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97화 (197/760)

197화

주말 아침의 식사 시간.

어제 장하양에게 벌어졌던 끔찍한 일에 대해 다들 보고들은 터라, 식탁의 분위기는 무겁기 그지없었다.

어제도 장하양의 분위기가 심각하여, 멤버 중 누구도 말을 붙여보지 못했다.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장하양에게 상처만 될 듯했다.

“크흠, 하양아.”

백설하는 오랜만에 실력을 발휘해서 만든, 한구인표 레시피 난이도 5짜리 반찬을 장하양의 밥그릇 위에 올려주었다.

동생 라인의 시선도 백설하와 장하양에게 고정되었다.

“너무 마음 쓰…….”

“언니.”

“으, 응?”

“제가 컵에 물 떠 놓으면요. ‘한 입만’이라면서 마시지 마세요. 침이 묻잖아요.”

“어?!”

“이렇게 제 밥 위에 반찬 집어주는 것도 하지 말아 주세요. 저, 음식 나눠 먹는 거 안 좋아해요.”

백설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뇌가 흔들리고 시야가 좌우로 빠르게 왔다 갔다 한다.

“으, 흐으, 으으으응…….”

백설하가 거의 울 듯이 답했다.

“아라야.”

“넵?!”

그저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도 조아라가 기겁했다.

“나 춤 연습하고 있으면 훈수 좀 두지 마. 난 네가 말하는 스타일이라거나 느낌을 살릴 단계가 아니야. 기초만 따라가기에도 힘들어.”

“…….”

조아라는 혼이 나가버렸다.

방금 장하양에게서 들은 말을 머릿속에서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심연을 엿본 것처럼 정신적인 피해가 심대했다.

“아, 아앗! 몰래카메라인 거……!”

“리카, 보드게임이나 저거, 게임기, 그거, 플레이…….”

“스테이션, 이요.”

“보드게임이랑 플레이스테이션하자고 조르는 거 좀 그만해. 한두 번이지, 매일 하기엔 귀찮아. 나 게임 별로 안 좋아해.”

“고멘나사이(죄송합니다)…….”

리카가 젓가락을 쥔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기어코 젓가락이 밥상 위로 떨어졌다.

마지막 차례인 신아름은 심장이 옥죄어 오는 것만 같았다. 침을 꼴깍 삼키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름아.”

“……네.”

“너 박 이사님 팀장님이라고 부르는 거,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은 안 그래. 네가 팀장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위장이 뒤틀리는 거 같아.”

“…….”

“그래도.”

장하양은 굳었던 얼굴을 폈다. 그것을 넘어 이제껏 본 적 없던 미소를 지었다.

꽃이 핀 것 같았다.

“다들 가족이니까, 괜찮아.”

좋은 척하고 이해만 하는 건 가족이라고 하지 않는다.

마음속에 품어둔 불평이나 불만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기에 가족이다.

“굳이 내가 말한 행동들을 해야겠다면, 나쁘게 보진 않을게.”

“하, 하양아 미안. 내, 내가 입 대는 걸 그렇게 싫어하는 줄 몰랐어…….”

“앞으로 언니 춤출 때 뭐라고 절대 안 할게요!”

“죄송해요, 제 취미에 억지로 어울리게 해서…….”

“아니에요. 아니야. 괜찮아. 언니랑 너희들이 싫은 게 아니니까. 그냥 단순한 불만이야.”

장하양은 의자에서 일어나 돌아가며 멤버들을 안아주었다.

마지막은 신아름이었다. 그녀는 장하양에게 안겨서 속삭였다.

“계속 팀장님이라고 부를 거예요.”

장하양은 그녀와의 포옹을 풀고 활짝 웃었다.

“응, 괜찮아.”

가족끼리라도 싫어하는 행동이 없을 수는 없다. 단지, 알더라도 바꾸지 않고 바꾸길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니까.

“저 싫어하는 거 아니죠?”

“당연하지. 옛날에 전화로 말했잖아. 나는 아름이 좋아하고 사랑해. 우리 착한 동생.”

