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23화 (123/760)

123화

신아름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코스를 1/4 돈 시점, 신아름은 바통을 꽉 쥐고 팔을 앞뒤로 빠르게 움직였다.

한구인의 말이 떠올랐다.

‘이거 보이십니까. 사람은 달릴 때 팔과 다리가 반대로 엇갈려 움직입니다.’

‘당연하잖아요.’

‘예. 무의식적인 겁니다. 다리를 빠르게 하면 팔도 빠르게 움직이죠. 이렇게요.’

‘아니, 한 이사님 저를 얼마나 바보로 보길래 이렇게 간단한 것까지 설명해요?’

‘바, 바보로 보는 게 아닙니다. 역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바보로 보는 게 아니라 제가 그냥 바보라고요?!’

‘……아니요. 역으로, 그럼 팔을 빠르게 움직이면 다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구인은 빨리 달리는 법을 알려주었다.

‘다리도 같이 빨라집니다. 다리를 빨리 움직이는 것보다, 팔을 빨리 움직이는 게 더 쉽겠지요. 뇌를 속여서 일시적으로 육체의 한계를 깨는 법입니다. 팔을 빨리 움직이는 것만큼 다리도 빨리 움직여서, 결과적으로 달리기가 빨라집니다.’

‘그런 게 먹힌다고요?’

‘어느 정도 수준에서는 가능합니다.’

‘아타시(저)는 아닌데요!’

라고 말하며, 리카는 팔을 빨리 움직이며 느리게 달렸다.

‘……그렇군요.’

‘뭔가요, 그 맥없는 반응은. 아타시(제)가 놀렸다고 삐치신…….’

회상을 끝내고, 신아름은 팔을 빨리 움직였다.

정말로 다리가 더 빠르게 움직였다.

동시에 무릎과 허벅지가 아파 왔다.

불에라도 데인 듯 화끈거린다.

‘아.’

직감이 왔다.

계속 이렇게 달리면 넘어져서 크게 다치거나.

무릎이나 발목이 나가서 더 크게 다치거나.

그나마 잘하면 관절과 근육이 며칠 아프겠구나.

한구인이 말하길, 뇌를 속여서 일시적으로 육체의 한계를 푸는 거라고 했던가.

정말로, 신아름이 팔을 빨리 움직이는 대로 다리가 빨리 움직인다.

뇌는 혼동을 일으켜서 다리에게 명령한다.

더 빨리 움직여! 팔 움직이는 거 보니까 너도 이만큼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

그 결과 과부하된 힘을 못 이기고, 허벅지가 찢어지는 듯하며 무릎이 삐걱댄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코너다.’

[아, 아름 선수!]

중계진과 관객석이 경악한다.

신아름은 코너를 보자 그대로 발을 멈췄다.

펄쩍, 갑자기 가해진 마찰력에 신아름의 몸이 공중으로 크게 뜬다.

그리고 신아름이 착지하고, 자동차가 드리프트하듯 신발이 땅에 긁힌다.

치지직, 마찰을 이기지 못하고 신발의 밑창이 떨어진다. 그것을 넘어 아예 신발이 벗겨졌다.

신발은 날아가 카메라 근처의 장비를 때렸다.

신아름은 맨발로 몇 걸음 내딛더니, 다시 달린다.

3등을 따라잡았다.

* * *

학교 체육대회.

누가 어느 종목에 출전할지 정한다.

운동에 자신이 있는 남자들이 거들먹거리고, 여자들은 반의 단체티를 무엇으로 맞출지 화기애애하게 논의한다.

신아름은 이방인이었다.

불량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창밖만 보았다.

“아름이는 어디에 참여할래?”

반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안 나갈래.”

“아…….”

쟤 또 저러네.

아빠가 없어서 저런가.

반 아이들이 수군거린다.

“한 곳은 꼭 나가야 하는데…….”

“그럼 아무 데나 넣어.”

그렇게 신아름은 계주 선수가 되었다.

여자 중에서 계주 달리기에 지원하는 아이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체육대회 날, 신아름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이 온다는 모양이다.

‘씨…….’

