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성필과 민경섭은 초췌해진 몰골로 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적막과 함께 하늘 위로 올라갔다.
“하하.”
민경섭이 웃었다.
성필은 왜 웃냐고 물을 기력도 없었다.
“흐흐.”
“……크킄.”
왠지는 모르겠지만 성필도 웃었다.
며칠 동안 옷만 들고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나가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곧 두 사람의 웃음은 사방을 울릴 정도로 커졌다.
민경섭은 찔끔 나온 눈물을 닦고 만족이 담긴 숨을 뱉어냈다.
“재밌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발등에 불이 붙어서 돌아다니는 동안에야 죽을 맛이었지, 다 끝내고 보니 추억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기억이란 이토록 치사하다.
마치 군대 생활이 세월의 풍화로 깎이며 미화되는 것처럼, 힘든 일도 추억이 되는 것이다.
“스타일리스트 팀 실수긴 한데, 화나면서도 재밌었어요. 형도 그랬죠?”
“어. 애들 옷이 완성되는 거 보는 맛이 있더라.”
단순한 천이 어떻게 사람이 입는 옷으로 바뀌는지 보는 건 굉장한 경험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며칠 간의 개고생은 가치가 있었다. 앞으로도 두 사람의 자산이 될 경험이 틀림없다.
“다 피우셨어요?”
“어.”
“여기 버리세요. 형 맨날 회사까지 꽁초 가져와서 버리잖아요.”
민경섭이 휴대용 재떨이를 내밀었다. 성필은 그곳에 꽁초를 버리고 신기하단 듯이 만져보았다.
“이런 것도 있구나. 어디서 샀어?”
“여자친구가 사줬어요.”
“괜찮네.”
“형도 하나 사요. 쓰레기통 찾을 때까지 주머니에 꽁초 넣고 다닐 필요도 없고, 편해요.”
“나야 흡연 구역에서만 피우는데 뭐.”
“여기부터가 흡연 구역이 아니잖아요.”
둘은 회사에서 떨어진 골목에서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꽁초는 회사로 가져와서 버린다.
“음, 근데 나 담배 끊어보려고.”
민경섭이 화들짝 놀랐다.
“왜요?”
“얼마 전인데. 담배 피우고 들어와서 설하 씨를 만났거든. 그런데 콧잔등을 살짝 찌푸리시더라.”
“담배 냄새 때문에요? 형 탈취제도 뿌리잖아요.”
“비흡연자는 냄새 맡을 수 있나 보던데.”
“물어보셨어요?”
“아니. 내 느낌상 그렇단 거야.”
민경섭은 환상의 동물 보는 것처럼 성필을 응시했다.
“형 뭐 설하한테 마음 있어요?”
“돌았냐?”
“아니. 겨우 그런 거 가지고 담배 끊을 생각을 한다고요? 뭐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얼굴 좀 찌푸렸다고?”
“언제 끊어야겠단 생각은 했지.”
“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단 반응이다.
실은, 성필은 그때 꽤 큰 충격을 받았었다.
여태껏 회사에서 담배 때문에 누가 뭐라 했던 적은 없었다.
사장인 홍규헌부터가 애연가 아닌가.
그녀도 담배 냄새 때문인지 멤버들 앞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긴 하지만.
아무튼 아무런 생각도 안 가지고 있다가, 갑자기 백설하가 순간이지만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보니 이만저만 충격적인 게 아니었다.
‘담배 냄새 때문에 꺼려질 바에야 끊는 게 낫지.’
아직 완전히 결심한 것도 아니고, 끊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성필의 마음은 끊는단 쪽으로 상당히 기울었다.
“암튼 내일 잘 다녀오세요.”
드디어 내일이 독일로의 출국 날이다.
멤버들은 해외로 간단 생각에 들떴으면서도, 엄연히 뮤비 촬영이란 업무가 있기에 들뜬 마음을 표출하지 못했다.
“기념품도 좀 사 오고요.”
“살 만한 거 있으면 살게.”
“저는 미리 차 시동 걸어둘게요.”
오늘 멤버들은 오전 연습만 있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숙소로 가서 짐을 챙기기로 했다.
긴 시간이 드는 일정이니 짐은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부족할 것이다.
민경섭은 주차장으로 가고, 성필은 회사로 들어갔다.
“산책 다녀오셨어요?”
소파에 앉아 있던 백설하가 반갑게 물어왔다.
여기서 말하는 산책이란 담배를 뜻했다.
“네. 다른 애들은요?”
“아, 모르겠어요. 시간 되면 내려올 거예요.”
