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가로 엔터에는 불가사의가 하나 있었다.
바로 리카였다.
아니, 리카가 불가사의한 존재란 뜻은 아니고.
“리카가 데뷔조에서 떨어졌다고?”
그 의문 자체가 불가사의였다.
처음 홍규헌이 리카를 보았을 때도, 다른 멤버들이 리카를 보았을 때도.
도저히 리카는 데뷔조에서 떨어질 실력이나 비주얼이 아니었다.
그 어느 회사를 가더라도 데뷔조의 자리로 발탁될 만큼 재능이 있다.
노래도, 춤도, 성격도, 그 무엇이든지.
‘리카 떨어뜨리고 어떤 분들이 데뷔조로 올라갔나 했는데…….’
백설하는 이 순간,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됐다.
갑작스레 나타난 케이어스란 그룹.
그녀들은 대기실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남다른 아우라를 뿜어냈다.
먼저, 비율이 말도 안 된다.
마치 모델을 모아서 그룹을 꾸린 것만 같다.
게다가 얼굴은 또 어떤가.
그룹마다 있는 비주얼 센터들을 모아둔 것만 같다.
케이어스의 뒤로 보이는 포유 멤버들이 평범하게 보일 지경이다.
같은 아이돌과 비교해도 이토록 압도적이다.
비주얼만으로 말이다.
“안녕하세요!”
케이어스 멤버들은 대기실을 쭉 순회하면서, 한 명 한 명 얼굴을 맞추고 앨범을 내밀었다.
“저희 앨범이에요!”
에리카는 가장 먼저 백설하에게 앨범을 주었다. 그러자 백설하는 당황했다.
버젓이 기획사 관계자로 보이는 성필이 있는데도, 백설하에게 먼저 다가온 것이다.
‘예절 교육을 안 받았나……?’
비하적인 의미가 아니라, KS 엔터나 여타 기획사에서는 예의와 예절을 교육한다.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부터 대기실에 들어갔으면 인사를 하는 순서까지도.
사소한 것부터 실수가 없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그럴 텐데, 에리카는 백설하를 먼저 찾았다.
“아, 네. 감사합니다.”
백설하는 성필의 심기가 상하진 않았나 걱정하면서, 떨떠름하게 앨범을 받았다.
그리고 앨범에 손을 가져다 댄 순간.
‘아.’
앨범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백설하는 시선을 위로 올려 에리카와 눈을 맞추었다.
그녀의 표정은 자연스러운 미소였으나, 떨리는 손은 그녀의 긴장을 말해주고 있었다.
‘긴장하고 있구나.’
아무리 큰 기획사에서 데뷔했더라도 신인은 신인이다.
게다가 케이어스는 오늘 처음 방송국에 왔다.
모든 게 새롭고 긴장되며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백 번 교육받은 예의마저 잊고, 가장 가까이 있던 백설하에게 앨범을 먼저 준 것이다.
“잘 들을게요.”
“감사합니다!”
“저는 백설하라고 해요.”
“네, 알아요! 뮤비도 보고 곡도 들었어요! 프랑스 혁명!”
에리카가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고 깃발을 흔드는 듯한 모션을 취했다.
백설하가 나온 뮤비의 한 장면을 흉내 내는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 혁명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뮤비 해석까지 본 모양이다.
“저도 나중엔 그런 식으로 뮤비 찍어보고 싶어요. 저 처음 보고 영화 찍은 줄 알았잖아요.”
“감사합니다.”
백설하는 그녀에게 살짝 더 다가가서 속삭였다.
“뒤에, 저분부터 앨범 드리세요.”
“네? 아, 아아!”
그제야 실수를 깨달은 에리카는 허겁지겁 성필의 앞으로 가서 앨범을 내밀었다.
“저, 케이어스 에리카입니다!”
에리카는 아까와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실수했단 생각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저 몸만 기계적으로, 연습한 대로 움직였다.
