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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284화 (284/760)

284화

팬들의 기세는 불꽃과 같았다. 당연하게도 성필과 슈이치만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둘이서 전후좌우를 전부 커버하는 건 불가능하니 말이다.

멤버들은 일본에 처음 당도하여 본 광경이 사람의 벽이란 게 믿기지 않는 듯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사람의 파도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는 것이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어이 거기!”

보다 못한 공항의 경찰들이 소녀연맹의 근처로 다가왔다. 하지만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녀들에게 접근할 방법은 없었다.

두 명뿐인 경찰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까이 붙지 마라, 떨어져라, 물러서라, 이런 말을 반복하는 것밖에 없었다.

“얘들아, 조금씩 앞으로 가!”

성필과 슈이치는 팔을 최대한 넓게 펼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을 멤버들은 천천히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사태보다 몇 분 늦게, 하지만 약속 시간보다는 빠른 웨벡스의 미니버스가 도로에 멈춰 섰다.

“저기입니다! 저쪽으로 가야 합니다!”

성필과 슈이치는 팬의 파도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들은 폭풍우 속에서 비바람을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달랐다. 그녀들은 눈동자를 빛내면서 자신들을 둘러싼 팬을 감상했다.

그때 장하양은 어느 팬이 내민 선물상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홀린 듯이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들였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장하양은 멍하니 일본어로 감사를 전했다. 어느 쪽에서 선물이 왔는지 빠르게도 잊어버려서, 사방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한 명이 선물 전달에 성공하자 팬들은 더욱 격렬하게 부딪쳐왔다. 어떻게 부딪쳤냐면, 자신들이 쓴 편지나 선물을 마구마구 흔드는 것이다.

멤버들은 부족한 품 안에 자꾸만 선물을 쌓아갔다. 아예 백설하는 편지 전담으로 팬들이 내민 편지만 수집했다.

“빨리 타!”

성필의 안내에 멤버들이 우르르 미니버스 안에 탑승했다. 크게 움직이지도 않았건만 숨이 거칠었다.

장하양은 좌석에 앉자마자 창가 밖으로 손을 흔드는 팬을 볼 수 있었다.

팬들은 계속해서 ‘소녀연맹’, ‘언니’, ‘사랑해’ 등을 외치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어필했다.

어느 순간 팬들이 창가에서 사라지자, 장하양은 버스가 출발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정신이 멍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웨벡스 쪽 사람과 대화를 마친 슈이치가 고개를 숙였다.

“혹시나 해서 도쿄 공항을 피하고 나리타를 택했는데, 별 차이는 없었군요.”

“웨벡스는 이 상황을 예상했었나요?”

성필의 물음에 슈이치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소녀연맹은 일본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리라 여겼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의 대응이 미숙했습니다.”

웨벡스는 케이팝 그룹을 두 번 매니지먼트한 경력이 있었다. 두 그룹 모두 덩치가 컸었기에, 공항에 인파가 몰린단 사실 정도는 예측 가능했다.

하지만 소녀연맹은 아니었다.

‘중소 기획사의 그룹을 맡은 적이 없으니.’

슈이치는 방금 사태를 겪어 달아오른 몸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손부채를 부쳤다.

“예상보다, 소녀연맹의 팬이 많은 듯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슈이치도 물론 케이팝 아이돌이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지는지는 알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유명한 그룹에 한정한 이야기인 줄로만 생각했다.

‘음방 1위 덕분인가.’

해외의 케이팝 팬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음악방송이다.

아이돌이나 가수들의 위상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지표로서 활용할 수 있고, 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브 무대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방 방송 1위를 했다면, 해외에서도 인지도를 쌓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석연치 않았다.

‘공항에 백 명이 넘는 인원이 몰렸다. 이런 아침에 시간을 내어, 고작 몇 분에 불과한 시간이라도 소녀연맹을 위해 쓰고 싶은 사람이 백 명 넘게…….’

음방 1위만으로 그러한 팬 응집력을 보유할 수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소녀연맹의 힘을 체감하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사건이었다.

“얘들아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멤버들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조아라는 자신의 품에 탑처럼 쌓인 선물을 보자니, 너무나도 충격적이라 말까지 더듬었다.

“아저, 아저씨. 이거 맞아요? 맞는 거예요? 진짜 아까 그 사람들이 우리 보러 왔어요? 우리 팬 맞아요? 케이어스 팬이라거나 그런 거 아니죠?”

“아니지. 소죠렌메(소녀연맹)라고 외쳤었잖아.”

“어떻게…….”

장하양은 혼이 나가서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죠?”

멤버들이 깜짝 놀랐다. 장하양의 눈가로 눈물이, 감동이 퍼져나가고 있었기에.