원래 중학교 체육대회에는 부모님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학부모회에서 의견을 내어, 여유가 있는 학생의 부모는 참여하기로 했다.

학부모회는 일종의 카르텔 같다, 신아름은 그리 생각했다.

학생들의 엄마들은 전부 서로를 안다.

신아름의 어머니만이 일에 바빠 연을 못 쌓아서 면식이 없었다. 마치 신아름처럼, 그녀의 어머니도 소외된 것이다.

“아 창피해 죽겠네. 초딩도 아니고 뭔 도시락이야!”

“너 개맛있는 거 싸왔네. 나 하나만.”

모든 아이들이 도시락을 가져왔다.

저마다 운동장의 곳곳에 모여, 부모님이 가져온 도시락을 즐겼다.

신아름은 급식실로 갔다.

선생님들이 급식을 받는 곳으로 가서 밥과 국을 퍼고, 고개를 숙인 뒤 먹었다.

유리 벽 밖으로는 화기애애한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보인다.

신아름의 어머니는 일하러 갔다.

매일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릴 수 없다.

그래서 안 왔다.

“…….”

급식실의 선생님들은 신아름을 모른 척했다.

신아름은 밥을 먹고 밖으로 나와, 반 아이들이 모인 곳으로 갔다.

모두 반 단체티를 입었으나, 신아름은 입지 않았다.

단체티도 돈이다.

신아름은 단체티에 관해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름아, 네 차례야.”

신아름은 계주 마지막 차례였다.

첫 번째 주자, 반 아이들로부터 거센 응원을 받았다.

두 번째 주자, 환호성이 들린다.

세 번째 주자, 응원가가 울려 퍼진다.

네 번째 주자, 신아름.

“…….”

그저 달린다.

반 아이들은 응원을 해도 소심하게 작게 말할 뿐이었다.

신아름은 적막 속에서 달렸다.

자신의 이름 한 점 듣지 못하고, 바통을 부서질 듯 쥐고 달렸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귀찮다.

다 귀찮다.

그냥 대충 뛰자.

“아름아 파이팅! 힘내! 달려!”

최근에는 그럭저럭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렸다.

“이겨!”

성필이었다.

* * *

“아름아아아!”

백설하가 가수답게 커다란 음을 내질렀다.

뒤를 이어 소녀연맹 멤버들도 따라 응원한다.

“신아름! 신아름! 신아름!”

팬들도 신아름의 이름을 연호해준다.

그리고 들리지는 않지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의 안에는 성필도 있을 터였다.

“하아, 하악!”

숨이 거칠다.

머리가 하얗게 표백되는 듯하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로지 폐를 깊이 쑤시는 고통과 허벅지와 종아리를 데우는 열기, 관절의 삐걱거림만이 신아름의 머릿속을 채웠다.

2등을 따라잡았다.

* * *

“미안. 내가 일이 있어서 늦게 왔네. 여기 도시락 가져왔는데…… 이미 먹었지?”

성필이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신아름이 허, 짧게 웃음을 토했다.

“뭔데요. 팀장님 내 스토커야? 아이돌 안 하겠다니까요. 저 체육대회 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어머니한테 들었지.”

“와, 이젠 엄마한테도 가?”

“원래 갔었는데 왜 그래…….”

신아름은 성필을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한 달 전부터 집요하게 자신을 따라다니는 사람이다.

아이돌인지 뭔지를 하라는데, 안 하겠다고 말해도 성필은 포기하지 않았다.

“너희 어머님이 허락해주셨어. 와도 된다고. 왜, 민폐였어?”

“네. 저기 안 보여요? 반 애들이랑 쌤이 나 이상하게 보잖아요.”

성필을 뭐라고 생각할까.

간단하게 생각하면 친척 오빠 정도 되겠으나, 워낙 행실이 안 좋단 소문이 퍼져서 이상한 쪽으로 상상이 뻗칠 수도 있었다.

“그, 그렇네. 미안. 나 갈까? 교문 밖에서 기다릴 테니까, 학교 마치면 나랑 기획사 한번 가볼래?”

“자연스럽게 영업 섞는 거 뭐야.”

“저기…….”

담임이 와서 성필에게 어떤 분이냐고 물었다.

