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95화 (195/760)

195화

“언니, 그게 무슨…….”

성필과 진소유의 매니저는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당연하게도 무슨 일이냐며 둘에게로 따라붙었다. 하지만 진소유가 ‘산책이요’라 짧게 말하곤, 거리를 벌리라는 듯 눈치를 주었다.

그래서 성필과 매니저는 둘의 살짝 뒤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방금 말은 충고였어. 네 행동은 이상하게 보일 거야. 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쳐야 해.”

“…….”

“화나겠지. 몇 번 본 게 전부인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그런데 너 화나게 하려고 한 말은 아니었어. 애초에 본론도 아니고. 음, 내가 너희들한테 간섭을 심하게 하지?”

길거리의 사람들이 조금씩 장하양과 진소유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니, 그녀들이 소녀연맹과 케이어스란 사실을 몰라도, 둘이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은 시선을 빼앗기 충분했다.

“……네.”

“그런데 누군가는 이런 역할을 맡아야 하잖아. 특별 무대 준비는 방학 숙제 같은 거야.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차일피일 연습을 미루다간, 결국엔 하나 마나 한 무대가 될 거야.”

“그래도 언니는 심하잖아요.”

“너한테 했던 말 포함해서?”

“…….”

“심하지. 나도 알아. 알면서 하는 거야. 나도 귀찮아서 죽겠어.”

“그런데 왜…….”

“말했잖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성필과 매니저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점점 군중이 모이고 있었다.

진소유와 장하양은 걸음도 느렸기에, 사람들이 그녀들을 따르며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벌써 열댓 명 되는 사람들이 그녀들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성필과 매니저는 ‘사진 찍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스케줄 아닙니다.’란 말을 반복해야만 했다.

“하양아. 내가 지켜본 바로, 너는 주변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거 같아. 그런데 네 눈빛에서는 다른 게 보이거든. ‘귀찮아’라는 거. 효민이나 라희가 준비해 온 거 봤지? 솔직히, 그다지 연습한 티가 나진 않았잖아.”

“그거야 아직 일이 주밖에 안 지났으니까요.”

“일이 주면 진전이 더 있어야지.”

“저희는 아이돌이잖아요. 다른 스케줄도 있어요.”

“그래도야. 그래도 진전이 있어야지. ‘아직 시간이 많다’라고 생각하는 게 너무 빤히 보이잖아. 너도.”

“저는 열심히 연습했어요.”

“아니, 그 말이 아니야. ‘스스로 해주지 않으려나’, ‘더 열심히 해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게 보인다는 뜻이야. 그리고 또 생각하지. ‘귀찮아’라고. 나는 네가 귀찮아하는 걸 대신 하는 거야.”

길거리에는 간판이나 입간판, 광고대가 여러 개 있었다. 모두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의미가 없었다.

장하양과 진소유가 모든 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으니까. 이 자리의 그 무엇도, 두 사람보다 더 빛날 수는 없었다.

“언니, 저는…….”

“하양아. 나는 내 본심을 다 털어놓고 있어. 너도 그에 맞춰줘.”

군중은 점점 더 많아졌다. 그녀들은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 같았다.

성필과 매니저는 군중들 사이에서 둘을 따르는 게 고작이었다.

“안 될까?”

“……저는, 그룹 내에선 항상 떨어지는 애였어요. 저 혼자만 신경 쓰기도 벅차서.”

“아, 그래서 남을 이끄는 게 익숙지 않구나.”

“네. 언니 말대로, 귀찮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요. 언니가 리더 역할을 해줘서 편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심하다, 는 거지?”

“네.”

기어코 두 사람에게 다가가 사인을 부탁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군중은 그 사람을 유심히 보았다. 만약 그가 사인을 받는다면, 다들 달려들어 사인이나 사진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진소유가 능숙하게 ‘죄송합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단칼에 거절 받으면 기분이 나쁠 만도 하건만, 그 사람은 진소유의 미소를 보자마자 넋이 나갔다. 오히려 그가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하양아. 우리는 아이돌이지? 프로잖아.”

