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성필은 데스크에서 스포츠 테이프를 받아와 진저에게 주었다.
그녀는 테이프를 받아 무릎에 붙였다. 그리고 몇 번 움직여보더니, 이제 됐다는 듯 일어났다.
“감사함미다.”
“아니에요.”
정말 큰 일이었다.
진저의 비명에, 아카데미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전부 달려왔었다.
신체 활용의 정점에 달한 댄서들이 성필을 에워싸고 진저를 보호했었는데, 만약 성필의 영어 실력이 조금이라도 떨어졌다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아라 말로는 먼저 떠나셨다던데요.”
“……정탐을 온 검미까? 아라 씨가 시키신 검미까?”
정탐(偵探)이라니.
한자 어휘 능력이 정말 뛰어나군.
다만 한국어는 서투르다.
어미가 씹혀서 미음 발음이 되는 데다가, 엄연히 성필이 연장자인데 조아라가 ‘시키다’라고 표현하다니.
‘귀엽다.’
“아니요. 가는 길에 불 켜진 게 보여서요. 여기 아라랑 진저 씨만 쓰시잖아요. 아, 그리고 진저 씨 사인받고 싶어서요.”
“사인? 제 사인이 필요하심미까?”
그리 말하는 진저의 표정에서는 당황이 보였다.
“네. 저 케이어스 팬이거든요.”
그 말을 들은 진저에게서는 기쁨이 나타나지 않았다.
성필은 사람의 감정에 민감하다.
그런 성필이 보기에, 진저는 꺼림칙해 하는 것 같았다.
“알겠슴미다. 어디에 해드리면 되겠슴미까.”
성필은 스포츠 테이프와 함께 받아온 종이, 펜을 내밀었다.
그녀는 한자로 자신의 이름을 멋들어지게 적어나갔다. 그냥 펜으로 슥슥 쓰는 게 아니었다.
붓으로 써낸 글자처럼 보이도록, 그녀는 글자의 테두리를 먼저 그린 뒤 테두리 안을 검게 칠해갔다.
완성된 사인은 감탄이 나올 만큼 멋졌다.
‘예술적’이라는 수식어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성필은 몰랐으나, 서예체 중 하나인 구양순체로 적은 것이었다.
[林美, 린 메이, 진저]
성필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진짜 사인지에 받았으면 좋을 텐데.
“감사합니다. 이름이 정말 어울려요.”
부모님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셨는지, 이름을 아름다울 미(美)로 지으셨다.
그 말을 듣고도 진저는 낮게 하하 웃을 뿐,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전생에서의 팬 사인회 때와 너무 다른 모습이다.
충격적인 사실, 성필은 30대 중반에 케이어스 팬 사인회에 간 적이 있다!
석세스 엔터 사람들이 전부 놀렸었다.
적진을 조사하러 간 거냐고 말이다.
‘물론 지금이 팬 사인회는 아니지만.’
오히려 연습할 때 갑자기 찾아와서 불쾌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다기엔, 진저의 반응은 단순한 불쾌가 아니었다.
“제가 팬인 게 싫으세요? 경쟁사라서…… 아, 이건 너무 갔네요. 다른 회사 사람이라서?”
진저는 답하지 않았다.
“팬을 싫어하시는 거예요?”
진저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으나, 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동요를 성필이 모를 리 없었다.
‘아라가 말해줬었지. 진저는 돈 때문에 아이돌을 하는 거라고.’
물론 아이돌은 돈 때문에 하는 거기도 하다.
팬에 대한 서비스를, 말 그대로 돈에 대한 대가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저는 팬 그 자체에 반감이 있는 듯했다.
성필은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더 물어봤자 팬심에 상처만 받을 것 같았다…….
“이제 연습할 검미다.”
진저는 휴식의 끝을 선언했다.
간접적으로 성필에게 나가라고 한 것이다.
“무릎 아프시잖아요. 발목도요. 쉬었다가 내일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괜찮슴미다. 아픈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님미다.”
