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예, 아빠. 아뇨, 안 힘들어요. 돈 안 부쳐주셔도 돼요.”
정지음은 보글보글 끓는 인스턴트 김치찌개를 바라보았다.
인스턴트의 냄새는 빠르게 방에 퍼졌다.
“네, 잘살고 있어요. 아니요, 이제 돈도 받고 일해요. 네, 음악으로요.”
‘음악’이란 말을 하는 정지음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가업인 농사마저 때려치우고 상경했으나, 정작 맞이한 건 낭만 넘치는 예술가의 삶이 아니었다.
악덕 작곡가 권순영에게 유령 작가로 부려 먹히는, 인간성의 밑바닥까지 핥아먹는 삶이었다.
“아직 자리 잡을 정도는 아니고요. 네, 설에 내려갈게요. 아니, 1월 1일 말고 설 연휴요. 그렇다고 불효자식까지는……. 네, 알겠어요. 그때 봬요.”
정지음은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가스레인지의 불을 껐다.
냄비를 집고 조심조심 거실까지 옮겼.
“악!”
또 문틀에 머리를 박았다.
190cm에 달하는 키는 정지음의 삶을 일정 부분 피폐하게 만든다.
용케도 찌개를 쏟지 않은 그는 이마를 문지르며 밥을 먹었다.
‘댓글 많이 달리네.’
정지음은 워터멜론 차트로 접속해서 앨범 ‘Girls’ League’의 댓글을 보았다.
가장 먼저 작곡가란에 당당히 박힌 자신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감 충전 한번 해주고, 정지음은 댓글을 보았다.
[이게 뭔 노래냐?]
정지음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라고 생각했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매일 10번 안 들으면 못 사는 몸입니다.]
정지음의 표정이 부드럽게 펴졌다.
그는 밥을 다 먹은 후 옷을 입고 길을 나섰다.
가로 엔터에 도착해 문을 여니, 평소보다 활달한 조아라가 반겨주었다.
“아라 안녕.”
“오빠, 나 미국 가요.”
“……그 미국 아니지?”
“진짜 미국 간다고요!”
“그래? 왜? 가족 여행이야?”
“후후.”
조아라는 자신의 유능함을 어필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위대한 댄스 능력을 높이 사, 회사에서 유명 댄스 아카데미에 보내준단 것이었다.
“대단하다. 보통 기획사에서 그런 것도 해줘?”
“그러니까 내가 대단한 거죠.”
“우와, 아라 대단해. 능력자네. 회사가 이러긴 쉽지 않은데.”
정지음은 리카에게서 배운 ‘조아라 기 살려주기’를 사용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조아라의 어깨가 뽕이라도 넣은 듯 으쓱해졌다. 칭찬이 부끄러운지 귀도 발갛게 달았다.
“지켜봐요. 정상에 오르는 것도 곧이니까요.”
“그래, 잘 볼게. 네가 정상에 오르면 나도 정상에 오르는 거니까.”
“예에, 브로.”
정지음과 조아라가 주먹을 맞추었다. 그는 떠나가는 조아라를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아직 애구나.’
정지음은 지하로 들어갔다.
놀라운 사실!
가로 엔터 건물에는 지하가 있다!
과거 가로 엔터의 프로듀서가 사용하던 작업 공간으로, 안에는 기본적인 사운드 엔지니어링 도구들이 있었다.
‘뭐야. 레벨업하면 기능 풀리는 게임 같은 거야?’라며, 성필이 혀를 내두르기까지 했었다.
작업실 안에는 벌써 리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로부터 선물 받은 노트북과 함께였다.
작곡 프로그램과 합쳐서 200만 원!
리카가 훌륭한 아티스트로 자라나길 바라는 홍규헌의 과감한 투자였다.
[에, 세, 센빠이(에, 서, 선배). 이키나리 고쿠하쿠난테(갑자기 고백이라니)…….]
[소레데(그래서), 키라이카(싫어)?]
[……이에(아니요).]
리카는 그 노트북으로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정지음이 들어와도 모른 채, 눈을 화면에 박을 기세였다.
“리카.”
“끼에에에에엑!”
리카가 황급히 노트북을 닫았다.
“어, 어어, 언제 오셨나요! 귀신인가요!”
“문 소리 냈잖아. 레슨 시작할 건데 노트북은 왜 닫아.”
