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55화 (155/760)

155화

“네 눈 속 추악함마저 사랑해.”

리카는 사랑을 노래했다.

그 사랑의 형태는 집착.

상대의 추악함을 모두 꿰뚫어 보았음에도,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매력에 달라붙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리카의 표정은 비굴하지 않았다.

비를 맞은 듯 착 가라앉은 머리칼.

오랜 시간 빗속에서 방치된 것만 같은 창백한 안색.

무심코 동정심마저 일어날 듯 가녀린 모습인데도, 리카는 미소 짓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에서 욕망이 보인다.

“알 수밖에 없어.

인간 이하인 너를.

널 잡으려면.

나도 떨어져야 해.”

목소리 한 조각.

행동 하나.

심지어 흔들리는 머리칼 하나조차도.

리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욕망의 형상으로 빗어낼 수 있었다.

‘애가 아니야.’

리카는 어린애가 아니다.

지금까지도, 그녀를 본 지 3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성필은 아직도 리카를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무리 주변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해도 성필에게 리카는 항상 애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부터는 아니다.

“날 가질 수 있는 넌, 인간.”

성필은 인정했다.

“이상이거나 이하야.”

리카 스스로가, 자신이 계단을 올랐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 * *

[인간 이상이거나 이하야.]

스피커 소리를 줄이고 싶었다.

어떻게 목소리가 이토록 관능적일 수 있을까.

백수현은 자신이 이런 것을 보고 있음에 무의식적인 창피함을 느꼈다.

화면에 비치는 대상이 친누나임에도.

[인간 이상이거나 이하야.]

백수현은 이 곡에 매료됐다.

‘누나.’

백수현이 사탕을 입에 물고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나이일 때에도, 누나인 백설하는 아이돌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어릴 때는 그런 누나가 마냥 자랑스러웠다.

누나는 유명한 사람이 될 거니까, 친구들에게 자랑도 많이 하고 다녔다.

‘언제…….’

백설하가 처음 속했던 그룹의 컨셉은 청순과 귀여움이었다.

수줍은 사랑과 나이대다운 발랄함을 마음껏 표현했다.

백수현은 그런 누나의 모습도 좋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봐 왔던 누나와 다르지 않았으니까.

자신이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했던 누나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게 된 것이 그저 좋았다.

그런데.

‘언제 이렇게 변한…….’

지금 화면에 비친 백설하는 전혀 달랐다.

대체 어떤 경험을 해온 것일까.

짐작도 할 수 없는 감정의 밑바닥을, 백설하가 노래로 여실히 표현하고 있었다.

스탠드 마이크를 쥔 그녀의 손길은 자신에게 굴복한 남자의 턱을 쓰다듬는 듯했다.

오만함.

그녀가 가진 힘, 자신의 매력을 아는 데서 오는 오만함이 흘러나오고 있다.

[인간 이상이거나 이하야.]

백설하의 노래가, 음색이, 백수현의 귓가를 파고든다.

단순히 고막을 진동시키는 게 아니라, 가장 깊은 뇌 속까지 강제로 찔러 들어오는 듯했다.

이건 백수현이 아는 누나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인정해야만 했다.

‘아이돌.’

백설하는 아이돌이다.

아이돌이 됐다.

음악과 춤으로 만인을 매료시키는 현대의 영웅이 됐다.

이 순간만큼은, 백수현은 백설하가 자신의 누나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아이돌을 보고 있었다.

수많은 타인과 마찬가지로, 백수현은 순수하게 아이돌에게 매료당했다.

* * *

김채현은 이게 대체 뭔가 싶었다.

‘하양이가…….’

김채현이 알고 있던 장하양과 전혀 다르다.

나긋나긋하고 기품 있는 장하양은 사라졌다.

그녀는 외치고 있었다.

야성적으로 상대의 사랑을 갈구하며, 자신에게 사랑을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백설하가 스탠드 마이크를 사선으로 눕혀 그것을 자연스레 오른쪽으로 넘긴다.

