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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16화 (116/760)

116화

택배로 도착한 소녀 연맹의 데뷔 앨범 ‘Girls’ League’ 다섯 장.

김채현은 앨범 실물을 앞에 두고 큰절을 올렸다. 옆에는 그녀의 친구, 이선주도 함께였다.

“하나님 부처님 부탁드립니다.”

“멤버별 포카 다 나오길!”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은 김채현은, 학교가 마치자마자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왔었다.

그리고 한다는 짓이 택배에 절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김채현의 어머니가 혀를 쯧쯧 찼다.

“과일 먹어라.”

“감사합니다 어머님!”

“에휴, 선주야. 우리 애랑 친하게 지내줘서 고맙다 항상. 앨범에 대고 절하는 애랑…….”

“엄마, 이건 이상한 짓이 아니라 꼭 해야 하는 거야!”

“용돈 가불해서 뭐 하나 했더니 같은 물건을 다섯 개씩이나 사고……. 엄마는 이해 못 하겠다.”

“엄마 방에도 Cold 앨범 수십 장 있잖아!”

Cold는 김채현의 어머니 세대에 큰 인기를 자랑했던 남자 아이돌 그룹이었다.

“얘는! 엄마는 그거 다 알바한 돈으로 샀어!”

“나도 겨울에 알바할래 그럼!”

“이제 고등학생인데 알바는 무슨 알바야! 학원이나 잘 다녀!”

모녀의 말다툼을 보며 이선주는 허허 웃었다.

‘모전녀전이구만.’

어머니가 나간 뒤, 신성한 언박싱(unboxing, 새 상품을 개봉하는 것)이 시작됐다.

앨범 패키지마다 지관통이 함께 붙어 와서, 어떻게 뜯어낼지 고민해야 했다.

“부럽다. 전부 초도 한정 물량이네. 브로마이드가 다섯 장이야.”

“선주 너는 한정으로 안 샀어?”

“응. 돈이 별로 없어서 한정판은 한 장만 샀다가, 후회할 거 같아서 더 시켰거든. 근데 한정 물량 다 나갔다고 하더라.”

“저런…….”

김채현은 첫 번째 앨범을 뜯었다.

일단 브로마이드부터 봐야겠다.

지관통을 열고 조심스런 손길로 브로마이드를 꺼냈다.

“설하다!”

온갖 가구들로 쌓은 바리케이드를 배경으로, 혁명기 복장을 입은 백설하가 머스킷을 어깨에 받친 채 위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을 본 김채현의 몸이 짜르르 떨려왔다.

“나 벌써 만족해버렸어…….”

“퀄리티 돌았다. 씨, 나도 그냥 한 번에 열 장씩 살걸.”

다음은 패키지 구성품이었다.

“이거 어떻게 여는 거야?”

“위로 당기는 거 아냐?”

패키지 위쪽에 난 홈을 잡고 위로 올리니, 장식인 줄 알았던 겉면의 사슬 장식이 딸려 올라갔다.

마치 앨범 케이스가 구속에서 해방되는 것만 같은 연출이다.

“어헉, 으헉, 사랑해요 가로 엔터!”

“개봉부터 뻑 가게 만드네.”

그녀들은 몰랐으나, 이건 손혜빈의 작품이었다.

종이 재질로 이런 연출을 담으려고 얼마나 고민하며 고생하고 다녔던가.

만약 손혜빈이 자서전을 쓴다면, 그때 고생했던 내용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이다.

“으으, 나 못 보겠어. 대신 봐줘.”

“어.”

“조심히 만져!”

“알겠어.”

이선주는 김채현을 대신해 구성품을 확인했다.

가장 먼저 봐야 할 건 역시 포토 카드다.

멤버 개인, 단체 포토 카드는 종류가 수십 개 이상이다. 즉, 앨범 하나에 그 모든 게 들어있을 수 없다.

포카 올클(포토 카드 올 클리어, 모든 종류의 포토 카드를 모으는 것)을 위해 같은 앨범을 수십 장씩 사는 사람도 있다.

“세 장이네? 어디 보자, 누구냐면…….”

신아름, 조아라, 리카.

“동생 라인이야.”

“줘봐!”

그 말을 들은 김채현은 눈을 번쩍 뜨고 포카를 확인했다.

다들 너무 예쁘다. 하지만 최애인 장하양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눈이 자연스레 남은 앨범으로 향했다.

