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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226화 (226/760)

226화

요즘 가로 엔터는 한가한 분위기였다. 물론 업무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한가한 것과는 별개로 모두의 신경은 음방 무대와 연말 시상식에 쏠려 있었다.

그건 소녀연맹이라고 다르진 않았다.

“이사님.”

리카가 음료수를 마시고 싶다기에 방송국의 휴게 공간으로 데려왔더니, 정작 그녀는 음료수를 마시지 않았다.

살이 찐다는 이유였다.

리카는 드물게도 낮아진 목소리로, 무언가 심각한 일이 있단 분위기를 팍팍 냈다.

“왜?”

“저희가 시상식에 못 나간다는 게 사실인가요?”

“아…… HPT 뮤직 어워드 말하는 거구나. 거긴 시상식 무대를 팬들 투표로 선정하거든. 그런데 투표는 앨범이 발매해야 가능해.”

소녀연맹의 정규 1집은 주요 시상식이 대부분 끝난 뒤에야 나왔다. 그래서 앞으로 참가할 수 있는 시상식은 두세 개가 전부였다.

“걱정은 하지 마. 인민이들이 표를 못 채워도 ‘롱 포’로는 나갈 수 있거든.”

“그렇군요.”

성필은 자신의 음료를 뽑고 잠시 고민했다.

‘안 먹는다고 말은 해도, 한 입만 달라고 하겠지?’

안 먹겠다고 말한 리카의 몫까지 뽑았다.

“마셔.”

“안 마실 거예요. 활동 기간에는 체중 관리를 더 철저하게 해야 해요.”

“사람 끌고 와 놓고서 뭐야.”

아마 음료가 목적이 아니었을 것이다.

성필은 리카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였네요.”

“뭐가?”

“박 이사님이 저한테 예쁘다고 했던 곳이요.”

“아, 에리카 씨한테 들켰었지. 음, 에리카 씨가 별말 없으셨어?”

“아타시(저) 에리쨩이랑 얘기 별로 못 나눴어요. 대기실로 놀러 가도 시간이 얼마 없었어요.”

“그렇구나.”

“저…….”

드디어 본론이 나오려나 보다.

리카는 우물쭈물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주먹을 꽉 쥐곤 쏘듯이 말했다.

“이사님!”

“응.”

“……아니에요.”

“뭐야, 말해줘. 이상한 얘기라도 괜찮아.”

“……저희 오늘 음방 1위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신이 아니고서야 모를 것이다.

소녀연맹은 컴백 2일 차에 접어들었다. 케이어스도 그와 비슷한데, 어제는 두 그룹 모두 1등에 들지 못했다.

3주 전에 컴백한 어느 보이그룹이 온갖 음방을 휩쓸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해외 콘서트 투어 일정 때문에 활동을 종료하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비켜준 참이었다.

“1위 하고 싶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나도 하면 좋겠어. 그런데 솔직히 말하라면 잘은 모르겠어.”

“…….”

“이제 갈까?”

성필이 일어나자 리카도 반사적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대기실로 들어가기 직전, 리카는 성필의 옷자락을 잡아서 멈춰 세웠다.

그녀의 표정을 보자마자 성필이 직감했다.

아까 리카가 어렵사리 꺼냈던 ‘1위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은 연막이었다. 지금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진정으로 묻고 싶던 것이리라.

‘무슨 말일까.’

어제부터 리카의 상태가 이상하긴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케이어스의 무대를 보고 난 뒤부터 이상했다. 어쩌면 케이어스에게 과도한 경쟁의식을 느끼는 나머지 압박감을 받고 있을 수도 있다.

성필은 그녀와 눈을 맞추고 느긋하게 말이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박 이사님은…… 이제 에리쨩을 안 좋아하는 건가요?”

“……응? 갑자기 에리카 씨가 왜 나와?”

“에리쨩…… 아니, 케이어스를 안 좋아하는 건가요?”

성필은 뇌가 거칠게 흔들리는 듯한 착각을 받았다. 방금 리카의 말을 듣고 ‘어, 내가 그런가?’란 생각이 들어서, 정신을 제대로 부여잡는 게 힘들었다.

‘내가 케이어스를 안 좋아해?’

왜 리카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이사님 무대 보면서 자꾸 시선을 돌리려고 했어요. 난다카(뭔가), 보기 싫은 걸 보는 것처럼요.”

“…….”

“이번 컴백곡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성필은 억지로, 그러니까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그게 중요해? 내가 케이어스를 안 좋아하게 됐으면 좋은 거 아니야? 리카 너 막 나 놀리고 그러잖…….”

