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280화 (280/760)

280화

“저…….”

손혜빈은 ‘말씀드리기 굉장히 송구하지만 그래도 해야겠다’는 태도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실장님이 저희를 굉장히 존중하고 있단 건 이해하겠어요.”

손혜빈은 과거 일본에서 활동했던 적이 있다. 한국에서 아티스트로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아시아에서도 인기가 있단 얘기가 들려오고, 그리고 또 갑자기 해외 진출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 첫 번째 타깃이 일본의 무도관 콘서트였다. 그때도 손혜빈은 믿기지가 않았었다.

과거의 손혜빈마저도 쉽사리 성공을 장담치 못했던 게 무도관 콘서트인데, 소녀연맹이?

“그런데 무도관, 아니, 부도칸을 쇼케이스로 잡은 건 너무 과감한 매니지먼트 전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옳은 말씀입니다. 소녀연맹은 그만한 크기의 콘서트를 소화할 덩치가 아니죠.]

모두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다.

히무라는 그걸 알고 있는데 어째서?

[쇼케이스의 목적은 홍보. 저희는 그걸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겁니다. 당연히, ‘소녀연맹 무도관 쇼케이스, 티켓 판매는 전체의 10%’ 같은 뉴스를 띄우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히무라와 웨벡스는 무도관을 전석 매진시킬 방법이 있었다.

[웨벡스 소속 아티스트들과의 합동 콘서트입니다.]

“……!”

[아니, 합동 콘서트는 아니죠. 어디까지나 소녀연맹이 메인이니까요. 그들은 게스트입니다. 소녀연맹의 데뷔를 축하하고 알리기 위한 게스트.]

성필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클래식한 프로모션 전략을 쓰시네.’

데뷔한 아티스트를 홍보하기 위해 다른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를 부르는 건 오래된 수법이다.

특히 가수들의 해외 진출에 주로 쓴다. 이름값 있는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빌려서 티켓을 팔고, 진정으로 홍보하고픈 신인의 무대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른바 끼워 팔기.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웨벡스의 이름값 있는 아티스트를 불러 모아 홍보하면, 그 안에서 소녀연맹의 이름이 퍼질 수밖에 없어.’

웨벡스의 팬들이 알아서 홍보를 해줄 것이다.

소녀연맹이 누군데? 어디서 온 애들인데? 어떤 곡이 있는데? 대체 누구기에, 이런 아티스트들이랑 같은 무대에 서는 거야?

꼬리에 꼬리를 문 의문들은, 소녀연맹이란 이름을 일본 대중음악계에 확실히 각인시킬 것이다.

‘확실히, 소녀연맹을 소속 아티스트로 대우해주겠단 약속은 빈말이 아니었어.’

소녀연맹이 웨벡스에게 받는 신뢰를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제안이다.

가로 엔터는 웨벡스의 쇼케이스 계획을 얼마간 들은 뒤, 추후 협의하자는 말을 끝으로 화상 회의를 종료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기회를 얻었네…….”

손혜빈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탈력감이 몰려왔다. 동시에 기대감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우리 애들 퍼포먼스 수준이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웨벡스 소속 아티스트들 바구니에서도 잘 이겨내겠지.”

히무라가 말하길, 쇼케이스에 서는 이들 중에는 아이돌이 없다고 했다. 히무라도 가로 엔터가 소녀연맹의 아티스트십을 강조한단 전략을 알고 있는 것이다.

소녀연맹과 비교될 상대는 일본의 아이돌이 아니라, 일본의 아티스트들이다.

일본은 아이돌과 아티스트를 엄격히 가른다. 당연히 아티스트를 보는 시선이 더욱 엄격하다.

소녀연맹이 아티스트의 자리를 노린다면, 절대 빈약한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된다.

퍼포먼스로 관객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그녀들이 아티스트라 불리기 모자람이 없단 것을.

* * *

“설하야, 너흰 6월에 일본으로 가서 활동 준비할 거야.”

성필이 백설하만 따로 응접실로 불렀다.

이런 경우엔 보통 팀과 관련된 중요한 사항이 나오곤 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놓긴 했었다.

그런데 역시나, 일본 데뷔 이야기를 들으니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익숙한 나라를 벗어나서 타국에서 세 달 동안 있어야 해. 애들한테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있으라고 전해줘.”

“네, 넵.”

일본으로, 잘 모르는 나라로 떠난다.

