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98화 (198/760)

198화

일요일 아침.

신아름이 느긋이 침대에 누워 있는 것과는 다르게, 리카와 조아라는 아침을 먹자마자 분주하게 나갈 준비를 했다.

“너희들끼리만 놀러 가?”

“아타시(나)는 지음 오빠 작업실에 가! 아름이도 갈래?”

“아니.”

이제 앨범 작업도 중간을 넘어섰다. 리카가 작곡으로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리카는 작곡에 시간을 쏟았다. 사운드 모듈이나 음향 장비를 쓴다는 이유로 휴일마다 정지음의 작업실에 갈 정도로 말이다.

‘지치지도 않나.’

휴일에는 놀아도 될 텐데.

안 그래도 최근에는 앨범 작업 때문에 힘들지 않았던가.

“조아라 넌 춤추러 가고?”

“어.”

“아예 춤이랑 결혼해. 평생 춤만 춰.”

조아라는 신아름에게 중지를 들어 보인 뒤 방을 나갔다. 뒤늦게 단장을 마친 리카가 조아라에게 달려가 팔짱을 꼈다.

신아름은 조용해진 방 안에서 가만히 누워 있었다. SNS를 조금 둘러보다가, 심심해져선 언니 라인의 방으로 갔다.

“언니들. 어디 놀러 갈…….”

문 앞에 서자마자 방을 나오려던 백설하와 마주쳤다.

다행히, 백설하는 숙련된 솜씨로 신아름의 바로 앞에서 열리던 문을 멈춰 세웠다. 그녀는 성필의 머리를 여러 번 찧어버린 경력이 있어, 문을 열 때마다 항상 조심하곤 했다.

“쌤 어디 가요?”

“기타 연습하러 가게. 보컬도.”

“홍대 연습실 거기요?”

“응.”

“재밌어요?”

“어…… 응, 재밌어.”

“……그래요.”

“아름이도 심심하면 같이 갈래? 아름이 기타 치는 거 보면 언니도 놀랄 거야.”

신아름은 백설하의 입에서 ‘언니’란 단어가 나오자 강렬한 위화감을 느꼈다.

“언니요?”

“내 기타 강사님. 유선영 언니. 아, 그럼 일렉 세 명이서 합주…….”

“괜찮아요.”

백설하는 살짝 실망해선 숙소 밖으로 나갔다.

이제 남은 사람은, 신아름이 멤버들 중에서 가장 껄끄러워하는 장하양뿐이다.

껄끄럽다고 친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단지, 둘 사이엔 다른 사람이 감지하지 못하는 미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신아름도 대체 그것이 왜 있는지, 어째서 그런 기분이 드는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신아름은 장하양이 살짝 껄끄러웠다.

“……하양 언니도 어디 가요?”

놀랍게도, 장하양조차 밖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응. 그런데 얼마 안 걸려서 다시 올 거야.”

“옷 사러 가게요?”

“아하하, 아니야.”

“……언니.”

신아름이 떨떠름한 기색으로 장하양을 불렀다.

“응?”

“그렇게 입고 나가게요?”

장하양은 청바지와 흰 티셔츠를 입었다. 그녀의 스타일은 거의 매번 이와 비슷했다.

“왜?”

“이제 날씨 쌀쌀하…… 하아.”

신아름은 자신의 옷장에서 녹색 가디건을 꺼내어 장하양에게 입혔다.

장하양은 당황하면서도 신아름의 손길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뭐 하나 걸치고 나가요.”

“…….”

“왜요. 마음에 안 들어요?”

“음, 색깔이 한 이사님 건강즙 생각나서. 어울릴까?”

“‘어울릴까’라고요?”

매일 청바지나 티셔츠 아니면 트레이닝복만 입고 다니는 사람이, 뭐라고?

“당연히 어울리죠. 제가 배색 고려해서 드린 건데.”

“그런 거야?”

