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90화 (190/760)

190화

성필은 밤이 돼서야 퇴근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당장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으나, 오늘만큼은 더 버티기로 했다.

가로 엔터 아이튜브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 끝에, 마침내 12시가 됐다.

‘이제 올라오겠지?’

케이어스의 컴백은 9월이다.

오늘은 케이어스의 앨범 티저가 나오는 날이다. 아마 뮤비 컨셉 티저를 몇 장 정도 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 EP 앨범도 대박이었지. 팬사(인회) 응모권도 주고.’

전생에서는 아쉽게도 탈락했으나, 이번에는 반드시 당첨될 생각이었다.

순수하게 케이어스를 보고 싶단 생각은 아니었다.

성필은 아이돌 산업 종사자로서, KS 엔터가 팬 행사를 어떻게 기획하고 실행하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가로 엔터를 위한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팬 사인회에 당첨돼야만 한다.

꼭!

“음?”

12시 5분.

아직도 케이어스의 SNS 계정들은 조용했다.

‘내가 날짜를 착각했나?’

그건 아니다.

케이어스의 컴백 프로모션은 포유의 컴백 기간과 일치한다.

포유가 나흘 전에 컴백했으니, 오늘 밤에 케이어스의 컨셉 포토가 나와야 한다.

“올리는 게 늦나?”

12시 30분.

“…….”

성필은 두려운 마음으로 새로고침만 누르고 있었다.

아무런 게시글도 뜨지 않는다.

‘왜 이러는 거야. 케이어스가 컴백을 안 하나? 아니면 며칠 밀렸나?’

그저 며칠 밀린 정도라면 성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비효과라는 말도 있듯이, 성필이 회귀 후 벌였던 일이 미래를 바꾸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

그래, 케이어스의 컴백이 며칠 미뤄지는 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아니면, 아예 케이어스의 프로듀싱 전략이 바뀌었나? 나 때문에……?’

그때, 성필이 둘러보던 케이어스 관련 SNS 중 하나가 갱신되었다.

‘올라왔다!’

성필은 재빨리 글을 확인했다.

[새벽까지 연습! 진저는 사진 찍는 줄 모름 ㅋㅋ]

김민주의 셀카였다. 그녀가 배경으로 삼은 거울로는, 바닥에 앉아 물을 마시는 진저도 보였다.

“……진짜.”

정말, 미래가 바뀌어버렸다.

왜 바뀌었지?

성필은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 * *

정호환은 귀국하자마자 주주 회의에 불려가야 했다. 그곳에서 온갖 쓸데없는 말을 듣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호환아.”

KS 엔터의 매니지먼트 계열 이사, 남홍범이 정호환의 작업실로 찾아왔다.

“케이어스 애들 곧 컴백하지?”

“몰라.”

“오늘 주주들이랑 구유한 이사 발광하는 거 보고도 그래?”

“자기들이 주주면 주주지, 뭐 어쩌라고. 꼬우면 자기들이 A&R팀 오던가.”

정호환은 노트북 화면을 보는 데 바빴다.

그는 약 한 달 동안 노르웨이에 다녀왔다. 북유럽의 작곡가 수십 명을 불러 송 캠프를 열었고, 그들에게서 마음에 드는 곡이 나올 때까지 채찍질했다.

남홍범은 한숨을 뱉었다.

“괜찮은 건 나왔고?”

“대충은…….”

정호환은 무언가에 빠졌을 때는 대답이 느리고 늘어지곤 한다.

지금이 딱 그런 상태였다.

‘얘는 걍 A&R 애들이 준비해둔 거 써도 될 텐데. 뭐 얼마나 좋은 곡을 찾으려고 송 캠프까지 또 열어? 게다가 뭘 자기가 직접 갔다 오고 그러지?’

옛날부터 정호환은 이상하긴 했지만, 이번 연도에 들어선 더 이상해졌다.

“회사 사람들 안심하게 대충 언제쯤 컴백할 지 답이라도 주든가. 너 혼자 노트북 껴안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돼.”

정호환은 키보드를 두드리며 대충 답했다.