“음.”
성필은 사무실로 가려다가, 멈춰서서 백설하의 곁으로 다가갔다.
“설하 씨. 저한테서 담배 냄새 많이 나요?”
“네?”
백설하는 당황했다. 그러더니 천천히 성필에게로 코를 가까이 가져갔다.
몇 번 가볍게 근처의 냄새를 맡은 백설하가 고개를 저었다.
“탈취제 냄…… 향기만 나요.”
“저 신경 써서 좋게 안 말해줘도 돼요. 그, 냄새가 신경 쓰일 만큼 큰가요?”
“아니요. 의식한 적은 없는데……. 누가 그런 말 했어요?”
성필은 얼마 전에 백설하가 인상을 찌푸렸던 때의 일을 말했다.
“제가요?”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하긴, 그렇게 사소한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지.
“저 근데 담배 냄새 신경 안 써요. 제가 전에 속한 그룹에서 담배 피우던 언니 있으셨거든요.”
“그룹에요? 어디서 피웠는데요?”
“아침이랑 밤에 숙소 화장실에서요. 밖에서 피우다 들키면 안 되니까요.”
“와…… 설하 씨 힘드셨겠다.”
“힘들진 않았어요. 그 언니가 저희보다 30분 일찍 일어나고 30분 늦게 잠들었거든요. 우리가 일어나기 전에 피우시고, 우리가 다 잠들면 또 피웠어요.”
담배 때문에 수면 시간을 조절해?
정말 엄청난 집념이다.
“그래도 그 은근한 냄새가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었지만요. 언니 숙소 옷에서도 났고요. 처음엔 쫌 그랬는데, 나중 되니까 익숙해지더라고요. 그거 때문인지 지금도 담배 냄새는 신경 안 쓰셔요.”
“그렇구나.”
동의하는 듯 답하긴 했으나, 아마 백설하는 성필이 부담을 느끼길 바라지 않아서 한 말일 것이다.
비흡연자 중 담배 냄새가 신경 안 쓰이는 사람은 없다. 라는 게 성필의 생각이다.
물론 한구인이야 완전 면역인 것 같긴 했으나, 백설하가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끊는 건…… 좀 보류해둘까.’
앞으로는 뒤처리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잡담을 조금 더 나누니, 신아름이 2층에서 내려왔다.
“팀…….”
성필을 부르려던 신아름은 사방을 돌아보았다.
포식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초식동물 같았다.
장하양이 있는지 보는 것이다. ‘팀장님’이라고 부르면 또 태클이 들어올 테니까.
확인을 끝낸 신아름이 안심하며, 가방 안에서 깔끔하게 포장된 상자를 꺼냈다.
“팀장님, 선물.”
“올해도 고맙다.”
그 광경을, 백설하가 멀뚱히 바라보았다.
“선물?”
“하양 언니도 모르더니 설하 쌤도 모르나 보네요. 오늘 팀장님 생일이에요.”
“어?”
성필이 쑥스러운 티를 내며 재빨리 선물을 숨겼다.
“왜, 왜 말 안 해주셨어요?”
백설하는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목소리를 떨었다.
“딱히 알릴 만한 것도 아니고……. 생일 말하면 괜히 부담 주는 것 같잖아요.”
“아름이는 알잖아요.”
“저야 팀장님이랑 오래 보고 지냈으니까 알죠.”
“…….”
백설하는 성필이 소파 구석에 숨긴 선물상자를 지긋이 보더니, 어딘가 섭섭한 투로 말했다.
“네, 그러네요.”
기분이 내려간 게 그 짧은 말로도 다 느껴져서, 성필은 곧바로 사과의 말을 입에 담았다.
“미안해요. 설하 씨한테 알리기 싫었다,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부담 드리기 싫어서 말 안 했어요.”
“아, 네. 알아요. 이해해요.”
성필이 미안해한단 것을 안 백설하는 금방 무표정을 지우고 웃어 보였다.
“생일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둘 사이에 미묘한 공기가 흘렀다.
그것을 보고 있던 신아름은 정적을 끊겠단 듯 떠들썩하게 말했다.
“제 생일선물은 뭐 줄 거예요?”
성필은 흠칫했다.
방금 생일 문제로 분위기가 이상해진 것을 알 텐데, 굳이 또 생일 이야기를 꺼내다니.
백설하를 놀리는 건가?
웃는 낯짝을 보니 놀리는 게 맞나 보다.
“내가 알아서 줄게.”
“후보는 있을 거 아니에요. 뭐 생각하고 있어요?”