“봐요, 언니 바지 하늘색. 셔츠 흰색. 그리고 가디건 초록색. 소프트톤 로맨틱 컬러 청순 느낌이에요.”

“으, 응?”

“언니 쿨톤이잖아요. 어울려요.”

“그, 런가……?”

신아름은 장하양이 현관으로 나가는 내내 패션에 대한 연설을 쏟아냈다.

“아름이는 많이 아는구나.”

“언니는 옷에 관심 없어요?”

“관심 가진 적은 없어.”

“지금부터라도 가져요. 뭐예요. 맨날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고.”

“아하하, 그럴게.”

장하양이 신발 신는 것을 보며, 신아름은 문득 떠오른 궁금증을 풀려 했다.

“근데 언니 어디 가요?”

“박 이사님 선물 사러.”

“……선물?”

장하양이 싱긋 웃으면서 현관문을 열었다.

“곧 박 이사님 생일이시잖아.”

신아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어, 그, 아…….”

문이 닫혔다.

이제 숙소에는 신아름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앉았다.

핸드폰 다이얼에 성필의 번호를 1초 만에 입력했으나, 그녀의 손가락이 ‘통화’까지 닿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손가락이 조금만 더 액정과 가까워지면 성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텐데도, 신아름은 그냥 핸드폰을 침대 위에 덮어두었다.

‘팀장님도 쉬어야지.’

근래 일하느라 상당히 지친 상태인데, 휴일까지 빼앗고 싶진 않았다.

만나는 시간 자체는 회사에서도 충분히 길었으니까.

“석세스 엔터 애들…….”

연습생 애들에게 연락하는 건 미안하다.

‘글로브’가 되지 못하고 석세스 엔터에서 내쫓기다시피 나갔을 텐데, 아이돌로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자신이 만나자고 하면 기분이 나쁘진 않을까.

“글로브는…….”

핸드폰이 없다.

윤상열 그 악랄한 인간이 데뷔했음에도 핸드폰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만나고 싶어도 만날 방법 자체가 없다.

오랜 연락처 탐색 끝에, 신아름은 당혹감에 빠졌다.

‘나 혹시 친구가 별로 없나?’

고등학교 때 사귀었던 친구들도, 학교라는 특수한 환경이었기에 친하게 지냈던 것이다. 애초에 신아름은 학교에 갔던 날 자체가 별로 없었으니.

기어코 신아름의 눈은 의식적으로 계속 무시했던 ‘김민주’라는 이름에 박혔다.

‘얘는 핸드폰을 아예 못 쓰는 건 아닌데, 매니저가 폰을 관리한다고 했었지.’

지금 연락하면 매니저가 받겠지?

아닌가. 휴일이니까 매니저도 쉬려나.

그럼 김민주의 핸드폰은 누가 가지고 있지?

‘아니, 내가 얘한테 왜 연락해? 뭐 하려고?’

신아름은 짜증에 차서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하아.”

빨리 내일이 돼서 성필이나 보고 싶다.

* * *

정규 1집의 앨범 구성은 점차 제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수록 후보로 올려둔 곡도 10개를 넘어섰으며, 나머지도 이사진의 결단만 있다면 바로 채워 넣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아름아. 네 개인곡 그럼 이걸로 갈게?”

A&R팀이 전부 쳐다보는 중, 신아름은 ‘겨우 끝났다’ 싶은 표정을 지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제목, ‘Don’t be waver’.

해석하면 ‘머뭇거리지 마’가 된다.

업템포의 흥겨운 분위기에 빠른 비트가 특징적인 댄스곡이다.

신아름의 분위기와 보컬에도 어울리며, A&R팀에서도 호평을 받는 곡이었다.

“아름아 정말 괜찮아?”

정지음이 불안한 듯 물어왔다.

‘또 시작이시네.’

지겹게도, 신아름은 억지로 미소를 만들었다.