남은 앨범은 4장. 저 안에 장하양이 있겠지? 설마 없진 않겠지? 그 정도로 극악한 확률이 벌어질 리가 없어!

“일상복도 예쁘다…….”

포카에 실린 멤버들은 일상복 사진이었다.

두 사람은 구성품을 계속 확인했다.

단체 포카, 폴라로이드, 스티커, 포스트 카드.

무엇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없었다.

저 모든 게 또 십수 종류고, 자신은 올클이 불가능할 거란 사실만이 유일한 불만이었다.

“포토북 보자.”

포토북은 70페이지였다.

상당한 분량이다.

두 사람은 천천히 포토북을 넘겼다.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첫 장은 ‘아니’의 컨셉에 맞춘 복장들이었다.

명예혁명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고, 멤버들이 귀족복을 입은 사진들이 실린 식이었다.

그 순서를 따라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68혁명,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이건 가보로 물려줘야겠다.”

포토북만 따로 팔아도 살 정도였다.

구성품을 보면 볼수록 가로 엔터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다.

이 기획사 일 잘하네.

“2장은 현대 옷들 입고 찍었네.”

일상의 모습을 담거나, 특정한 분위기를 잡고 찍은 것들이었다.

“어, 어어?”

그중에 김채현의 시선을 끄는 게 있었다.

장하양이 헐렁한 티셔츠 아래쪽 끝을 잡고, 배꼽 위쪽까지 끌어올린 사진이었다.

“이거 복근이야?”

“복근인데?”

“언니야아…… 나 주글 거 가태…….”

예쁜 데다가 운동도 열심히 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춰? 랩도 잘하고?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이런데 어떻게 안 반해?

다른 사람들은 왜 안 반해?

전 세계 사람들이 소녀연맹을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이게 마지막 페이지네.”

“후우, 알찬 시간이었다.”

포토북을 감상하는 데 1시간도 넘게 걸렸다.

한 장씩 꼼꼼히 확인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도 뭐 적혀 있는데?”

크레딧이었다.

앨범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들의 목록이다.

홍규헌, 한구인, 박성필, 손혜빈, 정지음, 민경섭, 백민…….

“됐어. 회사 사람들이겠지.”

크레딧까지 열심히 읽는 사람은 드문 법이다.

마지막은 멤버 손편지였다.

사실 이게 가장 기대되고 걱정됐다.

‘제발 하양이. 제발 하양이. 제발 하양이.’

김채현은 곱게 접힌 편지를 펼쳤다.

[안녕하세요. 장하양이에요.]

“꺄아아아아악!”

첫 앨범부터 장하양 손편지가 걸렸다.

둘은 입에 미소를 걸고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장하양의 글은 딱딱하고 재주가 없었으나, 팬에게 전하는 감사의 마음만은 확실했다.

[제 편지가 나왔다고 실망하신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

“누가 하양이 편지를 받고 실망해! 누구야! 다 죽여버릴 거야!”

[앞으로는 실망하지 않으시도록 더 멋진 모습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볼게……!”

“마지막은 응모권이네.”

팬미팅 응모권은 고급스런 편지 봉투 안에 들어있었다.

빳빳한 재질의 응모권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세상에 맞서는 우리들의 연맹!

제1차 인터내셔널 연맹 대회에 참여해주세요!]

“으음, 응모 번호밖에 없네. 아직 시기는 안 정해졌나 봐. 신인 그룹이니까 5장이면 당첨 안정권일까?”

“5장이면 노려볼 만할지도 몰라.”

“으으, 멤버들 손잡고 눈 맞추고, 아, 아, 무슨 말 하지? 무슨 말 해달라고 하지?!”

“아직 뽑힌 것도 아닌데 호들갑은.”

“근데 팬미팅 이름이 특이하네. 인터내셔널 연맹 대회. 무슨 콘테스트 컨셉인가?”

인터내셔널이란 19세기 후반, 20세기 중반까지 존재했던 국제적 사회주의 단체다.

현대에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이란 이름의 분파로 계승됐으며, 전 세계 각국의 좌파 정당 협조체로 기능하고 있다.

소녀연맹의 팬미팅 이름은 그 인터내셔널에서 따온 것이지만.

“대회란 말도 있는 거 보면 콘테스트 느낌으로 하나 봐.”

중학생 소녀들이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그렇게 응모권을 끝으로 알찬 앨범 언박싱 시간이 끝났다.

그래, 첫 번째 앨범은 끝났다.

이제 남은 네 개의 패키지를 까야 한다.

