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86화 (186/760)

186화

백설하는 조아라가 탐탁지 않아 하는 듯한 낌새를 느꼈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이었다.

되돌릴 수는 없다.

‘나도 하고 싶은 게 있어.’

‘음악을 위한 동행’의 촬영을 마치고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백설하 자신은 아이돌 중에서도 꽤 노래를 잘 부르는 축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니, 가수라는 카테고리에 넣어도 문제가 없다. 기교와 호소력 측면에서, 백설하와 비교할 수 있는 아이돌은 없다시피 하다.

‘보여주고 싶어.’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자신은 이렇게나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을.

하지만 여태껏 그 욕망을 억제해왔다. 숨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라랑 하양이가 있으니까.’

옛날부터 엔터계에 통해오는 말이 있다.

‘아이돌 그룹이란, 노래를 잘하는 한 명으로 말뚝을 박아두고 그에 맞춰 곡을 쓰면 된다.’

전체적으로 부족한 보컬 역량을 메인 보컬 하나로 커버하고, 비주얼과 댄스는 다른 멤버들로 보충하는 것이다.

일단 아이돌은 노래로 돈을 버니까, 중요한 건 곡을 소화할 수 있는 메인 보컬의 역량이었다.

‘하지만 소녀연맹은 그러지 않았어.’

모든 멤버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그 의지 하나로, 소녀연맹은 기량이 뛰어난 멤버들에게 양보를 구해왔다. 멤버들의 평균치를 맞추려는 노력이 가해졌던 것이다.

그 때문에, 부족했던 장하양을 돋보이게 하려고 ‘아니’의 하이라이트에선 그녀를 중앙에 세웠었다.

다른 멤버들의 비중을 일부 희생하고서라도 말이다.

‘롱 포에서도…….’

백설하가 톱라이닝(멜로디를 짜는 것)을 맡았던 ‘롱 포’도, 보컬이 중요한 곡임에도 메인 보컬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었다.

“보컬에 힘을 주고 싶다, 고…….”

A&R팀의 전원은 특별한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사급인 성필과 손혜빈은 가만히 멤버들의 기색을 살폈다.

정지음과 엘릭은 그런 이사들을 보았고, A&R팀 막내인 이재호는 부지런히 타자를 쳤다.

그야말로 정적이란 말에 알맞은 상황이다.

‘그렇겠지.’

보컬 퍼포먼스에 힘을 주게 되면, 자연스레 곡의 난도가 상승해버린다.

멤버들의 분량을 파트에 맞춰 적절히 배분하겠지만, 백설하에게 비중이 과하게 쏠릴 가능성이 큰 건 부정하기 어렵다.

‘소녀연맹은 5인조니까.’

웬만해선 카메라의 앵글에 전부 담기는 숫자다. 그렇기에, 한 명이 평균을 넘어가는 퍼포먼스를 보일 때 다른 멤버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보인다.

역으로, 다들 숨을 수 없다.

성필이 최초로 구상했던 4인조 그룹, 즉 소수 그룹의 장점이자 단점이 다시금 수면 위로 나타났다.

‘내가 한 말은,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선언한 거야.’

이기적이란 건 안다.

알아도 요청하고 싶다.

소녀연맹의 역사적인 정규 앨범이기에.

백설하는 뮤지션이자 아티스트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기에.

‘언제까지고 입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어.’

그룹이 항상 서로를 배려하고 친하게 지낼 수만은 없다. 부딪쳐야 할 때도 있다.

백설하는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한다. 또한 멤버들의 향상된 기량을 믿기로 했다.

멤버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받을 수 없다면, 몇 달 동안 간곡히 무릎을 꿇고 애원을 해서라도……!

‘반드시 이번 앨범에서는……!’

“좋아요.”

장하양이 말했다.

“……어?”

백설하는 자신이 가장 신경 쓰던 2인 중 하나, 장하양이 보컬 퍼포먼스 강화에 동의하자 얼이 빠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 하아, 하, 하양아, 괘, 괜찮아?”

“언니가 말씀하신 거잖아요. 놀라시면 어떡해요.”

데뷔 당시의 장하양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그녀가 이 제안에 동의한 것에 두려움을 느낄 게 틀림없다.

그때의 고난을 재현하게 될 테니까.

“아, 으, 응, 그런데에, 그렇긴 한데. 내가 말한 거긴 한데에…….”

백설하는 본인이 의견을 내놓고도 안절부절못하고 벌벌 떨었다.

그녀는 막상 자신이 원하는 반응이 돌아오니 두려워졌다. 혹여나 자신의 의견 때문에 타이틀곡 제작에 문제가 생길까 봐.

장하양은 그런 백설하를 달래주기 위해 싱긋 웃고는 말을 이었다.

“소녀연맹의 정규 앨범이에요. 정규 앨범 타이틀이요. 깊이와 다양성을 극대화하고, 저희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잖아요. 할 수 있는 데까지 도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도전.

