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비주얼 팀.
비주얼(Visual)이란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아티스트의 ‘보이는 것’을 관리하는 부서이다.
작게는 의상이나 헤어와 같은 스타일링부터 크게는 뮤직비디오와 앨범 재킷, 그리고 거시적으로는 아티스트의 전체적인 톤앤매너(Tone&Manner)를 관리한다.
‘나를 비주얼 팀으로……?’
중소 엔터사면 몰라도, 대형기획사에는 비주얼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부서가 존재한다.
스타일링이나 앨범 아트 같은 건 필요할 때마다 외주를 주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여력이 부족한 기획사는 대부분을 외주로 해결하긴 한다. 하지만 결과물은 전문적 부서가 있는 대형기획사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전체를 관장하는 컨트롤 타워가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니까.
‘내가 소녀연맹의…….’
비주얼 담당자가 된다?
그것은 즉, 소녀연맹의 태도와 이미지를 일관된 방향으로 결정할 권한이 생김을 뜻한다.
“가로 엔터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주먹구구식으로 해왔던 경향이 커요.”
성필은 본격적으로 이유이를 설득할 생각인 듯, 술에 취한 상태로 보였던 가벼운 태도를 전부 집어던졌다.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스타일링이랑 아트 쪽으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거든요. 소녀연맹의 비주얼이 일관될 수 있던 건 혜빈 누나 덕이죠.”
손혜빈은 SMS 엔터의 디자인 팀에서 다년간 근무했었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서 소녀연맹 앨범 패키지 디자인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또한 다른 디자인 파트도 그녀가 지휘했지만, 결과물이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의상, 헤어, 메이크업, 뮤비, 태도와 말투, 무대매너, 행동, 액세서리, 패키지 아트, SNS와 아이튜브 채널, 비주얼 디렉팅이 필요한 분야만 해도 열 손가락을 넘어가요.”
손혜빈이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디자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고선 맡기 어려운 파트가 많았다.
“아웃소싱을 비전문가가 통제하는 것도 한계가 있거든요.”
의상으로 따진다면, 기획사의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선 레퍼런스를 수백 수천 개는 찾아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로 엔터에는 그만한 여력이 없다.
이사진이 충분히 숙고하고 회의하며 합의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리기에, 몇몇 요소는 적당히 타협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녀연맹이란 이미지 브랜드는 사상누각이죠. 어쩌다 보니까 높게 쌓아 올려진 거예요. 이제 그걸 계획적으로 쌓고 보완할 사람이, 부서가 필요해요.”
그리고 성필은 그것을 이유이에게 맡기고 싶다. 그녀를 주축으로 비주얼 팀을 결성하면, 디자인이나 파인아트 전공자를 채용하여 소녀연맹의 이미지를 제고할 것이다.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던 소녀연맹의 톤앤매너를 다듬어, 완벽히 정제된 브랜드로 완성시켜야만 한다.
중소기획사가 아이돌 그룹을 띄우더라도 후반기엔 무너지는 경우가 많은 건, 비주얼과 A&R 컨트롤 타워 형성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가로 엔터도 그리될 순 없고, 성필이 그리 놔두지도 않을 것이다.
“유이 씨, 디자이너가 꿈이라고 하셨죠. 혹시 옷 대신 사람을, 아이돌을 디자인할 생각은 없으실까요?”
성필이 제안의 쐐기를 박았다.
이유이는 너무나 황망하여 성필의 말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이러한 제안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머릿속으로 되새김질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비주얼 디렉터…… 로 바로 가진 못하겠지.’
당연하다.
비주얼 디렉터란 보이는 모든 것을 관장하는 직책이다.
KS 엔터로만 따진다면, 아티스트의 음악적 요소를 전담하는 A&R팀의 수장 정호환과 대등한 지위인 것이다.
하지만 이유이가 가로 엔터에서 능력을 증명하기만 한다면…….
‘아니야. 나는 이미 내 능력을 증명했잖아.’
소녀연맹의 거의 모든 자체 제작 의상이 이유이의 손끝에서 나왔다.
현재 그녀의 핸드백 안에 든 수첩에도, 소녀연맹을 위한 의상 스케치가 몇 개나 잠들어 있지 않은가.
이유이와 소녀연맹은 좋은 파트너였다.
“……박 이사님.”
“네.”
하지만.
“저는, 파리 의상 학교에서, 쿠튀르(맞춤복)를 전공했어요. 브랜드 디자이너가 되겠단 꿈으로요. 고등학교부터 불어랑 이탈리아어를 배워서…… 네, 그래서…….”
장장 8년을 품에 지니고 있던 꿈이다.
