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여기요.”
성필은 글로브의 앨범에 소민의 사인을 받았다. 그리고 소중히 품 안에 넣었다.
“사인회 끝났잖아. 왜 다시 돌아왔어?”
“두고 온 거 있어서요.”
소민은 백스테이지로 가서 가방을 챙겼다.
“넌 아직도 허둥대는구나.”
“헤헤…….”
소민은 백팩을 질끈 매고 성필의 뒤를 따랐다.
“너 이쪽으로 가?”
“아, 아니요. 저도 모르게. 저는 반대쪽으로 나가야 해요.”
“응, 사인 고마워. 잘 가.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어.”
성필은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떠나려 했다. 그때 소민이 어렵사리 성필을 불렀다.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정도의 목소리로.
“어, 왜?”
하지만 성필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체스…… 오랜만에 두실래요?”
소민의 취미는 체스였다. 하지만 할 줄 아는 연습생이 없어, 가끔 성필이 같이 둬주었다.
물론 성필도 소민 때문에 배운 것이다.
항상 소민의 압도적인 승리였으나, 그녀는 그것마저도 질리지 않고 좋아했다.
“여기서? 판 없잖아.”
소민이 가방에서 미니 체스판을 꺼냈다.
문방구에서나 팔 법한, 플라스틱과 자석으로 만든 저가형 체스판이었다.
성필은 어이가 없어서 픽 웃고는, 그녀와 함께 복도 구석에 자리 잡았다.
“네가 선으로 해.”
“네.”
“오랜만이네.”
“네. 팀장님은 아직도 시실리안 디펜스만 쓰시네요.”
“이것밖에 몰라.”
“저 체스닷컴 레이팅 1800점 넘었어요.”
“그 정도면 프로 아니야?”
“헤헤, 프로는 아니고, 체크메이트요.”
“……미안. 너무 오랜만이라서 스콜라스 메이트 까먹었네.”
단 4수 만에 체크메이트 당해버렸다. 초심자가 자주 걸리는 수법이다.
여전히 가차 없는 아이다.
“헤헤, 다시 하면 되죠.”
“그래. 빠르게 다시…….”
성필의 눈이, 유리로 쳐진 난간 넘어 계단을 타고 오르는 한 남자에게 박혔다.
석세스 엔터 대표, 김태훈이다.
“이번에는 팀장님이 선으로…….”
“미안, 다음에 하자.”
“봐, 봐 드릴게요! 죄송해요. 오랜만이라서, 오랜만에 봐서, 신나서 바로 체크메이트를…….”
“그거 때문 아니야. 대표님한테 나 봤단 얘기 하지 마.”
“네?”
“소민아!”
뒤에서 김태훈의 목소리가 들리자, 소민이 그쪽을 보았다.
“대표님?”
“너 가방 가지러 간다면서 뭐 하는 거야! 체스판은 또 왜 펼쳤어?”
“여기에 박 팀…….”
앞을 보니, 성필은 없었다.
“어?”
“박 팀, 뭐? 박성필 팀장?”
“아, 아니요. 아니에요.”
“……넌 아직도 성필이만 찾는구나. 성필이가 여기 오기라도 할까 봐? 빨리 그거 접고 와. 애들 다 기다리잖아.”
“네, 네.”
소민은 급히 가방을 싸고 김태훈의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 불안하게 물었다.
“저희 잘했나요?”
“그래. 내가 늙은 몸 겨우 끌고 온 보람이 있었어.”
* * *
“박 이사 어디 갔다 왔어?”
“죄송합니다. 개인적이 일이 생겼었어요.”
“애들한테 말이라도 하고 가지. 저기 봐.”
홍규헌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리카가 눈총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다 같이 축하하는데 박 이사 없어서 좀 어색했단 말야.”
“제가 없으면 애들이랑 어색해질 정도예요? 제 역할이 크네요.”