그 단어에 성필이 반응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들 음악사 시간에 들었겠지만, 탑에 올랐던 걸그룹의 음원에는 공통점이 있어.”

멤버 전원의 음색을 청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많은 걸그룹의 노래가 대중에게 이런 평가를 듣곤 한다.

‘얘들 목소리가 다 똑같은데?’

팬은 그룹 멤버들의 음색을 구별할 수 있으나, 대중은 그럴 수가 없다.

당연히 ‘아이돌 노래는 다 거기서 거기’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목소리가 다 비슷하니 말이다.

“그건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야.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개성은 안 드러내느니만 못해.”

그래서 오토튠으로 아이돌의 목소리와 박자, 개성을 다듬고 평균치의 음원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멤버 개인은 죽더라도, 그룹이 사니까.

“하지만 멤버들의 능력이 일정 수준에 올라 개성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면, 그렇게 해야만 해.”

멤버들의 개성을 드러냄으로써, 표현의 범위를 넓히고 그룹의 특징이 살아나는 작곡을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탑급으로 올라가는 조건 중 하나다.

“설하가 말한 도전이란 건 그거지?”

“…….”

아니다.

그냥 기교적인 노래를 불러보고 싶었을 뿐인데, 본심을 말하면 이상한 취급을 받을 게 분명했다.

이때는 성필의 포장을 받아들여야 한다.

“네네, 네, 그, 맞아, 네, 맞아요.”

포장에 실패했다.

성필은 울상이 된 백설하에게서 정지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곡 만드는 데도 이쪽이 좋지?”

“그렇죠. 형 말대로, 아, 아니, 이사님 말씀대로 멤버들이 동의하고…….”

실력만 받쳐준다면야, 이쪽이 훨씬 좋다.

“퍼포먼스의 폭을 넓히는 건, 작곡할 때 표현의 범위도 넓게 만들어주거든요.”

족쇄를 차고 있던 건 소녀연맹만이 아니었다. 작곡가인 정지음도 표현의 폭을 한정한 채 곡을 써야만 했다.

곡에 어울리는 음계 설정과 기교적인 박자 변환도, 가수가 소화할 수 없다면 전부 쓸모가 없다.

그렇기에 가수를 고려하여 작곡에 한계점을 두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 한계가 풀린다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정지음과 엘릭은 한계를 넘어, 듣기에 가장 좋은 곡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원한다면, 모차르트 밤의 여왕의 아리아(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오르고) 같은 곡도 만들 수 있다.

“그, 그건 못 부르는데요…….”

백설하가 소심하게 답했다.

못 부르는 게 당연하다. 백설하는 성악가가 아니니까 말이다.

부르면 성대에 마비가 오지 않을까.

“이건 설하 말대로 도전이야. 그 도전을 감내할 마음이 있는가. 그건 너희들의 선택이고.”

성필도 내심 이런 의견을 기다려왔다.

정규 앨범은 소녀연맹의 가능성을 보는 시험이나 마찬가지니까.

단순히 소녀연맹 멤버만이 아니라, 소녀연맹을 떠받치는 가로 엔터의 역량도 시험될 것이다.

‘그러니 모든 건 최상의 상태로 가고 싶어.’

말 그대로, 도전이다.

“저는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좋아요.”

장하양의 찬성.

“저도요.”

신아름은 별다른 고민 없이 동의했다.

“아타시(저)도…….”

리카는 조아라를 흘끗 보더니 작게 답했다.

신아름과 리카는 리드 보컬 포지션이다. 지금까지 팀의 허리를 지탱해왔기에, 기교적인 면에서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

서브 보컬 포지션의 조아라는 자신이 없었다.

만약 여기서 OK 사인을 내린다면, 조아라는 타이틀곡 제작 기간 내내 피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리라.

혹은, 파트를 많이 잃은 채 댄스에만 집중해야 할 것이다.

조아라도 그런 꼴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조아라는 백설하와 비슷하다.

정규 앨범이기에, 자신의 특기인 댄스 퍼포먼스의 강화를 바랐다. 하지만 백설하가 먼저 치고 들어왔다.

보컬과 댄스 난이도를 동시에 높이자는 제안은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하양 언니도 동의했으니까.’

누구보다 백설하의 제안에 반대해야 할 장하양마저 동의했으니, 조아라는 빠져나갈 구석이 없다.

“찬성, 할게요.”

성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음아, 엘릭 씨.”

“네. 그렇게 할게요.”

인간의 목소리는 최고의 악기다.

그 악기의 무제한 사용권을 얻어낸 두 작곡가는, 이제까지와 다른 방향으로 작곡을 해나갈 것이다.

“맡겨두세요.”

소녀연맹은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간다.

* * *

조아라는 홀로 휴게실에 앉아 핸드폰만 들여다보았다.