가로 엔터와 함께 해왔던 1년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페이지였지만, 그렇다고 꿈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녀연맹과의 1년이 지닌 밀도가 아무리 높더라도, 8년의 꿈을 상회할 수는 없을 테니까.
이유이는 충동적으로 진로를 바꾸고 싶지 않았다. 비록 너무나 매력적이라 곧장 받아들이고픈 충동이 휘몰아치더라도.
“알겠습니다.”
성필은 이유이의 흐려진 거절을 찰떡처럼 알아들었다. 그리고 환한 미소와 함께 그녀의 꿈을 응원해주었다.
“이브 생로랑 같은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하셨죠.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그때 손혜빈이 조용히 이유이의 잔을 채워주었다. 소주를 2/3로 채우고, 나머지는 맥주로.
“……???”
“유이 씨, 앞으로 안 볼 사이니까 진짜 죽도록 놀아봐요. 서로 못 볼 꼴 다 보고 헤어지자구요.”
“저, 저, 이렇게는 못 마시…….”
그날, 이유이의 기억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음 날의 숙취와 함께, 가로 엔터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미안함도 같이 날아갔다.
* * *
광고회사 태풍기획의 3팀장은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를 회의실로 들였다.
이 일본인 클라이언트는 언제나와 같이 무거운 태도로 상석에 앉아 손깍지를 꼈다. 그리고 정면을 무섭게도 응시하는 것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이번에는 반드시…….’
3팀장의 앞에 있는 클라이언트는 하시모토, 어바이비 한국 총괄 매니저란 직함에 앉은 자였다.
어바이비는 한국을 제외한 전 아시아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패션 브랜드다.
‘4년 전에 한국에 입점했단 사실은 알았는데, 드디어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시작한 거군.’
텔레비전 광고를 기획, 제작까지 할 정도이니 곧 어바이비가 한국에 제대로 자리를 잡는 데도 큰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사실, 3팀장의 추측은 틀렸다. 어바이비는 4년 전부터 본격적이었다. 단지 지금까지 실패해왔기에 이름을 알리지 못했을 뿐이다.
어쨌거나, 태풍기획은 반드시 이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이번 어바이비 광고를 성사시키고 신뢰를 주면, 시즌마다 광고 기획을 맡을 수도 있어.’
그건 3팀장이 본부장의 자리까지 올라갈 때를 위한 최고의 스펙이 될 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 벌써 몇 번이나 기획을 까였으니까.
“그, 그럼 기획을 보여드리겠…….”
3팀장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하필 그의 앞에서 말을 더듬다니!
“……겠습니다.”
프로젝터 스크린 앞에 선 3팀장이 크게 십호흡했다.
그래, 자신은 고작 이런 위기에서 넘어질 수는 없다. 다른 회사나 다른 팀에게 이 일을 빼앗겨선 안 된다. 반드시 따낸다.
필사즉생의 프레젠테이션, 시작!
“먼저.”
벚꽃길을 걷는 리카, 의 스케치.
당연하게도 기획인 만큼 광고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전부 정지된 스케치로 묘사되었다.
호숫가에서 기타를 치는 백설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조아라.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는 장하양.
가로수길을 누비는 신아름.
차례로 그녀들의 모습이 비치고, 갑자기 화면이 암전되면서 글자가 떠오른다.
[공통점을 찾으셨습니까?]
그리고 나타나는 어바이비의 브랜드 로고.
[어바이비.]
영상이 역재생된다.
벚꽃길을 걷는 리카.
[슈퍼 웨이트 다운 구스 점퍼 128,000원]
[캐시미어 와이드넥 스웨터 49,000원]
[울트라 스트레이트 하이웨이스트 레깅스 팬츠 19,900원]
그녀가 입은 옷 곳곳에 가격이 뿅뿅 나타났다.
그건 다음 차례인 백설하도 마찬가지였다.
[U자형 스트레이트 재킷 39,900원]
[오프 숄더 스웨트 셔츠(긴 팔) 48,900원]
[Y앵글 팬츠 129,900원]
이어서 다른 멤버들이 입은 옷도 모두 가격이 나타났다. 저마다 가격대가 천차만별인 옷을 가지각색으로 코디한 게 특징이었다.
마지막으로 신아름이 나온 장면이 지나가자, 아까 중저음의 목소리와는 다른 쾌활한 여성의 목소리가 지나갔다.
[어바이비!]
기획 초안 영상이 지나자, 3팀장은 한 것이 없음에도 줄줄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말씀하셨던 대로…….”
이 말에는 ‘네가 여섯 번이나 우리 기획을 깠던 대로’란 뜻이 숨어 있었다.