“좋은 특별 무대를 위해서,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뜻인가요.”

“그렇지. 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인데,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어. 미움받아도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을 구별해. 그 기준은 동정이나 친밀감 따위가 아니야. 본인에게 해가 돌아오느냐야.”

“라희랑 효민이는…….”

“내가 아무리 몰아붙여도 피해로 돌아오지는 않아. 내가 비정상적인 부탁을 해? 내가 이치에 안 맞는 요구를 하는 거야? 아니잖아. 난 단지 실력을 더 갈고닦으라고 하는 거고, 그에 따른 방법도 제공해줘. 알겠지? 이해득실을 따져.”

장하양과 진소유의 주변은 어느새 거대한 유기체처럼 변했다.

둘을 중심으로 빈 공간이 있고, 그 밖을 둥글게 둘러싼 군중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메바처럼 느리게, 하지만 착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방이 카메라 셔터 소리와 들뜨고 흥분된 목소리로 가득했다.

이미 성필과 매니저는 두 사람을 통제하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라희랑 효민이한테 나쁜 사람이 되는 대신, 특별 무대 퀄리티가 올라간다면 이득이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득이야.”

“언니는 사람을 도구로만 생각하세요?”

“아닌 사람이 있을까 싶네. 다들 자신의 이해를 따라서 일을 하잖아. 너도 그렇지?”

“…….”

“그런 조건을 초월할 수 있는 건 가족뿐이야. 라희랑 효민이가 네 가족이야? 아니지.”

주변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장하양과 진소유가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마치 게릴라 콘서트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켠 사람까지 나왔다. 두 사람의 모습은 인터넷을 타고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인 게 비현실적인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현실이 요정의 세계처럼 변해버렸다.

아이돌의 아우라가 사방을 울리고 있었다.

“가족은…… 아니죠…….”

“중요한 건 좋은 무대를 만드는 거지, 그 둘에게 환심을 사는 게 아니야. 걔들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 거며, 내가 하는 일이 잘못된 것도 아닌데 무슨 해를 입을까. 고마워하면 고마워했지.”

“그래도, 언니는…….”

“그리고, 봐.”

진소유가 장하양의 손을 놓았다.

그제서야 장하양은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귀와 눈이 뚫렸다, 라고도 표현할 수 있었다.

사방의 풍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오로지 장하양과 진소유를 보기 위해서였다.

장하양은 홀린 눈으로 주변을 쭉 훑었다. 동, 서, 남, 북, 어디든 사람이 만든 벽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해변을 향해 달리는 파도처럼 새하얗고 파랬다. 그리고 파도처럼 부서지듯, 형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아니라 유기질의 무언가가 모여서 꿈틀거리는 모양새. 압도적인 양(量)이다.

“우리를 바라보는 이 모든 사람의 사랑을 얻는 거랑, 라희와 효민이의 사랑을 얻는 거. 어느 쪽이 더 올바를까. 아니지, 특별 무대는 이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봐. 게다가 인류 역사가 망하지 않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는, 영상이라는 매체로 기록돼. 라희랑 효민이에게 미움받고, 수십, 수백만 명을 만족시킬 무대를 만들 수 있으면. 그게 맞는 거 아닐까?”

진소유의 말은 사람들의 수와 합쳐져 압도적인 무게를 지녔다.

장하양은 말 그대로 압도당했다.

“그런데, 채찍질에는 한계가 있어. 다행히 애들이 너를 의지하는 거 같아. 너도 나를 도와줘. 내가 채찍질을 하면 네가 당근을 흔들어줘. 내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과제를 요구하거나, 인격모독이나 다름없는 피드백을 하면, 네가 오늘처럼 도중에 끼어들어. 애들을 위로해줘. 기계도 기름칠이 중요하잖아.”

“제가요…….”

“하양아.”

진소유가 다시 장하양의 손을 잡았다.

“너 자신을 사랑해. 옛말에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도둑질도 마다치 않는다고 했어. 그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신을 위해서라면 뭔들 못할까? 도둑질이 아니라 살인도 하지, 보통은.”

