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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09화 (109/760)

109화

성필은 리카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그룹명 후보만을 꾸준히 적어갔다.

“누가 의견 냈는진 왜 물어보고 그러냐.”

조아라가 흥분한 리카를 달랬다.

성필이 마음속으로 조아라에게 감사를 보냈다.

“딱 봐도 아저씨잖아.”

어떻게 알았지!

리카가 청문회에 나온 기자처럼 질문했다.

“정말 박 이사님이 낸 의견인가요!”

“팀이사님 100%지.”

팀이사는 뭔데.

팀장님이라고 부르려다가 급하게 수정한 건가.

성필은 무시하고 묵묵히 펜만 놀렸다.

“자, 이게 우리 회의에서 나온 것들인데.”

[소녀연맹(Girls’ League)]

[니어(N.E.A.R) or 니아]

[LABS(랩스)]

[바이어스(BIAS)]

[비바 라 레볼뤼시옹]

“비바 라 레볼뤼시옹은 또 뭐예요!”

“내가 낸 의견이다 왜.”

홍규헌이 말하자 리카가 곧바로 쭈그러들었다.

“헤헤, 좋네요. 프랑스어라서 운치가 있어 보여요, 헤헤.”

“그럼 리카는 ‘비바 라 레볼뤼시옹’에 투표한 걸로 알게.”

“앗아…….”

“농담이야. 딴 사람들은 하나씩 냈는데 나만 없어서 막판에 하나 추가했어.”

그룹명은 데뷔의 막판에 와서까지 결론을 보지 못한 주제였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직원들이 점점 ‘소녀연맹’이란 이름에 우호적으로 변했으나, 아직 100% 확신을 가질 정도는 아니었다.

오늘 멤버들을 모은 이유는 오랜 망설임에 마침표를 찍기 위함이었다.

“너희들도 생각해둔 거 있으면 하나씩 말해.”

아무도 답이 없다.

오며 가며 그룹 이름을 생각해보라고 말하긴 했지만, 정작 생각해온 멤버는 없었다.

‘그룹 이름이란 게 자기 입에서 나오면 부끄럽기도 하지.’

자기 딴에는 멋지다고 생각해서 말했는데, 다른 사람이 이상하다고 하면 내상이 장난 아닐 것이다.

당장 성필이 그러했다.

“없어? 진짜?”

“…….”

“그럼 내가 각 그룹명 의미 설명할게.”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홍규헌이 직접 각 그룹명의 의미를 말해주었다.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줄 테니까, 결정되면 종이에 이름 써서 내.”

멤버들은 고민에 들어갔다.

그에 반해 직원들은 이미 마음을 정한 듯 재빨리 이름을 적고 앞에 제출했다.

투표에 걸린 시간은 15분 정도였다.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애들도 꽂히는 이름이 있던 모양이네.’

과연 그게 뭘까.

성필은 조마조마 홍규헌의 손에서 펼쳐지는 투표용지들을 보았다.

개표가 끝난 후, 홍규헌은 간단하게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이름에 동그라미를 쳤다.

[소녀연맹]

“혼또데스까(정말이에요)?!”

리카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단 듯 소리를 빽 질렀다.

그녀는 멤버들을 돌아보며 누가 ‘소녀연맹’에 동의했는지 찾으려 했다.

쳐다본다고 투표한 사람이 나올 리가 없다.

리카는 허탈하게 말했다.

“쇼죠렌메(소녀연맹)…….”

“저기, 리카. 이 이름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성필이 조심스럽게 리카에게 물었다.

그녀의 반응이 이토록 격하니, 소녀연맹이란 의견을 냈던 성필이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아니, 쥐구멍만 있으면 머리를 처박고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이에(아뇨). 특이하잖아요. 첨 봤을 땐 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보니까 좋은 거 같기도 하고요.”

“괴상…….”

“뭣보다 가장 많은 분이 좋다고 찍어주신 거잖아요. 이젠 돌이킬 수 없어요! 앗!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마음에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 그래, 알겠다. 그럼 이제 소녀연맹으로 결정된 거다?”

홍규헌이 회의의 끝을 선언했다.

그러자 장하양이 기다렸다는 듯이 작게 박수를 쳤다.

그것을 시작으로, 여럿의 박수 소리가 회의실을 집어삼킬 듯 몰아쳤다.