담임은 신아름에게 오빠가 없단 것을 알았다.

성필이 순간적으로 말이 막히자.

“사촌 오빠요. 엄마가 부탁해서 왔대요.”

“아…… 그렇구나. 아름이 담임입니다.”

“넵. 아름이 사촌 오빠입니다. 아름이 잘 부탁드립니다.”

담임이 떠나간 뒤, 성필이 물었다.

“난 이만 가는 게 낫겠지? 다음 경기도 준비해야 하고, 친구들도…….”

“누가 가래요? 여기 앉아요.”

“어?”

“심심하니까 대화 상대나 돼줘요.”

성필이 계단에 앉았다.

“그래서 뭐, 아이돌이란 거 돈은 잘 벌어요?”

“케바케야.”

“와, 어린애 인생 똥통에 박으려는 건 아니죠? 젊음만 바쳤다가 실패하면 어떡해요?”

“……반드시 성공시켜줄게!”

“망설인 거 다 보였거든요?”

신아름이 땅을 툭툭 차며, 별일 아니란 듯 말했다.

“근데 나 꿈 같은 것도 없고. 뭐, 목적이나 열정도 없거든요. 내가 아이돌 해도 돼요? 아이돌은 노력 많이 해야잖아요. 티비에서 봤는데.”

“아이돌을 꿈으로 하면 되지.”

“그니까 그게 내 꿈으로 적당한지 모르겠다고요.”

“음…….”

성필은 고민하다가 밝게 웃었다.

“내가 꿈이 되게 해줄게.”

“어떻게요?”

“재밌을 거야. 연습하는 것도, 아이돌이 돼서 활동하는 것도. 다 재밌게 해줄게. 아, 넌 뭐 할 때 재밌어? 이거 할 땐 진짜 행복하다거나.”

“없어요.”

“어?”

“없다고요.”

신아름은 자책했다.

이딴 어두운 말을 하면 잘도 대답이 나오겠다, 그리 생각하면서.

그런데도 성필은 간단히 말했다.

“이제 생기겠네.”

“뭐요?”

“내가, 네가 행복해할 걸 찾아줄게. 일단 연습생 되기나 해봐.”

신아름은 멍하니 있다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성필에게서 물러났다.

“저기요. 계약 기간 7년, 10년 이런 거 아니죠? 나도 알 거 다 알아요.”

“날 뭘로 보는 거야?! 그런 인간들 내가 제일 혐오하거든?!”

“독소조항 넣을 거죠? 나 착취하려고.”

“…….”

신아름은 바지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며 일어났다.

“계약서란 거 보기나 할게요. 가요.”

“어? 체육대회는?”

“재미없어요, 여기.”

신아름은 학교를 가리켰다.

“빨리 나가요.”

“……그래, 가자.”

성필은 신아름을 데리고 학교를 빠져나갔다.

* * *

숨을 들이마시면, 공기가 목에서 더는 들어가지 않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찼다는 게 이런 뜻이구나.

신아름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털어내고, 김민주의 등을 바라보았다.

거의 다 따라잡았다.

김민주는 결승선만 바라보다가, 뒤로 흘끗 돌아보았다. 그리고 자세를 낮추고 더 빨리 뛰었다.

신아름은 경악했다.

‘이거보다 더 빨리 뛸 수 있었어?’

나는? 더 빨리 뛸 수 있나?

있었다.

죽을 기세로 팔을 움직이니 다리가 따라왔다.

빨라진다. 빨라져서, 따라잡는다.

신아름이 김민주의 반걸음 뒤로 다가왔다.

그리고 더는 좁혀지지 않는다.

‘그만, 뛰고, 싶어.’

너무 아프다.

폐가 폭발하고 다리가 부러질 것 같다.

이대로 멈추면 편할 텐데.

자신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와중, 김민주의 등만은 뚜렷하게 보였다.

‘달리기에서도 못 이기는 거야?’

성필과 함께 서점에 갔던 날.

서점을 나오며 화냈던 그를 떠올렸다.

그는 소녀연맹이 은근히 무시 받았다는 데 굉장히 화를 냈었다.

