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19화 (119/760)

119화

WMMA.

한국 최대 음원사가 진행하는 연말 대중음악 시상식이다.

연말이면 집집마다 이 방송이 켜져서, 한 해 인기 있었던 음악이 울려 퍼진다.

김채현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시상식을 보았다.

“신인상이다!”

눈은 텔레비전을 보고, 손은 덕질 메이트인 이선주와의 페메(SNS 메신저)로 바빴다.

[후보 오름!]

[소련이들이 못 오르면 오를 애들 없음 ㅋㅋ]

동시에 커뮤니티 반응도 계속 확인했다.

소녀연맹이 신인상을 받으리라 예측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받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야 경쟁 상대가 너무도 쟁쟁하잖은가.

올해 데뷔한 그룹만이 아닌, 작년 데뷔 그룹도 신인으로 칠 수도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케이어스가 있으니까.’

김채현도 소녀연맹이 먼저 데뷔하지 않았다면 케이어스 덕질을 시작했을 수도 있었다.

그 정도로 케이어스는 대단했다.

음원 차트 1위.

역대 신인 걸그룹 데뷔 초동판매량 1위.

여하튼 전부 1위를 걸고 나오는 재수 없는 년들…….

‘이런 생각 하면 안 돼! 케이어스 좋아하는 분들한테 실례잖아.’

그리고 케이어스의 에리카가 리카와 친한 사이라고 한다. 그러니 응원했으면 응원했지, 욕은 하면 안 된다.

“나, 나온다.”

올해의 여자 신인상.

[케이어스!]

혹시나가 역시나.

김채현이 급격히 쭈그러들었다.

이미 예상한 결과지만…… 그래도 기대했다구…….

“미안해 우리 소련이들…….”

케이어스가 근처의 아티스트들에게 허리를 꾸벅꾸벅 숙이고 무대를 향해 걸어 나갔다.

중간에 소녀연맹의 모습이 잡혔다.

소녀연맹 멤버들은 밝은 표정으로 케이어스를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김채현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내년에는 내가 꼭 상 받게 해줄게. 꼭! 그러니까 너무 상심하진 마…….”

아이돌의 기쁨은 곧 팬의 기쁨이다.

동시에 아이돌의 슬픔은 곧 팬의 슬픔이다.

소련이들은 저 자리에 앉아서 얼마나 씁쓸할까. 후보로 올랐으나, 정작 하는 일이라곤 박수 기계일 뿐인데…….

“방학 때 돈 열심히 모아서 다음 앨범은 열 장씩 사줄게.”

“에휴, 부모님한테나 좀 그렇게 해라.”

같이 방송을 보던 어머니가 일침을 놓았다.

“당신도 나랑 연애할 때 쿨드인지 콜드인지 하는 놈들 앨범 수십 장씩 샀잖아. 백날 천날 나만 밥 사고 데이트 돈 내고.”

“아, 아니, 그 얘기를 왜 지금 꺼내고 그래. 여보 시험공부 할 때는 내가 다 뒷바라지했잖아.”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좀 섭섭했다고.”

“돈 내기 싫으면 안 만나지 그랬어.”

“매일 보고 싶은데 어떡해.”

“여보…….”

어머니와 아버지가 벌이는 애정 행각에 김채현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년에는 신인상 반드시 타자!’

* * *

“신인상, 케이어스!”

또.

“올해의 신인상, 케이어스!”

또.

“케이어스 축하드립니다!”

또. 또.

또 또 또 또 또 또 또 또 또 또.

“이럴 거면 우린 왜 불러다 놓는 거예요? 아니,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박수 쳐주는 기계냐고요!”

조아라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오늘로 모든 시상식 참여를 끝냈다. 그러나 소녀연맹에 돌아온 상은 하나도 없었다.

항상 신인상 후보에 오르기만 할 뿐, 모든 상을 케이어스가 쓸어갔다.

음원, 앨범, 전문가 평가, SNS 지수, 투표 등등.

모든 면에서 케이어스가 우월했으니 당연했다.

“이럴 거면 부르지를 말든가! 그냥 자기들 혼자서 박수 치고 노래 부르고 끝내면 되잖아!”

조아라의 분노에 멤버들 전원이 공감했다.

그 성격 좋은 장하양마저도, 마지막 시상식을 끝냈을 땐 눈에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기대는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구름에 닿을 듯 하늘로 올려줬다가 떨어뜨리면, 그 상실감은 더욱 커진다.