“12월.”

“어? 12월? 확정이야?”

“대충.”

“그럼 그렇게 알고 있는다?”

“그래.”

남홍범은 작업실을 후다닥 나갔다.

그가 나간 적막한 방에는 정호환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퍼졌다.

도중에, 그는 무언가 떠오르는 듯 타자를 멈추었다.

‘소녀연맹도 연내(年內)에 컴백하겠지.’

음악 시상식 무대와 상을 노려야 하니까.

그렇다면, 데뷔 때처럼 케이어스가 소녀연맹과 직접 맞붙을 수도 있다.

‘아니, 맞붙는 건 케이어스와 소녀연맹이 아니야.’

둘은 ‘붙는다’는 말조차 성립되지 않을 만큼 큰 체급 차이가 있다.

그러니 붙는 건…….

‘나와 정지음 작곡가의 음악이다. 또한 나와 박성필과의 프로듀싱 능력이고.’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이번 컴백으로 결판이 날 것이다.

정호환이 프로듀싱에 관해 고민을 이어가고 있을 시각, 작업실 밖으로 나왔던 남홍범 이사는 곤란한 상황과 마주했다.

달에 한 번씩은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어리광의 시간이었다.

“어, 소유야.”

케이어스의 멤버, 진소유.

그녀는 매달 매니지먼트 이사인 남홍범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왔다.

몇 번이나 거절해와서 이제는 잘 넘어가나 싶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이사님, 저 독립하면 안 될까요?”

매번 같은 부탁, 그리고 남홍범의 답은 항상 같았다.

“이제 이유 말해주는 것도 지친다. 안 돼.”

“그럼 언제쯤 독립할 수 있을까요?”

“소유야, 독립하면 그냥 고생길만 훤히 열리는 거야. 넌 나이가 어리니까 독립이라고 하면 뭔가 낭만이 있겠지만, 그거 다 쓸모없어.”

“그럴까요?”

“그래.”

남홍범은 아무리 봐도 진소유에게 정을 붙이기 어려웠다.

KS 엔터의 이사를 상대로도 기 하나 죽지 않고 생글생글 웃는 표정을 보라.

몇 번이나 거절당한 ‘독립하겠다’는 부탁도 끈기 있게 계속하고 있다. 대체 신경줄이 얼마나 굵은 인간일까.

‘할 거면 1팀장이나 찾아가지, 왜 매번 날 찾는 거야? 내가 무른 인간으로 보이나?’

남홍범은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걱정까지 해야만 했다.

“소유야, 왜 독립하려는 건데? 숙소 생활이 불편해? 너희들이 들어가 있는 아파트, 서울에 사람들이 들어가고 싶어서 죽으려는 데야.”

“알아요. 넓고 편하고.”

“아니면 멤버들이랑 사이가 안 좋아?”

“으음, 안 좋진 않은 거 같아요.”

“그럼 왜?”

“혼자 살고 싶어서요.”

“혼자 살면 외로울 텐데? 멤버들 거의 가족이잖아. 가족이랑 떨어지는 거야.”

“아…….”

멤버들을 걸고넘어지니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는 것일까.

시종일관 미소를 짓던 진소유의 표정이 애매함으로 물들었다.

“저는, 딱히 가족은 필요 없는데요?”

그 애매함에서 나온 말이 이딴 거다.

“……응. 어쨌거나 독립은 안 돼.”

“네.”

진소유.

그녀는 KS 엔터에 들어올 때부터 특이한 연습생이었다.

10대의 여자아이들이 모인 연습생의 무리 중에서, 그녀는 누구와도 어울리려 하지 않았었다.

밥을 혼자 먹거나 대화 상대가 없는 것에 심각한 고뇌를 느끼는 나이인데도 말이다.

아니, 그 나이대라면 그저 고민 정도가 아니라 우울증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성 욕구가 매우 큰 나이대니까.

‘근데 얘는…….’

케이어스로 뽑히기까지도, 끝끝내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않았었다.

에리카조차도 그녀와 말 섞는 데 실패했었다.