아직 일본으로 가기까지 한 달도 더 남았건만, 백설하는 당장 내일 떠나는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려왔다.

진정하려고 심호흡을 하고 있자니 문득 리카가 떠올랐다.

‘리카가 한국으로 올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아니, 현재의 백설하보다 훨씬 더 떨렸을 것이다. 리카가 한국으로 올 때, 그녀는 고작 16살에 불과했고 아는 사람이라곤 없었으니까.

백설하보다 더한 불안과 두려움을 지니고 한국에서 계속 살아왔을 것이다.

“리카는…… 대단하네요. 하하, 저는 어른인데도 이렇게 떨리는데. 리카는…….”

“그렇지.”

성필이 어딘가 아련하지만 따뜻한 웃음을 보였다.

백설하는 성필이 리카를 대할 때마다, 심지어 리카를 생각만 해도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워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러했다.

“리카도 많이 힘들었을 거야. 그렇지만 홀로 잘 견뎌줬지. 너무 대견해. 대견하고, 안타깝지.”

그래서 성필은 리카에게 그토록 친근하고 애정 어리게 대해주는 것일까.

“리카는 요즘 어때?”

“리카요? 어…… 옛날보다 더 들뜬 거 같아요.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일본 가는 게 기대돼서?”

“아마 그럴 거예요.”

아니면 어바이비에서 옷을 잔뜩 가져와서 그렇거나.

리카는 매일 집에서 홀로 패션쇼를 연다. 그리고 그 결과를 SNS에 보고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어바이비에게서 받은 광고 계약을 과하게 수행하는 것이라 눈살이 찌푸려질 만도 하건만, 팬들은 그녀를 이해했다.

리카가 옷을 잔뜩 받았다면서, 거의 생일 케이크를 수십 개 받은 유치원생처럼 행복한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뷔라이브로 두 시간 동안이나.

덕분에 가로 엔터는 애들 옷도 안 챙겨줬냐면서 소소한 비난을 얻어맞았다.

“아름이는?”

“아름이는 별로 일본 얘기는 안 해요. 다른 일이랑 똑같이 생각하나 봐요.”

하긴, 신아름은 전생에서도 해외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다른 사람들이 해외여행 사진을 보여주거나 하면 ‘여행 갈 거면 한국에 가지 왜 굳이 해외로 가?’라곤 했었으니까.

“맞다. 아름이는 가끔 케이어스가 일본 데뷔했던 때 자료 찾아보곤 해요.”

“아…….”

숙명의 라이벌이구나.

성필은 어깨에 또 다른 무거운 짐이 지워졌다. 한국에서도 계속 그를 따라다녔던 목표 의식, 케이어스를 이기는 것.

그 짐이 일본에서도 성필을 따라다니겠지.

“아라는?”

“아라가 진짜 기대 많이 해요. 일본에 가면 유명한 댄스 스튜디오들 투어하고 싶대요. 안무가나 댄서들도 많이 만나고요.”

“아라답다.”

어쩌면 조아라에겐 일본 활동이 새로운 성장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시간만 나면 학원에 갈 정도이니, 도쿄는 그녀에게 파티장이나 다름없겠지.

댄스 스튜디오 투어를 하겠다는 말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하양이는 어때?”

“하하…….”

백설하는 말을 아끼려는 듯 웃음만 보였다. 이미 성필도 알고 있지 않냐는 뜻이다.

“요즘도 많이 압박받아?”

“네.”

장하양은 여전히 ‘데뷔’란 단어에 서린 트라우마를 떨쳐내지 못했다.

‘아니’로 데뷔할 때는 그녀가 직접 퍼포먼스를 창조하여 위기를 넘겼었지만, 마냥 좋은 결과만은 아니었다.

결국엔 백민정의 안무를 소화하지 못함으로써 그녀의 실력이 부족하단 것을 드러냈으니까.

멤버들이 장하양을 옹호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주어진 과제를 실패한 게 됐었을 것이다.

“이번엔 완벽하고 싶대요. 그으, 그런데 하양이는 잘할 거예요.”

이미 마스터했던 ‘아니’와 ‘롱 포’의 퍼포먼스는 물론이고, ‘팅글’ 또한 완성에 접어들었다.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장하양은 트라우마를 완벽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하양이는 위로보다 스스로 경험해서 두려움을 떨쳐내야겠지.’

그리고, 장하양이 자기 자신에게 더욱 큰 믿음을 가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설하 너는?”

