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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224화 (224/760)

224화

소녀연맹은 선배 출연진의 대기실을 돌아다니며 앨범을 선물했다.

“둘, 셋.”

백설하의 선창과 함께 멤버들이 허리를 굽혔다.

“우리들의 연맹, 소녀연맹입니다!”

항상 같은 구호와 같은 몸짓, 그리고 웃음이다.

데뷔 때부터 한결같이 해왔던 일이다. 하지만 그 반응은 이전과 비할 바가 못 됐다.

“노래 잘 듣고 있어요! 이번 곡도 너무너무 좋아요!”

리더인 백설하의 손을 붙잡고 과하게 친한 척하는 건 약과 중의 약과였다.

“나중에 음방이나 시상식에서 콜라보 무대 같은 거 해봐도 좋겠어요.”

은근슬쩍 소녀연맹과 같이 무대에 서려는 욕망을 드러낸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 칭찬과 웃음으로 소녀연맹을 대했으나, 오히려 더 싸늘해진 자도 존재했다.

“예, 잘 들을게요.”

어느 데뷔 4년 차 걸그룹은 노골적으로 소녀연맹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앨범을 나눠주면 으레 안부 인사나 칭찬이 오가지만, 그녀들은 인사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마치 ‘말을 하려면 너희들이 분위기를 띄워 보라’는 듯, 멤버 전원이 의자에 앉아 소녀연맹을 빤히 쳐다보았던 것이다.

‘왜, 왜 이러시지?’

백설하는 당황하여 손만 꼬았다. 어째서 선배들이 이러는지 짐작 가는 바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뒤에 선 신아름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경계하는 거야?’

걸그룹은 일정 부분 팬덤 풀을 공유한다.

보이그룹과 같은 충성도는 기대하기 힘들며 의리로 걸그룹을 쭉 파는 사람의 수는 적다.

걸그룹이 대중성으로 싸운다는 건 이런 약한 팬덤 응집력에 기인한다. 중소 기획사의 걸그룹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자기네들 팬 뺏어갈까 봐?’

솔직히, 신아름은 보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이제 소녀연맹은 한 앨범을 십만 장 이상 판매한 그룹이 되었다.

오늘 바로 앨범이 릴리즈되었으니, 십만 장을 훨씬 상회할 가능성도 있다.

이 정도의 성과를 낸 걸그룹은 현재 한국 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즉…….

‘애초에 싸움이 안 되는데 왜 경계하지?’

설마 후배가 교만해지길 바라지 않아서 일부러 저러는 건 아닐 테고.

‘그냥 질투인가 보다.’

분위기가 어색해지려는 찰나, 신아름이 백설하의 옷자락을 꾹꾹 당겼다.

마치 인형처럼, 그 신호에 백설하가 자동적으로 말했다.

“아,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결국 대기실에선 그럴듯한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나와버렸다.

“아름아, 무슨 일이야?”

“쌤이 그 인간들 앞에서 땀 뻘뻘 흘리는 거 보기 싫어서요.”

“어……? 그, 무슨 일 생긴 게 아니라?”

아까 대기실에 흘렀던 미묘한 분위기는 백설하도 버티기 어렵긴 했다.

하지만 별다른 대화도 나눠보지 못하고 나오니 마음이 찜찜했다.

“아까 그 사람들 뭐야?”

조아라가 툴툴거렸다.

“선배라면서 유세 떠는 거야 뭐야. 우리 나대기 전에 기죽이려는 것도 아니고.”

“아라야, 복도에선 그런 말 하지 마.”

장하양의 일갈에도 조아라는 기분이 나쁘단 티를 냈다. 다른 아이돌에게 이런 취급을 받는 건 처음이어서 감정을 갈무리하기 힘들었다.

그 뒤로도 소녀연맹은 여러 대기실을 돌아다녔다. 그녀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 있었는데, 바로…….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바로 후배 아이돌 그룹이 생긴 것이다.

그녀들은 소녀연맹과 마주치자마자 눈과 손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소녀연맹의 앨범을 받으면서도 손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였으니, 그녀들이 긴장했단 사실은 자명했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리카가 나섰다.

리카는 리더의 손을 부드럽게 마주 잡았다.

“오늘이 첫 무대인가요!”

“아, 아뇨. 이 주 전에 데뷔했어요…….”

“……너무 떨지 마세요! 저희도 데뷔 때 많이 떨었는데 결국엔 무대 올라가선 잘했거든요!”

“아, 네.”

이 주 전에 데뷔한 그룹에게 해줄 만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리카는 어떻게든 선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흔히 사람들이 ‘꼰대 같다’고 할 만한 행동을 했다.

“인생이란 게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장하양이 리카의 등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그 즉시 리카가 말을 멈추었다. 고개만 꾸벅이던 신인 그룹도 리카에게서 간신히 해방됐다.

