뮤직 어워드 본상 타기 전 같네.’
소녀연맹이 자신들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전까진, 이렇게 케이어스와 비교하는 게 일상이었었다.
“자,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다들 어때?”
“음, 그럭저럭?”
신아름이 그럭저럭이란 평가를 내렸다.
“어차피 남자 곡이잖아요. 보컬은 걱정할 필요 없지 않나.”
남자는 여자 보컬의 키만큼 올라가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남자 그룹의 곡은 고음일지라도 음계가 높지 않다.
여자 입장에선 남자 곡을 소화하기 쉬운 것이다. 물론 그게 남자 특유의 저음이나 남성적인 스타일을 강조한 곡이라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더 킹’은 누가 들어도 고음이 강점인 곡이다.
“춤만 신경 쓰면…….”
“아름아. 이 곡, 하이라이트 고음 대부분 3옥타브 이상이야. 브릿지 애드리브도.”
“네? 진짜요?”
신아름이 못 믿겠단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보이그룹 곡…… 이잖아요? 아니, 하이라이트에 음색이 다 달랐는데?”
즉, 전부 다른 사람이 불렀단 이야기다.
‘다키스트’는 5인조 그룹이다. 그럼 다섯 명 전부 3옥타브 이상을 안정적으로 낼 수 있단 뜻이다. 무려 남자들이 말이다.
“뭔, 무슨, 이 사람들 괴물이에요?”
“괴물이지.”
KS 엔터가 2세대 아이돌계를 제패할 수 있던 이유가 ‘다키스트‘다.
멤버 하나하나가 어떻게 그리 뛰어났던지, 과거의 성필은 그들을 뛰어넘는 그룹은 절대 나오지 않으리라고 확신했었다.
메인 보컬 5명, 메인 댄서 5명, 메인 래퍼 5명인 5인조 그룹이라고 불렸었으니까.
“아, 이게…….”
백설하도 들으면서 긴가민가했던 모양이다.
걸그룹 메인 보컬이라도 이토록 높은 음역대를 시원하게 뽑기가 어렵다.
분명 곡의 옥타브는 높은데 보이그룹의 곡이긴 하고, 게다가 모든 멤버의 목소리가 하이라이트에 등장하니, 도저히 3옥타브 이상이라고 믿기 어려웠던 것이다.
“오케이, 이러면 되겠네.”
조아라가 결론을 내리려는 듯 손뼉을 쳤다.
“하이라이트는 전부 쌤이 맡으면 되겠다.”
“어?!”
“못해요?”
“아니, 못하는 건, 아닌데…….”
’더 킹‘의 보컬을 재현하려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할 것이다.
메인 보컬이 하이라이트를 독점하는 경우가 드문 것도 아니니, 관객들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그런데 그러면 안 될 텐데.’
성필은 조아라가 낸 의견의 문제점을 알았다. 하지만 굳이 지금 밝히고 싶지는 않았기에 담담히 반응했다.
“아, 그런데 일본어로 가능할까……?”
“쌤이잖아요. 믿어요.”
조아라는 마치 성필이 하는 것처럼 백설하에게 믿음을 강요했다.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와선, 백설하의 어깨를 살살 쓸면서 격려하는 중이다.
“음…….”
장하양은 인터넷에서 ’더 킹‘의 가사를 찾아보곤 신음을 흘렸다. 자연스레 그녀에게로 이목이 쏠렸다.
“이사님. 이거 저희가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 가사가…….”
“하양이가 제대로 짚어줬네. 여돌이든 남돌이든, 다른 성별의 곡을 소화하는 건 엄청 어렵지. 어떤 식으로든 어레인지가 필요할 거야. 물론 하양이가 걱정하는 건 가사지만.”
“네. 저희가 부르면 느낌이 안 살 거 같아요.”
“그런가요?”
리카는 핸드폰으로 가사를 보면서 대강 눈으로 훑었다. 장하양의 ’느낌이 안 산다‘는 말에 동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리카 너 이거 가사가 아무렇지도 않아?”
“에에, 아라쨩 겁먹은 거야? 가사가 어때서?”
“어떠냐니.”
[이 몸이 왔다
너흴 이끌고 이곳에 왔다
난 자격이 있어
왕중왕(王中王)은 바로 나
경배하라
(다키스트!)
그래 I’m the king!]
“이게 어떻냐고?”
“캇코이데쇼(멋지잖아)? 아라쨩한테도 어울려!”
“앞으로 리카 별명은 ‘왕중왕 리카’예요. 불만 있는 사람 없죠?”
“손나(그런)?!”