“다른 나라인데, 이렇게, 저희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기쁘다.

어눌하게 끝맺은 장하양의 말은 그것이겠지.

“언니 울어요?”

신아름이 장하양을 달래주려는 요량인지 어깨를 쿡쿡 찌르면서 놀렸다.

“겨우 이걸로 울어? 이러면 앞으론 어쩌게요. 우리 해외 투어도 돌 건데.”

“응, 그러게.”

신아름은 품에 선물을 한 아름 든 장하양을 대신하여, 그녀의 눈매에 맺힌 물기를 닦아주었다.

장하양은 팔 안에 가득 찬 사랑의 무게를 느꼈다.

“감사합니다.”

아까 미처 다 전하지 못한 감사를, 장하양은 선물들을 보고나마 전하였다.

* * *

오랜만에 마주한 웨벡스의 건물은, 여전히 10층이 넘는 크기로 자신들의 위용을 과시하는 중이었다.

“저쪽으로 가면 30분만 걸어도 시부야예요! 도쿄 타워는 그거보다 더 가까워요! 그거보다 더 더 가까운 건 롯폰기!”

리카는 웨벡스 건물 앞에 서자마자 신나서 도쿄의 지리에 대해 설명했다.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멤버들은 리카에게 맞춰주기 위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이 다 유명한 데야? 여기 땅값 엄청 비싸겠다.”

비싸기만 할까.

웨벡스의 빌딩이 있는 곳은 도쿄의 중심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장 3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천황의 거처는 물론 국회의사당까지 있으니 말 다 했다.

“구경 다 하셨습니까?”

슈이치가 그리 묻자 리카가 의아한 빛을 띠었다.

“구경이요? 저희 들어가는 거 아닌가요?”

“여러분들은 먼저 숙소로 가시게 될 겁니다. 일단 박 이사님과 저만 사무소로 들어갑니다.”

숙소가 언급되자 멤버들의 눈동자에 기대감이 번졌다. 과연 이렇게 커다란 기획사는 어느 정도의 숙소를 제공해줄 것인가.

그렇게 멤버들을 떠나보내고, 성필과 슈이치는 사무소 안으로 발을 들였다.

‘다시 봐도 크네.’

과거 한구인과 함께 와서 놀란 전적이 있었지만, 웨벡스 사무소의 건물은 외견만큼 안쪽도 넓고 쾌적했다.

“이쪽입니다.”

슈이치를 따라 엘리베이터로 가던 도중, 손혜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슈이치에게 양해를 구한 뒤, 성필은 조금 들뜬 목소리로 그녀와 통화했다.

[도착했어? 공항에서 발목 잡히진 않았고?]

“안 그래도 팬들이 백 명 넘게 몰렸더라.”

[헤엑, 우리 애들 벌써 그런 급이야? 당장 아레나 투어 돌아도 되는 거 아냐?]

“의외로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와, 네가 그럴 정도면 반응 진짜 뜨거웠겠다.]

“오자마자 죽는 줄 알았어. 뭐, 안부 전화한 거야?”

[그렇지. 3달 동안 열심히 해라.]

준비 기간과 활동 기간을 포함한 3달. 소녀연맹은 일본에서 여러 일을 겪게 될 것이다.

성필 또한 프로듀서로서 그녀들과 일본에서 지낸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겠지만, 막연한 기대감을 숨기기만 할 수는 없었다.

“누나도 열심히 해.”

성필이 일본에서 소녀연맹을 진두지휘하는 동안, 손혜빈은 한국에서 일이 있다.

직원을 더 채용하고 가로 엔터의 체계를 정비한 후, 차기 그룹을 위한 인재를 들이는 것이다.

임원 회의로 대략적인 방향을 정해졌지만, 그 계획을 실행하는 건 무거운 짐임이 틀림없다. 어쩌면 성필이 처음 가로 엔터로 들어왔을 때보다 더 말이다.

옛말에도 건국(建國)보다 치국(治國)이 힘들다고 하지 않았던가.

[너 돌아오면 몰라보게 바뀌어 있을걸. 기대해.]

“응. 나, 꼭 성공해서 돌아갈게.”

[그건 나 말고 사장님한테 해.]

“맞네. 사장님한테도…….”

[박 이사.]

전화 너머 목소리가 홍규헌의 것으로 바뀌었다. 성필은 갑자기 상대가 바뀌자 움찔했지만, 곧 전장에 나가는 장수와 같은 비장함을 드러냈다.

“예, 사장님.”

[일본에서도 잘할 거라 믿어. 박 이사는 내가 일본 쪽 이야기를 듣는 유일한 길이야.]