핸드폰에는 시에이스의 곡인 ‘아스트로넛’의 라이브 영상이 흘러나왔다.

조아라가 시에이스를 ‘아이돌로서의 지향점’으로 정했던 영상이었다.

‘시에이스가 이 무대로 유명해졌다지…….’

미국에서 매년 열리는 케이팝 페스티벌인 ‘케이페스타’.

시에이스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케이페스타의 개막 무대를 맡게 됐다. 그리고 그 무대를 시작으로 그룹 멤버 전원의 인생이 달라졌다.

‘계속 봐도…….’

말도 안 되는 무대다.

고난도의 보컬 기교와 칼과 같은 군무.

시에이스라는 별을 세상에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대였다.

조아라는 평소에 군무에만 집중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에이스의 메인 보컬을 눈여겨보았다.

‘하이라이트랑 프리코러스 대부분을 메인 보컬이 맡고 있어.’

좋은 노래다. 멋진 노래다. 대단한 노래다.

그렇기에, 그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있는 건 메인 보컬 포지션의 멤버 하나뿐이었다.

‘소녀연맹도 이런 무대를 하는 걸까.’

조아라는 메인 댄서 포지션의 규영을 보았다.

그는 열심히 춤을 추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았을 것이다. 보컬 파트를 거의 배분받지 못했으니까.

스포트라이트는 전부 메인 보컬이 가져갔다.

미친 난이도의 보컬을 소화하며 춤까지 추느라, 무대가 끝났을 때는 땀이 줄줄 흘러 메이크업을 지울 지경이었다.

웃긴 몰골이지만, 아무도 웃지 못할 것이다.

그야말로 메인 보컬의 독무대다.

‘스포트라이트를, 메인 보컬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아이돌은 결국 가수니까 말이다.

음원은 발매해도 코레오그래피 영상을 발매하지는 않는다.

아이돌이 속해 있는 곳은 ‘가요계’며, 노래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댄서는 결국엔 아이돌의 변두리…….

“아라야.”

조아라가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성필이 있었다.

“영상 찍어야 해. 빨리 나와.”

“그거, 다큐요?”

소녀연맹 비긴즈.

양상헌의 기획으로부터 시작된, 소녀연맹 멤버들의 입사(入社)부터 데뷔까지를 다루는 자체 제작 영상 시리즈다.

그것을 위해 소규모의 다큐멘터리 팀도 섭외했다.

“벌써 내 차례구나.”

“지금 촬영팀분들 기다리고 계셔. 2번 연습실로 가.”

“네.”

조아라는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던 영상을 끄고 휴게실을 나가려 했다.

성필이 문에서 비켜나고, 조아라가 그 옆을 지나치기 직전.

“아저씨.”

조아라가 성필을 휴게실로 밀어 넣은 뒤에 문을 닫았다.

“나 할 말…….”

“뭐, 뭐 하려고! 뭐 하려는 거야! 나한테 왜 이래?!”

성필이 두려움에 떨면서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그는 거대한 위협에라도 직면한 듯, 몸을 팔로 감싸고 바들바들 떨었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아, 아라야, 아니지? 뭐 하려……!”

“물어볼 거 있다고요.”

“……아.”

성필은 자연스럽게 휴게실 구석에 등을 기댔다. 아까까지의 겁먹은 모습이 거짓말 같았다.

“뭔데?”

“아니, 물어볼 거보다 이게 더 궁금한데. 아저씨 뭐 나랑 비슷한 사람한테 폭행이라도 당한 적 있어요?”

“뭐라고?”

“내가 머리에 손 가져가면 기겁하고, 방금은…….”

“맞아. 나 일진한테 당한 적 있어. 그래서 너 보면…….”

조아라가 성필에게 응징을 가했다.

장난스레 그에게 어깨빵을 한 것이다.

“안 그래도 리카가 나한테 장난으로 갸루(일진)라고 하는 거 기분 나쁘다고요…….”

“미안…….”

옛날, 소녀연맹 멤버들이 숙소로 들어가기 전 학폭과 연애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성필이 조아라의 학교생활에 대해 길게 물고 늘어지자, 조아라는 울었었다.

자신이 그런 인간으로 보이냐면서 말이다.

“내가 배려가 없었네. 미안.”

“그래서 왜 나한테 그러는데요. 내가 뭐, 싫어요……?”

“아니 우리 아라가 최고지! 우리 아라 파이팅! 애정한다 내가!”

“……기분 나빠.”

“내가 더 나쁘거든?! 할 말이나 해!”

조아라는 땅바닥을 신발로 톡톡 차거나 시선을 돌리면서 시간을 끌었다.

혹시 그냥 영상 찍으러 가는 게 싫은가 하는 의심마저 들 즈음.

“아저씨, 다음 회의 때 춤에도 좀 신경을 쓰자거나. 그런 말 해주면 안 돼요?”

“내가?”

“……네.”