‘돈 비 웨버’는 정지음이 처음으로 시도한 대중적 코드의 곡이었다. 그는 각을 잡고 엘릭에게 이렇게 부탁했었다.

‘대중에게 통하는, 차트에 올라갈 곡을 만들고 싶어요. 가르쳐주세요.’

그 결과, 정지음은 동업자라는 포지션마저 벗어던지고 엘릭에게 지옥 같은 특훈을 받았다.

곡을 만들면 까이고, 수정하고, 다시 까이고, 수정하고…….

그사이에 끼어 있던 신아름도 죽을 맛이었다.

‘이거 괜찮네요’라고 하면, 어느 순간 또 곡이 수정되어 있다. ‘좋아요 이거’라고 하면, 또 곡이 수정되어 있다.

그 결과, 신아름의 개인곡은 앨범 내에서도 가장 많은 수정을 거친 곡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진짜 좋은 거 맞지? 정말…….”

“네에 네에 진짜 좋은 거 맞으니까 자신감 좀 가져요. 처음 만든 것도 좋았고, 이것도 좋아요.”

“처음 만들었던 버전은 별로였…….”

“지음 오빠가 만든 거면 다 좋아요.”

신아름의 칭찬에 정지음은 뱃속으로부터 울컥거림이 올라왔다.

자신이 곡을 만들어주는 아티스트가 저런 칭찬을 해주니, 감동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응, 고마워.”

A&R팀에 훈훈한 분위기가 퍼져나갔다.

엘릭은 장하단 듯 정지음의 어깨를 두드려주었고, 정지음도 스승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엘릭의 격려를 받았다.

신아름도 조촐하게 박수를 치며, 자신의 개인곡 작업과 정지음의 고통이 끝났음을 축하했다.

그리고 이재호는 불안한 눈초리로 손혜빈을 흘기는 중이었다.

‘왜 손 팀장님 기분이 안 좋으시지?’

이재호는 손혜빈의 속성 강의를 받는 동안, 그녀의 눈치를 읽는 데는 도가 텄다.

손혜빈은 명백히 탐탁잖은 기색이었다.

그 의문은 곧 풀렸다.

“아름아.”

훈훈한 분위기와 대비되는 이질적인 목소리로, 손혜빈이 신아름을 불렀다.

“아름이는 욕심이 많이 없네.”

“뭐가요?”

“곡에 넣고 싶은 생각이라든가, 표현하고 싶은 게 없나 봐. 난 그렇게 보이는데.”

“……네?”

신아름은 어리둥절하며 성필을 보았다.

무슨 뜻인지 설명을 해달라는 눈빛이었지만, 성필은 답 없이 손혜빈이 말을 이어가도록 두었다.

“제가 뭐요. 곡 만들면서 의견 많이 냈잖아요.”

신나고, 신아름 특유의 투명한 보컬이 살 수 있도록, 또한 퍼포먼스도 고려한 곡으로.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아름이 너는 주관이 없어 보여. 뭐가 나와도 ‘좋다’만 반복하잖아.”

“진짜 좋으니까 그러죠.”

“처음부터 끝까지 그랬잖아.”

직설적으로 말해서, 신아름은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은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로 가든 도로 가든, 그저 좋은 느낌만 나면 된다는 듯이.

신아름은 고집이나 욕심이 없는 것 같았다.

조아라처럼 안무를 고려해서 수정을 요청하지도, 백설하와 같이 곡을 보컬에 맞추려는 시도도, 리카처럼 스스로 작곡을 하는 것도.

소녀연맹 멤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이 표현하고픈 무언가가 없다.

“무슨…….”

신아름은 ‘생트집’이란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좋아서 좋다고 한 게 죄인가?

애초에 곡이 좋게 나왔으면 그냥 받아들이면 될 일이지, 굳이 뭘 더 넣어야 하나? 넣고 싶은 게 없는데 대체 뭘?