“저희 앨범이에요!”
“감사합니다.”
성필이 앨범을 집었다.
그 순간, 에리카는 명백한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놀라서 성필을 보니, 그는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덜덜 떨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둔 청년 같았다.
“하, 하하, 저.”
입을 뗀 성필의 목소리마저도 흔들려서, 그가 긴장하고 있단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크흠. 매니저님은 같이 안 오셨나요?”
“어…… 네! 원래 인사는 사녹 끝나고 다니려고 했는데요. 리카가 있대서 보러 왔…… 아니! 인사드리려고 온 거죠 네네!”
“하하, 궁금할 만하죠. 같이 기획사에 있던 동료였잖아요. 앨범 잘 들을게요.”
“네!”
“사인도 있죠?”
“네? 네! 정성 들여 썼어요! 전부 다 제 손으로 했어요!”
앨범을 품에 넣는 순간까지 성필은 떨고 있었다.
에리카는 그를 이해했다.
그녀가 앞에 섰을 때, 남자들이 궁지에 몰린 쥐처럼 움츠러드는 경험이야 수도 없이 많았다.
굳이 가까이 있지 않더라도, 시선만 줘도 얼음처럼 굳어버리기까지 했다.
‘근데…….’
에리카는 흘끔, 성필의 어깨너머를 보았다.
소녀연맹 멤버들이 있었다.
저런 아이들을 매일 보고 사는데, 자신을 본다고 이렇게 긴장한다고?
보통은 익숙해질 텐데, 이상하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성필은 앨범을 받고 한동안 홀린 듯이 그것만 바라보았다.
“리카, 다음에 또 보자. 아니, 내일 보자! 내일도 방송 나오지?”
“응!”
“나 아직 기획사가 폰을 안 줘서 연락은 못 하지만, 폰 받자마자 연락할 거니까. 나 잊어버리면 안 돼?”
“아타시(내)가 에리카를 왜 잊어!”
그 뒤로도 리카는 에리카, 그리고 케이어스 멤버들과 애정 어린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가 나가자, 신아름이 성필의 옆으로 다가왔다.
“거기 뭐라도 묻었어요? 왜 자꾸 보고 있어요?”
“응, 아니야. 그냥.”
성필은 앨범을 신주 모시듯 가방 안에 넣었다.
“리카, 근데 케이어스가 무슨 뜻이야?”
“시라나이(몰라).”
“같은 회사에 있었잖아. 안 가르쳐줬어?”
“나는 평범한 연습생이었으니까. 그룹 이름 같은 건 안 가르쳐주지.”
“KS에서 따온 거 아니야? 케이에스, 케이어스. 기획사 이름이랑 맞춘 거지.”
“오, 신아름 꽤 하네.”
“카오스(Chaos)에서 따온 거래.”
핸드폰으로 검색한 장하양이 진실을 알려주었다.
“지루한 질서를 넘어 창조 이전의 혼돈처럼 무질서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겠다는 의미…… 라고 위키에 나와 있는데?”
“와, 뭐야 그게. 좀 오글거린다.”
조아라가 헛웃음을 지었다.
원래 아이돌의 이름 소개나 세계관이란 건 오글거리는 법이지만, 조아라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언니도 그렇죠?”
“아하하, 억압적인 세상에 맞서 싸우는 소녀들의 연맹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
“……나는 우리 이름이 더 좋아요.”
조아라는 장하양의 양비론적 엮어 까기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처음엔 이상하다고 생각했어도, 이제는 소녀연맹이란 이름과 하나가 됐기 때문이다.
“아저씨, 하양 언니가 우리 그룹 이름 이상하대요. 소녀연맹 이름의 아버지로서 뭐라고 말 좀 해줘요.”
“…….”
“아니 뭔.”
성필은 어느새 또 가방에서 앨범을 꺼내어 보고 있었다.
