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소녀연맹 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멤버가 누구인가 묻는다면, 성필은 정말 급을 나누고 싶지 않지만, 이견의 여지 없이 신아름이었다.
일단 신아름은 ‘프로젝트 포유’로 인지도를 끌어왔다. 그러다 보니 소녀연맹 결성 당시부터 고정팬층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로 엔터도 데뷔 프로모션 때는 신아름을 부각하는 데 노력했을 정도였으니까.
‘그건 지금도 그래.’
옛날에 리카가 인터넷에 소녀연맹을 검색하다가 충격적인 글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에 소녀연맹 포토카드가 올라온 것이다.
‘어째서 아타시(저)의 카드는 4,000원인데 아름이 카드는 10,000원인가요?!’
리카는 너무나 충격받아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회사를 허둥지둥 돌아다니다가, 결국엔 성필에게 달려와 억울함을 수십 분이나 호소했었다.
안타깝지만, 그게 지금 소녀연맹의 상태였다.
‘하지만 아름이한테도 족쇄가 있어.’
그건 포유로부터 도망갔다는, 인터넷에서는 흔히 ‘탈주’했다고 표현하는 포유 탈퇴 사건이다.
신아름은 ‘포유가 망할 것 같으니 도망갔다’는 꼬리표를 아직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게 외부 사람에게는 긍정적으로 보일 리가 없다.
‘포유 팬덤이 늘어나고선 은근히 아름이를 깎아내리는 글들도 같이 증가했었지.’
‘보은’이라는 문화가 있다.
A의 팬덤이 B의 컴백에 맞춰 음원 스트리밍을 해주면, B의 팬덤도 A의 컴백 때 같이 스트리밍을 돌려주는 것이다.
이를 보은이라고 하는데, 소녀연맹과 포유의 팬덤 사이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소녀연맹이랑 포유가 냉전 중이라고 해야 하나.’
만약 포유가 프로젝트팀이 아니었다면, 포유 팬덤은 냉전 정도가 아니라 당장에 전면전을 시작했을 것이다.
포유 팬덤 내에서는 어차피 포유는 사라질 팀이니, 괜히 싸워서 애들 이미지 망치지 말고 조용히 있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덕분에 신아름을 비판하는 의견은 수면 아래 잠겨있었지만,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지 솟아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
‘아름이 학폭 루머 사건 때처럼.’
정확하진 않지만, 신아름의 학폭 루머가 터졌을 땐 포유 팬덤의 일부가 비판의 첨병에 섰을 것이다.
“양주?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김명운의 소탈한 반응에, 이번 방송 출연의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던 성필의 정신도 현실로 돌아왔다.
“그럼 그냥 고깃집 가서 소주나 마셔요.”
“어휴, 그럴까. 나도 술 마셔본 지 오래됐거든. 무리하긴 싫어. 대신 소고기 맞지?”
“모찌론(당연)!”
“……뭐?”
“아, 아니, 죄송해요. 우리 애들 말버릇이 나한테도 붙었네.”
아무튼, 효민과 신아름의 ‘너희 친구니’ 출연은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일단 두 사람이 포유에서 갈라지고도 친구로 지낸다는 증명이 된다. 그럼 신아름의 아래에 깔린 날 선 비판들도 조금은 수그러들겠지.
‘포유 팬덤은 잠재적인 아름이의 적대 세력이었어. 그걸 이번 방송 출연으로 없앨 수 있을 거야.’
모든 건 신아름이 효민과 얼마나 친한 모습을, 즉 케미를 보여주느냐에 달렸다.
* * *
“효민이랑 연락하냐구요? 하겠어요?”
성필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모처럼 김명운이 기회를 주었건만, 역시나 신아름은 아직도 효민과 화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신아름은 성필의 기색을 읽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뭐, 친한 척은 할 수 있죠. 걔도 저도 아이돌이잖아요.”
“그럴 수 있어?”
“애초에 ‘너희 친구니’에 나오는 인간들도 다 친구 아닌 거 아니에요? 프로그램 연차 쌓이니까 진짜 아무나 게스트로 불러내던데.”
“…….”
성필은 말로써 동감해주진 않았으나, 신아름의 통찰력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너희 친구니’는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꺼낼 수 있는 게스트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어, 정말 사소한 인연이 있는 연예인들도 친구라며 부르곤 했다.
