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204화 (204/760)

204화

“……그랬었지.”

성필과 백민정은 연거푸 술만 마셨다.

서학준도 백설하가 퍼포먼스를 해내지 못하리라 예상해서 내기를 건 것이었는데, 그녀는 보란 듯이 성공해버렸다.

당시에는 성필도 백설하의 신들린 퍼포먼스를 보고 찬사만 보냈었다.

하지만 조아라의 취향을 듬뿍 담아 만들어진 ‘아라베스크’의 난이도를 보면, 근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이젠 서 쌤한테 다시 수정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서학준은 안무 편집만 마치고는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안 그래도 댄스 대회 때문에 바쁜 사람에게 시안을 부탁하고 편집까지 맡겼던 것이니, 더는 붙잡아 둘 염치도 없었다.

다시 편집하려면 다른 안무가에게 맡겨야 하리라.

“지금 안무를 완벽히 구현할 수만 있다면 멋지겠지만……. 민정이 너도 좀 그렇긴 하지?”

“내가 봤을 때는, 애들이 그거 완벽히 하는 거 무리야. 계속 그걸로 연습해도 막판에 가서 바꿀 게 자명해.”

백민정은 소녀연맹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덕에, 그녀들이 지닌 능력의 범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성필이 ‘다시 수정해야 할까’라고 물어보려던 때, 백민정이 실실 웃었다.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설하가 하는 거 보니까 잘 모르겠어.”

정규 앨범의 목표는 소녀연맹의 한계를 깨는 것이라고 들었다.

지금까지 억제해왔던 퍼포먼스의 난이도를 끌어올려, 소녀연맹이 쌓아온 노력의 결실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 하던가.

“내가 너무 보수적이었던 걸 수도 있겠다 싶어. 자꾸 옛날 하양이가 생각나서, 나 스스로도 창작 과정에서 자꾸 검열하게 돼.”

소녀연맹의 안무를 만들 때는 항상 ‘더 쉽게’부터 생각해왔다.

“설하가 해냈잖아. 가장 어려운 부분을 해냈어.”

그럼, 다른 멤버들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서학준이 편집해낸 ‘아라베스크’의 안무는 온전히 조아라의 의견만을 따르지 않았다.

내기에서 이기고 기세등등해진 조아라와 맞서 싸워, 서학준은 할 수 있는 한 어려운 파트들을 덜어냈다.

“아예 불가능하진 않아. 엄청 힘들겠지만.”

백민정은 취하여 뺨이 붉어져 있었다.

그래서 풀린 눈으로 성필을 쳐다보는 게, 어쩐지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난, 내가 안무 편집을 맡았더라면 어떻게든 덜어냈을 거야. 그런데 서 쌤이 최종 편집한 안무는 너무 멋지고, 설하도 해냈고, 그래서…….”

오빠 생각은 어때?

백민정의 물음에, 성필은 시원하게 답을 돌려주지 못했다.

만약 소녀연맹이 현재의 ‘아라베스크’ 퍼포먼스를 완성한다면, 이견의 여지 없이 그녀들은 탑급의 실력을 증명하게 된다.

케이어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겠지.

믿고 싶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프로듀서로서는, 지금 방향을 제지해야겠지.”

“……어? 오빠 평소랑 말이 너무 다른데?”

죽어도 소녀연맹을 믿겠다던 성필은 어디 갔지?

“‘아니’ 연습할 때도 내가 계속 바꾸라고 했는데 안 바꿨었잖아.”

“지금은 믿을 거야.”

“뭐야…….”

“애들이 한계의 한계까지, 할 수 있는 곳까지 가서, 거기서 포기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놔둔다고?”

“응.”

A&R 회의에서도 말했다시피, 이건 도전이니까.

보컬과 댄스 퍼포먼스를 동시에 강화한다는 과제를 받아들인 건 소녀연맹 자신들이다.

“정 안 되면 마지막에 바꿀 수도 있고. 애들도 불가능하단 생각이 들면, 언제까지고 고집을 부리진 않을 거 아냐.”

“그쯤 가면 원래 안무가 몸에 익어서 바꾸는 것도 힘들어.”