화내는 게 즐거운 사람은 없다.

화가 났단 것 자체가, 기분이 좋단 뜻은 아니니까. 그래서 신아름은 그가 화를 내는 게 싫었다.

성필이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겨야 하는데.’

안 되겠다.

이제 진짜 한계다.

지금부터 대충 뛰어도 2등은 된다.

신아름이 다리에 힘을 풀기 직전.

“아름아!”

이제껏 입 다물고 있던 조아라의 외침이 들렸다.

풀렸던 신아름의 허벅지 근육이 다시 수축하고, 거칠게 땅을 박차도록 힘을 주었다.

쿵.

아까 코너를 돌 때 신발이 벗겨졌었다.

그랬기에 땅에 가하는 충격은 그대로 발을 타고 무릎을 강타한다.

고통.

다시 뛰면.

또 고통.

아프다. 그래도 뛴다.

‘이길 거야.’

멤버들이 이기길 바라니까.

“신아름! 신아름! 신아름!”

팬들은 대충 뛰는 자신을 보러 온 게 아니니까.

‘이번에 아쉽게 되셨네요. 신인상이요. 내년에는 다른 상 받으실 거예요.’

‘더 빨리 데뷔하셨으면 하나는 받으셨을 거예요.’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 오만한 김민주의 낯짝에 패배를 새겨줄 것이다.

마침내, 신아름은 김민주와 거의 어깨가 닿을 거리까지 좁혔다.

* * *

“엄마 나 진짜 잘할 자신 있다니까!”

신아름이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했다. 그녀의 앞에는 곤란한 표정의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신아름과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은 성필도 있었다.

“엄마아! 엄마아! 나 진짜 엄마한테 뭐 해달라고 한 적 없잖아아! 나 연습생 할래! 해볼래애!”

지금까지 신아름은 어머니의 죄책감을 이용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신아름은 어머니에게 무언가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었고, 그에 대한 어머니의 죄책감을 마음껏 이용했다.

“제발 부탁할게! 응? 나쁜 조건도 아니잖아!”

“아름아. 엄마는 네가 그냥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공부하고, 대학에도 가서…….”

“난 공부하기 싫, 아니, 공부하기 싫어서 연습생 된다는 게 아니라! 나 진짜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그래! 엄마 제발!”

이미 성필은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다.

그렇기에 신아름의 어리광에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결국 어머니는 계약서에 사인을 해주었다.

“엄마 사랑해!”

오랜만에 자식의 뽀뽀를 받으며,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신아름은 석세스 엔터로 나가서 성필과 기초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이 끝난 뒤, 성필은 마지막으로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말했다.

“팀장님은 꿈 있어요?”

“꿈? 어, 있지.”

“뭐예요?”

“최고의 아이돌.”

“이 되고 싶으세요? 너무 늙었지 않나?”

“나 20대 중반이야!”

“에이, 후반이지. 너무 올려치신다.”

“…….”

“으음, 최고의 아이돌을 만들고 싶단 거죠? 그럼 팀장님이 행복해져요?”

“몰라.”

“뭐예요 그게.”

“아직 이뤄본 적이 없으니까 모르지. 아마 행복하지 않을까? 애들 크는 거 보는 건 행복하던데.”

신아름은 거만하게 다리를 꼬았다.

“그 꿈, 제가 이뤄드릴게요.”

“꿈이 크네.”

“꿈은 원래 큰 거라면서요? 내가 팀장님한테 행복을 줄게요.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

“말만이라도 고맙다.”

“지금 날 못 믿는 거예요?!”

“왜 화내……. 나 이제 네 상사나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믿어요, 안 믿어요?”

“믿어.”

* * *

“김민주───!”

경기장 전체를 울리는 고함.

신아름은 악에 받친 외침과 함께,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그녀의 발목과 무릎이 한계를 넘어선 힘과 속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지러졌다.

신아름의 몸이 흰색 끈, 1등을 상징하는 끈을 휘감고 날았다.

쿵, 쿵, 쿵, 쿵.

땅에 몇 번을 찍히고 수 미터를 굴렀다.

“……!”

경기장 안이 고요해졌다.

