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253화 (253/760)

253화

프로젝트 포유의 촬영이 이루어지는 참가자 숙소. 우효민은 복도를 이은 희미한 비상등의 빛을 따라 화장실로 향했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화장실 칸 안에 들어가.

“우엑…….”

토했다.

무언가 잘못 먹지도 않았고 몸이 아픈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효민은 술에 취한 것처럼 제정신이 아니었고 속을 게워내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우읍…….”

카메라에 잡힌 자신의 모습이 뚱뚱하게 나올까 제대로 먹지도 않은 터라,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건 희멀건 위액이 전부였다.

그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토하다가 이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1차 경연이 끝나고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인원들이 퇴소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침에 일어나 반갑게 인사하고 꿈에 부푼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제 그녀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복작거리던 숙소가 텅 빈 것만 같다. 우효민은 그 공허가 두려웠다.

언젠가 자신이 사라졌을 때, 다른 이들도 이런 공허를 느끼겠단 생각을 하면 당장이라도 쓰러지고 싶다. 자신도 공허의 일부가 될지도 모른단 사실이 너무나도 두렵다.

“우윽…….”

어쩌다 이런 삶을 살게 된 걸까.

주변의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외모를 갖고 태어난 그녀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특별한 일, 아이돌에 도전했다.

아직 이룬 게 없음에도 연습생이란 이유만으로 주변에서 떠받들어주는 게 기뻤다.

나는 특별해, 나는 남들과 달라, 그런 비대화된 자의식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왔건만.

남들이 평범한 삶을 위해 한 계단씩 올라갈 때, 정작 우효민은 이룬 게 없었다.

“흐으, 윽…….”

선택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공간에 모인 전원이 선택받은 자로 삶을 살아왔다.

재능으로 겹겹이 쌓아진 봉건 제도. 이 시스템은 이미 축복받은 이들 중에서도 신의 오른편에 세울 자를 선택한다.

타인과 다르다, 다르게 뛰어나다. 그런 자만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을, 이 프로그램은 채에 걸러지는 모래 알갱이로 취급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채에 남지 못하고 걸러지게 되면…….

“……엄마.”

미래가 없다.

20대 초, SNS에 올라오는 고등학교 친구들의 캠퍼스 라이프를 보고 있자면 우효민은 마음의 심지가 뭉텅이로 썰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데, 친구들은 무언가를 이뤄가고 있다.

만약 프로젝트 포유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회사로 돌아가도 데뷔할 수 있을까? 아예 연습생을 그만두게 된다면? 배운 거라곤 춤과 노래뿐인데 그걸 어디 써먹지? 다시 공부를 시작해? 하지만 공부는 열심히 해본 적 없는데? 그리고 공부를 해도 뭘 위해서?

나는…… 뭘 위해서 살아왔지?

“…….”

우효민은 변기 물을 내렸다. 그러자 다시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1차 경연이 끝났다. 그럼 앞으로 이런 짓거리를 3, 4번이나 더 해야 한단 걸까?

그때까지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우효민은 비틀거리면서 칸을 나왔다. 그리고 세면대에 선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다. 거울로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신아름?’

이번 1차 경연에서 우효민이 속한 팀의 리더였다. 우효민은 신아름을 보고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됐다.

신아름 같은 사람이 아이돌이 되지 못한다면, 세상에 아이돌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절로 그런 생각이 떠오르게 한다.

우효민은 쭈뼛거리면서 세면대로 다가갔다. 나이도 어린 동생의 눈치를 보면서 손을 씻고 있자니.

“야.”

갑자기 신아름이 ‘야’라고 불렀다.

기획사마다 문화는 다르지만, 보통 연습생 사이에서는 나이로 서열이 쉽게 갈린다. 아이돌은 예의가 중요하기에 트레이닝 기간부터 상하관계를 확실히 익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효민은 동생의 ‘야’란 부름에도 발끈하지 못했다.

“으, 응.”