“리카 너 방금 뭐였냐? 진짜 너 같은 선배 만났음 다신 오기 싫겠다.”

“에, 그게, 어쩐지 계속 말이 나와서…… 뭐라도 말해주고 싶었는데……. 하양 언니, 아타시(저) 많이 이상했었나요?”

“응.”

“즉답?!”

리카가 조아라에게 달라붙어 ‘어떡하지? 그분들한테 다시 찾아가 볼까? 사과해야 할까?’라며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댔다.

조아라는 대강대강 답해주면서 핸드폰만 만졌다.

“아라쨩 뭐야! 왜 핸드폰만 봐! 정말 남자 친구 생긴 거야?”

“뭐?!”

조아라는 다급히 달려들려는 백설하에게 손바닥을 펼쳤다. 마치 강아지에게 ‘멈춰’를 훈련하는 듯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계산기 쓰고 있었어요.”

“에, 계산기는 왜?”

“우리 앨범으로 번 돈 보고 있었어.”

“아까 봤잖아.”

“걍, 봐도 봐도 기분이 좋네.”

숫자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해진다.

금융치료란 게 이런 거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소오(그래)! 이대로라면 빚을 까는 것도 꿈이 아니야! 빨리 돈 벌어서 사고 싶은 거 잔뜩 사야지!”

“아하하, 이번에 우리가 많이 벌긴 했지? 3억 정도 벌었잖아.”

“네?”

조아라가 무슨 소리냐는 듯 장하양을 쳐다보았다.

“응? 아니야?”

“3억이 아니라 30억이에요.”

“…….”

장하양은 핸드폰을 꺼내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린 채 1의 자리부터 숫자의 단위를 계산해갔다.

“쉼표가 세 개에…….”

“애초에 3억이 말이 돼요? 우리가 전 앨범으로 거진 10억 벌었…….”

장하양이 비틀거렸다.

“하양아?!”

백설하는 의자에서 쓰러지기 직전인 장하양을 급히 부축했다.

언제나 장하양은 앨범 판매액을 들으면 정신을 잃곤 했다. 하지만 오늘 자정은 아니었었다.

아이돌 활동을 오래 해서 익숙해졌나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냥 계산을 틀렸던 것이다. 혹은 뇌가 30억이란 숫자를 받아들이길 거부했거나.

“하, 하양아 정신 차려!”

안 그러면 또 리카가 와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리카는 장하양이 판매량을 듣고 기절할 때마다 과하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던가.

“괜찮, 아요.”

장하양은 백설하에게 기대어 느슨한 미소를 보였다. 그녀는 30억이란 말을 되새김질하면서 겨우 균형을 찾았다.

“저도…… 익숙해졌으니까요!”

“오오, 언니 뭔가 선배 아이돌 티 나요.”

“삼, 30억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쾌활하게 말하던 장하양은 우뚝 멈춰서 다시 ‘30억……’이라고 중얼거렸다.

소녀연맹 멤버들은 성필에게서 여러 연예계의 지식을 습득한바, 30억이란 금액의 무게를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들이 항상 우러러만 보던 누구누구 선배님이 속해 있는 기획사, 어떤어떤 그룹을 가진 기획사.

그런 곳의 매출을, 소녀연맹은 이번 앨범만으로도 근접한 것이다.

아이돌, 한 번 대박 나면 인생 역전!

“우리…… 성공한 거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멤버들은 꺼지지 않을 듯 찬란한 미소를 내걸고 장하양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장하양은 아하하 웃었다. 자정에 판매량을 듣고 느꼈던 감동이 다시금 찾아왔다.

“얘들아, 고마워…….”

장하양은 백설하를 껴안았다. 그리고 그녀들을 중심으로 동생 라인이 동그랗게 모여 안아주었다.

“정말…… 상하차랑 비교가 안 되는구나…….”

비유가 이상하긴 했지만, 장하양이 감격했단 사실만은 확실했다.

“앗! 음료수 마시고 가요!”

앨범 돌리기도 끝에 이르러, 리카는 싱글벙글 휴게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자판기 앞에 선 그녀는 무엇을 먹을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간신히 하나를 선택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

“돈이 없어…….”

리카가 멤버들을 쳐다보았으나 동전이나 지폐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바카미타이(바보 같아)…… 30억을 벌었는데 천 원도 없다니!”

결국 소녀연맹은 음료수도 없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리카는 휴게 공간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부럽단 듯 바라보았다.

“나한테도 돈이 있다면…….”

“음료수 마시면 살찌잖아. 안 마시면 더 좋지 뭘. 아…….”

갑자기 조아라가 버퍼링에라도 걸린 듯 멍해졌다. 백설하가 이상하게 여겨서 물으니.

“맛있는 거 먹고 싶어요. 치킨이나 피자나. 못 먹은 지 오래됐잖아요.”