조아라는 그가 손에 꼭 쥐고 있는 앨범을 휙 뺏었다.
“야 야 뭐 하는 거야!”
“여기에 아까 걔 번호라도 적혀 있어요? 뭘 계속 보고 있어?”
자세히 살폈지만 평범한 앨범이었다.
패키지 안쪽에 자필로 쓴 사인과 짧은 글이 있는 것 외엔 특이하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아까부터 왜 이 앨범만 자꾸 보고 있어요? 아저씨 얘네 팬이에요?”
“줘.”
성필은 조아라에게서 앨범을 낚아챘다.
“이거 초판이잖아. 사인본이고.”
케이어스의 데뷔 앨범 초판 사인본.
전생의 성필도 가지고 있었으나, 직접 그녀들에게 받은 건 아니었다.
몇 다리를 건너서 받았기에,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보다는 가치가 떨어졌었다.
‘내 손에 이게 들어오다니…….’
미래 케이팝 걸그룹의 정점에 서게 될 아이돌의 앨범이다.
데뷔 앨범 초판 사인본!
비록 완전한 패키지가 아니라 투명 케이스에 재킷만 입힌 버전이지만, 그래서 더 가치가 있었다.
희소하니까!
“그게 왜요? 다른 그룹들 앨범 받았을 때는 안 이랬잖아요.”
팬이니까 그렇지!
라고 대답하려던 성필은, 자신에게 쏘아지는 다섯 쌍의 눈을 보자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아, 시간 됐네. 가볼게. 빨리 돌아올 테니까 잠시만 너네끼리 있어.”
“보고 싶은 무대란 것도 걔네들이에요? 케이어스?”
“……응.”
“나도 갈래.”
“아라 너도?”
“네. 뭣 땜에 아저씨가 이러는지 알아야겠어요.”
“내가 뭐.”
“걔들 들어오자마자 넋 나가서 침 질질 흘렸잖아요.”
“침은 안 흘렸어!”
“아타시(나)도 갈래!”
“나도.”
다섯 명 전부 케이어스의 사전 녹화 무대를 보러 가기로 결정됐다.
성필은 의도치 않게 학생들을 인솔하는 선생님과 같은 상황에 처해졌다.
무대 관객석의 뒤에는 스태프들이 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이 있다.
민경섭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곧 연락하려고 했는데 딱 맞춰 왔네요. 이제 무대 설치 끝나가요. 응? 너희들도 왔어?”
“하이(네)! 제 친구들의 데뷔에요!”
“네 친구? 아, 너 KS 엔터 연습생이었다고 했지. 그럼 케이어스 애들 알겠네?”
“네! 방금도 얘기하고 왔어요!”
“다른 애들은?”
“얼마나 잘하는지 보려고요.”
그리 말하는 조아라의 목소리에는 진득한 투쟁심이 묻어 있었다.
민경섭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긴, 너희 말고도 그런 사람들 많다.”
그가 스튜디오 곳곳을 가리켰다. 멤버들의 눈이 그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사람들이 많네요?”
멤버들도 슬슬 무대의 모습이 눈에 익어가는 중이었다.
눈에 보이는 부분뿐만 아니라 백스테이지의 스태프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감이 잡혔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는 평소보다 사람이 더 많이 보였다.
“여러 기획사 사람들이 다 모인 거야.”
그들은 여기저기서 무대를 주시하고 있었다.
가로 엔터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왜요?”
“KS 엔터니까.”
한국의 본격적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이끈 장본인이자, 과거부터 현재까지 톱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기획사다.
모든 엔터사(社) 중 시가총액 1위.
그들이 만든 모든 아티스트가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에 그들은 6년간의 침묵을 깨고, 마침내 차세대 걸그룹을 내보낸 것이다.
“당연히 보고 싶지.”
조아라는 그의 설명을 듣자 이 자리가 다르게 보였다.