진소유의 말은 너무도 차가웠다.

그럼에도 설득되었다고 고백해야만 하겠다. 그러나 진소유의 말에는 인간이 아닌 듯한 매정함이 들어 있어서, 바로 수긍할 수가 없었다.

“이제 가식을 던져보자. 효민이랑 라희랑 끈끈하진 않더라도 그럭저럭 좋은 관계를 유지할래. 아니면 네 목적을 이룰래.”

“제 목적을 언니가 어떻게…….”

“좋은 특별 무대를 만드는 거잖아. 아니야?”

장하양은 눈동자를 돌렸다.

그곳에는 피곤한 눈빛으로 군중 사이에 있는, 겨우 고개만 빼고 자신을 쳐다보는 성필이 있었다.

“이기적인 게 나쁜 건 아니야. 온전히 이타적일 수 있는 사람은 넘치는 사랑 속에서 자란 인간밖에 없어.”

에리카처럼. 그래서 난 에리카가 싫어.

“자기 품에 있는 것도 언제 빼앗길까 두려움에 떨던 사람은, 커서도 이타적일 수가 없지. 당연해. 그러니까 죄책감 가지지 마.”

“…….”

“특별 무대, 성공시키고 싶지? 다른 아이돌이 준비하는 것처럼 그저 그런, 이벤트성으로, 재미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성공이란 이름을 붙이고 싶지?”

“……맞아요.”

“그래,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앞으로 이인삼각으로 잘해보자. 최고의 무대를 만드는 거야.”

진소유는 장하양의 손을 쥔 채 뒤로 돌았다.

다시 연습실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두 사람의 발걸음에 군중들이 길을 열었다.

“언니.”

“응.”

“그럼 언니는 이기적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가족?”

진소유는 하하 웃었다.

“내 가족은 나뿐이야. 이 세상에서 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고. 너도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다.”

“언니도…….”

“응, 그래서 너 보자마자 한눈에 알았지. 많이 힘들었지?”

장하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곧 동의였다.

둘은 같은 슬픔을 가지고 있었다.

“고생 많았어.”

다 안단 듯 다정한 말투에, 장하양은 고개를 숙였다.

“네…….”

* * *

장하양은 어김없이 물류창고 아르바이트를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 때문에 타인이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이 그득했다.

‘라희가 울었었지.’

장하양과 진소유의 합의가 있고 난 뒤, 진소유는 기다렸다는 듯 비판의 수위를 올려 갔다. 장하양이 잘 중재해주리라 생각해서였다.

그에 라희가 울음을 터뜨렸었다.

당연히 장하양이 진소유에게 반발했으며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매니저들이 막은 덕택에 사태는 재빨리 진화되었고, 장하양은 진소유와 대립각을 세우게 된 것으로 보였다.

‘라희도 상처가 많은 애인데.’

신아름을 밀어내고 데뷔조가 된 이후, 라희는 어마어마한 노력을 감내했다.

모든 면에서 신아름보다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던 라희였기에, 그녀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라희는 글로브의 리더가 되었다.

하지만 진소유의 비판과 힐난은 라희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공들여 쌓은 탑이, 그보다 더 높은 탑을 쌓인 이에게 무너져내린 것이다.

‘나한테 안겨서…… 라희가…….’

앞으로도 진소유는 그럴 생각인 걸까?

장하양을 믿고 아이들을 더 몰아붙일까? 그러면 장하양은 아이들을 위로하겠지.

기계에 기름칠을 하듯이…….

“어?”

갑자기 들려온 당황한 목소리.

장하양이 그쪽을 보았다.

가득 찬 마대 자루를 교체하기 위해 대 위로 올라갔던 사람의 발이 휘청인다.

장하양은 그것을 보자마자 바람처럼 뛰어, 떨어지는 그녀를 안아서 받아냈다.

“괜찮아요?”

“아, 하, 아, 아, 네, 네에…….”

그녀는 자신이 떨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 듯, 크게 뜬 눈을 도무지 감지 못했다.

“무슨 일이에요?!”

반장이 와서 사태를 파악했다.

