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27화 (127/760)

127화

조아라는 일본어에 자신이 있었다.

계속해서 리카가 일본어 쓰는 것을 봐왔고, 또한 그녀에게 배우기도 했었다.

한구인의 덕이었다.

그는 조아라의 일본어 리스닝이 점점 느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리카에게 부탁했다.

“적절한 스케줄을 선정해서 여러분들께 일본어 강의도 할 계획이었습니다만, 미리 공부를 해둔다면 효율이 더 늘겠죠.”

“에에, 저는 일본어 선생님도 아닌데 그래도 되나요?”

“예. 렌줄리의 교육과정 압축법에 따르면, 그리고 비고츠키의 사회적 구성주의 이론에 따르면 이편이 효율적입니다.”

“그렇군요. 혹시 제가 그것도 배워야 하나요?”

“아닙니다. 혹시 교육학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없어요!”

안 그래도 리카는 한구인에게서 엄청난 양의 지식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 그래도 교육학이면……. 아타시(제)가 결혼하게 되면 가르쳐주세요!”

“알겠습니다. 아무튼, 한두 명이라도 일본어가 가능하면 효율이 훨씬 더 클 겁니다. 리카 씨, 아라 씨에게 조금씩이나마 일본어를 가르쳐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맡겨주세요!”

그날부터 리카는 조아라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멤버들이 씻는 순서를 기다리거나 할 때, 조아라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조금씩.

훌륭한 스승에게서 배웠기 때문일까, 리카는 학생을 가르치는 법을 알았다.

“아라쨩, 재미있는 일본어 시간이 돌아왔어요!”

“해봐.”

“선생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안 들어.”

“에엑?! 들어주라!”

“그래.”

“얏타(해냈다)! 좋아, 그럼 복습이야. ‘이거 주세요’가 일본어로 뭐야?”

“코레 요코세 코노 친피라가(이거 내놔 이 잔챙이가).”

단, 한구인이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리카는 조아라에게 잘못된 지식을 알려주고 있던 것이다.

“아하하핰! 아라쨩 캇코이(멋져)!”

“뭐, 껌이지.”

조아라는 리카가 칭찬해줄 때마다 어깨를 으쓱했다.

혹시 자신이 언어의 천재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 점점 더 일본어에 빠져들었다.

“‘제 말이 들리지 않으십니까?’는 뭐게?”

“시니타이노카(죽고 싶냐)?”

“하하핳!”

리카가 좀 과도하게 좋아하는 것 같긴 했지만, 뭐 어떤가.

“아라쨩 너무 멋지고 잘생겼어. 아타시(나)랑 사귈래?”

“안 사귀어.”

“충격! 차임 35회 달성! 히도이이(너무해애). 침대도 같이 쓰는데 너무 튕기잖아. 나 점점 지쳐. 슬슬 넘어와달라구.”

“그럼 뭐, 동정하는 셈 치고 한 번 해줄까?”

“진도 너무 빠르잖아?!”

“너희 뭐라는 거야…….”

백설하가 달라붙은 둘을 떼놓았다.

어쨌거나, 조아라의 일본어 말투는 점점 리카의 취향에 맞춰 개조당하고 있었다.

* * *

유우토는 바들바들 떨면서 조아라와 성필의 뒤를 따랐다.

당장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다.

하지만 핸드폰은 그의 손에 없었다.

조아라의 손에 있었다.

“코레 요코세 코노 친피라가(이거 내놔 이 잔챙이가).”

라며, 조아라가 뺏어갔다.

그녀는 지도를 보며 유우토의 목적지, 즉 가로 엔터의 위치를 확인 중인 듯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돌려줄 것 같지 않다.

‘엄마, 아빠. 나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유우토는 걱정하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한국 사람들 일본 싫어한다던데요. 저 위험하지 않을까요?’

‘괜찮다. 언제 얘기야.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겉으로는 안 드러내.’

아니었다.

‘아빠가 틀렸어!’

지금 불량배들한테 끌려가고 있지 않은가!

유우토는 울고 싶었다.

“코코다(여기다).”

조아라가 차를 가리켰다.

유우토의 동공이 좌우로 빠르게 흔들렸다.