“곡을 가지고 고민을 더 해봐. 지금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

부루퉁한 신아름을 보며, 성필은 이제 됐단 듯 손혜빈을 말렸다.

손혜빈도 이 이상 말할 생각은…….

“아니, 조금만 더 말해야겠다. 아름아, 적당적당히만 하다간 후회할 거야.”

“후회요?”

“그게 지금은 아닐 거야. 하지만 2년 뒤, 3년 뒤, 10년 뒤, 아니. 어쩌면 수십 년 뒤에도 후회가 없을 수도 있어. 그런데 언젠간 올 거야. 어느 날 네 앨범을 꺼내 듣게 됐을 때,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워지는 날이 올 거라고.”

“아니, 언니. 저는 이 곡이 정말 마음에 들고요, 곡 만들면서도 여러모로 아이디어 냈잖아요? 왜 제가 적당히 한다고 생각하시는…….”

“무색무취니까. 네 색깔이 하나도 없어. 막말로 이거 리카나 아라, 하양이나 설하가 불러도 돼. 아무런 차이가 없을 거야. 아예 다른 그룹이나 가수한테 줘도 될걸. 이 곡엔 네가 표현하고 싶은 뭔가가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네가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뭔가도 없고.”

“…….”

“개인곡이잖아. 너만의 곡이야. 네 이름이 붙은 곡. 지금은 내 말이 이해가 안 되겠지만, 나중에 돌아봤을 땐 후회할 수 있단 거야. 내 말은.”

손혜빈의 훈계는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정지음과 엘릭마저도 왜 그녀가 이런 말을 꺼냈는지 맥락을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손혜빈의 조언에는 힘이 있었다.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그랬기에 누구도 손혜빈이 생트집을 잡는 것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괜찮을까. 네 인생에서 영원히 안 지워질지도 모를 후회를 남긴다는 게, 괜찮을까. 나는 그런 생각이 드네. 나중에라도 진득이 생각해줘.”

다들 손혜빈의 의도와 마음을 이해했다.

오직 신아름만을 제외하고.

‘뭐라시는 거야?’

이 곡에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뭔가가 없다고?

그런 건 당연한데.

왜냐하면.

‘난 애초에 음악이랑 춤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 어쩌란 거야?’

없는 걸 꺼내서 억지로 붙이기라도 하란 말인가?

반발심이 혀끝까지 올라왔지만, 신아름은 그것을 다시 뱃속으로 삼켰다. 여기서 반박해봤자, 성필을 실망시키는 말이나 할 것 같았다.

아티스트인데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은 게 없다니. 그런 말을 들었다간 성필이 혀를 깨물고 뒤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다.

“네, 언니. 고민해볼게요.”

‘꼽 줄 거면 둘이 있는 데서 하지. 팀장님 앞에서 하고…….’

신아름은 겨우 짜증을 갈무리했다.

* * *

“팀장님, 생일 축하해요.”

올해도 어김없이 성필의 생일이 찾아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신아름의 선물은 다이어리의 속지였다. 성필은 그녀의 앞에서 다이어리의 속지를 교체했다.

“표지가 많이 낡았네요.”

“오래 썼으니까.”

성필은 새하얗게 변한 수첩의 내용물을 주르륵 읽어본 뒤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올해도 고맙다.”

“헤헤. 빨리 달력에 스케줄 옮겨 적어요.”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각종 기념일이었다.

“제 생일이랑 저랑 팀장님이 가족 된 날이요.”

작년, 신아름이 자신의 가정사를 밝혔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가족을 버리고 떠나간 것이었다.

그때 성필은 신아름을 위로해주기 위해, 그녀와 자신이 가족이라 말했었다. 덕분에 그날은 둘만의 기념일이 되었다.

“오케이, 기념일 체크는 끝났고.”

“남 교수님은 누구예요? 여기 생일이요.”

“옛날에 이 교수님 책 쓸 때 내가 도와줬었거든. 못 만난 지 꽤 됐는데, 명절마다 선물을 보내주시더라고.”

