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축제요? 제가요?”
“응, 대신 멤버들이랑 다 같이 가는 건 안 돼. 변장도 철저해야 하고.”
학교 축제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린다.
그 중앙에 아이돌이 나타나면 금세 사람이 몰려서 빠져나가지도 못할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첫째, 멤버들이 같이 다녀선 안 된다. 그리고 둘째, 누구도 알아볼 수 없을 만한 변장이 필요하다.
“선글라스랑 마스크 쓰면 되는 거 아닌가요?”
“리카, 사람들도 눈치란 게 있어. 그런 이상한 몰골로 돌아다니면 연예인이란 걸 알지. 정체를 알 때까지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을 거야.”
“그럼 어떡하나요?”
“평소의 너랑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야지. 선글라스를 쓰긴 해야 하고.”
“전혀 다른 분위기…….”
리카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곧 엄청난 고민에 직면했다.
“아타시(저)는 평소에 어떻게 보이나요?”
“좀 유아틱하지.”
“저는 어른이라구요!”
“성격 말하는 거 아니야. 평상시 패션도 캐주얼하잖아.”
리카는 회사에서 주는 용돈과 본가에서 송금하는 소액의 금전을 야금야금 모아서 취미 생활을 영유한다.
그중에서 의류는 리카의 우선순위에서 꽤 낮은 축에 속한다. 활동기에는 옷 전부를 회사에서 챙겨주는 데다가, 사적으로 밖에 나갈 일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바이비에서 준 옷들도 간편한 것만 입잖아.”
“캐주얼…… 그럼 캐주얼하지 않으면 되겠네요!”
“응. 그러니까 축제 갈 때는 평소의 너랑은 다르게 입어야 해. 아예 아우라가 달라지게.”
“축제 때까지 용돈을 아껴야겠네요! 그런데, 저는 옷을 사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혼자 가면 또 캐주얼한 옷만 살 거예요!”
“그 말은?”
“쇼핑!”
“그래, 아름이랑 다녀와.”
“에엑?! 쇼핑 같이 가는 흐름 아니었나요!”
“내가?”
“하이(네)!”
“뭐, 그러자.”
“얏타(해냈다)! 지갑이 생겼어요!”
“나 보고 하는 말이냐?!”
하지만, 두 사람이 같이 쇼핑을 가는 일은 없었다. 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 * *
소녀연맹이 어바이비 한국 공식 홍보 모델로 선정되었다. 사실상 명품 브랜드의 앰배서더와 같은 위치로, 그에 따라 갖가지 혜택이 주어질 예정이었다.
물론, 소녀연맹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홍보팀 강지혜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프레젠테이션을 이어갔다.
“최소 1년간 어바이비의 한국 텔레비전 광고에 소녀연맹이 지속적으로 출연할 수 있습니다. S/S, F/W 시즌마다요. 또한 공식 홍보 모델로서 어바이비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강지혜는 소녀연맹이 어바이비의 홍보 모델이 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과 단점을 전부 나열했다.
그녀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나머지는 이사진과 사장의 판단이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이사진들은 짧은 회의를 진행했다. 길게 갈 필요도 없었다. 다들 받아들이는 게 훨씬 낫다는 입장이었으니까.
“아까 지혜 씨가 설명한 대로, 어바이비는 ‘앰배서더’를 두고 있어요. 그러니까 ‘홍보 모델’은 앰배서더보다 급이 낮은 거죠.”
하지만 어바이비는 특수성이 있다.
“인간은 어바이비의 앰배서더가 될 수 없어요.”
어바이비가 앰배서더로 두는 건 가상 캐릭터들뿐이다.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캐릭터가 그 대상이며, 지금까진 대부분이 일본의 만화나 게임 캐릭터들이었다.
“사실상 홍보 모델이 소녀연맹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인 거죠.”
“뭐어, 볼 것도 없네.”
그렇게 소녀연맹은 어바이비의 공식 홍보 모델이 되었다.
그에 따라, 어바이비 한국 총괄 매니저 하시모토는 TV 광고 촬영에 앞서 멤버들을 어느 장소로 초대했다.
인천의 외곽에 존재하는 어바이비 소유의 의류 창고였다.
“창고라길래 약간 허름할 줄 알았는데.”
성필과 동행한 이유이가 무의식적으로 탄성을 흘렸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건 창고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또한 모던한 디자인의 정사각형 건물이었다.