‘납치인가? 드럼통에 담겨져서 콘크리트가 부어지는 건가?! 바다로 가는 건가?!’

유우토가 망설이고 있자, 조아라가 친절하게 그를 뒷좌석에 밀어 넣어 주었다.

“지, 지분와 맛떼루 히토가(저, 저는 기다리는 사람이)…….”

“시니타이노카(죽고 싶냐)?”

“고멘나사이(죄송합니다)…….”

유우토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어릴 때부터 곱상한 외모 때문에 또래에게도 놀림을 자주 당하였는데, 그때마다 누나인 리카가 구해주곤 했다.

‘누나, 보고 싶어…….’

하지만 지금 이곳에 누나는 없다.

“너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어…… 정확하진 않은데 ‘도와준다고 했잖아’ 같은 느낌이었어요.”

“아직 우리 어떤 사람인지 안 말해줬어?”

“네.”

“언제까지 놀리게?”

“가로 엔터까지 가서 깜짝 놀라게 해줘야죠.”

한국어로 진행되는 대화를 들으며, 유우토의 상상력은 마음껏 발휘되고 있었다.

얼마 전, 한국의 느와르 영화를 봤다.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그 이후의 장면이 떠올라 오줌이라도 쌀 것만 같았다.

“오리로(내려라).”

도착한 곳은 멋들어진 건물이 있는 곳이었다.

조아라는 그제야 문득 떠올랐다는 듯, 유우토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코레(이거). 스만나(미안하다).”

“에?”

스톡홀름 증후군에라도 걸린 것일까.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을 받았는데도, 참을 수 없는 감사함이 생겨났다.

불량해 보여도 천성은 좋은 사람인가?

유우토는 핸드폰을 보았다.

누나가 알려준 가로 엔터의 위치가 현재 위치였다.

‘거짓말! 진짜 나를 데려다준 거야?! 그, 그런데 저 누나 말투는 왜 저러지? 착한 갸루(일진)인가?’

성필과 조아라는 가로 엔터로 들어가려 했다.

유우토는 의문이 들었다.

왜 저 사람들도 같이 들어가지?

그리고 그들이 자연스레 문을 열자, 유우토의 생각이 진실에 도달했다.

‘서, 설마. 저들이 가로 엔터 사람들!’

누나가 일하는 곳이 양아치 기획사였다니!

유우토는 두려웠다. 그리고 다짐했다.

‘누나가 위험해!’

구해내야 한다.

누나를 저 악의 소굴로부터 끌어내야 해!

* * *

라고 생각했던 때가 유우토에게도 있었다.

“네가 리카 동생이야? 잘생겼네.”

“얘 굳은 것 좀 봐. 귀엽다.”

“이름이 유토? 유우토? 뭐야?”

“왜 말을 안 하지?”

유우토는 소녀연맹 멤버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가만히 땅바닥만 보면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앞뒤 양옆 모두, 평생에 걸쳐도 볼까 말까 한 미녀들이 가득했다.

“내 동생한테서 떨어져요! 내 동생은 중학생이란 말이에요! 너무 큰 자극을 주면 안 돼!”

리카가 멤버들을 쫓아내며 유우토를 감쌌다.

“네, 네에쨩(누, 누나아)…….”

“유우쨩, 많이 무서웠지? 무서운 누나야들은 내가 쫓아냈으니까 안심해!”

멤버들은 유우토에게 떨어지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다.

“중학생 아닌 거 같은데.”

“요즘 중학생들은 다 저렇게 커?”

“잘 먹고 자라서 그런가 봐요.”

연습 시간이었음에도, 리카의 동생이 왔단 이벤트에 멤버들 모두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때 소식을 들은 홍규헌이 1층으로 내려왔다. 옆에는 한구인을 대동한 채였다.

이상, 한구인의 번역.

“네가 리카 동생이야?”

“네, 네.”

“반갑다. 난 이 회사 사장이야.”

유우토는 깜짝 놀랐다.

혹시 이 회사에 들어오는 조건이 외모인가?

“일단 응접실로 올라가자.”

“네에…….”