“문자 친구 같은 거예요?”

“그보다는 펜팔 친구지.”

“펜팔?”

“……펜팔 몰라?”

어쩌다가 세월이 이렇게 지나가 버렸는지 모르겠다. 성필은 새삼 자신의 나이가 체감됐다.

이후에도 성필은 소녀연맹에 관련된 스케줄을 부지런히 기록했다.

벌써 몇 년이나 된 습관이었다. 아니, 전생과 합치면 수십 년의 습관이었다.

다 신아름 덕분에 생긴 습관이자 삶의 방식이다.

“다 됐다.”

“올해도 힘내세요.”

“응, 너도.”

둘은 짧은 기념을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성필은 사무실로 가던 도중 백설하와 만났다. 그녀는 성필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부끄러운 투로 말했다.

“이, 이사님 생일 축하드려요.”

“어? 기억했어?”

“네. 작년에 들었잖아요.”

“하하, 고마워.”

성필은 백설하의 손과 뒤를 살폈다.

“선물은?”

“선물이요?!”

그녀는 ‘아, 아’ 같은 소리를 내며 갈팡질팡했다.

“사, 사 올까요?”

성필은 그런 그녀를 보고 크게 웃었다.

“농담이야.”

가로 엔터는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선물 교환을 금지하는 문화가 있다.

괜히 다른 사람들이 압력을 받아, 마음에도 없는 선물을 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상업적인 기념일에도 선물을 교환하지 않는다. 장하양이 재작년 크리스마스에 돌렸던 선물이 공식적인 마지막 선물들이었다.

“축하해줘서 고마워. 또, 기억해줘서 기뻐.”

“아뇨, 그냥, 기억이 나서…….”

“네 생일에 선물 달라고 밑밥 까는 거 아니지?”

“아니에요! 저, 제 생일에도 그냥 축하만 해주셔도 돼요…….”

생일이란 게 한 번 축하해주기 시작하면 압력과 관성이 생긴다.

게다가 멤버에게 선물을 하는 건 한 명에게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편애의 상징처럼 보일 수도 있기에, 선물을 하려면 모두에게 해야만 한다.

성필과 신아름의 관계야 다들 알고 있기에 이해하는 분위기지만, 그가 다른 멤버에게도 선물을 주기 시작하면 다들 은근히 기대할 게 틀림없다.

‘그게 다른 직원들한테도 퍼질 테고.’

그렇기에 회사 차원에서 생일을 챙겨준다.

성필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아침에 홍규헌으로부터 받은 작은 조각 케이크가 놓여 있다.

“그래, 설하야 오늘 하루도 힘내.”

“네, 감사합니다.”

“내가 고맙지.”

올해 생일은 기쁜 일이 겹친다.

성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이번에야말로 사무실로 향했.

“이사님.”

복도의 구석에서 장하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워낙 잘 숨어 있던 터라, 성필도 그녀를 찾느라 몇 초가 걸렸다.

“하양아?”

장하양이 오라는 듯 손을 까딱였다.

둘은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복도의 구석으로 들어왔다.

“하양아 왜? 상담할 거 있어?”

아니라면 이렇게 구석진 곳까지 성필을 부를 이유가 없다.

“이사님.”

장하양은 성필의 앞으로 다가왔다.

무언가 발목을 잡기라도 하듯, 다가오는 걸음이 질질 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앞에 다가온 장하양은 초조하게 등 뒤로 돌렸던 손을 앞으로 보였다. 그녀의 손에는 예쁘게 포장된 작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장하양은 행복이 서린, 애정이 가득한 미소와 함께 상자를 내밀었다. 조바심 난 듯 빠르게, 동시에 망설이는 듯 떨리는 손길로.

“생일, 선물이요.”

“어?”

성필은 너무도 놀랐다.

