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현재 활기차게 앨범 구성품을 논의하고 있긴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는 결정이 났다.
케이스, 재킷 등 앨범의 외부 구성은 이미 손혜빈이 처리를 끝내뒀다.
보통 기획사에서는 직원 여럿이 붙어야 할 것을, 수개월에 걸쳐 홀로 끝내놨다.
진짜 손혜빈은 전설이다…….
물론 가로 엔터의 만능 맥가이버, 민경섭의 도움도 있었다.
그는 빈 시간마다 손혜빈에게 끌려다니며 모진 일정을 소화했다.
“경섭아. 이 재질에 12, 12사이즈면 나오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봐 줘.”
“경섭아. 수량 이걸로 맞춰서 최소 언제까지 나오는지 알아봐 줘.”
“……구현할 수 있는지 알아봐 줘.”
“……알아봐 줘.”
덕분에 평생 연이 없던 앨범 디자인과 생산까지 경험해본 민경섭이었다.
각설하고, 남은 건 앨범 안에 들어갈 구성품에 관한 논의뿐이었다.
“브로마이드라.”
홍규헌은 성필의 미친 의견을 의외로 진지하게 고민해주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아니었다.
“그 자그마한 앨범 패키지 어디에 브로마이드를 넣을래. 정규 앨범이면 몰라도 싱글 크기인데.”
“하하.”
“그래. 농담인 거 알아. 그래도 진지한 회의니까 생산성 있는 대화만 하…….”
“농담 아닌데요.”
“…….”
성필도 원래는 평범한 구성을 바랐다.
하지만 손혜빈이 도발을 하니, 어쩔 수 없이 사심과 애정을 가득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브로마이드, 작은 걸로.”
“뭐 얼마나 작게?”
“앨범 패키지가 이 정도 크기잖아요.”
성필은 손으로 각을 세워 크기를 표현했다.
대략 150x260mm 사이즈다.
“네 번 정도 접으면 뭐, 그럭저럭 들어가지 않을까요?”
“하아.”
홍규헌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바로 거절되는구나, 그리 생각하며 성필이 낙담하려 할 때.
“자고로 브로마이드란 건 눈에 꽉 찰 정도로 커야지. 팬들이 고작 그런 크기에 만족할 거 같아? 박 이사, 팬의 마음을 그렇게 몰라? 우리 애들의 데뷔 앨범을, 고작 적당한 크기의 브로마이드로 채워서야 되겠어? 게다가 네 번 접는다고? 구겨진 브로마이드를 주겠다고? 참나…….”
설마, 패키지 크기를 더 늘리려는 건가!
“그러니까 기각이야. 패키지가 너무 작아.”
시무룩.
이미 패키지 사이즈는 결정이 났고, 곧 있으면 생산에 돌입할 것이다.
수정할 시간도 인력도 없다.
“브로마이드 통까지 포함하면 되잖아요.”
손혜빈이 해결법을 내놓았다.
브로마이드 통, 지관통(紙管筒)이라고 불리는 기다란 원통이다.
포스터나 브로마이드를 말아 넣어 구겨지지 않도록 보관하는 물건이다.
사실 브로마이드를 접어서 포장한다는 이상한 의견보다, 지관통을 먼저 생각했어야 하긴 한다.
뭐, 해결법이긴 한데…….
“그럼 생산비가 높아지잖아. 포장비랑.”
“성필이 너 이러기야?”
“생산비는 그렇다 쳐도 포장비는 진짜 문제인데.”
앨범을 배송할 때 쓰이는 박스 안에는 지관통이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중포장을 하거나 더 큰 박스를 써야 할 텐데, 그게 다 가로 엔터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냥 박스에 테이프로 붙이면 되잖아. 이렇게.”
손혜빈이 그림을 그려주었다.
작은 패키지 박스에 지관통을 붙이니, 무슨 도끼처럼 생겨 먹었다.
“보통 이런 모양이긴 하지.”
“성필이 너 진짜 감 잃었다. 브로마이드를 접자니, 이중포장을 하자느니.”
“아니, 난 사장님이 패키지에 집착하시는 거 같길래. 그에 따른 해결책을 내놓은 거지.”