아쉽게도 중복 포카도 꽤 나왔으나, 빠진 멤버 포카는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김채현은 만족했다.

“아, 마지막 편지도 하양이네.”

장하양의 손편지는 몇 개가 있어도 좋겠지만, 중복이 나오니 속상하기도 했다.

리카의 손편지만 나오면 전부 모으는 거였는데.

수집욕이 자극됐다.

다음 달에 용돈 받으면 또 사야겠…….

[이 글을 쓰는 시간은 새벽이에요. 연습하고 돌아와서도 잠이 잘 안 오네요. 창밖은 어둡고 비가 조금씩 내리는 중이에요.]

“……어?”

김채현이 첫 번째 앨범에 들어있던 손편지와 방금 나왔던 손편지를 비교했다.

둘 다 장하양의 것이다.

그런데…….

“내용이 달라!”

“손편지 종류도 여러 개야? 멤버별로 몇 개씩 있는 거야?”

이럴 수가.

이런 건 안 모으곤 못 배기잖아…….

* * *

26살, 사회초년생 유용태.

그는 돈을 악착같이 모아 30대 중반에는 작은 집이나마 구하고 싶었다.

물론 대출 풀로 당겨서.

그런 그는 방금 소녀연맹 데뷔 앨범을 10장 추가 구매했다.

“더 내놔. 아니, 다 가져와!”

그도 방금 멤버별 손편지 종류가 다른 것을 확인했다.

* * *

“연습은 정말 정말 힘들었지만 팬분들께 행복을 전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리카 너 죽는다!”

“아하핰!”

리카가 조아라를 피해 좁은 대기실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녀의 종착역은 성필의 뒤였다.

리카와 조아라가 성필을 중앙에 두고 술래잡기하듯이 돌아다녔다.

“부산스러우니까 그만해.”

“아저씨가 리카 좀 혼내줘요! 쟤 맨날 내가 쓴 편지 읽으면서 놀린다고요!”

앨범에 포함된 멤버별 손편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조아라는 글재주가 없었다.

편지를 쓰랬더니, 몇 시간 걸려서 겨우 3줄 정도 뽑아냈었다.

그래서 한구인의 도움을 받은 결과, 굉장히 정갈하고도 부끄러운 편지가 완성되었다.

“이게 백미예요! 저를 싫어하진 말아주셨으면 좋겠스아아아아악!”

기어코 조아라에게 붙잡힌 리카가 헤드락에 걸렸다. 그러고도 편지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둘의 얼굴이 다른 이유로 각각 붉어져 갔다.

조아라는 부끄러워서. 리카는 헤드락에 걸려서.

리카가 조아라를 놀리는, 아주 보기 드문 장면이다.

“아라, 리카, 그만해. 대기실 우리끼리만 쓰는 거 아니잖아.”

보다 못한 백설하가 둘을 말렸다.

리카와 조아라가 뻘쭘하게 떨어졌다.

그녀의 말대로, 대기실에는 다른 그룹도 하나 있었다.

‘포유’였다.

보통 대기실에 같이 있으면 말을 섞곤 하는 법이지만, 이상하게도 소녀연맹과 포유는 벽이라도 있는 듯 쉽게 대화하지 않았다.

처음 대기실에 왔을 때는 붙임성 좋은 리카가 말을 몇 번 걸었지만, 그것도 곧 시들해졌다.

“얘들아, 드라이 리허설 가자.”

성필은 멤버들을 데리고 무대까지 갔다.

간단히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소녀연맹 팀이 들어오자마자,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식어가는 게 보였다.

포유의 모두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린 것이다.

‘예의 차리는 건가?’

하긴, 다른 팀이 들어와 있으면 떠들기 좀 그렇지.

성필은 별다른 생각 없이 자리에 앉았다.

“아름아.”

그때, 포유의 멤버 중 한 명인 효민이 신아름을 불렀다.

“응?”

신아름은 당황한 듯 그쪽을 보았으나, 당황과는 별개로 재빨리 미소를 지은 채였다.

“축하해. 초동 1만 장.”

소녀연맹의 초동판매량은 1만 장을 돌파했다.

작은 기획사의 그룹으로썬 눈에 띄는 성과였다.

반면 포유의 초동판매량은 4천 장을 겨우 넘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란 후광을 업고도 4천 장인 것이다.

‘포유의 진짜 성공은 다음 앨범부터지.’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포유는 불안하기 짝이 없으리라.