애초에 정확한 정사각형의 건물이란 게 존재하기 힘들다. 장방형이 훨씬 실용적이니 말이다.
“‘모든 게 디자인이다’란 게 회장님의 철학입니다. 창고조차도 말입니다.”
하시모토는 창고 관리 직원과 잠깐 대화한 뒤, 가로 엔터의 사람들을 창고 안쪽으로 안내했다.
창고 건물 겉면은 회색이었지만, 안쪽으로 들어오니 눈이 부실 만큼 깨끗한 흰색이 사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흰색의 복도가 먼 안쪽으로 이어졌다.
마치 실험실로 들어가기 직전의 살균실과 같은 느낌이었다.
“박 이사님,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합니다. 소녀연맹 덕에 한국의 어바이비가 활로를 찾아냈으니까요. 몇 번이고 감사해도 모자랄 겁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고맙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필은 긴 복도를 걷는 동안 하시모토와 대화했다.
오늘 이곳에 소녀연맹이 온 이유는, 그녀들이 어바이비의 협찬 제품들을 받기 위해서이다.
큰일은 아닌지라 매니저팀과 이유이만 보내려 했으나, 한국 총괄 매니저인 하시모토가 직접 온다기에 성필도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왜 굳이 직접 왔나 싶었는데.’
하시모토의 목소리에 담긴 진실된 감사와 뿌듯함을 듣자하니, 성필은 그의 의중이 짐작됐다.
그에게 오늘은 한국 어바이비의 새 출발을 알리는 기념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어바이비를 살려낸 공신인 소녀연맹을 초대하고 싶었겠지.
직접 그녀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던 것이다.
“그러니 이건 선물…….”
하시모토가 직원을 시켜 창고문을 열게 했다. 철로 만들어진 미닫이문이 소음도 내지 않고 천천히, 장소의 무게감을 상징하는 듯 우아하게 열려갔다.
“아니, 선물이 아니죠. 소녀연맹분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겁니다. 이 모습을 제가 직접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보십시오.”
문이 모두 열리자 하시모토가 앞에서 비켜섰다. 그러자 펼쳐진 건 십수 미터가 될 법한 높은 천장, 끝마저 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기다란 방이었다.
눈에 닿는 모든 곳에 2층 높이의 의류 선반이 도서관의 책꽂이처럼 자리했다.
옷의 향연이다.
“어바이비 공식 모델로서, 소녀연맹은 이 안의 모든 옷을 협찬받을 수 있습니다. 말은 협찬이지만, 손에 닿는 대로 가져가시면 됩니다.”
멤버들은 황홀하게 하시모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각적으로는 창고와 옷의 규모에 압도당했다.
하시모토는 가로 엔터의 사람들에게 코드표를 하나씩 주었다.
“코드별로 옷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코드는 보시다시피 남성복, 여성복, 유니섹스, 그리고 옷의 종류별로 부여되어 찾기 쉽도록 해두었습니다.”
“이, 이걸 전부, 원하는 만큼, 가져가도 된다구요?”
신아름은 흥분을 숨기기 위해 목소리를 일부러 깔았지만, 떨림 때문에 감정을 숨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예. 어바이비가 여러분께 원하는 건 하나입니다. 계약서에 상세히 명시되어있긴 하지만,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입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저희 옷을 입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옷을 입고 SNS나 방송에 노출하는 것. 그로써 모든 옷이 소녀연맹의 것이 될 수 있다.
멤버들은 성필을 바라보며 ‘가도 돼요?’라는 눈빛을 보였다. 먹이를 기다리는 강아지와 같은 모습에, 성필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멤버들이 홀린 것처럼 여기저기로 떠나갔다. 이유이는 뿔뿔이 흩어지는 멤버들을 보면서 고민하더니, 항상 비슷한 옷만 입는 장하양을 돕기 위해 그녀를 따라갔다.
“유이 씨는 잘 지내십니까?”
“네?”
하시모토 본인도 뜬금없는 질문이라 여겼는지, 그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 버릇 같은 미소를 보였다.
“일본의 동료에게 들었습니다. 유이 씨가 히다카 님께 직접 불려가서 디자이너 팀 영입 제의를 받았는데도 거절했단 걸 말입니다. 듣고도 믿기지가 않더군요.”
“저도요. 잘 지내시는 거 같긴 해요. 앞으론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불명확한 답이군요.”