올라가는 도중, 한구인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번호를 보고 급한 일이라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곤란하게 됐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리카, 통역 좀 해줄래?”

“하이(네)!”

그렇게 응접실에는 홍규헌, 리카, 유우토가 있게 됐다.

이상, 리카의 번역.

“이름이 뭐야?”

“이시카와 유우토입니다.”

“몇 살?”

“생일 지나서 15살입니다. 중학교 3학년입니다.”

“헤에, 젊네.”

그 말을 들은 유우토는 흠칫했다.

방금 번역한 게 맞냐는 듯 누나인 리카를 보았다. 리카는 실실 웃고 있었다.

‘뭐지? 사, 사장님이 나를 유혹하고 계신 건가?’

리카가 번역하는 말투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뜻은 통해도 어감이 완전히 달랐다.

“인사하러 온 거지?”

“부모님이 누나가 신세 지는 곳이라고……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라고 하셔서…….”

“흐응, 그것뿐?”

그, 그것 말고 또 뭐가 있지?!

유우토는 누나의 통역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왜 저렇게 관능적으로 말하는 거지? 누나가 장난치는 건가? 아닌가? 그래도 사장님의 말인데, 장난으로라도 이상하게 통역할 리는 없는데…….

‘나 같은 어린애한테 왜?’

유우토의 고개가 점점 내려갔다. 도저히 홍규헌을 마주 볼 수 없었다.

그것을 보는 홍규헌은 픽 웃었다.

‘애가 리카랑 정반대네. 자신감이 없어.’

그럼 사장인 자신이 더 힘을 내야겠지.

친절하고 따뜻한 곳이란 느낌을 줘야 한다.

본국에 있는 리카의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여행 온 거기도 하지?”

“네, 네에.”

“같이 재밌는 거 할까?”

“……!”

유우토는 슬슬 넋이 나갈 것 같았다.

꿈인지 현실인지도 헷갈렸다.

그때, 용무를 마친 한구인이 들어왔다.

“리카 씨, 감사했습니다. 이제 나가보셔도 됩니다.”

“에에, 더 있고 싶은데.”

리카가 투덜대며 나갔고, 한구인이 통역을 이어받았다.

이상, 한구인의 통역.

“여행 목적도 있다면, 서울 지리에 익숙한 사람을 소개해줄 수도 있어. 아니면 리카랑 둘이서 다녀도 괜찮고. 그런데 리카는 놀러를 잘 안 다녀서, 그다지 좋은 코스는 아닐 거야. 이왕이면 멤버나, 우리 회사 사람 한 명 데리고 가는 편이 즐기기엔 좋을걸.”

“……???”

유우토는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 홍규헌은 아까와 같은 한국어를 했는데, 한구인이 통역하는 건 아예 내용이 달랐다.

그제야 유우토가 깨달았다.

‘누나가 날 놀렸구나!’

분노가 가슴 속에서 끓어오른다.

이팔청춘인 남학생을 우롱하다니!

삼대를 저주할 테다!

“그래, 선물은 잘 받았어.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전해드리면 좋겠다. 우리 쪽에서도 1월 1일에 직원을 보낼 생각이었거든.”

“1월 1일에요? 그 직원분은 오쇼가츠(일본의 설날)인데 괜찮으신가요?”

“한국 설은 음력이야.”

“아.”

“폐가 안 된다면 그렇게 하려는데, 부모님께 전해줄래?”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좋아. 만나서 반가웠어. 좋은 여행 되길 바랄게. 한국을 좋아하게 되길 바라.”

유우토는 홍규헌과 악수했다.

따뜻한 손의 감촉과 함께 향수, 그리고 알 수 없는 어른의 냄새가 풍긴다.

담배 냄새였지만, 유우토는 알 도리가 없어 그저 향기라고만 받아들였다.

‘아, 나 이런 사람이 이상형이었구나.’

자기도 모르게 유우토는 자신의 취향을 알아버렸다.

* * *

“나는 그냥 기다리고 있을게.”

“그러면 이사님을 그냥 셔틀로 쓰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요!”

“유우토도 나랑 있으면 불편할 거라고.”

