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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269화 (269/760)

269화

“우, 우우, 울지 마세요! 매니저님 티슈나 소, 손수건?!”

소녀연맹의 곁을 지켜야 하는 안이상은 리카의 다급한 요청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대를 뛰쳐나갔다.

화장실로 핸드 타월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김마리아가 리카의 앞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분에 불과했기에 시간을 맞출 리 만무했다.

매니저로서의 미숙함을 드러낸 것이지만, 담당 아이돌의 면전에서 10대 소녀가 우는데 어떻게 평정을 유지하겠는가.

“에, 에에에, 앗!”

리카는 소매를 손끝까지 내리고 김마리아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뚝 눈물 그치세요!”

“죄, 죄송하…….”

“죄송할 필요 없어요! 저는 기뻐요! 저를 보고 행복하셔서 운 거잖아요! 정말 정말 기뻐요! 고마워요! 아, 아타시(제)가 뭘 더 해드려야 할 정도네요!”

리카의 필사적인 달램에 힘입어 김마리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귀신처럼 눈물이 쏙 들어갔다.

“저, 저, 너무, 직접 보니까, 너무…….”

“무슨 말인지 알아요! 저도 거울 볼 때마다 울고 그래요! 신이 만든 마스터피스! 최고의 창조물! 신의 닮은 꼴이 앞에 있으니까요! 그리고…….”

리카는 주머니의 핸드폰을 꺼내 김마리아의 얼굴 앞에 내밀었다. 검은 액정에는 김마리아의 얼굴이 그대로 반사되었다. 거울처럼.

“우리 인민이도 그래요! 언제나 자신감! 항상 당당하게! 아시겠죠?”

김마리아가 물기가 달린 웃음을 터뜨리면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카는 그녀가 진정하자 안도의 한숨을 뱉곤, 사인을 마저 이어갔다.

“성함 가르쳐주세요!”

“김마리아요.”

“김…… 마리아……? 아, 한국에도 크리스트교 이름이 있었네요! 처음 알았어요! 앗! 이상하단 뜻은 아니에요! 마리아, 예쁜 이름이에요!”

김마리아는 리카가 자신의 이름을 칭찬해주자 또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그녀의 기독교식 이름은 주변에서도 특이한 것이었다. 이 이름 때문에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항상 놀림감이 되었다.

게다가 자신을 버린 부모가 붙여준 이름이니 애정이 들 리가 없었다. 하지만 리카가 칭찬해주니 마리아란 이름도 굉장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고맙습니다.”

“네네, 자신감! 아시겠죠!”

리카의 아무 말 대잔치가 끝남과 동시에 줄이 옆으로 밀렸다. 벌써 1분이 지난 것이다.

김마리아는 옆자리로 이동하고, 이번에는 신아름과 마주 보았다.

“안녕하세요.”

“네, 네, 안녕하세요.”

다행히, 리카의 앞에서 눈물까지 흘려서 그런지 신아름을 보곤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신아름도 바로 옆에서 일어난 사태를 봤던 터라, 다른 팬을 대할 때보다 훨씬 부드럽게 말했다.

“김마리아, 맞죠?”

“네…….”

“이름 예뻐요.”

신아름이 사인을 하는 동안 생긴 약 3초의 침묵. 그것으로 신아름은 김마리아가 팬사인회에 익숙하지 않으며, 능동적으로 대화를 이끌지 않으리란 확신을 받았다.

그렇다면 대화를 진행하는 건 신아름의 몫이었다.

“언제부터 저희 좋아하셨어요?”

“아, ‘아니’ 때부터요…….”

“와 저희 데뷔했을 때부터 팬이셨구나. 감사합니다. 근데 벌써 1년이나 지났네요. 그거 혹시 보셨어요? ‘아니’ 파트 바꿔 부르기요.”

“네 봤어요! 언니가 아라 언니랑 파트 바꿨잖아요. 좋았어요.”

“당연히 제가 하는 게 더 좋죠.”

신아름과 조아라의 대립 구도는 소녀연맹 팬덤 내에서도 유명했다. 아예 두 사람이 서로를 까는 게 콘텐츠의 하나로 굳어질 만큼 인기가 있었다.

“솔직히 춤도 제가 더 잘 추거든요. 솔직히 객관적으로 그쵸?”

“아, 으, 그, 헤헤…….”

“근데 제가 웬만해선 이런 질문은 안 하는데, 최애가 누구예요?”

“아, 아라 언니요…….”

“조아라 춤이 진짜 일품이죠! 그쵸?! 걔가 춤선은 살아있어요! 노래도 못 부르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고!”

신아름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사인을 마쳤다. 그리고 포스트잇에 붙은 질문을 확인했다.