“미리 말해주면 재미없잖아.”
백설하가 기계적으로 미소를 짓고 있는 게 보기 힘들어질 무렵, 리카가 빠른 걸음으로 1층에 내려왔다.
“빨리 가요! 챙길 게 산더미처럼 있다구요!”
“아직 아라랑 하양이 안 내려왔어.”
“아직도요? 으, 빨리 가야 하는데…….”
지금 숙소로 가도 짐 챙길 시간이 10시간도 넘게 있을 텐데, 뭐가 그리 급한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리카의 등장이 신아름의 말을 끊었기에, 더는 어색한 상황이 나오지 않았다.
* * *
“여기가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빌리 브란트 국제공항입니다.”
처음 본 독일의 모습은, 딱히 큰 감상은 없었다. 그냥 공항이었으니까.
서양인이 많다는 게 한국과는 유일한 차이점이었다.
한구인은 익숙하게 앞장서서 공항을 빠져나갔다. 십수 명의 스태프들은 우두머리를 따르는 쥐 떼처럼 한구인의 뒤만 따라갔다.
“여기가 도이치(독일)!”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리카가 팔을 활짝 펼쳤다.
“베를린……!”
보이는 건 산과 도로, 밭과 숲뿐이었다.
“에? 여, 여기 베를린이잖아요……? 독일의 수도! 독일의 심장인데 어째서!”
“테겔 국제공항에서 내렸으면 도시의 일면이라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브란덴부르크 공항은 베를린 남쪽의 저개발 구역에 있습니다.”
“아, 그럼 여긴 베를린이 아닌 거죠?”
“베를린입니다.”
리카가 혼란스레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확히는 베를린의 경계에 접해있죠. 행정구역상으로도 베를린이 아니긴 합니다. 매우 가까울 뿐입니다. 리카 씨도 가와사키시(市)에 살면서 도쿄에 산다고 하시는 거랑 비슷…….”
“저, 저는 고향이 자랑스러워요! 그런데 가와사키는 정말 도쿄랑 가깝거든요?! 거의 도쿄예요!”
“예, 그거랑 비슷한 겁니다.”
한구인의 팩트 폭력에 당해버린 리카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가와사키는 가와사키지만 도쿄랑 일심동체라구욧!’이라고 말해보지만, 리카는 연전연패를 거듭할 뿐이었다.
“감독님. 촬영은 베를린 근처에서 하는 게 아니었죠?”
“네. 괴를리츠로 갈 거예요. 여기서 직선거리로는 200km 살짝 넘고, 도로를 따라가면 300km도 넘을 겁니다.”
“오래 걸리겠네요.”
“그렇죠 뭐.”
공항 앞에서 조금 기다리니, 독일의 현지 프로덕션사(社)인 부르큰바우어가 보낸 버스가 두 대 도착했다.
“부르큰바우어? 무슨 뜻이에요?”
“Brückenbauer.”
한구인의 입에서 유창한 독일어가 나오자, 성필은 이미 그가 독일인이란 것을 알고 있음에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현지인이구나.
“직역하면 ‘다리를 만드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아아.”
운전기사는 당연하달까, 독일인이었다.
버스 안에는 부르큰바우어의 직원 둘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조정훈과 영어로 인사했다.
이후는 한구인이 독일어로 그들과 대화했다.
부르큰바우어 직원들도 독일어 능통자가 있단 데 꽤 놀란 듯했다.
심지어 아예 독일인이라니, 그 놀라움은 더해갔다.
“저게 뇌섹남인가 그거냐.”
조아라가 독일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한구인을 보며 말했다.
“뇌섹남이 뭐야?”
“언니 몰라요? 뇌가 섹시한 남자란 뜻이에요.”
“뇌가?”
“그…… 지적으로 매력 있어 보이는 사람이요.”
“아, 그런 느낌. 알지.”
“언니도 그런 거 느껴본 적 있어요?”
“음, 노코멘트할게.”
“에에, 알려주세요. 궁금해요오.”
리카의 칭얼거림에도 장하양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한구인은 통역을 마치고 성필의 옆자리로 왔다. 그러자 버스가 괴를리츠로 향하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멤버들과 스태프들은 시차 때문에 금방 눈을 감았다.
반면 조정훈 감독은 뮤비 대본을 끊임없이 확인했다.
“한 이사님.”
“…….”
“한 이사님?”
“아, 네.”
오랜만에 온 고향이 그리웠던지, 창밖만 바라보던 한구인이 뒤늦게 대답했다.
“아까 무슨 얘기 하신 거예요?”
