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05화 (105/760)

105화

“시작하겠습니다.”

조정훈이 촬영 개시를 선언했다.

그 말인즉슨, 한구인이 계속 조정훈의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단 뜻이었다.

이번 촬영의 주인공은 조아라였다.

‘러시아 혁명.’

세계 최초의 성공한 공산주의 혁명.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이 주도한 것으로, 러시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소련을 탄생시키는 방아쇠가 되었다.

조아라는 정장을 입고 긴장한 듯 엑스트라 배우들의 곁에 섰다.

‘완전 클래식 정장이네.’

패션적인 의미의 클래식이 아니었다.

김형선 실장은 레닌의 여러 사진과 그림에 영향을 받아, 정말 그가 입었던 옷을 재현시켰다.

가장 일반적인 정장의 구성이 아닌, 와이셔츠 위에 베스트(Vest)를 입고 또 그 위에 재킷, 또 그 위에 트렌치코트를 입었다.

가을이라도 그런 구성은 조아라가 땀을 흘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라야, 대본대로 간다. 시작.”

공장 안에서는 노동자들이 기계를 만지며 일을 한다.

그 가운데서, 조아라가 기계 뒤에서 튀어나온다. 그녀는 당당한 걸음으로 공장 중앙을 가로지른다.

‘아니’를 부르며, 노동자들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계속 걷는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조아라의 뒤를 따른다.

곧 그 수는 몇 명에서 몇십 명으로 불어난다.

약 10초가 넘는 롱 테이크 씬이다.

첫 촬영은.

“컷!”

아쉽게도 실패였다.

결과물을 확인한 조정훈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스태프들에게 몇 마디 하곤, 조아라를 불러서 문제점을 자세하게 짚어주었다.

성필은 조정훈이 말을 끝내자 재빨리 조아라에게 달려가 물을 내밀었다.

조아라는 겨우 걸었을 뿐인데도 땀범벅이었다. 여러 겹의 옷 때문이었다.

“물 마셔.”

“네.”

이어서 메이크업 스태프가 조아라의 얼굴에 흐른 땀을 조심스레 면봉으로 닦아냈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메이크업 스태프가 OK 사인을 주었다.

“다시 시작!”

같은 장면을 수십 번이나 다시 촬영한다.

배우들도, 조아라도 지쳐갔다.

하지만 그만둘 수는 없다.

이 장소에서의 촬영은 반드시 오늘 내에 마쳐야만 한다.

시간의 마지노선이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을 때 마음껏 와서 촬영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오케이 오케이 좋아 컷!”

몇 시간 만에 드디어 통과됐다.

조아라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재빨리 코트와 재킷, 베스트를 벗었다.

그녀의 와이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라야 많이 힘들지? 좀 쉬자.”

“네…….”

성필과 멤버들은 간이 의자에 앉은 조아라를 상전 받들 듯이 대해주었다.

조아라는 그런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었다.

부채를 부쳐주며 마사지까지 해줬다.

“진짜 힘들었겠다.”

“아냐…….”

“나 뒤에서 감독님이 찍은 거 봤는데, 다 비슷하게 보였거든. 감독님이 사소한 데 신경을 많이 쓰시나 봐.”

“그게 아니라 완벽주의신 거지. 고마운 거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쉬었다.

그게 고작 십수 분 되었을까, 초조하게 시계를 보고 있던 조정훈이 외쳤다.

“바로 다음 간다!”

조아라는 허겁지겁 다시 옷을 입었다.

땀에 절은 와이셔츠는 이미 갈아입었다.

다시 베스트, 재킷, 코트를 걸친 조아라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아라야 준비됐지?”

“네.”

촬영은 늦게까지 이어졌다.

다행히 앞으로는 짧은 씬만 따내서, 조아라의 체력 소모가 적었다.

옷도 무대 의상인 더 가벼운 것으로 바꾸기도 했고.

“더! 더 혁명가 같은 표정!”

“혁명가 같은 표정이요?”

혁명을 일으켜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네 노래의 감성을 담아! ‘아니’의 감성을 담으라고! 세상에 저항하고 자유를 외치는! 어른이랑 사회가 만들어둔 질서의 장막에 대항하는 당찬 10대의 느낌을 내란 말야! 넌 혁명가야!”

곡에 과몰입한 조정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조아라도 오랜 자기암시 끝에, 진짜 혁명가 같은 기운을 낼 수 있었다.

“분위기 죽이네.”

정장을 입은 채 눈을 위로 치켜뜬 조아라.

그 모습을 조정훈이 간이 발판 위에 올라가 찍고 있었다.

조아라의 분위기는 굉장했다.

붉은 깃발과 권총을 쥐여주면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 ‘혁명 만세’를 외칠 것만 같다.