지금 소녀연맹이 그러했다.

이렇게 시상식을 많이 나가는데 하나 정도는 받겠지?

아니었다.

철저하게 케이어스에게 짓밟혔다.

“짜증 나 씨…….”

조아라가 거칠게 옷을 벗어서 식탁 의자에 걸어두었다.

“내년에는 어떻게 되나 보자. 우리가 대상 타서 다 짓밟…….”

“아라야. 옷은 제대로 벗어둬.”

“넵.”

장하양의 지시에 조아라가 옷을 차곡차곡 옷걸이에 걸었다.

“내년에는 어떻게 되나 보자. 우리가 대상 타서 다 짓밟…….”

조아라가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리카가 급히 벨소리를 줄였다.

“고멘(미안). 아라쨩 하고 싶은 말 다 끝내.”

“……됐어.”

“그럼 받을게.”

리카는 전화를 받았다.

“모시모시(여보세요).”

[리카아!]

스피커 모드도 아닌데 에리카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영통이야 리카! 귀 말고 얼굴 보여죠!]

“에리카아!”

리카와 에리카가 화면에 뽀뽀하고 볼 비비고 아주 난리가 났다.

에리카는 시끌벅적한 곳이라도 있는지, 그녀의 목소리와 소음이 함께 퍼졌다.

“에리카 어디야? 케타이(핸드폰) 받은 거야?”

[응! 나 휴가받았어. 그래서 폰도 잠깐 받았어!]

“휴가? 좋겠다! 아, 신인상 축하해! 신인상 8관왕 짝짝!”

[응 고마워.]

“자랑하려고 전화했나…….”

조아라가 떨떠름히 궁시렁댔다.

“어디야? 놀고 있어?”

[응! 우리 애들이랑 같이 놀러 나왔어.]

[리카 하이.]

[여어, 히사시부리(오랜만).]

“아하핳! 민주 일본어 발음이 아직도 안 좋네!”

[소난다(그렇구나).]

“그래도 옛날보단 훨씬 좋아. 옛날의 민주는 이북에서 온 북한인 같은 느낌이었거든.”

[응, 너도 평안남도에서 온 새터민 같았는데 지금이 훨씬 낫다. 난 공부 열심히 하는 중이야. 우리 곧 일본에서도 앨범 내.]

“헤에, 스고이(대단해).”

일본에서 앨범을 낸다니.

별세계 이야기 같다.

“그런데 진저는?”

“진저는 오늘 같이 안 왔어.”

“에에, 난데(어째서)?”

“연습하겠대. 대단한 애야.”

“대단해!”

다시 영상 통화 화면은 에리카에게 넘어갔다.

[리카는 뭐해?]

“아타시(나)는 숙소야.”

[이제 활동도 끝났잖아. 일 없잖아. 놀러 가거나 안 해?]

“아직 모르겠어.”

[헤헤, 놀러 가야지. 갈 사람 있잖아?]

“마아(뭐어), 가고 싶은 곳은 많지! 일단 멤버들이랑 부산에 가고 싶…….”

[이에(아니) 이에, 그분 있잖아 그분!]

“에?”

화면 안의 에리카와 케이어스 멤버들이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오버스런 반응을 보였다.

에리카의 말 안에 담긴 의미를, 소녀연맹 멤버들도 알아챘다.

“다레(누구)…….”

[그분, 방송국에서 같이 앉아 있던 분.]

“에?”

[리카 부끄러워한다 아하하핰!]

리카는 백설하의 눈치를 살폈다.

백설하는 인자하게 웃으면서 더 대화하라는 듯 고개를 까딱했다.

리카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통화를 이어갔다.

“에, 에이이. 에리쨩 재미없어. 내가 언제 그랬냐구…….”

[‘우리 리카가 제일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그때 내가 와서 얘기 멈췄었지?]

“아, 아아, 아아아아아! 아레(그거)!”

[소오요(그래).]

“아레와(그건)…….”

[괜찮아. 나 눈치 있잖아.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아, 미안. 스탠딩 끝났어. 가볼게! 리카 쪽!]

통화가 끝났다.

리카는 조용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네 명을 보았다.

“리카.”

백설하의 서늘한 목소리가 심장을 날카롭게 팠다.

“앉아.”

“네.”

인민재판이 열렸다.