장하양도 가로 엔터의 문화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을 터다. 그녀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회사 사람들에게 돌렸을 때, 홍규헌이 직접 공식적인 선물 전달을 금지한다고 말했었으니까.

그럼에도 선물을 준 것이다.

그 이유는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가족이니까.’

장하양이 아버지의 폭언을 듣고 도망갔을 때, 성필은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을 가족이라고 생각해달라‘고 했었다.

장하양은 그 말을 받아들인 것이다.

가족이니까 생일을 축하하며 선물도 주고 싶은 게 당연하다.

회사 문화든 뭐든. 아니, 일단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안 주면 되니까, 이런 인적이 드문 곳으로 부른 것이리라.

“생일선물, 축하, 생일 축하드려요.”

“아…….”

성필은 무의식적으로 상자를 받아들였다.

그의 손길로 옮겨지는 상자를, 장하양은 집요하게도 눈으로 좇았다.

상자는 가벼웠다.

당사자의 앞에서 선물을 바로 열어보는 행동은 실례란 것을 안다.

하지만 성필은 장하양의 열띤 눈빛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선물을 개봉했다.

리본을 풀고 진홍색의 상자를 여니, 푹신한 쿠션 위에 올려진 목걸이가 보였다.

한눈에 보아도 고가인 티가 났다. 보란 듯이 영수증과 품질 증명서마저 있었으니까.

“하양아……?”

성필의 놀란 표정에, 장하양은 기쁜 동시에 긴장한 듯 발작적으로 침을 삼켰다.

성필은 다시 선물로 눈을 돌렸다.

3개의 체인이 각기 다른 길이로 연결된 은색 목걸이였다. 세심한 만듦새와 묵직한 빛깔이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성필의 목소리에 기쁨이 서렸다.

“선물, 나한테 주는 거야?”

“네, 네. 이사님한테요.”

성필은 이토록 고가의 선물을 받아도 되는 건지 고민하는 듯, 오랫동안 마음껏 자신의 마음을 표출하지 못했다.

표정에 떠다니는 갈등과 기쁨을 마침내 유의미한 형태로 갈무리한 성필은, 작게 말했다.

“고마워, 하양아. 정말로.”

간단하면서도 감동이 담긴 감사.

장하양은 목 안쪽이 뜨거워져선 행복에 찬 숨을 자꾸만 내쉬었다.

“그거, 300만 원. 한 이사님이랑 박 이사님이 주셨잖아요. 어디 쓸까 생각하다가, 선물 사는 데 썼어요.”

자신을 위해서 써달라고 부탁했는데, 장하양은 그것을 선물로 돌려주었다.

“한 이사님 선물도 사려고 했는데, 그건 박 이사님이랑 얘기한 뒤에 사려구요. 제가 한 이사님은 뭘 좋아하는지 잘 몰라서…….”

“이 목걸이는?”

“이사님한테 잘 어울릴 거 같아서요.”

성필은 따스함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을 보내며 선물 상자를 닫았다.

“소중히 간직할게.”

“네…….”

장하양은 고맙단 말을 들었을 뿐인데도, 선물을 받은 성필보다 더욱 행복해 보였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줌으로써 받는 행복을, 장하양은 재작년 크리스마스에 이어 이번에도 다시금 알게 되었다.

생애 두 번째인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 훈훈한 대화를 엿듣는 사람이 있었다.

신아름이었다. 그녀는 두 사람이 볼 수 없는 복도 모퉁이에 등을 기댄 채, 둘 사이에서 오가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정말 샀었네, 선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성필의 목소리는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신아름도 성필의 기쁨이 느는 게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느낌도 찾아왔다.

항상 성필의 생일과 선물을 챙겨주는 건 자신뿐이었는데, 이젠 아니게 됐다.

성필의 집에서는 장하양이 준 선물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번이 장하양이 주는 마지막 선물이 아니라면, 분명 그렇겠지.