“저 때문인가요?”

리카는 아까부터 잡고 있던 성필의 옷자락을 놓았다. 그리고 벌을 받는 아이처럼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시선을 살짝 떨어뜨렸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그녀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자꾸…… 아타시(저)를 에리쨩이랑 비교하고. 소녀연맹을 케이어스랑 비교하면서 이사님한테 뭐라고 해서…… 그런 건가요……?”

자신 때문에 그토록 좋아했던 것을 싫어하게 된 건가?

리카의 질문은 이런 뜻이었다.

자꾸만 케이어스를 가지고 성필을 귀찮게 만들어서, 곤혹스럽게 만들어서, 그래서 성필이 아예 케이어스를 싫어하게 된 걸까.

“죄송…….”

리카의 입에서 사과가 나오기 직전, 성필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리카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리카, 아니야. 내가 다른 사람 때문에 지조를 굽힐 인간이야?”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성필은 따스하게 미소 지어 주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거면, 너희들이 날 붙잡아서 고문해도 마음을 바꾸진 않아. 음, 내가 케이어스를 싫어하게 됐다고 느꼈어?”

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흔한 일 아니야? 좋아하다가도 곡이 잘 안 뽑히면 탈덕하곤 하잖아. 나도 무의식적으로 ‘이번 곡 별로네’ 같은 생각을 했겠지. 케이어스를 싫어한다…… 같은 건 아니지만. 리카, 내가 케이어스 사녹 보고 그런 반응을 보인 건 너 때문 아니야. 정말로.”

리카의 눈이 안심한 듯 기쁨으로 휘어졌다.

“그리고 너희들 때문에 싫어하게 되면 뭐 어때서? 난 너희가, 리카 네가 케이어스보다 훨씬 소중해. 네가 싫어하는 건 안 하고 싶어.”

리카의 눈매가 감동한 듯 조금씩 떨려왔다.

그제야 성필은 리카의 입에서 손을 뗐다.

“너도 참 특이하다. 이런 걱정을 왜 해?”

“테레비에서 봤어요!”

리카가 평소의 어조를 되찾았다.

한국어가 서툴렀던 시절 발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 목소리를 키웠던 버릇이다. 말끝마다 느낌표가 따라다니는 듯 활기찬 목소리가 돌아왔다.

“또 부부 상담 프로그램이야?”

“하이(네)! 서로의 취미를 이해 못 하는 부부는 항상 안 좋은 결말을 맞아요!”

“그래서, 너희들 때문에 내가 케이어스를 안 좋아하게 된 걸까 봐 걱정한 거야?”

“맞아요! 친구 관계에 금이 가면 안 되잖아요!”

“부부 상담 프로그램에서 얻은 지혜를 우정에 대입하면 어떡해.”

“사랑은 결국 우정의 확장판이니까요!”

“그런가? 아무튼, 아까 ‘죄송하다’고 하려고 했지? 걱정해줘서 고마워. 근데 죄송이란 말은 쉽게 꺼내지 마. 리카 네가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나는…….”

갑자기 리카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러곤 다급히 성필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얘가 왜 이러지 싶었는데, 옛날에도 이것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성필이 황급히 뒤로 돌아보았다.

“…….”

종이백을 든 에리카가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흰색의 종이백과 확연히 대비될 정도로 붉어져 있었다.

“아, 와, 와타쿠시(저)…….”

에리카는 황망하게 벽을 더듬으면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바닥에 종이백을 두고는 가져가라는 듯 떨리는 손을 휘휘 저었다.

“이거, 이번에 나온 저희 앨범 구성품들인데, 박 이사님이 케이어스 팬이라고 하셔서…….”

에리카는 뒤로 물러나다가 벽면의 의자에 오금을 부딪치곤 성대하게 넘어졌다.

그러고도 뒤로 물러나길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

성필은 에리카가 있던 자리로 가서 종이백을 들었다.

안을 보니, 케이어스의 앨범 패키지 구성품들이 풀 세트로 들어있었다.

성필은 리카의 곁으로 돌아왔다.

“…….”

둘은 말없이 대기실로 향했다. 종이백과 대비되게 붉은 얼굴이 복도를 둥둥 떠다녔다.

잠시 후, 대기실에 도착한 성필은.

“이젠 뭐라고 할 마음도 안 생기네. 또 케이어스한테 굿즈 받아왔어. 뭐 걔들한테 굿즈 맡겨놨어요? 좋겠네요, 앨범 안 사도 구성품 올 클리어할 수 있고.”