“나랑 효민이 정도면 양반이죠. 프로그램 하는 동안은 정말 친했으니까요.”
신아름은 쓴웃음을 씹었다.
그때만큼은 프로그램 안에서 만나는 모든 연습생이 세상의 전부인 것 같았는데. 분명 서로 의지하며 함께 나아갔었는데.
“포유를 나온 게 그렇게 잘못했던 걸까요.”
“아니야. 그게 어떻게 잘못이야. 다 자기만의 판단이랑 길이 있는 거지. 김 대표님도 나가도 된다고 했었잖아.”
하지만, 그 판단 때문에 포유 멤버들과 효민이 신아름을 미워하게 됐다.
소녀연맹이 될 수 있던 건 신아름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 중 하나였다. 신아름은 그리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 우정을 버렸다면, 마냥 좋은 선택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뭘 얻으려면 뭘 버려야 한다더니 진짜네요.”
“아름아…….”
“됐어요.”
신아름은 위로하려던 성필의 입을 막았다.
“인터넷에서 하는 말들 맞아요. 포유 애들이 저를 미워하는 것도 이해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저는 팀을 버린 거죠.”
신아름은 프로젝트 포유에서 ‘우리좌’라고 불렸다.
두려워하고 절망하는 아이들을 이끌고 승리를 쟁취해내는 신아름의 모습을, 시청자와 동료들은 동경하며 존경했었다.
하지만 그건 결국 꾸며낸 모습이었다.
신아름은 ‘우리좌’ 같은 게 아니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팀을 버리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다.
대중들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걸로 욕먹는 데 위로받긴 싫어요. 합리화하기도 싫고요. 살아가면서 버렸던 게 발목을 잡는다고 계속 뒤를 볼 수만은 없잖아요. 받아들이고 나아가야죠.”
성필은 놀란 눈으로 신아름을 보기만 했다.
그녀가 하는 말은 너무나 어른스러웠고, 성필이 아는 그녀가 할 법한 말도 아니었다.
성필은 어느새 신아름이 이렇게 커버렸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를 대견하게 여겼다.
“어때요. 저 말 잘하죠?”
“어, 그러게.”
“다 한 이사님한테 배웠어요.”
“진짜 궁금한데, 한 이사님이 뭘 가르쳐주는 거야?”
“매번 달라요.”
배워서 안 좋은 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신아름을 보니 그 말의 뜻이 확 와닿는다.
* * *
김민주는 KS 엔터 사옥 내의 헬스장에 있었다. 그녀는 철봉을 앞에 두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곤 한 손으로만 철봉을 쥐었다.
옆에서는 매니지먼트 1팀 팀장이 오열하듯 외치고 있었다.
“운동 심하게 안 한다고 했잖아! 이러면 옷핏이 안 맞는다니까! 너 자꾸 나 무시할 거야? 나도 사람이야 사람! 이번엔 정말로 널 믿었단 말야!”
“이것만 하고요.”
김민주는 오른손으로만 철봉을 쥔 채 힘을 꽉 주었다. 일단 매달리는 데는 성공했다.
팔에 힘을 주고 위로 올라간다.
천천히, 천천히.
김민주의 얼굴이 붉어졌다. 결국 그녀는 한 손 턱걸이에 실패하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1팀장은 우울하게 김민주를 보았다.
“너 등 봐라. 운동선수구만 그냥…….”
시상식이나 브랜드 쇼케이스 같은 곳에서도 등이 드러난 드레스는 절대 입히지 못할 것이다.
카메라에 잡혔다간, 부드럽기보단 탄탄한 김민주의 등이 인터넷 기사를 도배할 테니까.
걸그룹의 이미지가 아니다…….
“실제로 선수였잖아요.”
김민주는 중학생 내내 멀리뛰기를 했었다.
옛날에, 그녀가 전국 중등부 육상 대회에서 멀리뛰기를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었다.
그 모습을 본 1팀장이 김민주를 설득해서 아이돌의 길로 이끌어온 것이다.
“지금은 녹슬었지만요.”
“안 녹슬었어.”
누가 김민주의 몸을 보고 녹슬었다고 하겠는가. 1팀장은 김민주랑 싸워서 질 자신도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때, 에리카가 다른 케이어스 멤버들을 데리고 헬스장으로 들어왔다.
1팀장이 기분 나쁜 기색을 내비쳤다.