“이걸 내 탓을 한다고?”
처음에 홍규헌이 미쳤다고 표현했던 안건이, 어느새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홍규헌은 손혜빈과 성필의 노력이 가상하기도 했으나, 슬슬 둘의 대화를 중단시켜야 했다.
“브로마이드까지 포함시키면 앨범 가격을 올려야 할 거야. 지금 가정된 가격만 해도 만 원이 넘어. 싱글 앨범인데 만 원이 넘는다고. 사려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팬들은 사요!”
“그 팬이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르니까 걱정하고 있잖냐.”
대략 앨범 가격은 13,000원대를 예상하고 있다. 다른 싱글 앨범들에 비해서 확연히 높다.
정규앨범도 구성품을 줄이면 2만 원도 안 될 수 있다.
데뷔 앨범이란 상징적 의미를 제쳐두더라도, 현재 책정된 가격은 높다는 게 홍규헌의 판단이었다.
물론 홍규헌도 동의한 가격대이긴 한데.
“브로마이드 하나 포함하는 걸로 앨범 가격이 눈에 띄게 올라. 고작 몇백 원, 천 원 차이로 안 사는 사람도 많다고.”
“저기.”
잠자코 있던 민경섭이 손을 들었다.
“초회판 한정으로 주는 건 어떨까요? 그 정도면 서비스 차원에선 괜찮은 거 같은데요.”
“민 매니저도 브로마이드 찬성하는 거야?”
“저도 처음 성필이 형 말하는 거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애들 사진이 워낙 잘 뽑혔잖아요. 그게 아까워서요.”
그렇다.
성필이 브로마이드 이야기를 꺼내고, 손혜빈이 거기에 미친 듯이 가세하는 이유가 있었다.
멤버들은 뮤비 촬영지와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었다. 앨범 구성품으로 넣을 포토카드와 포스트 카드 사진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기가 막혔다.
“특히 저는 리카 사진이 엄청 아까워요.”
모두의 머릿속에 하나의 사진이 떠올랐다.
다들 역작이라 칭송해 마지않았던, 스코틀랜드에서 촬영한 것이었다.
고성의 홀(Hall), 과거 성의 주인이 앉아 대신들과 회의를 했을 장소.
리카는 드레스를 입고 고풍스런 의자에 앉아 있다. 그녀는 칼을 역으로 세워 잡고, 나른한 듯 팔걸이에 팔꿈치를 두고 턱을 괸다.
배경, 분위기, 배우, 의상,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그 사진…….
“다른 멤버들 컨셉 사진도 굉장했는데, 저는 특히 그게 아깝네요. 포스터나 브로마이드로 뽑으면 진짜 좋을 거 같아요.”
“경섭 씨 최애가 리카였어요?”
“아니, 최애랄 것까진…….”
손혜빈에게 놀림당하는 민경섭을 보며, 홍규헌도 생각을 정리했다.
돈과 애정을 저울의 양쪽에 올려두고 끝없이 고민을 이어갔다.
“……그래. 초회 한정. 한정판은 사람 마음에 불을 지르는 법이지. 그 정도면 나도 OK 할 수 있어. 데뷔 앨범이란 상징성도 있고. 애들 작업물이 워낙 좋기도 하니까.”
내심 홍규헌도 아쉽던 차였다.
브로마이드가 앨범 구성에 포함됐을 경우, 만약 홍규헌이 소녀연맹의 팬이었다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길 게 분명했다.
“유통사마다 특전으로 둬서, 다른 종류로 같이 넣는 것도 좋겠다. 그럼 초도 한정 물량은 몇 개?”
막상 본인들의 바람이 현실화되었음에도, 성필과 손혜빈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망설이다가, 성필이 조심스레 말했다.
“이, 이천, 이천 개?”
“……윽, 머리가.”
다 팔리지 못하고 회사로 반환될 앨범을 떠올려버린 홍규헌이 관자놀이를 눌렀다.
“이천 개는 너무 많지 않아……? 천, 어어…… 천 개, 는 너무 적고…….”
손혜빈도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다들 앨범이 몇 장이나 팔릴지 가늠조차 안 됐기에, 당연한 현상이었다.