원래 성필의 이상행동에 조금 뿔이 나서 보러 왔을 뿐이다.
그런데 주변을 휘감은 조용한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니, 성필의 행동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작한다.”
성필이 기대감에 서려 작게 말했다.
케이어스의 멤버 넷이 무대에 올랐다.
과거, 백설하는 성필에게 4인 체제의 문제점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원래 가로 엔터도 4인조를 만들려고 했었다.
‘4인조는 아이돌 그룹에서 그다지 좋은 숫자가 아니에요.’
퍼포먼스의 규모가 작아진다.
난이도 있는 파트의 소화가 어려워진다.
프로모션과 마케팅에 이점이 적다.
그 외에도 많은 단점이 있고, 그렇기에 2세대 아이돌부터 그룹 규모는 평균 7명 이상이었다.
‘그럼 저희 멤버 수 더 늘려야 하지 않나요……?’
걱정스레 묻는 백설하를 향해, 성필은 인자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었다.
‘4인조는 약점이 많지만, 장점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단, 장점이 발휘되려면 조건이 필요해요.’
그룹에 무임승차하는 게 불가능하기에, 멤버 모두의 역량이 정점에 이르러야 한다.
보컬, 댄스, 퍼포먼스, 비주얼.
모든 능력이 완벽해야, 개성의 극대화라는 4인조의 장점이 드러나게 된다.
‘저는 설하 씨랑 다른 애들을 믿어요. 4인조로도 충분할 거예요.’
그리 말했던 성필은, 종국에는 신아름을 영입했었다.
소녀연맹은 결국 4인조가 되지 못했다.
그런 소녀연맹의 앞에 4인조 걸그룹, 케이어스의 무대가 펼쳐졌다.
* * *
“……어?”
‘벌써 끝난 거야?’라는 뜻의 ‘어’.
신아름의 그 말은 방청객들의 열띤 함성에 묻혀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못했다.
모두의 시선은 엔딩 포즈를 취한 케이어스에게 꽂혀 있었다.
케이어스의 무대는 모두를 빨아들였다.
깊이 몰입시켜, 퍼포먼스가 끝나고서야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저게…….”
가능한가?
근원적인 질문이 백설하에게 떠올랐다.
케이어스는 AR(All recorded)을 사용했다. 곡과 함께 보컬도 녹음된 버전이었다.
하지만 케이어스는 립싱크를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AR의 보컬과 그녀들의 라이브가 동시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 두 개가 소름 끼치게 똑같았다.
AR과 케이어스의 라이브 보컬은 무대 내내 일치하여 기분 좋은 공명을 냈다.
AR을 제거해도 제거한 줄 모를 정도로 완벽했다.
‘아이돌이…… 아이돌이 이런…….’
백설하와 마찬가지로 조아라도 충격을 받았다.
퍼포먼스.
질리도록 들어왔던 그 단어가 조아라의 머리를 웅웅 울렸다.
완벽한 보컬.
완벽한 댄스.
그리고 완벽한 연기.
케이어스의 무대는 모든 게 완벽했다.
이게 아이돌이다, 그리 말하는 것처럼.
‘저렇게 난이도 있는 춤을 추면서 노래까지 완벽하게 부르는 게 가능해?’
저 춤을 익히기까지 얼마나 고생했을까.
심지어 혼자만 익히는 것도 아니고 네 사람이 인형처럼 완벽히 합을 맞춰야 하는데 말이다.
춤의 난이도가 말도 안 된다.
관절과 근육을 수도 없이 희생시켜가야 완벽에 이를 수 있을 정도다.
발목이, 허리가, 목이, 팔이, 연습하는 동안 끝없이 고통을 호소했을 것이다.
조아라는 보기만 해도 그녀들의 고통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 끝에 나온 결과물은.
“이사님 울어요?!”
리카의 비명과 같은 물음에 멤버들은 멍한 상태에서 깨어났다.