“아니, 다 같이 노력한 건데 기쁨을 나눌 사람이 하나 없잖아.”
홍규헌은 다들 자리에 앉은 것을 보고 술잔을 젓가락으로 두드렸다.
주홍빛이 감도는 술집의 이목이 한쪽으로 쏠린다.
가로 엔터 임직원들, 멤버들, 공연 기획사 아틀라스의 직원들이 홍규헌을 보았다.
“예, 회식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멋진 무대를 준비해주고 꾸며주신 아틀라스 직원분들!”
아틀라스 직원들이 환성을 내질렀다.
사장인 조진만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술잔만 들고 있다.
“그리고 함께 소녀연맹을 프로듀싱하고 매니징한 가로 엔터 직원들!”
아틀라스에 질세라, 가로 엔터 인원들도 소리를 크게 질렀다.
아예 가게를 대절했기에,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문제없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믿고 따라준 소녀연맹!”
다섯 멤버들이 소심하게 ‘와아’ 소리를 냈다.
술집에서 소리 지르는 게 어색한 모양이다.
“이 자리는, 사실상 앨범 활동의 끝이나 다름없습니다. 앨범을 발매하고, 음방을 지나, 마침내 앨범 구성품의 종착역인 팬미팅까지 마쳤습니다. 이 회식엔 참석하지 못했지만, 앨범 제작에 참여해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자, 그럼.”
홍규헌이 술잔을 올렸다.
수십 개의 술잔이 올라갔다.
“위하여!”
수십 개의 ‘위하여’가 술집을 휩쓸었다.
“위하여가 뭐예요 위하여가.”
“조용해라.”
홍규헌이 부끄러운 듯 쏘아붙이며 자리에 앉았다.
“자, 우리끼리 또 건배해야지. 다들 잔 채워. 뭐야. 박 이사는 소맥 안 마셔?”
“네. 이번엔 진짜 정신 안 잃고 싶어요.”
“흐음, 그래?”
* * *
성필은 눈을 떴다.
말도 안 되게 부드러운 침대 시트와 이불의 감촉. 창문을 통해 은은하게 들어오는 햇볕.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디퓨저의 향기.
왠지 익숙하다.
절대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데.
“나 왜 이러냐 진짜아…….”
성필은 끙끙 앓으며 몸을 일으켰다.
침대가 출렁이고, 그 출렁임으로 인해 침대에 홀로 있는 게 아니란 것을 알았다.
혼자 있을 때와 시트의 무게감이 다르다.
성필은 방금 일어났음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옆을 보았다.
민경섭이 있다.
“……휴우, 다행이다.”
성필은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바닥에도 사람이 있었다.
정지음이었다. 그는 몸을 애벌레처럼 말고, 자고 있음에도 숙취로 끙끙대는 중이었다.
‘사장님 집까지 왔나 보네.’
어렴풋이 어제의 기억이 남아 있다.
취하지 않겠단 결심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성필은 미친 듯이 술을 마셔버렸다.
가로 엔터 직원들만 있었다면, 본인이 취한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만 마셨을 것이다.
문제는 소녀연맹 동생 라인이었다.
“아저씨! 내 첫 잔 받아요!”
조아라.
“팀장님 저 팔 떨어져요! 빨리 빨리!”
신아름.
“이게 사케다! 일본의 맛을 받아라!”
리카.
20살이 된 녀석들은 경쟁하듯 술을 퍼먹었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술을 뿌리고 다녔다.
그녀들에게 잔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성필은 훨씬 많이 받았다.
“머리 깨지겠네…….”
푸념을 하며 방을 나서니, 반대쪽 방문이 훤히 열린 게 보였다.
안쪽엔 소녀연맹 멤버들이 있다.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동생 라인은 침대에 서로 겹쳐져 자고 있었다.
언니 라인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뭉친 펭귄처럼, 서로를 안은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훈훈한 광경이다.