“제가 먼저 유이 씨한테 가로 엔터로 오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긴 했는데요. 솔직히 잘 모르겠거든요.”
디자이너의 꿈을 가진 이유이가 어째서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 팀에 가지 않고 가로 엔터로 왔는지.
성필은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의류 디자이너와 아이돌 비주얼 디자이너 중 어느 쪽이 유이 씨의 적성에 더 맞을지는 저도 모르죠.”
언젠가 이유이가 ‘후쿠요 히다카’에 가지 않은 걸 후회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소녀연맹을 맡는 동안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만하게 들리시겠지만, 유이 씨는 최고의 아이돌이 탄생하는 역사 속에 있을 테니까요. 인류의 몇 명이나 이런 행운을 거머쥘 수 있을까요.”
자신이 역사 속에 살고 있다.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확신을 가진 인간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유이 씨도 그런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까?”
“어느 정도는요.”
그리고 앞으로도 확신을 더 해갈 것이다.
성필은 여태껏 수많은 사람에게 성공의 확신을 주어왔다. 누구든 소녀연맹을 곁에서 지켜봐 왔다면 ‘최고의 아이돌’이란 꿈에 감화되리라.
성필이 프로듀서로서 만들어낸 결과가 허무맹랑하고 이상으로 덧칠된 꿈을 정당화한다.
“소녀연맹의 일본 진출도 그런 확신과 꿈으로 진행하는 거군요.”
성필은 감성적인 대화가 만들어낸 분위기에서 빠져나왔다.
“어떻게…….”
“일본 쪽에서 들었습니다.”
일본 쪽에서 들었다?
그렇다면 웨벡스 사무소가 어바이비에 접촉한 것일까? 웨벡스는 소녀연맹의 일본 프로모션을 준비하고 있으니, 어바이비와 손을 잡더라도 이상하게 여길 건 아니다.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소녀연맹이 한국 어바이비 공식 모델이 됐으니, 일본에서 받는 대우도 좋아질 겁니다. 소녀연맹에겐 호재겠군요.”
“호재……. 어떤 식으로 일본에서 프로모션이 가능할까요?”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본사 사람들이 판단하겠죠.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하시모토는 시간을 확인한 후 성필을 향해 예를 차렸다.
“일이 끝나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매니저님.”
“예.”
“소녀연맹이 어바이비 공식 모델이 된 거, 매니저님이 힘써 주신 거죠?”
“그렇게 되겠죠. 앰배서더나 홍보 모델 제안은 매니저급에게 권한이 있으니까요.”
“모델 선정을 급하게 진행한 것도 저희를 배려하신 겁니까?”
소녀연맹에게 공식 모델 제안이 온 건 너무 급작스러웠다. 한국 어바이비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예. 소녀연맹의 일본 활동에 도움이 되길 바랐습니다.”
하시모토는 ‘대답이 됐나’란 뜻을 담아 눈웃음을 지었다. 성필은 그에게 목례로 감사를 표했다.
그가 떠나가고 나서, 성필은 드디어 온전히 하시모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매니저님은 소녀연맹이 일본 데뷔 전에 한국 공식 모델로 선정되길 바랐겠지.’
그래야 소녀연맹이 일본에 유명세를 얻고 나서, 그 공을 하시모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S/S(Spring/Summer) 컬렉션 시즌 도중에 공식 모델을 선정하는 건, 어바이비 입장에서도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시모토 매니저님 입장에서도 소녀연맹은 유명해져야만 해. 그리고 매니저님이 일본에서 소녀연맹이 성공하는 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시기는…….’
웨벡스와 가로 엔터가 소녀연맹의 일본 데뷔를 기획하고 있는 바로 지금이다.
하시모토는 일본 쪽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어바이비가 소녀연맹을 돕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소녀연맹이 성공하면, 하시모토는 매출에 급급하여 한국 아이돌을 모델로 썼단 타이틀을 얻는 게 아니라. 혜안을 지니고 소녀연맹이란 모델을 발굴한 매니저가 되는 것이다.
‘소녀연맹이 성공하면 할수록 매니저님한테도 이득이 되는 거니까.’
과연 하시모토가 어디까지 힘을 쓸 수 있을까……. 홀로 머리를 굴리던 성필은, 저 멀리서 리카가 뛰어오는 것을 보곤 생각을 멈추었다.
“이사님 이거 보세요!”