“음, 회식 때 먹지 않을까? 앨범 활동 끝내고.”

“활동 끝나고…… 저희 이번에야말로 휴가받을 수 있겠죠?”

아이돌이라고 일 년 내내 일만 하진 않는다.

소녀연맹에게도 휴가와 공백기가 필요하다.

눈코 뜰 새 없이 달려왔던 1년이었으니, 공백기를 두 달 정도는 주지 않을까 싶다.

“그럼 진짜 먹고 싶은 건 다 먹어야지. 초밥이랑 피자랑 치킨이랑 족발이랑 파르페랑 와플이랑 또, 또 뭐 먹지?”

“우리 휴식기 없을 텐데.”

장하양이 초를 쳤다.

“바로 일본 데뷔 준비해야 하잖아. 박 이사님이 내년 초라고 하셨으니까.”

“…….”

아이돌, 한 번 대박 나면 인생 역전!

그러니까 대박 나면 쉴 새 없이 구른다!

“음?”

그때, 자판기에서 음료를 잔뜩 뽑은 남자가 소녀연맹의 앞에 엉거주춤 멈춰 섰다.

“소녀연맹 맞죠?”

“아, 네!”

백설하는 그가 방송국 관계자라 생각하여 벌떡 일어났다.

뒤이어 멤버들도 일어나자, 그가 크게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앉아요 앉아. 저 매니저예요.”

“아아…….”

“이름은 유하음이고. 웨이퍼센트 알죠? 아까 인사도 왔으니까요. 그리고 저…….”

유하음은 자신을 바라보는 다섯 중 유난히 눈빛이 강렬한 한 명이 있단 것을 깨달았다.

리카였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던 유하음은 자신의 손에 들린 음료를 보아야 했다.

“아, 동전이 없으시구나. 하나씩 드실래요?”

“아뇨, 저흰 괜찮…….”

“감사합니다!”

리카가 얼른 캔 음료를 하나 낚아챘다.

“리, 리카. 처음 뵙는 분인데 이러면…….”

“처음 뵙는 분 아니에요!”

“응?”

“웨이퍼센트를 맡으신 유하음 팀장님! 박 이사님 친구분이에요! 박 이사님이 매니저 대타로 가신 적도 있으세요!”

“……응?”

그런 적이 있었나?

백설하는 전혀 기억에 없었다.

아무튼, 성필의 친구라 하니 그의 성의를 마냥 거절할 수만도 없었다.

멤버들은 하나씩 음료를 손에 들었다.

“말 건 건 특별한 이유는 아니고요. 성필이가 담당하는 그룹이라서 얼굴도장이라도 찍게요. 아 그거 알아요? 거기, 음악세상 무대 한 타임 비었단 거 제가 성필이한테 제일 먼저 알려줬거든요. 그러니까 저도 소녀연맹한테 도움을 좀 줬달까? 그렇죠?”

얼마 전 음악세상 PD와 대판 싸우고 그에게 사과를 받은 신아름이 활짝 웃었다.

“아, 매니저님이 도와주셨구나!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 더블 타이틀 공개도 할 수 있었어요!”

“에이, 뭘요. 아 맞다. 이번에 기대하고 있어요. 뮤직어워드에…….”

음, 그건 조금 힘들려나.

유하음이 어색하게 말꼬리를 흐렸다. 이내 그는 자판기에서 또 음료를 뽑곤 소녀연맹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투쟁! 해방! 소녀! 연맹! 승리! 우리들의 연맹, 소녀연맹 파이팅!”

“감사합니다!”

유하음이 사라지자 멤버들도 캔을 따서 음료를 마셨다.

힘겨운 대기실 인사 순회를 마치고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다.

다들 여유를 즐기며 쉬는 도중, 리카는 멤버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저기, 민나(다들). 박 이사님 오늘따라 조금 슬퍼 보이시지 않나요.”

다들 그것을 느끼고 있던 차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필은 슬프다기보다는 감정의 고저가 확연했다.

입이 마르도록 소녀연맹을 칭찬하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나라 잃은 사람처럼 눈빛이 공허해지곤 했다.

“그래서요, 저기, 아타시(저)의 예상으론 케이어스 때문…… 인 거 같은데요…….”

작년 이맘때, 성필은 케이어스의 데뷔 무대를 직접 보고 눈물을 줄줄 흘렸었다.

그리하여 자그마치 1년 동안 그 일로 시달림을 받았다. 특히 동생 라인에게 말이다.

동생 라인은 무슨 일만 있으면 케이어스를 들먹이면서 성필을 궁지로 몰아넣었었다. 장난이긴 했지만, 진심도 섞여 있었단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야 그건 아저씨 잘못이지.”

조아라가 리카의 발언을 일축했다.

