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212화 (212/760)

212화

누군가 김채현의 등을 손으로 쿡쿡 찔렀다. 그녀가 돌아보자, 백수현이 중지를 들고 있었다.

“너 죽는다.”

백수현이 반대쪽 중지도 들었다.

김채현이 그의 책상 위에 올라와 있던 지우개를 쳐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백수현이 어이가 없단 듯 이마를 손으로 팍 짚었다.

“거기 둘 나와라.”

하필 복도를 순찰하던 선생에게 걸려버렸다.

김채현은 백수현을 죽일 듯이 바라보며 복도로 나갔다. 백수현은 미안하단 듯 그녀와 눈도 못 마주쳤다.

“얘들아. 야자 시간인데 놀면 돼?”

“아뇨…….”

“죄송함다…….”

적당한 훈계를 들은 뒤, 두 사람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카톡으로 설전을 시작했다.

[김채현: 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

[백수현: 당신. 17살. 오케이?]

[김채현: 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

[백수현: 오우 퍽~~~]

그렇게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니 하교 시간이 됐다.

“채현이 잘 가.”

“엿.”

“맛있게 먹을게.”

백수현은 친구들과 함께 교실을 나갔다.

김채현은 다른 반 친구인 이선주를 기다렸다가 함께 집으로 향했다. 둘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기에 항상 같이 하교했다.

김채현은 항상 하던 주제로 대화의 스타트를 끊었다.

“왜 소녀연맹 앨범이 안 나올까.”

“…….”

“올해에 컴백 안 하나?”

“…….”

“선주 무슨 일 있어?”

“……채현아. 나, 케이어스 앨범 샀어.”

이선주가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뭐?! 케, 케이어스는 우리 적이잖아! 인민의 적이잖아!”

“그치만…….”

“그치만 뭐! 케이어스는 이제 고작 데뷔곡 하나고, 또, 또, 소녀연맹보다 못하잖아!”

“그만해! 나 이제 ‘유스’야.”

“대체 왜…….”

둘은 멈춰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외나무다리에서 원수가 된 친구 같았다.

여름이 지나간 후의 바람은 이제 제법 쌀쌀함을 담아 날릴 줄 알았다.

찬 바람 때문일까, 김채현의 피부가 시려왔다.

이선주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케이어스 자체 콘텐츠가 너무 재밌어…….”

특히 일본 여행 편이 너무 재밌었다.

케이어스가 일본에 데뷔했을 때 며칠 동안 휴가를 받아 함께 여행을 하는 내용이었다.

“케이어스 너무 예쁘고, 귀엽고, 소유랑 민주가 서로 아껴주는 게 너무 좋단 말야…….”

이선주는 치여버린 것이다.

김채현은 치이는 데는 약도 없단 것을 알았다. 그저 심장이 받아들이고 자신도 모르게 팬이 되어버린다.

김채현이 소녀연맹에게 치였던 것처럼.

“소녀연맹도 있잖아, 컨텐츠.”

“케이어스만큼 잘해주지는 않잖아. 케이어스는 퀄리티가 높아.”

“그야 대형 기획사니까…….”

뷔라이브에서 독점으로 유료 제공되는 영상들은 텔레비전 방송 이상 수준이었다.

거의 공중파 예능을 수십 편 만들어놓았다.

이선주는 유료 컨텐츠를 결제하느라 뷔라이브에 얼마나 돈을 쏟았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그래도 난 아직 인민이야. 소녀연맹 컴백하면 앨범도 살 거고, 그럴 거야.”

“…….”

둘은 다시 걸었다.

이제 이선주는 소녀연맹의 앨범만을 사지 않을 것이다. 케이어스의 앨범도 사겠지.

그럼 연말 시상식에도, 사실상 이선주는 소녀연맹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김채현은 소녀연맹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아군을 잃은 기분이었다.

“응원할게. 케이어스도 잘 됐으면 좋겠다.”

“고마워…….”