소녀연맹과 같이 있으면 더더욱.

서바이벌 방송이라는 거대한 프로모션을 진행한 것이나 다름없는 포유가, 변변찮은 힘을 지닌 소녀연맹에 패배한 것이니까.

“아, 응. 고마워.”

신아름은 감사 외엔 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

보통 칭찬을 들으면 돌려주는 법이라던가.

하지만 신아름이 효민에게 어떤 칭찬을 돌려줄 수 있을까?

다음에는 더 잘될 거야! 무슨 근거로?

너희도 축하해! 뭘? 앨범 4천 장 판 거?

힘내! 동정이라도 하는 건가?

신아름은 끝끝내 ‘고마워’ 다음 말을 꺼내놓지 못했다.

반면 효민은 능숙하게 말을 이었다.

“다행이야.”

“어, 뭘?”

“너 나가고 난 뒤에 잘된 거. 너 나갔을 땐 다들 걱정했었거든. 잘 지내는 거 같아서 다행이야.”

효민의 말투는 친절하고 사려 깊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소녀연맹 멤버들은 모두 얼굴을 굳혔다.

축하 뒤에 숨은 의미를, 멤버들은 모를 수가 없었다.

이런 식의 화법에는 익숙하지 않은 성필조차도 분위기의 변화를 감지했다.

‘포유 나가서 아주 좋겠네? 우리는 이 꼴이 났는데 혼자만 잘돼서? 우리 버리더니 좋은 자리 찾아갔구나?’

효민의 말은 그런 뜻이었기에, 사실상 비난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말에 다른 포유 멤버들도 동의하는 듯이 보였다.

성필은 포유가 이렇게 된 내막을 짐작했다.

‘포유는 위기를 겪었지. 대표인 김명운조차 미래가 불확실하다며 나갈 사람은 나가라고 했으니까.’

그 위기 속에서 포유의 멤버들은 선택지가 없었다.

다들 데뷔가 절박했다.

그래서 썩은 줄로 보이는 포유이지만, 잡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다른 줄이 없었으니까.

‘위기를 극복하고 뭉치는 데는 적(敵)만 한 게 없지.’

아마도, 포유는 신아름을 적으로 만들면서 동질감과 소속감을 유지했을 것이다.

우리는 잘될 거야.

아름이가 경솔했어.

나중엔 아름이가 후회할걸?

우린 꼭 잘될 거라구…….

‘그런데 정작 드러난 결과는 아름이의 소녀연맹이 성공한 거였지.’

신아름은 아예 철천지원수가 됐을 것이다.

성필은 그런 포유가 밉다기보다 안타까웠다.

더 직접적으로는, 불쌍했다.

버티기 위해 분노와 질투를 원동력으로 삼은 그녀들이다.

미래에 포유가 그럭저럭 성공할 것을 알아도, 현재의 그녀들은 얼마나 불행한가.

질투라는 접착제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조각날 상태잖은가.

“다시 한번, 축하해.”

“…….”

효민의 말을 들은 신아름은 억지로 짓고 있던 미소를 지웠다.

신아름은 칼을 뽑는 듯 머리칼을 한 번 쓸더니.

“응, 고마워. 나도 너무 기뻐. 행복해. 있잖아, 팬들이 나를 좋아해 준단 게 이렇게 좋은 건 줄 몰랐어.”

“……어?”

“그야 프로젝트 포유 때도 날 좋아해 주시던 팬들이 있긴 했는데. 정말 어느 그룹에 속해서 사랑받는단 건 완전 다르더라. 너희도 알지?”

신아름이 화사한 미소를 보였다.

반대로 효민의 표정은 점점 썩어갔다.

“우리 앞으로도 잘해보자. 이렇게만 계속…….”

“아름아.”

신아름이 더 나가기 직전, 성필이 그녀를 말리려 했다.

그와 동시에 대기실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포유 멤버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어, 그래 얘들아. 착하게 잘 있었어?”

포유를 맡고 있는 이음 엔터 대표, 김명운이었다. 그는 유치원에 보내둔 자식을 맞이하는 듯 따스한 미소로 포유 멤버들을 대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어어, 성필이네? 아, 그렇네. 소녀연맹이랑 같이 대기실 쓰는구나.”

성필과 김명운이 악수했다. 그의 시선이 곧바로 성필의 뒤, 소녀연맹에게 향했다.

“곡 잘 듣고 있어요. 데뷔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백설하가 대표로 김명운에게 감사를 표했다.