조아라가 지어준 ‘왕중왕 리카’란 별명 덕에 가사가 지닌 문제점이 드러났다.
“음, 이 부분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바꿔야겠네. ‘I’m the king’을 Queen으로 바꾸거나…….”
백설하는 아주 기본적인 부분을 지적했을 뿐, 본질적인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백설하도 가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답이 안 나온단 듯이 한숨이 늘어갔다.
“이거 저희한테 안 어울리는 가사가 아니라…….”
여자 아이돌이 표현할 법한 게 아니다.
“박 이사님, 여돌 중에 이거랑 비슷한 느낌 살린 곡 있나요?”
“없진 않지. 개중에는 성공한 것도 몇 있고. 그런데 다키스트의 ‘더 킹’처럼 남성적인 분위기가 적나라하진 않아.”
“남성적인…… 네, 그러네요.”
‘더 킹’은 걸크러쉬로도 포장이 불가능할 정도로 남성적이다. 가사는 투박한 기세와 강렬함, 패도적인 선언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게 가사가 남성적인 것만이 문제가 아니야. 그뿐이라면 오히려 쉬웠겠지. ‘더 킹’은 다키스트라서 부를 수 있는 곡인 거야. 모든 아이돌곡이 그렇지만, ‘더 킹’은 진짜 맞춤 곡이지.”
다키스트가 아이돌계의 왕좌에 올랐음을 선언한 곡이다. ‘더 킹’은 그들이기에, 그들만의 서사가 있기에 완성된다.
그걸 소녀연맹이 경연 무대에 펼쳐도 퍼포먼스의 효과는 적지 않을까.
“춤부터 보면 안 돼요?”
갑자기 조아라가 말했다.
심각한 분위기가 되던 중 튀어나온 말이라 다들 피식 웃었다.
“그래, 춤부터 보자.”
성필은 연습실의 프로젝트 스크린을 내리고 다키스트의 ‘더 킹’ 무대를 찾았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이건 일본어 버전에다가 라이브네.”
“그럼 더 좋죠.”
소녀연맹은 ‘더 킹’의 일본어 버전을 펼쳐야 했으니, 일본 버전 공연 무대가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럼 틀게.”
성필이 영상을 클릭한 순간, 노트북과 연결된 블루투스 스피커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깜짝 놀란 성필이 다급히 소리를 줄였지만, 관객들의 열기만은 꺼지지 않았다.
“뭐, 뭐야.”
조아라는 스크린을 채운 영상을 보곤 당황했다. 나타난 건 다키스트가 아니라, 끝을 알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공연장의 관객석이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수만 개의 불빛이 멤버들의 정신을 빼앗았다.
함성 속에서 공연장의 중앙에 불이 켜졌다. 거대한 기둥 위에 다섯 명의 남자가 있었다.
제복을 입은 중앙의 남자, 다키스트의 리더 서유선이 하늘 위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쿄세라 돔!]
총 35,000명의 환호.
[다키스트가 키타(다키스트가 왔다)!]
이윽고 ‘더 킹’의 전주가 흘러나오며 다키스트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멤버들은 영상을 보는 내내 전율에 잠겼다. 그녀들은 아이돌이기에, 퍼포먼스를 보고 즐기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무심코 분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분석한 결과, ‘더 킹’이 보통 수준이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그때 넋을 놓은 멤버들의 귀로 성필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다키스트 돔 투어 중 하나, 쿄세라 돔 콘서트 영상이야. 이걸 보면 알겠지만 다키스트는 일본에서도 활동했었거든.”
그리고 케이팝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돔 투어로 100만 관객을 동원했어. 수용 인원 5만 명 이상인 도쿄 돔에서만 3일 연속으로 공연했지. 좀 과장해서, 일본에서 다키스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러니, 아까 조아라가 말했던 ‘모든 하이라이트를 백설하가 맡는다’ 같은 의견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다키스트랑 비교될 거야. 비교돼서 비웃음을 사겠지. 얘들아, 너희가 해야 할 곡이 ‘더 킹’이 된 순간부터, 너희들의 적은 다른 참가자들이 아니야.”
다키스트 그 자체다.
소녀연맹은 일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아이돌 그룹의 곡을 경연에서 펼치게 된 것이다.
케이팝 그룹인 소녀연맹이 일본 경연 프로그램에 나왔다. 게다가 거기서 선보이는 곡이 다키스트의 ‘더 킹’이다.
“‘뉴아사’ PD님이랑 잠깐 얘기했었거든. 그랬더니 뭐라시는 줄 알아?”