그룹명이 정해졌다.

세상 모든 것은 이름이 있어야 그 존재가 인식되는 것이니, 이 순간 그룹이 만들어졌다고 봐도 좋다.

드디어 가로 엔터의 걸그룹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기쁨의 박수가 이어지는 와중, 백설하만이 기계적으로 웃고 있었다.

‘나, 난 소녀가 아닌데…… 어째서 이런…….’

소녀연맹이라니…….

사실 백설하도 소녀연맹에 표를 던졌다.

진짜 그게 마음에 든 건 아니었다.

‘박 이사님이 내신 의견이구나. 후후, 귀여우시다.’

도저히 아무도 찍지 않을 것 같은 이름이다.

0표가 나오면 성필의 마음이 상할 테니, 백설하는 그가 실망하지 않길 바라서 소녀연맹에 투표했다.

아마 ‘니어’나 ‘바이어스’가 되겠다 싶었는데, 소녀연맹이 떡하니 당첨돼버렸다.

“우린 이제 소녀연맹이에요! 쌤! 쌤이 리더니까 파이팅 외쳐주세요!”

“으, 응?”

“오, 좋다. 역시 이런 건 리더가 해야죠.”

“아, 으응…….”

백설하는 주먹을 쥐고 팔을 살짝 들었다.

“소, 소녀연맹 파이팅…….”

“파이팅!”

백설하는 난쟁이 마을에 떨어진 사람 같은 심정이 됐다.

울고 싶었다.

* * *

“끄오옥……!”

리카는 퍼포먼스가 끝나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재빨리 힐을 벗어 던지고 몸을 애벌레처럼 구부렸다.

“으으, 허리가 너무 아파요.”

리카는 힐을 신는 게 처음이었다.

그러니 힐을 신고 춤을 추는 건 더욱 힘들었다. 발목이 저린 건 당연하고, 무릎도 아프고 무엇보다 허리가 끊어질 듯 저려 왔다.

비록 리카가 힐을 신는 건 정장 의상을 입을 때라, 음방에서도 힐을 신을 일은 적다.

그렇다고 연습을 게을리할 수는 없다. 최대한 익숙해져야만 했다.

성필은 그런 리카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아타시(저) 디스크 걸린 거 아닐까요. 아니고서야 허리가 이렇게 아플 리 없잖아요.”

“다들 처음엔 그런대. 나도 굽 높은 구두 처음 신었을 때 그랬어.”

“이렇게 아픈데 힐을 왜 신고 다닐까요…….”

“남자가 깔창 신는 거랑 비슷한 이유 아닐까?”

“키 커 보이려구요?”

“뭐, 그것도 있겠는데. 다리가 길어 보여서 아닐까. 등신비를 좋게 만들잖아.”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이런 걸 만들어냈군요. 저는 힐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답지만요!”

“우리 리카가 최고다.”

리카는 성필의 칭찬에 헤헤 웃었지만, 곧 미간을 찌푸렸다.

성필은 고통을 호소하는 리카가 안타까웠다.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다.’

누군가가 하이힐은 아름다움을 쥐어 짜내는 고문 도구라고 했던가.

성필도 힐의 미적 효과는 인정하지만, 매번 연습생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려왔다.

그냥 신고 다니는 것도 힘든데 춤을 추라니.

“리카. 허리 아프면 스트레칭 가르쳐줄게. 허리에 좋은 거야.”

“이 고통을 덜 수 있는 건가요!”

성필은 스트레칭 동작을 보여주었다.

“허리에 좋다면서 왜 다리 스트레칭인가요?”

“다리랑 허리가 연결돼 있잖아. 봐, 여기 허리. 여기 다리.”

“허리랑 다리가 연결된 건 저도 아는데요.”

“그래, 똑똑하다. 다리가 풀려 있으면 허리도 유연하게 움직여. 자, 따라 해보자.”

성필이 한쪽 다리를 엉덩이 아래에 두고, 다른 다리는 바깥으로 폈다.

그 상태로 앉았다.

사타구니 쪽이 당겨왔다.

“처음 하면 좀 아플 뭐야?!”

리카는 조금도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가르쳐준 동작을 해냈다.

성필이 리카만큼 했으면 인대가 나갔을 게 틀림없었다.

“너, 너 뭐야. 어떻게?”