김채현이 응원하지 않더라도 케이어스는 쭉 잘 나가겠지만 말이다.

이선주와 헤어지자마자 김채현은 한숨을 쉬었다.

‘케이어스를 이기는 게 소녀연맹의 목표인데.’

케이어스, 그래, 좋다.

명실상부 신인 타이틀을 달고 있는 걸그룹 중에서는 탑티어다.

옛말에도 덕질을 하려면 메이저 아이돌을 덕질하라고 했다.

성적에 목매달고 고통스러워할 일도 없고, 기획사가 관리를 잘하기에 사생활로 걱정할 일도 없다.

이선주는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이다.

‘근데 이유가 자체 컨텐츠 때문이라니…….’

소녀연맹도 아이튜브에 업데이트 잘해주지 않는가. 게다가 SNS에 사진도 자주 올려준다.

이만큼 팬들한테 효도 잘하는 아이돌도 없다.

김채현은 씻은 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었다. 그녀는 습관처럼 소녀연맹 관련 플랫폼을 순회했다.

‘SNS는 야자 때 다 확인했고.’

아이튜브만 확인하고 커뮤니티나 돌아다녀야겠다.

“올라왔네. 새 영상.”

아까 이선주의 말이 떠올라서 우울해졌다.

케이어스는 텔레비전 예능과 비슷한 퀄리티로 자체 콘텐츠를 업로드해준다.

그야 재밌을 것이다. 전문적인 KS 엔터의 제작 인원들이 뛰어들어 만들 테니, 재미없을 수가 없겠지.

‘그에 비해 소녀연맹은 퀄리티가…… 낮긴 해.’

멤버들이 핸드폰으로 촬영한 웃긴 영상.

혹은 멤버들이 자체적으로 기획한 시리즈 영상들 정도가 다다. 편집도 케이어스 정도로 깔끔하진 않다.

‘재밌긴 하지만.’

김채현의 최애 시리즈는 리카의 ‘자정의 인터뷰’와 장하양의 ‘요리왕 장하양’이었다.

장하양은 요리를 못한다. 그게 귀엽다.

못한대도 멤버들 중에서 못한다는 거지만, 그거 때문에 신아름에게 놀림 받곤 한다.

요리왕 장하양 1화에서, 본인이 요리를 못한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방송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었다.

‘오늘은 어떤 시리즈가 올라왔을…….’

처음 보는 제목이다.

‘소녀연맹 비긴즈 예고편?’

뭘까.

김채현은 홀린 듯이 영상을 터치했다.

1분이 살짝 넘는 길이였다.

어두운 화면이 몇 초 이어지다가, 검은색 배경으로 약한 조명을 받은 채 앉은 리카가 보였다.

[리카: 원래 배우가 되려고 한국으로 왔어요! 그런데 포기하고 KS 엔터에 들어갔죠! 저 거기서도 잘했어요!]

감정을 가라앉히는 BGM 속에서, 화면은 백설하에게로 향했다.

[백설하: 소녀연맹 전에도 아이돌로 활동했었어요. 그다지 성적이 좋진 않아서 해체하고…… 특기를 살려서 보컬 트레이너가 됐어요.]

대체 뭐지 이건?

김채현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 했다.

[조아라: 몰라요. 내가 뭐 하려고 했는지. 그냥 춤추고 싶었는데. 아마 댄서나, 뭐, 트레이너? 하지 않았을까요.]

들어본 적 없던 이야기다.

멤버들이 아이돌이 되기 전에 무엇을 했었는지,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그 어디에서도 밝혀지지 않은 내용이다.

[장하양: 배우 준비했어요. 아하하, 별로 재능은 없었던 거 같네요. 계속 배우를 하려고 했었는데…….]

김채현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신아름: 아시다시피 프로젝트 포유에 출연했었고, 데뷔가 확정됐죠? 아, 네. 그때 기분 좋았죠 당연히. 그런데…….]