그제야 신아름은 순수하게 미소를 띨 수 있었다. 다시금 둘이 포옹했다.

“그럼 진짜 계속 팀장님이라고 부를게요? 공식 허가 난 거죠? 팀장님 부를 때마다 언니 눈치 안 봐도 되죠?”

“아아, 위장이 꼬이는 거 같아.”

“…….”

“심사가 다 뒤틀리네에.”

장하양이 장난스레 웃었다.

멤버들은 놀랐다.

장하양이 이토록 해맑고 순수하게 웃는 건 처음 보았기에.

* * *

“다들 알겠지만, 하양이는 다쳐서 2, 3주 동안 여기에 못 와. 우리끼리 하양이 포지션은 남겨두고 퍼포먼스 맞춰보자.”

우효민과 라희의 표정에 암울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나마 장하양이 방파제가 되어주어서 두 사람이 멘탈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하양이 없다면, 둘은 진소유에게 매타작당하듯 털릴 게 자명했다.

“이제 춤은 그럭저럭 괜찮네.”

첫 번째 연습이 끝나자 의외로, 정말 예상 밖으로, 진소유가 칭찬을 입에 올렸다.

뒤에서 진소유를 ‘윤상열과 비교 가능한 썅년’이라 욕하던 라희마저도, 드물디드문 그녀의 칭찬을 듣자 가슴 한편이 간질거릴 정도였다.

“잘했어.”

진소유가 우효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간단한 격려가 우효민의 입꼬리를 하늘까지 올려보낼 듯했다.

“그럼 이제 노래에 신경을 써보자.”

허나 진소유가 다른 파트를 물고 늘어지자, 곧 두 사람은 인격의 바닥까지 파헤쳐진 것처럼 몸이 떨려왔다.

“너희들 가수 맞아?”

“이, 이거 댄스가 격렬하잖아요. 라이브는…… 안 되는 게 당연해요…….”

라희가 소심한 반항을 시도했다. 우효민이 라희의 등을 콕콕 찌르면서 말렸다.

“그래서 내가 라이브가 안 돼?”

너무 잘된다.

놀랄 만큼 잘돼서 같은 인간이 맞나 싶은 정도였다.

“너희의 역량이 부족한 거야. 그 역량을 올리는 게 연습의 목표잖아?”

라희는 울컥임을 참으려 입술을 꽉 물었다.

진소유를 대한 때마다 윤상열이 떠오른다. 진소유의 성격이 더럽기 때문도 있으나, 라희가 저항할 수 없단 점에서도 윤상열과 비슷했다.

“흠.”

진소유는 라희의 근처를 터벅터벅 걷더니, 선심 쓴단 태도로 말했다.

“춤추면서 노래 부를 때 광배에 힘을 줘. 가슴 위를 고정시켜.”

“……광배가 뭔데요.”

“너 광배도 몰라?”

라희는 자신의 등을 훑는 차가운 손길에 화들짝 놀랐다.

“여기가 광배야 힘을 줘봐.”

힘이 안 줘진다.

애초에 힘을 줄 수 있는 곳인가?

라희는 어떻게든 광배근에 힘을 넣으려 했으나, 그곳에 과연 근육이 있는 건지 의심만 하게 됐다.

“……효민이 너는.”

우효민도 마찬가지였다.

진소유는 어이가 없단 듯 웃음을 토했다.

“너희들 운동도 안 해? 턱걸이 못 해?”

“…….”

“진짜 못해? 이러면서 어떻게 아이돌이 되겠다고…….”

이후, 진소유는 두 사람을 깎아내리기 바빴다.

중간중간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팁들이 섞여 있었으나, 이미 두 사람의 뼈와 살은 진소유의 폭언에 전부 떨어져 나간 뒤였다.

라희는 또다시 자신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것 같자 울분이 올라왔다.

결국 폭발해버렸다.

“야! 네가 케이어스면 케이어스지 사람을 이렇게 무시하……!”