장하양이 그것을 넘겨받는다. 그리고 스탠드 마이크를 똑바로 세운 뒤, 검지로 마이크를 내리긋는다.

그 손길은 섬세했다.

섬세하게, 유혹한다.

“아.”

김채현은 응원 구호마저 잊어버리고, 다만 ‘아’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뛴다.

심장의 가장 안쪽으로부터 간질거림이 몰려온다. 그 느낌은 핏줄을 타고 퍼져 뇌에 도달하고,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눈으로.

“아…….”

너무 멋지다.

너무 예쁘다.

너무 매력적이다.

너무, 너무, 그래서, 김채현의 눈가가 젖었다.

감동이 즉각적으로 눈물로 변환했다.

이 감정이, 아니.

사랑이 뿜어져 나온다.

장하양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게, 너무나도 행복해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했다.

“아아…….”

마치 옛날에 좋아했던 보이그룹의 콘서트 무대를 보았을 때 같았다.

동성 아이돌과 이성 아이돌은, 아무리 똑같이 좋아한다 해도 몰입의 정도가 다르다.

김채현이 소녀연맹을 좋아한다곤 하지만, 옛날에 좋아했던 보이그룹처럼 전적인 몰입은 불가능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언니이…….”

장하양은 마이크를 쓸었던 손, 그쪽 손의 옷 소매를 빠르게 털었다.

어느새 그녀의 손에 장미가 잡혀 있었다.

그것을 미련 없이 하늘로 날려 보내며, 그녀 또한 고개를 위로 든다.

장하양의 새하얀 목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위에서 아래로 쓴다. 동시에 고개를 아래로 천천히 내린다.

아까 하늘로 날려 보냈던 꽃, 그곳에서 뿔뿔이 흩어진 꽃잎이 바람을 타고 흩날린다.

장하양은 꽃 속에서.

“날 가질 수 있는 넌.”

새끼손톱보다 작게 내민 혀로 아랫입술을 핥더니.

“인간 이상이거나 이하야.”

나라마저 기울게 만들 아름답고도 퇴폐적인 미소를 보낸다.

미소와 함께, 장하양은 스탠드 마이크의 다리를 잡고 뒤로 홱 넘겼다.

그 모습은 마치 땅을 점령하고 깃발을 세운 정복자와 같았다.

이윽고, 김채현은 환호를 보내는 것 외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 * *

[…….]

정적.

동시에 유용태도 침묵했다.

지금껏, 무대의 배경은 형형색색 조명으로 모습을 바꾸었었다.

바닥과 벽을 덮은 흰색 천은 도화지처럼 각약각색으로 물들었었다.

하지만 장하양이 스탠드 마이크를 뒤로 넘김으로써, 이제는 완전한 검정이다.

바통을 받듯 신아름과 조아라가 앞으로 나왔다.

이제껏 사방을 채웠던 밴드 사운드와는 전혀 다른, EDM이 댄스 브레이크의 시작을 알렸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신아름이 조아라의 턱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러자 조아라가 고개를 돌리며 그녀의 손길을 털어낸다.

“오오오……!”

유용태는 온몸에 듣는 소름 때문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만약 방음이 약한 원룸이 아니었다면, 기쁨에 몸서리치며 마음껏 소리를 질러댔을 것이다.

댄스 브레이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조아라와 신아름은 마치 몸이 연결된 것처럼 완벽히 같은 춤을 구사했다.

기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조화였다.

“아, 으아.”

유용태는 기쁨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책상 팔걸이를 부서져라 내려치는 것이었다.

도저히 흥분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강렬한 베이스에 따르는 춤.

그 기세와 힘이 화면을 뚫을 듯하다.

그녀들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재킷과 머리칼이 한여름 밤의 아지랑이처럼 솟아오른다.

고작 7초.

춤으로만 유용태를 완전히 매혹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미쳤다 진짜. 아름이 돌았어…….”

아티스트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다.

곧, 두 사람은 조화를 버리고 양옆으로 떨어진다.