백설하의 티셔츠 속에 손을 넣은 채 잠들어 있는 손혜빈만 제외하면.
“끙…….”
거실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중, 갑자기 샤워실의 문이 열렸다.
머리칼이 젖은 한구인이 나왔다.
“깨셨습니까?”
“네. 한 이사님은 어제 많이 안 드셨어요? 멀쩡해 보이시네.”
“겉은 이래도, 머리는 깨질 것 같습니다.”
한구인도 동생 라인의 마수를 피해 가지 못했다.
그는 죽도록 사케를 받아마신 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술이 약한 장하양의 테이블로 도망갔다.
거기서부터가 진짜였다.
“제가 정말 도움이 된 겁니까?”
“그럼요. 한 이사님이 없는 가로 엔터는 상상도 할 수 없는걸요.”
“감사합니다…….”
과하게 취한 한구인은, 장하양의 인자한 아우라에 홀려 속에 묵힌 모든 말을 털어냈었다. 그리고 장하양이 주는 술을 넙죽넙죽 전부 받아 마셨었다.
장하양은 상대의 술잔이 비면 바로 채우는 게 예의라고 배웠기에, 한구인의 잔은 비는 시간이 없었다.
기어코 그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었다.
“씻으실 겁니까? 샤워실에 들어가기 전에 테이블 구석을 보면 손님용 세면도구와 옷가지가 있습니다.”
“음…….”
찝찝하기도 했으니, 실례를 무릅쓰고 샤워했다.
찬장을 여니 손님용으로 보이는 티셔츠와 속옷 같은 게 정말 많았다. 전부 똑같이 생겼다.
‘사장님은 손님을 자주 집에 들이나?’
원래 입던 옷을 넣으란 건지, 친절하게도 지퍼백까지 구비되어 있다.
성필은 그곳에 입고 있던 속옷을 넣어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복도는 침묵에 잠겨 있다.
성필은 거실로 나갔다.
테라스에 홍규헌이 앉아 있는 게 보인다.
“사장님.”
“어, 박 이사. 일어났어?”
“그렇게 드셔 놓고서 아무렇지도 않으시네요.”
“뭐어, 그런 편이지.”
성필은 홍규헌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난간 넘어 펼쳐진 서울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2년 전이었나.
그때도 다 같이 술을 먹곤 필름이 끊어져, 다음 날 홍규헌과 이 광경을 보았지.
모두 추억이다.
“식사입니다.”
한구인이 3인분의 식사를 가져왔다. 성필이 신기하단 듯 바라보니, 그가 싱긋 웃었다.
“시간에 맞춰 나오실 줄 알았습니다.”
“죄송하네요. 밥도 얻어먹고.”
“한 이사 말고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 집에 있는 걸로 만든 건데.”
셋은 옹기종기 테이블에 모여 앉아 밥을 먹었다. 뜨겁고 진한 커피로 속을 쓸어내고, 간밤에 비워진 배를 채웠다.
“한 이사 목표가 모든 음방 1위 하는 그룹이었지?”
“예. 아직 먼 것 같지만, 확실히 보이고 있습니다.”
“박 이사 목표는 최고의 아이돌이었고.”
“그건…….”
“박 이사가 말 안 해도 엄청 먼 거 알아. 아직 갈 길이 멀고 멀고,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지.”
“…….”
“근데 아예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아.”
최고의 아이돌.
홍규헌은 소녀연맹의 가능성을 긍정해준 것이다. 그 말이, 성필은 고맙기 그지없었다.
“사장님 목표는 뭐였죠?”
“벌써 잊어버렸다고? 말한 지 1년밖에 안 지났는데.”
데뷔 기한을 1년으로 정하고, 세 사람이 화이트보드 앞에 모여 서로의 목표를 정했던 때.
“1년이나…… 지났네요.”
“이게 말 돌리네. 나는 너네들 목표까지 다 기억하는데, 정작 이사라는 것들은 사장의 목표도 잊어버리고.”