리카가 유우토의 의견을 물었다. 유우토는 성필이 있어도 괜찮다고 했다.

“이예!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제일 좋아하는 동생이랑 노는 거예요! 통역은 저한테 맡기세요! 어떤 말이든 통역할 자신이 있어요!”

자신감 넘치는 조아라가 짧게 웃었다.

“난 괜찮아. 일본어로 말할 수 있어.”

“아라쨩 스게(대단해)!”

그렇게 성필, 리카, 유우토, 조아라의 서울 투어가 시작됐다.

이상, 리카의 통역과 조아라의 일본어.

“어이 네놈. 여기로 가자.”

“네, 네…….”

조아라가 추천한 곳은 스티커 사진을 찍는 곳이었다.

각자 마음에 드는 분장을 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옹기종기 모였다.

“나는 좀…….”

“이사님도 오세요!”

리카가 성필에게 코주부 안경을 씌웠다.

“스시!”

찰칵.

리카는 스티커 사진을 보고 실실 웃었다.

“네놈. 뭔가 먹고 싶은 게 있냐?”

“아, 아니요.”

“그럼 일식을 먹으러 가지.”

“네?”

“불만 있냐?”

“아니요!”

무리의 리더는 조아라였다. 그녀는 신속한 판단력으로 놀거리를 찾아다녔다.

물론, 일식을 먹자는 건 농담이었다.

모처럼 한국에 왔으니 한식집을 찾았다.

유우토의 평으로는, 일본 가정식과 그다지 다를 것도 없다고 한다.

“다음은 노래방이다.”

“……저, 아라야. 유우토는 그래도 한국에 여행 온 건데, 뭔가 뜻깊은 데를 가봐야 하지 않을까? 경복궁이라던가.”

“흠, 네놈. 경복궁 갈 거냐?”

“경복궁이 뭔가요?”

“한국에 남아 있는 왕님의 성이다.”

유우토가 달갑지 않은 기색을 보였다. 그러자 조아라가 보란 듯 웃었다.

“아저씨는 생각이 너무 막혀 있어요. 경복궁? 중학생이 그런 데를 가고 싶겠냐고요.”

발 걸어서 넘어뜨려 버릴까.

어쨌거나 다들 조아라의 리드를 따라서 노래방으로 왔다.

“뭐냐 이게에에! 동전만 넣으면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이런 바보 같은! 한국 대단해애애애!”

리카의 통역이 이상한 거 같다.

진실을 물으니, 리카가 헤헤 웃으며 답해주었다.

“신기하대요. 일본은 인당 시간제 요금이고, 드링크바라고 해서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리필해주기도 하거든요! 먹을 것도 있어요!”

그렇구만.

첫 번째 타자는 리카였다.

그녀는 동생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지 난이도가 높은 발라드를 불렀다.

성필은 그녀의 노래를 듣고 소름이 돋았다.

“리카 언제 이렇게 성장한 거야!”

“아타시(저)는 가수라구요!”

두 번째는 조아라였다.

그녀는 리카처럼 난이도 있는 곡을 도전하기보단, 한구인에게 배운 팝송을 불렀다.

평범하게 잘한다.

물론 평범하다 해도,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 부르니 결이 다르다.

“유우토는 아직 못 정했어?”

“네, 음.”

유우토는 자꾸 일본 노래를 검색해보고 있다.

하지만 히라가나를 쓸 수 없기에 찾는 데 곤혹을 치루었다.

“이사님도 불러요!”

“난 됐어.”

“아저씨, 빼지 말고 빨리해요.”

젊은이들 사이에 있으려니 눈치 보이네.

성필은 소녀연맹의 ‘아니’를 불렀다.

노래를 끝내고 뒤를 보니, 리카와 조아라가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보였다.

“와. 우리가 진짜 잘 부르는 거였구나.”

“혼또다요(정말 그렇네).”

“…….”

유우토는 성필이 노래를 끝낼 때까지도 곡을 선택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망설이며 번호를 눌러 나갔다.

밴드 사운드의 곡이 흘러나왔다.

유우토는 마이크에 손을 댔다.

손을 대자마자, 그는 움찔하며 일순 망설인다.