“취미…… 전 취미랄 게 별로 없는데. 그냥 인터넷으로 옷 쇼핑하거나? 그 정도? 아님 쉬는 날에 조아라랑…… 아니, 걍 시간 비는 멤버랑 카페 탐방하거나.”

“아, 옷. 언니 옷 잘 입어요.”

“진짜요. 설하 쌤 빼곤 다들 옷에 별로 관심이 없다니까요. 리카 쟤도 무슨 돈 아끼겠다고 마트에서 2+1하는 티 같은 거 사 입고…….”

“생활의 지혜야!”

옆에서 사인하고 있던 리카가 곧바로 되받아쳤다. 신아름은 헛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김마리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김마리아는 홀린 듯 그녀와 손바닥을 맞추었다.

팬사인회에선 아이돌이 주도하지 않는 한 스킨십을 시도하는 게 금지되어 있다. 즉, 신아름과 손을 잡은 건 김마리아에게 굉장한 행운이었다.

“다음에 또 봐요.”

“네……!”

다시 자리는 옆으로 옮겨졌다.

이번에 김마리아의 앞에 앉은 건 장하양이었다. 그녀는 김채현이 선물로 준 알 없는 안경을 이마에 걸쳐 쓴 채였다.

“안녕하세요.”

“네, 아, 안녕하세요.”

김마리아는 장하양을 직접 보자 눈도 제대로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사람이란 게 이렇게나 예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첫 차례로 리카를 마주 볼 때는 눈물로 시야가 흐려서, 다른 아이돌 팬 사이에서도 유명한 리카의 미모를 관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물기가 가신 김마리아의 망막엔 장하양의 얼굴에서 나온 과할 만큼 찬란한 빛이 그대로 꽂혀왔다.

“음?”

김마리아에게서 앨범을 건네받은 장하양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희, 어디서 봤죠?”

김마리아는 깜짝 놀랐다. 설마 장하양이 연말에 보육원에서 만났단 일을 기억할 것이라곤 예상조차 못 했다.

그야 그때 만난 건 밤이었고, 김마리아가 대화한 상대는 한구인뿐이었으니까.

게다가 장하양이 보육원 내에서 혼신의 공연을 펼칠 때도, 김마리아는 오빠를 걱정하는 데 여념이 없어서 장하양이 제대로 얼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저번 팬미팅…… 은 아니고. 어디서…… 아, 보…….”

……육원.

장하양은 그것을 떠올리자마자 황급히 입을 다물곤, 자신의 실수를 없애버리려는 듯 인자한 미소를 띠었다.

그 배려에 김마리아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딱지는 어떻게 퍼졌는지 친구들의 귀로 들어가, 김마리아의 초등학교 생활에 지대한 피해를 끼쳤었다.

그런데 그 비밀을 이 자리에서 장하양이 기억해냈단 게, 김마리아는 창피하기 그지없었다.

혹시나 그녀가 안 좋게 볼까 봐.

“됐다.”

장하양은 사인을 마친 앨범을 다시 김마리아에게 주었다.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세요?”

“아, 아, 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김마리아는 어린아이다운 수치심에 꽉 잠겨 머릿속에 새하얗게 변했다.

“저는요, 지금도 후회되는 게 몇 개 있어요.”

“……네?”

“그건 어렸을 때 친구를 못 만든 거예요. 여러 이유로 자신감도 없었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줄 거란 생각 자체를 못 했거든요.”

그 말을 듣자마자 김마리아는 장하양의 사정을 기억해냈다.

그녀는 SNS에 올라온 장하양의 가정사를 읽진 못했으나, 아이튜브에 달린 댓글들로 유추할 수가 있었다.

장하양의 직캠에 그녀가 힘든 가정사를 이겨내고 아이돌이 되었단 것을, 팬들이 장문의 댓글로 써두곤 했으니까.

“오늘은 어쩌면 어느 친구가 나한테 말을 걸어주지 않을까. 나랑 놀아주려고 하지 않을까. 동정이라도 괜찮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바랐어요.”

“…….”

“그런데 제가 틀렸어요. 상황을 바꾸려면 움직여야 하는 건 세계가 아니라 저예요. 그걸 늦게 깨달은 게 후회돼요. 그랬으면 친구들이 다가오길 기다리지 않고, 제가 먼저 말을 걸었을 텐데.”

장하양은 테이블에 소심하게 얹어져 있는 김마리아의 손을 따스하게 붙잡았다.

“저희의 노래가 마리아 씨한테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어요. 슬퍼만 하기엔, 시간은 빨라요.”

“지나가실게요.”

어느새 또 자리를 옮겨야 하는 시간이 왔다. 김마리아는 장하양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가슴을 꽉 채운 열기를 장하양에게 말로 전해주고 싶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김마리아가 맞잡은 장하양의 손을 놓으려 하던 순간, 갑자기 장하양이 손에 힘을 주었다.