홍규헌은 장난스레 혼내곤, 배시시 웃었다.
“나는 벌써 이룬 것 같아.”
내가 반할 수 있는 아이돌.
“고마워. 전부 박 이사랑 한 이사 덕분이야.”
이런 감정이 올바른지는 모르겠으나, 성필은 홍규헌의 그 말만으로도 지금까지의 고생이 보상받는 듯했다.
연봉 인상도, 보너스도 뭣도 없이 단순한 말뿐임에도.
그 옛날, 김태훈 대표와 함께 석세스 엔터에 있었을 때처럼. 석세스 엔터 최초의 그룹이 궤도에 올라갔을 때, 그가 해주었던 말처럼.
‘성필아! 우리가 해냈어! 다 네 덕이야!’
그때의 기억이 올라오자, 성필은 불쾌했다.
지금 홍규헌이 보내주는 신뢰는 그딴 것과 비교가 불가능하다.
성필은 그 기억을 머릿속 깊이 쑤셔 넣어버리고, 홍규헌에게 답했다.
“아니에요. 다 사장님 덕이죠.”
그 답을 들은 홍규헌도 미소 지었다.
위에 서는 자의 마음은 잘 모르지만, 성필은 생각했다.
아마 지금의 자신과 그다지 다르진 않을 것이라고.
* * *
“박 이사.”
“네.”
“박 이사가 데뷔 앨범 때는 정지음 곡에 꽂혀서 이거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어필했잖아.”
“그랬었죠.”
“지금은 안 그래?”
그땐 단 하나의 곡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지음이 만들었던 그 곡은 모래사장에서 빛나는 보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래사장 전체가 보석으로 이루어진 밭이었다.
정지음이 만든 모든 곡이 좋았다.
“빨리 골라봐.”
홍규헌이 은근히 성필을 재촉했다.
마치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문지르는 주인처럼 말이다.
“뭐가 가장 사랑에 어울려?”
미니 앨범 타이틀의 최종적 주제는 사랑이 됐다. 다만, 연인과의 사랑은 아니었다.
컨셉 회의 때 백설하가 냈던 의견 때문이다.
“주제가 사랑인 건 멤버들도 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요. 특히 리카가요.”
리카는 데뷔곡 가사를 논의할 때도 강력하게 사랑을 강조했었다.
성필이 작사가에게 컨셉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사랑이란 주제는 누락했기에, 데뷔곡인 ‘아니’에는 반영되지 못했지만.
“멤버들이 바라는 사랑은 그러니까…… 진짜 사랑 노래를 말하는 거야?”
“아니요. 사랑을 메타포로 쓰는 거예요.”
“메타포?”
“네. 겉으로 보면 사람을 향한 사랑인데, 실은 다른 걸 바란다거나.”
“어떤 거?”
“으음, 자유?”
또 자유인가.
데뷔곡의 강렬한 이미지는 팬만이 아닌 멤버들에게도 깊이 다가왔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에 소녀연맹이 노래하고픈 자유는 느낌이 다르다.
“자유나, 인간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대한 사랑이요.”
백설하의 의견은 홍규헌을 비롯한 임직원들의 마음을 울린바, 곧바로 채용되었다.
“너무해요. 제가 그렇게 사랑 사랑 노래를 불렀을 땐 고민 더 해보자더니…….”
손혜빈은 진심으로 섭섭한 듯했으나, 그녀도 백설하의 의견을 좋게 보았다. 오히려 자신을 뛰어넘었다면서 찬양을 마지않았다.
그 결과, 정지음이 가져다 놓은 수많은 곡 중 사랑을 표현하기 가장 적합한 것을 택해야만 했다.
“……사장님.”
“골랐어?”
“너무 가까우신 거 아니에요?”
성필은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홍규헌은 성필의 등에 딱 붙을 정도로 가까이서, 그와 마찬가지로 화면을 보고 있었고.