조아라가 직접 말하기에는 눈치가 보인다.

보컬과 댄스의 난이도란 양립하기 어렵다.

춤추면서 완벽하게 노래하는 것부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게 가능하면, 정말 어떤 고난을 겪어도 뜨는 게 가능할 것이다.

아이돌의 교본이나 다름없는 위치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

‘내 말은 보컬 난이도를 낮추자는 뜻이랑 같아.’

백설하에게 정면으로 반박하는 게 된다.

“아라야, 그건 힘들겠다.”

“……안 된다고요?”

“응.”

조아라는 인지부조화가 왔다.

성필은 인자하기 그지없는 표정이다.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안 된다’이니, 그의 말을 제대로 해석하는 게 힘들었다.

“아, 안 된다고 한 거죠?”

“응.”

성필은 조아라를 부드럽게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이야기했다.

“아라야, 멤버들이랑 친하지?”

“……친하죠.”

“왜 뜸 들이고 말해.”

“신아름이랑은 자주 싸우는 거 같아서요.”

애들은 싸우면서 크니까, 그 정도는 괜찮다.

“그래, 친한 건 좋지. 그래서 네 의견을 말하기 힘든 건 이해해. 친하니까, 계속 친하고 싶은 거잖아.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어.”

애초에 집단이라는 게 항상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만약 그런 집단이 있다면, 그건 건강하지 않은 집단이다.

갈등은 집단에 내재한 문제를 드러내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준다.

만약 갈등이 계속 없다면, 언젠가 내부에서부터 곪아서 병들게 된다.

“네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당당하게 말해야 해.”

“알아요.”

알지만, 자신이 말해봤자 게임이 성립할 리가 없다.

“보컬 퍼포먼스 강화는 쌤이 말한 거잖아요.”

소녀연맹의 리더이자 맏언니가 낸 의견이다. 거기다가 그것을 가장 먼저 지지해준 건 언니 라인인 장하양이다.

“내 말이 받아들여질 리 없어요…….”

기세가 깡패 저리 가라 할 수준인 신아름도 장하양에게는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지 못한다.

백설하와 장하양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조아라는 원하는 것을 쟁취할 가능성이 없다.

“옛날에 했던 회의에서도, 저번에 했던 회의에서도, 나는 설하 쌤 의견에 찬성했어요.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나한테 말해달라고?”

“말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조아라는 안 되지만, 성필은 될 것이다.

그가 ‘보컬에만 치중하는 건 아닌 거 같다’고 한마디 해준다면, 백설하는 받아들일 게 분명하다.

성필이 ‘고래는 어류야’라고 하면 ‘아, 그렇구나, 어쩐지’라고 할 사람이니까.

“어차피 아저씨가 하나 내가 하나 차이도 없고…….”

“아라야, 너 왜 이렇게 변했어.”

“……내가 변했다고요?”

“‘아니’ 안무 시안 정할 때랑 완전 다르잖아.”

그때는 조아라가 멤버들을 거의 협박하다시피 했었다.

좋은 건 좋다, 아닌 건 아니다, 이렇게 확실히 의사 표현을 했었건만.

“지금은 왜 이래?”

“…….”

그야, 친해졌으니까.

이 관계를 깨뜨리고 싶지 않다.

모두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될수록, 배려심은 더욱더 깊어진다.

조아라는 백설하의 열망을, 꿈을, 아이돌로서 실패했던 과거사를 알기에, 그녀에게 대항하는 게 힘들었다.

백설하가 상처받진 않을까 걱정된다.

“회의에서 말하는 건 너야. 내가 아니라. 부딪쳐보지 않으면 모르잖아. 지레짐작 겁먹고 포기하면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연애랑 비슷하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 주기만 기다릴 수는 없다. 용기를 내어 번호라도 물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거절되더라도, 그 마음만은 전해진다.

혹은, 번호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는가.

사랑의 시작이 용기이듯, 꿈의 시작도 용기이다.

“세상만사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

“…….”

조아라는 그 말을 듣고, 성필이 미워졌다.

‘말은 해줄 수 있잖아. 진짜 한마디인데…….’

백설하와 장하양에게 반대 의견을 내라고?

앞으로 회사에서는 어떻게 지내냐고.

숙소에서는 어쩌라고.

계속 어색하고 서로 눈치 보는 채로 지내는 건 싫다.

정말 싫은데…….

“아라 씨, 계십니까?”

휴게실 밖에서 한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성필은 시간 확인하곤 황급히 휴게실의 문을 열었다.

“죄송해요. 촬영 많이 기다리고 계시죠? 아라야, 이제 진짜 나가봐야겠다.”

“……네.”

조아라는 터덜터덜 휴게실을 나섰다.

한구인이 예리하게 조아라의 기색을 눈치챘다. 그녀는 명백히 기분이 안 좋아 보였던 것이다.

“무슨 얘기하신 겁니까?”

“음, 아라가…….”

