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학폭 그룹 입갤@@@@@@@@@@@@@@]
이라는 제목의 글이 ‘소녀연맹 마이너 갤러리’를 뒤덮었다.
관리자가 지우는 속도가 글이 올라오는 속도를 못 따라갈 정도였다.
아침부터 할 일이 없는 인간들이 이렇게 많나? 갤러리를 보는 팬들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여기가 학폭 아이돌이 있는 곳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줄을 잇는 조롱글.
평소 아이돌에 관심 없는 인간들도 잔뜩 모인 듯, 도저히 부정적 글이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인민들과 관리자도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커뮤니티도 상황은 비슷했다.
[신아름 포유에서 한 번 살아남았더니 소녀연맹에서 걸러지놐ㅋㅋㅋㅋㅋㅋ]
[정의구현 꺼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커뮤니티만 그런 게 아니었다.
멤버들의 SNS와 가로 엔터 공식 채널도 이런 테러들의 타깃이 되었다.
그중 신아름의 SNS가 가장 심했다.
[남자애들이랑 같이 반 친구 성희롱하니까 좋았음?]
[새싹부터 룸망주ㅋ]
[더러운 년이 방송 나와선 존나 순수한 척]
인터넷 뉴스도 신아름에 관한 기사가 줄을 잇기 시작했다.
8시 30분쯤 출근했을 기자들은 5분 만에 기사를 써냈는지, 올라오는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빠르다.
[학폭 피해자가 남긴 신아름의 충격적인 진실]
[반 친구 성희롱까지…… 도 넘은 괴롭힘]
[벼랑 끝에 몰린 소녀연맹, 과연 대응은?]
[프로젝트 포유 학폭 논란에도 멀쩡했던 신아름. 방송국과의 커넥션?]
폭로글이 올라온지 겨우 수 시간.
소녀연맹이 쌓은 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 * *
‘롱 포’로 컴백한 지 3일.
고작 3일이다.
그동안 가로 엔터는 꿈에 휩싸여, 마치 솜사탕 위를 걷는 듯한 분위기였다.
성공에 대한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형, 음방 제작진 측에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데요…….”
아침 일찍 회사에 오자마자, 지금까지 느꼈던 행복은 전부 지옥으로 처박혔다.
성필은 민경섭의 물음에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턱을 괴고 앉아 머리만 굴릴 뿐이었다.
“형…….”
민경섭이 다시 물었다.
그의 답을 기다리는 건 민경섭만이 아니었다.
손혜빈과 한구인도 성필이 구명줄이라는 듯이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 중에서 매니지먼트 경력이 가장 많은 건 성필이었고, 리스크 관리는 매니지먼트의 영역이다.
이번 사태를 지휘할 권리는 성필에게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성필은 어렵사리 입을 뗐다.
“사실관계 확인 중…… 아니.”
성필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절대 아니다.’
라고 했다가, 만약 아니라면?
정말로 신아름이 학폭을 저질렀다면?
폭로글과 완전히 같진 않더라도, 언론에서 트집 잡을 만한 일을 조금이라도 했었다면?
“잠시 후에 답해주겠다고 말할까요?”
“…….”
성필은 신아름을 믿었다.
그건 단순한 믿음이 아니었다.
신아름을 석세스 엔터로 데려올 때, 성필은 그녀의 교우관계를 살피고 담임 선생님과 면담도 했었다.
학폭 따위, 신아름은 저지르지 않았다.
그래도, 만약에, 혹시라도.
단 하나의 흠이라도 나온다면…….
신아름은 성필에게도 특별한 아이지만, 정 때문에 판단을 그르칠 수는 없다.
매니지먼트 영역에서 실수를 범한다면, 단순히 신아름과 성필의 문제가 아닌 가로 엔터 전체의 문제가 된다.
신아름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은 잠시 믿음을 접어두고 중립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
“악의적인.”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성필의 목소리는.
“명백한 허위사실, 이라고 말해.”
의지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 * *
뒤늦게 아침 회의가 열렸다.
“사장님, 오늘 촬영하기로 한 음방은. 제작진 측에서 불참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오지 말란 뜻이지?”