“데뷔 앨범이라서 감도 안 잡혀.”
한정판이라고 찍어냈더니 다 팔리지도 않으면 정말 슬플 것이다.
“됐어. 초회판 나중에 천천히 하고, 구성품이나 합의 보자.”
앨범 판매 이야기를 했더니 회의실 분위기도 무겁게 내려갔다.
지금까지 즐겁게 작업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사업이다.
이득을 보는 게 중요하다.
그 이득의 갈림길이 바로 눈앞에 있으니, 다들 신경이 곤두서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구성품 회의가 막바지에 이를 때쯤, 홍규헌이 문득 말했다.
“천 장은 팔릴 거라고 생각해. 아무리 못 팔아도.”
가로 엔터는 중소다.
인지도도 뭣도 없다.
6개 음방에 모두 출연하게 되면 인지도도 상승하겠으나, 그래도 중소 엔터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시작, 데뷔, 그리고 초동 천 장 판매.
꿈만 같은 이야기다.
흔히 20대 80의 법칙이라는, 파레토 법칙은 어느 영역에서나 적용되기 마련이다. 아이돌 사업도 상위 20%가 이익을 독점하다시피 한다.
과연 가로 엔터는 그 20%에 들 것인가?
확률적으로는 가망이 적다.
“다들 우리 애들 앞에서는 꿈에 부푼 얘기만 하면서, 왜 돈 앞에서는 안 그래? 좀 자신감을 가져. 우리가 키운 애들이잖아.”
홍규헌의 격려에 무거웠던 분위기가 조금은 풀렸다.
덕분에 회의도 탄력을 받아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오케이. 그럼 이대로 결정한다.”
마침내 앨범 패키지 구성 최종안이 나왔다.
이미 생산 진행 중인 것까지 합쳐서…….
[앨범 박스]
[CD]
[포스트 카드]
[70페이지 포토북(가사집 포함)]
[멤버 손편지(인쇄)]
[멤버 개인 포토카드]
[멤버 단체 포토카드]
[폴라로이드 카드]
[스티커]
[브로마이드(초도 한정 물량)]
[응모권]
“와, 우리 회사 진짜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이게 어떻게 싱글 구성이냐. 그냥 정규 앨범이구만.”
홍규헌은 자신이 결정을 내렸음에도, 구성품을 보고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데뷔라는 말에 홀려, 합리성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애정을 듬뿍 담은 결과였다.
그 결과를 지켜보는 한구인의 표정은 시종일관 굳어 있었다.
“가격은 싱글이 아니지만요.”
“뭐, 그래도 다른 정규들보단 훨씬 싸잖냐. 손 PD.”
“옙!”
“이대로 진행해.”
“알겠습니다!”
회의가 끝났다.
“다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이제 우린 물러날 수 없는 전장 앞에 서 있는 거야. 데뷔 앨범이 끝이 아니긴 하지만, 데뷔부터 반응을 얻어야 해. 꼭. 어음, 그러니까…….”
홍규헌은 쑥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파이팅 한 번 하자.”
직원들이 재빨리 홍규헌의 손에 자신들의 손을 겹쳤다.
“그럼, 어, 한다? 가로 엔터…….”
“파이팅!”
* * *
김채현.
중학교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창밖만 보고 있었다.
“하아.”
김채현의 취미는 아이돌 덕질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좋아하던 그룹이 거의 해체 상태에 놓여서 잠시 쉬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관심이 생기는 그룹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룹은 아니고.
데뷔가 언제인지도 모르는 연습생들이었다.
‘요즘엔 버스킹 영상도 안 올라오고…….’
가로 엔터의 다섯 연습생들.
처음 그녀들에게 꽂힌 건, 친구의 SNS에 장하양의 사진이 올라왔을 때였다.
무슨 그룹에 속한 아이돌인지 톡으로 묻자, 친구는 연습생이라고 했다.
‘연습생? 취향도 특이하다. 떡밥도 없을 텐데 연습생을 파냐. 가시밭길로 스스로 들어가네.’
어이가 없으면서도, 장하양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눈동자가 깊다.
우주 같다.