화면이 완전히 검어진다. 그리고 경쟁적으로 멤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카: KS 엔터 데뷔조에서 떨어졌어요! 으아, 이거 어떡하지? 일본으로 돌아갈까? 저 기절도 했었다니까요!]

[백설하: 나는 평생 트레이너로 살아야지. 이게 내 길이구나. 그리고 나중에 ‘난 음악을 했었어’라며 과거를 추억하겠구나, 그랬죠.]

[조아라: 음, 다시 생각하니까 그땐 걍 꿈이 없었네요. 될 대로 돼라? 춤추는 게 전부였으니까.]

[장하양: 연기 학원에서 저한테 그러더라구요. 저는 재능이 없다고. 그래도 계속했는데, 저도 알았어요. 제가 연기 못하는 거. 절망…… 적이었죠. 하나뿐인 꿈이 부정당했으니까요.]

[신아름: 포유에서 나오게 되고. 근데 또 원래 있던 기획사에서도 데뷔조에 못 들어갈 상황이 되고. 진짜 4년 동안 아이돌만 보고 있었는데, 힘들었죠.]

다시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김채현은 귓가로 파고드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가슴이 뛴다. 크게 뛴다.

[그래서요? 어떡하기로 하셨어요?]

누군가 멤버들에게 질문한다.

화면이 다섯 개로 분할됐다. 각 화면에 멤버들이 나와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동시에 말한다.

[리카: 계속 아이돌 해야죠 뭘 해요!]

[백설하: 다 포기했었는데, 기회가 오더라구요. 다시 아이돌에 도전해보라구요.]

[조아라: 누가 해보래서 했어요. 아이돌. 관심도 없었는데.]

[장하양: 기회를 얻은 거죠. 아이돌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분을 믿었어요.]

[신아름: 저야 워낙 재능이 뛰어나니까 어디서든 데려가고 싶어서 안달이었죠. 네, 아이돌 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이어서, 멤버들의 데뷔 무대가 파노라마 형식으로 지나갔다.

[소녀연맹, 연습생부터 데뷔까지의 여정.]

감미로운 성우의 목소리와 함께 영상의 타이틀이 나타났다.

[소녀연맹 비긴즈]

영상이 끝나자, 김채현은 손을 바들바들 떨며 기어코 핸드폰을 놓쳐버렸다.

“아, 으아…….”

첫 번째 기획 콘텐츠다.

가로 엔터 차원에서 만든, 돈을 써서 만든, 소녀연맹의 자체 콘텐츠!

심지어 그 내용은 멤버들의 연습생 시절부터 데뷔하기까지의 나날들이다.

“으어, 어떻게, 이런 걸…….”

사랑해요 가로 엔터!

김채현은 커뮤니티에 가로 엔터 찬양글을 복사하듯 찍어냈다.

* * *

“예고편인데도 반응이 좋네요.”

일본어와 영어 자막도 달아둬서 그런지 외국 댓글도 심심찮게 보인다.

“SNS에서도 엄청 공유되고 있어. 며칠만 지나면 팬들은 이 영상 올라온 거 다 알겠는데?”

손혜빈의 말마따나, 소녀연맹 비긴즈는 팬덤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상헌 씨 고생했어요.”

“아니요. 영상 잘 뽑아준 제작팀 덕이죠.”

양상헌의 입사할 때부터 내놓았던 ‘소녀연맹 비긴즈’는 마침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었다.

앞으로 주마다 1회씩 아이튜브와 뷔라이브를 통해 공개될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회는 소녀연맹의 컴백 바로 전날이다.

프로모션 전략인 동시에 상당히 공을 들인 팬서비스였다.

“조회 수가 10만은 넘었으면 좋겠네요.”

양상헌은 자신의 기획이 실현됐음에도 기뻐하는 기색이 적었다.

부담감 때문인 듯했다.

혹시나 조회 수가 적으면 어떡하지. 자신의 기획 때문에 돈을 쓰고, 안 그래도 바쁜 소녀연맹 멤버들의 시간까지 갈아 넣었는데. 만약 실패한다면…….