리카가 가져온 옷은 봄 시즌에 맞춰진 듯한 드레스였다. 굳이 재질이나 옷의 두께를 확인하지 않고도 봄에 입기 위한 옷이란 게 느껴졌다.
왜냐면.
“치마 끝에 꽃이 달렸어요! 엄청 예뻐요!”
상의는 어깨와 팔이 훤히 드러났고, 치마 쪽은 웨딩드레스를 연상시키는 백색이었다. 그리고 치마 하단부에 분홍 꽃이 아름드리 달려 있었다.
“와, 되게 화려하네. 봄의 여신이 입을 거 같아.”
“흐흥, 저한테 어울리겠죠?”
“아니.”
“에엑?! 봄의 여신이 입을 거 같다면서요!”
“본인을 여신에 빗대는 사람한테 난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리카가 이걸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면 한눈에 주목을 모을 게 틀림없다.
어깨와 팔이 훤히 노출되었으니 과감한 디자인적 요소만으로도 눈이 쏠리겠지.
“이거 입고 싶어?”
“하이(네)!”
“이건 가드닝 파티 같은 데서나 입어. 아무리 봐도 평상복이 아니야.”
“에에, 직원분이 이거 작년 봄 시즌 인기 상품이라고 설명해줬단 말이에요!”
“대체 어디서 인기 있던 건데?”
혹시 일본? 일본에선 이런 옷을 입은 여자들이 엄청 많은 건가? 정말 과감한 패션의 나라다.
“아하, 알겠어요! 이사님은 아타시(제)가 너무 예뻐지는 게 싫은 거군요! 이해해요!”
“뭐라는 건데.”
“남자들은 여자친구가 너무 예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들었어요!”
“진짜 뭐라는 거냐고.”
“그럼 눈에 덜 띄는 방법도 있어요! 직원분이 이것도 추천해주셨어요!”
그러고서 리카가 꺼낸 건 어깨와 팔을 덮는 흰색 망사 숄이었다.
“이걸로 저도 패션 리더예요!”
진짜 마음에 드나 보네. 아무리 봐도 과한 거 같은데.
성필은 리카가 가져온 옷들의 가격을 확인했다.
380,000원과 119,000원이라. 비싼 것을 골랐다. 만약 리카가 어바이비 매장에 간다면 1층과 2층의 초저가, 저가형 매대만 어슬렁거렸을 텐데.
판을 깔아주니 바로 중고가(中高價) 상품들로 달려간 모양이다.
“입어 보고 올게요!”
“리카, 너무 눈에 띌 거라니…….”
리카는 성필의 말을 듣지도 않고 탈의실을 찾아 사라졌다.
‘내 말을 이렇게나 안 듣다니.’
성필은 패션 잡지 두 개를 매달 구독해서 정독한다. 물론 남성 패션 잡지이긴 하다만, 여성 패션을 보는 눈도 나름 있다고 본다.
‘리카한테 어울리진 않을 텐데.’
잠시 후.
“짜잔!”
“봄의 여신이다!”
성필은 당장 핸드폰을 꺼내 리카를 여러 각도에서 찍었다. 그는 과거 자신이 했던 발언을 원망할 만큼 리카에게 빠져버렸다.
리카는 성필의 칭찬에 기가 살았는지 빙글빙글 돌았다. 치맛자락이 펄럭이면서 그에 달린 꽃이 춤췄다.
“마음껏 감탄하고 저에게 찬사를 바치세요!”
“이건 ‘보그’랑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에 실어야 해애애애애!”
성필은 자기가 아는 패션 잡지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리카의 귀가 홍당무처럼 붉어질 때까지 찬양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둘 있었다.
조아라와 장하양이었다.
“난리 났다 난리 났어. 아저씨가 자꾸 저러니까 리카 기가 자꾸 사는 건데.”
장하양은 조아라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자신이 고른 옷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품에는 주로 어두운색의 옷이 안겨 있었다.
튀지 않고 언제나 무난히 입을 수 있는 옷들.
장하양은 자신이 고른 옷과 리카가 입은 옷을 비교해보았다.
“밝은 걸로 골라볼까.”
“이제 와서요?”
이유이는 색 배합과 컬러감에 대해 연설을 펼치면서, 장하양이 밝은 쪽 옷을 입도록 설득하려 했었다.
하지만 장하양은 튀고 싶지 않단 이유들로 거무튀튀한 옷만 골랐었다.