“이게 끝이에요?”

“어, 응. 이대로 20초 이상…….”

“아무런 느낌도 없는데요.”

‘아. 리카는 매일 춤도 추고 유연성 단련도 하니까. 내가 하는 스트레칭 정도는 간단하겠지.’

너무 일반인 관점으로 생각했나.

“이제 내가 가르쳐줄 게 없다. 하산해라.”

“끝?! 제 허리 안 아프게 해준다면서요! 빨리 방법을 알려주세요!”

“적응하는 수밖에 없어. 미안.”

“으으…….”

“리카. 내가 허리 마사지해줄까?”

장하양이 말했다.

“그럼 언니한테 미안한데요.”

“괜찮아. 연습에 지장 생기면 안 되잖아. 잠시만 기다려.”

참고로, 장하양은 3분 넘게 워커 끈을 풀고 있었다.

신발로 고통받는 건 리카만이 아니었다.

“거의 다 됐어.”

“…….”

“잠시만.”

“…….”

“이제 조금만.”

“하양아, 이리 줘봐.”

성필은 장하양에게 다가가 워커 끈을 전부 잡고 강하게 당겼다. 끈이 느슨해져서 발을 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장하양은 끈을 위부터 하나씩 풀고 있던 것이다.

“발 빼. 내가 잡고 있을게.”

“…….”

“안 빼?”

“제가 할게요.”

“어, 그럴래?”

“네.”

성필은 뻘쭘하게 장하양에게서 떨어졌다. 그녀는 워커를 벗자마자 재빨리 운동화를 신었다.

오래 신고 있어서 발이 더울 텐데, 굳이 또 운동화를 신어야 하나.

특이한 곳에서 성실하네.

“리카 엎드려볼래?”

“하잇(넵)!”

장하양이 마사지를 시작했다.

“오, 으어, 흐에, 으에에에…….”

“기분 좋아?”

“네에, 평생 마사지 받고 싶어요……. 마사지 쌤들보다 더 잘하는 거 같아요오…….”

“아하하, 그분들이 더 잘하시겠지. 여긴 어때?”

“응아아…….”

성필은 그 광경을 뿌듯하게 보고 있다가, 번뜩 생각이 나서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또 찍으시는 거예요?”

“응. 보기 좋잖아.”

“아하하.”

장하양은 이런 영상 촬영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는 이해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이나 평소 모습을 궁금해하는 이유를 모르겠단 것이다.

“아저씨.”

“왜?”

“근데 아저씨는 퇴근 안 해요?”

벌써 11시가 넘었다.

곧 있으면 데뷔다. 그래서 멤버들은 매일 12시가 넘도록 연습하는 게 기본이었다.

퇴근은 홍규헌이 준 교통비로 택시를 이용했다. 성필이 있을 이유가 없다.

“나 있으면 불편해? 미안. 당장 나갈게.”

“아니이. 불편하단 게 아니라요. 내가 뭐만 말하면 다 이상하게 받아들여 무슨.”

“그냥, 난 너희들 고생하는데 혼자 집에 가는 게 뭐해서.”

“신경 쓰지 말고 퇴근해요.”

“음, 그럴까?”

“다메(안 돼)! 박 이사님은 계속 우리랑 고생해야 해!”

“리카 너 심보 진짜 고약하다.”

성필은 시원하게 웃었다. 하지만 마음속은 기대와 불안이 뒤섞여 찝찝했다.

‘데뷔야. 그렇게 기다리던 데뷔.’

과연 그 결과는 어떨까.

성공? 실패?

만약 실패한다면, 다음 앨범에는 희망을 걸어봐도 좋을까?

소리소문없이 묻히면 어떡하지?

인지도 없는 지방행사만 다니거나, 그렇게 되면 어떡하…….

“이사님, 드세요.”

휴게실에서 음료수를 꺼내 온 백설하가 캔 음료를 내밀었다.

“아, 고마워요.”

백설하는 설핏 웃고는 멤버들에게 다가갔다.

“다들 배고프지?”

“쌤 설마 간식 가져왔어요?”

구석에서 쥐 죽는 듯 누워있던 신아름이 누구보다도 빨리 백설하의 앞으로 다가왔다.

“아니. 그냥 음료수야.”

“하아…….”

“아름이는 칼로리 제일 높은 거 줄게. 여기, 76칼로리.”