“조심하라고 했잖아요!”

“죄, 죄송합니다…….”

“1미터 밖에 안 돼도 떨어지면 크게 다친다고요! 에잉, 쯧. 조심해요! 거 안전모도 똑바로 쓰고!”

“네, 넵.”

이후, 반장은 장하양을 칭찬해주었다.

만약 사고라도 났다면 창고에 피해가 갔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오늘 일당은 더 넣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일을 마치고 창고를 나가는 길, 장하양은 오른쪽 어깨를 움직였다.

쓰라렸다.

오른손을 번쩍 들려고 했으나, 어깨 사이사이를 메운 듯한 알싸한 고통에 쉽지 않았다.

“……아하하.”

뭘 한 거지.

그 사람이 떨어져서 다치든 말든, 장하양 자신에게 어떤 피해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굳이 영웅처럼 몸을 날려서 그녀를 구했던 것일까.

‘가족도 아니잖아.’

그리 말했던 진소유가 뇌리에 스친다.

춤을 추는 사람은 몸이 재산이라던가. 그 재산을 깎아가면서까지 타인을 위했다.

위해버렸다.

장하양은 여느 때처럼 숙소로 들어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아갔다.

“2주는 정도는 무리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2주요? 그, 러면 춤을 추거나 하는 건…….”

“안 됩니다.”

장하양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진소유의 말이 다 맞다.

이타적인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지, 장하양 자신은 이기적인 인간이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리저리 신경을 쓰고 다니며, 또 사람을 구하는가.

‘나 혼자만 건사하기도 힘들었는데.’

밥을 잘 먹고 운동도 하며, 인기도 얻었다고 다른 사람이 된 줄 알았던가.

평생 한 줌 손에 쥔 것을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삶을 살았는데, 갑자기 성녀라도 된 듯이 행동하려 하다니.

누구한테 좀 잘 보이고 싶단 이유로…….

장하양은 한숨과 함께 터덜터덜 병원을 나섰다.

‘이젠 아르바이트도 못 하겠지.’

아직 목표 금액은 다 못 모았다.

핸드폰으로 은행 계좌를 보고 있던 장하양은 갑자기 모든 게 다 귀찮아졌다.

‘그만하자.’

가로 엔터로부터 몇 년 동안 받아서 모아두었던 생활비, 거기에 더해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전부 어머니의 계좌로 보냈다.

‘이제 끝난 거야.’

자식 된 도리는 이쯤 했으면 됐다.

그 순간, 장하양은 자신의 심장에 달린 무언가가 잘려 나간 기분이 들었다.

천륜(天倫)이었다.

더는 그 얄팍한 굴레에 잠겨 있지 않아도 될 것이다.

* * *

“정말 괜찮…….”

“아픈 게 뭐가 괜찮아!”

장하양이 어깨를 다쳤다고 한다. 그녀 나름 큰일이 아니란 티를 내며 성필에게 말했으나, 혹시나가 역시나. 성필은 호들갑을 떨며 장하양을 온갖 병원으로 이끌었다.

병원의 대답은 다 비슷했다.

2, 3주 정도 무리하지 말란 것이었다.

하지만 성필은 그마저도 그냥 지킬 생각이 없었다.

“이사님, 저 정말로…….”

“하양아. 네 몸이야. 네 몸이 아프면 욕심 좀 부려. 나중에 나이 들어서 크게 돌아오면 어쩌려고 그래.”

“…….”

장하양은 성필의 호들갑에 창피한 기색을 내비치었다. 그녀 자신이 창피함을 느낀다기보다는, 가로 엔터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었다.

“팀장님 진짜 지극정성이다.”

“의사 말도 안 들을 거면 병원은 왜 갔대.”

신아름과 조아라의 놀림을 듣고도, 성필은 자신의 반응이 과도하단 것을 알지 못했다.

부끄러움은 장하양의 몫이었다.

결국, 그녀는 병원뿐 아니라 물리치료센터까지 들러야 했다.

“안녕하세요.”

장하양은 치료사의 외견을 보고 움찔했다.