눈가에 새겨진 눈물 자국처럼 힘없이 흐물거리는 게 우효민이 할 수 있는 반응의 전부였다.

“우리 친구 할래?”

“……어?”

세면대 앞에 섰음에도 가만히 거울만 보고 있던 신아름이 씨익 웃었다.

“친구 하자고. 싫어?”

우효민은 신아름의 의중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우효민은 정직하게 답했다.

“아, 알겠어.”

토하고 흐느끼는 자신의 음성을 신아름이 들었으리라 생각하니 창피하기도 해서, 빨리 이 순간을 끝내고 싶었다.

그때부터, 우효민의 생활이 바뀌었다.

신아름은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을 때건 아니건 항상 우효민을 데리고 다녔다.

팔짱을 끼고, 같은 경연팀에 들어가고, 둘 사이의 거리감에 맞지 않게 친한 모습을 과시하고, 가끔은 같은 여자마저도 아연해질 만큼 스킨십이 과했다.

그것이 전략이란 것을 깨달았던 건 촬영이 중반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전략이면서, 또한 우효민을 향한 친절이었다.

“메인 보컬 파트는 효민이가 맡아볼래?”

신아름은 모든 경연에서 리더였다.

“킬링 파트 지원자 없어? 효민이는?”

신아름은 우효민의 친구였다.

“개인 연습? 너희들 말은 똑바로 해. 동선도 안 맞는데 무슨 개인 연습이야! 너희, 이거 다 맞출 때까지 연습실에서 못 나가.”

신아름은 포유의 리더였다. 아직 프로젝트 포유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모든 참가자가 인정했다.

그녀는 그룹이 만들어지고 나서 리더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도, 의심을 품지도 않았다.

우효민도 그리 생각했으며 그런 미래를 바랐다. 그리고 마침내 이루어졌다.

“고마워 아름아…….”

최종 데뷔조 발표식에서, 우효민은 신아름을 껴안고 울었다. 그때마저도 신아름은 평온한 모습으로 우효민을 달래주었었다.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우효민에게 신아름은 둘도 없을 은인이고, 오래도록 함께하고픈 친구였으며, 또한 이 세상 그 자체였다.

그런데.

“나 포유 나가.”

신아름이 그룹 탈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효민이 네가 리더다.”

김명운은 우효민을 리더의 자리에 앉혔다.

“……네?”

우효민은 혼란스러웠다.

‘나는.’

너랑 같이 활동하고 싶었는데.

내 옆에 있어 줄 줄 알았는데.

계속 함께일 줄 알았는데.

우린 같은 마음인 줄 알았는데.

‘나는…….’

아름이 네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데 너는.

포유를, 나를 버리고 떠나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구나. 소녀연맹에 들어가서, 마치 과거는 잊어버린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너는 내 세계의 전부였는데, 나는 너에게 세계의 조각에 불과했구나…….

* * *

김명운은 보기만 해도 혀가 아려오는 에스프레소를 홀짝였다. 말을 많이 해서 입 안이 말랐기에 에스프레소로는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다.

“제 거 좀 드실래요?”

성필은 얼음이 절반쯤 녹은 자신의 아메리카노를 가리켰다.

“괜찮아.”

“사양 안 해도 돼요.”

“네 침 묻었잖아.”

“위생적인 이유였네요.”

김명운은 포유가 해체한 후 이음 엔터의 비전에 관해 이야기해주었었다. 꽤나 장광설이었으나, 업계인으로서 성필은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일단 배우부터인가. 연습생은 천천히 알아보고. 포유란 간판이 있었으니까 오디션에도 사람 많이 몰릴 거 같은데.’

이음 엔터의 비전에 관해 듣고 있자니, 성필은 석세스 엔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몇 개월 전부터 성필은 석세스 엔터의 동향에 주목하는 중이었다.

‘전생이랑 달라.’

전생의 석세스 엔터는 문어발 확장이라 해도 모자랄 만큼 과감한 투자를 계속해서 감행했었다.