“쌤 지금 저 견제하는 거예요? 데뷔 전에 살찌라고?”

“아, 아니야 그런 거. 그냥 너 배 채우라고…….”

“위해주는 척하면서 경쟁자 제거?”

신아름이 백설하 놀리기에 들어갔다.

리더면서 막내한테 쩔쩔매는 모습이 보기가 좋네.

막내 온 탑(막내 on top)이라고 하던가.

성필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걱정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얘들이 성공 안 하면 누가 성공하겠어.’

믿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 * *

유용태. 26살. 남자. 사회초년생.

그는 아침의 피곤함을 억누르고 좀비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환승역에서 내리고 터덜터덜 움직이려던 찰나, 그의 눈이 평소엔 그저 지나치기만 했던 벽면에 머물렀다.

‘전광판…… 아니, 디지털 포스터라고 하던가?’

줄곧 남자 아이돌들만 걸려 있었는데, 오랜만에 여자 아이돌이 광고판에 등장했다.

그것뿐이라면 평소처럼 신경도 안 썼을 텐데, 디지털 포스터에 나타난 얼굴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고양이상, 날카로운 눈매, 싸늘한 인상이지만 입가에는 따스한 미소.

‘어디서 봤는데?’

기억을 되짚던 유용태가 ‘아’ 소리를 냈다.

‘그거다. 프로젝트 포유. 밤에 텔레비전 틀면 가끔 나오던 거.’

거기 나왔던 연습생이다.

유용태는 포스터를 쭉 보다가 피식 웃었다.

‘진짜 어른 말 안 듣게 생겼네.’

화면의 아래쪽에는 ‘우리좌 신아름 데뷔(X월 XX일)! #SNYM’라고 적혀 있었다.

‘얘도 데뷔하는구나. SNYM은 그룹 이름인가? 무슨 뜻이지?’

유용태는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군대에서 아이돌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전역하고도 한 그룹에 꽂혀 앨범도 사고 커뮤니티도 돌아다녔지만, 수개월 만에 흥미가 식고 그만두었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아왔다.

‘인기 많나 보네. 팬들이 이런 것도 걸어주고. 아님 기획사에서 한 건가?’

뭐, 어찌 됐든 좋다.

유용태는 다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운 좋게 자리를 구해서 앉았다.

눈이 심심했다.

핸드폰을 켜서 아이튜브로 들어갔다.

추천 영상 목록을 훑어보다가, 문득 생각나서 검색창에 ‘신아름’을 쳤다.

가장 위의 영상을 보았다.

‘프로젝트 포유, 신아름 찐 입덕 모멘트.’

프로젝트 포유에 신아름이 나왔던 장면을 모아둔 것이었다.

‘아, 이래서 우리좌가 별명이구나.’

신아름은 힘든 순간에도 항상 ‘우리는 할 수 있어!’란 말을 버릇처럼 입에 달았다.

어린 나이에 본인 하나 챙기는 것도 힘들 텐데.

유용태는 신아름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기특해? 하아, 나도 다 늙었구나. 어린애 보고 기특하단 생각도 들고.’

어느새 직장에 도착했다.

출근해서 일하고, 여느 때와 같이 힘이 다 빠져서 전철에 몸을 실었다.

오늘따라 운이 좋다. 또 자리가 났다.

유용태는 자연스럽게 아이튜브에 들어갔다.

고작 영상 몇 개 봤을 뿐인데, 알고리즘이 신아름의 영상을 잔뜩 추천해주고 있었다.

‘이 채널은 뭐지. 가로 엔터?’

들어가니 신아름 외에도 다른 연습생의 영상도 많았다. 하지만 유용태는 신아름 영상만 보았다.

환승역에 올 때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튜브를 끄려고 할 때, 추천창 가장 위에 채널 공지 사항이 보였다.

감각적인 포스터에 글자가 여럿 적혀 있었다.

[X월 XX일 00:00 CONCEPT PHOTO#1]

[X월 XX일 00:00 CONCEPT PHOTO#2]

[X월 XX일 00:00 CONCEPT PHOTO#3]

[X월 XX일 00:00 CONCEPT PHOTO#4]

[X월 XX일 00:00 CONCEPT PHOTO#5]

‘스케줄러구나.’

데뷔까지의 프로모션 계획을 적어둔 포스터였다.