그녀의 신체를 만져야 하는 작업인만큼 당연히 여자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치료사는 남자였다.

성필이 장하양을 안심시켜주었다.

“솜씨 좋으신 분이셔. 업계에서도 명성이 높아.”

“아, 네.”

장하양은 이성에게 몸을 맡긴단 게 영 꺼림칙한 듯했으나, 성필을 믿고 치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의외로 치료는 눕지도 않고, 의자에 앉은 채로 진행되었다.

치료사가 뒤에서 장하양의 어깨를 잡고 위로 올렸다 떨어뜨렸다를 반복했다.

“어때요. 통증 있어요?”

“네. 조금요.”

“이건요?”

치료사가 장하양의 팔을 잡고 위로 들었다.

“아, 조금 아프…….”

꽈득.

너무도 이질적인 소리에, 장하양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몰랐다.

사태를 깨달은 것은, 자신의 입에서 신음 비슷한 게 나온 뒤였다.

“하읏…….”

치료사가 장하양이 볼 수도 없는 속도로 어깨를 회전시켰던 것이다.

뼈가 부러졌나 싶은 소리가 장하양의 어깨로부터 들렸다.

“아직도 비슷해요?”

“아, 어?”

고통이 덜해졌다.

“목 만질게요.”

성필은 이 치료사가 신기하게만 보였다.

보통 남자들은 여자 연예인을 보면 일순간 표정이나 몸이 굳는다. 그리고 시선을 피하며 움찔거리곤 한다. 혹은 연예인을 봤다며 호들갑을 떨거나.

하지만 그는 처음 봤을 때부터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이 무덤덤하게 치료에만 전념했다.

그야말로 프로 정신의 귀감이라 할 만하다.

“목, 이렇게 돌리면 통증 있죠. 어깨랑 연결된 곳에요.”

“네, 네에.”

“이건요?”

“이것도 좀…….”

빠득.

장하양의 시야가 순간적으로 뒤틀렸다.

갑자기 시야가 옆으로 확 꺾였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 어흨…….”

목에서부터 강렬한 시원함과 함께, 이제껏 목에서 날 줄도 몰랐던 파열음이 들려왔다.

뼈가 어긋났나 생각될 정도로.

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치료사는 그 뒤로도 장하양의 몸에서 뿌득 소리를 내게 만들었다.

“관리를 잘 받으셨네요. 신체 상태가 좋아요.”

“네, 가, 감사합니다.”

장하양은 귀신에라도 홀린 듯 치료실을 나왔다. 성필은 그녀의 얼굴을 보곤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어때, 좋지?”

“네, 조, 어, 좋았어요.”

이곳에 왔던 연습생이나 아이돌 모두가 그러했다. 전생에서는 예약을 하고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을 정도였고 지금도 업계에서는 연예인 전담으로 명망이 높았다.

“다음에도 오자.”

“아뇨. 오늘 치료받았으니까, 이제는 쉬면서…….”

“하양아. 아프잖아. 그렇지?”

“……네.”

“아프면 치료받는 게 당연한 거야. 돈 아끼겠다고 쉬면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

장하양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고, 성필은 카운터에서 비용을 결제했다.

치료사가 결제를 진행하는 것을 보며, 성필은 내심 감탄했다.

만약 성필이 그의 입장이었다면, 얼굴이 붉어져서 치료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 이사님. 죄송한데 하양 씨 사인 하나만 얻을 수 있을까요?”

“네?”

성필은 그가 이런 요청을 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치료사는 연예인이 치료를 받으러 왔다고 사인을 걸어두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팬이라서요. 곤란하시면 안 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아.”

다음에 올 때 전달해준다고 답했다.

숱한 아이돌을 봤다 해도, 장하양의 아우라는 그에게도 특별하게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성필은 건물을 나와 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가던 도중, 성필은 분위기를 잡으며 말했다.

“하양아. 아프단 거 말해줘서 고마워.”

“아픈 건 말씀드려야죠. 스케줄이랑도 관련되는 거니까요.”