“우리가 빤히 있는데 다른 그룹 보면서 울 건 뭐야. 심지어 우리가 바로 옆에 있었잖아.”

백설하는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게,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이버 직원이 라인 말고 야자수톡 쓴다고 생각해 봐. 그거 본 다른 직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냐고.”

“아니, 네이버도 회사에서 라인은 안 쓸 거 같은데…….”

“……그런가? 암튼 그렇다고. 아저씨 자업자득이지.”

동생 라인이 성필에게 케이어스를 들먹이면서 갈구는 건 사실상 언니 라인의 방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너, 너무하긴 했지.”

리카는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조아라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웃었다.

그녀도 성필의 눈물을 보곤 심장이 미어지듯 했었으니, 조아라의 반응은 이해한다.

그래도…….

“우리가 허락하고 말고 할 문제는 아니긴 하지만.”

침묵을 지키던 장하양이 입을 뗐다.

“박 이사님한테 넌지시 말씀드려보는 건 어떨까. 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 나……?”

솔직히 말하면, 성필이 케이어스의 무대를 보고 눈물 흘리는 꼴 따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번엔 괜찮지 않을까.

“그, 박 이사님, 이번에 우리 사녹 무대 보고 나서 우셨으니까……. 보, 복수? 라고 하면 거창하긴 한데…… 그으, 복수는 이룬 거 같아…….”

‘울었다’는 표현은 너무 부드럽다.

성필은 소녀연맹의 ‘아라베스크’와 ‘보라색 튤립’ 무대를 연달아 보곤 실신하기 직전의 상태로 오열했었다.

입에 주먹을 물고 끅끅대서, 옆에서 민경섭이 계속 진정시켜줘야만 했었다.

그리고 무대에서 내려온 소녀연맹 멤버들을 향해 ‘에흐하 혀하 후호해혀어……’라며, 알아듣지도 못할 격려를 해주었다.

“흐윽…….”

그때를 떠올린 리카가 또 울려고 했다.

성필의 그러한 반응은 리카에게도 이만저만 감동이 아니었다. 그래서 리카도 주먹을 입에 물고 오열했었다.

성필과 리카가 옹알이하듯 서로에게 칭찬만 하는 게 참으로 볼 만했다.

“언니, 괜찮으시다는 뜻이죠?”

“으, 응.”

장하양은 훌쩍이는 리카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을 이었다.

“왜, 부부싸움도 서로의 취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잖아. 이해해 얘들아?”

“하양 언니는 이해해요? 결혼한 적 있는 거처럼 말하네.”

“아앗! 아타시(나)도 테레비에서 봤어! 남편이 자꾸 엣찌(음란)한 영상을 봐서 아내가 힘들어했……!”

신아름이 황급히 리카의 입을 틀어막았다.

“리카, 말조심해. 여기 사람이 몇인데.”

“고멘(미안). 어쨌거나 상대의 취미를 이해해주는 건 중요해!”

멤버들의 의견이 ‘찬성’ 쪽으로 기울자 리카도 기세등등해졌다.

“하양 언니도 동의하시는 거죠!”

“아하하, 그런데 그건 남편이 잘못한 거 맞잖아.”

“하이(네)?”

“부인이 있는데 다른 여자가 나오는 영상을 보면 안 되지.”

“아, 그 얘기였나요.”

리카는 연애를 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속이 쓰릴 것 같긴 했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팀장님, 오늘은 케이어스 본다면서 들뜨지도 않았고.”

성필도 나름대로 조심했던 것일까.

케이어스를 만나고도 크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리고 ‘케이어스의 무대를 보진 않겠다’고 먼저 말하기도 했었다.

신아름은 짐짓 거만한 투로 말했다.

“이 정도면 상 드려도 되겠죠.”

“……응, ‘상’이라는 단어가 올바른진 모르겠지만.”

장하양이 결론을 내렸다.

“설하 언니, 동의하시는 거죠?”

“응.”

“너희들은?”

“얏타(해냈다)!”

“난 괜찮아요.”

“저도요.”

그렇게 소녀연맹은 합의를 이끌어낸 뒤, 대기실로 돌아가 성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성필은.

“안 볼 건데? 아까 말했잖아.”

“…….”

잠시 후.

“너희들 왜 이래 진짜?!”

성필은 다섯 명의 힘에 억지로 이끌려 무대로 향했다.

“이사님 참으실 필요 없어요! 하고 싶은 건 해야 해요!”

“마, 맞아요. 저희 눈치 보실 필요 없어요.”

“아저씨만의 길을 가요!”

“저희 괜찮다니까요. 자꾸 힘주지 마세요.”

“언니 팀장님 손 파래졌어요. 좀 약하게 잡아요…….”

다섯 명의 여자에게 끌려가는 건장한 남성.

그가 울부짖었다.

“진짜 안 봐도 된다고……!”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성필은 진심으로 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볼 용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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