백민정은 설득하려는 듯했다.

말은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다고 했어도, 그녀는 현재 ‘아라베스크’의 안무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때면 후회하…….”

“안무를 바꾼단 뜻이 아냐.”

“어?”

“AR을 쓸 거야.”

백민정이 눈을 크게 떴다.

AR. 가수의 보컬마저 녹음되어 있는 음원 버전이다. 즉, AR을 쓰겠다는 건 라이브를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립싱크하면 댄스 퍼포먼스는 완성할 수 있을 거야. 노래는 꼭 불러야 하는 파트에서만 라이브로 하고.”

“그래도 돼?”

“최후의 수단이란 거지.”

벌써 실패할 때를 상정하고 싶진 않지만, 준비는 해둬야 한다.

그리고 혹시 모르지 않은가. 소녀연맹이 정말 ‘아라베스크’를 완성할 수 있을지도.

“……그래.”

백민정은 여전히 찜찜한 기색으로, 고민을 털어버리듯 술을 위장 안으로 부어 넣었다.

* * *

“성필이 너 또 가?”

“응, 잠깐만 보고 올게.”

수상한 사람을 보는 듯한 손혜빈의 시선을 무시하고, 성필은 연습실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진 않고 문에 난 창으로 안의 상황을 보았다.

멤버들은 열심히 ‘아라베스크’의 퍼포먼스를 연습하는 중이었다.

‘하양이도 잘 따라오네.’

정면에서 보는 게 아니라서 잘은 알 수 없지만, 춤에서 다른 멤버들과의 통일성이 느껴진다.

다만 신경이 쓰이는 건, 그녀들의 헐떡이는 숨소리에 겹쳐서 나오는 노랫말이었다.

‘아라베스크’는 춤만 춰도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할 정도로 체력 소모가 심하다.

거기에다 노래까지 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겠지.

‘노래도 제대로 안 나와.’

그나마 백설하는 어떻게든 노래도 같이 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메인 보컬인 그녀에게 실린 부담은, 그 노력도 안쓰럽게 만들기만 했다.

백민정이 했던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떠돈다.

‘내가 봤을 때는, 애들이 그거 완벽히 하는 거 무리야.’

성필은 멤버들을 바라보면서 한참 동안 홀로 고민을 주고받았다.

‘지금이라도 난이도를 낮추자고 할까?’

하지만, 그러면 지금까지 가로 엔터가 했던 말은 무엇이 되는가.

정규 앨범은 소녀연맹에게도 도전이다.

그 도전에 대한 선택권은 너희들에게 있다.

너희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져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픈 것을 마음껏 보여주어라…….

‘그렇게 말해왔는데, 여기서 그만하자고 하면 어떡해.’

지금도, 조아라는 땀을 줄줄 흘리며 ‘나 힘들다’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다.

하지만 표정에는 행복이 감돈다.

게다가 아라베스크 안무는 최종적으로 멤버들이 ‘좋다’고 받아들였으며, 임원 회의에서도 통과된 바다.

‘아니 때도 멤버들의 의견으로 하양이의 하이라이트 안무를 수정했었어. 안무가인 민정이의 의지를 꺾으면서까지.’

그런데, 이제 와서 ‘아라베스크’의 안무를 수정하는 근거가 백민정의 의견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최소한, 소녀연맹 내에서 반발이 나와야 한다. 거기다 과반수가 ‘못 하겠다’고 해야…….

“볼 거면 들어와서 봐요.”

생각에 잠겨 있자니, 문이 열리면서 조아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턱선을 따라 흐르는 땀을 닦지도 않은 채, 지쳐서 나른한 눈으로 성필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계속 훔쳐만 볼 거예요?”

“야, 훔쳐보다니…….”

“오라니까요. 괜히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조아라는 성필의 손목을 잡아채서 연습실 안으로 들였다.

멤버들도 성필을 보고 인사하려 했으나, 다들 많이 지친 터라 눈짓으로만 반가움을 표현했다.

“이, 이사, 이사님, 이사니이이임…….”

리카는 처절하게 성필의 앞으로 기어 왔다.