소리를 듣지 못했더라도,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아픔이 전해졌다.

[아, 아, 아, 아름, 아름 선수가……!]

중계진의 비명과 동시에 스태프들이 부산스러워졌다.

그들이 재빨리 신아름에게 접근하기 직전, 김민주가 쓰러진 신아름의 몸을 정면으로 돌리고 앉혔다.

“야, 내 목에 팔 감아. 부축할게.”

“느, 놔. 너…….”

“우리 지금 친하게 보여야 해.”

“뭐?”

“너 아까 내 이름 부를 때, 넌 안 들렸어? 사람 진짜 잡아 죽일 듯이 불렀다고. 내가 그렇게 싫어?”

“…….”

“그 장면 방송 나가면 너, 우리 팬들한테 뭔 말 들을지 몰라. 사실관계가 없어도 물어뜯길 수 있어. 나도 웃을게. 너도 웃어. 아니, 아프면 못 웃나.”

김민주가 미소 지었다.

신아름도 얼떨결에 미소를 띠었다. 그녀는 김민주의 부축을 받고 천천히 일어났다.

무릎과 발목이 아리지만, 아예 못 걸을 정도는 아닌 듯했다.

바닥에 찧은 부분도 살이 떨어지진 않고, 마찰열 때문에 피부가 살짝 부은 정도였다.

“격려하듯이 어깨 두드릴게. 알겠지? 친하게 보여야 해.”

김민주가 신아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손길에서, 신아름은 김민주가 분노로 떨고 있단 사실을 알아챘다.

진 게 분한 것이다.

‘고작 달리기에서 졌다고?’

고작 달리기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신아름이 할 생각은 아니지만.

김민주의 승부욕은 비정상적으로 강했다.

아육금 달리기에서 졌단 이유로 이빨까지 덜덜 떨 정도면 말이다.

저런 성격이기에 KS 엔터에서도 데뷔조에 올랐겠지.

“너 왜 나 챙겨줘? 너도 이제부터 나 싫어할 거 같은데.”

“네가 리카랑 같은 그룹에 있어서. 빨리 괜찮단 뜻으로 손이나 흔들어.”

신아름과 김민주가 관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응급반이 다가왔다.

그 직전, 신아름이 씨익 웃었다.

“아, 그래. 내가 싫긴 싫구나? 나한테 져서?”

“…….”

김민주가 신아름의 목을 세게 감쌌다.

“나, 나 환자야!”

* * *

성필은 신아름의 응급처치가 행해지는 곳으로 들어갔다.

의료진이 신아름의 다리와 팔을 굽혔다 폈다 하며, 관절에 이상이 없는지 검사하는 중이었다.

“아름이 괜찮나요?”

“네. 크게 다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근육을 무리하게 써서 부었습니다. 관절은 이상이 없고, 피부에 찰과상은 약만 바르면 나을 겁니다.”

기적이다.

성필은 하늘에게 감사했다.

경기 때 신아름이 넘어지는 것을 봤다면, 누구든 기적이 아니라고 할 수 없으리라.

성필은 신아름을 부축하며 경기장 내부 복도를 걸었다.

“헤헤, 팀장님 봤어요? 제가 다 추월했어요! 브이.”

“응, 봤어.”

“근데 저 금메달 받아야 하지 않아요? 멤버들이 대신 받나? 하아, 아라 걔 뛰지도 않아 놓고 메달 받으러 가겠네.”

“……아름아. 너 1등이긴 한데. 메달은 못 받아.”

“네? 왜요?”

“중간에 신발 벗겨졌잖아. 그거 규칙 위반이래. 마지막에 점프해서 결승선 골인한 것도, 선수 안전 생각해서 금지된 거래.”

“네, 네? 둘 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잖아요!”

“규정이 그렇대.”

성필은 격려의 의미로 신아름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그래도 이겼잖아? 이야, 난 네가 추월하는 거 보는데 속이 다 뚫리더라. 방송에 나가면 팬 많이 생기겠어.”

“……음, 그렇, 네. 그렇겠네요. 제가 티비에 나오면 안 반하곤 못 배기죠. 으음, 그렇구나. 내가 1등이 아니…….”