[X월 XX일

12:00 Music Video Concept Teaser #1

13:00 Music Video Concept Teaser #2]

[X월 XX일

Preview #1 Music Video highlight]

[…….]

스케줄러를 읽어가던 유용태가 허허 웃었다.

‘뭐 보여줄 게 많다고 컨셉 포토랑 뮤비 티저를 이렇게 늘어놔.’

그의 눈동자는 빠르게 스케줄러의 최하단으로 넘어갔다.

[X월 XX일 Album Release]

‘이날 데뷔하는구나.’

얼마 안 남았네.

지하철 문이 열렸다.

유용태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로 엔터 채널을 구독했다.

전철을 나와 움직이자 또 전광판이 보였다.

신아름의 디지털 포스터는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까와 감흥이 전혀 달랐다.

‘사진 잘 나왔네.’

* * *

가로 엔터의 아침 회의.

그 분위기는 자못 심각했다.

“건대입구역에 아름이 광고가 걸렸어요.”

성필은 다른 이들이 그 사실을 받아들일 시간을 주려고 일부러 말을 멈췄다.

다들 술렁이는 게 보였다.

성필이 준비한 화면을 프로젝터에 띄우자, 그 술렁거림이 더해갔다.

“아, 이게 이렇게 되네.”

손혜빈이 기쁜 듯 아닌 듯 오묘한 웃음을 띠었다.

“다들 왜 그러십니까? 팬들이 광고를 띄워준 거면 좋은 거 아닙니까?”

“네, 좋긴 하죠. 저희 입장에서야 공짜 광고가 된 거니까요. 근데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에요.”

성필도 처음 저것을 보았을 때 기뻤다.

홍보가 되겠구나 싶어서.

하지만 이성이 돌아오자, 심각한 사태란 것을 깨달았다.

“저기 광고 거는 비용만 수백만 원이에요. 광고를 건 분들은 아름이 개인팬이고요.”

“저, 박 이사님. 개인팬이 정확히 어떤 의미입니까?”

“그룹 말고 특정 그룹 멤버만 좋아하는 팬이요.”

“아, ‘최애’를 좋아하는 거랑 비슷하군요.”

“아니요. 그거보다 더 나간 거예요. 자세히 설명하려면 긴데.”

성필은 ‘악성 개인팬’이란 것에 대해 설명했다.

그 폐해를 들은 한구인이 경악했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광고는 ‘신아름 마이너 갤러리’란 곳에서 총대를 구해서 한 건데…….”

신아름 마이너 갤러리는, 신아름이 그룹 포유에서 탈퇴를 선언하고 나서 가로 엔터 멤버들을 위한 게시판으로 사용되고 있다.

당연하게도 신아름 팬의 지분이 가장 높았으나, 최근 들어서는 다른 멤버들의 비중도 높아지는 추세다.

“저도 계속 모니터링을 했는데, 데뷔 일정이 나오면서 분열이 커지고 있어요.”

“분열?”

“네. 원래도 기미가 있긴 했는데 요즘 들어 심해요. 아름이 개인팬들이랑 우리 그룹, 소녀연맹 팬들이랑요.”

이러다간 신아름 팬덤이랑 한 줌뿐인 소녀연맹 팬덤이 분열하게 생겼다.

지금도 신나게 서로를 물어뜯는 중이다.

한 그룹 안에서 두 팬덤 세력이 생기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도 반드시 피해야 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멤버들은 물론 앞으로 팬이 될 사람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방법은 있어?”

아직 ‘신아름 마이너 갤러리’는 공식적인 팬 사이트도 아니고 그 영향력도 적다.

하지만 소녀연맹의 팬 커뮤니티는 제 모습도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사실상 ‘신아름 마이너 갤러리’가 공식 사이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데뷔 후 ‘신아름 마이너 갤러리’는 영향력이 큰 커뮤니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곳에서 개인팬과 그룹팬이 서로 물고 뜯고 있으면, 그룹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도 학을 떼면서 도망치겠지.

팬심으로 즐기러 왔더니, 어색한 분위기에 두 파벌이 싸우고 있으니 당연하다.

“완전한 해결책은 없어요. 여러 그룹이 겪어온 일이지만, 완전히 해결한 그룹이 없거든요.”

“흐음…….”

“하지만 시도는 해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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