예상대로 백설하 자신의 차례가 왔다. 그녀는 고민하는 듯 눈동자를 돌렸다가, 살포시 웃기도 하고, 또 말을 끌기도 하다가.

“모르겠어요.”

그리 소심히 답했다.

“음, 일본에도 저희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구……. 또 인기가 있을 거라는 게…… 잘 모르겠어요.”

장하양처럼 두렵기도 하고.

리카처럼 설레기도 하며.

조아라처럼 기대되기도 한다.

동시에 신아름처럼 딱히 걱정은 없고.

백설하는 복합적이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길, 그렇기에 무어라 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 데뷔한단 거랑은 느낌이 다르지?”

성필은 다 이해한다는 투였다.

“한국에서 살았으니까. 한국에선 아이돌로 데뷔한단 게 어떤 건지 알았잖아.”

하지만 일본은 백설하에게 미지의 땅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또 음식을 무얼 먹고 놀 때는 무엇을 하는지.

백설하는 대강만 알 뿐, 그들이 실재하는 인간이라고 상상할 수가 없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일본이란 안개처럼 흐릿한 것이다.

“감이 잘 안 잡히지?”

“네, 음, 그런 편인 거 같아요…….”

“설하는 목표가 없구나.”

“네……? 아, 어, 목표, 네, 있어야겠네요. 목표, 목표…….”

성필은 망설이는 백설하를 위해 대신 목표를 만들어주었다.

“설하는 아이돌로서의 목표가 뭐야? 한국에서 목표.”

“한국…… 이면, 음악 시상식 대상이랑 음방 석권 정도…….”

“그럼 일본에서의 목표는 이거 어때? 돔 투어.”

돔이란 관객 수 3만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을 뜻한다. 일본 아티스트들이 노리는 최종적인 목적지이자, 톱의 위치에 올랐다는 자격의 증명이기도 하다.

“아, 돔 투어. 하면 좋겠네요.”

“‘하면 좋겠네요’가 아니야. 한다!”

“네?!”

“설하는 ‘최고의 아이돌’도 ‘하면 좋겠네요’란 마음으로 하고 있어?”

“아니에요 정말 진짜 되고 싶어요!”

“그럼 돔 투어도 해야 해.”

“네, 네…….”

“돔 투어로 관객 100만 명 이상 모으기다.”

“네에?!”

관객 100만 명? 그게 가능한 수치인가?

“일본에선 1년에 한두 번,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아티스트나 아이돌이 나와.”

“그, 그럼 저희는…….”

“일본에서도 톱이 돼야겠지. 어때, 이룰 만한 목표야?”

이룰 만한 목표냐고? 솔직히 이룰 수 있으리란 자그마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관객을 100만 명 동원하면 단순 계산한 매출이 1,000억 원이다. 소녀연맹이 1,000억을 번다고?

“농담이야.”

“아, 농담이구나…….”

“100만 명은 너무 많지. 90만 명으로 하자.”

“그것도 많거든요?!”

“그래, 그럼 다른 목표로 바꿀까? 월간 오리콘 차트 1위 같은 거?”

‘네, 그게 더 현실성 있죠’라고 답하려던 백설하는, 자기도 왜인지 모를 이유로 입을 다물었다.

왠지 그렇게 말해선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녀는 ‘최고의 아이돌’을 목표로 하고 있잖은가.

몇 년 내에 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지금 목표를 정하고 호기롭게 외쳐보자는 것뿐이다.

‘그것뿐인데도, 나는 자신 있게 말하지도 못하는 거야?’

침묵이 길어졌다. 그 침묵 끝에, 백설하는 무릎 위에 올려둔 주먹을 성필에게로 내밀었다.

“돔 투어, 할게요. 5년 이내에!”

“잘 말했어. 그 정도는 돼야 프로듀서도 흥이 나지.”

“네!”

그렇게, 백설하는 허공에 주먹을 계속 들고 있었다. 성필이 그것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

“왜 주먹 안 맞춰 주세요?!”

“어? 맞춰달란 거였어?”

“에리카랑만 한단 거예요? 에리카와의 비밀 사인이란 거냐구요! 저한테는 못 해주겠단 거죠?!”

“뭐야 너 어떻게 알아?!”

“에리카한테 들었어요!”

허공에 뜬 백설하의 주먹이 떨려왔다. 계속 맞춰 주지 않는다면, 저대로 성필의 가슴을 향해 날아올지도 모른다.