[우웁, 센빠이이(우읍, 선배애)…….]
키스 소리가 들렸다.
“…….”
“모른 척할 테니까 꺼.”
“하이(네).”
리카가 애니메이션을 종료했다.
그러자 정지음이 손뼉을 짝 쳤다.
“리카! 저번 주 주말 잘 쉬었어?”
“하이(네)! 힘찬 월요일이네요! 오빠는 잘 쉬었나요!”
“나야 매일이 똑같지. 좋아, 시작할까?”
“네!”
아무 일도 없었다.
정지음은 아무것도 못 봤다.
“과제 보자.”
저번 주, 정지음은 퓨처 베이스(Future Bass) 장르 곡을 만들란 과제를 줬다.
정지음은 가만히 그것을 듣고 피드백을 주었다.
“브라스를 너무 과하게 썼어. 저번에 내가 소리가 빈다고 피드백 줘서 그래?”
“네. 뭘 추가해야 꽉 차게 들릴지 모르겠어요.”
리카는 성장이 더뎠다.
하지만 이해할 이유가 있었다.
데뷔를 위해 종일 춤추고 노래만 불렀으니, 작곡 과제를 할 시간이 없었다.
‘작곡에는 인풋도 필요한데, 리카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을 시간이 없었으니까.’
피드백을 마치고, 정지음은 강의에 들어갔다.
“이번 주는 카와이 퓨처 베이스(Kawaii Future bass)를 만들어볼 거야.”
“제가 아는 그 카와이인가요?”
“응. 귀여운 퓨처 베이스.”
“귀엽겠네요!”
“귀엽지.”
카와이 퓨처 베이스는 한 일본인으로부터 시작된 EDM 장르다.
짤막한 일본어 가사의 사용과 통통 튀는 사운드, 멜로디가 특징이다.
흔히 오타쿠 코드에 맞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게 한국에서 먹히나요?”
“안 먹히지.”
“안 먹히는군요.”
“그런데 내가 말했었지?”
“앗! 작곡은 인풋과 아웃풋이다! 넣는 것과 빼는 것 모두 다 중요하다!”
“그래. 영감은 어디서 찾아올지 몰라. 최대한 많은 장르를 경험해봐야 해. 아, 그리고 2년 전에 카와이 베이스 기반인 한국 아티스트가 있었거든.”
“하이(네).”
“그 사람이 한국대중음악상 DJ부문 대상 받았어.”
“한국에도 오타쿠가 많단 거군요!”
“……아니, 다른 장르 곡으로 받았다고. 그 사람 특기가 카와이 퓨처 베이스고.”
정지음은 시험 삼아 한 곡을 들려주었다.
“앗! 이, 이거 조회 수가 5천만이에요! 저희 뮤비보다 조회 수가 많아요!”
“인기곡이니까.”
“전 세계에 오타쿠가 이렇게 많다니! 충격적이에요!”
그 오타쿠 중 하나가 리카였다.
정지음은 설명을 이어가고, 여러 테크닉을 가르쳐준 뒤 레슨을 종료했다.
“오츠카레사마데시타(수고하셨습니다).”
“그래. 과제 열심히 해.”
“하잇(넵)!”
정지음은 지상으로 올라가는 중, 갑작스레 찾아온 행복감에 미소가 지어졌다.
‘소녀연맹 데뷔곡을 내가 만들었어. 가로 엔터에 레슨도 하러 오고. 곡도 몇 개 더 팔았어. 꿈 같다.’
이게 작곡가의 삶이지.
지금과 비교하면 과거는 진실로 지옥이었다.
현재에 감사하며 실실 웃고 있자니, 지상 입구에서 기다리는 성필이 보였다.
“형 안녕하세요.”
“레슨 마쳤어?”
“네.”
“잠깐 시간 돼? 중요한 얘기 있는데.”
설마…… 레슨을 끊으려고?!
‘내, 내 주요 밥줄인데. 아직 리카한테 못 가르쳐준 것도 많은데!’
“응접실로 가자.”
정지음은 오들오들 떨며 응접실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성필이 서류를 내밀었다.
“지음아.”
“네, 네.”
“가로 엔터 전속 음악 프로듀서로 와줄래?”
“…….”
전속 음악 프로듀서가 무슨 뜻이지?