즉, 성필은 홍규헌의 눈과 귀다. 그녀는 오로지 성필을 통해서만 일본의 사정을 듣게 되는 것이다.

물론 웨벡스의 정기 보고도 있겠으나, 성필만큼 생생하며 신뢰 있을 순 없겠지.

[아니, 길이 아니라. 그냥 내가 일본에 있는 거지. 거기선 네가 가로 엔터 사장이나 마찬가지야.]

성필은 홍규헌으로부터 프로듀싱과 매니지먼트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았다. 급박한 상황에선 그의 독단만으로도 소녀연맹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것이다.

[믿고 있어.]

“예,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통화를 끝내자, 성필은 어느새 목적지 앞에 도달해 있었다.

아이돌 관리 2실 실장, 히무라가 있는 사무실 앞이었다. 슈이치가 문을 열자, 성필은 살얼음판이라도 밟듯 조심스럽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오늘은 일본으로 온 첫날.’

그에 따라, 성필은 웨벡스의 구체적인 매니지먼트 전략을 전부 목격하게 될 것이다. 합의가 되지 않은 세부 사항마저도 말이다.

모든 것이 성필의 검토 대상이며, 때로는 히무라와 대립각을 세울 일도 있을 것이다.

동료지만, 온전히 마음이 맞지는 않다.

‘오늘은 그런 히무라 실장님과의 첫 대면이다.’

기세부터 밀리면 안 된다.

성필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수많은 책상과 파티션, 그 모든 곳이 비어 있었다.

당황하고 있자 뒤에서 슈이치가 말했다.

“히무라 실장님은 조간 회의에 가셨습니다. 기다리시면 올 겁니다.”

“…….”

“이사님이 쓰실 자리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기다리시는 동안 뭔가 마실 거라도. 차? 커피? 어느 쪽으로 하시겠습니까?”

“……차로, 부탁드립니다.”

어쩐지 기운이 빠진다.

* * *

“오자마자 큰일이셨겠습니다.”

응접실.

히무라는 성필과 마주 보곤 사람을 편히 만드는 미소를 지었다. 오랜 비즈니스로 단련된 기술이었다.

“일본어로 해주세요.”

“예? 대화를…… 말입니까?”

“예. 여긴 일본이니까요. 익숙해지고 싶습니다. 굳이 저한테 맞춰서 한국어 쓰실 필요 없습니다.”

히무라는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곧바로 일본어로 언어를 바꾸어 구사했다.

“곤혹을 겪으신 이사님과 소녀연맹에겐 실례되는 말이지만, 공항에서 겪은 일은 호재라 볼 수 있겠군요.”

오직 소녀연맹만을 위해 시간을 쓰는 사람들이 백 명도 넘게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프라인으로 덕질하는 사람은 소수다. 흔히 방구석 1열이라고 하는, 온라인으로 덕질하는 사람이 아이돌 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방구석 1열의 팬은 아이돌의 성공을 떠받치는 1등 공신이다.

“그렇죠, 호재죠.”

직접적으로 행동하는 팬이 한 명이라면, 방구석 1열은 몇 명일까? 10명? 100명?

최소한, 일본에서 소녀연맹의 팬은 수천 단위로 잡힐 게 틀림없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히무라의 말마따나 호재이다.

“저희 애들도 일본에 좋은 인상을 가졌고요. 감동을 많이 받은 거 같아요.”

히무라가 참지 못하고 입술 사이로 웃음을 흘렸다.

“아, 죄송합니다. 한국의 어법이란 건 알지만, ‘저희 애들’과 같은 말을 일본어로 들으니 느낌이 묘하군요.”

“어…… 그런가요? 정확히 어떤 느낌이죠?”

성필은 아직 일본어에는 서툴다. 책이나 인터넷 강의로만 공부했을 뿐, 회화로 느껴지는 뉘앙스를 파악할 수준은 아닌 것이다.

그의 질문에 히무라는 여전히 웃으면서 답했다.

“저와 이사님 사이에 애가 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저희’나 ‘우리’는 함부로 쓰면 안 되겠네요.”

성필이 어색하게 웃었다.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우리나라’라는 단어도, 일본어로 하면 무언가 비장미가 넘치게 들린다고 한다.

‘이곳은 우리의 나라다!’ 같은 느낌이라나.

“자, 이사님 시간이 없습니다. 업무 이야기로 들어가죠. 데뷔 쇼케이스까지 남은 기간은 한 달 남짓.”

데뷔 쇼케이스로부터 소녀연맹은 본격적인 일본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 전에 다른…….”

똑똑. 노크와 함께 슈이치가 들어와 소녀연맹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히무라는 맥락이 끊기자 약간은 허탈한 웃음을 보이면서 몸을 일으켰다.