사회성은 신인개발팀에서도 중요하게 고려하는 사항이었다. 하지만 진소유의 사회성은 바닥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진소유가 뽑힌 이유는.

‘얼굴값을 심하게 하는 거겠지 뭐.’

정호환 앞에선 절대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말이지만, 진소유의 외모는 아이돌로 두기 아까울 정도였다.

외모만으로 CF를 수십 개씩 따내는 대배우들의 전성기와도 견줄 만한 미모.

그게 진소유가 케이어스가 된 이유였다.

* * *

“오빠, 괜찮아요?”

“어?”

정지음은 정수기에서 받은 물을 질질 흘리며 먹고 있었다.

이미 눈빛부터 맛이 가 있다.

“힘들면 쉬면서 좀 해요.”

“뭐가? 나 안 힘든데?”

신아름은 요즘 A&R팀 사람들이 걱정됐다.

특히 엘릭과 정지음의 상태가 많이 안 좋다. 항상 멤버들에게 시달리며 타이틀곡 제작을 위한 기계처럼 다뤄지고 있으니, 멀쩡한 게 더 신기할 지경이다.

“힘든 건 너희들이 더 힘들지.”

정지음은 오히려 신아름을 걱정해주었다.

소녀연맹도 노는 것만은 아니었다. 가끔 개인곡과 유닛곡이 완성됐을 때 레코딩하러 가긴 하니까 말이다.

“알겠어요. 힘내세요.”

“응, 고마워.”

정지음은 텀블러에 물을 담곤 터덜터덜 작업실로 향했다.

마치 피라미드를 지으러 떠나는 이집트의 노동자와 같은 모습이다.

‘다들 힘들어 보이지만, 잘하겠지. 어른이니까.’

소녀연맹의 숙소도 아직은 여유로운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아마 대략적인 기획이 끝나고 수록곡이 마구잡이로 완성되는 시점이 있을 텐데, 그때쯤이면 소녀연맹도 상당히 바빠질 것이다.

그때까지의 여유를, 신아름은 마음껏 만끽하기로 했다.

하지만 몸이 여유롭다고 마음도 여유로운 건 아니었다.

‘리카나 조아라는 할 게 뭐 저렇게 많아?’

숙소로 돌아와서도 노트에 곡 관련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거나 간단하게 기록하기도 한다.

정작 신아름은 개인곡에 대한 아이디어가 그다지 없어, 숙소에 와서도 놀기만 하는데 말이다.

어쩐지 기분이 찜찜하여, 신아름은 홍보팀에서 나눠준 자료나 읽기로 했다.

‘……뭔가, 나만 뒤처지는 거 같네.’

신아름이 한숨을 쉬자 장하양이 다가왔다.

“아름아 뭐 봐?”

“네? 아, 이거요.”

신아름의 손에는 홍보팀 양상헌에게서 받은 예능용 질문 목록이 들려 있었다.

“나중에 저희 유명해져서 예능에 나갈 수도 있잖아요. 그때 받을 수 있는 질문들 추려놓은 거예요. 언니도 받았지 않아요?”

“응. 근데 한 번 보고 말았어. 아름이는 벌써 예능 생각하는 거야?”

“아뇨. 시간 남아서 보는 거예요. 제가 설하 쌤도 아니고.”

조용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백설하가 봉변을 당했다.

“내가 왜…….”

“쌤 김칫국 잘 마시잖아요. 데뷔 앨범 발매한 후에도 ‘우리 어떤 예능 나갈까?’하면서…….”

“알겠어 그만해! 나도 아니까, 그만…….”

백설하는 괜히 텔레비전에 더 집중했다.

신아름은 질문 목록을 쭉 훑어보다가, 재밌는 게 있어서 장하양에게 질문했다.

“언니 버킷 리스트는 뭐예요? 3위까지요.”

“최고의 아이돌. 결혼. 해외여행.”

“……뭐야.”

엄청난 반사신경이다.

마치 답을 미리 준비하기라도 한 것만 같다.