신아름이 뒤로 빠르게 돌아 손을 뻗는다. 그리고 당겼다.

조아라는 갑자기 자신의 목을 쥐고 고통스럽단 듯 몸을 흔든다.

신아름에게서 멀어져 가던 것을 멈추고, 조아라는 목줄에 채여 끌려가듯이 신아름에게 다가간다.

유용태는 진짜 신아름이 목줄이라도 당기고 있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그야, 두 사람의 합과 연기가 완벽했으니까.

당연하지만 줄 따위는 없었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허공뿐이었다.

마침내 신아름은 한 손으로 조아라를 안는다.

조아라는 그녀를 뿌리쳤으나, 그럼에도 신아름은 포기하지 않은 듯 뒤에서 조아라의 턱을 잡았다.

[Are you ready for me?]

속삭이는 목소리.

그와 동시에, 조아라가 고개를 살짝 틀어 신아름의 손길을 쳐냈다.

조아라가 입꼬리만 살짝 올려, 웃었다.

‘이건, 이건 이미.’

댄스라는 영역을 벗어났다.

춤과 노래를 구겨 넣기 바쁜 아이돌 안무에, 심지어 댄스 브레이크에 연기를 도입하다니.

이건 연기다, 예술이다…….

그리 생각한 유용태의 판단은, 그 자신은 알 수 없었지만 매우 정확했다.

컨템포러리 댄스.

춤의 순수함을 버리고 노래와 연기, 영상과 배경 소품마저 춤과 동등한 비율로 활용하는.

현대의 최첨단을 달리는 댄스 조류다.

조아라가 미국에서 배워왔던 컨템포러리 댄스의 정수가, 방금의 안무에 담겨 있었다.

유용태는 입을 꾹 다문 채 생각했다.

자신의 흔들림 없는 최애는 신아름이지만, 이 순간부터 차애는 조아라다.

* * *

“우리, 이번에도, 잘 안 되면…….”

포유의 멤버 중 한 명이 연습 도중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를 응시했다.

효민은 한숨을 쉬고 그 멤버의 앞으로 다가갔다. 멤버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그렁그렁한 눈물을 눈가에 달고 있었다.

리더로서 사기를 떨어뜨리는 말을 하는 사람은 혼내야만 했다.

“아니야. 잘될 거야.”

혼내는 대신, 효민은 그 멤버를 안아주었다.

멤버는 눈물을 터뜨렸다.

곧 다른 이들도 참고 있던 불안과 슬픔을 표현했다.

효민은 돌아가면서 멤버들을 안아주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 생각을 하는 건 효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리더니까, 팀을 이끌어야 하니까, 본심을 숨긴 채 팀원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사기를 유지하는 것도 한계였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배경으로 데뷔했음에도 고작 초동 4,000장.

처참한 성적이다.

계약된 1년의 활동 기간마저 채울 수 있을지 없을지 불분명하다.

‘이젠 아름이를 쓸 수도 없어.’

학폭 사건이 터지고, 학폭 멤버가 방출되고, 포유가 사람들의 씹을거리로 전락하고.

효민은 포유의 멤버들을 결합하기 위해 신아름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아름이가 잘못한 거야.’

우리는 성공할 테니까.

‘걔도 후회할걸?’

우리는 성공할 테니까.

적을 만들어 집단을 유지하는 건 언제나 잘 먹히는 방법이다.

포유도 그렇게 간신히 학폭이란 바람을 몰아내고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신아름 걔, 방송에서는 우리좌니 뭐라니 불렸어도. 결국엔 안 될 거 같으니까 제일 먼저 꼬리 뺏잖아?’

아름아 미안해.

‘비겁한 애야. 천벌 받아야지.’

아름아 미안해.

‘우리가 잘되는 게 맞아. 그치?’

아름아 미안해.

효민은 신아름을 희생양으로 삼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녀가 프로젝트 포유의 최종 선발에 오를 수 있던 건 신아름의 덕이 컸으니까.