“부끄러워? 의외네.”
“사장님 숨이 제 목덜미에 닿아서 그래요.”
“그건 내가 부끄럽네.”
홍규헌은 성필에게서 떨어졌다.
“멤버들 의견도 다 갈리잖아요. 저는 뭐가 걸려도 좋을 거 같긴 해요. 딱 이거다 싶은 게 없어요.”
“역으로 말하면 전부 별로란 거네?”
“아뇨. 전부 앨범에 넣고 싶을 정도로 좋아요.”
“정 PD가 들으면 좋아하겠다.”
“박 이사님?”
작업실 문이 열리고 한구인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저한테요? 혹시 정호환 이사님은 아니죠?”
“아닙니다. 케이어스 진저 씨입니다.”
“……네?”
성필은 급히 작업실을 나와 지상으로 올라갔다.
‘진저 씨가 나를 왜 찾아오지?’
한구인의 말마따나, 입구 근처에 진저가 서 있었다.
그녀는 종이백을 양손으로 꼬옥 쥐고, 불안한 눈초리로 가로 엔터를 둘러보았다.
“진저 씨.”
“아, 이사님. 안녕하심미까.”
진저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받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로 정제된 몸짓이었다.
“어쩐 일이세요?”
진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온다고 했잖슴미까.”
“아라 보러요?”
“……그것도 있지만, 잊으신 검미까?”
성필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계속 서 있기도 뭐하니까 일단 앉으실래요?”
진저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백을 성필의 가슴에 던지듯이 넘겼다.
성필은 놀란 마음으로 그것을 붙잡았다.
“이사님은 사람 말을 뭐라고 생각하는 검미까! 말로 한 약속은 약속도 아님미까!”
“어, 어, 죄송합니다…….”
13살 아래에게 비굴하게도 사과해버렸다.
“아, 사복 차림도 잘 어울리네요. 직접 코디하신 거죠?”
“칭찬으로 넘어가시려는 검미까? 그런 거에 넘어가는 인간만 보고 살아오신 검미까?”
데일 카네기 당신이 틀렸어!
모르는 사람에게라도 칭찬해주면 호감을 살 수 있고 했잖아…….
“이사님이 떠나실 때 제가 인사하러 갔슴미다. 그때 감사하러 온다고 했잖슴미까.”
“아.”
“이제 기억 나심미까?”
진저가 한숨을 쉬었다.
“그게 제 감사임미다.”
성필은 사과의 의미로 고개를 한 번 꾸벅하고, 종이백 안에 든 것을 보았다.
“이건……!”
“발매된 케이어스 굿즈에 멤버들 친필 사인 받아왔슴미다. 팬이라고 하셨잖슴미까. 그, 그리고 제 사인도 더 넣었슴미다. 구양순체, 안진경체, 한국에서 많이 쓰인대서 한석봉체도 연습해서 썼습니다.”
그녀의 말마따나, 빳빳한 세 개의 사인지에는 다른 글자체의 사인이 적혀 있었다.
“고마워요. 소중하게 쓸, 아니, 간직할게요.”
“고마워할 필요 없슴미다. 보답이니까요. 그런데 이사님.”
“네?”
“가로 엔터는 원래 이런 분위기임미까?”
성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업실 입구, 애매한 표정으로 성필을 쳐다보는 한구인과 홍규헌.
2층 난간, 어이가 없다는 듯 성필을 내려다보는 손혜빈.
휴게실 문 앞, 커피를 든 채 서 있는 백설하와 정지음.
회사 입구, 막 학원에서 돌아온 민경섭과 장하양, 리카, 신아름.
마지막으로, 아까부터 소파에 누워 낮잠을 청했으나 이제는 잠이 깬 조아라.
전부 성필과 진저를 보고 있었다.
“……우라기리모노(배신자).”
리카가 낮게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