“언니.”

라희가 모처럼 반항을 해보려고 했으나, 입구에서 들려온 목소리로 인해 뚝 끊겨버렸다.

“하양아?”

어깨가 아프다며 못 온다고 했던 장하양이 입구에 당당히 서 있었다.

“웬일이야. 아프다면서? 아아, 스텝이라도 맞추려고? 아플 텐데, 기특하다.”

장하양은 진소유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언니, 애들한테 폭언하는 거 그만두세요.”

“폭언?”

아, 굿캅 배드캅 작전이구나.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게 잡았다.

“너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폭언이라고 부르니?”

“언니는 선생이 아니에요. 저희는 같은 무대를 준비하는 동료로서 동등해요.”

“음, 그런가. 실력으로 보면 전혀 아닌데.”

“KS 엔터에 이 안무를 만드신 안무가님, 혹은 언니한테 안무를 가르쳐준 트레이너님 계시죠?”

“있지.”

“다 같이 그분한테 배워요. 학생 입장에서요.”

와, 좀 세게 나오네.

하긴 오늘은 애들을 많이 갈구긴 했지.

당근도 평소보다 더 가까이서 흔들어야 할 거야.

“안 받아들이시면, 언니 빼고 저희끼리만 연습할 거예요.”

“아아, 나를 빼고? 군무를 한 사람을 빼고 연습한다구? 나 왕따시키려는 거야? 가슴이 쓰리네.”

“약속해주세요. 애들한테 폭언 안 한다구요.”

“하양이나 인정해줘. 내가 내 시간까지 써가면서 너희들을 가르치고, 평일 매일 신경 써주잖아. 내 고생을 이렇게 몰라주니.”

“마지막이에요.”

“하하. 어이없다, 하양아.”

장하양이 라희와 우효민의 손을 잡고 문으로 향했다.

“가자, 얘들아. 연습실 다른 데 잡아.”

오, 꽤 세게 나오네?

오늘은 당근을 더 많이 주는 날인가?

“하양이 네가 그렇…….”

쾅.

연습실 문이 닫혔다.

진소유는 침묵 속에서 10초 정도 있다가.

“응?”

뭐지?

진소유는 조심스럽게 입구로 향해 문을 열었다. 좌우를 살폈지만 아무도 안 보였다.

“응?”

진짜…… 간 거야……?

“허.”

얘는 같이 합의한 내용도 잊어버렸나?

진소유는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는 듯했다. 실제로 그러해서, 바닥에 앉아 열 받은 머리를 식혀야만 했다.

‘내가 나쁜 역할을 대신 맡아준다는데 뭐가 불만이야.’

실제로 진소유 덕분에 라희와 우효민, 덩달아 장하양의 실력마저 향상되었다.

만약 진소유가 없었다면, 이 시기에 이토록 큰 진전을 보이지 못했으리라.

‘이해가 안 되네.’

효율성보다, 우효민과 라희의 호감을 얻길 택했단 건가?

아니, 그냥 두 사람이 욕을 얻어먹는 게 싫은가? 장하양도 그 욕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으니.

‘속이 좁다…… 고 해야 하나. 아니면 속이 넓다고 해야 하나.’

어느 쪽이든, 이성적이지 못한 인간이다.

진소유는 대기실로 가서 매니저에게 핸드폰을 받곤 장하양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언니.]

“상관없는 인간들의 호의는 백 개, 천 개 받아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어. 하양아, 그걸 왜 모르니? 아직 저울에 뭘 올려놓은 경험이 적어서 그런가 본데. 어떤 일이든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자신의 무게가 가장 높…….”

뚝.

“……끊었어?”

진소유는 매니저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그리고 다시 텅 빈 연습실로 돌아왔다.

적막했다.

“오랜만에 연습생 때 기분도 나고, 좋네.”

진소유는 홀로 군무를 연습했다.

익숙한 일이다.

* * *

장하양은 아버지에 대한 접근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재판일이 되면 장하양과 아버지는 재판장에 서서, 판사의 앞에서 심리를 받게 될 것이다.