“예. 그렇죠.”
소녀연맹의 성장세가 두드러질 때.
앨범 활동 기간에.
어느 때보다 집중해야 할 타이밍에.
하필 지금…….
“알겠어.”
홍규헌은 평온하게 답했다.
평정을 억지로 가면처럼 쓴 것이다.
“이런 경우는 어떡하지?”
홍규헌의 물음에 회의실의 시선이 성필에게로 몰렸다.
리스크 관리는 매니지먼트의 영역이다.
성필이 프로듀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해도, 이중에선 매니지먼트 경력이 가장 길다.
“사실 확인부터죠. 아름이한테 진짜냐고 물어봐야 해요.”
“사실대로 말해줄까?”
“안 말하죠. 진실을 말하게 하려면 겁줘야 해요. 아이돌과 회사는 일심동체라, 가할 수 있는 페널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압박하는 데는 한계가 없거든요.”
거짓말이라도 괜찮다.
독대한 후, 있는 말 없는 말 전부 뱉어서 겁을 주면 아이돌은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다.
20살의 사회 경험도 없는 아이라면 더욱더.
가로 엔터 인원들이 돌아가면서 압박을 가하면 진실을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래…… 진실을 말하게 한다……. 옳은 소리네. 최대한 빨리 진행되어야 할 거야.”
홍규헌도 일진설이나 학폭 논란이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이 있는지 알았다.
잘 나가던 그룹이라도 공중분해시킬 수 있는 게 학폭 논란이다.
큰 기획사더라도 주가가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그룹 자체가 존폐의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
설령 학폭 멤버가 나가고 그룹이 다시 컴백한다 해도 좋은 시선을 받긴 힘들다.
“우리도 대응을…….”
“근데 아름이는 안 그랬어요.”
“……뭐?”
“제가 아름이를 처음 본 게 중학교 3학년 때거든요. 그리고 아름이 석세스 엔터로 데려올 때,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이랑도 면담했어요.”
그 결과, 성필은 신아름을 데려와도 괜찮겠다고 판단했다.
“주변 친구들이 아름이를 안 좋게 봤을 순 있어요. 그게…… 아름이가 공격적이었거든요. 집안 사정 때문에, 애가 좀 그랬었거든요.”
“아…….”
신아름은 아버지가 없다.
그로 인해 주변에서 쏟아지는 동정이나 멸시로 인해, 신아름은 엇나갔었다.
“그래도 나쁜 짓은 안 하고 다녔어요. 외곽에서 겉돌고, 친구가 없고, 선생님한테 말대답하고, 그 정도예요. 폭로글에 올라온 것처럼…….”
폭로글.
그리 부르는 것도 거부감이 든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신아름 폭로글’은 그녀를 학폭 가해자처럼 그려놓았다.
“그런 일은 전혀 없었어요. 그리고 다들 보셔서 아시겠지만, 폭로글을 적은 건 아름이 동급생이었을 거예요.”
졸업 앨범과 졸업증 인증도 있었으니까.
“문장력을 봐도 나이 먹은 것처럼은 안 보이거든요. 전부 자기중심으로 적어뒀고, 자신이 받은 느낌과 주변인들의 반응만 서술했잖아요. 주변인을 서술하는 것도 두루뭉술하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폭로글은 위험하다.
사람들은 글에서 분위기를 읽을 뿐이니까.
빨리 진압하지 않으면 숲에 떨어진 꽁초불처럼 사방팔방 퍼질 것이다.
“박 이사가 신아름을 믿고 있는 건 알겠지만, 혹시 모르니 면담은 할게. 내가 직접 할 거야.”
“예.”
“오케이. 거기까지는 알겠어. 다음에는 뭘 하지? 입장문이라도 내야 하나?”
“글 쓴 사람 찾아서 당장 고소하죠.”
“……진심이야?”
“예.”
법적 대응.
성필이 꺼낸 방법은 너무도 신속하고 강경했다. 아마 그의 의견대로 진행된다면, 한구인이 맡게 될 일이었다.
“동의합니다.”