“초반에는 소녀연맹 본연의 매력을 최대한 강조하면서, 후반에는 그 매력이 어바이비의 의류로부터 나왔단 점을 최대한 어필했습니다. 또한 어바이비의 판매 전략인 중고가부터 초저가형 라인 가격을 전부 노출하여, 소비자들이 매장을 찾는 부담감을 줄이려고 했습니다. 후반에 분위기를 반전하여 친근감을 주기 위해 젊은 여성의 보이스를 사용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색 반전이…….”
짝, 짝, 짝, 짝.
3팀장은 손에 들고 있던 대본을 스르르 내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완벽합니다.”
하시모토가 감격의 미소를 지으면서 박수를 치고 있었으니까.
“그, 그그, 그럼 저희 기획으로…….”
“하겠습니다.”
태풍기획 2본부 3팀, 당일 회식 결정!
“……저, 이걸로 괜찮은 겁니까?”
어바이비 본사의 마케팅 부서로부터 파견 나온 직원이 조심스레 하시모토에게 질문했다.
일본어였기에 3팀장은 알아듣지 못했다.
“어바이비의 브랜드 이미지가…… 그게…… 이렇게 가도 괜찮을까요? 광고에 가격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건 뭐라고 해야 할까요…… 조금…….”
“올해 일본의 1분기 유니클로 광고도 가격을 그대로 보여줬잖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이봐요, 한국 총괄 매니저는 저입니다.”
“압니다 알아요! 제가 하시모토 매니저님께 거스른다,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단지 살짝 걱정이 돼서…….”
하아, 이래서 본사에서 책상물림만 한 것들이란……. 이라고 생각하는 하시모토도 몇 년 전까지는 본사와 가까운 하라주쿠점에서 근무했었다.
“방식이 노골적이든 천박하든, 일단 팔아야 한단 말입니다! 파는 게 지상 가치예요!”
하시모토는 피 흘리는 심정으로 말했다.
4년간 적자만 보아온 그에겐, 방식이야 어떻든 옷을 파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런데, 소녀연맹이 소비를 촉진할 파워가 있습니까?”
“서울점의 판매량이 상승한 건 오로지 소녀연맹 덕입니다. 그래서 한국 공식 모델로도 추천했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어바이비의 직원은 못내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었지만, 하시모토의 말이니 믿기로 했다.
그는 한국의 어바이비 총괄 매니저이자, 어바이비 하라주쿠점의 살아 있는 전설이었으니까.
수년간 매출 신화를 달성했던 그의 감각이라면, 이번에도 틀린 결정을 하진 않으리라.
* * *
광고가 들어왔단 소식에 소녀연맹 멤버들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메인 모델로 선정된 백설하는 더욱더.
“설하 네 입간판이 핸드폰 대리점들에 세워질 거야.”
“지, 진짜요……?”
“응.”
소녀연맹이 받은 광고는 핸드폰 요금제에 관련한 것이었다.
“플라워 24라고, 꽃다운 청춘인 19세에서 24세까지 할인이 적용되는 요금제래. 거기에 설하 네가 메인 모델이 된 거고.”
“…….”
백설하는 현재 24세다. 그럼 1년 뒤에는 광고 계약이 끝나는 걸까?
“일단 계약 기간은 1년이고.”
진짜 끝난다고?!
“인터넷이랑 매장에 올라갈 포스터 정도만 찍을 거야.”
“아, 텔레비전은 아니네요…….”
“아쉬워?”
“아뇨 아뇨! 광고주님들한테 감사할 뿐이죠, 헤헤.”
업계에서 광고주는 흔히 ‘주님’이라고 불린다. 어떤 광고든 맡겨만 주면 신이라는 소리를 듣기엔 충분한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쌤, 메인 모델이라니 대단해요! 역시 소녀연맹의 얼굴!”
“고마워 리카.”
“하지만, 질투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네요.”
“어?!”
“그래도 이해해요!”
광고란 어떻게든 시선을 끄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다면 백설하의 입간판은 확실히 화제가 될 게 틀림없다.
대리점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백설하의 입간판부터 시선이 갈 테니까 말이다.
“으, 으응…….”
백설하가 떨떠름하게 리카의 질투를 수긍하던 도중, 장하양이 손을 들었다.
“이사님. 광고비는 얼마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음…….”
“안…… 되나요?”
성필이 애매하게 목소리를 흘리자 장하양이 불안하게 되물었다.
“아니, 물어도 되지. 근데 이렇게 묻는 애들을 본 적이 없어서 놀랐던 거야.”
이게 아이돌이나 연습생 사이에 퍼져 있는 불문율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은 자신들이 어느 정도 돈을 벌었는지 묻기를 꺼리곤 한다.
이런 케이스들이 화를 불러서, 아이돌이 정산받을 때 기획사를 고소하는 경우까지 있기도 했다.