“너희 다 여기 있대서 여기로 미팅 장소 잡았는데 왜 이렇게 늦게 와.”
설마 케이어스가 벌써부터 연예인병이 걸려서 시간 개념도 사라졌나?
“소유가 샤워실에 너무 오래 들어가 있어서, 저랑 진저가 겨우 빼 왔어요.”
“…….”
1팀장이 진소유를 보았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V를 그렸다.
“……그래. 너희들 운동해야 하니까 빨리 끝낼게. 12월 컴백할 때 방송을 몇 개 나갈 수 있는데, 후보 중에 ‘너희 친구니’가 있어. 다 알지?”
“네.”
“너희 연예인 친구 누구 있어?”
아무도 손을 들거나 입을 떼지 않았다.
“……에리카.”
“네?”
“리카랑 친구잖아.”
“아, 네. 그리고 설하 언니랑도 친구…… 우우? 음, 친구예요.”
대답이 석연찮다.
“다 소녀연맹이네. 진저는?”
“저는…….”
진저는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곧 그녀는 얼굴까지 붉히며 창피하단 듯 말까지 더듬었다.
“저는, 아, 아라 씨랑 칭구, 칭구임미다.”
“또 소녀연맹이네. 다른 친구는”
“없슴미다.”
“……그래.”
“……그.”
“또 떠오르는 사람 있어?”
“다른 회사에…… 직원도, 어어, 친구라고 할 수 있…… 아님미다. 나이 차이가…….”
“누군데?”
“가로 엔터에 박성필 이사…… 아님미다. 친구 아닌 거 같슴미다. 친구는, 으음, 연락도 못 하고…….”
또 가로 엔터인가.
“그래, 13살 차이를 친구라고 하진 않지.”
그걸 또 고민하는 진저도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국 갔을 때 성필과 많이 친해졌던 모양이긴 한데. 같이 관광이라도 했던 것일까.
“그리고 내가 연예인 친구 말하랬잖아.”
“그렇슴미까? 못 들었슴미다.”
“들었잖아.”
“예?”
“한국어 못하는 척하지 마.”
“션머(뭐요)?”
“넌 네가 불리할 때만 중국인이냐?! 그딴 짓은 누구한테 배운 거야!”
수정한다.
진저는 그냥 정상이 아니다.
애가 재밌긴 하네.
“소유는?”
“저는 친구 없는데요?”
1팀장은 알 수 없는 절망감에 눈두덩을 터져라 눌렀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은 ‘그렇겠지’란 기색으로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소유 너, 특별 무대 준비하잖아. 거기에 누구냐. 글로브 라희랑 포유 소민도 있고. 소녀연맹 하양이도 있지 않아?”
“아, 맞네. 하양이.”
“하양이랑 친구야?”
1팀장은 기대감을 지니고 물었다.
얼마 전, 장하양과 진소유가 거리를 거니는 사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이 다니는 것만으로도 화보나 마찬가지였다. 싸구려 핸드폰 카메라에 담아도 한 폭의 그림이 되는 것이다.
‘둘이 같이 프로그램에 나오면 홍보가 상당히 될 거야.’
“하양이랑 친구 아닌데요?”
“……소유야.”
“네.”
“특별 무대 연습하러 가면 뭐해?”
“연습하죠.”
“……응, 그렇구나.”
“근데 하양이가 벽을 너무 쳐요. 저도 친절하게 대해주고 다 하는데 그러네요. SNS로 응원 태그까지 걸었는데, 이상하죠?”
그렇게까지 해주고도 ‘친구가 아니다’라고 하는 진소유 네가 레전드다.
1팀장은 간신히 그 말을 삼켰다.
이제 남은 희망은 김민주밖에 없었다.
“민주 넌 소녀연맹 아름이랑 친구 맞지? 그렇지? 그건 확고부동한 진실인 거지?”
“걔가 저를 좋아해서 친구로 지내주는 거예요. 아니, 제가 친구인 척해주는 거죠.”
이상하네…….
1팀장은 기가 막혀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신인개발팀이 데뷔조를 고르는 기준에 사회성도 있지 않나?’
근데 어떻게 사회성 없는 애들로만 골라 뽑았지?
신인개발팀을 맡은 이사급이 구유한과 정호환인데, 두 사람의 눈에 무언가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성을 배제하고서라도 뽑고 싶은 케이어스 멤버들의 재능이 문제일까.