“아라, 쨩, 아라쨩 좀, 어떻게 해주세요……. 저희, 저희 퇴근 안 시킨대요……. 노동법 위반이라구요…….”

“리카 많이 힘들구나.”

“하이(네)…….”

성필이 리카를 측은하게 보았다.

그의 눈빛을 받은 리카는 도와달라고 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당황했다.

“그렇게 불쌍하게 보지 마세요! 아타시(제)가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노동자 같잖아요!”

“아니야?”

“아니에요! 저는 자발적 노동자예요!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주 80시간 근무도 감수할 수 있다구요!”

아이돌은 노동자가 아니지만 말이다.

“리카, 빨리 일어나. 아저씨한테 춤 보여주자.”

“더 쉬고 싶어…….”

소녀연맹은 포지션을 잡았다.

성필은 가슴 속에 하고픈 말이 넘쳤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녀들의 뒤에 자리했다.

거울을 통해 성필과 조아라의 눈이 맞았다.

조아라의 눈매가 기쁨으로 휘어졌다.

“똑똑히 봐요.”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을 자랑하려고 아버지에게 뛰어가는 딸처럼, 조아라는 한껏 들떴다.

그런 상태에서 곡이 흘러나왔다.

즐거운 듯이 춤을 추는 조아라를 보고, 성필은 생각했다.

‘더 지켜보자.’

저토록 환희에 가득 차 있는 조아라에게 ‘안무를 바꾸자’라고 말하는 건, 적어도 지금의 성필로서는 불가능했다.

옛날, ‘아니’의 퍼포먼스를 연습할 때 끝까지 장하양을 믿어주었던 것처럼.

“팀장님 뭐예요.”

넋 놓고 춤이 끝날 때까지 보고만 있던 성필에게, 신아름이 성내면서 다가왔다.

“왜 조아라만 봐요?”

“에엑?! 이사님 앞이라서 일부러 숨도 참고 춤췄는데, 히도이(너무해)!”

“우리가 아니라 조아라만 보러 왔어요?”

“차별이얏!”

조아라만 보고 있던 건 뭐,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겨우 이런 일로 양옆에 달라붙어서 잔뜩 쏘아붙여질지는 몰랐다.

성필은 어처구니가 없단 뜻을 담아 장하양을 보았다. 그녀라면 동감해주리라 생각해서였는데.

“…….”

장하양도 싸늘하게 성필을 보고 있던 터라, 그는 눈을 까는 수밖에 없었다.

* * *

“이제 될 거 같아요.”

소녀연맹은 정지음과 엘릭의 지옥 같은 디렉팅과 피드백을 받으면, 어떻게든 ‘아라베스크’를 최상의 보컬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백설하가 인정했다.

백설하의 피 토하는 보컬 강의 덕분이었다.

그렇게, 드디어 ‘아라베스크’의 본 레코딩이 결정되었다.

“오늘은 타이틀곡 녹음 날이야. 다들 파이팅!”

성필이 주먹을 불끈 쥐자, 그 옆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던 A&R팀 이재호도 똑같이 따라 했다.

멤버들이 이재호를 불쌍하게 보았다. 그는 10곡이 넘는 녹음 스케줄 동안, 딱히 하는 것도 없으면서 계속 녹음실에 앉아 있곤 했으니까.

“팀장님.”

신아름이 총대를 메고 이재호의 인권을 지켜주려 했다.

“재호 오빠는 아무것도 안 하는데 왜 녹음할 때마다 따라와요?”

“경험이니까.”

“경험이요?”

“레코딩 현장에서 버티고, 현장을 이해한 경험이 있어야 A&R이지. 레벨업이라고 생각해.”

신아름이 이재호를 보았다. 그는 인형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보니 소녀연맹을 응원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응원하는 것이었다.

“자, 설하부터 할게.”

타이틀곡 ‘아라베스크’의 메인 디렉터는 엘릭이 맡게 됐다. 정지음은 그의 곁에서 보조하는 역할에서 그쳤다.

타이틀곡 녹음은 순조로웠다.