한구인이 성필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아이돌은 이미지로 힘을 얻는 존재입니다. 그 옛날 카이사르의 말처럼, 이미지가 필요한 사람은 의심조차 받아선 안 됩니다. 헛소문은…….”
신아름이 결백하다는 성필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면, 이런 헛소문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수 있습니다. 가로 엔터의 의지와 실행력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래.”
“사장님이 법적 대응 진행해주시면, 저는 옛날에 아름이 맡았던 담임 선생님 찾아가서 증언 받아올게요.”
중학교 3학년 때의 담임.
성필도 체육대회 때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뒤로도 신아름을 위한 면담을 거치면서 관계를 쌓았었고.
아쉽게도 석세스 엔터를 나오며 핸드폰을 바꾸어서, 그때의 연락처는 날아가 버렸지만.
“스승 찾기 시스템이란 게 있거든요. 스승의 날 때문에 만든 거 같은데. 이름과 과목, 부임 지역 정도만 알면 찾을 수 있어요.”
한쪽에선 폭로글을 쓴 사람을 찾고, 다른 쪽으로는 신아름을 보호할 증언을 얻어낸다.
“그러면요.”
민경섭이 손을 들었다.
“아름이 입장문이나 해명문은 적어야 할까요?”
해명문은 불을 끄게 할 수도 있으나, 반대로 불이 번지게 할 수도 있다.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
그에 성필은 간단히 답했다.
“본인이 원한다면.”
이건 가로 엔터의 일임과 동시에, 신아름의 일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사장님.”
“어.”
“아름이 면담하시고, 판단이 서시면 가로 엔터 입장문은 사장님이 맡아주세요.”
가로 엔터는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할 것인지.
홍규헌은 성필의 시선을 받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임혜영.
그녀는 중학교 3학년 때 신아름과 같은 반이었다. 하지만 신아름과 접점이 있진 않았다.
소위 ‘잘나간다’고 하는 그녀와 신아름은 어울릴 건덕지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신아름은 ‘반반한 얼굴 믿고 재수 없게 행동하는 년’ 정도였다.
그 반반한 얼굴 때문에 같이 노는 남자애들이나 오빠들도 은근히 신아름에게 관심을 표하기도 했었다.
짜증 났다.
“뭐야.”
임혜영은 작년에 ‘프로젝트 포유’를 보았다.
신아름이 있었다. 게다가 인기도 많았다.
배가 아팠다.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나 신아름은 기억 속에서 흐려졌으나, ‘재수 없다’고 생각했던 감정만은 또렷이 남아 있었다.
‘학교도 안 나오고 잠만 처자더니…….’
임혜영은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냈다.
보통 ‘즐겁다’고 말하는 학교생활과 궤가 다르긴 했으나, 아무튼 그랬다.
일탈을 즐기고, 찌질한 인간들 사이에서 우월감을 맛보며 무시하고, 나이대에 맞는 청춘을 보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년은 뭐기에 티비까지 나와?’
자신과 비교해도 한참 떨어지는 애인데, 뭐가 그리 잘나서.
별다른 논리도 없이 그냥 배가 아팠다.
그때까지만 해도 질투만 났을 뿐 별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프로젝트 포유에서 학폭 논란이 터졌다.
‘그러고 보니 신아름 저년도 막 선생들한테 덤비고 그러지 않았나?’
반에서도 겉돌고, 누군가 말을 걸면 띠껍게 답하곤 했었다.
‘혹시 신아름도 폭로 나와서 망하는 거 아니야?’ 싶었지만, 그녀는 무사했다.
그러다가 또 시간이 지났다.
‘롱 포’ 앨범이 나왔을 때였다.
임혜영은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기에, 아는 사람만 듣던 ‘아니’에 대해서는 몰랐다.
하지만 ‘롱 포’는 알 수 없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거 노래 뭐지? 괜찮네.”
밤까지 술을 먹고, 조금이라도 깨려고 근처 카페에 왔다.
친구들과 함께 주변에 민폐가 될 정도로 떠들고 있던 중, 귀를 스치는 음악이 들려왔다.
좋다.
제목은 ‘롱 포’라고 했다.
“어?”