김마리아는 그녀의 힘에 붙잡혀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었다.

“말씀하세요.”

김마리아는 장하양이 자신의 마음을 읽었단 게 너무도 놀랍고 기뻤다.

평소 같았다면 입만 뻐끔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왠지 모르게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용기를 담아, 장하양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가아, 감사합니다…….”

장하양은 싱긋 웃으면서 손의 힘을 풀었다.

그렇게 또 자리가 옮겨졌다. 이번에는 백설하와 마주 보게 되었다.

“성함이?”

“김마리아요.”

“넵.”

백설하는 얼마 전에 개발한 사인을 한땀 한땀 써 내려갔다. 어찌나 집중하는지 김마리아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사인이 절반쯤 완성되었을 때, 뒤늦게 백설하가 시선을 들었다.

“아, 미안해요. 제가 이 사인이 익숙하지 않아서…… 바꾸지 말 걸 그랬나 봐요.”

“아, 아뇨. 괜찮아요.”

“…….”

“밥은 먹었어요?”

“네, 네.”

백설하는 오랜만의 팬사인회에 완전히 감을 잃었다. 그건 앞 차례의 팬들 때문이기도 했다.

앞의 팬들은 백설하가 대화를 주도하게 두지 않았다. 먼저 물어보고,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바빴던 것이다.

김마리아도 그러리라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녀는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손만 꼼지락거릴 뿐이었다.

‘이, 이러면 안 돼!’

백설하는 프로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소녀연맹의 리더로서 팬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고 보낼 수는 없다.

“학교에선 잘 지내요?”

못 지낸다.

“네, 그, 네.”

“다행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저희들 유명해요? 아니다, 요즘 초등학생들도 아이돌 좋아하나?”

“학교에서…… 얘기를 잘 안 해서…….”

“그으, 그럴 수 있죠! 네!”

백설하는 울고 싶었다.

보통 팬들은 짧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질문과 이야기를 준비해오는데, 김마리아는 백설하에게 궁금증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포기해선 안 된다. 백설하는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저한테 궁금하신 거 없으세요?”

“이, 있어요!”

백설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 어떡하면 언니처럼, 커질 수 있어요?”

백설하의 얼굴에 당황이 감돌았다.

“키, 키가요!”

그리 말하는 김마리아의 눈은 백설하의 흉부와 얼굴을 왔다 갔다 했다.

정말로 김마리아는 가슴이 커지는 법 따위를 물어본 게 아니었다. 그런데 테이블에 올라온 백설하의 그곳을 보고 있자니 눈이 안 갈 수가 없었다.

백설하는 가슴이 무거워서 기대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키? 키는…… 영양분 맞춰서 골고루 잘 드시면 돼요.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도 편식하지 말구요.”

“아, 네.”

“지금 키 몇이에요?”

“130cm요…….”

“다음에 오실 때 또 들을 거예요. 그때까지 편식하지 말고 키 많이 커야 해요. 알겠죠?”

“네!”

“지나가실게요.”

안내에 따라 김마리아는 또 자리를 옮겼다. 그러던 도중, 앨범에 쓰인 백설하의 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멋지다!’

다른 멤버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감각이 뛰어난 사인이었다. 이름을 거의 캘리그라피처럼 써놨다.

김마리아는 백설하의 사인에 정신이 팔린 채로 조아라의 앞에 앉았다.

“앨범 줄래요?”

김마리아가 앨범으로부터 시선을 떼자, 눈앞에 조아라가 보였다.

그녀의 최애가.

“…….”

조아라를 보자 김마리아의 사고가 정지했다. 그녀는 앨범을 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아.”

조아라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는 실실 웃으면서 김마리아의 손으로부터 앨범을 부드럽게 가져갔다.

“다들 나 보면 반응이 같더라고요. 나같이 완벽한 사람 보면 어쩔 수가 없지. 이해해요. 성함이?”

“기, 기기, 김, 마리아, 요.”

“‘기기기김마리아요’? 이름이 여덟 글자예요?”

“김마리아요!”

“넝담.”

말도 안 된다.

항상 동경하며 바라보기만 했던 조아라가 장난을 쳐주다니. 심지어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에는 애정이 묻어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마치 김마리아를, 자신을.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거 같아…….’

조아라는 해맑게 웃으면서 김마리아에게 앨범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익숙하게 대화를 진행하려 하던 순간, 김마리아가 눈을 질끈 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

“네?”

“저, 저, 하, 하고 싶은 거, 있어요.”

“네, 하세요.”

조아라는 인자한 미소를 띠면서 기다렸다.