이야기를 들은 한구인이 안타까움을 표했다.

조아라의 사정이 이해됐기 때문이다.

“상급자와 대립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그게 쉬웠더라면, 세상에 부조리가 이토록 많아지지는 않았겠죠.”

“그렇…….”

잠깐.

“상급자요?”

“……제가 뭔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습니까?”

“설하가 상급자는 아니죠.”

“아…… 물론 급이 나뉜 건 아니지만, 리더잖습니까.”

그 말을 듣고, 성필은 큰 충격을 받았다.

“죄송합니다. 실언이었군요. 멤버분들은 평등한데 말입니다.”

“……아니, 아니에요.”

“예?”

멤버들은 평등하지 않다.

‘처음부터 그랬어.’

백설하는 맏언니이며 리더이다.

성필은 백설하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소녀연맹이 데뷔하는 순간까지 그녀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았던가.

그런 성필의 태도와 전략이, 멤버들이 백설하를 대하기 어렵도록 만들어왔다.

‘설하도 그랬잖아.’

‘아니’ 뮤비 촬영을 위해 괴를리츠에 갔을 때, 백설하는 동생 라인이 노는 방에 들어가지 않고 홀로 옥상으로 올라왔었다.

그리고 성필과 만나 이리 말했다.

‘애들이 나를 불편해할 것 같다, 라고 했었잖아.’

성필이 백설하에게 실어준 힘은, 조아라가 백설하에게 의견을 내기 힘들게 만들었다.

반대로, 백설하도 동생 라인과 일정 관계 이상으로 친해지는 것을 막았다.

보통 두세 살 차이라면 존댓말을 하지 않는 아이돌 그룹이 많다. 하지만 소녀연맹은 나이에 따라 철저하게 존댓말을 하고 있다.

‘심지어 하양이도 그래.’

조아라가 백설하와 대립각을 세운다는 건, 고작 3살 위의 언니와 의견이 다르다는 뜻이 아니다.

한구인의 말마따나, 상급자와 싸우는 것이다.

“박 이사님?”

한구인의 부름에도, 성필은 한동안 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소녀연맹이란 그룹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자책이, 성필의 마음을 휘저어놓았다.

* * *

‘소녀연맹 비긴즈’를 맡게 된 다큐멘터리 팀 감독, 심동건은 세트 설치를 마치고도 10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했다.

“조아라 씨 언제 와?”

“가로 엔터 직원이 부르러 갔다고 하긴 하던데요.”

촬영팀은 오지 않는 조아라를 기다리며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다.

“설치도 끝났는데…….”

세트라고 해봤자 벽에 검은 천을 달고 의자를 둔 뒤, 앉은 사람에게 조명을 비추는 게 다였다.

오늘 촬영할 건 조아라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전부였으니.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때 조아라가 뒤늦게 와서 촬영팀에게 사과했다.

심동건은 불쾌한 티를 내지 않고 조아라를 의자에 앉혔다. 감정을 소모할 시간에 1초라도 더 찍는다는 게 그의 신조였다.

“시작합니다. 질문에 자연스레 대답해주시면 돼요. 자아, 시작.”

심동건이 녹화를 시작했다.

그의 옆에는 홍보팀장 자격으로 참석한 손혜빈과 ‘소녀연맹 비긴즈’의 기획을 맡은 양상헌이 있었다.

“아라 씨, 가로 엔터로 오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학교 다니고, 춤추고, 뭐, 그게 다였죠.”

질문들은 조아라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뚜렷하게 비추었다.

만약 조아라의 답변이 불충분하면, 심동건은 끈질기게 질문하여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했다.

다큐멘터리란 이런 것이다.

‘이건 다큐멘터리가 아니긴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대상자들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일단 영상 매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니, 어떻게든 자신을 꾸미려 한다.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려 촬영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좋은 영상을 위해선 진실을 캐는 힘이 필요하다.’

심동건은 그 일의 전문가였다.

그의 질문은 때로는 부드러웠고, 때로는 무례하다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아이돌이라는 게…….”

“그냥 예쁜 옷 입고 사람들 앞에서 아양 떠는 거라고 생각했었죠. 춤도 뭐, 잘 추는 애들도 있는데 대부분은 내 기준에선 미달이었고요.”

“아라 씨는 댄서였으니까요.”

“아니, 프로라고 할 건 아니고. 오래 배우긴 했었죠.”

“예고는 안 가셨고요.”

“네. 딱히 갈 필요를 못 느껴서.”

“음, 그런데 지금 아라 씨가 ‘인형처럼 예쁜 옷 입고 사람들 앞에서 아양을 떠는 아이돌’이 돼 있네요?”

“…….”

양상헌마저 심동건을 제지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으나, 손혜빈이 가만히 두라는 듯 그의 앞을 팔로 막곤 했다.