“매니저로서, 여러 아이돌을 본 사람으로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쉬는 게 좋아 보여요.”
그에 진저는 냉소적으로 답했다.
“제 사인을 받았단 건, 이사님도 제 팬이란 거 아님미까.”
“네, 팬이죠.”
“팬이면 완벽한 제 모습을 보고 싶을 거 아님미까. 그걸 위해서 연습하는 검미다. 팬을 위해서 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나가시는 검미다. 고통을 견뎌내고, 완벽한 모습이 되어서 무대에 서는 거. 팬이면 그런 걸 바라는 거 아님미까.”
그리 말하는 진저는 조용히 격앙되어 있었다.
이제껏 실제로 대화한 적 없던 팬이라는 실체, 성필을 향해 원망을 쏟아내는 듯했다.
그리고 그 원망의 일부를 자기도 모르게 드러낸 진저는, 뒤늦게 흠칫 놀라곤 작게 말했다.
“못 들은 걸로 해주십시오.”
성필은 다른 회사의 직원이다.
방금 발언을 조합해서 업계에 퍼뜨려 진저의 입지를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다.
진저는 입을 경솔하게 놀린 것이다.
“진저 씨. 이렇게 아파하면서 계속 연습했던 거예요?”
“……당연한 거 아님미까.”
신태웅 트레이너가 말했었다.
아이돌이 점점 상향 평준화되어 있다고.
특히 춤이 그렇다고 했었다.
그중에서도, 케이어스의 데뷔곡은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했다.
조아라도 케이어스의 데뷔 무대를 보고 넋을 잃을 정도였다.
‘대체 저 정도 수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까?’ 그리 말하며, 조아라는 그들의 노력에 경의를 바쳤다.
그 무대를 보고 성필도 놀라고 감탄했으나, 다른 생각도 했었다.
‘저렇게까지?’
다른 그룹과 차별화되기 위해, 정상급의 퍼포먼스를 연출하기 위해 무지막지한 난이도의 안무를 구사한다.
안무에 빈 공간이 없다.
모든 동작이 꽉꽉 채워진 데다가, 매 동작이 포인트 안무같이 강렬함을 준다.
저건 아티스트의 수명을 갉아먹는 춤이다.
타인의 눈에 멋지게 보이는 저 춤은, 젊은 나이의 관절을 갈아버리고 닳게 만들어, 시간이 지나 그녀들에게 고통으로 돌아올 것이다.
“당연히 잘해야 하고, 당연히 노래와 춤이 완벽해야 하고, 그러니까 아픈 게 당연한 검미다. 고통스러운 게 당연한 검미다.”
진저가 말했다.
뒷말은 없었지만, 성필은 그녀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었다.
‘팬들이 이런 걸 원하니까.’
아이돌의 화려하고 멋진 모습을 바라니까.
KS 엔터는 아이돌들에게 건강을 바쳐 난이도 높은 안무를 소화하길 요구한다.
진저는 그것을 받아들여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내고, 고통을 당연시하는 단계에 올라섰다.
그녀에게 고통은 성공과 동의어였다.
“진저 씨, 팬들은 진저 씨의 이런 모습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진저 씨가 아파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고요.”
진저가 코웃음 쳤다.
“그렇겠죠. 팬들은 제가 얼마나 아파하든 관심도 없슴미다. 무대에서 멋진 모습만 보여주길 바랄 뿐이지.”
이기적인, 청춘의 화려함만 빨아먹고 사는 인간들.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타인의 모습에서 찾는 인간들이다.
진저는 신물이 났다.
타인의 젊음을 소비해서 대리만족을 얻는…….
“아니에요, 진저 씨 아니에요!”
성필이 목소리를 높이자, 차가웠던 진저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놀란 것이다.
“뭐가 아님미까.”
“팬들은, 팬들은요. 행복해지기 위해 진저 씨를 선택한 거예요.”
“……뭐라고 하신 검미까?”
행복해지기 위해 나를 선택해?
“팬들은 행복해지고 싶은 거예요. 진저 씨와 함께요. 진저 씨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진저 씨의 팬이 된 거라고요.”