“아. 아라, 아라쨩, 세쿠시(섹시)…….”

“…….”

망했다!

김마리아의 눈가로 창피함의 눈물이 번지고, 당장 무대 아래로 다이빙해서 이 부끄러움을 없애버리려고 결심했을 때.

드르륵!

조아라가 앉은 의자가 거칠게 끌리는 소리가 퍼졌다. 김마리아가 깜짝 놀라 다시 고개를 드니, 조아라는 앉은 채로 의자를 뒤로 물렸다. 그리고 다리를 꼬곤 팔짱을 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사선으로 틀어서 김마리아를 바라보더니.

“이런 거?”

매혹적이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김마리아는 뇌가 헤집어지는 것만 같았다.

“어, 어어, 언니.”

김마리아는 조아라를 최애로 둔다. 그녀의 당당한 태도 때문이다. 그렇기에 바라게 된다.

“저, 저 언젠가,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그게 불가능하리란 걸 알아도, 묻고 싶다.

“될 수, 있어요?”

조아라는 팔짱을 풀고 테이블로 다가와 김마리아와 지근거리에서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두세 번 쓰다듬었다.

“춤이든 세쿠시(섹시)함이든, 바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그렇게, 꿈과 같은 시간이 끝났다.

김마리아는 비틀거리면서 무대를 내려갔다. 방금 멤버들과 직접 대화하고 사인을 받았던 게 전부 거짓말 같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들린 앨범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

김마리아는 앨범 패키지를 장식한 사인을 하나씩 눈에 담았다. 그리고 포스트잇으로 질문한 것에 대한 멤버들의 답도.

[취미가 뭐예요?]

[아이튜브 보고 SNS 하기!]

리카.

[쇼핑.]

신아름.

[이야기하기.]

장하양.

[잠자기.]

백설하.

그리고.

[춤.]

조아라.

“……멋져.”

* * *

“중국어 안 배우세요? 케이어스는 중국에서 활동 안 해요?”

앨범을 200만 원어치 샀다는 어눌한 한국어의 중국팬을 향해, 김민주는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는 부분이라…….”

“진저 있잖아요. 중국에도 오는 거 아닌가? 관화 배워야죠.”

“네…… 노력해볼게요…….”

“그런데 진저랑은 숙소에서 잘 지내세요? 영상들 보면 기가 좀 눌려 있는 거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진저가 좋으면 그냥 넘어가라고…….’

팬사인회에서 어느 멤버의 앞에 앉아, 다른 멤버의 이야기를 주요한 주제로 삼는 건 실례이다.

최소한 싫어하는 티라도 내면 김민주 자신이 대화를 주도할 텐데.

김민주는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겨우 억누르면서 사인을 이어갔다.

“너무 비즈니스로 웃는다. 저랑 얘기하는 거 싫어요?”

“하하, 제가 웃는 게 좀 어색하죠?”

“네. 무대에서도 좀 밝은 모습? 더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

너는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단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 아니었다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김민주는 사인한 앨범을 팬에게 넘기면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천천히 한숨을 뿜어냈다.

‘이것도 일이지 일.’

김민주가 아이돌이 되기로 결심했던 건 경솔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무대 위에 오르는 아이돌의 광채만 보고서 이 업계에 뛰어들었으니까.

팬사인회나 팬미팅이 있단 건 알았지만, 그게 어느 정도의 중요성이 있는지는 몰랐다.

‘팬들을 만나는 건 즐겁지만.’

방금 같은 팬과 마주하면 온갖 부정적인 기운이 정수를 뚫고 나올 것만 같다.

인터넷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욕을 얻어먹어도 하루 기분을 죄다 망치는데, 눈앞에서 이런 일을 당하니 멘탈이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다.

‘그냥 무대 위에 서서 퍼포먼스만 보이면 좋을 텐데. 사람들이 퍼포머로만 봐준다면…….’

하지만, 아이돌 팬은 아이돌에게 이러한 교류도 바라는 것이겠지. 그리고 그 요구를 만족시켜주는 게 아이돌의 역할이기도 하다.

퍼포먼스 아티스트로서의 이미지 노출 전략을 사용하는 게 케이어스다. 그런데 케이어스 소속인 자신조차 이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유사 연애 팔이나 팬 친화적인 아이돌은 어떻게 사는 거야?’

그녀의 앞에 흰색 종이백과 앨범 패키지가 올라왔다. 그러자 뒤에서 나온 매니저의 손이 종이백을 가져갔다.

‘다음 차례구나.’

김민주는 테이블에 올라온 앨범을 받고, 습관처럼 미소를 만들면서 땅에 박았던 시선을 다시금 위로 올렸다.

“안녕하세요! 성함…….”

순간, 김민주는 할 말을 잃었다.

“박성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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