신아름에게 시달려야 했다.

* * *

소녀연맹의 팬덤, 인민은 며칠간의 사투를 거쳐야만 했다.

[다들 투표하세요!]

트잇터에서는 각종 소녀연맹의 시상식 투표를 독려하는 계정들이 생겨났다.

또한 어떻게든 소녀연맹의 음원을 위로 올려보내기 위해 시시각각 총공이 감행되었다.

아예 시간, 분별로 스트리밍해야 할 목록을 짜두고 모든 인민이 그것을 수행하도록 지령을 전파했다.

남팬들은 소녀연맹 마이너 갤러리를 중심으로, 여팬들은 트잇터를 중심으로 정교하게 조직된 팬덤이 빛을 발했다.

대부분의 인민이들은 효과적으로 정보를 접하고 총공에 동참할 수 있었다.

[스밍 시각, 방법, 이벤트 참여법]

[각종 시상식 투표법]

[전(全) 인민이 시급히 취해야 할 행동강령]

인민들이 공세를 벌인 곳은 갤러리와 트잇터만이 아니었다.

소녀연맹 팬덤의 다양한 연령대를 고려하여(비록 그것이 한 줌뿐일지라도) 여러 매체를 돌아다니면서 지령을 전달했다.

야자수톡의 오픈 채팅방과 네이버 밴드 등,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이면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이대로는 안 될 거 같아요 ㅠㅜ]

[‘아라베스크’나 ‘보라색 튤립’으로 무대에 올려야 하는데…….]

소녀연맹은 뮤직 어워드 투표 마감을 고작 일주일 남기고 컴백해 버렸다. 소녀연맹의 정규 앨범을 후보에 띄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때, 한 줄기 빛이 생겼다.

[이거 우리 오픈 채팅방에서 쓰는 방법인데…….]

어느 야자수톡 오픈 채팅방은 두 가지 그룹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첫 번째 그룹, 투표 계정을 무한대로 반복 개설하는 역할을 맡는다.

두 번째 그룹, 그 계정을 이용하여 표를 긁어모아서 소녀연맹에게 투표한다.

이런 방식으로 투표수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있었다. 이 방법은 금세 갤러리와 트잇터에도 전달되었다.

[계정 생성하는 법]

정보를 알리는 트잇터 계정.

[생성된 계정 공유합니다]

개설된 계정을 알리는 계정.

[표는 30분 안에 최대 10개까지 모을 수 있습니다. 10개를 모으고 투표한 뒤에 계정은 폐기해주세요.]

투표를 독려하고 현재까지 집계된 투표수를 보고하며 알리는 계정.

수많은 인민이 동원되었다.

그 전쟁은 새벽과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었다.

“흐아, 아…….”

김채현은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도 미친 듯이 스마트폰을 두드렸다. 그녀는 생성된 계정으로 표를 모아 투표하는 그룹에 속해 있었다.

그 모습을 백설하의 동생인 백수현이 한심하단 듯이 쳐다보았다.

“그렇게 해서 언제 수십만 표를 모아?”

“안 도와줄 거면 닥쳐.”

“……까칠하네. 아니, 그거 근데 부정 투표 아니야?”

“부정 투표 아니야. 애초에 이러라고 만들어 둔 시스템이니까.”

투표 계정은 이메일만으로도 만들 수 있다.

만약 1인 1표 시스템으로 가고 싶었다면 핸드폰 인증을 했을 것이다.

시상식을 여는 주최 측도 아는 것이다. 팬들이 계정을 다수로 만들리란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계정으로 여러 사이트에서 광고를 보거나 이벤트에 참여해 표를 모으면, 시상식 측도 이득을 보게 된다.

“하라고 해둔 걸 안 하는 게 바보지.”

“그래도…….”

“시상식에 투표하는 건 팬밖에 없어. 그리고 팬들은 이런 일 다 해. 안 하는 팬덤은 없어.”

보통 사람들은 연말의 시상식을 텔레비전에서 보기만 할 뿐, 능동적으로 후보 무대 투표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애초에 주최 측에서 팬들을 노리고 만든 시스템인 것이다.

“근데.”

김채현이 스마트폰을 미친 듯이 누르는 것을 멈추고 백수현을 노려보았다.

그는 김채현의 눈빛을 받곤 움찔해서 거리를 벌렸다.

“너 투표 안 했지?”

“그…… 렇긴 한데.”

“말 나온 김에 해 빨리! 소련이들 뮤직 어워드 후보에 못 올라도 돼?”