“버킷 리스트에 결혼이 있어요? 결혼을 왜 하고 싶어요?”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요즘 안 하는 사람도 많다잖아요. 애초에 언니는 연애도 안 해봤는데 무슨 결혼부터 생각해요. 누구 마음에 둔 사람이라도 있는 건 아니죠?”

백설하가 슬쩍 장하양을 보았다.

그녀는 소녀연맹의 리더로서 팀의 문제가 될 만한 사항을 사전에 파악해야만 한다.

“없어.”

백설하가 안심하고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장하양이 하는 말에는 거짓이 없단 사실을 안다.

안다기보다는, 전적으로 믿는 것에 가까웠다.

백설하는 장하양에게 엄청난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럼 결혼을 왜 하고 싶어요.”

“난 가족을 갖고 싶어. 그래서 결혼하고 싶은 거야.”

“이 언니 뭐라는 거야?!”

신아름은 얼굴이 붉어져서 장하양에게서 멀어졌다.

“에, 하양 언니 임신할 계획이신가요!”

“리카 넌 또 뭐라는 거야?! 미쳤어 진짜 다!”

“아니, 난 애는 안 낳고 싶어.”

“……네?”

부끄럼타던 신아름은 당황했다.

결혼은 하고 싶은데 애는 안 낳겠다고?

“그럼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지 않아요?”

“말했잖아. 난 가족을 가지고 싶다고.”

“애가 있어야 가족 아니에요? 언니 어린애 싫어해요?”

“모르겠어. 어린애를 대한 적이 없어서.”

“그게 애를 갖기 싫은 이유에요? 언니가 애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몰라서?”

신아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감성이다. 그녀는 모성애란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으니까.

여태껏 어머니에게 받았던 헌신적인 사랑을 떠올리면,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게 당연하단 결론이 나온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머니가 신아름을 낳고 나서, 아주 잠깐이더라도 신아름을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단 가능성이 생기니까.

그딴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좋아할 게 당연하잖아요. 언니 애인데.”

“으응, 그게 이유가 아니야. 나는…….”

장하양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

검었던 동공이 더욱 검어, 그 안을 떠돌아다니는 생각은 그 누구도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사랑하는지 몰라.”

신아름과 리카가 서로를 보았다.

방금 장하양의 말을 이해했냐는 듯 눈빛을 주고받거나 고개를 저었다.

눈빛으로 의견 교환을 끝낸 뒤, 리카가 말했다.

“그걸 알고 부모가 되는 사람이 어딨나요!”

“아하하, 그런가?”

“언니는 생각이 너무 깊어요! 아이를 기르는 방법 같은 건 어떻게든 된다구요! 정 힘들면 육아 책을 읽어봐도 돼요!”

“……응, 그래야겠다.”

장하양은 반론을 꺼내는 대신, 조용히 리카에게 동감해주었다.

그녀는 말을 삼켜야만 했다. 만약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했다면 분위기가 이상해졌을 테니까.

‘부모는 되는 게 아니라 되어가는 거다!’라며 장광설을 펼치는 리카를, 장하양은 가만히 보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부모가 되는 법을 모른다 해도, 보통은 부모님께 사랑을 받고 자라잖아.

부모님께 가르침을 받잖아.

그 사랑과 가르침을 그대로 자식에게 전해주는 거잖아.

‘나는 그런 걸 모르니까.’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다.

혹시라도 자신이 사랑해서 낳은 자식에게, 자신의 부모님이 자신에게 저질렀던 짓을 그대로 되풀이하게 된다면.

그래서 아이를 불행하게 만든다면.

‘무서워.’

장하양은 그게 두려웠다.

* * *

“원, 투, 쓰리, 포!”

조아라가 킥 드럼을 차는 것을 시작으로 브레멘 음악대의 합주가 시작되었다.

멤버 전원은 연주를 시작한 지 10초도 되지 않았음에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잘 된다. 잘 이어나가고 있어.’

일렉 기타를 연주하는 백설하가 점점 환희에 차기 시작했다.

드디어 ‘롱 포’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마음 같아서는 뒤로 돌아보아 다른 멤버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시선을 돌리면 손가락이 꼬일지도 몰랐다.