먼저, 전속(專屬)이란 뜻을 살펴보자.
온전히 한 조직에 속한다는 뜻인데.
오케이.
그럼 음악(音樂)은?
음악이지 뭐.
프로듀서(Producer)는?
생산자, 제작자. 주로 음악 방면에서 활동하는 작곡가를 일컫지.
그렇다면 전속 음악 프로듀서(專屬 音樂 Producer)는?
“제가요?!”
“응. 가로 엔터의 프로듀서진 중 한 명이 돼줘. 여기 계약서야. 일단 기본급이 지급되고, 우리한테 곡을 팔 때도 수익분배에서 이점이 있어. 단, 다른 회사나 개인에게 곡을 넘기는 건 가로 엔터 매니지먼트 권한 관리자의 서면 허가가 필요…….”
정지음은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너무도 황홀해서 천국에 있는 듯했다.
“기한은 길게 잡아서 일주일 줄게.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해. 뭣하면 변호사 찾아가서 계약서 뜯어봐도 괜찮고.”
강압도 없었다.
충분히 검토할 시간마저 준다.
정말이지, 가로 엔터는, 성필은…….
‘내 인생에서 잡은 최대의 복이야…….’
정지음은 다시금 자신의 삶에, 자신의 삶을 찾아준 성필에게 감사했다.
* * *
가로 엔터가 부산스러워졌다.
그 이유는 KS 엔터로부터 온 메시지 때문이었다. KS 엔터의 콘텐츠 기획팀이 방문해도 되겠냔 의사를 표했고, 홍규헌은 받아들였다.
“정확한 내용은 안 말해줬어. 내가 녹음이라도 할 거라고 생각하나?”
콘텐츠 기획팀.
말 그대로 콘텐츠의 전반을 기획하는 곳이다. 상급 조직으로는 콘텐츠 사업부가 있다.
예를 들어 아이튜브에 올라오는 아이돌의 영상을 기획하거나, KS 엔터 내부에서 진행되는 이벤트 등에 대한 전체적인 구상을 맡는다.
즉, 그들의 말이나 생각 하나하나가 돈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해는 되는데, 좀 무례하네요.”
손혜빈이 불쾌한 의사를 내비쳤다.
“하꼬라서 말도 필요 없단 거야 뭐야?”
“손 PD의 하꼬 발언이 나한테는 더 상처야.”
“죄송합니다…….”
“아냐. 연 매출 100억도 안 나오면 하꼬지 뭐. 중소고…….”
아무튼 KS 엔터의 콘텐츠 기획팀은 가로 엔터에 오기로 정해졌다.
그게 오늘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콘텐츠 기획팀 안성곤입니다.”
안성곤과 그의 부하 직원.
총 두 명이 가로 엔터에 방문했다.
KS 엔터의 콘텐츠 기획팀은 팀장을 제외하면 모두 평등 직급 체제라고 한다.
그래서 안성곤은 특별한 직함이 없었다. 하지만 부하 직원이 있는 것을 보니, 그럭저럭 연차도 쌓인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매니저 민경섭입니다.”
민경섭이 손을 뒤로 돌려 손가락을 두 개 폈다. 2층에서 보고 있던 한구인이 회의실로 빠르게 향했다.
“2단계입니다.”
팀장급은 오지 않았으나, 그 바로 아래 직급이 온 듯하다.
그렇다면 구성은 이렇게 된다.
“나는 빠질게.”
사장인 홍규헌이 빠지고 이사인 성필과 PD 직함의 손혜빈이 들어온다.
그 두 사람이 안성곤을 맞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박성필 이사입니다. 이쪽은 손혜빈 PD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안성곤은 손혜빈을 보자 어색하게 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손혜빈은 과거 인기 댄스가수였고, 안성곤이 젊었던 시절에도 파급력이 상당했으니까.
그런 손혜빈이 기획사에서 일하고 있단 건, 안성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저 불편하게 대하지 마세요. 가수가 아니라 PD로서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요.”
가로 엔터가 안성곤의 직급을 파악한 것처럼, 안성곤도 손혜빈과 성필의 급을 짐작해보았다.
‘PD직함이 있다라……. 통상적인 프로듀서의 뜻은 아니겠지. 아직 가로 엔터는 직급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건가. 아까 봤던 사람이 매니저랬으니까…….’
활동 분야에 따라 직함을 정한 게 아니다.