‘소녀연맹 비긴즈’가 보여주고자 하는 건 진열장 안의 예쁜 물건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보여줘야 할 것은, 소녀연맹 멤버들이 가진 있는 그대로의 생각이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나요? 아이돌에 대한 생각이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춤을 잘 추는 사람도 꽤, 아니, 조금, 어, 거의 없긴 한데, 있긴 하고요.”

“……아, 그래요.”

“뭐든 해봐야 아는 거 같아요. 손가락질하고 욕했던 뭔가가, 직접 해보니 실은 대단했다는 거요. 힘들더라고요, 아이돌이란 게.”

정말 그러했다.

예뻐 보이는 표정만 짓고 춤 같지도 않은 춤을 추며, 무대에선 립싱크하는 게 전부인.

그런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해보니 아이돌의 대단함이 보였다.

“생각이 완전히 바뀐 건, 네, 팬미팅 때였네요.”

팬미팅에 관한 내용은 심동건이 맡은 영역을 초과하는 것이다. ‘소녀연맹 비긴즈’는 입사부터 데뷔까지를 다뤄야 하니까.

하지만 조아라가 인터뷰에 몰입한 듯하여, 그녀가 계속 말하도록 두었다.

“그때는, 처음으로 ‘내가 아이돌이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댄서가 아니라 아이돌이 된 건 옳은 선택이었다고…….”

“그럼 전까지는 아니었나요?”

“음, 미련이 있었죠. 댄서에.”

“지금은요?”

“지금은…….”

조아라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그 질문을 받자마자 그녀의 머릿속에 진저의 모습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진저의 천재성을 보았을 때 느꼈던 절망과 굴욕감도.

“댄서에…… 미련이…….”

댄서로서 진저를 넘을 수 있을까?

넘고 싶다.

그럼 아이돌로서도 이길 수 있는가?

이길 수 있다.

이기겠다고, 멤버들과 다짐했다. 그리고 성필에게도 약속했다.

‘케이어스를 이기고 최고의 아이돌이 되겠다고…….’

그렇게 했는데,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나한테도 만족스럽지 않은 안무나 보컬로 이길 수 있을 리 없잖아.’

보컬의 난이도를 깎아서 춤의 비중을 늘려?

아니다.

춤을 포기하고 보컬 퍼포먼스를 강화해?

무슨 소리인가.

‘둘 다 해야지!’

케이어스의 데뷔 무대는 보컬과 댄스, 즉 퍼포먼스 그 자체를 완벽히 완성했었다.

KS 엔터가 칼을 갈고 나온 게 여실히 느껴졌었다. 이래서 그들이 업계의 탑에 있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케이어스는 곧 탑의 자리에 앉겠구나’라고, 자기도 모르게 납득해버렸었다.

‘작년에 걔들이 상 쓸어간 걸로 화냈던 거 잊은 거야? 적당하게 하면 안 돼. 적당하게는 이길 수 없으니까. 올해는, 이번 연도는 상을 받아야 해. 반드시…….’

또 작년처럼 숙소에서 분노만 씹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런 경험 따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있어요, 아직도. 댄서라는 정체성에 미련이 있어요.”

조아라의 답변에 손혜빈은 미묘한 미소를 보였다.

‘성필이가 이 말 들으면 혀 씹고 쓰러지겠네.’

안 그래도 댄서가 천직인 애를 아이돌로 만들었다고 자책하던 성필이다.

성필은 술 마실 때마다 그 이야기를 했다.

안 그래도 계속 들어서 지겨워 죽을 지경인데, 성필이 조아라의 저 말을 들었다면 술자리 때마다 울기까지 할 것이다.

“그러면 아이돌을 그만두고는 댄서로…….”

“아뇨. 나는 아이돌이에요. 동시에 댄서고요. 뭐 하나를 포기하고 싶진 않아요.”

“둘이 다른가요?”

조아라가 피식 웃었다.

“그러네요. 생각해 보니까, 같네.”

아이돌에게는 춤이 반, 아니.

절반 이상.

‘설하 쌤이 해줬던 말이잖아.’

그 말을 백설하에게 돌려줘야겠다.

성필의 말대로.

‘내가 직접.’

백설하의 면전에서 당당하게 선포할 것이다.

* * *

최근, 백설하는 죄책감에 시달려왔다.

‘라스꼴리니꼬프가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웃기게도 그리 생각해버리기까지 했다.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는 살인으로 괴로워했기에, 백설하와는 고민의 무게 자체가 달랐겠지만.

백설하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인물을 떠올리며 위안을 받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지경까지 몰렸다.

‘아라가 많이 실망했겠지…….’

백설하는 정규 앨범 타이틀에서 보컬에 무게를 두자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멤버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얻어냈다.

하지만 그게 동의일까?

‘나는 아라가 동의해줄 거란 걸 알고 있었잖아…….’