그럼 성필은 집에 늘어가는 선물들을 보며 장하양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에 비해, 신아름의 선물이란 수첩 하나뿐이었다.

항상 성필이 들고 다니는.

‘낡은 수첩.’

장하양이 무엇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성필은 그 선물을 더 마음에 들어하진 않을까.

관성처럼, 습관적으로 들고 다니는 낡은 수첩보다야.

“…….”

신아름은 벽에서 등을 떼고, 두 사람에게 들키기 전에 연습실로 향했다.

* * *

성필은 오랜만에 이음 엔터의 김명운과 만났다. 그에게 신아름의 포유 탈퇴를 요청할 때 이후, 사적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요즘 많이 바쁘죠?”

“나 말고 애들이 바쁘지.”

김명운은 입가에 피로를 매단 채 힘겹게 웃어 보였다.

포유는 곧 데뷔한 지 1년이 되어간다. 또한 데뷔로부터 지옥 같은 스케줄을 소화해왔다.

12월 데뷔. 3월 컴백. 6월 컴백. 9월 컴백. 그리고 대망의 12월의 마지막 컴백.

포유는 프로젝트팀으로서 1년의 활동을 마치고 해체하게 된다.

“애들은 매일 행사, 방송, 라디오 돌아야 하니까. 나보다 훨씬 더 피곤할 거야. 내가 뭐라고 할 순 없지.”

“오…….”

성필은 존경을 담아 김명운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전부 포유가 변변한 성과도 내지 못한 채 해체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김명운은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포유로 상당한 성공을 이뤄내었다.

‘나도 가로 엔터로 오지 않고 독립했으면 대표님처럼 될 수 있었을까.’

가지 않은 길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그러나 성필은 현재에 충분히 만족한다. 아니, 만족을 넘어서 가로 엔터에 오지 않은 자신을 상상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12월 말에는 팬미팅 겸 단독 콘서트도 있어서…….”

자랑 같은 근황을 이야기하던 김명운이 입을 꾹 닫았다.

“미안. 너무 내 자랑만 한 거 같네.”

성공으로 따진다면 소녀연맹도 만만치 않다.

비록 포유가 김명운의 덕택으로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지만, 소녀연맹의 성공은 업계에서도 입지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요. 대표님 잘 지내시는 거 보기 좋은데요 뭘. 포유 끝나면 어쩌실 생각이세요?”

“글쎄…….”

포유가 온전히 이음 엔터의 것이라면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일단 포유를 구성한 연습생들 모두 다른 기획사에 적(籍)을 두고 있다.

그렇기에 포유의 수익은 단순하게 멤버별로 배분되는 게 끝이 아니라, 그녀들의 기획사에도 추가로 주어야 할 몫이 있다.

‘거기에 모회사인 SMS 엔터가 가져가는 비율도 있고.’

모르긴 몰라도, 김명운이 프로모션과 마케팅에 들인 비용도 만만치 않으리라.

아이돌은 2~3년까지는 적자밖에 없다고 한다. 포유는 3~4년의 트레이닝과 기획에 쏟는 비용이 없기에, 그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안정적인 흑자는 아니리라.

‘총 50억 이상 정도 매출을 얻었을 테니까. 다 나눠주고 나면 대표님 손에 남는 것도 별로 없겠지.’

그것으로 김명운은 무엇을 하게 될까.

“연기자…… 배우 매니지먼트 쪽으로 시작할까 생각 중이야. 나랑 일하고 싶어 하는 배우가 몇 있어서.”

역시나, 김명운은 전생과 같은 경로를 골랐다.

배우들로 확실한 자금줄을 마련한 뒤 아이돌 연습생일 들일 생각인 것이다.

“당연히 하고 싶겠죠. 형이 포유한테 하는 걸 보면 누가 안 그렇겠어요.”

“하하, 너무 띄워주지는 마.”

김명운은 부끄러운 듯 괜히 바쁘게 식사에 열을 올렸다. 그러다가 그의 눈에 성필의 목걸이가 눈에 띄었다.