“넌 네 문제를 자주 숨기잖아. 너 회사 처음 들어왔을 때 생각해봐. 너 기절했을 때 나도 기절할 뻔했잖아.”

“아하하…….”

“사람이면 아플 수 있어. 그걸 민폐라고 생각 안 했으면 좋겠어.”

괜히 내가 아파서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그리 생각하며 이 악물고 고통을 견디는 건 일반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다.

“나는 하양이가 건강하든 아프든, 철인처럼 모든 일을 잘 해내길 바라는 게 아니야. 네가 행복하게 아이돌 일을 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아프고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줘. 얼마든지 도와줄게.”

누군가 자신을 걱정해준다는 게 익숙하지 않은 그녀였기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고통을 호소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힘들 때마다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게 가능한 건…….

‘가족뿐이야.’

진소유가 했던 말이 장하양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울렸다.

“아하하, 네. 감사합니다. 꼭 그럴게요.”

장하양은 성필의 걱정에 밝게 답해 주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밝은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 * *

“박 이사님, 표정이 안 좋으십니다.”

“구상준 PD님한테 한 소리 들었어요.”

“뮤직 스테이지 PD님 말씀이십니까?”

“네.”

진소유와 장하양이 거리를 나다녔던 일은 인터넷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영상이며 사진이 수백, 수천 개는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연말 특별 무대는 깜짝 행사 같은 건데, 이렇게 떡밥 맘대로 뿌리고 다니면 곤란하다고요.”

“음, 그렇겠군요. 아직 연말은 멀었으니까요.”

“근데 근데 홍보 효과는 직빵이야.”

손혜빈이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사진을 하나 가져왔다.

햇볕을 받으며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진소유와 장하양의 모습이었다.

각 잡고 화보를 찍은 것만 같다.

“너무 예쁘다아…… 흐아, 헤으…….”

성필과 한구인이 손혜빈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홍보 효과는…… 그러게, 있지. 자료도 안 넘겼는데 기사가 도배됐으니까.”

“케이어스 팬들이랑 소녀연맹 팬들도 SNS에 도배를 하고 있어. 와, 근데 다시 봐도 이 사진은 미쳤다. 하양이한테 드라마나 영화 출연 제안 들어오는 거 아니야?”

외모만으로도 티켓 파워가 있을 것 같다.

‘장하양 사진 특별 전시전’이란 이름으로, 장하양의 얼굴만 수십 장 찍어서 전시회를 열어도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성필아. 솔직히 말해줘. 하양이랑 소유 중에서 누가 더 예뻐?”

“하양이.”

“재미없어.”

손혜빈이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성필도 그러려다가, 한구인의 모니터 화면에 뜬 것을 보곤 관심을 가졌다.

“접근금지 가처분. 이건 왜 찾아보세요? 혜빈 누나 때문에요?”

“내가 언제 한 이사님한테 들이대기라도 했어?!”

“아닙니다. 하양 씨 때문입니다.”

“아, 하양이 아버님.”

언제 또 회사로 찾아와 난리를 부릴지 모른다.

장하양은 가정폭력과 학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으니, 접근금지명령이 효과를 발휘할지도 모른다.

“가능한 거예요?”

“한다면 가정 보호 처분이 나을 듯합니다만, 폭력에 시달렸단 직접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법원에 신청을 해도 될진 모르겠군요.”

“음…….”

더 나누고픈 대화였다.

성필은 한구인과 함께 사무실을 나와 휴게실로 향했다.

“그런데 하양 씨는 좀 괜찮으십니까?”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중요한 때인데, 춤을 추다가 어깨에 부상을 입으시다니. 안타깝습니다.”

댄서나 아이돌은 젊은 시기에 관절을 소모하다시피 하여 춤을 춘다.

젊음이 지나가면 여러 고통을 호소하는데, 설마 장하양이 벌써 그 시기가 온 것일까.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앗! 박 이사님 한 이사님!”

커피를 가지고 사무실로 가려 할 때, 소파에 있던 리카가 큰 소리로 불렀다. 옆에는 조아라도 있었는데, 둘이서 어떤 영상을 보는 듯했다.

“이거 같이 봐요!”