석세스 엔터 대표인 김태훈은 사업적인 면에선 자신의 비전을 관철했기에, 회사 내에서 어떤 비판이 나와도 우직하게 끌고 나갔었다.

거기까지는 전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건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쪽이야.’

전생처럼 이름값 있는 배우들을 끌어오지도 않고, 이쯤이면 발표되어야 할 석세스 엔터의 남자 아이돌 그룹 루키들도 보이지 않는다.

내부 사정을 알 수는 없으나, 아마 윤상열의 지휘 아래 프로듀싱과 매니지먼트 전략이 대대적으로 수정된 듯했다.

‘상시 모집하던 연습생 영상 오디션도 중지하고…….’

대체 석세스 엔터는 무슨 생각일까.

케이어스가 변했을 때부터 확실히 깨닫게 된 불안감이 성필을 서서히 조였다.

과연 석세스 엔터는 전생에서의 영광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성공할까? 아니면…….

“애들 얘기 끝났을까?”

김명운의 물음에 성필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김명운은 성필이 꽤 오랜 시간 입을 다물고 있자 대화거리가 떨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끝나면 알아서 오겠죠. 근데 형 아쉽지 않아요? 포유랑 같이 지낸 것도 1년 넘었잖아요.”

“왜 안 아쉽겠어.”

회사에 소속된 그룹이 해체되는 슬픔은 성필도 익히 알았다. 마치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전학 가는 느낌이랄까, 여러모로 씁쓸하다.

“이제 막 궤도에 올랐잖아요. 차라리 형이 계속 맡고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프로젝트 그룹이니까 어쩔 수 없지. 그리고 내가 데리고 있으면 애들한테도 안 좋아.”

포유에 소속된 아이돌들이 원래 속한 기획사가 있다. 원(原)소속사와는 수익을 7대 3으로 나누고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정산을 받기엔 빠듯할 텐데, 포유에서 활동하면 이음 엔터에도 수익을 분배해야 한다.

아이돌은 이중으로 수익이 나눠지는 것이다. 그러니 포유로는 오래 활동해도 손해가 크다.

“형이 애들 계약을 받아오면요?”

“위약금 물어주고? 글쎄…….”

“위약금이 상식적이면 포유 활동 계속해서 만회할 수 있지 않아요?”

“그럴 수야 있겠지. 그런데 애들 소속사도 계획이 있을 거잖아. 쉽게 놔주진 않겠지.”

“근데 서바이벌 프로그램 파생 그룹은 전부…….”

“결과가 안 좋았지.”

그건 포유 소속 아이돌의 소속사에서도 근심거리일 것이다. 포유의 성공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인한 프로모션과 이음 엔터의 매니지먼트 전략 덕이다.

그런데 포유에서 아이돌을 한 명씩 뚝 떼와서 다른 연습생들과 결합하면, 그게 과연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까?

“리스크가 크긴 해. 그렇다고 애들을 마냥 놀려두진 않을 거니까.”

성필은 김명운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이미 알고 있다. 전생에서 포유는 무사히 해체하고 저마다의 길로 흩어졌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성필이 굳이 되묻는 건, 김명운의 얼굴에 뚝뚝 묻어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그라고 왜 포유 멤버들을 흩어놓고 싶겠는가?

“내 역할은…… 여기까지인 거지.”

김명운은 이미 빈 에스프레소 컵을 입에 가져갔다. 성필은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쓰게 미소 지었다.

그때 둘이 있는 방의 열린 문으로 두 개의 인형(人形)이 나타났다.

“어, 얘들아 이야기 끝났…….”

문 쪽을 바라본 김명운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건 성필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네, 끝났어요.”

우효민이 발랄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가에는 숨겨지지 않는 눈물의 흔적이 있었다.

어떻게든 화장으로 가리려는 노력이 돋보였으나, 완전히 숨기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

김명운은 따로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사람은 함께 카페에서 나왔다.