“그 인간 만나는 데 괜찮겠어?”

“네. 과정이잖아요.”

고통스럽게 이어져 있던 사슬을 자르는 과정일 뿐이다. 도중에 얼굴 한두 번 정도는 충분히 보아줄 수 있다.

“하양 씨, 용감한 선택이십니다. 천륜을 끊어낸다는 건 매우 어렵고도 험난하지만, 분명 하늘도 하양 씨의 편을 들어주실 겁니다.”

“고마워요 한 이사님.”

성필과 한구인은 장난기를 담아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장하양이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겼다.

“두 분 왜 그러세요?”

띠링.

장하양의 핸드폰에 알림음이 떴다. 내용을 확인한 그녀의 눈이 솥뚜껑보다 크게 뜨였다.

“사, 삼, 삼백, 삼백만…… 원?”

“너 그 인간한테 삼백만 원 줬다면서. 아깝잖아. 하양이 네가 생활비랑 알바비 열심히 모아둔…….”

“필요 없어요 이런 거 필요 없다구요! 너, 너무, 많, 너무 많잖아요!”

장하양이 엄청나게 흥분했다. 아니,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성필이 그녀를 간신히 진정시켰다.

“보상이 아니라, 네가 원하는 곳에 쓰길 바라서 주는 거야. 모아둔 금액 보니까 하양이 너 생활비도 제대로 안 썼겠더만.”

“대가 없이 이런 걸 받을 순……!”

“대가가 왜 필요해.”

성필과 한구인이 서로를 바라보며 타이밍을 맞췄다.

“우린 가족이니……!”

“저흰 가족으로서……!”

대사가 안 맞았다.

둘은 다시 입을 맞춰본 뒤 타이밍을 쟀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저희는 가족입니다!”

두 남자가 환한 미소를 품은 채 ‘짜잔’하는 자세를 취했다.

장하양은 반응이 없었다.

“어…… 그러니까, 뭐.”

성필이 부끄러움을 숨기면서 말했다.

“너 자신에게 선물 좀 줘. 하양이 너는 너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

“저를 사랑하는 법이요?”

“응.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옷도 좋은 거 입고, 그렇게 상을 줘.”

장하양은 곰곰이 생각을 이어가다가, 불확실한 투로 말했다.

“그럼 저, 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해도 돼.”

“제 이야기를 SNS에 올리고 싶어요.”

“……응?”

“감추기만 하는 건 상처잖아요. 상처를 감추려면 옷으로 저를 가려야 해요. 그러긴 싫어요. 당당해지고 싶어요. 해도…… 될까요……?”

그리 물어보는 장하양의 눈에는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오랜 악연을 끊어내는 과정에 있다. 밝게 돌아왔다 해도 멀쩡할 리는 없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빠르게 덜어내고 싶으리라. 상처를 만천하에 공개해서, 더 이상 부끄럽게 감추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언젠간 그 흉터를 보고 웃을 수도 있길, 장하양은 바라고 있다.

* * *

“이게 뭐야……?”

여느 때와 다름없이 SNS를 즐기고 있던 김채현은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그 충격적인 글이 가장 먼저 올라온 곳은 트잇터였다. 140자라는 짧은 글임에도, 소녀연맹의 팬들을 충격에 빠뜨리긴 충분했다.

[저는 사랑받지 못한 아이였습니다.]

로 시작되는, 학대와 폭력에 시달렸던 20살까지의 삶을 표현하는 글이다.

김채현은 그것을 읽는 내내 손이 떨렸다.

글, 고작 글, 고작 140자의 글인데, 읽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솟구쳐서 천장을 뚫어버릴 듯했다.

“가정, 폭력? 하양이가……?”

눈물이 찔끔 솟아났다.

현재는 부모에게 접근금지를 신청했고, 재판일을 기다리는 중이라 한다.

본인의 사적인 일을 SNS에 올려 심기를 거스른 것을 사과한다는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저는 하얀색의 백지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아니, 심기 따위 거슬리지 않았다.