……이 언니의 존함은 무엇일까.
그 작은 호기심에서 가로 엔터의 SNS를 찾게 됐다.
“이거 아이튜브 영상 한 번만 봐봐! 지이이이인짜 예뻐!”
물론 가로 엔터에 관심을 가진 건 친구의 영업이 가장 큰 이유였다.
어쨌거나 김채현은 가로 엔터의 아이튜브 채널에 들어가게 되고.
“야! 나 어제 그거 봤거든? 리카가 한국사 수업 듣는 거? 존나 웃겨!”
“그치? 맞지? 용안도 진심 미쳤어.”
“용안(龍顔)?”
“리카는 용안이지! 턱도 막 빗살무늬토기처럼, 막막, 만화 캐릭터처럼!”
얘가 진짜 심하게 꽂혔구나.
고작 연습생한테.
이러다 데뷔 좌절되면 울겠네.
그렇게 생각했던 김채현은 시간이 지날수록.
“야야, 언니들 오늘 버스킹한다는데?”
“리얼? 어디서? 어, 여기면 버스 타고…….”
“갈래? 갈래?”
“뭘 갈래야.”
“안 가게?”
“물어볼 것도 없지. 빨리 가방 챙겨!”
아이돌 팬클럽이 음악방송 방청 신청하는 것처럼, 직접 멤버들의 버스킹을 찾아가기까지 했던 것이다.
매일 멤버들 SNS, 가로 엔터 공식 사이트, 아이튜브를 순회했다.
지루할 수가 없었다.
가로 엔터에서는 현역 아이돌 그룹보다 떡밥을 더 많이 던져주었고, 멤버들도 SNS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양이가 답글 달아줬어어어어어엌!”
“미친, 너 현생 운 다 썼다. 뭐라고 써줬는데?”
“으, 으으, 응원해줘서, 고고, 고맙, 고맙다고…….”
정말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처음엔 예뻐서 관심을 가졌고, 아이튜브에 올라온 영상이 재밌어서 계속 찾아봤고, 어느새 애정이 생겨서 떡밥만 주워 먹고 있다.
그런데…….
‘요즘엔 아무것도 안 올라와.’
설마 회사가 망했나?
그럼 멤버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프로젝트 포유 최종 멤버였던 신아름까지 영입했는데, 이렇게 쉽게 회사가 망할 수 있나?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채현아, 창밖에 뭐 재밌는 거 있어?”
“네? 아, 아니요.”
선생님이 바로 앞에 올 때까지 눈치도 못 챘다. 하지만 예상했던 쓴 말은 없었다.
오히려 이해한다는 미소만이 돌아왔다.
“다들 중학생 생활도 끝나가서 싱숭생숭한 건 알지만, 그래도 공부는 끝까지 해야지. 기말고사는 남았잖니?”
학생들이 단체로 앓는 소리를 냈다.
김채현도 한숨을 쉬었다.
기말고사 때문이 아니라, 가로 엔터가 생각이 나서였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멤버들 SNS를 탐방했다.
역시, 며칠째 아무런 업로드도 없었다.
가장 최근 게시물에는 멤버들을 찾는 댓글이 계속 달리고 있었다.
[중소가 그럼 그렇지. 망했구만.]
김채현의 이마에 빠직, 힘줄이 돋았다.
곧바로 답글을 달아 반박했다.
아니, 하려 했다.
‘에휴. 해봤자 뭐해.’
진짜 망한 걸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사랑했어요 언니들…….’
김채현은 마음을 정리하기로 했다.
며칠, 아니.
일주일 넘게 가로 엔터가 관리하는 모든 페이지에 게시글이 안 올라오고 있었다.
더 이상 붙잡아 봤자 헤어짐을 결심했을 때 고통만 커질 뿐이다.
“언니들…….”
김채현은 핸드폰에 저장된 장하양의 사진을 보고 울상지었다.
연습생에게 이렇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상상도 못 했다.
옛 애인의 사진을 지우는 기분으로, 김채현은 삭제 버튼을 눌렀.
‘못 하겠어!’
김채현은 그저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김채현은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습관처럼 장하양의 SNS에 들어갔다.