“리카. 상대는 아이돌이야?”

“아, 아니요. 오해…….”

“아이돌이 아니면 스태프?”

“그게 아니라요…….”

“바, 방송국 관계자? 리카,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한 거 아니…….”

“박 이사님 얘기라구욧!”

아까보다 더 심한 침묵이었다.

어찌나 조용한지 창문을 두드리는 겨울바람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갑작스레 장하양이 핸드폰을 꺼냈다.

“언니, 사장님한테 바로 보고할게요.”

“이렇게 빨리?! 저 조금 상처받는데요?! 사장님한테 알려지면 아타시(저) 퇴출이라구요! 위약금 2배라구요! 그럼 빚이 2, 3억이라구요?! 저의 집안이 파산해버려요!”

“리카, 넌 계약을 어긴 거야. 계약은 약속이야. 약속을 어겼으면 벌을 받아야지. 박 이사님도 같이. 둘 다 영원히 회사를 떠나. 그리고 헤어져. 12살 차이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야.”

“하양아 그건 너무 심하잖아…….”

리카가 잘못하긴 했지만 이리도 간단하게 퇴출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연애하는 게 밝혀지면 그만한 피해가 오긴 한다만, 장하양의 결단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나중에 사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네요. 제가 잘못했네요.”

“맞아, 하양아. 일단 리카 얘기를 더 들어보고 정해도 안 늦…….”

“헤어지고 박 이사님만 내보내자. 아예 리카랑 못 만나게 다른 기획사로. 그리고 리카 넌 폰에서 이사님 번호 지우고 영원히 외출 금지야.”

“손나(그런)!”

“아니, 하양아 진정 좀…….”

백설하는 장하양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주머니에 넣었다.

정말 전화를 걸기 직전이었다.

그러니 이제 다른 멤버가 바통을 받듯 입을 열었다.

“와, 리카 너 좀…… 심하다…….”

신아름이었다.

“어떻게 팀장, 아니, 이사님이랑 그래?”

리카는 변명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갑자기 한껏 오만해진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소다(그렇다). 아타시(나)는 이사님이랑 사귄다. 그래서 불만인가? 아타시(내)가 두려운가?”

“이젠 아예 당당하네. 아이돌이 사귀는 것도 같은 아이돌이면 그나마 낫지. 회사 사람이랑 사귀는 건 진짜 보통 일이 아니야. 팬이랑 사람들이 우리 회사를 어떻게 보겠어?”

“아니, 회사 사람이랑 사귀는 건 문제가 아니…….”

“하양 언니. 그게 어떻게 문제가 아니에요.”

“…….”

“리카, 네가 우리한테 피해 줄 생각이 없고, 우리를 사랑한다면, 당장 헤어져. 우리도 오늘 일 없던 걸로 칠게. 다시 옛날처럼 지내는 거야.”

“야다(싫어).”

신아름이 무슨 뜻이냐는 듯 조아라를 보았다.

“싫대.”

“하아…… 넌 말로 해서 안 되겠, 하양 언니 참아요! 참아요! 손에 든 거 뭐예요! 빨리 저거 뺏어!”

리모콘이었다.

장하양은 조아라에게 속박당한 채로 계속 리카만 노려보았다.

“대충 알겠네요. 언니들이랑 아름이가 아타시(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리카.”

장하양은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오랜 연기로 단련된 미소를 지었다.

“이건, 나는 너를 좋아하지만, 사랑하지만, 이건, 이건, 신뢰의 문제야. 우리는 팀이잖아? 맞지? 나도 네 마음을 막고 싶진 않아. 이해해. 그런데 우린 이제 막 데뷔했잖아? 조금은 참을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참고 있단 말야. 연애 금지 조항 해제될 때까지만 기다리고 지금 당장 헤어져. 우리 리카, 언니 말 알겠지?”

“시리마센(몰라요).”

“언니 참아요! 므, 뭔 힘이 이렇게 세! 매일 운동만 하더니!”

조아라가 필사적으로 장하양을 잡았다.

다들 그녀의 분노를 이해했다.

아이돌은 장난이 아니다.

항상 이상적인 꿈을 이야기하는 성필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아이돌은 돈을 얻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녀들의 젊음을 갈아 넣어 돈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그런데 그 작업이 보상도 못 받고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아라쨩은 나 이해하지?”

“어? 무슨 소리야. 넌 이제 내 마음에서 삼진아웃 경기 끝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 팀 해체야.”