김채현은 족히 수십 분을 끅끅거렸다. 머리가 식은 뒤엔 눈물을 닦고 작업에 들어갔다.

이미 많은 인민 동지들이 흐름을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소녀연맹_하양_사랑해_영원히!]

이 태그를 단 글을, 소녀연맹 팬들은 끊임없이 리트잇하고 작성해내고를 반복했다.

[트잇터 실시간 트렌드에 띄워서 하양이가 볼 수 있도록 하자!]

인민들이 장하양을 사랑한다는 것을, 위로하며 걱정한다는 것을 보여주자!

그런 마음가짐으로, 밤 11시에도 깨어 있는 소녀연맹의 팬들이 뭉쳤다.

하지만 김채현은 곧 한계에 부딪혔다.

‘화력이 부족해…….’

김채현은 금단의 선택을 하기로 했다.

소녀연맹 공식 팬카페에서는 언급조차 금지된, 여타 사이트나 플랫폼의 소녀연맹 커뮤니티에서도 좋게 보지 않는.

‘소녀연맹 마이너 갤러리에도 요청글을 올리자.’

이 물결에 동참해달라고.

* * *

“뭐야?”

퇴근 후 소녀연맹 덕질을 하고 있던 유용태는, 갑자기 어떤 글이 엄청난 추천을 먹고 개념글에 오른 것을 확인했다.

트잇터에서 온 것이었다.

‘뭐야. 얘네들 왜 자기네들 땅 뛰쳐나왔어.’

그런데 읽어보니 확실히 이유가 있었다.

‘아, 실시간 트렌드에 올리면 확실히 힘이 있겠구나.’

트잇터의 실시간 트렌드는 시간마다 바뀐다.

그 시간 동안 가장 많이 트잇된 단어와 태그를 순위별로 나열하니, 그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볼 수밖에 없다.

‘소녀연맹도 보게 되겠지.’

실시간 트렌드에는 트잇된 총횟수도 보이기에, 팬덤의 화력을 알 수 있는 지표로 삼을 수 있다.

소녀연맹 멤버들의 스타그래프나 페이스룩의 글에 댓글로 위로를 전하는 것보다, 수천수만의 트잇 횟수를 보여주는 게 영향력이 훨씬 더 클 것이다.

‘예상보다 갤러리 반응도 긍정적이고.’

트잇터에서 온 글은 보자마자 비추천 폭탄을 먹인 뒤 심해 속으로 가라앉힐 줄 알았는데…….

유용태는 생전 해본 적도 없던 트잇터에 가입하고 글을 썼다.

[#소녀연맹_하양_사랑해_영원히!]

그는 끊임없이 장하양 응원 글을 찾아다니며 리트잇하였다.

부디 실시간 트렌드에 올라가서 장하양이 볼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하양이가 위로받을 수 있도록.’

파란색 새는 밤 동안 쉴 새 없이 인터넷의 바다에서 날아올랐다.

* * *

새벽, 아니. 아침 5시 30분.

김채현은 피로 때문에 마우스를 잡은 손마저 덜덜 떨었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글을 쓰고, 리트잇하고를 반복했다.

‘인민들이 실시간 트잇 수 1만도 못 뚫는 거야?’

24시간 실시간 트렌드 10위권 내에 들자는 것도 아니다.

1시간, 딱 1시간 동안의 트렌드 10위권 내에만 들이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새벽이라서? 타이밍을 잘못 잡은 건가?!’

아침 되면 팬들도 다 학교나 직장에 갈 텐데…….

‘아, 안 돼 포기하지 마. 계속해. 언젠가는 올라갈 거야. 하양아, 네 뒤에는 우리가 있어.’

알아줘.

네가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뒤에서 응원해주는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있다는 걸.

* * *

6시 30분.

유용태는 피곤한 눈을 비비면서 출근 준비를 마쳤다. 이제 밥만 먹고 지하철에 몸을 실으러 가야 한다.