“혜영이 왜?”
“소녀연맹…… 신아름 있네?”
“신아름이 누군데?”
“나 중딩 때 있어.”
찾아보니, 엄청 유명하다.
이후로도 길가에서 흔히 ‘롱 포’가 들려오곤 했다. 오랫동안 잠자던 질투가 몰려왔다.
‘참나. 존나 더럽게 살았던 년이 잘도 아이돌이 됐네.’
못 봐주겠다.
그때, 임혜영의 머리에 프로젝트 포유가 떠올랐다. 학폭 논란 한 번에 뒤집어졌던 년들이다.
‘그래. 권선징악이라잖아. 신아름 너도 당해야지.’
과거의 기억은 더러운 감정이 묻어 형태를 바꾸었고, 임혜영의 기억 속에 남은 신아름은 둘도 없이 더러운 인간이 되었다.
‘어디 보자. 사람들이 제일 많은 게시판이.’
‘결혼, 시집, 친정’이란 게시판이었다.
공론화가 필요한 글이 가끔 카테고리를 뚫고 올라오는 곳이었다.
임혜영도 SNS에서 이 사이트로부터 건너온 글을 자주 보곤 했다.
‘신아름 중학생 때…….’
그녀는 킥킥 웃으면서 글을 적었다.
과연, 적은 이후 즉시 반응이 왔다.
언론, 커뮤니티, 아이튜브.
사람들은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도 없이 신아름을 죽일 년으로 바꾸어놓았다.
‘죽어라 쓰레기년아’라는 DM(SNS 메신저)을 신아름에게 보냈다며 자랑스럽게 인증하는 사람들.
신아름의 기사 댓글로 능지처참을 하라거나, 길거리에서 발가벗기고 사과하게 하라는 사람.
징역 20년은 주라며 정의구현을 외치는 사람.
정말 온갖 사람들이 튀어나와 신아름을 욕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임혜영은.
‘쓰레기년, 이대로 사회에서 매장당해라.’
이전부터도 그랬지만, 마치 그게 진실인 양 믿고 신아름의 몰락을 기뻐하기만 했다.
* * *
“안 돼?”
[…….]
홍규헌의 물음에 핸드폰 너머에서 한숨이 들려왔다.
밀폐된 방을 울리는 듯 무겁고도 차분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규헌아. 오랜만에 연락 와서 한다는 말이 도와달라는 거야? 가족 모임도 잘 안 오더니.]
“한 번만 도와줘. 다음엔 내가 알아서 할게. 근데 진짜 중요한 거라서 그래.”
[나 한 시간 고용하는데 얼마인지는 알지? 아니, 상담 한 시간도 못 하는 사람이 가득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오, 오빠야……. 한 번만…… 응……?”
상대편, 홍규헌의 둘째 오빠인 홍서헌이 입을 닫았다.
그는 오랜 침묵을 지키고, 한숨을 쉬더니.
[다음 가족 모임에는 꼭 나오고. 나중에 밥 사.]
“응 그럴게. 고마워!”
[얘가 사회에 나가더니 이상한 것만 배워와선…….]
전화가 끊기자마자, 홍규헌은 미소로 가득했던 표정을 되돌렸다.
그녀가 혀를 찼다.
“씨…….”
학생 때 하려던 짓 다시 하려니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해버렸다.
부끄러워서 다시는 못할 것 같다.
‘박 이사랑 한 이사가 그랬지.’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마지막이 되도록, 가로 엔터의 판단력과 실행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신아름을 위해서.
“…….”
홍규헌은 자신의 앞에서 눈물을 쏟던 신아름을 떠올렸다. 홍규헌의 얼굴이 애처로움으로 물들었다.
‘빨리 끝내야 해.’
그럼 적당한 변호사를 가로 엔터의 재정 상황에 맞게 쓰는 것보다, 오빠인 홍서헌의 도움을 빌리는 게 낫다.
가족의 정으로 도움을 받는 건 미안하지만.
‘확실하니까.’
* * *
어느 고등학교의 빈 교과 협의실.
성필은 중학교 3학년 때 신아름의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과 면담 중이었다.