“히도이(너무해)!”

“너무한 건 너잖아! 들킨 게 에리카가 아니라 방송국 관계자나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라고! 내일이면 우리 다 길바닥행이잖아!”

“아라야 맞지? 그치? 너도 나 이해하지? 이거 좀 놔줄래? 나 할 게 있어.”

“언니는 가만히 있어요…….”

팔짱을 낀 채 대화를 관망하던 신아름이 치고 들어왔다.

“그래서 안 헤어지시겠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몰라? 우리랑 회사에 피해 주겠단 거야?”

“소다(그렇다).”

“진짜 넌 어떻게, 팀장님이랑, 하아…….”

조아라는 별종이라는 듯 신아름을 흘겼다. 그러다가 어이가 없단 투로 말했다.

“야 신아름 너도 남친 있잖아.”

분위기는 더더욱 파멸을 향해 달려갔다.

“나?! 내가 무슨 남친이야!”

“너 옥상에서 통화할 때 다 들었거든?”

“옥상? 내가 옥상에서 통화하는 거면…….”

“변명하지 마. 연인이 아니고야 누가 ‘알라뷰’란 말을 하냐고. 말투도 기분 나쁘게 애교 섞고. 너 어머니랑 통화할 때도 방에서만 하잖아. 남친 맞지?”

백설하는 이마에 손을 짚고 휘청거렸다.

이제 막 데뷔했을 뿐인데 어찌 이런 시련이…….

안 그래도 리카와 성필이 사귄단 말을 듣고 스트레스 지수가 극도에 달했는데, 이젠 그냥 신경 끄고 기절하고 싶을 정도였다.

“너도 우리한테 숨겼으면서 리카한테만 그러는 거 너무 내로남불…….”

“그거 팀장님이랑 전화한 거야!”

백설하의 시야가 뒤집혔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모든 감각이 차단됐다.

지독한 현기증이다.

“손나(그런)! 이사님이?!”

리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놀랐다.

멤버들은 그런 리카의 반응을 이해했다.

자신과 연인인 줄 알았던 성필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니, 누구든 충격받을 것이다.

“미친 돌았나. 아, 아저씨가 여, 여여, 연습생을 노리는 그런, 미친, 19살만…….”

“아라야 이제 언니 좀 놔주면 안 될까? 나 이제 진짜 참는 것도 한계거든? 넌 이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거야? 용기가 없으면 내가 하는 거 구경만 해도 되거든? 빨리 놔줄래?”

“박 이사님이 왜…… 리카랑, 아름이랑…… 왜…….”

조아라, 장하양, 백설하가 더 이상해지기 직전, 신아름이 성필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하이.”

[어. 밤에 웬일이야.]

“팀장님 여자친구 있어요?”

[너무 고전적인 수법이라서 걸려주기 싫은데.]

“제 친구 소개해주려고 물어보는 거예요. 애인 있어요?”

[내가 네 친구를 왜 소개받아?!]

“그럼 없는 거죠? 끊을게요.”

[야, 너 진심이야? 돌아버린 거야? 뭔 개소리를 하고 있…….]

“알라뷰.”

[어, 미투. 아, 아니 너 진짜 왜 전화했……!]

전화를 끊은 신아름이 보란 듯 으쓱였다.

“저랑 이사님 옛날부터 인사말로 알라뷰, 미투라고 썼어요. 석세스 엔터 때부터요. 됐어요?”

“우라야마시(부럽다).”

“……넌 왜? 뭐가?”

리카는 장난의 끝이 다가왔음을 예감했다.

크큭.

리카가 낮게 웃었다.

“……우, 웃겨?”

지독한 현기증에서 깨어난 백설하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

“네. 너무 웃겨요.”

“리카 너……!”

“저, 이사님이랑 그런 사이 아니구요. 에리카가 뭘 들은 거냐면…….”

리카가 방송국에서 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리카가 신아름의 농담을 듣고 삐쳐서 밖으로 뛰쳐나갔던 때.

성필이 리카를 찾으러 갔던 때였다.

“그러니까, 제가 에리카한테 자격지심을 느껴서요. 이사님이 에리카보다 저를 저 좋아한다고 해주신 거예요. 그때 에리쨩이 온 거구요. 이제 이해하셨나요?”

“그딴 말을 믿으라고?!”