그리곤 용기를 낸 듯 마이크를 쥐었다.

“와…….”

조아라가 감탄했다.

유우토의 노래는 대단했다.

본인만의 버릇이 상당히 강했으나, 충분히 개성이라 볼 수 있는 영역이었다.

시원하게 뻗는 목소리는 절로 여름을 연상시켰다.

곡이 끝나자, 머쓱해하는 유우토를 향해 조아라가 박수를 쳤다.

“어이 네놈, 대단하잖냐!”

“아, 감사합니다.”

“유우쨩 대단해!”

“그러게. 리카 동생이라서 그런가?”

리카가 흐흥, 한껏 거만해진 콧소리를 내며 자랑을 시작했다.

“유우쨩은 중학교 1학년부터 밴드부였다구요! 밴드부 보컬이에요! 여자애들한테도 인기가 많았어요!”

그 말을 한 리카는 곧장 말을 수정했다.

“많았을 거예요!”

유우토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리카는 한국에 있었으니까.

그리 말한 리카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아타시(나)도 유우토가 학교 축제 때 노래 부르는 거 보고 싶었는데…….”

“누나가 원하면 언제든지 보여줄게.”

“유우쨩 멋져!”

“아, 저리 가. 나 이제 초등학생 아니라고…….”

남매가 사이가 엄청 좋네.

보통은 많이 싸운다던데, 오래 떨어져 있어서 그런 걸까?

“밴드부야? 대단하네. 지금도 해?”

“아니요. 수험 때문에 그만뒀어요.”

“……수험? 중학생이라며.”

듣자 하니 성적이 좋은 고등학교가 목표라고 한다. 부활동과 병행할 수 없었기에 그만뒀다는 모양이다.

“고등학교 수험이란 말은 또 처음 들어보네.”

“유우쨩 그래서 학원 방학 특강반도 들어갔었어요.”

“공부 열심히 하는구나. 꿈이 뭐야? 대기업? 공무원?”

공부를 잘한다니, 그의 꿈도 알고 싶었다.

유우토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공부 열심히 하잖아.”

“그건…… 제가 세이힌 고등학교에 가면 부모님이 이후로도 밴드부 하는 걸 허락해주신다고 하셔서요.”

“에에, 유우쨩 대단해! 세이힌 엄청 높은 고등학교에요!”

민사고 같은 건가?

“도쿄에 통학하려면 힘들 텐데. 괜찮아?”

“응. 밴드부, 다시 하고 싶으니까.”

그리 말하는 유우토의 눈빛은, 과거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리카의 것처럼 반짝거렸다.

늦은 저녁까지 논 네 사람은 슬슬 헤어져야만 했다. 성필은 유우토를 예약한 숙소까지 데려다주었다.

“유우쨩, 내일도 만나.”

“응. 누나 잘 지내는 거 같아서 다행이야. 그, 근데 나 이제 애 아니니까 안지 좀 마…….”

“유우쨩은 나한텐 영원히 애기야!”

라고 말하는 리카는, 유우토보다 키가 몇 cm는 작았다.

진짜 유우토 쟤 중학생 맞나?

“감사했습니다, 누나.”

유우토가 조아라에게 허리를 굽혔다.

“그래, 애송이. 나중에 또 화끈하게 놀아보자.”

“네, 네에.”

대체 조아라의 말투는 왜 저런 걸까. 유우토는 끝끝내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유우토는 성필에게 인사했다.

“‘누나를 잘 부탁드립니다.’, 라니! 유우쨩 그게 뭐야! 누나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리카 네가 이상하게 통역한 거 아니야?”

“‘누나한테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나도 형님을 믿고 따르는 것 같아요.’, 라니! 형님이라니! 이사님한테 실례잖아! 부끄럽다구!”

“……리카, 끼어들지 말고 통역 좀 똑바로 해줘.”

아무튼 유우토는 성필을 좋게 본 듯했다.

그가 숙소로 들어가기 직전, 성필은 무의식적으로 명함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혹시 나중에 아이돌하고 싶어지면, 여기로 연락 줘.”

“저희 보이그룹도 만드나요!”