“뭐야. 아라가 또 엣찌(음란)한 댄스 영상 보여줬어?”

“아하핰! 그런 건 저희 둘이서만 봐요! 이사님들한테는 안 보여줘요!”

조아라는 이미 달관한 얼굴이었다.

리카와 조아라를 중심으로, 성필과 한구인이 두 사람의 곁에 앉았다.

“이게 뭡니까?”

“커플의 대화라는 퀴즈 영상이에요! 커플의 대화 사이에 숨어 있는 속뜻을 찾으면 돼요!”

“아라야 이런 거 보니?”

“리카가 찾는 거거든요?!”

영상이 재생되었다.

남자가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아이튜브를 보고 있다. 그러자 여자가 옆으로 다가와 묻는다.

[재밌어?]

이게 무슨 뜻일까.

“에. 그냥 재밌냐고 묻는 거 아니야? 여기에 속뜻이 있어?”

“이거 속임수 문제 같은데. 뭐 대단한 뜻 숨겨둔 것처럼 하는 거 아냐?”

“소난다(그렇구나). 아라쨩 똑똑하네. 박 이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심심하니까 폰 그만 보고 날 재밌게 해줘’란 뜻 아니야?”

“손나(그런)!”

조아라가 살짝 경멸하는 듯한 눈빛을 던졌다.

“아저씨 여자를 뭘로 보는 거예요? 아님 이상한 여자들만 만나고 다녔어요?”

“소다요(그래)! 박 이사님 그거 과몰입이에요! 과추리예요!”

“리카 과몰입 뜻은 알아?”

“우리나라 말인데 당연히 알아요!”

“모르는 거 같은데.”

정답 공개!

[‘폰 그만 보고 나랑 놀자’란 뜻이랍니다!]

“손나 바카나(그런 바보 같은)!”

“이, 이거 여성 혐오 콘텐츠야!”

리카와 조아라가 동시에 놀랐다.

“누가 ‘재밌어?’란 말에 이딴 뜻을 담는데요!”

“아라 왤캐 흥분했어.”

“아니, 이상하잖아요…….”

“소오요(정말 그래)! 이거 이상해!”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남녀가 적당하게 술을 마시고 산책을 한다. 남자는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묻는다.

[너 이제 가봐야 하지?]

“에에, 시간 늦어서 걱정해주는 거지?”

“그거 말고 있나?”

조아라가 한구인을 보았다.

한구인은 눈동자를 굴리면서 고민하더니, 힘겹게 답했다.

“‘오늘 밤을 당신과 같이 아름답게 물들이고 싶습니다…….’란 뜻 같습니다.”

“헨타이(변태).”

“예?!”

“한의사님 에바예요. 누가 이런…….”

[‘모텔 갈래?’란 뜻이랍니다!]

“손나 우소(거짓말)?!”

“어, 어, 뭔, 이게, 뭔……!”

리카와 조아라가 패닉에 빠졌다.

“아타시(나) 연애 잘할 자신 없어! 방금 질문에 ‘응, 나 가봐야 해.’라고 답했을 거란 말야!”

“……이거 남성 혐오 콘텐츠인가?”

“마치가이나이(틀림없어)!”

성필과 한구인은 두 사람이 귀엽단 듯 미소 지었다.

이후로도, 리카와 조아라는 영상의 진위를 두고 열띠게 토론했다.

그때 건물 입구가 소란스러웠다.

안이 아니라 밖이.

밖에 누군가가 있는 듯했다.

“제가 볼게요! 또 홍지헌 사장님이나 엘릭 작곡가님일 수도 있어요!”

“엘릭 오빠는 이제 우리 비번 알…….”

리카는 경비견처럼 호다닥 달려가 문을 거칠게 열었다.

“누구세……!”

리카가 당황했다. 그녀는 몸이 굳어선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왜 그러는지, 굳이 설명은 필요 없었다.

“돈 몇 푼 쥐여주고 떨어지라는 거냐? 부모를 거지처럼 생각하냐 넌?!”

“아, 아뇨, 저는…….”

장하양과 그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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