“날 가질 수 있는 넌…….”

하이라이트다!

하이라이트까지 누구도 잘못 연주하지 않았다!

각 악기가 조화를 이루고 최상의 선율을 만들어낸다.

백설하의 보컬이 하이라이트를 가득 채우는 순간, 멤버들의 마음 또한 그녀의 목소리와 같이 충만함으로 가득 찼다.

“…….”

연주가 끝나자마자 멤버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다들 너무 잘했어!”

멤버들은 서로를 껴안았다.

백설하는 장하양을 꽉 안은 채 방방 뛰기까지 했다.

합주의 매력이 이것이었다.

개개인으로 분열된 인간이 한데 모여, 완전히 통일된 음악으로써 하나가 될 수 있다.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만큼은, 인간은 개인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하나로 변한다.

그 기쁨의 순간은 직접 합주를 해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기 어려웠다.

“신마저 모독하는 천재 드러머 조아라 탄생……!”

이번 합주는 조아라의 성장이 두드러졌었다.

매일 숙소 방에 책을 쌓아두고 유사 드럼 연습을 하더니, 그 성과가 드러난 것이다.

리카가 박수를 쳐주었다.

“중2병 아라쨩도 멋지네. 그런데 20살이니 슬슬 이상한 말투는 그만둬주지 않을래? 아타시(나)가 다 부끄러워.”

리카의 정상적인 발언에 조아라는 넋이 나가버렸다. 태클이 들어올 건 예상했지만, 저토록 정상적으로 기분 나쁘게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조아라는 정말로 리카가 기분 나쁘단 듯이 말해서 조금, 아주 조금 상처받았다.

그에 리카가 혀를 빼고 자신의 머리를 콩 때렸다.

“난챳테(랄까)? 농담이야! 아라쨩은 욕을 해도 멋지다구!”

“…….”

리카는 조아라에게 목이 졸렸다.

같이 조아라를 놀리려던 신아름은 한 발자국 물러나 사태를 관망해야만 했다.

처음으로 해낸 온전한 형태의 합주. 시간이 지나자 그 기쁨도 점점 옅어졌다.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타고난 장작에 남은 불씨처럼 아직도 따스하게 마음을 데워주고 있었다.

“우리 진짜 앨범에 밴드곡도 넣어볼까요?”

신아름이 신나서 말했다.

“콘서트 마지막에 엔딩곡으로 넣으면 괜찮을 만한 걸로요.”

“아타시(나)도 찬성이야! 모험이 끝나고 동료들끼리 석양을 향해 걸어가는 느낌으로!”

“뭐, 콘서트 엔딩 때 다 같이 합주하면 멋지긴 하겠네. 실제 밴드 연주할 수 있는 그룹이 있나?”

“밴드 아이돌 아닌 이상에야 없지. 아, 콘서트에서 합주하는 거면 우리가 아이돌 최초 아닐까?”

장하양은 멤버들의 화기애애한 대화를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밴드 악기 연습은 처음에 리카가 제안했고, 신아름이 떨떠름해 하면서도 받아주었고, 조아라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연습했다. 백설하는 밴드에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다.

장하양은 그다지 흥미는 없었지만, 이 모습을 보니 베이스를 연습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다들 기뻐하니까.’

모두의 미소를 보는 게, 장하양은 행복했다.

“하양 씨.”

저마다 즐거움을 만끽하던 도중, 매니저 김수희가 조심스레 연습실로 들어왔다.

“네, 매니저님.”

“아버님 찾아오셨어요.”

“……네?”

“하양이 아버님이시라는데, 미리 연락 안 왔나요?”

그 순간 장하양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세상을 비추던 조명이 꺼진 것만 같았다.

다시 조명이 켜졌다. 그 빛은 장하양의 앞만을 제외한 모든 곳을 비추었다.

어둠으로 물든 길이 장하양의 앞에 나타났다. 장하양은 어둠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연습실을 나가 2층 난간에 섰다.

1층 입구, 아버지가 서 있다.

다시 한번, 세상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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