백설하는 디렉팅을 소화하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엘릭과 정지음이 지시를 하면, 누구보다도 빨리 그 의미를 파악하고 보컬에 반영했다.

“오케이.”

엘릭이 하하 웃으면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백설하도 부스 밖으로 나와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엘릭이 반문했다.

“설하 왜 밖에 나와?”

“네?”

“아직 녹음 안 끝났어.”

“어, 오케이라고하셨…….”

“아직 더 남았어.”

“아…… 죄송합니다.”

백설하는 다시 부스로 들어가 마이크 앞에 섰다.

“설하야, 마이크 옆으로 가.”

[옆으로 가란 게…….]

“전화 다이얼 생각해. 5가 지금 마이크가 있는 위치면 6으로 가.”

[아아, 옆으로.]

“아니, 마이크는 그 자리에 두고.”

[죄, 죄송합니다.]

그 뒤로, 백설하는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몇 시간이 걸려서 겨우 완벽하게 녹음을 했더니.

“오케이. 이제는 2로 가.”

[…….]

그런 식으로 전부 다른 위치에서 보컬을 녹음했다.

신종 괴롭힘일까? 백설하가 엘릭의 심기를 거슬렀던 적이라도 있었나?

듣자 하니, 이유가 있었다.

“여기 벌스 1이랑 2 파트에서 보컬을 겹쳐서 들리게 할 생각이거든요.”

마치 교회에서 성가대 여럿이서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 느낌을 살리려고 마이크와 거리를 벌려서, 또 위치를 바꿔서 계속 같은 노래를 녹음하는 거예요. 여럿이서 같이 노래하는 것처럼요.”

“그거 그냥 기계로도 할 수 있지 않나요?”

“있죠. 대신 현장감을 포기해야죠.”

정지음은 엘릭의 입에서 나오는 설명을 홀린 듯 수첩에 받아 적었다.

레코딩 현장 경험이라고 해봐야 소녀연맹이 전부인 정지음으로선, 엘릭과 같은 녹음 방식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정지음에게는 엘릭과의 레코딩이 수업이나 마찬가지였다.

“박 이사님은 최고의 곡을 원하시는 거 아니에요? 이 녹음 방식이 애들 피로도는 훨씬 높겠지만, 그래도 결과물 결이 다를 거거든요.”

성필은 부스에서 나와 쉬고 있는 백설하를 보았다.

오늘은 녹음실 두 프로(7시간)를 잡았다. 한 프로나 되는 시간을 쓰고도, 아직 백설하의 녹음을 끝내지 못했다.

‘이 녹음 방식은 힘들 거야. 시간도 훨씬 오래 걸리고.’

성필은 레코딩 엔지니어에게 요청하여, 지금까지 녹음된 것들을 들려달라고 했다.

엔지니어가 즉석해서 백설하의 여러 보컬들을 하나로 합쳤다. 거기에 엘릭이 손을 대서 합창 느낌이 나오도록 바꾸었다.

그것을 들은 성필은.

“엘릭 씨, 잘 부탁드립니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봅시다!”

“당연하죠.”

백설하는 물론 소녀연맹 전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라베스크’의 녹음은 자그마치 4일이나 걸렸다. 완벽주의자라고 불렸던 정지음마저도, 엘릭의 깐깐한 디렉팅에는 기가 다 빨릴 지경이었다.

레코딩 완성본이 나오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동의 눈물을 쏟아냈다.

심지어 녹음실에서 회사로 돌아오고 나서도.

“애들 왜 저래?”

커피를 가지러 온 홍규헌은, 1층 홀에서 피폐한 몰골로 서로를 안으며 울고 있는 소녀연맹을 보곤 당혹을 숨기지 못했다.

“아티스트의 눈물이죠.”

“……그래, 고생했어.”

그리고 모두의 뒤에서, 4일의 강행군을 같이 소화한 A&R팀 이재호도 울고 있었다.

손혜빈이 이재호의 어깨를 쓸며 위로해주었다.

“재호 씨. 많은 걸 배웠죠?”

“네…… 네……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이재호는 레코딩 현장을 이해한다는 명목하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하루에 10시간을 녹음실에서만 보냈다.