“업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은 소개를 마쳐야겠죠.”

앞으로 세 달 동안 동고동락할 ‘식구’들에게.

히무라는 소녀연맹을 아이돌 관리 2실의 팀원들에게 소개시켰다. 열 명 남짓한 인원은 멤버들이 인사를 할 때마다 박수로 맞아주었다.

‘뭐지?’

박수를 맞아주긴 했지만,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 아니, 아예 뚱한 표정으로 대강 행동하는 이도 있었다.

성필은 그 반응에 당황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텃세라도 부리는 것일까?

멤버들의 기가 죽을까 걱정되어 돌아보니, 의외로 멤버들은 크게 동요가 없었다.

“슈이치 씨, 멤버들을 대기실로 데려다주시죠.”

“알겠습니다 실장님.”

성필은 히무라와 응접실로 들어오자마자 방금 반응에 대해 캐물었다.

“그렇군요. 이 이야기가 먼저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해 드리자면, 웨벡스는 소녀연맹을 좋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예? 그게 무슨…….”

가로 엔터로 1억 엔을 선지급할 만큼 매니지먼트에 열성을 보였던 게 웨벡스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좋게 보고 있지 않다니?

“에스타스를 아십니까.”

“예. 웨벡스 소속 걸그룹 아닙니까. 여기, 2실에 소속된…….”

“에스타스는 1년 넘게 활동이 없습니다.”

설마.

성필이 눈치챈 기색을 보이자 히무라가 긍정하였다.

“소녀연맹 때문입니다. 저희 2실이 소녀연맹의 매니지먼트를 기획하고 실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에스타스를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다.

“버린…… 겁니까? 돈이 벌리지 않아서?”

“그건 아닙니다. 저희가 가로 엔터에 제시한 조건을 기억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소녀연맹의 뮤직 프로듀서, 작곡가와의 협업권 보장.

“저는 케이팝의 노하우를 이용해서 에스타스를 프로듀싱할 생각이었습니다. 일본 아이돌에 대해 좀 아십니까?”

“남들 아는 만큼은 압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저는 일본 아이돌과 다른 아이돌을 만들고팠습니다. 케이팝 아이돌 같은 것을요. 안타깝지만…….”

웨벡스의 중역들이 자꾸만 간섭을 해와서, 에스타스는 히무라의 기대를 맞추지 못하고 데뷔해버렸다.

많은 사정이 있었으나, 히무라는 이에 대해선 말을 줄였다.

“소녀연맹과 협업하면서…… 좀 듣기 뭐하시겠지만. 그 노하우를 흡수하기 전까지 에스타스는 휴식기에 들어갔습니다.”

“……그렇네요. 그걸 외부에서 바라보면 곱게 보이지만은 않겠죠.”

외국의 아이돌을 매니지먼트하기 위해 에스타스를 버린 것처럼 보일 터다. 진실을 말해봐도 몇 명이나 믿겠는가.

즉, 히무라는 웨벡스의 식구인 에스타스를 버리고 한국 아이돌을 택한 배신자처럼 되었단 것이다.

“제 부하들은 물론이고, 웨벡스의 대부분이 눈총을 주고 있습니다. 눈총, 이라고 하면 너무 부드러울까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적대심을 품고 있습니다.”

수백 명의 웨벡스 소속 아티스트, 게닌(예능인), 모델, 성우 등.

또한 웨벡스의 직원들과 중역들.

모두가 히무라에게 적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인식은 그대로…….

“소녀연맹에게 향하고 있는 겁니까?”

“예. 덕분에 소녀연맹을 매니지먼트하는 데 많은 차질이 생겼습니다. 부도칸(무도관) 데뷔 쇼케이스가 결정되자 반발이 절정에 이르렀죠. 이대로 간다면, 소녀연맹을 돕겠다는 약속 또한 성공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럼 대체…….”

어떡하라는 건가?

그에 히무라가 날카로운 기세를 담아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의 기획서였다.

“‘뉴아사’라는 프로그램입니다. 20년이 넘은 장수 프로그램이죠. 시청률도 상당하고, 방영되면 연예란을 장식하는 일이 흔합니다. 출연하기만 하면 화제성이 보장되죠.”

성필은 그가 내민 기획서를 읽고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당혹을 넘어서 분노를 느꼈다.

“이거, 경연 프로그램이잖습니까.”

“그렇습니다. 무의미한 수사는 없애겠습니다. 박 이사님, 부탁드립니다. 소녀연맹을 ‘뉴아사’에 출연시켜주십시오. 그리고.”

일본의 누구도 소녀연맹을 욕하지 못할 만큼의 실력을, 세상에게 보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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