“너희가 성공하면 한 4년 차 즈음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어. 안 되더라도 유우토는 인재니까, 좋은 기획사에 추천해주게.”

“아이돌 남매군요!”

유우토는 당황했으나 명함을 소중히 받아서 품 안에 넣었다.

그리고 인사를 한 뒤, 숙소로 들어갔다.

“우리도 갈까.”

“하아, 오랜만에 재밌었다. 아저씨 가끔씩 이렇게 놀아요.”

“너네끼리 주말에 놀면 되잖아.”

“또또 거리둔다 또! 우리가 애라서 놀기 싫단 거예요?”

“그래, 너 어른이다.”

세 사람은 차를 타고 회사로 돌아갔다.

* * *

유우토는 씻고 침대에 누워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시콜콜한 안부를 주고받은 뒤, 부모님이 리카에 대해 물어왔다.

유우토는 오늘 있던 일을 떠올렸다.

“응. 누나 잘 지내고 있어. 즐거워 보여.”

일본에서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밝게 빛나고 있다.

유우토는 전화를 끊은 후, 피곤함에 못 이겨 자려다가 아까 받은 명함이 떠올랐다.

그곳에 적힌 한글을 유심히 보았다.

“바, 바쿠. 스엉, 피루…….”

아직 미숙하지만, 유우토도 한글을 배우고 있었다.

이름을 다 읽은 유우토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명함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내가 무슨 아이돌이야.’

꿈같은 이야기다.

한 때는 리카에게도 그러했었다.

* * *

12월 31일, 리카가 오쇼가츠를 맞아 일본으로 가게 됐다. 한구인과 함께.

성필은 한구인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한 이사님. 저희 가로 엔터의 마음을 리카네 부모님한테 잘 전해주세요.”

“제 목숨을 다 바쳐 가로 엔터의 사명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리카 씨, 봐주십시오. 제 열정을!”

“한 이사님 뭔가 옛날이랑 많이 달라지셨네요.”

성필은 다음으로 조아라에게 눈을 돌렸다.

그녀 나름의 공항 패션인지, 평소보다 엄청나게 꾸몄다.

“아라야. 미국에 잘 가.”

“네. 더 강해져서 돌아올게요.”

장소는 공항.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성필은 떠나가는 세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조아라만 혼자 보내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공항의 절차만 따른다면 괜찮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리면, 포스트 무브먼트 아카데미에서 보낸 가이드도 있을 테니까.

‘6주 동안 아라를 못 보는 건가.’

조금 섭섭하네.

성필은 휴일을 맞아 절찬리에 집에서 쉬기로 했다.

종일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거나 아이튜브를 보고, 뻐근하면 운동을 하고, 다시 취미를 즐겼다.

‘쓰레기가 된 기분이군.’

빨리 일하고 싶다.

성필은 그렇게 잠에 빠졌다.

띠리리링.

“하아, 방금 잠들었는데.”

오랜만에 정상적인 시간에 수면을 취하나 했더니, 옅은 짜증이 머리를 채웠다.

성필은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국제전화? 아라인가.”

그런데 핸드폰 번호는 아닌데, 뭐지?

몽롱한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아저씨이…….]

울먹이는 조아라의 목소리.

그것을 듣자마자 성필의 잠이 달아났다.

[저, 저어 어떡해요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가, 가방. 여권이랑 지갑 전부…… 도둑맞았어요…….]

성필은 곧바로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었다. 차로 뛰어가면서 전화를 이어갔다.

“근처에 뭐 보여? 간판이나 그런 거?”

[모르겠어요, 어딘지도 모르겠고, 이, 있긴 있는데. 잘 모르…….]

삐삡.

처음 들어보는 경고음이 전화를 타고 전해진다. 성필의 등에 소름이 돋았다.

“아라야. 너 혹시 공중전화야?”

[네? 네. 맞아요. 바닥에 동전 주워서…….]

“거기 꼼짝 말고 기다려! 움직이면 안 돼! 내가 도착하면 이 공중전화 번호로 전화할 테니까! 나 지금 바로 비행기 타고 갈……!”

끊겼다.

아니, 언제 끊긴 거지?

움직이지 말란 말은 들었을까?

‘큰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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