연말이 되면 미친 듯이 시상식에 투표하고.
좋아하는 그룹이 잘 되길 바라서 똑같은 앨범도 몇 장씩이나 사고.
멤버가 안 좋은 인터넷 글을 볼까 봐, 잠도 줄여가면서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안티와 싸우고.
음원 순위를 올리려고 종일 같은 노래를 반복 스트리밍하고.
아이돌에게 무리한 스케줄을 강요하는 기획사에 거세게 항의하고.
그리고, 시상대에 오른 아이돌의 미소와 감사에 보답받는다.
아이돌들이 ‘팬 여러분 고마워요.’라고 하는 한마디에, 팬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들과 행복을 공유한다.
팬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아이돌을 선택한다. 그리고 아이돌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삼는다.
“진저 씨가 행복하면 행복하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해요.”
진저는 성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알아듣긴 했어도, 그의 말이 뇌의 필터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녀는 입술만 뻐끔거리다가, 겨우 한마디를 내놓았다.
“뭠미까 그게…… 이상하지 않슴미까…….”
진저는 바닥에 앉았다.
“그 사람들은 저를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슴미다. 저를 좋아한다고요? 대체 뭣 때문에 좋아함미까? 저를 뭐라고 생각하기에, 제가 행복해하면 행복해하는 검미까? 제가 슬퍼하면 슬퍼하는 검미까? 그 사람들한테 저는 실제로 존재하는 인간도 아님미다. 제가 그 사람들한테 진짜 사람이긴 함미까? 가장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게, 그게 사랑의 대상임미까?”
“진저 씨는 누구 좋아해 본 적 없어요?”
“없슴미다.”
성필은 당황했다.
거짓말인가? 거짓말이겠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경험이 없을 수가 있어.
말이 꼬여버렸다.
“저는, 다른 사람을 좋아한 적 따위 없슴미다.”
아, 회사에서 교육받은 건가?
그렇다기엔 표정이 너무 분노로 물들어 있긴 한데…….
“크흠. 엄청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을 보면요, 막 몸이 굳어 안 움직이고 그러거든요. 아시죠?”
“모름미다.”
“……네, 저는 그래요. 대부분의 사람도 그러고요. 반한 거예요. 그래서 제대로 못 움직이는 거예요.”
이상하게 보이면 어쩌지?
말실수라도 하면 어떡하지?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이상형의 앞에서 움츠러들고 말이 더듬거리는 경험은 누구든 있을 것이다.
그런 행동은 ‘거절당하지 않을까?’란 두려움에서 나온다.
“그런데 아이돌을 좋아하는 건 그런 게 없어요.”
팬이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면.
아이돌도 팬을,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줄 것이다.
그게 사랑의 전제다.
거절당할 가능성이 없기에, 팬들은 순식간에 아이돌에게 반하고 사랑할 수 있다.
“진저 씨가 그러셨죠. 팬들에게 진저 씨는 진짜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 거 같다고요. 어느 정도 그런 부분도 있죠.”
“뭠미까. 결국…….”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진짜예요.”
진저가 움찔했다.
“진심으로 진저 씨가 행복하길 바라요. 진저 씨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따위, 팬이라면 누구든 보기 싫을 거예요. 팬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픈 진저 씨의 마음은 정말 기특하지만요. 진저 씨가 아프길 바라진 않으니까. 진저 씨가 아프면 저도 아프니까.”
성필은 또박또박, 그녀에게 들리도록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프면, 힘들면, 그만해도 돼요.”
진저는 가만히 성필을 보다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그런, 그, 그런…….”
그런 말은…….
* * *
진저, 린 메이(林美)
어린 그녀는 끙끙대며 물통을 옮겼다.
수돗물을 가득 담은 통은, 10대 초의 여자아이가 옮기기엔 너무도 무거웠다.
메이는 땀을 닦고 위를 보았다.
낡은 처마 위로 높게 솟은 빌딩이 보였다.