그런 양상헌을 향해, 성필이 가볍게 말했다.

“조회 수 안 나오면 어때요.”

“안 나오면 안 되죠…….”

“이게 단발성으로 끝날 영상도 아니잖아요. 소녀연맹 팬이 된 사람들은 두고두고 보게 될 거예요. 상헌 씨가 말했잖아요. 팬들이 소녀연맹에 더욱 애착을 느끼도록 하는 장치라고요.”

“아, 예. 그랬었죠.”

“이걸 보는 사람들은 팬이면 충분해요. 20만, 30만, 이렇게 굳이 높이 나올 필욘 없어요. 그러니까 부담감 가지지 마세요.”

양상헌은 감동한 듯 짙은 미소를 띠었다.

성필은 그의 어깨를 두드려 격려해주었다.

‘이제 본격적인 프로모션 타이밍이다.’

안무가 나오고 뮤비만 찍으면, 온전히 홍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 * *

‘아라베스크’ 뮤비 촬영을 위한 준비가 모두 끝났다.

밤낮없이 소처럼 일한 조정훈 감독과 JJH사의 직원들 덕분이었다.

“얘들아, 잘 다녀와.”

출국 당일, 성필은 따라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억누르며 멤버들의 손을 한 번씩 잡아주었다.

네 번째 차례인 장하양에게서 신아름으로 넘어가려던 때, 성필은 저항감을 느꼈다.

“……?”

성필이 왜 그러냐는 듯 바라보자, 장하양은 그제야 손에서 힘을 빼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다녀올게요.”

“응, 잘 다녀와.”

이어서 성필은 신아름과 악수했다.

신아름과의 악수도 마치고 한구인에게…….

“……?”

신아름은 성필의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그녀는 살짝 막힌 목소리로 말했다.

“팀장님 따라와 주시면 안 돼요?”

“……나는 일이 있으니까.”

“알아요…….”

신아름은 성필에게 달려들어 포옹했다.

성필도 딸을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그녀의 등을 포근히 쓸어주었다.

“뭔 군대 가냐? 오바는…….”

조아라의 핀잔에도 신아름은 떨어질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렇게 1분 정도를 안은 뒤, 겨우 둘은 서로를 놓을 수 있었다.

“한 이사님. 이번에도 잘 부탁드릴게요.”

“맡겨만 주십시오.”

성필은 손을 크게 흔들며 러시아로 떠나는 이들을 배웅했다.

‘이제 막판 스퍼트 시작이다.’

날이 차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소녀연맹의 컴백도.

* * *

“협찬받아오세요.”

손혜빈의 업무 지시에 홍보팀 강지혜의 머릿속이 백지가 되었다.

밑도 끝도 없이 협찬을 받아오라니?

“소녀연맹 프로모션 협찬이요.”

“……어디서 받아올까요?”

“그건 지혜 씨가 알아봐야죠.”

“……???”

신종 직장 내 괴롭힘인가?

‘내가 팀장님한테 무슨 짓을 저질렀나?’

강지혜는 더 묻고 싶었지만, 손혜빈이 너무나 단호하여 ‘알겠습니다’라고만 말한 뒤 본인의 자리로 돌아왔다.

‘프로모션 협찬을? 어디서? 어떻게?’

아까 ‘밑도 끝도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다시금 떠올리니 정말 상황에 잘 들어맞는 말이다.

강지혜는 인터넷에 ‘협찬받는 법’을 검색했다.

역시나 제대로 된 자료 따위 나오지 않았다.

강지혜는 백지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한테 도움받을 수는 없나?’

같은 홍보팀 양상헌은 콘텐츠 제작 때문에 바빴다. 그는 항상 바빴기에, 도와달라고 하기에 미안하다.

나이도 많고…….

‘재호한테 말해봐?’

A&R팀 이재호는…….

‘걔도 안 돼.’