신아름이 쪼그려 앉았다.

성필이 당황해서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니, 그녀는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또 졌어요오…… 케이어스한테에……. 이, 이겨, 딴 데서는 이겨야…… 신인상…… 판매랴아앙…….”

신아름은 아무 말이나 뱉어내며 눈물을 쏟았다.

그래서 성필은 그녀가 져서 우나 싶었는데, 아무 말 가운데서 성필이 이해할 이유가 있었다.

“최고의 아이돌…… 팀장님 행복하게 해준다고 약속했는데에…… 지기만 하고오……. 티, 팀장님 사람들 앞에서, 화, 화내게 만들고오…….”

성필은 머뭇거리다가, 신아름을 안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고마워. 고마워. 네가 날 생각해줬던 것만으로도 난 행복해.”

“거짓마알…….”

“고마워.”

고마워.

신아름은 그 고맙단 말이 너무나 고맙고 미안해서, 오래도록 울었다.

* * *

“오케이. 우리가 아무런 메달도 따지 못한 아육금은 1월 말에 방영이래.”

“우우우우! 그렇게 싫으면 팀장님이 뛰어요! 매니저 육상 금메달 같은 데 나가서 금메달 따던가요!”

“그런 게 어딨어.”

월요일 아침, 성필이 멤버들에게 일주일간의 스케줄을 알려주는 날이다.

“이번 주 스케줄은 목요일에 또 나눠서 알려줄게. 이게 될지 말지 몰라서.”

만약 정지음이 가로 엔터의 음악 퓨로듀서 직책을 받아들이면, 멤버들은 그와 함께 편곡 작업에 들어간다.

멤버들의 감성을 담아서 곡을 바꾸는 것이다.

미니 앨범에는 멤버들의 자작곡(편곡)이 하나씩 들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보자. 아라야?”

“네.”

“너 미국 갈래?”

“……뭔 뜻이에요? 날 죽이겠단 뜻이에요?”

“아니 그 미국 말고!”

“미국 간다는 게 왜 죽이겠단 뜻이야?”

리카가 장하양에게 그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아아. 만화에서 나온 거란 거네. 부모님이 돌아가신 애한테 ‘네 아빠는 미국 간 게 아니라 하늘나라 갔다’라고…….”

장하양이 우울하게 눈꼬리를 떨어뜨렸다.

“왜 그렇게 심한 말을 하는 거야…….”

“마, 만화 얘기니까요! 진짜가 아니니까요!”

“집중 집중! 그래서 아라 미국 갈래?”

“죽인단 뜻 아니죠?”

“아니라고!”

“갑자기 미국 갈래라고 물으면 내가 뭐라고 대답해요.”

후후, 성필이 의기양양한 웃음을 보였다.

“‘포스트 무브먼트 아카데미’라고 들어보셨나 모르겠네.”

“모르는데요.”

“……몰라?”

“네.”

“그, 댄싱스타 시즌7 봤지?”

“아 그거 한 3번은 재탕했죠. 리얼 레전드 시즌이잖아요.”

“거기 우승자가 연 댄스 학원이야. 너 거기 6주 과정으로 댄스 배우는 거 어떨까 해서. 교육과정 보면 어반 스타일, 스트릿 댄스, 컨템포러리 댄스 등이 있는데. 넌 스트릿은 어느 정도 되니까 컨템포러리로…….”

“갈래 갈래 갈래 갈래 갈래 갈래 갈래 갈래!”

“대답 빨라서 좋다.”

곧 새해를 맞는 가로 엔터의 첫 번째 계획.

‘아티스트 역량 상승 계획’이 첫 시작을 알렸다.

최초의 대상은 조아라였다.

‘아라를 혼자 안무 창작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해.’

요컨대, 미래의 조아라를 현대로 불러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의 그녀가 가질 기량을 좀 더 빨리 달성시키는 것이다.

“아라쨩 좋겠다 미국 가서.”

“응. 미국 가는 거 부럽다.”

“나도 미국 안 가봤는데. 아라는 먼저 가겠네.”

“……기분이 좀 이상한데.”

그렇게 조아라의 미국행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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