하늘 높이 솟은 저곳은 혹시 신이 사는 곳은 아닐까. 왜냐하면 자신은, 자신의 가족은, 주변의 사람들 모두.
저런 곳에는 가본 적도 없으니까.
인간 따위는 갈 수 없는 곳이 분명하다.
“…….”
메이는 생기가 없는 눈으로 다시 물통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 닭장.
닭장과 같이 빽빽한 공동주택.
벽에는 촘촘하게 박힌 눈처럼 시꺼먼 창문이 수백 개다.
저 눈 중 하나가 메이의 집이었다.
중국 광서성, 소수민족 장족(壮族) 자치구 남녕시(南宁市).
인구 700만의 번화한 대도시에서, 메이의 가족은 닭장과 같이 허름한 공동주택에서 삶을 이어간다.
“엄마, 물 가져왔어요.”
“응, 잘했어.”
집은 좁았다. 모든 통로가 사람 한 명 지나다닐 폭에 불과했다.
메이는 더러운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만 한 작은 창문을 통해 밖을 보았다.
더러운 안개와 더러운 집들, 더러운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인다.
메이는 그 광경을 수 시간이나 바라보았다.
다르게 시간을 보내는 법 따위 모른다.
“나 왔어.”
아버지가 왔다.
메이는 휴식이 끝났음을 예감했다.
아버지는 농민공(農民工)이다. 농촌에서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하급 노동자.
중국에는 계급이 있다.
높으신 분들이 민주주의니 뭐니 하지만, 명백하게 국민에겐 급이 갈린다.
아버지는, 메이의 가족은, 사회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찌꺼기와 같았다.
그래도 찌꺼기의 밑에 붙은, 호적이 없는 자들보다는 나은 처지라고들 한다.
‘이게 나은 처지야?’
그럼 무호적자들은 어떻게 살까?
모르겠다.
“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독한 술을 가져다주었다.
술을 삼키는 소리만이 한동안 들렸다.
“시발.”
아버지가 욕을 시작한다.
“집 꼴이 왜 이따위야! 청소 안 해?!”
그리고 들리는 폭력의 소리.
한계까지 억눌러진 어머니의 비명.
메이는 가만히 있었다.
아버지가 메이에게 다가오고, 어머니는 메이를 감싼다.
또 폭력이 이어진다.
메이는 이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어린 딸의 눈물 따위, 아무런 소용도 없단 사실이 밝혀진 지 오래였다.
“메이, 메이야.”
술에 취한 아버지가 내는 코골이를 배경으로, 어머니는 메이를 품에 안고 뺨을 쓰다듬었다.
“조금만 참아. 너한테는 곧 좋은 날이 올 거야.”
어머니는 흐릿한 눈물을 입가에 단 채로, 떨리는 목소리로 메이를 위로했다.
아니, 저건 본인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메이, 너는 축복받은 거란다. 네 외모는 신께서 주신 거야. 그러니, 너는 곧 있으면, 조금만 있으면 더 나은 곳에서 살 수 있어.”
메이(美), 너는 예쁘니까.
어머니는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다가 잠이 들곤 했다.
그런 삶이 계속 이어졌다.
대체 좋은 날은 언제 올까, 그리 생각하며 메이는 시들어진 나날을 보냈다.
16살.
그날이 왔다.
“메이, 잘 다녀오렴.”
그날따라 아버지의 표정은 밝았다.
새 옷도 생겼다.
메이는 어머니를 따라, 한평생 가본 적 없던 도심으로 나갔다.
깨끗한 자동차가 있다. 멋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다. 최신형 핸드폰을 귀에 대고 쇼핑백을 든 젊은 남녀들이 있다.
전부 메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자들이다.
“메이, 저쪽이야. 저 빌딩으로.”
메이는 어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어릴 적부터 메이가 보아왔던, 신들이 사는 빌딩이다.
평생 발을 들여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곳에, 메이는 하늘로부터 받은 축복 덕분에 갈 수 있게 됐다.
