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70화 (170/760)

170화

백설하의 동생인 백수현이 가로 엔터에 온다.

백설하가 따로 시간을 내어 그를 만나러 갈 짬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필은 그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다지 큰 신경은 안 쓰고 있었다.

손혜빈이 쳐들어오기 전까지는.

“야, 야, 야, 너, 밖, 저기, 밖에, 사람, 설하 동생.”

“누나 또 바닥에서 음식 주워 먹었어? 상태가 많이 안 좋네.”

“빨리 나와보기나 해!”

손혜빈이 성필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두 사람은 2층 난간에서 아래를 보았다.

“저분이 설하 동생이야.”

확실히 유전자의 힘이란 게 대단했다.

백설하의 동생이니만큼, 백수현도 괜찮게 생겼으리라곤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설하가 남자가 되면 저럴까?’

백설하의 피지컬을 그대로 남성적으로 전환하면 백수현이 될 듯했다.

고등학교 1학년의 교복.

미래를 생각해서 약간 널널한 품으로 맞췄을 텐데도, 그의 몸에 새겨진 굴곡을 전혀 감추지 못했다.

어깨도 무슨 운동을 몇 년 한 사람처럼 넓다.

화룡점정은, 온순한 백설하의 얼굴과는 정반대의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짙은 눈썹에 강렬한 눈…….

“아이돌…… 시켜야 해…….”

“뭔 아이돌이야! 배우로 해야지!”

“누나 아이돌 무시해?!”

둘은 옥신각신하면서 1층으로 내려왔다.

백수현은 둘을 발견하자 벌떡 일어나 허리를 깊이 숙였다.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렸죠? 이쪽이 박성필 이사님이에요.”

“반갑습니다. 박성필 이사입니다.”

“넵! 누나가 항상 신세 지고 있습니다.”

성필은 그와 악수했다. 그 즉시 그의 소파 옆자리를 차지하고 물었다.

“혹시 소속사 있어요?”

“네?”

손혜빈도 탈출구를 막으려는 듯 반대쪽 옆에 앉았다.

“있을 법한데. 아니, 없을 리가 없지. 수현 씨 누나가 전 아이돌 출신 현 아이돌이잖아요. 근처에서 몇 번씩 찔러봤을 텐데.”

“아니, 아뇨…….”

두 이사의 탐욕이 가득 담긴 눈길을 받고, 백수현은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성필과 손혜빈이 눈을 맞추었다.

‘누나.’

‘알아.’

‘최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자.’

그래서 후일, 가로 엔터가 안정적인 궤도로 올라갔을 때 연습생으로 받는 것이다.

망상뿐이지만, 성필의 머릿속에는 벌써 리카의 동생인 유우토와 함께 선 백수현의 모습이 그려졌다.

“누나가 노래 같은 거 가르쳐주고 그랬어요?”

“아니요. 저는…….”

대화는 주로 성필과 손혜빈의 질문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춤에 관한 주제가 나왔다.

“취미로 연습한다고요?”

“네. 가끔 ‘클락’에 올려요.”

클락.

15초에서 1분 내의 짧은 동영상을 올리는 SNS다. 한때 시도 때도 없이 온갖 매체에 광고가 나와 ‘혐락’이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현재는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SNS 중 하나였다.

“팔로워도 많겠다.”

“그렇게 많지는 않…….”

여차저차 그의 계정을 보게 됐다.

예상했던 대로, 일반인은 꿈도 꾸기 힘들 정도의 팔로워가 쌓여 있다.

과장 조금 섞어서, 백수현은 얼굴만 15초 동안 찍어서 올려도 하루에 팔로워가 백 명씩 상승할 게 틀림없을 테니까.

“어? 롱 포도 추셨어요?”

“하이라이트만 조금이요.”

“보여줘, 짝! 보여줘, 짝! 보여줘, 짝!”

성필이 장작을 넣자 손혜빈이 불을 붙였다.

만약 백수현이 백설하와 비슷한 성격이었다면 얼굴을 붉히며 사양하겠지만.

“그럴까요?”

백수현은 당당하게 소파에서 일어났다.

손혜빈은 후다닥 연습실로 가서 스탠드 마이크를 가져왔다.

“아타시(제)가 가지고 놀려고 했는데……!”

리카의 말은 무시하고 가져왔다.

손혜빈이 백수현에게 스탠드 마이크를 넘겼다. 그는 마이크의 다리를 비스듬히 잡아보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겁네요.”

백수현이 클락에 올린 롱 포 하이라이트 안무는 죽도(竹刀)로 했던 것이다.

검도를 배웠다고 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백수현은 즉각 춤을 추었다.