“아유, 저도 보고 놀랐어요.”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쓸어냈다.
“페이스룩에 뜬 거 보고 흠칫했거든요. 아름이가 결국…….”
“…….”
“저, 저야 아름이가 천성이 착한 애니까. 안 그럴 거란 걸 믿었지만요. 네, 그랬지만요. 어쨌든 글을 쭉 읽어보니까 제가 담임 맡았을 때 이야기더라고요.”
신아름은 그런 애가 아닌데?
물론 담임인 그에게 조금 사납게 대하긴 했지만…… 그는 이해한다고 말했다.
“편부모 가정인 아이들이 그런 경우가 있거든요. 셋 중 하나예요. 선생님이나 주변 친구들의 애정을 더 바라거나, 아니면 아예 주변에 대한 관심을 끊거나, 그것도 아니면 일탈하거나…….”
신아름은 두 번째 경우였다.
관심과 애정에 대한 기대를 전부 저버리고, 사막 중앙에 꽂아둔 튤립처럼 시들어가는 아이.
“저도 아름이랑 친해져 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요. 제가 그땐 초임이고 경험도 많이 없다 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아직 저 자신도 교사가 되기엔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참, 아름이한테는, 미안한 마음뿐이네요…….”
지금은 밝고 건강하게 자랐다고 하니, 담임의 표정이 그나마 좋아졌다.
“불쌍…… 이라고 말하면 어감이 이상하지만. 그것밖에 표현할 단어가 없네요. 아름이, 불쌍했어요.”
교사는 학기 초나 중반에 학생의 교우관계를 조사한다. 학생 지도를 위해서였다.
그때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나 면담을 거쳐, 대충 학생들이 누구와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추리한다.
예를 들어, 누구의 생일에 초대받고 싶은가.
가장 친하게 지내고 싶은 학생은?
가장 친하지 않은 학생은?
이런 설문지가 돌려진다.
신아름의 이름은 부정적인 질문에서 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름이는 애들이랑 잘 못 지냈어요. 친구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한 번뿐인 중학교 생활을 좀 잘 보냈더라면…….”
담임은 말이 많았다. 주로 후회였다.
신아름에게 더 관심을 쏟아줄걸, 그런 종류의 후회.
성필이 처음 했던 질문, 신아름의 학창 생활이 어땠느냐에 대한 대답으로썬 약간 부족했다.
하지만 담임의 진심에 담긴 답변은 단순한 증언보다 더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성필은 면담을 마치고 스마트폰의 녹음 기능을 껐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유, 아니요.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저, 그리고 혹시 가능하다면 그때 학생들 번호라던가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안 되면 SNS 계정이라도요.”
“그건…… 힘들겠네요. 개인정보 쪽으로.”
“알겠습니다.”
만약 당시 학우들의 증언도 얻을 수 있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옹호글이 올라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신아름 폭로글이 퍼진 뒤, 그녀를 옹호하는 글이 하나 올라왔었다.
중학교 3학년 때의 반장이라고 했다.
신아름이 학교생활을 성실히 했던 건 아니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는 주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 사정 때문에 겉돌던 아이였다.
이런 비방은 그만둬줬으면 좋겠다.
정갈하고 깔끔한 글이었다. 본인의 신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드러나기도 했다.
“…….”
성필은 교문을 나오며 이를 악물었다.
‘아름이가 상처를 많이 받았겠지.’
신아름은 홍규헌과 면담을 진행했다. 그러자 신아름은 폭로글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하는 말이라곤.
“잘 모르겠어요. 저, 그때 정말, 주변에 보이는 게 없어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모르겠……. 주변 애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고…….”
신아름은 오히려 본인을 탓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주변에 눈을 돌리기엔, 자신의 상처만 핥는 것도 힘겨운 아이였으니까.
폭로글에 적혀 있던, 그런 정도가 심한 짓들을 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학우들이 불량하다고 느꼈어도 어쩔 수가 없다고.
필요하다면 사과문도 올리겠다고. 아니, 아예 영상을 찍어서 허리라도 숙이겠다고.
그리 말하며 울었다.