신아름이 멘탈을 잡아주고, 팀을 리드하고, 연습과 지도를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효민은 말석에라도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넌 팀을 나가서까지 나한테 도움만 주는구나…….’

고마운 마음뿐이다.

‘너는, 나보다, 훨씬 높은 곳에, 올라있으면서…….’

아니,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신아름을 적으로 삼으며, 효민도 정말로 신아름을 미워하게 돼버렸다.

‘우리가 망할 거 같으니까 가장 먼저 꼬리를 뺀…… 나쁜…….’

나이가 많단 이유로 맡게 된 리더 자리는 효민에게 너무도 무거웠다.

게다가 이제 신아름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도 더는 통하지 않았다.

소녀연맹의 초동판매량은 10,000장이 넘었으니까. 효민의 말과 다르게, 신아름은 천벌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옳았단 듯이 성공을 선물해주었다.

포유, 초동판매량 4,000장.

변변찮은 프로모션도 없던 소녀연맹과 비교하기 부끄러울 수준이다.

“얘들아.”

컴백 이틀 전.

김명운 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케이크를 들고 연습실을 찾았다.

식단과 체형 관리에 엄격한 김명운이, 예쁘게 데코레이션된 주문 제작 케이크를 가져온 것이다.

그의 눈가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컴백, 힘내자.”

김명운은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외쳤다.

촛불을 8개 꽂고, 포유에게 끄라고 했다.

포유는 바람을 훅 불렀다.

촛불이 꺼졌다.

“이번에 일 한 번 내보자!”

짝짝짝.

직원들과 멤버들의 박수.

그리고.

“흑.”

눈물.

한 번 쏟아진 눈물은 막을 수 없었다. 한 명을 시작으로, 포유의 사이에 슬픔이 지나갔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왜 우는지는 알 수 있었다.

‘우리 성공할 수 있어요?’

그렇게 묻고 싶었으리라.

그리고 김명운에게서.

‘물론이지!’

란 말을 듣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김명운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아무런 말도 없었다.

울음은 밤을 타고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다.

“우리 초동판매량 19,000장이야!”

김명운이 밤에 숙소로 쳐들어와서 그렇게 말해주었다.

유통사 직원에게 미리 결과를 들어온 것이었다. 멤버들은 현관으로 몰려들어, 울었다.

9일 전과 다른 의미의 울음이었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다들 김명운의 앞에서 감사와 눈물을 뿜기 바빴다.

김명운의 눈가도 젖어 들고, 어느새 그는 어른의 위신조차 버리고 흐느꼈다.

사력을 다했다.

SMS 엔터에서 쌓은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서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인플루언서, 이슈 아이튜버, 바이럴 마케팅 업체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하고, 모회사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돈을 얻어내고, 마침내 포유를 띄웠다.

매니지먼트의 승리, 라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다 너희들 덕분이야. 고마워…….”

하지만 김명운은 본인을 띄우는 대신 포유의 멤버들을 칭찬했다.

“너희들.”

포유(For you).

“덕분이야.”

너희들 덕분에 힘낼 수 있었어.

정말, 고맙다.

김명운과 포유의 진심이 얽혀 그날 밤은 많은 눈물이 흘렀다.

이틀 뒤, 포유는 음방 출연을 위해 방송국으로 향했다.

컴백 2주 차였다.

“언니 어디 가요?”

“아, 잠시 산책 좀.”

거짓말이다.

효민은 소녀연맹의 사녹 무대를 보기 위해 스튜디오로 향했다.

눈에 띄지 않도록 구석에 숨어 소녀연맹의 무대를 기다렸다.

마음이 가볍다.

‘초동 19,000장…….’

그 엄청난 성과는 효민의 가슴속에서 초조함을 지워버렸다.

세상이 넓어진 듯하다.

지금이라면 아무런 열등감 없이 신아름을 응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효민은 마음속으로 여유롭게 응원했다.

‘아름아, 잘해야 해.’

그 생각이 뒤바뀌는 데는 1분이면 충분했다.

곡이 너무나 좋다. 춤이 너무도 멋지다.