아니, 조아라가 동의해주리란 것을 알았던 게 아니다. 그녀가 반발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백설하 자신은 리더이며 언니이고, 소녀연맹의 중심을 받치는 위치에 있었으니까.

‘아라한테 말해야 해.’

저번 회의에서 난 결론에 만족하는 거야?

다른 생각은 없니?

아라 너도 하고 싶은 게 있잖아.

‘하지만, 그러면, 그럼…….’

타이틀곡에서 보컬의 비중이 빠져나갈 것이다. 그건 백설하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렇기에, 끙끙 앓으면서도 조아라의 마음을 무시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필은 백설하를 착하다고 말해주곤 한다.

익숙하지 않은 리더, 맏언니의 역할에 힘겨워하면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히 임한다면서 말이다.

‘아니야.’

그 말은 틀렸다.

이제 알았다.

백설하 자신은 이기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동생의 마음 정도는 무시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조아라가 반발하지 못할 것을 알아서, 거기까지 생각이 닿아서, 보컬에 무게를 두자고 강하게 말할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백설하는 동생의 의지를 꺾고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위인이 아니었다.

‘아라한테 말해야 하는데…….’

타이틀곡을 만들면서, 같이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보자고 말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조아라의 앞에 서면, 아니.

조아라가 곁에 지나가기만 해도, 백설하는 절로 움츠러들며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둘의 의견을 조화시키는 건 매우 힘겨운 일일 것이기에.

어쩌면 도중에 많은 갈등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럴 바에야,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설하야.”

속으로 죄책감과 고뇌만 씹고 있던 도중, 성필이 말을 걸어왔다.

그는 매우 미안한 태도로, 간곡하다 싶을 정도의 부탁을 해왔다.

“……내 생각은 이렇거든.”

그의 부탁을 들으며, 백설하는 성필과 조아라를 겹쳐서 보았다.

조아라도 이런 생각을 했겠구나.

단지 성필만이 이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할 수 있던 건, 위치와 용기의 차이다.

‘내가 말해야 해.’

메인 프로듀서인 성필마저도 이런 저자세로 부탁해온다.

그런데 조아라에게는 백설하와 다른 의견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압박이겠는가.

‘내가 아라한테 직접 말해야 하는 거야.’

조아라가 반발이 없으니, 어쩌면 그녀도 괜찮은 게 아닐까…….

이런 소심한 생각으로 합리화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위에 선 자에게는 책임이 있다.

자신의 권위와 벽을 제거하고, 자신을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것이다.

“설하 너는 어떻게 생각해?”

성필의 이야기를 다 들은 뒤, 백설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이기적이었구나.

그리고.

‘이게 옳은 거구나.’

* * *

멍하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백설하가 갑자기 활기차게 변했다.

마치 죄를 고백하고 마음의 족쇄를 벗어던진 라스꼴리니꼬프 같았다.

“설하야, 진짜 괜찮아?”

초조한 성필의 모습을 바라보며, 백설하는 투지를 불태웠다.

“네, 이사님이 부탁하신 거잖아요!”

그 부탁이란, 조아라를 조금 배려해달라는 것이었다.

조아라가 보컬 퍼포먼스 관련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고, 또한 백설하를 두려워하고 있으니 먼저 말을 걸어달라.

백설하도 보컬 퍼포먼스‘만’ 강화하는 걸 바라지는 않는다. 그렇게 말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나도 아라가 내 말에만 따르는 건 바라지 않아.’

계속 조아라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백설하다.

하지만 조아라에게 따로 이야기를 꺼내 사과하거나, 그녀와 의견을 조율할 생각은 못 했다.

‘무서워서…….’

조아라는 한동안 인상을 팍 쓰고 다녔다.

언니로서 이러면 안 되는데, 진짜 무섭다…….

혹시 말이라도 걸었다간 정말 싸움으로 번지진 않을까 해서, 백설하도 타이틀곡 관련 주제는 피해왔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네가 안 내키면 말 안 해도 돼.”

“아녜요. 이것도 리더의 역할인걸요. 저도 아라랑 같이 웃으면서 컴백하고 싶어요.”

누군가가 희생하고 불만을 품는다면, 그건 팀이 아닐 것이다.

백설하는 멤버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부탁을 해준 성필이 고마웠다.

“고마워, 설하야 진짜 고마워.”

“이사님이 이렇게 좋아하시는 건 오랜만에 보네요.”

“뭐 받고 싶은 거 있어?”

“그러면 제가 대가를 받고 이 일 하는 거 같잖아요…….”

“알겠어. 고마워 정말.”

“…….”

아, 실수했다.

뭘 받을걸.

말하고 나니까 아깝다…….

‘박 이사님 보니까 뭘 부탁해도 들어주셨을 거 같은데…….’

다시 받겠다고 할까?

안 된다. 그건 부끄러우니까…….

그날, 백설하는 계속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고 자책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조아라에게 할 말을 점검했다.