당연하게도, 성필과 손혜빈이 광란에 빠져 백수현의 이름을 연호했다.

백설하가 돌아온 것도 모른 채로.

* * *

“나 깜짝 놀랐어.”

백설하와 백수현이 휴게실에서 담소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본 동생이 묘기나 부리고 있고…….”

“멋졌지?”

멋지긴 했다.

대체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걸까?

“조회 수 끌어보려고 생각했던 거거든.”

“넌 고등학생 돼서도 똑같네.”

백수현은 흔히 말하는 관종끼가 좀 있다.

대놓고 나대지는 않지만, 멍석을 깔아주면 피하는 법이 없었다.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 때문이었다.

부모님과 주변의 관심이 아이돌 연습생인 백설하에게 쏠리니, 백수현은 관심을 쟁취하기 위해 온갖 끼를 발산했었다.

교내 대회는 물론 지역 대회 등,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곳이라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나갔었다.

덕분에 집에 백수현의 상장이 가득했다.

“잘 지내?”

“나야 항상 똑같지 뭐.”

잠깐의 정적.

“누나.”

“응?”

“언제 집에 한 번 와.”

백설하의 입가가 굳었다.

일부러 피하고 있던 주제였기 때문이다.

“집에…….”

백설하는 자신의 뺨을 쓸었다.

집을 나오던 날 어머니에게 맞은 곳이었다.

그 때문에 다 함께 숙소로 들어가는 역사적인 날에, 뺨에 거즈까지 붙이지 않았던가.

“엄마가…… 오래?”

백수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누나가 처음 나갔을 때보다 화는 많이 풀리신 거 같아. 요즘은 누나 욕도 잘 안 해.”

“내 욕 하셨구나…….”

그게 야속하지는 않았다.

백설하는 어머니를 이해한다고,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활동하던 그룹이 해체되고, 한 달 동안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눈물만 흘렸던 백설하다.

그런 백설하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분명 백설하보다 아프면 아팠지 덜하진 않았으리라.

“맞다.”

백설하가 오래도록 답이 없자, 백수현은 능숙하게 말머리를 돌렸다.

“우리 학교에 김채현이란 애가 있거든? 걔가 소녀연맹 팬이야. 첫날에 학교 갔을 때도 소녀연맹 이야기로 친해졌어.”

“정말? 잘됐다. 근데 여자야?”

“어.”

왠지 모르지만, 백설하는 자신의 가슴 한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수현이 혹시 그 애한테 마음 있나?’

여자 얘기는 꺼내지도 않던 애인데.

물론 고등학교에서 사귄 첫 친구이니 충분히 대화 주제로 오를 수 있다곤 해도, 누나로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안 좋은 애면 어쩌지? 사귀었다가 상처만 받고 헤어지면? 아, 아니. 수현이 혹시, 만약에, 그런 거에 맛 들여서…….’

희대의 바람둥이 같은 게 되어버리면……?

‘안 돼!’

아직 누나인 자신도 연애를 못 해봤는데 동생이 그렇게 변해버리다니!

“으, 응. 친구 잘 사귀는 거 같아서 보기 좋다.”

하지만 백설하가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동생의 인생이니까…….

단지 걱정만 될 뿐이었다.

“걔 착해.”

백수현은 김채현이란 아이에 대해 꽤 오랫동안 말했다.

그녀가 얼마나 소녀연맹의 팬인지, 얼마나 소녀연맹을 좋아하는지에 관한 것을.

대화가 이어지는 내내 백설하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아, 벌써 저녁 시간이네. 나 가볼게.”

“그런데 너 어떻게 이 시간에 온 거야? 학교는? 요즘은 야자 없어?”

“조퇴하고 왔는데?”

동생이 불량해지고 있어!

백설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와 함께 휴게실에서 나왔다.

그를 배웅하려던 차.

“설하야. 오늘은 동생이랑 시간 좀 보내.”

성필이 그리 말해주었다.

“모처럼 동생이 직접 왔잖아. 같이 집에서 저녁이라도 먹던가. 밤까지 놀던가. 내가 차 태워줄게.”

“아니…… 그런 건…….”

문득, 백설하는 아까 백수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언제 한번 집에 오라고 했었지.

백설하는 고민을 담아 입술을 꾹 물곤, 이성 대신 본능의 목소리를 냈다.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당연하지.”

어머니를 보러 간다.

어차피 언젠간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백설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 * *

‘남매가 사이가 좋네.’

백설하와 백수현을 봤을 때부터 생각했다.

보통 남매는 사이가 안 좋다고 들었다.

이미 리카와 유우토라는 예외를 보긴 했으나, 주변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여동생? 말 안 섞은 지 몇 년은 된 듯.’