……진짜 혁명가라기보다는 혁명의 아이돌 같은 느낌이란 뜻이다.

“오케이 고생하셨습니다! 당케! 당케!”

엑스트라 배우들이 인사하며 자리를 떴다.

“이제 끝인가 보네, 하아. 다행이다.”

가만히 촬영장을 지키고 있었을 뿐인 리카도 녹초가 되어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멤버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그녀들도 이럴진대, 조아라는 얼마나 지쳤겠는가.

“이제 단체 씬 찍는다.”

“에?”

끝이 아니었다.

이제 멤버들이 단체로 나오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이미 콘티를 보아 알 텐데도, 피로 때문에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멤버들은 준비된 의상을 빠르게 입었다.

조정훈은 그녀들 앞에 서서 진지하게, 더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빨리, 이번 촬영은 진짜 빨리 끝내야 해.”

조정훈도 많이 지친 건가?

확실히 스태프들도 눈의 초점이 엇나갈 정도로 고생했으니, 빨리 끝내자고 당부해도 이상한 건 아니다.

“Komm herrein(들어오세요)!”

하지만 빨리 끝내자는 이유는 피로도 따위가 아니었다.

스태프들이 트럭의 입구를 공장 입구와 맞대었다. 트럭 짐칸에서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장비들이 내려왔다.

공장 바닥에는 레일이 깔리고, 그 위에 사람 키가 훌쩍 넘어갈 카메라가 올라왔다.

조정훈이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금 당부했다.

“저거 MCC야.”

“MCC?”

“모션 컨트롤 카메라. 1시간 빌리는 데 수백만 원이야. 거의 천만 원이라고.”

“처, 츠, 처, 처, 천만 원이요?”

가격을 들은 장하양이 경악했다.

“그러니까, 얘들아.”

조정훈이 비굴한 투로 말했다.

“빨리, 제발, 완벽하게 해서 빨리 끝내자…….”

멤버들은 물론 성필과 한구인마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

모션 컨트롤 카메라는 입력한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가 자동으로 움직인다.

상하좌우전후 가리지 않고, 정말로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다.

카메라 감독이 앵글에 따라 열심히 달리지 않아도, 레일 위에 카트를 올려 밀지 않아도.

시간당 대여료 1천만 원인 괴물만 있으면 어떤 괴랄한 앵글이라도 구현할 수 있다.

멤버들은 MCC를 앞에 두고 결연히 섰다.

이번 촬영은 ‘아니’의 퍼포먼스 그 자체였다.

“시작!”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촬영이 이어졌다.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기 때문은 아니었다.

멤버들의 퍼포먼스는 완벽했다.

하지만 조정훈은 최대한 많은 앵글의 결과물을 남겨두고 싶어 했다. 그편이 편집할 때 훨씬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MCC는 촬영마다 항상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좋아, 잘했어, 다들 너무 잘해줬다!”

40분 만에 조정훈이 OK 사인을 내렸다.

멤버들은 돈을 아꼈단 생각에 기뻐서 서로를 껴안았다.

“와타시타치가(저희들이) 500만 원을 아낀 거네요!”

“아니. 원래 1시간 빌리기로 했어.”

“근데 왜 빨리 찍자고 하신 거예요?”

“1시간 넘으면 추가 요금 생기니까.”

“아.”

“이왕 시간 남은 거 더 찍어볼까?”

“앗, 아아…….”

아침에 시작했던 촬영이었는데, 벌써 밤 8시가 넘었다.

이제 끝인가 싶었는데, 조정훈은 마지막으로 촬영이 남았다고 했다.

“또요?”

열심히 일해주는 스태프들 앞에서 할 말이 아니란 건 알지만, 조아라는 ‘또?’란 말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땀 때문에 찝찝하고, 옷은 무겁고 두껍고, 정말 더 이대로 있다간 죽을 것만 같았다.

“하나만 더 하자.”

조정훈도 철면피는 아니었다.

그는 조아라를 달래기 위해 부드럽게, 부탁하듯 말했다.

조아라는 지쳐서 고개를 떨구었으나 승낙하는 뜻으로 작게 ‘네’라고 말했다.

“자. 거기 서서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려. 돌리면서 위를 봐. 비행기 지나갈 때 쳐다보는 것처럼.”

“이렇게요?”

“응. 그렇게. 자, 그럼 촬영할게.”

촬영은 1분 만에 끝났다. 그러자 오히려 조아라가 불안해졌다.

“나 걱정해서 짧게 끝낸 거 아니죠?”

“아냐. 잘 찍혀서 그래.”

그것을 끝으로, 첫날의 촬영이 막을 내렸다.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이곳으로 와 멤버들의 컨셉 포토를 찍고 조아라의 개인 씬만 조금 찍으면, 괴를리츠에서의 일정은 끝난다.