진실로 악마의 재능이다.
“하아, 그럼 아예 소녀연맹이랑 같이 방송 뛸래? 12월이니까 특집편으로 해도 좋겠네. 데뷔 시간도 일치할 거 같고.”
김민주가 움찔하며 물었다.
“걔네랑 우리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요?”
“어, 뭐, 현장 쪽 얘기 들어보니까 가로 엔터 레코딩도 많이 진행됐다던데? 규모로 보면 정규 앨범일 것 같아.”
가로 엔터가 애용하는 레코딩 스튜디오로부터 얻은 정보였다.
어째서 KS 엔터가 가로 엔터 같은 중소기업에 관심을 두고 있느냐면, 정호환 때문이었다.
‘롱 포는 우리 회사 A&R에게도 큰 충격이었다고 하니까.’
걸그룹이 밴드 사운드를 시도하다니. 그것도 타이틀곡으로 말이다.
거대한 팬덤을 보유한 메이저 기획사의 걸그룹도 실행하기 어려운 전략이었다.
정호환이 이끄는 프로듀서팀과 A&R마저도, 소녀연맹 ‘롱 포’의 성공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상 현상과 같았다.
‘그거 때문에 정 이사님이 따로 송캠프도 열었다고 하니.’
어쩌면 KS 엔터의 A&R도 소녀연맹을 주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예 음악적인 라이벌로 여길지도…….
그러한 KS 엔터 내부의 움직임 때문에, 1팀장도 진저가 ‘박성필 이사’란 이름을 꺼냈을 때 그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았던 것이다.
“마침 타이밍도 좋네. 연말이잖아. 어차피 소녀연맹은 너희들 발끝도 안 되지만, 은근히 언플하면서 띄우면 관심도 올 거야. 그렇게 조금씩 가열하다가 케이어스랑 소녀연맹이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면…….”
“별론데.”
태클을 건 것은 김민주였다.
1팀장은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기가 막혔다.
“……뭐?”
“별로예요. 저희가 미디어 광고가 필요한 수준도 아니잖아요.”
세상에나.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 아이돌한테 말이 끊기다니. 1팀장은 기가 막힌 것을 넘어서 열이 올랐다.
1팀장은 오랜만에 기강을 잡을 생각으로 험악한 말투를 꺼내려 했다.
그 직전에 김민주가 선수를 쳤다.
“너희들도 기억나지? 정 이사님이 그러셨잖아. 루브르 박물관은 광고 같은 거 안 한다고. 모나리자나 다비드상도. 작품 그 자체의 가치만으로도 사람들이 알고 찾아온다고 하셨어.”
1팀장은 정호환이 언급되자 급히 입을 다물었다.
김민주의 주관이 아니라, KS 엔터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정호환의 의견이었으니 쉬이 입을 놀릴 수는 없다.
“우리가 어디 가서 나팔 불며 사람 몰 급이 아니잖아요.”
“그으, 그, 어, 그렇지. 케이어스, 대단하지.”
결국 그는 케이어스 칭찬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죠? 또, 거기 프로그램 재미도 없어 보이던데.”
다른 멤버들은 딱히 감흥 없는 표정으로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방송 따위, 나가도 그만 안 나가도 그만이었다. 그녀들은 다른 아이돌처럼 방송 출연이 간절하지 않았다.
아이돌이 된 순간부터, 인지도에 목마른 적 따위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럼 안 나갈래?”
“네, 저는 별로 안 나가고 싶어요.”
무심한 평정을 꾸며내는 김민주의 속내는, 실은 불안으로 떨리고 있었다.
‘소녀연맹 전체랑 같은 프로그램에 나가?’
화제가 될 것이다. 홍보가 될 것이다.
케이어스만이 아닌 소녀연맹도.
KS 엔터의 프로듀싱팀마저 주목하는 소녀연맹이 인지도를 등에 업는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
드러내진 않았지만, 김민주는 그게 두려웠다.
‘심지어 우리랑 또 컴백 기간이 겹쳐?’
초동판매량에서 진다면, 아니. 소녀연맹이 케이어스의 초동판매량을 어느 정도 따라잡게 된다면.
신아름을 만나는 순간, 김민주는 가루처럼 박살 날 게 분명했다.