‘아, 진짜 오빠 개 싫어. 어릴 때부터 지 맘대로야.’

‘그건 왜 물어봐. 내 동생 소개받으면 너만 불행해질걸.’

모두 좋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남매는 서로 미워하는 유전자가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성필은 그것마저도 부러웠다.

‘동생이라.’

만약 형제자매가 있다면 서로 의지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을 텐데.

그런 성필이 보기에, 백설하와 백수현의 관계는 이상적인 남매였다.

지금도 차 뒷좌석에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은가.

“빨리 갔다 올게요.”

“아냐. 천천히 있어도 돼.”

“……이사님도 같이 오실래요? 밥이라거나, 같이 먹을 수도 있고…….”

“누나 뭐야 그게.”

“어, 응?”

“이사님한테는 고문이잖아. 우리 집 식탁에 앉으면 밥도 제대로 못 드실걸.”

“아, 그런가……?”

백설하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차에서 내렸다. 두 사람은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도, 서로에게 행복한 미소를 보내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저런 설하는 오랜만에 보네.’

동생과, 가족과 이야기한다는 게 그리도 좋은 것일까.

성필에게는 어렴풋해진 감정이다.

하지만 이해는 되기에, 성필도 미소를 머금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곧 두 사람은 집 안으로 사라졌다.

‘얼마나 걸리려나.’

성필은 블루투스로 차의 오디오와 핸드폰을 연결하여 소녀연맹의 미니 앨범을 재생했다.

첫 번째 트랙인 리카의 ‘플레이리스트’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왠지 창피하다.

누군가 듣지는 않을까.

‘어디 보자, 앨범 계획이…….’

성필은 눈을 감고 일본 앨범 발매까지의 계획을 점검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알 수 없이 싸한 느낌에 눈을 떴다.

옆을 보았다.

차창 너머로 백설하와 백수현이 보였다.

‘벌써?’

성필은 둘을 보고 심장이 철렁거렸다.

백설하가 울기 직전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 옆의 백수현은 설득이라도 하는 듯 입을 바삐 움직이며, 어떻게든 백설하를 잡으려 했다.

백설하는 구겨 신은 신발을 억지로 질질 끌면서 차 쪽으로 걸어왔다.

백수현은 그녀를 막으려는 것 같이, 섬세하면서도 자상하게 팔을 펼쳤다.

백설하는 그쪽은 보지도 않고 걸었다.

백수현은 미소를 지으며 백설하의 앞을 막으려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로 손을 뻗는다.

백설하가 거칠게 백수현의 손을 쳐냈다. 그리고 무어라 소리를 질렀다.

백수현은 넋이 나간 얼굴로 백설하를 바라만 보고 있다.

백설하는 자기 자신의 감정을 주체 못 한 채 머리칼을 거칠게 쥐어뜯곤, 이내 얼굴을 가렸다.

백수현은 그녀를 잡으려던 팔을 천천히 늘어뜨렸다.

백설하는 얼굴을 가리곤 흐느끼는 듯 몸을 미세하게 떨었다.

백수현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백설하는 얼굴에서 손을 치웠다. 다시 드러난 그녀의 표정은 눈물범벅이었다.

백설하는 비틀거리며 차로 다가왔다.

차의 바로 앞. 운전석 앞. 차창 앞.

성필은 차창 너머로 그녀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코팅 때문에 성필을 볼 수 없었다.

백설하는 이 세상의 모든 절망과 슬픔을 모아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흐느끼며, 차 문을 열려다가, 방향을 돌려 길을 따라 걸었다.

성필은 급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설하야!”

그녀를 향해 다가가려 몇 걸음 내딛자.

“오지 마세요!”

백설하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녀는 다시금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성필이 볼 수 있는 건 뒷모습뿐이라, 그녀의 일그러진 표정은 볼 수도 없는데도.

“오지…… 마세요…….”

울먹임이 그녀의 목구멍을 깊이 막았다.

“저, 울고 있어요…….”

안다.

누구라도 알 것이다.

집에서 어떤 말을 들었을 것이다.

좋은 말은 아닐 테지.

성필도 기억한다. 소녀연맹 멤버들이 처음 숙소로 들어가던 날, 백설하가 뺨에 거즈를 붙이고 나타났던 것을.

아마 맞았던 것이리라.

누구에게? 아버지나, 어머니.

이번에도 맞았을 것이다.

손이 아니라, 말로.

“울고 있으니까아…….”

백설하는 한동안 길가에 서서 울기만 했다.

* * *

백설하는 곡을 만들었다.

리카의 도움을 받아 작곡 프로그램을 만지거나, 홀로 기타를 치면서 멜로디와 트랙을 나름 구성해보았다.