“하양 언니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리카는 성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달링! 오늘도 수고했어용! 내일 아타시(저)랑 같이 1박 2일로 바다에 놀러 갈까요!”

[아름이도 그렇고 대체 뭐야. 애들이랑 벌칙 게임이라도 하냐? 나 상처받을 거 같은데. 아니, 상처받았다. 나 울어야 해서 전화 끊을게.]

“죄송합니다. 사실 벌칙 게임이었어요. 벌칙 수행 끝냈으니까 끊을게요.”

[너무하다 진짜……. 니들 다 악질이야…….]

“에헤헤, 농담이에요! 오늘 수고하셨다고 전화하려구 전화했어요!”

[이미 기차 떠났다.]

리카와 성필의 대화는 도저히 연인의 것으론 들리지 않았다.

조아라는 서서히 장하양을 잡은 팔의 힘을 풀었다.

“네네, 들어가세요!”

[응. 너도 잘 자라. 그리고 업무 전화 아니면 하지 마. 나도 개인 시간이 있잖아.]

“히도이(너무해)!”

전화를 끊고, 리카는 의기양양하게 미소 지었다.

“다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장하양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미안. 리카가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잠시 너무 흥분해서…….”

“그럴 수 있죠. 저라도 충격받…….”

“근데 속인 네가 나쁜 거잖아. 처음부터 제대로 말했으면 되지 않았을까?”

“말하려고 했는데 다들 어림짐작해서 아타시(저)를 몰아붙였잖아요?!”

“……미안.”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리카에게 사과했다.

오해였다 해도, 너무 리카를 몰아붙였다.

“아타시(저)는 실망했어요. 저는 모두가 같은 상황이었어도 이해할 생각이었어요. 설하 쌤이 사장님이랑 사귄다고 했어도 축하해줬을 거라구요!”

“내가? 사장님이랑?”

“그런데 고작 이런 일에 저를 퇴출시키라니 뭐니…….”

“고작 이런 일은 아니지. 아이돌이 회사 사람이랑 사귄다는 건 치명적인…….”

“그래서 미안하지 않단 건가요?! 제 마음에는 커다란 상처가 생겨서 곪아가고 있다구요! 맹장염보다 아파요!”

“……미안.”

장하양을 필두로 멤버들이 다시금 사과했다.

“그리고 그 말은.”

“……?”

“제가 한동안 삐칠 거란 뜻이죠. 흥!”

다음 날은 휴일이었다.

그날, 리카는 왕 취급을 받았다.

침대에 누워만 있어도 다들 리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줬다.

장난스레 말하긴 했어도, 리카는 정말 상처를 받았었다.

* * *

“이사님.”

백설하가 눈에 띄게 들뜬 목소리로 성필을 불렀다.

“어, 설하야. 오늘 기분 좋은가 보네.”

“헤헤, 아니요. 여쭤볼 게 있어요.”

“뭔데?”

“저희, 뮤비 조회 수도 높고요. 음반도 많이 팔았잖아요. 뭐, 방송이나 그런 거…… 안 들어왔나요? 들어올 법한데.”

“하나도 안 들어왔는데.”

백설하의 기쁨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이사님 너무해요!”

백설하 친위대1 리카가 성필의 앞에 섰다.

“이사님 요즘 설하 쌤한테 좀 심한 거 아닌가요! 쌤한테 반말하고 난 뒤로 너무 막대해요!”

“내가?”

“쌤이 방금 말로 얼마나 상처받았겠어요!”

“아냐. 리카 나 괜찮…….”

“아저씨 요즘 좀 그런 편이지.”

백설하 친위대2 조아라가 성필의 앞에 섰다.

“단칼에 부정하는 건 너무하잖아요. 어제 쌤이 얼마나 기대했는지 알아요?”

“아라야 그만…….”

“우리 뮤비 댓글 보면서 ‘헤헤, 우리 티비도 나가겠지?’라거나 ‘으응,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알아보면 어떡할까?’라거나 ‘예능에서 소개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라면서 행복회로만 태웠다고요.”

“제발, 그만…….”

“이사님 사과하세요! 설하 쌤의 마음에 난 상처는 고작 사과로 아물지 않지만요!”

“미안하다.”

성필의 사과로 백설하의 수치심은 극에 달했다.

“근데 나갈 방송이 하나 있긴 해.”

“에, 어떤 방송인가요!”

“아육금.”

아이돌스타 육상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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