여전히 실시간 트렌드 10위권 내에는 못 들고 있다. 화력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실패인가…….’

트잇터는 잘 모르지만, 이 정도면 잘한 거라고 생각한다.

시간마다 수천 명이 같은 태그와 단어를 썼다는 건, 비록 순위권 내에 못 들었다 해도 대단한 게 분명하니까.

“오늘 일하다가 졸겠…….”

그때, 갑자기 ‘#소녀연맹_하양_사랑해_영원히!’ 태그를 단 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리트잇 횟수도 계속 상승하는 것 같았다.

“뭐, 뭐야 이건.”

[Girls’_League_White_Love_Forever_From_SOYU]

“영어? 뒤에 이건…….”

소유?

* * *

“우와아아악! 으아아악! 끼에에에엑!”

김채현은 교복을 갈아입곤 방에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김채현 너 학교 언제 갈 거야! 지각이잖아!”

어머니의 부름마저도 김채현의 환호를 막진 못했다.

“1만 넘은 수준이 아니잖아!”

한 시간 만에 10만을 넘게 생겼다.

모두 케이어스의 진소유가 도와준 덕분이었다. 그녀는 아침 일찍 장하양의 글을 리트잇했다. 동시에 장하양을 응원하는 영어 태그를 올렸다.

덕분에 한국과 외국의 케이어스 팬들이 장하양 응원글을 무지막지하게 재생산하는 중이었다. 거기에 더해 외국의 소녀연맹 팬들도!

“이건 24시간 실트에도 뜰 거야! 하, 하양이가 볼 거야! 하양이가 볼 거라고!”

“너나 시계 좀 봐라!”

어머니가 김채현의 등짝을 거세게 후려갈겼다.

맞으면서도 김채현의 웃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 * *

장하양은 아침에 소식을 접하고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소녀연맹이 실시간 트렌드에 뜨는 건 신곡을 발표했을 때 정도였다.

입을 막고 생각을 정리하며, 눈물을 훌쩍이기도 하고,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려 키보드에 손을 올리기도 했다가, 이내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언니.”

상대는 진소유였다.

[어, 나한테 사과하려구? 다시 연습실로 돌아올 거야?]

“왜 제 글 트잇하셨어요?”

장하양을 감동시키려고? 아니면 화해의 제스처인가? 순수하게 장하양을 걱정했을 리는 없다.

진소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니니까.

케이어스보다 한참 밑에 있는 걸그룹을 신경 써 봤자, 케이어스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나중에 소녀연맹의 이미지가 떨어지거나 사건에 휘말렸다간, 케이어스에 피해가 돌아올 수도 있다.

쉽게 말해, 괜한 짓이다.

“왜 그러신 거예요?”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순간 장하양의 말문이 막혔다.

“……왜요?”

[이득 될 거 같아서. 회사 허락도 받았어. 비몽사몽한 남홍범 이사님이랑 정호환 이사님 허락.]

남홍범은 누군지 모르겠으나, 그럼 그렇지.

KS 엔터의 판단이 깔린 일이었다.

[또, 하양이 너 예쁘잖아. 난 예쁜 사람은 그나마 친하게 지낼 마음이 들더라.]

“……그래요.”

[부담가지지 마. 이거 오늘 기사로 엄청 나갈걸? 너는 사람들한테 위로받고, 나는 착한 이미지 생기겠지. 아, 맞다. 나 물어보고 싶은 거 있었는데.]

“말씀하세요.”

[왜 라희랑 효민이 데리고 나간 거야? 그대로만 했으면 우리 연말 무대 씹어먹었어. 괜히 너만 귀찮은…….]

“언니. 사람이 괴롭힘당하는 걸 돕는데 이유가 어딨어요. 보기 힘드니까 데리고 나온 거죠.”

라희와 효민이와의 관계.

연말 무대에서의 완성도.

그 두 개 중 이해득실을 따지고 싶진 않다.

단지 더는 진소유에게 두 사람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고통받도록 두긴 싫었다.