성필이 무표정으로 울고 있었다.
“이사님 왜 그러세요! 눈에 뭐라도 들어갔나요!”
“이 형 가끔 아이돌 무대 보면 울고 그래.”
“과몰입 멈춰!”
리카는 넘어진 아들을 달래듯 성필을 위로했다.
슬퍼서 우는 건 아니겠지만, 리카는 우는 사람을 보면 자연스레 달래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사님 제 미모를 보고 울음을 그치세요!”
리카가 성필의 앞에 서서 애교를 부렸다.
평소였다면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을 성필은, 계속 무대만 보고 있었다.
리카는 반응이 없는 성필을 보고 천천히 미소를 지워갔다.
“저를 무시할 정도로 저 무대가 좋았던 건가요…….”
성필은 아이돌에 대한 심미적 감수성이 남들보다 월등히 높았다.
리카의 말대로, 그는 아직도 무대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 * *
점심시간이 지나면 카메라 리허설에 들어간다. 생방송과 같은 조건에서 리허설하는 것이다.
도시락을 깨작거리던 신아름은 한숨을 쉬었다.
“아니이, 다들 상(喪)이라도 치렀어요? 아까부터 왜 말이 없어.”
의무적인 작은 웃음소리만 들릴 뿐, 다들 기운이 없었다.
케이어스는 아이돌의 아이돌이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정말 격의 차이가 보였다.
그녀들은 케이어스와의 차이를 느끼고 마음이 무거워졌으나, 가장 큰 이유는 성필의 눈물이었다.
매일 멤버들을 떠받들 듯 칭찬하는 성필이 울기까지 하며 기뻐했다.
그게, 그 사실이, 그 기분이…….
오묘했다. 뭔가를 빼앗긴 것만 같았다.
“하하, 참나.”
신아름은 이런 분위기가 싫었다.
그야, 대형 기획사에서 칼을 갈고 만든 그룹이 대단한 건 당연하지 않은가?
“음료수 마시고 싶어.”
갑자기 리카가 일어났다.
“여기 물 있잖아. 물 마셔.”
“이에(아니). 음료수 마실래.”
“……그래.”
“지폐 있어?”
신아름은 리카에게 천 원짜리를 하나 주었다.
‘스트레스받나?’
리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작은 사치를 부렸다. 칼로리가 높은 음료수나 과자를 먹는 것으로 말이다.
이번에도 그런 듯했다.
리카는 대기실을 빠져나가 자판기가 있는 곳을 찾았다.
모퉁이를 돌자 아까 밖으로 나갔었던 성필이 보였다. 리카는 인사하려다가 급히 숨었다.
성필이 에리카와 함께 있었다.
“사인 감사합니다.”
“아녜요! 무대 보고 팬 되셨다니 감사합니다!”
대충 그런 대화였다.
리카는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음료수는?”
“길 못 찾겠어…….”
“방송국 길이 미로 같긴 해. 그거 왜 그런 줄 알아? 쿠데타나 전쟁 나면 점령당해서 선동할 때 쓸 수도 있어서 그런 거래. 신기하지?”
“응…….”
“하아.”
신아름은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다.
조금 장난스럽게, 평소와 비슷한 대화로.
“리카, 네가 왜 KS 엔터에서 데뷔조에 떨어졌는지 알겠더라. 케이어스 걔네들 반짝반짝 빛나던데? 별 사이에 있는 달 같지 않아? 리카 네가 떨어지는 것도 당연…….”
“소다요(그래)! 아타시(내)가 못나서 떨어졌어! 그래서 KS 엔터에서 떨어진 거야!”
“으, 응?”
“음료수 사러 갔다 올게!”
리카가 달음박질로 대기실을 나갔다.
거칠게 열린 문이 덜컹거렸다.
리카가 나간 자리에, 멤버들은 깜짝 놀라서 가만히 있기만 했다.
“길 못 찾겠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