‘죽고 못 사는 친구’도 이런 이유로 시리즈 제작을 거부했고, 또 후회했지만, 김민주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소녀연맹이 진짜로 케이어스의 발끝도 못 따라오면 또 실망할 거면서 말이다.
“민주랑 너희들 다 별로라고 생각해?”
다들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텔레비전 촬영 같은 거 지겹고 재미없기만 했다.
십수 시간 넘게 앉아서 수다나 떨라니, 그 시간에 연습이나 하고 말지.
“1팀장님.”
그때 매니지먼트 팀원이 1팀장을 찾았다. 그의 귓속말을 들은 뒤, 1팀장은 아무 일도 아니란 듯 말했다.
“민주 안 나갈 거야.”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팀원이 나가자, 김민주가 의아하게 물었다.
“제가 뭘 안 나가요?”
“‘너희 친구니’ 말야. 이번 달에 신아름이 나온다네. 포유에 효민이랑 같이. 그래서 아름이가 너한테 나올 거냐고 연락했다는데?”
근데 어차피 안 나갈 거니까 거절했어.
1팀장은 말을 마치고 핸드폰을 만지작댔다.
“그러면 이 얘기는 여기서 끝내고, 너희들 이번에 조정된 스케줄 말해줄…….”
“음.”
망설임이 담긴 목소리에 1팀장이 김민주를 보았다. 그녀는 머리칼을 비비 꼬며 말했다.
“뭐어, 신아름이? 제발 나와달라고 사정사정하면? 저도 못 나가줄 건 없는데요?”
“…….”
1팀장은 이젠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다.
‘신인개발팀 이 새끼들. 사회성을 아예 안 보고 뽑는 거 아니야?’
웬 비틀린 인간들만 모아뒀냐.
그중에서도 김민주는 독보적인 듯했다.
‘표리부동이란 말이 딱 어울려.’
아니면 그냥 어린애거나.
정신연령이 초등학생 수준이다.
* * *
신아름의 ‘너희 친구니’ 출연이 확정된 후, 그쪽의 PD가 특이한 제안을 주었다.
“케이어스 민주도요?”
성필은 그 제안에 뭐라 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보니까 PD님도 섭외가 안 돼서 날 통하려는 거 같은데…….’
성필이 무슨 수로 KS 엔터에 연락한단 말인가.
신아름에게 김민주의 연락처가 있겠지만, 아이돌 개인 연락처로 섭외 요청을 넣는단 게 상식적인 일은 아니다.
아이돌들은 매니지먼트 관리권자의 허가가 없으면 연예 활동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매니지먼트 관리권자, 즉 회사에 요청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가 어떻게 KS 엔터로…….’
아!
‘죽고 못 사는 친구’ 때 KS 엔터의 콘텐츠 사업부 쪽 연락처를 얻게 됐었다. 그것을 통하면 김민주의 의사를 알 수 있을 터다.
그 소식에 신아름은 부정적인 기색을 띠었다.
“김민주 걔가 나오겠어요?”
“민주랑 친구 아니야?”
“패션 친구예요.”
“아름아, 나 속상해……. 나는 네가 밖에 나가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
“걔 저랑 아이튜브 영상 시리즈도 안 찍었잖아요. 보나 마나 지가 싫단 이유겠지. 의리 없는…….”
의리가 없다고 하기엔, 김민주는 신아름의 이미지를 위해서 아이튜브 영상도 찍어주었다.
“……의리만 있지 정은 없는 년.”
“그래도 연락은 해볼게.”
“안 될 거라니까요. 내기할래요? 10만 원 걸게요.”
“그럴까.”
“진짜요?! 물리기 없기!”
성필은 신아름에게 용돈이라도 줄 심산으로 내기를 받아들였다.
KS 엔터로 소식을 전하고 10분이나 지났을까.
“민주가 한다는데?”
“……네?”
성필의 시선이 테이블 위로 올라와 있는 신아름의 지갑으로 향했다.
신아름이 지갑으로 손을 가져가기도 전에, 성필이 그것을 낚아채고 2층 연습실로 달려갔다. 신아름은 울상을 지으며 성필을 쫓았다.
“내기 무효! 무효! 돌려줘요!”
“10만 원 생겼다! 얘들아, 외식 가자!”
연습실 문이 벌컥 열리며 리카가 나타났다.
“쥰비칸료(준비완료)!”
그렇게, 소녀연맹의 외식과 함께 신아름과 김민주, 효민의 공동 방송 출연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