“성필아, 오랜만에 봐서 좋았다.”

“저도요. 앞으로도 종종 봬요.”

“그래.”

성필은 김명운과 우효민이 멀어지는 것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아름아 너 효민이한테 무슨 짓 한 거야?!”

신아름과 우효민이 같이 선 광경을 보고 처음 무슨 생각이 들었냐고? 신아름이 우효민을 울 때까지 갈궜단 생각이 들었다.

“욕 안 했어요.”

“때렸어?! 당장 사과하러 가자! 내가 무릎 꿇고 빌 테니까 너도……!”

“욕도 안 했고 때리지도 않았고 우회적으로도 안 갈궜어요.”

“그럼?”

“오해를 풀다가 뭐, 그렇게 됐어요.”

다행이다.

신아름이 우효민에게 받아왔던 질투나 무시를 떠올리면, 신아름이 그녀를 때리더라도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다.

물론 사람을 때린다는 것을 이해한단 게 아니다. 신아름이 폭력을 사용하게 된 경위를 이해한단 것이다.

“오해는 완전히 풀었어?”

“오해랄 것도 없었어요.”

“응?”

“걍 내가 생각한 거랑 똑같았어요.”

우효민은 프로젝트 포유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똑같더라고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효민은 여리다.

* * *

성필은 세상에 감사한다.

이 시간대에, 이 순간에 태어나게 해준 부모님에게는 고마운 마음밖에 없다.

인류사의 그 어느 순간보다 문화적으로 풍요로우며 또한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기. 그야말로 음악의 범람.

또한, 아이돌의 전성기다!

“또 팀장님 오버한다.”

포유의 콘서트가 열리는 공연장으로 가는 길, 성필의 인생 예찬을 들은 신아름이 즉시 태클을 걸었다.

“팀장님은 뭐든 과장하는 게 심해요. 나중에 결혼하면 아내 자랑으로 매일 한 시간은 쓸 듯.”

“이게 어떻게 과장이야. 난 정말 축복받은 시대에 태어난 축복받은 세대라고 생각해. 예를 들어봐, 록의 전성기 영국에서 태어난 록 팬의 심정을. 그게 천국이지 딴 게 있겠니?”

“하여튼…….”

“그리고 또, 한 이사님이 고전파의 절정기인 유럽에서 귀족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해 봐. 한 이사님 베토벤이랑 모차르트 보면서 매일 눈물 줄줄 흘리실걸?”

“그건…… 그러네요.”

“한 이사는 근현대 음악 좋아해.”

성필에게서 홍규헌에게로 시선이 옮겨졌다.

“근현대요?”

“20세기 작곡가들. 에릭 사티랑 에이나우디가 최애야.”

“와, 클래식 작곡가한테 최애란 말 쓰니까 위화감이 장난 아니네요.”

“에이나우디는…… 아니다. 다들 별로 관심 없지?”

“아타시(저)는 아닌데요!”

리카는 자신의 박식함을 자랑하고 싶은지 허리에 손을 올리고 가슴을 당당히 폈다.

“저는 클래식 애호가의 길로 향하고 있어요! 한 이사님 덕분에요!”

“그래? 누구 좋아하는데?”

“차이코프스키요!”

“음.”

“뭔가요, 그 언뜻 무시하는 표정은.”

“아니야.”

만화 오타쿠한테 평범한 친구가 ‘나 만화 좋아해’라고 말해놓곤, 대는 만화 이름이 너무나도 대중적이고 유명한 것일 때의 느낌이랑 비슷할까.

“리카 너 매일 클래식 틀어놓고선 자잖아.”

“에, 아, 아닌데?”

“리카 얘 진짜 웃겨요. 쉴 때 클래식 틀어놓고 책 읽거든요? 근데 10분 지나면 기절해 있어요.”

“아, 아니야! 그건 그냥 졸려서 그랬던 거야!”