어쩌면 시청률 20% 돌파도 가능하겠다, 라고 말했었다.
시청률 20%라면, 2,000만 명 이상이 ‘뉴아사’를 시청한다는 뜻이 된다. 소녀연맹은 그런 장소에서 공연을 펼치는 것이다.
“그럼…….”
다키스트 공연 영상이 끝나자, 조아라는 관객들의 환호로 귀가 먹먹한 와중에도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럼, 어떡해요?”
조아라는 직감했다.
다키스트의 ‘더 킹’은 고작 3주 남짓한 시간으로 완성할 수 있을 만한 곡이 아니다.
댄스 테크닉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다. 하지만, 군무의 끝을 시험하려는 것처럼 멤버 간의 합이 정교해야 한다.
“우리 이거 못하면, 그럼 2,000만 명한테 비웃음당하는 거예요?”
멤버들이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아니, 아예 공포에 떠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그녀들을 향해 성필이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아직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지만, 멤버들은 위로를 받은 것만 같았다.
성필이라면 어떻게든 해줄 것이다. 방법을 생각해낼 것이다. 그런 믿음이 있었다.
“방법이 있지.”
역시.
멤버들이 안도했다.
“편곡할 거야. 퍼포먼스도, 곡도. 그걸 위해 편곡의 천재를 모셨어.”
터벅터벅.
때마침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하게도 멤버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였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지음 오빠?”
리카가 약간 놀란 기색을 보였다. 다른 멤버들도 그러했다.
그녀들은 몸을 일으켜 정지음을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정지음은 쑥스럽게 웃으면서 그녀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뭐야, 지음 오빠도 일본에 무슨 일 있어요?”
“어? 어, 어어, 있지. 일.”
정지음이 아직 애들한테 설명 안 했냐는 듯 성필을 보았다. 그런데 성필도 당황하긴 매한가지였다. 방금 소개했는데?
“저희 보러 온 건가요! 선물은 안 사 오셨나요? 숨기지 말고 빨리 주세요!”
“어, 아니, 선물은 없는데…….”
“에에, 실망이에요.”
“그래서 박 이사님. 편곡의 천재란 분은 어떤 분인가요?”
백설하의 물음에 성필이 눈만 끔뻑였다.
‘……아, 애들은 편곡의 천재란 단어랑 지음이를 연결시키지 못하는 거구나.’
너무 친근하기 때문일까.
성필은 다시 오글거리는 말로 정지음을 소개하려 했다. 하지만 정지음이 먼저 나섰다.
“아아, 오레사마(이 몸)가 편곡의 천재다.”
침묵.
“……편곡의 천재? 그딴 이름 누가 붙였어요?”
“어? 음, 박 이사님이…….”
“아저씨 지음 오빠한테 왜 그래요. 지음 오빠가 뭐 잘못했어요?”
“아라쨩!”
리카가 조아라의 입을 막음으로써 정지음의 창피를 덜어주었다.
“왜 그래, 편곡의 천재 멋지잖아! 막 만화에 나오는 악당들 이명(異名) 같아요! 아타시(저)도 붙여주세요!”
리카의 눈물겨운 노력에 정지음이 감동했다.
왠진 모르겠지만, 성필은 정지음에게 ‘편곡의 천재’란 이름을 주었었다. 전생에서 정지음이 가진 별명이었지만, 그가 알 리 만무했다.
어쨌거나 정지음은 그게 꽤 마음에 들어 자신만만히 멤버들에게 밝혔는데, 설마 이렇게 반응이 안 좋을 줄이야.
“됐어 리카. 난 편곡의 천재 아니야. 그냥 정지음이야. 아니다, 그냥 일본식으로 치논(知音)쨩이라고 불러줘…….”
“머, 멋지다니까요! 이사님 빨리 저한테도 이명 붙여주세요!”
“리카는 일본어의 천재.”
“뭔가요 그게?!”
“아저씨, 리카는 이미 별명 있어요.”
“에, 나한테?”
“‘왕중왕 리카’라고 불러요.”
“소레(그거) 계속 쓰는 거였어?!”
아무튼, 편곡의 천재가 왔다.
전생에서의 명성대로 정지음은 다키스트의 ‘더 킹’을 소녀연맹에게 알맞도록 편곡할 것이다.
마치 원래부터 소녀연맹의 곡이었던 것처럼.
‘그러면 증명할 수 있겠지.’
시청률 20%.
2,000만 명 이상의 일본 사람들에게 증명하는 것이다.
소녀연맹이, 미래에 최고의 아이돌이 될 걸그룹이 일본에 왔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