백수현은 김채현의 시달림에 못 이겨 결국 사이트에 접속하여 투표를 마쳤다.

오늘 김채현이 이런 짓을 벌이는 걸 보기 전까지는 이런 투표가 있는 줄도 몰랐다. 애초에 소녀연맹 관련 커뮤니티를 잘 하지 않으니 말이다.

‘난 앨범 사고 뮤비 정도만 보니까. 아이튜브에 올라오는 컨텐츠들 보거나.’

그런데 지금까지 쌓인 표를 보니, 소녀연맹이 목표치에 도달하는 건 힘들 듯하다.

“야, 이거 가능한 거야?”

“몰라.”

“모르면…….”

“몰라도 하는 거야.”

김채현은 백수현이 투표한 것을 확인하곤 다시 노동에 들어갔다.

“가능할지는 몰라도, 소련이들은 알아줄 거니까…….”

자신들을 사랑하고 이토록 노력하는 팬들이 있단 사실을, 소녀연맹은 알아줄 게 틀림없다.

비록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팬들의 마음은 남아서 아이돌에게 전달된다.

김채현도 미쳐서 이런 재미도 없는 반복 노동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당연하게도 소녀연맹이 아니지만, 소녀연맹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팬들이 있단 게 너무나도 기뻤다. 그리고 자신이 소녀연맹의 팬이란 게 행복했다.

“알아줄 거야 분명히…….”

사랑하는 아이돌을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어서 이렇게까지 해주는 사람들이 있단 건, 이야기만 들어도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심지어 그 당사자인 소녀연맹은 어떻겠는가.

‘팬미팅 때 하양이가 그랬어.’

‘같이 올라가자’고 말이다.

‘내가 꼭 시상식에서 상 받게 해줄게, 하양아. 내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

* * *

귀를 때리는 자명종 소리에 유용태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불을 쓴다고 자명종이 꺼지는 건 아니지만, 소리가 커질수록 유용태는 점점 더 침대의 안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셋 세자.’

셋을 세고 벌떡 일어나자.

그럼 씻고 밥 먹고 회사로 가는 것이다.

자, 하나, 둘, 세…….

까톡!

자명종 소리에도 눈을 감고 있던 유용태는 ‘까톡’이란 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핸드폰을 집었다.

“……뭐야.”

김채현이 이미지 파일 여러 개와 함께 짧은 글을 보내왔다.

[인민이들이 해냈어요!]

유용태는 멍한 정신으로 김채현이 보낸 이미지를 확인했다. 그러자 즉시 아침잠이 달아났다.

“어, 어? 채웠네?”

무려 수십만 표를 채웠다.

설마 새벽에도 인민들이 계속 투표한 건가?

“소녀연맹 팬은 다 학생이나 백수들인가……?”

그리 아연실색하고만 있기엔, 유용태에게도 기쁜 일임이 틀림없었다.

유용태는 다음 이미지 파일로 넘겼다.

영어였다. 영어로, 소녀연맹의 한국 팬덤에게 날리는 격려와 칭찬이 잔뜩 쓰여 있었다.

‘트잇터구나. ……음?’

그다음 이미지는 그냥 트잇이 아니다.

이건.

‘실시간 트렌드로 올렸어?’

해외의 인민이들이 한국어로 실시간 트렌드를 올려주었다.

[인민이들_평화_속에_쉬어!]

현재 한국 실시간 트렌드 10위권 내에 버젓이 올라와 있다. 그 뒤로도 각국의 인민이들이 ‘고맙다’는 말을 자국어로 끊임없이 해댔다.

“……하하.”

아마 해외의 팬들도 보답하고 싶었으리라.

그들은 한국 홈페이지에 가입해서 투표할 수가 없다. 소녀연맹이 시상식 무대에 컴백곡으로 오르지 못 하리란 사실을 듣고도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투표가 완료된 현시점, 실시간 트렌드에 올리는 것으로 해외 팬덤의 화력을 보여주고 감사를 전했다.

바다 건너에도 소녀연맹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단 사실을, 한국 인민이들의 고생을 알아주는 이들이 있단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유용태는 김채현에게 톡을 보냈다.

[수고했어.]

그 시각, 김채현은 지각이 분명할 시간임에도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더없는 행복으로 물들어 있었다.

* * *

성필은 HPT 뮤직 어워드 홈페이지를 보곤 놀라움을 감추기 힘들었다.

소녀연맹의 ‘아라베스크’가 기어코 요구 투표량을 모두 채워, 음악상 후보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와, 이게 되네.’