“진짜 얘는 불면증 걸릴 일 없어요.”

“아름이 나빠!”

리카는 성필에게 달라붙어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러자 성필이 그녀를 위로했다.

“리카, 딱히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수준이 높은 사람은 아니야. 한 이사님이랑 비슷해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런가요?”

“그래. 음악만큼 취향이 갈리는 게 어딨어? 클래식 듣는다고 멋져 보이는 건 아니야. 나도 아이돌 음악 좋아하는데 멋지잖아?”

리카는 아이돌에 관해 애정을 표현하는 성필을 떠올렸다. 모두에게 아이돌의 좋은 점을 열렬히 어필하는 성필…….

“오타쿠 같아요!”

“애니 보는 사람한테 듣고 싶은 말은 아닌데.”

“팀장님, 저거 뭐예요?”

신아름이 손가락으로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6시에 근접한 시각, 빨리 떨어진 겨울 해 탓에 주변은 어둑했다. 가로등이 켜지는 시간이 해가 떨어지는 시간보다 약간 느려서, 주변은 한밤과 같았다.

성필은 눈을 찌푸려서 초점을 모았다.

“아, 굿즈 파는 데네. 콘서트에선 또 굿즈 판매가 꽃이거든.”

왜 꽃이냐면, 돈이 많이 벌린다.

“인터넷으로 사면 되는데 왜 굳이 여기 와서 사요?”

“현장에서만 주는 사은품 같은 게 있어. 한정 포토 카드라거나.”

신아름은 엑스 배너에 적힌 판매 상품 목록을 보았다.

“이런 걸 누가 사?”

“이미지 피켓 8개 다 주세요.”

민경섭이 샀다.

그는 해맑게 굿즈를 한가득 들고 다시 무리로 돌아왔다. 신아름이 어이가 없단 듯 그에게 물었다.

“오빠 포유 좋아했어요?”

“야 그럼 당연하지. 프로젝트 포유 1회부터 챙겨봤는데.”

“아, 저 나와서요?”

“으응, 뭐, 그렇긴 한데. 나는 경민이가 그렇게 좋더라. 씩씩하게 뭐든 잘 해내는 게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어.”

“유경민 걔…….”

“오, 경섭이 뭘 좀 아네. 뭔가…… 뭔가가 있지. 경민이가 눈썹도 굵고 얼굴선이 확실하잖아. 얼굴에서부터 풍기는 그게 있어.”

“형도 그쵸?”

성필과 민경섭이 뜨겁게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둘은 한동안 신아름의 발길질을 감당해야만 했다.

“우리 앞에서 다른 그룹 띄워주지 마요. 띄워줘도 내가 해요. 비욘세가 내한해도 우리가 더 멋지다고 해야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응…….”

“에에, 아름이가 비욘세보다 세쿠시(섹시)해? 젠젠(전혀) 아닌데.”

리카도 신아름에게 발길질 당했다.

“근데 늦게 와서 그런지 굿즈가 거의 팔렸더라. 아쉽네.”

민경섭은 폐업 세일 직전의 가게에서 긁어온 듯 통일성이 없는 굿즈들을 아쉽단 듯 바라보았다.

“원하는 굿즈 사려면 보통 개점 한두 시간 전까지는 와야지.”

“그게 언젠데요?”

“아침 9시? 10시?”

신아름은 아연실색했다.

공연 입장이 6시 30분부터인데, 이른 아침부터 와서 굿즈를 사겠다고 줄을 서? 도저히 신아름의 감성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있지.”

성필은 공연장을 빙 두를 기세로 길게 이어진 줄을 눈에 담았다.

때마침 곳곳에서 가로등이 켜져 공연장에 집결한 인파를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주었다.

“애정이 있으니까.”

콘서트는 아이돌의 꽃이다.

다섯 사람은 포유가 이뤄놓은 1년의 성과를, 그녀들이 소중하게 빚어온 꽃을 보기 위해 공연장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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