덕분에 관련 용어나 상호작용, 레코딩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 사고에 관해선 이미 통달할 지경까지 올랐다.

다만, 너무도 고통스러웠을 뿐이다.

“하길 잘했죠?”

“네, 정말,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호 씨도 이제 어엿한 A&R이에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

“이제 믹싱이랑 마스터링 현장만 체험하면 되겠네요. 몇 시간, 아니, 음, 수십 시간, 아니. 백 시간 정도만?”

“…….”

이재호는 신에게 빌었다.

제발 자신을 과로로 병원에 입원시켜달라고.

안타깝게도, 건장한 그의 20대 신체는 기절 따위 허용하지 않았다.

* * *

타이틀곡 ‘아라베스크’의 녹음이 끝났다.

또한 타이틀곡 2번인 약칭 ‘보라색 튤립’도 가사를 받은 후 가이드 녹음 작업에 들어갔다.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는 건 가로 엔터의 인력풀로는 무리였기에, 계단식으로 진행하는 중이었다.

“‘아라베스크’는 조정훈 감독한테 넘기고, 스타일링 협의도 진행해. 자, 그러면.”

이제 본격적인 논제로 넘어간다.

한구인, 성필, 손혜빈의 눈에 투지가 감돌았다.

“앨범 패키지 구상이다.”

소녀연맹이 매출을 올리는 주요 통로가 행사와 앨범 판매다.

앨범은 순익이 거의 나지 않으나, 매출로서 의미가 있다.

매출만 따지면, 가로 엔터에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미래의 투자자들도 가로 엔터가 1년 동안 올린 매출을 보면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터다.

“이번에는 반드시 순익으로 전환한다. 내년 1분기엔 우리도 파티 한번 해보자고.”

재무팀장 한구인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순익 전환이 목적인데도 제작 예산을 십억 넘게 책정하신…….”

“그런 말은 꺼내지 말고 생산적인 얘기나 해.”

“……이번에는 최대한 많은 초동판매량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가로 엔터는 앨범 구성품을 후하게 주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이번엔 조금 다를 겁니다.”

구성품을 축소하여 생산비를 줄인다. 그것으로부터 순익 상승을 꾀한다.

그런 건 아니었다.

“안 사고는 못 배길 앨범을 만듭시다. 첫 번째 정규 앨범이니만큼, 저희에게는 이점이 있습니다. 팬들도 첫 번째 정규 앨범은 반드시 사고자 할 테니까요. 저희는 그만한 퀄리티를 보장해야 합니다.”

목표, 초동판매량 4만 장 이상!

“그걸 위해서, 우리는 악마가 된다.”

홍규헌의 오글거리는 발언에도, 임원들은 진지하게 임할 뿐이었다.

아까 한구인의 말마따나, ‘사지 않고는 못 배길 앨범’을 만들 것이다.

“자, 다들 인민이들한테 최대한 만족감을 주면서도 우리도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방안을 내줘.”

성필이 자신만만하게 손을 들었다.

“어, 박 이사.”

“저희 정규 앨범 이름이 Girls’ Union이잖아요. 패키지 자체를 다섯 버전으로 내죠. U, N, I, O, N 이렇게 다섯 개로.”

그렇게 되면, 버전마다 패키지에 인쇄되는 그림도 다를 것이다.

당연히 CD커버도 버전마다 다를 테고.

“또, 사진집도 두 종류 넣어주죠. 단체 사진집이랑 개인 사진집. 그리고 버전마다 저희 애들 컨셉을 달리 한 단체 사진집을 넣는 거예요.”

U버전에는 단체 일상복 컨셉이라면, N버전에는 단체 고저스풍 의상 컨셉으로 하는 식이다.

“개인 사진집도 마찬가지예요. U버전에는 리카 개인 사진집이 있고, N버전에는 설하 개인 사진집이 들어가는 식이요. 그러면…….”

진정한 소녀연맹 팬들은 눈물을 머금고 다섯 버전의 앨범을 모두 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팬들에게 앨범 다섯 장 강매!

“어때요?”

“박 이사 진짜 악마가 되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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