“이사님 죄송해요 저 때문에. 제가 잘못해서, 제가 그때…… 잘못해서어…….”
소녀연맹을 위해서라면, 신아름은 폭로글을 올린 사람의 집까지 찾아가 절이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성필은 물론 가로 엔터 직원 전부, 그리고 멤버들까지 달려들어 신아름을 달랬었다.
그때를 떠올리니 분노가 뇌를 뚫고 나올 듯했다. 성필은 간신히 감정을 추스르고 회사로 갔다.
“아름이는 어때?”
성필의 질문에 백설하가 고개를 저었다.
신아름은 숙소에 가만히 누워 있다고 한다.
“……그래. 설하야, 아름이 잘 부탁해.”
“네.”
성필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방금 만나고 왔던 선생님의 SNS를 찾았다.
그리고 친구 목록을 하나씩 타고 들어가서, 중학교 3학년 때의 인연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저녁, 성필은 노가다에 가까운 노력으로 목록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안에 폭로글을 올린 사람이 있는 건가. 있을 확률이 높겠지.’
만약 이 사태가 진화(鎭火)되지 않는다면, 한 명씩 찾아가서 애원할 자신도 있었다.
제발 해명을 부탁한다고.
그러다가 폭로글을 올린 사람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그만하자. 나쁜 생각 해도 도움 되는 건 없어.’
법적 대응은 홍규헌과 한구인이 알아서 하고 있을 테니까.
가로 엔터의 입장문으로 올림으로써, 퍼진 불을 조금 끄는 효과도 있었다.
‘폭로글 올린 인간이 인정 안 하고 지루하게 끌면…… 여론을 돌이키기 훨씬 힘들 텐데.’
‘롱 포’의 음원 차트 순위가 조금씩 내려가고 있다.
이번 미니 앨범은 소녀연맹이 더 위로 도약할 수 있는 확실한 발판이었는데, 이런 악재가 닥치다니.
무엇보다 신아름이 걱정이다.
‘내일 일 끝나면 저녁에 아름이 보러 가자. 기분 좋아지게 선물도 사고. 같이 식사라도 하면서. 조금이라도 나쁜 일을 잊게…….’
다음 날, 성필은 우울한 기분으로 출근했다.
“박 이사. 10시에 한 이사랑 어디 좀 가.”
“어디요?”
“폭로글 올린 사람 잡았어.”
‘찾았어’도 아니고 ‘잡았어’?
“이렇게 빨리요?”
* * *
“혜영아.”
임혜영은 점심이 지나고서야 눈을 떴다.
숙취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했다. 어제 너무 취해서 화장도 못 지우고 잤다.
“왜.”
“어떤 분이 너 찾아오셨는데?”
임혜영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현관에 나갔다.
그러자 보이는 건, 슬슬 더워진 날씨임에도 정장을 갑옷처럼 철저히 잠근 남자였다.
임혜영의 눈이 크게 뜨였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 때문이 아니라, 그의 중후하고도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본능적으로 그녀가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임혜영 씨?”
그의 말투에는 자그마한 짜증이 섞여 있었다.
자신이 왜 이딴 짓을 손수 발품 팔아 가면서 하고 있는지, 도저히 납득 불가능하다는 듯한 짜증이었다.
“네, 그런데요.”
“봐주시겠습니까.”
그, 홍서헌이 두꺼운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특이한 이름의 회사로부터 온 편지가 있었다.
‘유&김’ 법률사무소.
“기다리겠습니다. 천천히 읽어보시고 답을 주십시오.”
홍서헌이 문을 닫았다.
임혜영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바닥에 앉아 편지들을 뜯어보았다.
눈에 가장 띄는 단 한 단어.
고소(告訴).
그것을 보자마자 심장이 싸하게 굳었다.
* * *
성필과 한구인은 신아름을 데리고 목적지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성필은 고개를 저 위로 올렸다. 법과 돈으로 지어진 성(成)은 구름을 배경으로 고고히 서 있었다.
“사장님 오빠분이…….”
여기서 일한다고?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이상했다.
홍규헌의 형제자매는 전부 사업가인 줄 알았는데.