“그럼.”

조정훈이 숨을 크게 들이쉬고.

“수고하셨습니다!”

감독으로서 끝을 선언했다.

* * *

가로 엔터 인원의 숙소는 괴를리츠에서도 싼 편에 속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이국적인 풍모와 결합된 현대적인 시설은, 고작 5만 원에 불과한 비용으로 하루를 지내기엔 과분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비슷한 가격 모텔보다 훨씬 낫네요.”

성필은 저도 모르게 익숙한 숙박업소와 비교하는 발언을 했다.

성인인 한구인에게 한 말인데, 정작 그에게서는 대답이 없고 멤버들의 시선만 받게 됐다.

성필도 재빨리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수습하려던 찰나.

“어, 예. 그렇군요. 가격 대비 좋은 것 같습니다.”

뒤늦게 한구인이 성필의 말을 받아주었다.

“예, 예에. 좋네요, 여기. 감독님께서 잘 알아봐 주셨네요.”

“으음, 여기가 모텔보다 좋은 거구나.”

“아름아 방금 내 말 잊어. 레드썬.”

성필이 손가락을 튕기자 신아름이 깔깔 웃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한구인이 각자에게 할당된 방으로 안내했다.

“화사하네요.”

기본적으로 노란색을 베이스로 한 방이 백설하와 장하양의 차지가 됐다.

넓은 데다 인테리어도 좋았다.

아무튼 이국적이라서 좋았다.

그 방을 본 19살 라인들이 기대감에 부풀었다.

“우리 방도 이렇겠지?”

아니었다.

침대는 싱글 사이즈 세 개.

남는 공간도 그다지 없어서 좁았다.

“왜 우리만 이런 방 줘요?! 나이가 적어서인가요? 그런가요?! 한국이 유교의 나라라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죄송합니다. 남는 방이 없었습니다.”

“으, 그럼 어쩔 수 없죠…….”

“기다려. 안심하지 마.”

조아라가 체념하려던 리카를 제지했다.

“한의사님이랑 아저씨 방은 어떤 거예요? 보게 해주세요.”

한구인이 기꺼이 보여주었다.

킹사이즈 침대가 하나뿐인 소박한 곳이었다.

“너희들이 여기서 잘래?”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조아라가 사죄를 한 뒤, 리카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들이 돌아가자, 성필도 피곤함에 절어 짐을 풀었다.

“한 이사님이 먼저 씻으실래요?”

“아닙니다.”

피곤해서 빨리 씻고 자고 싶을 텐데, 한구인은 배려심 깊게도 양보해주려는 듯했다.

성필이 거부하더라도 양보 배틀로 이어질 게 뻔하기에, 그는 그냥 먼저 씻기로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한구인은 방에 없었다.

성필은 창문 근처의 의자에 앉아 밖을 보았다.

“독일.”

짧게 타국의 이름을 말해보았으나 감흥이랄 건 없었다.

종일 어두운 공장 안에 있기만 해서일까.

일 때문에 왔단 건 알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없어지진 않았다.

‘산책이라도 하자.’

호텔이라고 부르기에도 소박한 건물을 빠져나와 근처를 걸었다.

십수 걸음 만에 끝나는 짧은 잔디밭을 걸어 나가니, 한국과 다름없이 돌로 된 인도가 밟혔다.

그리고 이어진 건 깔끔한 도로와 가로등, 한국에선 보기 힘든 양식의 건물들뿐이었다.

숲과 나무가 많으나, 기본적으로는 도시였다.

‘김새네.’

밖으로 나가는 것도 무서워져서, 성필은 호텔 근처를 돌다가 다시 입구로 돌아왔다.

얌전히 잠이나 잘까 하던 때, 건물의 위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누군가 옥상 난간에 기대있는 것 같다.

성필은 호텔 계단을 타고 올라가 옥상에 도착했다.

‘설하 씨네.’

단순히 난간을 짚고 있는 뒷모습에 불과했으나, 그것만으로도 화보처럼 느껴졌다.

성필은 천천히 백설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놀라지 않도록 작게 말했다.

“설하 씨.”

“꺄아아악!”

백설하는 어찌나 놀랐는지 다리까지 풀려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급히 고개를 돌려 뒤를 본 그녀는, 성필임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 뭐예요오……. 이런 장난치지 마세요…….”

“그냥 부른 건데…….”

백설하를 일으켜준 후, 왜 혼자 옥상에 있냐고 물었다.

“하양이는 베개에 머리 대자마자 자더라구요.”

“다른 애들은요?”

“……다들 동갑이니까, 자기들끼리 떠들썩하게 잘 놀고 있어요.”

그 말을 한 백설하는 금세 자신의 발언이 이상하게 들릴 걸 염려해 사족을 붙였다.