성필은 떨떠름하게 그녀와 주먹을 맞추었다.

“이게 뭐라고…….”

“다시요.”

“어, 다시?”

“성의가 없었어요.”

성필은 애정과 기쁨을 듬뿍 담아 그녀와 주먹을 맞추었다.

“이제 됐어?”

“……귀찮으세요? 에리카랑 할 때는 좋아 죽으려고 하셨으면서.”

“날 뭘로 보는 거야 대체.”

물론 성필은 백설하의 심정을 이해한다. 담당 프로듀서가 다른 그룹의 멤버와 특별한 사인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복잡미묘한 기분이겠지.

교사가 담당 반의 반장보다 다른 반의 반장과 교감이 더 깊었을 때의 기분일까.

“아무튼, 약속한 거다? 5년 이내에 돔 투어 하기로.”

“못 지키면 벌칙 있어요?”

“벌칙? 글쎄, 계약 7년 자동 연장 어때? 수익 비율은 그대로.”

“완전 악덕 기업이잖아요?!”

“대신 상도 있어.”

“……상, 이면, 어떤 거요?”

계약 7년 자동 연장과 비슷한 급의 상이라면 보통은 아닐 것이다.

“뭐 원하는 거 있어? 회사 차원에서 가능한 한 들어줄게.”

돔 투어가 가능한 아티스트라면, 회사는 바닥을 설설 기어서라도 잡아야만 한다.

백설하가 어떤 요구를 해오더라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가로 엔터는 받아들여야만 하리라.

“……음.”

의외로 백설하는 굉장히 신중했다. 한 10초 정도 고민했을까, 그녀가 답했다.

“회사 차원이면…… 어느 수준까지 해주실 수 있어요?”

“뭐, 웬만한 건 다 해주지. 뭐 요청하려는 건데?”

“웬만한 게 어디까진데요?”

“설하 너 좀 무섭다…….”

“한계를 정해주세요.”

진짜 무섭다.

“인권이랑 대한민국 법률, 회사의 성장성과 이미지에 어긋나지 않는 이상 다 들어주지. 자, 됐어? 뭐 부탁할 거야?”

“나중에 말씀드려도 돼요?”

“그럼, 되지.”

백설하가 이 업계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 자신의 위상을 파악하고 그럴듯한 요구를 내걸 수 있게 되겠지.

성필은 그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릴 것이다.

“돔 투어까지 하는 아티스트님의 부탁이잖아. 언제까지고 기다려야지.”

“못 미더워요. 계약서 써주세요.”

“……나 너희들한테 이런 이미지야? 약속도 잘 안 지키는 사람?”

“이사님, 하양이한테 음방 1위 하면 뭐 해주기로 했는지 기억하세요?”

성필은 메모장에 계약서를 쓰면서 백설하의 말을 곱씹었다.

장하양과 한 음방 1위 공약…….

‘전혀 기억 안 나.’

애초에 장하양에게 무언가 약속을 해주었던가?

‘최고의 아이돌이 됐을 때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던 건 기억 나는데.’

음방 1위라고?

백설하는 성필에게 계약서를 받으면서, ‘역시 그렇구나’하는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이거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요. 하양이가 말하지 말래서요.”

“응, 꼭 말해줘.”

성필은 약속을 물처럼 흘리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만약 입 밖으로 약속을 꺼냈다면, 심지어 그 상대방이 장하양이라면, 죽어도 지키고 싶다.

“음방 1위 하면, 하양이 포옹해주고 목말 태운 뒤에 회사 한 바퀴도 도시기로 했어요.”

“……뭐라고? 미안, 잘, 못 들었어. 뭐라고?”

“하양이 포옹해주고 목말 태운 뒤에 회사 한 바퀴도 도시기로 했다구요.”

성필은 백설하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나 의심해야만 했다. 하지만 단박에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왠지 자신이라면 정말 그런 약속을 했을 것만 같아서.

“그, 그거 언제 일이야?”

“하양이 말로는…… 2년 반 정도 전이래요. 거의 3년 전이요. 잊으신 거 같아서 말씀은 안 드렸대요.”

성필이 무릎 위에 손을 가지런히 올렸다. 잠시 부유하는 먼지만을 응시하던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벌떡 일어났다.

“마이루(간다).”

약속은 지키는 남자, 박성필.

약속 이행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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