“액세서리 좋아해?”

“이거요? 선물 받았어요.”

성필은 장하양에게 받은 목걸이를 최대한 차고 다니려 노력했다. 그런데 도저히 매치되는 옷이 없어서, 와이셔츠 안에 하고 다니는 중이었다.

장하양의 정성을 보아 계속 차고 다니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띄지 않게 말이다.

“여자 친구한테 받았나 봐.”

“아뇨, 그건 아니에요.”

“여자인 건 맞지?”

“예리하시네요.”

“나도 그런 거 있어.”

김명운이 자신의 손목을 흔들었다. 은색의 팔찌가 찰랑였다. 남자가 제 돈을 들여 살 것 같지는 않았다.

“남자가 에스클라바주를 사진 않을 거 같아서.”

“에스클라바주요?”

“그 목걸이 종류, 이름. 몰랐어?”

“방금 알았어요.”

아이돌 의상이나 패션에 관심이 많은 성필이더라도, 액세서리 이름까지 외우고 있진 않다.

“길이가 다른 체인 세 개가 연결된 목걸이를 에스클라바주라고 해. 프랑스어야. 어원은 ‘노예’랑 ‘속박’.”

“뭔가 음산하네요.”

“근데 선물해주신 분도 그건 몰랐을걸.”

“액세서리 관심 많으세요?”

“여자 친구 때문에.”

성필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자신의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왜 에스클라바주란 이름이 붙었는지 알겠다. 체인이 세 개나 붙어 있는 건, 확실히 ‘속박’이란 의미가 어울렸다.

“크흠.”

식사가 끝나자 뭔가 할 이야기가 있는 듯 헛기침을 하며, 김명운은 티슈로 손을 닦았다.

“성필아. 이번에 우리 효민이가 ‘너희 친구니’에 나가거든.”

너희 친구니.

다섯 명 정도의 고정 패널을 두고, 연예인의 연예인 친구를 같이 부르는 토크 예능 프로그램이다.

회마다 보통 게스트가 4명에서 5명 정도이다. 항상 연예인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들이 나와, 시청자들에게 연예계 인맥을 가늠하는 재미를 준다.

“컴백 시즌이라서요?”

“응. 원래 12월에 나가고 싶었는데 그땐 다른 유명하신 분들이 예약돼 있더라.”

그래도 ‘너희 친구니’는 1년 넘게 평균 시청률이 3%에 가까운 방송국 효자 예능이었다.

나가면 화제성과 인지도를 다 잡을 수 있어, 아이돌들도 컴백하면 한 번씩 들르곤 한다.

소녀연맹은 첫 번째 컴백 때 못 나갔지만…….

‘시에이스, 포유랑 컴백이 겹쳐서 그랬지.’

게다가 봄노래 깡패들도 활개를 치고 다니니, 소녀연맹이 어깨를 펼 수가 없었었다.

“그래서 거기에 아름이도 나갈 생각 있나 해서.”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섭외 요청에 성필은 깜짝 놀랐다.

바로 드는 생각은 ‘효민이가 연예인 친구가 없나?’란 것이었다. 보통은 화제가 되도록 유명한 친구를 부르…….

‘우리 애들도 유명하잖아!’

그렇구나, 소녀연맹도 유명하다!

“대표님, 아니, 형. 그거 말하려고 오늘 보자고 한 거예요?”

“응. 그래서, 어떨까?”

어떠냐고?

“오늘 술 드실래요? 제가 살게요. 양주 하나 깝시다.”

정규 앨범이라서 그런가, 이번 컴백에는 운이 꽤 붙는다.

무려 미디어 출연이 두 개나 잡혔으니 말이다.

백설하의 ‘음악을 위한 동행’. 그리고 신아름의 ‘너희 친구니’.

‘컴백 시기에 맞춰 소녀연맹을 홍보할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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