“아, 아니! 저만 빼고 뭘 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잘 놀고 있다구요…….”

“알아요. 잠 안 오시면 같이 노시지.”

“아, 하하. 네.”

백설하는 부끄러운 듯 난간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애들한테는 제가 어려운 사람이지 않을까…… 그래서요.”

두말할 것도 없이, 리카와 조아라는 매우 친한 사이다.

뒤늦게 들어온 신아름이 잘 어울릴까 걱정했으나, 동갑이기 때문인지 그 두 사람과 잘 지냈다.

반면, 백설하와 장하양은 19살들과 벽이 있는 듯했다.

‘하양이는 원래 인간관계에 큰 흥미가 없는 성격인데, 설하 씨는…….’

그렇다고 백설하와 장하양이 동생 라인들과 잘 못 어울리는 건 아니다.

대화도 곧 잘하고 숙소에서도 스스럼없이 지낸다. 다만, 절친으로서의 선까지는 가지 못했다.

‘회사가, 내가 설하 씨한테 준 역할 때문이겠지.’

암묵적이며 잠정적인 리더.

위계에서 오는 힘이 그 거리를 만들어냈다.

오늘도 백설하가 동생 라인의 방으로 가지 못했던 건, 그 거리 때문일 것이다.

회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리 때문에, 어쩌면 백설하는 갑갑할 수도 있으리라.

“어려울 게 뭐 있어요.”

“나이도 제가 더 높고, 그렇잖아요.”

고작 세 살 차이면서.

옛날부터 느꼈지만, 백설하는 본인의 나이를 지나치게 높게 보고 있었다.

성필의 눈에는 리카나 백설하나 거기서 거기지만, 본인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어쩌겠어.’

시간이 해결할 문제일 것이다.

그에 대한 해답을 주는 대신, 성필은 주제를 돌렸다.

“설하 씨. 저쪽 보이세요?”

“네.”

“영화 ‘그레이트 부다페스트 호텔’ 보셨어요?”

“예고편만요.”

“저기 가면 그 호텔로 쓰였던 백화점이 있어요. 진짜 쓰이는 백화점은 아니었고요, 형체만 남아 있었어요.”

“정말요? 예고편에서는 정말 호텔 같았는데. 백화점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영화가 상영되고 진짜 백화점으로 오픈하려고 했는데, 인구 5만 명인 도시에 그렇게 큰 백화점을 열 수는 없죠.”

“아…… 주민분들이 아쉬워했겠어요.”

“네, 그렇겠죠.”

성필은 그저 백설하와 대화를 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단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한 시답잖은 이야기들로.

백설하가 재밌어할 만한 이야기들로.

“저기 보이세요? 저 선 건너편의 불빛이 폴란드예요.”

“그러면 저기가 국경선이에요?”

“네.”

“와, 신기해요. 조금만 걸으면 다른 나라네요.”

“한국은 섬이나 다름없으니, 충분히 신기할 만하죠.”

“꼭 이사님은 안 신기한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저랑 같은 한국인이시면서.”

백설하가 낮게 웃었다.

“못 가보는 게 아쉽네요.”

“그럼 나중에 다시 오면 되죠.”

“나중에요?”

“네. 나중에 데뷔 앨범 활동도 끝나고, 가로 엔터도 자리를 잡고 하면. 혹시 모르잖아요. 앨범이 잘돼서 사장님이 포상이라도 주실는지.”

백설하는 국경선 너머 폴란드를 보았다.

“네. 나중에 꼭 와요. 폴란드가 어떤 나란지는 잘 모르지만요. 박 이사님이 안내해주시는 거죠?”

“저도 몰라요.”

“네?”

“그냥 여기 온다니까 인터넷으로 조사해봤어요. 영화 얘기도, 이 도시 얘기도요. 쓸모없을 줄 알았는데 설하 씨한테 아는 척 좀 해봤으니 손해 본 시간은 아니었네요. 얘기 재밌게 들으셨어요?”

“아, 뭐에요오. 전 이사님이 원래 다 아시던 거라고 생각했잖아요.”

대화는 오랫동안 계속됐다.

백설하의 웃음과 그 웃음에 힘을 얻은 성필의 목소리가 밤을 타고 이어졌다.

* * *

독일에 이어 프랑스에서의 촬영을 마치고 스코틀랜드로 향했다.

스코틀랜드에서의 주인공은 리카였다.

리카는 드디어 자신의 차례가 왔다고 기뻐했으나, 촬영의 후반부에 들어서자 안색이 싹 바뀌었다.

“아, 아타시(제)가 뭘 한다고요?”

“말에 탈 거라고.”

히히힝!

백마가 앞발을 들어 올리며 힘차게 울었다.

그것을 본 리카의 안색이 더 초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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