처음 가로 엔터로 들어왔을 때는 멀쩡한 인간이었는데, 손혜빈에게 집중 교육을 받더니 이상하게 변해버렸다.

이상해서 도움을 요청하기 싫단 건 아니다.

이재호는 요즘 믹싱 현장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실은 경험치를 얻기 위해 믹싱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을 뿐이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매우 바쁘게 보인다.

실제로 본인도 고통스러워하고 말이다.

‘매니저팀은 이쪽을 잘 알까? 아마 아니겠지. 그럼 남는 건…….’

재무팀의 경리 권아인이다.

그녀는 업무를 보는 중이었다. 얼굴은 항상 싱글벙글에 미소가 떠나가지 않는다.

한구인이 멤버들의 뮤비 촬영에 따라가서, 더는 그의 시선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상사가 자리를 비우면 행복한 건 모든 직장인 공통인 듯했다.

‘아인이는 그냥 경리잖아.’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나마 강지혜가 맡고 있던 업무들은 자잘한 수준이었다. 그것들을 하면서 프로모션 협찬을 기획할 시간도 낼 수 있었다.

‘으와, 우리나라에 브랜드가 이렇게 많았어?’

온갖 기업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던 기업들은…….

‘이런 데가 소녀연맹한테 협찬을 해줄 리가 없겠지…….’

그냥 ‘협찬해주세요’라고 말하면 안 된다.

강지혜가 콘텐츠와 홍보 전략을 기획해서 문서로 작성하고 직접 전달해야 한다. 그게 기업으로부터 통과가 되어야 협찬까지 이루어진다.

‘심지어 기업마다 다른 기획에 필요해. 파는 물건들이 다르고, 홍보 전략도 달라질 테니까.’

어디 하나를 콕 짚어야 할 텐데.

‘대체 어디를?’

모르겠다…….

강지혜는 며칠을 폐인처럼 지냈다.

인터넷에서 기업을 검색해보고 연혁이나 브랜드 이미지를 알아보는 게 일상이 됐다.

괜찮다고 생각해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면 퇴짜를 맞는 것도 일상이 됐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할 만한 곳이면 굳이 소녀연맹으로 홍보를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강지혜는 휴일에도 편하게 쉴 수 없었다.

결국 쉬어서 머리를 좀 식히기로 했다.

모처럼 꾸미고 번화가로 나왔으나, 강지혜의 눈은 전혀 쉬지 않았다. 그녀는 보이는 모든 간판과 브랜드의 이름, 전광판과 현수막을 스캔했다.

‘여기에 현수막이 걸리면 홍보가 될까? 하아, 미치겠다. 어디서 소녀연맹을 홍보해줄까?’

절망에 빠져 있던 도중, 길게 늘어선 줄이 강지혜의 눈에 들어왔다.

화장품 매장의 입구로부터 수십 미터의 행렬이 이어져 있었다.

근처의 입간판을 살피니, 일정 금액 이상의 상품을 구매하면 케이어스 굿즈를 준다고 한다.

‘이렇게 프로모션을 할 수도 있구나. 근데 이건 케이어스 쪽이 광고비를 받는 거겠지? 소녀연맹은 언제 이런 거 해보나.’

그때, 강지혜는 자신의 시력을 의심케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녀는 눈을 비비고 다시 앞을 보았으나, 그 광경은 여전히 존재했다.

만족스런 얼굴로 매장에서 나오는 성필이다.

그는 한 손에는 화장품이 담긴 종이백을, 다른 손에는 케이어스의 굿즈일 게 확실한 지관통을 지니고 있었다.

“박 이사님……?”

그녀의 희미한 부름에 성필도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이 보름달보다 더 커졌다.

“지혜 씨……?”

인파로 가득한 거리에서,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성필이 드문드문 말했다.

“이건, 화장품이, 떨어져서.”

“…….”

“그래서.”

“…….”

성필의 손에 들린 금속제 지관통 뚜껑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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