특히 댄스 브레이크.

춤과 연기를 병행하는 신아름은 이미 효민이 알던 수준이 아니었다.

자신과 비교해서도 아득히 멀리 떠나가 있다.

아니, 포유와 비교해서도 소녀연맹은 그녀들이 따라잡을 수준이 아니었다.

“…….”

효민의 가슴속에서 다시금 열등감이 자라난다.

그것은 질투였다.

신아름이, 소녀연맹이 자신들을 넘었단 사실에서 오는 질투.

‘어째서…….’

우리는 죽을 각오로 노력했는데도, 너희들은 항상 앞에 서 있는 거야.

텔레비전에 나왔어? 라디오에 나왔어? 마케팅과 프로모션을 잘 받았어?

아니잖아.

‘그런데 어째서…….’

효민은 엔딩포즈를 취한 소녀연맹, 아니.

신아름을 보면서 자신을 원망했다.

신아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계속해서 원망했다.

효민이 쌓아온, 억지로 만들어낸 신아름에 대한 원망마저도 외면하지 못할 사실.

누가 뭐래도, 신아름은 아이돌이다.

우상(IDOL)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무심코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자신이, 효민은 미워지기 시작했다.

소녀연맹은 확실하게 포유를 넘어섰다.

* * *

리카가 사무실 문을 빼꼼 열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성필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재빨리 아이튜브에 접속해서 ‘롱 포’의 음방 직캠 영상을 켰다.

‘3분 23초!’

조아라가 치명적인 미소를 짓는 부분이었다.

‘아라쨩 세쿠시(섹시)!’

캡처를 뜬 뒤 이미지 파일로 저장하고 바탕화면으로 만들었다.

리카는 키킥 웃으면서 사무실을 나갔다.

잠시 후, 성필이 다른 직원들과 커피를 든 채 사무실로 돌아왔다.

곧, 그들의 눈이 성필의 모니터 화면으로 향했다.

“…….”

성필은 뻘쭘하게 서 있다가 간신히 말했다.

“나 아니야.”

“성필아. 우리, 애들 편애는 하지 말자. 바탕화면으로 해두려면 단체 이미지로 하든가.”

“형 좀 심하네요. 이거 밝혀지면 애들끼리 또 싸울 거예요.”

“박 이사님…….”

한구인은 말을 잇지 않고 그냥 고개만 저었다.

성필은 책상에 무심히 커피를 올려두고, 연습실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갔다.

“야 조아라!”

“아 깜짝야 진짜……. 왜 매일 나 부를 때 놀래키냐고요…….”

“너 예쁜 거 알겠으니까 장난 좀 작작 쳐!”

“뭐, 므, 뭐, 뭐라는 거예요 갑자기 와서?!”

“너 매력적인 거 세상 사람들 다 아니까 제발 이런 장난 좀 치지 말라고!”

“뭐, 뭐, 뭔…….”

“아라쨩 섹시!”

곧 범인이 밝혀졌다.

리카는 벌을 받았다.

“이게 뭔가요!”

리카의 핸드폰 바탕화면이 성필과 한구인의 사진으로 바뀌었다.

조아라의 의견이었다.

“너도 사람들한테 오해 좀 받아봐야 해.”

“……두 분이 함께 찍은 사진이라니. 귀하네요. SNS에 올려야징.”

“안 돼!”

다시, 리카의 핸드폰 배경화면은 홍규헌으로 바뀌었다.

사진 속의 홍규헌은 똥 씹은 듯한 표정이었다.

방금 사장실로 가서 사진 찍는 이유를 설명해주니 저런 표정을 지었다.

“사장님 카와이(귀여워)!”

리카는 편집 앱을 이용해 홍규헌의 사진을 이리저리 바꾸었다.

홍규헌은 자기도 모르게 개구리 모자를 뒤집어쓰고 분홍색 볼터치까지 당했다.

“오…….”

“귀엽죠? 이사님한테도 보내드릴까요?”

받았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홍규헌이 있었다. 성필은 그녀를 보자마자 흠칫했다.