김명운이 대기실에 들어오자마자 찝찝한 분위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성필과 김명운이 대기실 중앙을 차지하고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가니, 포유와 소녀연맹이 기 싸움을 할 수가 없었다.

“너네 초동 1만 장이더라? 대박이네. 회사 옮기더니 어째 더 잘 되냐?”

그 말을 들은 소녀연맹 멤버들이 흠칫했다.

또 돌려 까는 건가?

“하하, 제가 뭐 한 건 없죠. 다 회사 분들이 좋아서 그런 거고요.”

“겸손하긴. 좋은 데 골라서 가는 것도 능력이거든.”

“대표님네도 반응 좋던데요.”

이번에는 포유 멤버들이 흠칫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공격한다고?

“그렇지? 5일 차부터 판매량이 증가하는 추세잖아. 비록 초동은 그렇게 나왔어도, 2주랑 3주째에도 판매량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꼭 그럴 거예요.”

“그러게. 그럴 거야.”

김명운은 잠깐 포유 멤버들을 보고 싱긋 웃어주었다.

그의 격려에 멤버들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직 대표인 김명운을 어려워하는 듯했으나, 그를 향한 신뢰가 여실히 보였다.

“어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어디 가세요?”

“영업.”

“아아.”

방송국 인간들한테 고개 숙이러 간단 뜻이다.

안 그래도 그는 영업으로 바쁠 텐데, 포유를 보기 위해 굳이 시간을 내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가 포유에 얼마나 애정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얘들아, 매니저님 말 잘 듣고 있어. 매니저님이 보자…… 곧 사녹 들어가는 팀 있으니까 30분 뒤엔 오실 거거든? 나는 너희 생방송 시간에 다시 올 테니까, 잘해라.”

“안녕히 가세요!”

김명운이 나갔다.

아까보다 대기실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이사님.”

사태를 관망하던 리카가 성필에게 다가왔다.

“왜?”

“이사님 친구가 몇 명이에요? 방송국 다니면 보는 사람마다 인사하던데.”

“글쎄다. 내 친구는 한 천 명 넘지?”

“에엑?! 거짓말!”

“하하, 천 명은 안 되고…….”

“던바의 법칙에 따르면 유의미한 사회적 관계는 150명을 넘을 수 없어요! 사람은 천 명이랑 못 사귄다구요!”

“그래 너 똑똑하다. 나중에 한 이사님보다 똑똑해지겠어.”

“청출어람이에요!”

과장 조금 보태서, 성필이 방송국을 돌아다니면 10초에 한 번씩은 인사할 자신이 있었다.

부지런하고 꾸준하게 대인관계를 관리한 덕분이었다.

성필은 손목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좀 나갔다 올게.”

“혼자 맛있는 거 드시러 가시나요!”

“아니, 무대 보고 싶은 그룹이 있어서.”

그 말에 다른 멤버들도 성필에게 시선을 주었다.

“누군가요? 누가 이사님 마음을 홀린 건가요!”

“리카 질투하는 거야? 귀엽네.”

“보이그룹이면 봐 드릴게요!”

“걸그룹이야.”

“선택하세요. 제 미움을 받을지 그 그룹 무대를 보러 갈 건지!”

“갔다 올게.”

“히도이(너무해)!”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고 어떤 사람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오…….”

그녀는 먹이를 찾는 참새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한쪽을 보곤 얼굴을 폈다.

“리카아!”

문이 활짝 열리고, 네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에리카?!”

에리카라 불린 여자가 팔을 활짝 펼치며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리카가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안겼다.

“리카, 뽀뽀.”

리카가 에리카의 뺨에 쪽 뽀뽀했다.

“반대쪽.”

반대쪽에도 뽀뽀했다.

마치 길들여진 강아지 같았다.

“너어어어무 오랜만이다아! 반갑지?”

“응응응응!”

에리카는 리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정 가득한 눈길을 주었다.

그러곤 곧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이들을 한 줄로 세웠다.

“둘 셋, 안녕하세요 케이어스입니다!”

인사만으로도 대기실에 태양이 비친 것 같다.

그녀들을 보고 조아라와 백설하가 소곤거렸다.

“케이어스면 거기, KS 엔터 맞죠?”

“응…… 리카가 있었던 곳.”

KS 엔터.

리카를 데뷔조에서 떨어뜨렸던 곳.

그리고 케이어스는, 리카를 떨어뜨렸던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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