이미 마음을 정리하기로 했음에도 몸은 솔직하게 움직였다.
‘그럼 그렇지. 오늘도 아무것도 없네. 아침이기도 하…….’
“엉?!”
게시글이 올라와 있다.
사진이다.
아니, 포스터다.
“미친…….”
화사한 튤립무늬 셔츠에 밝은색 청바지를 입은 장하양이다.
그녀는 꽃을 들고 밝게 웃으며 정면을 보고 있었다. 배경에는 흐릿하게 몇몇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꽃이 진다. 꽃이 하양이한테 패배했어…….’
진짜 저세상 외모다.
사진 속의 미소일 뿐이지만, 김채현은 자신의 심장이 거세게 폭행당하는 것을 느꼈다.
실물로 봤으면 당장 묫자리를 팠고 누웠을 것이다.
‘한 장이 아니야!’
여러 장이다.
김채현은 오랜만에 올라온 사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아까와 구도는 같았지만, 꽃이 정면으로 더 다가왔다.
‘꽃을 주고 있는 거야?’
나한테?!
언니야, 나 미치게써…….
사진을 넘길수록 꽃은 점점 다가왔고, 장하양이 꽃을 내밀고 있는 중이란 게 확실시됐다.
‘움짤로 만들어서 뿌리고 싶다. 누가 만들어주려나? 만들어주겠지?’
김채현은 행복함에 빠진 채, 사진 묶음의 마지막으로 넘어갔다.
“어?”
구도가 바뀌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이었다.
“이게 뭐야.”
사진은 장하양의 측면을 담았다. 그리고 그녀는 꽃을 내밀고 있었다.
새까만 총을 내세운 군인들을 향해서.
아까와 전혀 다른 분위기, 갑자기 찾아온 대비적인 사진에 김채현은 순간 멍해졌다.
그녀의 눈은 자연스레 사진 아래로 향했다.
글자가 있었다.
[CONCEPT PHOTO#1]
“컨셉 포토 1. 이거, 설마, 혹시!”
앨범 프로모션이다!
앨범이 발매되기 전의 맛보기.
“데, 데뷔한다. 데뷔야. 곧, 앨범이 나올, 거야.”
김채현은 숨을 흡 쉬었다. 그리고 우렁차게 내뱉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아침부터 왜 난리냐고 엄마한테 혼났다.
김채현은 혼나든 말든 상관도 없었다.
어제까지 암흑이었던 세상에 빛이 찾아온 듯했다. 그녀는 학교에 가야 하는 것도 잊고 침대에 엎드려 싱글벙글 장하양의 사진만 보았다.
벌써 댓글도 달렸다.
[#SNYM이 뭔지 아시는 분?]
“응?”
그러고 보니 해시태그에 그런 게 있긴 했다.
인터넷에 쳐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게 뭐지?’
댓글을 더 내렸다.
[그룹 이름 아님?]
‘아, 그룹명!’
그런데 SNYM이 뭐야? 무슨 약자인가?
궁금했지만, 동시에 행복하기도 했다.
‘커뮤니티 사람들이랑 궁예질만 해도 재밌겠다.’
아마, 9시가 넘어가면 ‘신아름 마이너 갤러리’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이 있을 것이다.
원래 프로젝트 포유에 출연했던 신아름을 위해 마련된 인터넷 게시판인데, 지금은 가로 엔터 연습생들에 대한 떡밥을 굴리는 곳으로 사용됐다.
대부분 신아름 팬들인 데다가, 전체 멤버들 지분은 한 줌뿐이지만…….
그 한 줌인 사람들이 있는 게 어딘가.
‘아아, 빨리 앨범이랑 곡 나와라. 2장, 아니. 엄마한테 졸라서 5장 사야지.’
김채현은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 * *
“소녀연맹이 대체 뭔가요?!”
리카가 화이트보드에 적힌 ‘소녀연맹’을 보자마자 말했다.
성필이 뻘쭘하게 펜을 내렸다.
“저, 리카. 아직 후보 중 하나인데 벌써부터 반응할 건…….”
“저 의견을 낸 건 누군가요!”
‘미안, 리카.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