즉, 손혜빈은 평사원 정도다.
소기업 체제이니 평사원이라도 할당된 업무나 권한이 상당하겠지만 말이다.
‘그에 비해 박성필 이사는.’
진짜 이사다.
프로듀싱에 지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급이 틀림없다.
그가 직접 맞아주었다.
작은 기획사가 KS 엔터를 대하는 예의로서는 부족함이 없다.
“뵙게 돼서 기쁩니다. 자, 앉으실까요.”
성필과 손혜빈이 안성곤과 그 부하 직원을 마주 보는 자리로 갔다.
대화를 주도하는 건 성필이었다.
“용건을 미리 말씀해주시지 않더군요.”
“예. 무례한 말씀이지만, 저희가 제시할 게 콘텐츠 자체였습니다. 혹시라도 밖으로 펴져 나가 도용당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정말 무례한 말이다.
가로 엔터에 말해줬다가 아이디어가 노출될 수도 있단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이디어에 민감한 콘텐츠 기획이니, 이해할 수 없진 않았다.
“콘텐츠를 저희에게 제시하겠다고요?”
“예. 영상을 하나 찍어주셨으면 합니다. 이게 관련 콘티입니다.”
제목, ‘죽고 못 사는 친구’.
출연자, 신아름과 김민주.
“아이튜브에 단발성 영상으로 올리면 좋을 거 같거든요. 지금 인터넷 반응은 아시죠?”
알다마다.
1월 말에 방영되는 아육금의 예고편이 올라왔었다. 그 때문에 인터넷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원래는 관심 있는 아이돌의 팬들만이 소소하게 떡밥을 주고받던 방송이었기에, 예고편도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할 예정이었으나.
모든 팬을 단결하게 만든 떡밥이 있었다.
바로 신아름이었다.
예고편에 400m 계주 장면이 일부 나왔다.
[김민주―――!]
적대감과 악이 가득 받친 신아름의 외침.
처음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쟤가 김민주를 싫어하나? 얼마나 싫어하기에?’란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신아름의 외침은 강렬했다.
정말 원수를 부르듯 했었다.
그런데 달리기가 끝난 듯 보이는 시점, 김민주가 신아름을 부축한 장면이 보였다.
둘은 서로를 인정하듯 미소를 지은 후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야말로 스포츠 만화의 한 장면이었다.
“예고편인데도 반응이 엄청나거든요.”
신아름과 김민주는 아육금 녹화 이후 같이 찍은 셀카를 각각의 SNS에 업로드했었다.
이로써 둘이 친한 사이란 게 밝혀졌다.
어떻게 친해졌냐고? 모르지. 어떻게든 친해졌겠지 뭐.
아무튼, 팬들은 둘의 케미를 점점 발전시켰다.
[김민주―――! 밥 먹어!]
이런 식으로 신아름의 라이브 영상을 편집해서 개그 컨텐츠를 확대 재생산했다.
[김민주―――!]
[왜?]
[사랑해요오♡]
팬들은 신아름과 김민주의 아이튜브, SNS 영상들을 교묘하게 짜깁기했다.
인터넷에서만큼은 둘이 커플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본 신아름은 김민주를 찢어 없애버리겠다며 날뛰었으나, 이게 좋은 일임은 틀림없었다.
‘콘텐츠의 확대 재생산 자체가 프로모션이고 마케팅이야. 소녀연맹의 팬도 크게 늘어날 거야.’
소녀연맹 팬은 물론, 케이어스의 팬들도 이 거대한 파도에 타고 있었다.
덕분에 아이튜브와 SNS의 아이돌 콘텐츠를 신아름과 김민주가 점령해버렸다.
‘우리도 이 기세를 몰아서 SNS 소통을 늘리려고 했지. 아이튜브 콘텐츠도 새로 기획해보고.’
하지만 가로 엔터에는 한계가 있었다.
머릿수가 적고 자본도 한정되어 있다.
무엇을 해보려 해도, 일단 아이디어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KS 엔터에서 먼저 제안이 온 것이다.
“기본적인 기획은 둘이서 경쟁 게임을 하는 거예요. 왜, 오락실이나 사격. 배팅장 같은 곳 있잖아요. 반응이 좋으면 시리즈로도 밀어 보고 싶은데, 어떠신가요?”
어떻냐고?