“홍서헌 형님은 사업보다 공부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법 쪽으로요. 이름으로 추측하셨을 수도 있으시겠지만, 원래 사장님의 부친께선 사장님께 법 공부를 시키려 하셨습니다. 그 업(業)을 홍서헌 형님께서 대신 받아 가신 겁니다.”
“이름으로 어떻게 추측해요?”
“사장님의 이름 한자가 법 규(規)에 법 헌(憲)이십니다. 모르셨습니까?”
전혀 몰랐다.
그럼 다른 형제자매들도 이름에 따라서 가업이 정해져 있단 걸까?
‘이전에 투자해주겠다며 찾아오신 홍지헌 사장님은 그럼…….’
도서 유통사와 출판사를 경영한다고 했으니, 홍지헌의 ‘지’는 종이 지(紙)일까?
“이제 들어가시죠.”
성필은 한구인의 뒤를 쫓았다. 신아름의 손을 꼭 쥔 채로.
“안내하겠습니다.”
홍서헌의 파트너 변호사란 젊은이가 둘을 위층으로 안내해주었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사무실의 앞이었다.
멋들어진 명패에는 ‘홍서헌’이라 적혀 있었다.
얼마 안 가, 문이 열렸다.
“거참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우리 애가 해도 없는 얘기를 했겠어요!”
짜증과 분노가 잔뜩 서린 남자의 고함을 배경으로, 홍서헌이 피곤한 얼굴로 사무실에서 나왔다.
문이 닫히기 직전, 성필은 문틈으로 세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다.
젊은 여자, 임혜영. 그리고 부모로 보이는 남녀다.
홍서헌이 문을 닫았다.
“구인아.”
“형님, 오랜만입니다.”
“그래. 규헌이한테 자주 오라고 좀 해줘.”
“알겠습니다.”
한구인과 인사를 마친 홍서헌은 성필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홍서헌 변호사입니다. 규헌이 오빠 되는 사람입니다. 박성필 이사님?”
“처음 뵙겠습니다. 박성필입니다.”
성필은 신아름의 손을 쥐고 있던 오른손을 빼고 그와 악수했다.
“빠르게 끝내겠습니다. 이걸 봐주십시오.”
홍서헌은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대본이었다.
어떤 말을 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가 간결히 적혀 있었다.
“정확히 30분 뒤에 나오겠습니다. 이걸 외우시고, 정확하게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이후로도 홍서헌은 여러 설명을 해준 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30분 후, 천천히 문이 열렸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홍서헌은 문을 닫고는 임혜영이 했던 말을 들려주었다.
결과는, 임혜영이 폭로글이랍시고 써 두었던 건 전부 거짓이었다.
“이제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대본은 다 외우셨을 거라고 믿습니다.”
홍서헌이 다시 문을 열었다.
“들어오시죠, 아름 양.”
성필과 한구인, 신아름이 홍서헌의 안내에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문이 열렸을 때와 같은 소란은 없었다.
젊은 여자, 임혜영과 그 부모들은 응접 공간의 의자에 죄인처럼 앉아 있었다. 무릎에 손을 모으고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무슨 말을 들은 거야?’
대체 30분 동안 어떤 말을 들어야, 목에 핏대를 세우고 화내던 인간들이 저렇게 온순해진단 말인가?
“이렇게 처리할 생각입니다.”
대본대로, 성필은 홍서헌에게 서류를 받았다.
그곳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지만, 임혜영과 그 부모는 알 도리가 없었다.
성필은 대본에 적혔던 말을 그대로 읽었다.
“이건, 너무, 심한…….”
세 사람의 어깨가 지진이 난 것처럼 떨렸다.
이어서 성필은 서류를 한구인에게 넘겼다. 그는 서류를 보고 인상을 찌푸린 뒤, 신아름에게 넘겼다.
신아름은 임혜영을 직접 보자 불안이 가득 차올랐으나, 연기는 충실히 해냈다.
“아름아, 어떡할래?”
성필의 질문에.
“네, 네. 이렇게 해주세요.”
그 순간.
“얘, 얘야…….”
임혜영의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비굴한 눈빛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