“이건…….”

그리고 정지음에게 피드백받았다.

백설하는 가사를 썼다.

이수연 작사가에게 강의를 듣고, 즉석해서 가사를 써보고, 회사로 돌아와선 자작곡에 들어갈 가사를 심혈을 기울여 완성시켰다.

“좋긴 한데…….”

그리고 이수연에게 피드백받았다.

백설하는 조아라를 본다.

조아라는 춤을 추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아이다. 종일 춤을 춰도 지치지 않는다.

이제는 그것을 넘어, 창작의 열정에 사로잡혀 음악에 안무를 입히는 데 열심이다.

가끔, 백설하는 그런 조아라를 가만히 바라보곤 한다.

“걍 생각 안 하고 만들어보는 거예요. 시안만 만들어도 재밌거든요. 몇백 개씩 만들다 보면 괜찮은 것도 몇 개 걸리겠죠.”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곤, 조아라의 안무는 너무나도 멋졌다.

백설하는 리카를 본다.

그녀는 트레이닝과 레슨이 끝나면 연습실 구석에 앉아 작곡 프로그램을 만진다.

성필이 선물해준 이어폰을 끼고 흥겹게 어깨를 들썩이며 작곡한다.

“재밌어요! 제 손에서 음악이 태어난다구요? 엄마가 된 기분이에요!”

리카는 작곡을 즐긴다. 안 좋은 평가를 받더라도 기분이 전혀 다운되지 않는다.

오히려 평가는 뒷전이고, 자신이 작곡하며 느끼는 즐거움에만 집중한다.

백설하는 신아름을 본다.

신아름은 창작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놀랄 만큼 수많은 노래와 안무를 외울 뿐이다.

그녀는 고민이 필요 없다.

몇 번 보고, 몇 번 움직이면 외워지니까.

본인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그녀는 성필에게 쪼르르 달려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눈다.

“팀장님. 세상에 단 한 사람이랑만 같이 남을 수 있으면 누구 골라요?”

“당연히 너지.”

답이 정해진 질문이기에, 성필은 신아름이 기뻐할 답만 내놓는다.

그러면 신아름은 기쁨을 만면에 담아서 이렇게 답한다.

“저는 엄마요.”

“배신자!”

신아름은 스트레스란 게 없어 보였다.

멘탈을 관리하는 것도 아이돌의 일이니, 신아름은 아이돌의 재능이 출중하다고 봐도 좋으리라.

백설하는 작곡을 한다. 그리고.

“이건 예전보다는 나은데, 이 부분이…….”

백설하는 작사를 한다. 그리고.

“와, 많이 나아졌어. 그런데…….”

백설하는 장하양을 본다.

장하양은 남는 시간에 랩을 연습하거나 가사를 쓴다.

“이거 읽어주실래요? 언니 의견 듣고 싶어요.”

백설하는 장하양이 쓴 가사를 읽었다.

아주 찬찬히 읽었다.

다 읽은 후엔, 미소를 지은 채 답한다.

“멋져. 하양이 시인 같아.”

장하양도 미소로 화답한다.

백설하는 작곡을 한다.

그리고 평가받는다.

백설하는 작사를 한다.

그리고 평가받는다.

백설하는 리카를 평가한다.

조아라를 평가한다.

신아름을 평가한다.

모든 게 평가다.

백설하는 옛날을 떠올려본다.

‘이 노래가 좋아.’

‘이 부분이 멋져.’

‘부르고 싶어.’

백설하는 지금을 되짚어본다.

‘이 노래는 어떤 구조지?’

‘이 노래는 어떻게 부르는 거야?’

‘이걸 부를 수 있을까?’

모든 게 분석적이다.

동생인 백수현의 말이 떠오른다.

‘누나는 아이돌이야. 진짜 아이돌이 아니었을 때부터, 나는 누나를 존경하고, 그리고, 누나는 내…….’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아이돌 그거 어차피 헐벗고 나와 몸 파는 거랑 다를 것도 없잖니. 애도 아니고 아직도 그딴 거에 매달려? 설하 너도 결국…….’

생각을 멈추고, 백설하는 평가받을 것을 쓴다.

책상에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펜을 들고 종이를 노려본다.

가사를 몇 마디 끄적인다.

그리고.

장하양을 떠올린다.

그녀의 가사를.

그리고 또 떠올린다.

다른 멤버들의 빛나는 재능들을.

“…….”

백설하가 펜을 놓았다.

“그만할래.”

이제 깨달았다.

왜 노래에 슬럼프가 왔는지.

백설하를 둘러싼 세계는 아름다운 음색과 선율로 둘러싸인 곳이 아니었다.

숫자와 질서로 가득 덮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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