‘아라야, 나는 괜찮아. 나도 너 이해해. 우리 같이 의견을 잘 조율해서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보자. 오래 걸려도 돼, 우리가 함께 만족하는 게 가장 중요하잖아. 내일은 A&R팀 찾아서 곡을 어떻게 만들지도 논의해보고…….’

좋아, 이 정도면 조아라도 받아들이겠지.

백설하는 의지를 다지며 동생 라인의 방으로…….

“쌤!”

쾅! 문이 거칠게 열리며 조아라가 나타났다.

책을 보던 장하양이 깜짝 놀라 몸을 거칠게 떨었다.

그건 백설하도 마찬가지였다. 심장이 떨어질 뻔하여 가슴이 크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얘기 좀 해요.”

“얘, 얘기?”

성큼성큼 다가오는 조아라의 기세에, 백설하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하지만 조아라는 백설하가 도망갈 틈을 주지 않았다. 그녀와 콧대가 맞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선포했다.

“보컬에만 비중 두는 거 별로예요.”

“으, 으응?”

“왜 쌤만 스포트라이트 받으려고 해요.”

‘아니, 아니, 그게, 나만 스포트라이트 받으려는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도 팬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지금까진 내가 계속 양보했잖아요. ‘아니’ 때도, ‘롱 포’ 때도, 나도 동의한 거긴 한데, 계속 댄스 난이도는 낮춰왔어요. 맞죠?”

“마, 맞아. 아라 말이 맞아. 근데 너무 가까우…….”

“이번에는 나도 할 말 있어요. 댄스에도 비중 둬요. 우리도 진짜 멋진 군무 한 번 해보자고요.”

“어, 어어…….”

“내 말 이해했어요?”

백설하는 고개만 끄덕이고 싶었지만, 그러면 조아라와 입술이라도 닫을 것 같았다.

백설하는 벽 끝까지 물러나 바들바들 떨었고, 조아라는 그런 백설하를 몰아붙이는 모양새였다.

“으, 응, 이해, 이해했어. 조, 좀 떨어…….”

“쌤도 춤 연습 계속했잖아요. 하양 언니도요. 언니 맞죠? 언니 댄스 트레이닝 계속 받았잖아요.”

드디어 조아라가 백설하의 얼굴에서 멀어졌다. 장하양에게로 시선을 돌린 덕분이다.

“응, 맞아.”

“내가 봤을 때, 하양 언니 뼈를 깎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연습하면 남돌 어려운 안무도 소화할 수 있어요.”

“아하하, 피 토하고 뼈를 깎으란 뜻이구나…….”

장하양은 이런 말을 들어도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녀가 처음 가로 엔터로 들어올 때 홍규헌 앞에서 했던 말이, 분골쇄신의 마음가짐을 갖겠단 것이었으니까.

실제로 지금까지도 그렇게 지내왔다.

“언니, 자신감 가져요. 언니 ‘아니’ 때의 언니 아니에요. 진짜 잘해요.”

그건 ‘롱 포’ 때 입증됐다.

표현력에 중점을 둔 안무이긴 했어도, 장하양의 댄스 퍼포먼스는 큰 호응을 얻었었다.

“나도 내가 잘난 거 알아.”

“…….”

“농담! 나도 나 부족한 거 알아. 그래도 열심히 할게.”

“……하하.”

“이제 농담 통제 풀어줄 거야?”

장하양, 농담 통제 유지!

“그러니까!”

조아라는 백설하가 등을 기댄 벽을 양 손바닥으로 쾅 쳤다.

슬금슬금 조아라의 앞에서 탈출하려던 백설하가 화들짝 놀랐다.

백설하의 양옆이 조아라의 팔로 막혀 도망갈 곳이 봉쇄됐다.

“쌤, 허락해줘요.”

“으, 응, 으응, 으흐응…… 하께…….”

무서우니까 이제 그만해주라…….

“제대로 말해줘요. 쌤 괜찮은 거 맞아요? 실은 불편한 거 아니죠? 막 나한테 화내고 싶은데 참는 거 아니에요? 할 말 있으면 해요. 들을게요. 한번 말해봐요. 합의 나올 때까지 계속 얘기해요. 오늘 아주 끝장을 보자고요.”

“허, 허락하께…… 허락할 테니까아…….”

이상하다.

‘박 이사님이 아라가 날 무서워한댔는데……?’

또 속은 걸까?

‘박 이사님 미워어…….’

그래도, 장하다 백설하.

동생 앞에서 울지는 않았으니까!

“고마워요 쌤.”

조아라가 쑥스럽게 웃으면서 물러났다.

백설하는 벽을 타고 스르르 주저앉았다. 하지만 백설하는 주저앉는 것도 허락받지 못했다.

조아라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애정을 가득 담아 꽉 안았다.

“힘들겠지만, 같이 잘 해봐요.”

“…….”

리더 백설하, 오늘도 팀의 문제를 무사히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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