“응, 다시 보니까…….”
장하양은 ‘이제 그만 칭찬하세요, 아니 이건 칭찬이 아니라 놀리는 거잖아요! 이지메예요!’라면서 도망가는 리카와 그런 리카를 추적하는 성필을 계속 바라보았다.
“밝은 옷도 괜찮을 거 같아.”
* * *
소녀연맹의 일본 데뷔를 어떻게 일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 단순히 앨범을 발매하고 예능 등에 얼굴을 비추는 게 아닌, 상징적인 이벤트가 필요하다.
그에 손혜빈은 한국에서도 한 적 없던 데뷔 쇼케이스란 방법을 내놓았다.
“한국에선 음방에 나오는 거 자체가 데뷔를 상징하잖아요. 그래서 애들 데뷔 때는 홍보 효과도 확신 못 하고, 자금 사정도 있고 해서 스킵했었는데…….”
게다가 소녀연맹은 데뷔 전에 진행한 프로모션만으로도 기대감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 데뷔는 그보다 더 임팩트 있고 언론에 대대적인 홍보도 가능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데뷔 쇼케이스였다.
“그럼 어떻게, 기자 쇼케이스? 관객 쇼케이스? 아니면 둘 다 합쳐?”
이사진은 홍규헌의 질문에 마땅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쇼케이스를 하려면 일단 무대가 필요하다. 또한 관객을 몇 명이나 부를지도 생각해야 한다.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자면, 쇼케이스에 기자들만을 불러서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면서도 돈을 아껴야 하리라.
관객을 부른다더라도, 이미 소녀연맹의 팬인 사람들을 수십 명 정도 부르는 게 끝이겠지.
“천 명 이상 부르면 사실상 콘서트니까. 또, 수백 명 규모 소극장을 대관해도 몇 명이나 올지 모르니.”
괜히 큰 무대를 빌렸다가 객석이 텅텅 비면 손해만 입게 된다. 또한 그 사실이 알려져서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
모두가 동의할 만한 안이 나오지 않자, 홍규헌은 일단 웨벡스와 상의해보기로 했다.
정기 협의 시간 외에 연락이 오자 히무라는 의아한 티를 냈으나, 주제를 듣자마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데뷔 쇼케이스는 저희도 생각하고 있던 겁니다. 아니, 생각이 아니라 구체적인 기획 단계에 들어가기 전이었죠.]
예고 없이 회의를 요청했음에도, 화상에 나타난 그는 침착하고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장소 섭외나 규모를 미리 기획하셨습니까?”
[예. 구체화하면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지금 드릴 수 있는 답은 대략적인 것밖에 없습니다.]
“대략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히무라에게 질문하는 홍규헌에겐 기대하는 기색 같은 건 없었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런 태도일 뿐이었다.
다른 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웨벡스가 쇼케이스를 기획했다지만 규모는 크진 않을 터다.
애초에 쇼케이스란 거 자체가 홍보가 목적이니,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소규모의 기자 쇼케이스 정도가 합리적일 것이다.
더 나아가면 인터넷 실시간 중계 정도의 방법이 있겠지.
하지만.
[부도칸(무도관)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히무라의 선언에, 홍규헌과 이사진들은 뇌가 진탕 헤집어질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박 이사님, 부도칸이 어딥니까?”
한구인이 소외감을 느끼며, 히무라에게 들키지 않도록 화면 밖에서 조용히 질문했다.
성필은 부도칸의 규모를 설명하려다가, 그것보다 더 확실한 답이 있단 것을 떠올리곤 빠르게 노트에 메모했다.
흩날리는 듯한 필체로 쓰인 문장을 본 한구인은 놀라움을 감출 생각도 못 했다.
[비틀즈가 공연한 곳]
한구인이 정말이냐는 듯 눈빛으로 채근했다. 성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도칸에서 쇼케이스?’
최대 좌석 수 14,000석.
비틀즈와 수많은 해외의 팝스타들, 일본의 메이저 아티스트들이 공연한 장소.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의 공연계에서도 커다란 상징성을 지닌 장소, 인데…….
‘우리 애들이 어떻게……?’
소녀연맹은 한국에서 단독 콘서트를 한다 해도 10,000석을 채울 수 없다고 확신할 수준인데.
14,000석 규모의 무도관에서. 콘서트도 아니고 쇼케이스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