좋아 죽겠다 아주!
가만히 있으니까 KS 엔터에서 손을 빌려주네.
어쩌면 정호환 이사의 입김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그가 소녀연맹을 우호적으로 봐주고 있으니 말이다.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손 PD님은 어때요?”
손 PD란 호칭에 손혜빈은 일순 닭살이 돋았으나, 자연스레 성필의 말을 받았다.
“이 콘티대로만 진행하면 괜찮겠네요. 저도 좋아요.”
“알겠습니다. 뒤 페이지를 보시면 알겠지만, 제작팀은 저희 KS 엔터의 내부 인사로 진행될 겁니다. 제작비는 절반씩 부담하죠.”
KS 엔터는 내부 인원을 이용하는 것이니, 사실상 제작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불공정하진 않다.
가로 엔터는 아예 자체 제작이 불가능하니, 제작비를 절반 내는 것만으로도 이득이다.
‘긍정적이네.’
너무 긍정적이다.
그래서 도리어 걱정된다.
성필은 줄곧 신경 쓰이던 것을 물었다.
“콘텐츠는 어디에 올립니까?”
안성곤이 미소를 보였다.
무언가 숨기고 있던 자의 미소다.
이빨을 감춘 뱀과 같이…….
“각각 회사 채널에 올리죠.”
“…….”
성필은 무심코 ‘네?’라며 반문할 뻔했다.
당연하게도, KS 엔터가 제작권을 주장하며 자기네들 채널에만 올릴 줄 알았다.
KS 엔터의 힘을 생각하면 그게 당연했다.
가로 엔터는 ‘그래도 아름이 홍보되는 게 어디냐’ 하며 콩고물만 받아먹을 수도 있을 상황이었다.
“각각 회사 채널에요? 아, 혹시 편집 전 버전을 저희에게도 제공해주실 생각이신가요?”
“그렇죠. 각각 회사에서, 각각 자료를 가지고, 각각 편집해서 올리는 쪽으로요. 가로 엔터에는 편집 인력이 없으시겠지만, 외주는 가능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러면 양쪽에게도 이득이 아닐까요? 저희 채널의 영상을 본 사람들은, 가로 엔터의 영상도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안성곤이 자신의 손바닥을 겹쳤다.
“조회 수의 선순환이죠.”
성필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KS 엔터는 독점적 이익만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익을 공유하더라도, 그 이익의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했다.
머리 좋은 인간들만 모아두니까 저런 결과도 나오는구나…….
KS 엔터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분위기일 게 틀림없다.
“알겠습니다. 저희 쪽에서 검토해보고 이틀 내에 답변드리겠습니다.”
성필은 곧바로 ‘감사하다.’는 말을 꺼내진 않았다.
이미 얕잡힐 바닥도 없는 중소 기획사 가로 엔터지만, 쉽사리 생각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얕보일 언행이니까.
‘적어도 우리는 동등하단 느낌은 줘야지. 배경은 전혀 동등하지 않지만…….’
회의가 끝나고, 성필은 두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1층으로 같이 내려갔다.
“아, 괜찮습니다. 저희끼리 가도…….”
“아닙니다. 당연히 배웅해드려야죠.”
정말 이상하게도, 둘은 배웅을 굉장히 꺼려했다. KS 엔터의 사내 문화라도 되나?
그러면 미안해지는데.
“저, 사실은 소개드릴 분이…….”
가로 엔터의 문이 열리고, 안성곤이 당황해서 그 말을 뱉어낼 때쯤.
“어, 나 이제 들어가면 돼요?”
정호환 이사가 문 모퉁이에서 나타났다. 그는 안성곤이 성필과 같이 나타나자 눈에 띄게 당황했다.
“……크흠.”
정호환은 다시 모퉁이에 숨었다가.
“짜잔! 하하하! 박 이사님 오랜만입니다! 갑작스레 찾아와서 놀라셨죠?”
성필을 놀라게 하려는 듯 깜짝 등장했다.
“……아.”
성필은 깜짝 놀라주었다.
“정 이사님! 갑자기 웬일이세요! 오랜만입니다 정말!”
“흐하하! 그렇죠! 제가 찾아온다고 했잖아요!”
두 남자는 기쁨의 악수를 나누었다.
손혜빈과 안성곤이 그 둘을 한심하단 듯이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