“잘 지내, 잘 다녀오렴, 메이, 메이…….”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메이의 뺨을 쓰다듬어주며 위로했다.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멀어져, 정해진 곳으로 향했다.
한 걸음, 두 걸음.
계속 걸어갔다.
그러다가 돌아섰다.
어머니는 아직도 메이를 보고 있었다.
“엄마, 저 무서워요.”
어머니는 또 메이의 뺨을 쓰다듬어주었다.
“메이. 무서운 건 당연하단다. 사는 게 힘든 건 당연해. 삶은 원래 힘든 거니까.”
수백, 수천 번을 들어온 소리다.
“무섭고, 힘들고, 괴로운 건 당연하단다…….”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처럼 그 말을 들을 순 없었다. 오래전에 말라버린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메이는 겨우 어머니에게서 등을 돌려 원래 목적지로 향했다.
계속 걸어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머니는 없었다.
그래서 메이는 돌아갈 곳도 없이, 그저 신들이 사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
가는 도중, 어딘가에서 음악이 들렸다.
그 음악은 메이의 귀를 사로잡았다.
음질이 너무나 깨끗하다.
싸구려 라디오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메이는 음악 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았다.
자국의 문자임에도 고작 수백 자 읽는 게 겨우인 메이는, 그 건물에 적힌 글자를 두 개밖에 읽지 못했다.
‘문화(文化).’
문화라고 적힌 그곳에서 천상의 선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건물 앞에 어리고 젊은 여자들 수백 명이 줄을 서 있다.
메이는 현수막을 읽었다.
“케이(K), 에스(S), 엥트(ENT)?”
그리고 아이돌이란 단어가 보였다.
아이돌, 분명 텔레비전에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고…… 그런 거였다.
“…….”
메이는 계속 그곳에 서 있었다.
저 음악을 들을 수만 있다면, 평생 이곳에 서 있을 자신도 있었다.
비록 중국어는 아니었지만, 메이는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자신의 처지조차 잊어버렸다.
억지로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곧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소비되어진단 현실을 잊기 위해서.
“거기, 너.”
노을이 졌다.
메이는 정신을 차렸다.
건물의 입구에서 어느 남자가 메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디션 볼 거니?”
“……오디션?”
“심사 볼 거야? 네가 마지막이야.”
“오디션이 뭔데요?”
“뭐어?”
남자는 당황하다가, 오디션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었다. 그 설명은 아이돌이 뭐고, 무슨 시험을 치고, KS 엔터가 뭔지에 대해서까지 이어졌다.
남자가 이토록 귀찮은 설명을 감수한 건, 오로지 메이의 외모 때문이었다.
하늘로부터 받은 축복.
“볼래요, 오디션.”
메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인생 최초, 스스로가 내린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의 대가는 쓰라렸다.
“아빠 말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버지가 메이의 축복을 손으로 후려쳤다. 메이는 피를 뱉으며 바닥을 기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앞을 막았다.
“비켜!”
짝.
평소대로라면, 어머니는 쓰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쓰러지지 않고 우직하게 버텨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아버지는 움찔하며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여보, 부탁할게요. 우리 애, 보내면 안 될까요? 1년이라도. 1년 만이라도. 우리 메이는.”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등을 돌려, 메이의 뺨을 쓰다듬었다.
“메이(美)는 예쁘니까요. 축복받았으니까요.”
그로부터, 메이는 한국으로 향했다.
노력했다.
피를 토하고 진흙을 씹는 듯한 삶을 살았다.
괴로웠다.
하지만 괴로운 건 당연했다.
그게 삶이니까.
* * *
“아프면, 힘들면, 그만해도 돼요.”
메이의, 진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목소리가, 평생 가져온 신념과 함께 나약하게 흔들렸다.
“그런, 그, 그런, 그런 말…….”
누구도 진저에게 ‘그만해도 된다.’라고 해준 적이 없었다.
어머니도.
KS 엔터도.
멤버들도.
그 누구도.
“아프면, 힘들면, 그만해도 되는 검미까……?”
“네. 진저 씨가 아프길 바라는 사람 따위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