“박 이사 왜 이렇게 놀라. 내가 여기 있는 게 이상해?”

“아, 아니요.”

5시 58분.

임직원들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데뷔 때보다 훨씬 발전한 모습이다.

그때는 광기의 도가니였는데, 지금은 그나마 사람의 모습은 유지하고 있다.

“떴다.”

각종 음원 사이트에 음원이 뜬 것을 확인했다.

또한 아이튜브와 SNS의 홍보 포스터, 앨범 판매, 뮤비도 제대로 등록되었다.

“오케이. 이번에는 유통사들이 시간을 지켰네. 자, 그럼.”

임직원들은 핸드폰의 음원 어플을 켜서 반복 재생을 시작했다.

“조금이나마 보탬이 돼야지.”

그들은 배달 음식을 먹으면서 초조한 1시간을 보냈다.

7시. 성필이 자장면을 이빨로 끊어내고 순위를 확인했다.

“93위 진입이요!”

“하하, 시작이 좋네.”

데뷔 때는 98위로 진입했었다.

다들 서로 껴안으면서 괴성을 질러댔었는데, 이번에는 평온했다.

문밖에서 멤버들이 꺄악거리는 소리만이 가볍게 들려왔다.

얼마나 목소리가 크면 연습실에서 사무실까지 들릴까.

홍규헌은 피식 웃었다.

“다들, 이번에도 고생했어. 오늘은 남고 싶은 사람만 남고, 나머지는 퇴근해도 좋아.”

“그거 그냥 남으란 뜻이죠?”

“아니거든. 진짜 가도 돼.”

“다들 속지 마세요! 진짜 가면 블랙리스트 등록돼서 연봉협상에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어요!”

홍규헌이 민경섭의 등을 때렸다.

“정말 가도 돼. 다들 사생활 좀 즐겨.”

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진짜 가도 된다니까!”

“저희도 같이 보고 싶어서 그러죠.”

과연 ‘롱 포’가 몇 위까지 올라가는지.

“8시에 차트 광탈되면 퇴근할게요.”

홍규헌이 성필의 등을 강하게, 아주 강하게 때렸다.

말이 씨가 된다고, 그런 말은 입 밖으로 내어서도 낼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

8시.

“81위예요!”

이번에야말로 다들 마음껏 기뻐했다.

“이야, 역시 팬덤이 생기니까 다르구나. 스밍 열심히 돌리나 봐.”

“그러게요. 인민들 결집력은 증명됐어요.”

“초기에 이렇게 팬을 모으기도 쉽지 않은데……. 우리가 잘되긴 했나 보다.”

아까와 분위기가 달라졌다.

싱글벙글 소녀연맹 커뮤니티를 돌아다니거나, 가볍게 딴짓을 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리고 9시.

“75위요!”

“꽤 올라가네.”

10시.

“61위.”

“어?”

11시.

“사, 사십, 45위…….”

“…….”

홍규헌이 입을 막고 눈동자를 굴렸다. 그 시선을 받은 성필은 몸이 굳었다.

아니, 시선을 받아서 굳은 게 아니라 원래 굳어 있었다.

다들 똑같은 상태였다.

“오류…… 난 거 아니야? 45위는…… 장난으로라도, 스밍 총공이 있더라도, 그냥 오를 수 있는 순위가 아니잖아…….”

이제 앨범 두 장째인 중소 기획사의 걸그룹, 소녀연맹.

11시 현재 차트 순위 45위.

“오류가 아니면…….”

12시.

“39위요…….”

가로 엔터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더는 멤버들이 기뻐서 내지르는 비명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녀들도 패닉에 빠진 듯했다.

39위.

“이건.”

성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파편화된 음성은 겨우겨우 언어로 이어졌다.

그 떨림으로 인해 성필의 충격이 모두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팬들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는 거예요.”

사람들?

“대중이 듣고 있어요.”

이유는?

“‘롱 포’. 대중들한테도 통합니다.”

프로듀싱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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