소통의 부재로 오해가 쌓인 것이다. 하지만 이건 기획사들이 정확한 매출을 아이돌에게 숨기는 까닭도 있다.
기획사 마음먹고 정산금을 속이고자 한다면, 지식이나 힘이 없는 아이돌들은 당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리 와봐.”
장하양이 성필에게 귀를 내밀자, 그가 그녀의 귓가에 황홀한 숫자를 속삭였다.
“언니!”
조아라가 쓰러지려는 장하양을 겨우 낚아챘다. 하지만 장하양도 마냥 쓰러지지만은 않았다.
“괘, 괜찮아. 앞으로 자주 있을 일이니까……!”
“오오, 아라쨩 왕자님 같아! 엄청 빨랐어! 아타시(나)도 해줘!”
리카가 슬쩍 쓰러지려는 시늉을 했으나 조아라는 관심도 없었다. 그녀는 장하양의 구겨진 옷을 펴주거나 안위를 확인하는 데만 신경을 쏟았다.
“아라쨩 히도이(너무해)! 이사니임, 아라쨩이 저한테만 싸늘해요…….”
“얘들아 앞으로도 힘내자. 드디어 앨범이랑 굿즈 외 수익이 발생한 건 의미가 커. 소녀연맹의 브랜드 이미지가 형성되었단 뜻이니까.”
“무시?!”
그때, 2층에서 홍보팀의 강지혜가 성필을 찾았다. 성필은 날 듯이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중요한 업무가 아니고서야 성필을 찾는 일이 드물었으니, 이번에 부른 것도 보통 일은 아니리라.
“아, 제가 내려가려고 했…….”
강지혜는 황망하게 방금 계단을 뛰어 올라온 성필과 마주했다.
성필은 직책이 이사라고 할 수 없을만큼 직원들을 수평적으로 대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친절이 때로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 업무 중이신데 죄송합니다.”
“네? 아니, 애들이랑 얘기하고 있었어요. 괜찮아요.”
“넵. 저, 방금 어바이비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소녀연맹을 텔레비전 광고 모델로 쓰고 싶다구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성필은 현기증이 왔다.
“테, 텔레비전 광고요?”
“네. 기획 초안이 나왔으니까 보고 결정해주시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소녀연맹은 어바이비 서울 매장 공식 홍보 모델이다. 그 때문에 어바이비 건물에 소녀연맹의 모델 사진이 걸려 있지 않은가.
하지만 텔레비전 광고에까지 출연한다고?
‘이건 그냥, 소녀연맹이 한국 어바이비 공식 모델인 수준 아니야……?’
하시모토 매니저가 얼마나 소녀연맹을 신뢰하며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네 당연히 봐야죠. 그쪽은 미팅 날짜로 언제가 좋다는 말이 있었어요?”
소녀연맹이 어바이비의 텔레비전 광고에 출연할지는 이사 회의에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아마 웬만큼 광고 기획이 나사가 빠지지 않고서야 반드시 출연할 테지만.
텔레비전 광고는 출연료가 높다는 점 외에도, 얼굴을 알릴 수 있단 점에서 매우 큰 가치를 지닌다.
‘광고 자체가 브랜드인 기업이면 몰라도, 어바이비는 한국에서 신생이나 마찬가지니까 광고료도 많이 쳐주겠지?’
어쩌면 1억이 넘어갈지도 모른다.
계약 기간은 3년 정도일까?
광고로 보여주고픈 이미지는 무엇일까?
성필은 벌써부터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드디어 우리 애들을 음방이나 예능 말고 다른 데서도 볼 수 있는 거구나…….’
통신사 광고도 그렇고, 어떻게 좋은 일이 이렇게 연달아 생기는지 모르겠다.
올해는 소녀연맹에게 큰 운이 따를 모양이다.
“그리고…….”
행복한 이야기만 이어지다가, 갑자기 강지혜가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였다.
“하시모토 매니저님이 특이한 요구를 하셨는데요…….”
“특이한 요구요? 어떤 건데요?”
“그게, 소련이들이 ‘아라베스크’로 컴백할 때 무대 의상들을 어바이비의 옷으로 채웠었잖아요. 무대용으로 알맞게 수선해서요.”
“그렇죠.”
“그 옷들을 수선한 스타일리스트…… 아니, 디자이너를 찾으시던데요.”
“……네?”
그 디자이너는, 얼마 전 김형선네 팀을 나간 이유이를 뜻하는 게 틀림없다.
“이유는요?”
“거기까진…….”
성필은 즉시 하시모토에게 연락하여 이유이를 찾은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하시모토도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건 성필과 매한가지였다.
[저도 정확한 이유는 모릅니다. 다만, 그분이 찾으십니다.]
“그분……?”
[어바이비의 창업자 중 한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