고작 이틀 남짓한 시간에 요구량을 전부 채운 건 엄청난 일임이 틀림없다.

웬만큼 열성적인 팬덤이라도 이루기 어려운 일이다. 코어 팬층을 얻기 어려운 걸그룹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앨범 판매량을 봤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인민이들의 충성도는 일반적이 아니야.’

성필은 회귀한 후, 미래에 성공할 그룹들의 성공 방식을 어느 정도 답습했다.

소녀연맹 멤버들이 데뷔 전부터 팬들과의 교감을 중시하도록 만들고, 팬과 함께 승리하는 서사를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아이돌의 성공 방식은 그대로 따라 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저마다의 상황과 강점이란 게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애들은 해냈어.’

이틀 만에 불가능한 목표를 이룰 만한 열성적인 팬덤을 갖는 데 성공했다.

모든 아이돌의 목표는 결국 공고한 팬덤을 구축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팬덤이 있고 나서야 아이돌의 수익 모델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녀연맹은…….

‘아니.’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이 소식을 멤버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녀들을 사랑하는 수많은 팬이 있단 사실을 전해야만 한다.

성필은 급히 소녀연맹의 대기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좁은 대기실에서나마 몇몇 댄서들과 간단히 춤을 맞추고 있는 멤버들이 보였다.

“얘들아, 너희 HPT 뮤직 어워드 ‘아라베스크’로 올라갈 수 있어!”

갑자기 전해진 소식에 멤버들이 당황한 것도 잠시, 그녀들은…….

“어떻게요……?”

당연하게도 의문을 먼저 표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성필도 처음 봤을 때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인민이들이 해냈어!”

팬들은 잠까지 줄여가며 소녀연맹을 위해 투표해주었다.

사랑하는 아이돌이 연말 무대에 컴백곡으로 서길 바라는 하나의 소망만을 지니고, 아이돌 자신조차 불가능하다고 포기했던 목표를 이뤄냈다.

“결국 투표수 채운 거야!”

그제야 멤버들에서 반응이 돌아왔다. 그녀들의 면면에서 행복과 기쁨이 전해졌다.

가장 빨랐던 건 장하양이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SNS에 글을 작성했다. 팬들을 향한 사랑이 가득한 감사 인사였다.

그것을 본 다른 멤버들도 차례로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어, 어, 뭐, 뭐라고 쓰면 좋죠!”

리카는 빠르게 글을 완성해가는 멤버들을 보면서 초조함을 태웠다.

“아! 오늘 기념 라이브 켜야겠어요! 지금 켤래요!”

“리카, 곧 드라이 리허설이잖아.”

“이 고마움을 글만으로 전달하고 싶지 않아요! 직접 인민이들 보고 고맙다고 할래요!”

직접 보는 건 아니지만, 행복으로 풀어진 리카의 얼굴을 보는 인민이들은 기쁠 게 틀림없다.

“일단 리허설부터 마치고 짧게라도 켜자. 팬들한테 가장 큰 보답은 너희가 좋은 무대를 보여주는 거잖아.”

“……그렇네요!”

팬은 아이돌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삼는다. 그리고 아이돌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여긴다.

그러니 팬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리허설도 완벽하게 하고, 오늘 무대로 1위를 받을 거예요!”

음방 1등.

소녀연맹이 데뷔 때부터 꿈꿔왔던 소원을 지금 이 순간 이루는 게, 팬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큰 선물일 게 틀림없다.

“저희도 선물을 받았으니까.”

성필은 주먹을 불끈 쥐고 전의를 다지는 리카를 보자 가슴이 간질거려왔다.

아까 열성적인 팬덤을 구축한 것 자체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녀연맹의 성공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짜 성공은 다른 데 있었다.

‘진심으로 팬을 위하는 마음가짐.’

진심으로 팬에게 행복을 주고자 하는 리카와 멤버들. 그녀들이 소녀연맹에 있는 것 자체가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인민이들한테 선물을 줄 거예요!”

* * *

“축하합니다!”

남자 아이돌 MC의 말과 함께 여기저기서 꽃가루가 발사되었다.

커다란 폭죽 소음에 소녀연맹 멤버들이 어깨를 거칠게 떨었다. 하지만 당황은 잠시, 그녀들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즉시 파악했다.

주변에서는 다른 아이돌들의 박수가 우레처럼 쏟아졌다.

“소감 부탁드립니다.”

MC가 쥔 마이크가 점점 백설하에게로 다가왔다.

다가와서, 지나친다.

에리카가 마이크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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