“조정훈 감독님의 JJH사(社)에서 보낸 일정표를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다행히 Brückenbauer에서 확인한 그대로더군요.”
“…….”
“제가 독일어를 쓰는 게 신기하신가 봅니다. 부르큰바우어, 이렇게 발음하는 게 더 편하십니까?”
“아뇨. 그냥요. 한 이사님이 대단하다 싶어서요.”
“제가 말입니까?”
성필은 처음 한구인을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할 열등감을 느껴왔다.
성필은 고졸이다.
전생에서도 그는 자신의 학력이 부끄러웠다.
고졸이라고 부끄러운 건 아니다. 그리 생각해보려 해도, 사회의 시선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장 자주 만났던 방송국의 인물들은 전부 대졸이었다.
거기다 대형 기획사 직원들도 대학교 졸업은 필수라는 듯, 다들 으리으리한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후일엔 석세스 엔터마저도 그리 변했다.
“능력이 출중하신 분이잖아요.”
만약 성필이 30살로 회귀하는 게 아니라 20살로 돌아갔다면, 바로 수능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만큼 성필이 학력 때문에 받은 무시는, 그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런 성필의 곁에 한구인이 있는 것이다.
한국 최고의 대학.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 취득. 그리고 유명 투자사에 인턴으로 근무.
외에도 여러 기업에서 데려가고 싶어 군침을 흘릴 만한 스펙을 잔뜩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성필은 짤막한 칭찬에, 한구인은 간단히 답했다. 그리고 간단히 성필을 띄웠다.
“제 눈에는 박 이사님이 더 대단하게 보입니다.”
“제가요?”
“예. 지금 박 이사님의 마음이, 제가 박 이사님께 대단하단 말을 들었을 때의 마음일 겁니다.”
한구인은 신중히 말을 골랐다.
“원래 사람이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고 대단하게 보는 법입니다. 저는 박 이사님이 지닌 친화력과 대인관계 능력이 정말 부럽습니다.”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그리 말하는 것을 들으니, 성필은 웃어넘기지도 부정하지도 못했다.
진심 어린 칭찬은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거니까요. 반대로 박 이사님은 제가 가진 학위와 지식을 부러워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부럽다고 자신을 낮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사람마다 가진 장기가 다르니까요.”
한구인도 성필이 지닌 자격지심을 느껴왔다.
성필이 한구인의 자격지심을 느꼈던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존경하는 관계였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성필은 괜히 한구인에게 투정을 부린 것 같아 창피했다.
하하 웃고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려 할 때.
“흐.”
미약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성필과 한구인이 급히 뒤로 돌아보니, 재빨리 입꼬리를 내린 조아라가 보였다.
“야, 조아라. 너 안 자고 있지.”
“……네. 그렇게 오글거리는 말 하고 있는데 어떻게 자요.”
“녹음한 건 아니지?”
“녹음할 걸 그랬어요. 아깝다. 그럼 또 내 컬렉션 느는 거였는데. 이제 진짜 잘게요. 피곤해.”
조아라는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리며 정말 잠을 청했다.
“또 흑역사 갱신했네.”
“하하. 아라 씨만 들으셔서 다행입니다.”
사실, 멤버 전원 듣고 있었다.
피곤 때문에 눈만 감고 있을 뿐, 버스가 출발한 지 10분도 안 됐는데 잠이 들 리가 없었다.
참고로 JJH사의 직원들도 전부 눈만 감고 있었다.
가로 엔터에서 데려온 스타일리스트, 헤어 메이크업 팀도 그러했다.
버스의 거의 모든 사람에게 진심과 진심이 오가는 대화를 전부 들려준 것이었다.
“그런데 한 이사님 고향은 어디세요?”
“베를린입니다.”
“네? 그럼 아까…….”
“괜찮습니다. 프랑스로 가는 날 들르면 되지 않습니까. 독일에서의 촬영이 빨리 끝난다면, 제 본가에서 머무르셔도 될 겁니다.”
모처럼 고향에 왔는데 오자마자 일을 해야 한다니.
한구인도 아쉬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 * *
첫 번째 촬영 장소는 괴를리츠에 위치한, 2차 대전 이전에 지어진 폐공장이었다.
영화 촬영을 위해 몇 번 쓰였단 이유로 주 정부 차원에서 보존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 폐공장 안에,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스태프뿐 아니라…….
“엑스트라가 몇 명이에요……?”
“총원 34명입니다.”
엑스트라만 34명.
첫 촬영부터 돈을 아낌없이 쓰셨구만.