자신은 부모와 다르니까.

그저 돕고 싶어서 도왔다.

“언니 계속 그러실 거예요?”

[모르겠어. 나 지금 너희들한테 화났어.]

“……예.”

[그래도 너랑은 친해지고 싶어. 그럼 친해지기로 합의 본 김에 친구 토크나 해볼까? 하양이 넌 거울 보면 흥분되거나 안 해? 나는…….]

“아침 일찍 죄송했습니다.”

장하양은 전화를 끊었다.

그제서야 머리가 좀 돌아갔다. 그녀는 트잇터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인민이들. 케이어스 팬인 유스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쓸 말이 잘 떠오르지 않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책을 더 많이 읽을 걸 그랬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키보드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응.”

나는 혼자가 아니야.

이렇게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잖아.

가슴에 뚫린 구멍이 메워져서, 따뜻해.

* * *

10월.

앨범 작업도 막바지에 들어섰다.

장하양은 7시간의 녹음 대장정을 마친 뒤, 피곤함에 절어서 소파에 누웠다.

참고로 한 곡만 7시간 동안 녹음한 것이다.

“하양아, 고생 많았어. 엘릭 씨가 인정사정이 없지?”

“그러게요. 정말로요.”

어찌나 사람을 몰아붙이는지, 부스 안에 들어가면 절로 심장이 떨려왔다.

장하양은 성필이 내민 커피를 고맙게 받았다.

그녀는 성필이 곁에 앉았음에도 계속 누워 있었다. 옛날 같았으면 벌떡 일어나 바른 자세를 잡았을 것이다.

“커피 마시려면 일어나서 마셔. 체하겠다.”

“괜찮아요. 저, 이사님.”

“응?”

“개명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이름 바꾸게?! 너 지금 이름도 예뻐!”

“아하하, 네, 그런데 마음에 안 들어서요.”

“……뭘로 바꾸게?”

“하양이요.”

“응?”

장하양은 커피를 테이블에 두고, 천천히 일어나 머리칼을 쓸어 어깨 뒤로 넘겼다.

“제 이름이 여름 하(夏)에 볕 양(陽)이잖아요. 저는 여름이 싫어요.”

“아, 그래?”

“여름은 눅눅하고, 덥고, 기분이 나빠요.”

아이돌이 되기 전에도, 아르바이트할 때마다 여름은 가장 꺼려지는 계절이었다.

“그래서 하양으로 바꾸게요. 한글 이름이요.”

“아, 그건 괜찮겠다.”

“네. 처음부터 시작한단 의미로요.”

“내가 한번 알아볼게. 아마 한 이사님이면 아실 거야.”

“부탁드릴게요. 이사…… 음…….”

장하양은 천륜(天倫)을 잘라냈다.

“가족…… 님?”

“뭐?”

“가족이라고 생각해달라고 하셨잖아요.”

“음, 그랬었지.”

“호칭은 뭘로 할까요?”

“박 이사님이지 뭐. 회사가 집이니까 가훈에 따라. 아, 아니면, 음, 오빠도 괜찮…….”

“여보.”

성필의 눈이 솥뚜껑만 하게 커졌다. 장하양은 그 모습을 보고 세상이 떠나가라 웃었다.

“저 좀 치죠?”

“어, 그러게. 웃기다. 다만 다시 그런 장난을 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거다.”

“아하하!”

장하양은 커피를 들고 힘차게 일어났다.

“으, 녹음 힘들었어요. 빨리 회사 가서 쉬고 싶어요.”

“회사 가도 연습해야 하잖아. 빨리 가는 건 좋은 생각이다. 엘릭 씨랑 지음이 밑에서 기다리잖아. 너 여기서 너무 오래 쉬었어.”

“네. 빨리 가요.”

집으로.

장하양은 천륜을 잘라냈다.

대신 다른 인연을 얻었다.

백지부터 시작하는 것치곤 썩 괜찮은 시작이었다. 아니, 과분하리만치 좋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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